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1-16 15:04:11
기훈이 형은 은퇴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 리뷰-2편
이 글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의 스포일러 및 전반적인 이 시리즈에 대한 제 개인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리뷰 1편을 읽고 오셔도 재밌습니다(??)

코스트코 회장은 한국 생각만 해도 좋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고 했다. 당연하다. 사업가에게 매출이 잘 나오는 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넷플릭스 CEO가 오징어게임의 참가자가 입는 체육복을 기꺼이 입고 홍보영상에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단돈 300억으로(?)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니.
그뿐만이 아니다.
에미상에서 비영어권으로는 처음으로 수상 및 6관왕 달성. 누적 시청시간 16.5억 시간(역대 최고). 94개국에서 53일간 1위(자료출처:한경국제뉴스). dalgona를 비롯해 오징어 게임에 나온 한국의 전통문화(놀이)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친밀감이 생긴 것은 물론, 이 작은 나라의 콘텐츠는 두유노 시리즈에도 당당히 합류했고. 출연진 모두를 글로벌 인기를 얻는 배우 반열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빨강머리 기훈이 다시 게임을 시작하려는 듯한 결연한 표정으로 공항에서 뒤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글로벌 팬들은 이 시리즈의 후속 편을 기다려왔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 캐릭터의 소모적인 사용에 대한 목소리는 시즌2 캐스팅의 성비(性比)가 공개되면서 더더욱 심해졌다. 또한 한 출연자의 범법행위를 감싸는 듯한 반응에 시리즈의 후속 편을 기다리면서도 욕하게 되는 애증의 목소리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막상 공개된 시즌2는 전편에 비해 그다지 좋은 평을 듣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는 스스로가 세운 최초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딱지맨의 하드캐리가 시즌2의 포문을 열었다면. 영원히 전재준으로 불릴뻔했던 박성훈은 이제 현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외국인들에겐) 새로운 전통놀이들은 이미 유튜브나 숏츠들에서 무한반복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남는다. 시즌2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자 그런 의문 혹은 찜찜함은 더 커진다. 시즌제 드라마, 혹은 (최근의) 마블 영화가 많이 들었던 혹평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바로 다음 편을 위한 발판 마련.이라는 평 말이다. 제작진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길어져서 시즌을 나누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곧바로 내가 [더 글로리]와 [외계인]을 떠올리게 했다.

시즌제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 시간적인 단절이 이뤄지거나 한 사건의 가장 극적인 부분에서 마무리가 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더 글로리]의 경우는 그다지 끊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서 파트를 나누는 바람에, 후반부에서 시리즈 혹은 작가가 가진 단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후자인 [외계인]의 경우는 늘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이야기를 두 편에 나눠 진행하며 제작비를 회수조차 하지 못하는 참패를 기록했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는 아직 모든 파트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쪽에 속할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시즌2를 보며 느낀 점을 얘기하자면 외계인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관이 넓어지며 캐릭터가 많아지다 보니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것은 좋으나. 그와는 별개로 이미 기훈의 이야기는 시즌 1에서 다 해버렸기에 기훈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시간도. 각각의 캐릭터에 이입할 시간도 줄어든다.
결정적으로 죽고 사는 것이 각 게임마다 긴장감을 갖게 하는 요소인데. 어차피 시즌3에서 다 결판이 날 테니 시즌2는 상대적으로 밍숭밍숭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시즌3은 "당연히"기다릴 수밖에 없기는 하겠지만 시즌3이라고 해서 다음 시리즈의 발판이 되지 않으리라 속단할 수는 없게 되고. 결국 다이어트할 때 절대 찾아오지 않는 "내일"처럼 그저 질긴 생명만 유지하게 될 위험도 커질 것이다.

이런 현상은 내게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과연 오징어 게임은 시즌4 이상 나오게 될까?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의 시즌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즌3에서 만약 기발 씨훈이형이 죽는다면 당연히 시즌4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찾아 메인에 내세워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시즌1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뉴비가 만약 이미 기훈처럼 시즌3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시즌2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성기훈이 죽지 않는다 해도 이야기는 똑같다. 애초에 오징어 게임을 주최하는 세력 자체가 척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면서 게임이 다시 열린다 해도. 결국 움직여야 하는 것은 장기판의 말 같은 참가자들이므로. 위에서 말한 것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흐름으로 극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글로벌한 인기를 불러일으킨 이 드라마는, 피곤하다 못해 아주 틀에 박혀버린 시즌제 드라마가 되어버릴 것이고. 이젠 당구마저 한국의 전통게임이라 우길 것이며, 기훈이 형은 영원히 은퇴하지 못한 채 "얼음"을 외치게 될 것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사바하의 장재현감독을 떠올린다.
사바하 2편을 만들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 혹은 마음은 있지만 지켜보겠다. 정도로 말했었다. 물론 후속 편이 나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수요일 조조영화로 볼 사람에 속하는 나지만. 끝날 때. 혹은 맺음을 언제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남는 아쉬움을 쓰다듬을 줄 아는 것이 이젠 덕목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밀려드는 작품의 홍수와 거의 모든 드라마가 시즌제화 되고 있는 트렌드 앞에서. 이제는 한 편에 온전히 모든 것을 담던 예전 영화들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이 화려한 문제작을 보면서도 머리 한편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피로감. 혹은 숙제로 남는 것만 같아 열심히 뛰어다니는 기훈이 형을 볼 때마다 안쓰러우면서도 덤덤해진다. 진심으로 기훈이 형이 은퇴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의 TMI]
1. 감기 너무 독하다.
2. 입으로 숨 쉬니까 더 힘들다.
3.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ㅠ
4. 하지만 그러기엔 난 이미 너무 잘 먹지. 냠
#오징어게임 #OTT #넷플릭스 #이정재 #영화리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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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3주차 최신 씨네뉴스
📮 6월 3주차 씨네뉴스가 도착했습니다!
📢이상일 감독, 신작 <국보> 한국 개봉 예정!
제78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공식 초청되며
많은 관심을 모았던영화 <국보>가 한국에 개봉할 예정입니다.
호평을 받아 국내개봉을기다리는 영화팬들도 많았기에
더욱 기대가 되는데요 👀
출연진 라인업 또한 대단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괴물>의 쿠로카와 소야 또한 요시자와 료가 연기하는
가부키 배우 타치바나 키히사오의 소년 시절을 연기했다고 하네요!
반면 슬픈 소식도 있습니다.
<릴로 & 스티치>에서 극 중 외계인
포탈에 놀라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리는
카메오 역할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데이비드 H.K. 케누이 벨이 16일(현지시간)
돌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벨의 가족인 자린 커나니 벨은 이날 SNS를 통해
"우리의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능력 있고 웃기고 찬란하고
잘생겼던 데이비드 케누이 벨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돼
매우 가슴이 아프다"라고 밝혔습니다.
🗞️
❶ ‘분노' 이상일 감독 ,신작 ‘국보’, 한국 개봉 예정!
❷ 구교환 x 문가영 주연 로맨스 ‘만약에 우리’, 8월 개봉 할까?
❸ 스칼렛 요한슨, ’썬더볼츠’ 크레딧 삭제 요청…“제작에 관여 안 했다”
❹ ‘릴로 & 스티치’ 신스틸러 데이비드 H.K. 케누이 벨, 돌연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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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전후 상황을 보여준 <복수는 나의 것>
1979년 개봉한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復讐するは我にあり)>은 일본 사회의 파시즘적 징후에 대한 영화로, 고도성장기의 피폐한 일본인 등 시대적인 동기가 영화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그 시대 상황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이 작품에서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또한 그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비교적 빠른 성장을 했으나, 산업의 불균형과 세계대공황으로 경제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세계대공황의 여파는 일본을 군사력을 강화하고 위기를 타개하고자 군국주의로 몰아갔다. 그 결과 노동자·농민의 빈곤화가 심화되고 기존 정당의 부패, 사회주의 운동의 확대, 중국혁명의 진전 등으로 국내의 불안은 한층 가중되었다. 이에 군부를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세력이 성장, 국가개조를 통해 위기를 타개하자는 운동이 일어나며, 파시즘은 본격화되었다. 이 일본 파시즘의 특징은 천황제 파시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천황신앙·천황에 대한 충성을 극대화함으로써 국민의 의식·생활을 획일화하고, 일본민족의 우월성·대동아공영권 건설을 강조, 전쟁을 미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천황제는 지배체제의 중심이었으며, 의회는 존속되었다. 이러한 파시즘 속에서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여, 전쟁과 그 준비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국민생활에서 최상위에 두고 정치·문화·교육 등 모든 생활 영역을 이에 전면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사상과 행동양식이 만연하면서 신앙탄압 또한 고도의 성장을 위한 파시즘 징후의 하나였다.
영화는 1963년 10월부터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해 1964년 1월에 걸쳐, 2명을 살해하고 도주하며 대학 교수와 변호사 등을 사칭하여 3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총 80만원을 갈취한 니시구치 아키라 사건을 모티브로 1976년 사키 류조(佐木隆三)가 사건을 취재해 쓴 논픽션 장편 소설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추가 취재하여 1979년 영화화하여 소설과 동명으로 개봉한 작품이다. 영화는 이와오의 살인의 순간들을 무감하고 냉정하게 보여주며, 일반 스릴러에서의 긴장감보다는 다큐멘터리적으로 장면들을 흔들림 없이 나열한다. 실존 인물인 니시구치 아키라는 기독교 카톨릭 신자로 ‘나는 천일옥(千一屋)이다. 천에 하나 밖에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라고 호언하는 사기꾼이자 연쇄살인범으로 총 12 만명에 달하는 경찰의 수사망을 뚫고 78 일 동안 도망쳤지만, 1964 년에 구마모토에서 체포되어 43 세의 나이로 처형된다. 영화에서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너무나 당당하게 사람을 죽이는 극 중 이와오를 보면서 무엇이 이토록 그를 잔혹한 살인마로 만들었을까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데 영화는 이와오의 이러한 살인행각의 원인과 무엇을 원망하는지조차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으며 이해시켜주지 않는다.
단 한번 등장하는 이와오의 어린 시절 과거 장면으로 그의 납득할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증오와 무관심한 가정의 환경 그리고 추악했던 성장배경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일본이 아직 서구의 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때, 목사이자 어부인 아버지는 천황에 대한 복종을 위해 생업과도 연결된 어선을 빼앗긴다. 종교에 대한 순종이 아닌 군인의 폭력 앞에 무력하게 어선을 빼앗기는 아버지를 보며 이와오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이 분노는 곧 변질되어 그의 반항심을 키우고 그를 괴물로 만든다. 이는 나아가 이와오를 통해 종교에 대한 탄압, 군국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를 영화로써 형상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마무라 감독은 이와오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의 괴물로 두고, 이 괴물을 만든 것은 정확한 어떤 원인보다는 이 사회자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고도의 성장을 위한 천황의 획일화를 위해 억압하고 독재적이고 국수적인(보수적인) 사회가 개인의 감정이나 욕망에는 개의치 않고, 그 중 하나인 개인의 종교까지 말살하였고 이들을 보고 자라면서 결국 다음 세대에서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억압에 대한 억눌림이 반사회적으로, 비정상적으로 표출됨을 영화에서 이와오의 과도한 남성성이 살인(폭력)과 섹스로 분출되는 것을 통하여 보여준다. 영화에서 악인은 에노키즈 이와오로 보이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병들어있다. 아내 가즈코 또한 남편의 부재로 욕망이 시아버지 시즈오와의 관계로 드러난다. 아내 시즈코도 사회의 피해자인 것이다. 정신적으로 억눌리고 억압된 욕망이 욕정과 충동 등으로 폭발적으로 분출되자 이런 상황이 되고 피해자들도 속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감독은 이와오라는 이해 불가능한 인물을 중심으로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폭력에 연루된 인간 욕망의 뒤틀린 생태계를 보여주려고 하면서 시즈오와 가즈코나 하루의 어머니 또한 사회의 피해자인 동시에 이와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흉악한 본성을 지닌 인간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19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으로 전후의 일본 영화계에서 활약하며 오오시마(大島渚), 나카히라(中平康) 등과 함께 일본의 누벨바그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며 전후 일본 사회의 그림자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고드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이 중에도,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보다는 그 시스템으로부터 밀려난 밑바닥 삶의 질긴 본능에 주목했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폐해들을 문제 삼은 감독의 다른 작품《가라유키 상》(1975년), 《간장 선생》(1998년) 등에서도 감독의 일본 군국주의 비판을 볼 수 있다.
결국 모호한 살인의 원인과 내러티브는,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과 일치하였다. 감독은 인간의 욕망 분출을 통해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당시 시대상에 의한 혼란스러움과 제국주의 사상이 팽배하여 군국주의가 이끄는 폐해, 혼돈과 인간성의 말살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현실과 영화의 시각화된 구성으로도 이해 불가한 것을 억지로 설명하려 들지 않고 담담하게 감독이 얻어낸 것은 전후 일본 사회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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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 Better Days)
개봉일 : 2020.07.09 (한국 기준)
감독 : 증국상
출연 : 주동우, 이양천새, 윤방, 오월, 주 이, 장예범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Was와 Used to는 둘다 과거시재지만, Used to는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야.” 아이들 앞에 서있는 선생님이 뭔가를 떠올리는듯한 표정으로 영어 지문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이제 과거가 된 일에 사로잡혀있기보단 이젠 ‘그렇지 않은’ 현재를 살고싶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소년시절의 너>라는 제목만 봐서는 왠지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하이틴 로맨스 또는 첫사랑에 관련한 아련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지만, <소년시절의 너>는 끝없이 버텨야만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개봉 당시 ‘충격적이었다’는 평이 많은 영화였는데, 그건 바로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학창시절, 물리적 폭행 장면의 수위가 꽤 높아 누군가에겐 더 힘들고 울렁이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에 관한 트라우마가 크다면 이 영화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폭력적인 장면에 더해 가난한 주인공의 집안 사정과 대입을 앞둔 상황이 더욱 무거운 압박감이 되어 보는이의 마음을 누른다. 아프고 또 두렵지만 성공하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꾹 참고 견뎌야만 하는 소녀와 거친 환경에 홀로 남겨져 강해질수밖에 없었던 소년. 그리고 ‘너희는 어리니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연약한 아이들을 지켜주려 노력하지 않는 무책임한 어른들. 부끄럽고 슬프고 미안했다. 거기에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말 한마디가 더 얹어지고 나니 더 부끄럽고 아팠다.
영화의 중심은 소년과 소녀의 그 나이대에 맞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매 순간 포기하고, 벗어나고 싶은 세상에서 만난 나처럼 아픈 사람, 나의 안녕을 물어준 사람, 나를 위로하고 나를 위해 희생해준 사람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위로. 그리고 그 다음에 피어난 사랑. 풋풋한 소년소녀의 첫사랑이라기보단 아픔과 멍으로 가득찬 단단한 그 감정이 긴 계단밑으로 굴러떨어지는듯했다.
몰입도가 높고 여운이 긴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본 날은 밤새 주연배우의 사진을 찾아봤던것같다. 왠지 그들이 영화 주인공이 아닌 현실에서 웃는 얼굴을 봐야만 이 슬픈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것 같아서 말이다.
소년시절의 너 시놉시스
시험만 잘 치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댈 곳 없이 세상에 내몰린 우등생 소녀 ‘첸니엔’과 양아치 소년 ‘베이’.
비슷한 상처와 외로움에 끌려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은 수능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첸니엔’의 삶을 뒤바꿔버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만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베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입재수를 준비하는 학교.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첸니엔은 후 샤오디에와 함께 우유를 나르고 있다. 첸니엔은 반에서 그닥 눈에 띄지 않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었다.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은 우유들 사이에 유일하게 빨대로 뚫려있는 우유처럼 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게 망가져있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그런 존재였다. 같은반 아이들은 후 샤오디에의 괴롭힘을 모르는척하고 후 샤오디에는 “왜 너희는 보고만 있니?”라고 묻지만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죽은 후 샤오디에를 보며 “왜 뛰어내린거야?”라고 되물을 뿐이다.
후 샤오디에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은 사람은 첸니엔이 유일했다. 바닥으로 추락해 죽은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카메라를 꺼내드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첸니엔은 체육복으로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첸니엔은 새로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선행을 베풀어서, 어른들에게 가해자를 고발한것 같아서. 이유는 그뿐이었다. 의자위에 고인 피 위로 첸니엔의 얼굴이 반사되고 후 샤오디에가 당했던 모든 폭력은 다음 타겟인 첸니엔에게로 향한다.
어른들은 모든 사실을 외면한다. 폭력을 당한다는 피해자에게 “애들과 잘 지내도록 노력하고, 선생님이 얘기할게.” 그게 전부다. 형사들도 이유와 상황을 물을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 행동에 더불어 엄마인 저우 레이가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부풀려진 소문까지 겹쳐지고 첸니엔은 더 심한 폭력을 당하게 된다.
불법장사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하는 첸니엔의 엄마 저우 레이. 그녀는 자신의 정수리에 흰머리가 자라고 있는것도 모를만큼 열심히 일한다. 딸을 베이징 대학에 보내고 그곳에서 함께 인생을 바꿔가겠다는 희망으로 첸니엔을 키운다. 하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매일 빚쟁이들만 찾아올뿐이다.
첸니엔은 마지막 희망인 ‘베이징 대학 입학’만을 바라보고 견딘다. 선을 넘은 폭력도, 불안한 가정 형편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텐데 뒷골목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남자(샤오 베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하다니. 이토록 용기있고 착한 소녀가 또 어디있을까 싶다.
샤오 베이는 그날,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홀로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강하고 거칠어져야만 했던 소년 샤오 베이. 누구도 그 소년을 돌아보거나 챙겨주지 않았다. 같이 아파해주지도 않았고. 샤오 베이에게 첸니엔은 “처음으로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이었다.
“날 보호해줄래?”
위를 막아도 아래를 향해 날아오는 공처럼, 막아보고 또 모르는척 하려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괴롭힘속에서 첸니엔은 어쩔수 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샤오 베이를 만난 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새로운 방법을 찾게된다.
“다들 어리잖아. 두번째 기회는 줘야지.”라고 말하며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위하는 어른들의 이상한 법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건 ‘법’이 아닌 ‘물리적 힘’이었다. 첸니엔은 샤오 베이에게 보호 받으며 열심히 대입을 준비한다. 샤오 베이는 첸니엔이 책을 볼 수 있도록 전구를 하나 더 달고 첸니엔은 샤오 베이가 누워있는 침대 방향을 바라보며 잠이 든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 첸니엔과 샤오 베이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를 지켜주지 않는다. 폭력과 아픈 기억 또한 어른이 되면 잊혀질거라며 말도 안되는 위로를 한마디 던질뿐, ‘아픔을 잊는 법,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법’ 같은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세상속에서 첸니엔과 베이는 함께 앉아 머리를 밀며 눈물을 흘린다. 보호자 없이 향해야하는 수험장과 모독적인 희롱과 폭력을 견뎌야했던 골목. 첸니엔은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낸다.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런 첸니엔을 위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명뿐이다.
“넌 계속 걸어 네 바로 뒤에 내가 있을게.”
“첸니엔은 베이에게 갚을게 하나 있다.”
베이는 첸니엔을 위해 첸니엔의 과실치사 혐의를, 아니 살인죄를 뒤집어쓰기로 다짐한다. 사고로 인해 죽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 웨이 라이를 죽이고 여러 여성들을 성폭행 하려고 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든 베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첸니엔은 대입을 마치기 위해 끝까지 시험을 보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다음’과 ‘다시’가 꼭 돌아올거라는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첸니엔은 죄책감을 안고 베이징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가 정 형사의 거짓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왜 우리 둘을 그냥 두지 않냐며 울부짖는 가냘픈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견디면 견디는대로 더 아팠고, 아프다 말하면 어른들은 잊혀질거라 대답하거나 임시방편을 내놓고 사건을 외면한다. 피해자를 아프게 했던 가해자는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친구로 지내면 좋았을걸, 이제 친구하자’와 같은 열불나는 말만 뱉어내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가 두려워했던건 자신의 죄가 아닌 범죄자라는 낙인정도 뿐이었으니까.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만난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람. 첸니엔은 베이와 함께하길 선택한다. 베이는 항상 첸니엔의 뒤 또는 옆에서 첸니엔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첸니엔은 베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가 ‘어려서 모른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무책임한 어른들보다 더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몰랐다. 이 소년과 소녀의 아픔을. 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의 절망과 혼자서 살아남아야했던 버거움을. 한줄기 희망을 잡고 버텨야만 했던 소녀의 떨리는 손과 어깨를. 이제는 알아야한다.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되도 않는 위로와 동정보다는 이런 아픔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과 든든한 방패막이 필요하다.
최근 큰 이슈가 되었던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며 이 영화와 처음 봤을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상처를 입었던 내 마음을 되돌아봤다. 항상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와 지금도 누군가가 받고있을 상처를.
<소년시절의 너>라는 영화는 힘들고 어두운 영화임은 분명하다. 10%쯤의 희망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빛나고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아프고 울렁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봐줬으면 한다. 폭력이라는것이 얼마나 악랄하고 피해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지. 그리고 세상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소년시절의 너>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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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하면 잘했어.
한계를 뛰어넘어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운동하면서 이젠 도저히 못하겠다 싶을 때 마지막 한 세트를 더 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뿌듯하진 않았다. 항상 나는 운동은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플레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 '그만하면 잘했어.'는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채찍보다 당근을 좋아하고 밑어붙이는 것보다 쉬어가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내가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죽도록 노력해서 성장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기도 한다. 아주 잠시.
플레쳐는 존경받기 힘든 인물이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그에게 한 번도 가르침을 받아 본 적 없는 저 멀리 객석의 관객들 아닐까 싶다. 그의 외향에서부터 칼같이 지키는 시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 가정사를 이용한 비난 등은 사람이 저렇게 못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다. 첫 등장부터 천재의 느낌이 풍겨지는 앤드류에게 플레쳐는 '엄마 채찍'을 사용한다. "그러니깐 엄마가 도망가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고 "호모 새끼"라는 말은 그가 비난을 퍼부울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런 비난이 도대체 무슨 교육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앤드류는 성장한다. 하지만 그 성장은 집착하고 광기를 보이는 부적절한 성장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빠른 비트의 드럼 소리가 들린다. 드럼 소리는 꽤 지속되는데 그 소리가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또 플레쳐가 화내고 비난을 퍼붓는 장면, 앤드류가 피를 흘리며 드럼을 연습하는 장면은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도 사람을 압도시킨다. 극한으로 치닫는 앤드류와 드럼 소리들은 영화 <매드 맥스>를 볼 때랑 비슷하게 긴장됐다.
후반부로 가면 플레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나 싶은 장면이 있다. '그도 사연이 있겠지', '역시 엔딩은 해피겠지.' 하지만 플레쳐는 플레쳐였다. 그래도 나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인데 학생에게 복수하는 모습이 못나 보였다. 그렇지만 복수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부인할 수 없던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앤드류의 광기를 볼 수 있었고 그렇게 탄생한 <위플래쉬>의 마지막 장면은 가히 명장면이었다.
영화 중간에 플레쳐가 자신 때문에 자살한 제자의 CD를 들으며 운다. 그가 우는데 속으로는 '나약하고 허접한 자식'이라고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플레쳐가 극성맞은 자식 교육에 열렬한 어머니 같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후에는 음악에 미친 사이코패스라고 그를 정의했다. 자신은 정당한 일을 했는데 그걸 견뎌내지 못한 사람은 나약한 사람일 뿐이라고. 찰리 파커는 심벌즈에 목이 잘릴 뻔했지만 그걸 이겨내고 최고가 됐다고. 많이 들어본 잔소리 레퍼토리다.
참 답답하다. 찰리 파커는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다를 수 있단 걸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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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을까 넘을까
이 글은 영화 [퀴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퍼런스로 언급할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분위기도 스포일러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 갈 땐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 레퍼런스로, 그것도 훌륭하다 못해 교과서가 될 수 있을 만큼의 칭송을 받는 위치에 있다면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한 칭찬이 더 있을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영화 [퀴어]를 보았을 때, 혹은 보기 위해 마음을 먹은 관객이라면 당연히 감독의 전작인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오름과 동시에 얼마나 그 이야기와 다를지. 그러면서도 감독이 잘하는 것을 얼마나 구연해 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면서 걱정이 될 테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다행인 것은 이 영화가 전작만큼이나 궤도를 안정적으로 그리며 날아간 다는 것이다.
티모시 샬라메의 오디션 탈락 설움을 한 번에 날릴 작품이자(참고 1) 감독의 레퍼런스인 작품이 한 여름, 그것도 해가 가장 기세를 떨치는 바람에 그림자 마저 기를 펴지 못하는 시간대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번 영화는 바람마저 슬슬 바뀌기 시작하는 8월의 어느 날, 어스름해지는 것으로 슬슬 하루의 마감을 알리려는 듯한 그 시간. 하지만 아직은 저물어 가는 그 하루에 대한 강렬함과 미련이 남아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듯한 오후 3시 이후의 이야기를 꺼낸다. 인생에 있어 007 요원 은퇴 후 모은 연금으로(아님) 여생을 보내려는 계획을 세운 있는 리(다니엘 크레이그)의 인생의 시계와 맞아 떨어 지기에. 그가 기를 쓰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찾아다니는 것이 이해가 되면서도 쓸쓸해 보이다 못해 비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한 영화가 주는 아름다움도 이 작품 또한 감독의 손길이 잘 닿았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멕시코를 비롯해 정글에 이르기까지 마을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지의 아름다움과 낯섦을 담고 있어서 눈에 담기는 많은 장면들에서 만족감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충분하다. 특히 누가 봐도 타지인 출신인 리가 마치 환영 인사처럼 팔랑이며 떨어지는 보랏빛 꽃잎들 사이에 앉아있는 장면에서. 그가 이 도시에서 겪어야 할 시련이 얼마나 아프기에. 벌써부터 이런 아름다움으로 눈을 가리려 애쓸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분명 레퍼런스 영화와 다르면서도 닮았기에 어느 정도의 만족감이 쌓이는 영화로 남았을 수도 있지만. 감독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조금 다른 궤도로서의 비행을 시도한다. 리와 유진(드류 스타키)이 큰 칼 하나와 서로에 의지해 정글의 수풀을 크게 한 팔씩 베어가 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그러나 아주 천천히 예전과는 다른 경로로 가는 영화를 보면서 가슴 한편에 조용히 쌓이는 가슴 찌릿한 우려가 있다면 이 새로운 시도가 과연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통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어느 정도는 조심스러웠지만, [퀴어]는 지는 노을만큼이나 훨씬 더 노골적이고, 농염하다. 리는 중독이라는 것 자체에 중독된 사람처럼, 뱉어내는 단어 하나마저도 매우 아슬아슬하기에 그의 걸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태롭다. 그러나 대척점에 서 있는 유진은 그를 밀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의뭉스럽고 쌀쌀맞으며 열어 보여주기는커녕 있는 것마저 숨기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그의 태도에 리는 점점 더 불타오르며 시들어가지만, 그의 시선과 관심을 한 번에 받는 유진은 그 관심의 크기와 깊이에 관계없이, 그의 시선을 고스란히 무시한다.
이 두 사람이 가진 태도의 다름이, 불균형으로 가득한 이 관계가 아프다 못해 서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특히 그 감정은 연인인(?) 유진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텔레파시를 도와준다는 약초(?)를 찾는 여정까지 마지않는 리의 어리석음이 펼쳐지는 3장에서 극대화된다. 사실 3장에서의 몇몇 장면들은 몽환적이라 하기엔 조금은 난해하고. 낯설다고 하기엔 가슴 아프며 받아들이기엔 거부감이 꽤 큰 부분이 존재한다. 설명하지 않았다거나 함축했다는 표현을 쓴다 해도 그다지 적절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방법이 만약 감독이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강조하는 듯한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대하는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어느 정도의 이해로 인해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다. 분열하는 듯하면서도 하나이고,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가도 살아 숨 쉬었으며 서로와 자신을 위한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들이 그토록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영화 내내 인물들이 넘나들었어야 할 경계가 참으로 많고 험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리가 그 지역에서 약간 쉬쉬하는 선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운 보금자리에 뿌렸다면. 두 번째 챕터에서는 유진에게 그 선 너머에서 손을 내민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는 이 두 사람의 혼돈과 확신을 보여준다. 리는 이미 유진의 나잇대에 이미 그 금기를 넘어섰고, 이제는 자신이 퀴어라는 것을 숨기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것이 시공간을 성큼성큼 넘어선다 해도.
그러나 유진은 달랐다. 그의 삶은 이제 시작이었고. 리와 함께 머물기엔 마치 오후 5시에서 6시로 넘어가며 슬그머니 나타난 석양처럼 저물어 보인다고까지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진은 자신이 가끔 일탈처럼 넘어 다녔던 그 선을 외면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 결과 누군가는 선을 넘어선 뒤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고. 또 누군가는 그 선을 등진 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어느 한쪽의 회피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계 안에 남는 것도. 경계를 외면하는 것도. 어쩌면 그들의 남은 생을 살아가기 위해 그 시점엔 반드시 필요했을 용기이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초라하게 시들어가는 리의 모습을 보니 그가 영화의 두 번째 장(phase)에서 유진과 가장 가까웠던 그 순간에 손을 내밀며 마음속으로 되뇌었을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당신은 남을 것인가. 넘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날, 그리고 당신의 일부를 모른 척할 것인가.
참고 1. 티모시 샬라메는 스파이더맨 캐스팅에서 탈락하고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오디션에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 글의 TMI]
1. 유진.. 전완근 루틴 알려줘…팔 너무 예뻐…
2.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의 OST가 영상에 잘 안 묻는다는 생각이 들었음.
3. 내가 조조영화를 보다니. 내가 게으름뱅이가 아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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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억압에 맞서 추는 나만의 춤
당신의 억압에 맞서 추는 나만의 춤
메라비는 무용단 댄서로 활동하면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집안 사정은 조금 빠듯해 보이지만 메라비 가족은 나름대로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언제나처럼 연습과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병행하던 그의 눈에 이라클리가 들어온다. 이라클리는 동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추문과 함께 무용단을 나간 동료의 자리에 새로 들어온 대타 댄서다. 불현듯 나타난 새로운 동료에 대한 메라비의 호기심은 이내 경쟁심리로 바뀌어 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알리코 선생이 언급했던 메라비의 부족한 점을 이라클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못처럼 꼿꼿하면서 힘 있는 춤", 유연하고 섬세한 메라비의 춤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다. 본부에서 무용수 1명을 더 뽑기 위한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메라비와 이라클리는 본격적으로 서로의 경쟁 상대가 된다. 메라비는 오디션 기회를 따내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연습실에 가 연습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라클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새벽마다 함께 춤 연습을 하면서 우정을 키워나간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은 마리네 집 뒷마당의 어느 바위 앞에서다. 메라비가 이라클리가 피우던 담배를 뺏으면서 둘은 몸싸움을 하기 시작하고, 곧장 서로의 몸에 대한 탐색으로 넘어간다. 이때 배경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소음은 호모포비아적인 조지아 문화 안에서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둘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두 사람이 안전하게 있을 공간은 고작 바위 뒤편의 작은 공간이며, 그곳 또한 온전히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 영화가 훌륭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영화는 조지아라는 국가의 현재를, 그 안의 개인과 집단의 모습을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메라비의 여자친구 마리가 런던과 관련된 경험을 자랑하는 모습에서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과 맞물려 유럽의 것들을 선호하는 조지아 젊은 층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버스에서 급하게 옷을 갈아입는 메라비에게 퉁명스럽게 불평하다가 옷매무새를 정돈해주는 승객의 모습, 아무렇지 않게 모르는 사람의 어깨에 기대 자는 모습에서는 조지아 특유의 따듯하고 가족적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지아의 따듯한 정(情)을 담아내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 영화에는 오히려 조지아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그 속에는 조지아의 집단적이고 보수적인 문화를 안팎의 경계에 선 외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감독의 날선 시선이 존재한다. 실제로 레반 아킨 감독은 조지아인 부모를 둔 스웨덴인으로, 자신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건 '부끄러움'의 감정 때문이라 밝혔다. 감독은 2013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극우 성향 정교회 단체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접했고,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고, 영화는 곳곳에서 그러한 부분을 꼬집는다. 특히나 메라비의 아버지 요셉은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자신 또한 과거에 댄서였던 요셉은 "조지아 춤에는 미래가 없고, 댄서의 삶은 개 같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으며 메라비가 다른 직업을 찾길 진심으로 권유한다. 그는 메라비의 유연하고 남성적이지 않은 춤 스타일이 조지아에서 인정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레반 아킨 감독은 자신의 게이 정체성을 점차 알아가는 주인공의 서사와 조지아 춤의 전통적 가치관을 결합해 조지아의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전통 사회상을 전면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집단 가치관에 충돌해 좌절하지 않고, 그 상처와 아픔을 딛고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의 서사를 성공적으로 구축시켰다. 영화에서 이런 메라비의 성장에 대해 확신을 주는 부분은 단연 극후반부의 두 개의 연속되는 롱테이크 숏으로 이루어진 씬이다. 메라비는 자신의 형 다비드의 결혼식장에서 이라클리와 오랜 이별 끝에 재회하고, 그를 다시 볼 수 있음에 안도한다. 메라비가 이라클리를 찾으면서 트래킹 숏이 시작되고, 카메라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그의 모습을 멀리서 잡다가 이라클리가 있는 방으로 찾아가는 그를 따라간다. 메라비의 기대가 무색하게 이라클리는 어머니를 혼자 둘 수는 없어 여자친구와 약혼했다며, 자신은 이제 트빌리시를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한순간에 연인을 잃은 메라비는 그에게 화를 내고 침대에 앉아 흐느낀다.
여기서 잠시 흐름이 끊긴 뒤, 다시 롱테이크 숏이 시작된다. 카메라는 방문을 열고 나가 터벅터벅 걷는 메라비의 모습을 잡는다. 메라비는 거울을 보며 눈물을 닦고 옷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전의 롱테이크 숏과는 상반되게 메라비의 결연한 표정이 눈에 띈다. 메라비는 곧장 건물을 나가고, 마리는 그런 그를 지켜본다. 그리고 카메라는 결혼식 피로연 현장을 보여주는 것 같더니 창문 밖의 메라비와 마리에게로 넘어간다. 둘이 멀리 있어 둘의 목소리가 들려서는 안 되는 구도지만 마리의 말이 선명히 들린다. "용서해 줘, 내가 이해를 못 했어. 미안해." 그리고 둘은 포옹을 나눈다. 집으로 돌아온 메라비는 벽의 무용 관련 사진들을 다 뜯어버리고, 침대에 눕는다. 얼굴에 상처를 가득 입은 형 다비드가 옆에 누워 호모라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말한다. 메라비가 대답이 없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 괜히 얻어맞은 거야?" 메라비가 답한다. "아마도." 형에게 이라클리와의 관계를 들키는 꿈을 꿨을 정도로 그에게 이 상황은 무서운 순간이었을 테지만, 형은 오히려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늘 나보다 나았어." "넌 조지아를 떠야 해. 여긴 가망이 없어." 그리고 두 사람은 진한 포옹을 나눈다. 그렇게 메라비는 마리, 다비드와 포옹을 나누며 그들의 진정한 이해와 존중을 받는다.
오디션 날이 되고, 마리는 메라비를 응원하기 위해 그와 함께한다. 2층에서 응원하는 마리의 모습과 함께 메라비의 독무가 시작된다. 점프 후 착지하다 발을 삐끗하는 메라비는 그대로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이어서 춤을 춘다. 북을 치는 연주자는 이에 맞춰 연주를 재개한다. 그의 유연하고 아름다운 춤동작을 보며 본부 측 인사는 조지아 춤을 모욕하고 있다며 화를 내며 나간다. 메라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춤을 춘다. 알리코 선생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춤을 끝까지 지켜본다. 메라비가 인사를 마치고 오디션장을 나가면서 영화의 타이틀 "And Then We Danced(그리고 우리는 춤을 추었다)"가 뜬다. 이 영화의 마지막 씬은 왜 이 영화의 제목이 "그리고 '나는' 춤을 추었다"가 아닌 "그리고 '우리는' 춤을 추었다"인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리는 씬이며, 또한 조지아의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씬으로 보인다. 그의 춤이 끝날 때까지 북 연주를 계속 진행하는 연주자와 2층에서 춤추는 그를 지켜보는 마리는 그를 응원하는 존재들이다. 그의 춤을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의 춤을 지켜보는 알리코 선생의 모습 또한 정도는 다를지 모르나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메라비는 국가의 억압과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과 자유를 향한 춤을 열렬히 춘다. 그런 그의 주변인에게서 보이는 변화의 몸짓은 또 하나의 춤으로 느껴진다. 결국 이 씬에서 춤을 추는 건 메라비만이 아니다. 영화 내외의 관객들을 끝내 인물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방향으로, 그 변화의 시작점으로 이끌고야 마는 이 영화의 태도는 이 영화를 무척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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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nai0919@gmail.com#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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