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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지2025-01-13 15:00:04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브스턴스

 

 

 

서브스턴스에서 가장 현실적인 공포는 엘리자베스가 데이트를 앞두고 계속 거울 앞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이다. 외출 준비를 마쳤을 때는 꽤나 만족스러웠지만, 전광판 속 젊고 아름다운 수를 보자마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결점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다시 립스틱을 바르고, 목주름을 감추고, 화장을 덧칠하지만 수정할 부분은 끝도 없이 보인다. 엘리자베스는 결국 거울이라는 자기혐오의 늪에서 얼굴을 뭉개버린다. 여성의 외모와 나이로 가치를 부여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도, 결코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없다. 엘리자베스가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서브스턴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They are going to love you.’, 즉 사랑받을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었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몸과 외모에 가치를 부여해 사랑을 주고, 다시 회수하는 방식으로 길들인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현실의 강화된 버전으로 이러한 시스템이 적나라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특히나 엘리자베스가 진행하는 피트니스 쇼는 ‘자기 관리’라는 미명 하에 여성들이 더욱더 스스로에게 가혹해질 것을 요구한다. 이 쇼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제작자를 비롯해 모든 결정권자들은 남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운동복을 입은 출연자들은 남성들의 눈요깃거리가 되는 동시에 여성들에게 자신을 아껴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완벽한 몸‘이라는 환상을 판매하는데, 이때 여성들이 자신을 아껴주는 방법은 몸을 옥죄는 운동복을 입고 신체 부위를 성애화하는 모습으로 구현된다. 이 환상의 대리인은 쇼의 출연자들이며, 환상의 판매자는 여성의 몸과 외모에 가치를 부여하는 남성적 시선이다. 

 

완벽한 외모와 몸을 자원으로 사랑받아 온 엘리자베스는 오랫동안 시스템의 보상에 길들여져 왔다. 아름다워질수록 자신을 향한 환호는 커졌을 것이다. “여자는 50 넘으면 끝”이라고 말하며 더 젊고 아름다운 인물을 찾는 제작자에 의해 엘리자베스는 가치가 떨어진 상품으로 전락한다. 더 젊고, 더 나은 자신을 향한 엘리자베스의 무자비한 욕망의 근원은 가부장제의 보상체계 안에서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는 어떻게 되는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은 마녀로, 패배자로 그려져 왔다. 아름다운 수에게 자기 자리를 뺏긴 후 엘리자베스는 코트로 몸을 감싸고 도망치듯 거리를 걷고, 젊은 남성에게 수모를 당하고, 혼자 있을 때조차도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 피폐해진 엘리자베스가 잠깐 생기를 찾을 때는 동창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승인해 줄 때뿐이다. 반면 사랑받는 여성은 권력을 얻는다. 그러나 이 권력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누가 승인하는 것인지를 영화는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에서 이 세계를 공고히 유지시키는 것은 제작자 하비와 남성 권력자들이며, 아름다움의 탄생에 찬사를 보내고 동조하는 언론과 대중의 시선 또한 공범으로 지목된다. 시스템 안에서 남성적 시선을 내면화한 엘리자베스와 수는 계속해서 탄생하며, 엘리자베스와 수로부터 변형되고 분절된 버전인 괴물, 즉 ‘몬스트로 엘리자수’ 또한 계속해서 탄생할 것이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던 보부아르의 말을 생각한다.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자신이 원해서 태어났나요? ‘더 젊고, 더 나은 나’에 대한 환상은 여성에게 유독하다. 마지막에 그 유독성 가득한 피를 무대에 난사할 때 해방감 섞인 쾌감을 느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작성자 . 손민지

출처 . https://brunch.co.kr/@minzyson/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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