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22 15:59:12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발표
홍상수 감독의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초청!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초청작이 발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 초청되었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미셸 프랑코 감독의 신작도 경쟁 부문에 올랐습니다. 마리옹 꼬띠아르, 마가렛 퀄리 등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들도 보이는데요 .
더 많은 작품과 스틸컷은 하단의 사진은 확인해 보세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Ari>, Léonor Serraille
<Blue Moon>, Richard Linklater
<La cache>(The Safe House), Lionel Baier
<Dreams>, Michel Franco
<Drømmer>(Dreams (Sex Love)), Dag Johan Haugerud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홍상수
<Hot Milk>, Rebecca Lenkiewicz
<If I Had Legs I’d Kick You>, Mary Bronstein
<Kontinental ’25>, Radu Jude
<El mensaje>(The Message), Iván Fund
<Mother’s Baby>, Johanna Moder
<O último azul>(The Blue Trail), Gabriel Mascaro
<Reflet dans un diamant mort>(Reflection in a Dead Diamond), Hélène Cattet, Bruno Forzani
<Sheng xi zhi di>(Living the Land), Huo Meng
<Strichka chasu>(Timestamp), Kateryna Gornostai
<La Tour de Glace>(The Ice Tower), Lucile Hadžihalilović
<Was Marielle weiß>(What Marielle Knows), Frédéric Hambalek
<Xiang fei de nv hai>(Girls on Wire), Vivian Qu
<Yunan>, Ameer Fakher Eldin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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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 속 가족에 관하여
한국 영화 속 가족에 관하여
엄마인데요 자식입니다
한국 영화에서 그리는 가족은 주로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 두 종류로 나뉘곤 한다. 전자는 주로 윤제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가 있는 가족으로 서로 치고박고 다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자식은 부모만 생각하면 그리움에 눈물짓는 케이스다. 가족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한국 상업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로, 입양 등의 변주된 형태가 있긴 하지만 가족의 상봉 장면이 거의 반드시 등장하며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감정적인 장면이 필히 포함된다. 후자의 경우는 편부 가정보다는 편모 가정이 압도적으로 많고 차별당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하며 자식은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성장하여 이해하고 눈물짓는다. 영화제목 하나 언급하지 않고 대충 썼는데 이 몇줄 쓰는 사이에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영화만 몇 편인지 모르겠다. 전자든 후자든 억지스러운 감동 장면이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가족은 가족이라는 진부한 서사로 마무리되는 통에 종종 대체 핏줄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묘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심지어 뛰어난 원작이 있는 경우에도 최루성 가족 서사를 위해 파괴된 원작의 팬들이 울부짖기도 하는데 신기한 건 그럼에도 높은 확률로 흥행이 보장된다는 점이다(예를 들자면.. <신과 함께>...). 소위 말하는 이런 노랑장판 감성은 인기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것일까, 아니면 보다보니 익숙해진 관객이 볼 영화가 없어서 보는 것일까. 노랑장판 감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에도 한국 상업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가족 설정은 언제나 논란거리다.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레이디 버드>를 보며 부러웠던 건 모녀의 관계, 나아가 가족 설정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나이에 따른 수직관계가 아직까지 가족 내부에도 강하게 존재하는 동아시아 정서와 자녀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서구 사회의 정서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레이디 버드>에 그려진 모녀관계는 사뭇 달랐다.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은 엄마 매리언(로리 맷칼프 분)과 대립하면서도 사랑하고 매리언이 크리스틴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일은 없다. 극적인 사건 없이 담담하게 크리스틴의 성장담을 그려낸 <레이디 버드>는 모녀관계를 비틀거나 거대한 사건 없이도 관객들의 공감과 감동을 자아냈다. 몇 년째 마냥 헐리우드를 부러워만 하고 있을 무렵 연초부터 <세자매>를 만났다.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라는 특이 조합이 무려 자매라니 그리고 셋이 주연이라니. 이 역시나 흔한 막장가족 서사가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세자매>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첫째 희숙(김선영 분)은 자해를 일삼는 암환자이며 둘째 미연(문소리 분)은 안정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막내 미옥(장윤주 분)은 누가 봐도 분노조절장애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미옥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숙과 미연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 세자매는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며 함께 성장한다. 가족을 향한 뒷담화와 애정이 공존하는 서사는 분명 한국 영화계에서는 드물다.
세자매 이외에도 세자매가 가진 각각의 가족도 그간의 한국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모양새다. 희숙은 날라리 딸과 함께 살며 남편과는 별거 중인 것으로 보이고, 미연은 좋은 집에서 신실한 신자로서 교회를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지만 둘째인 딸은 무슨 이유에선지 식사 기도를 하지 못한다. 미옥은 신기하게도(?) 자신을 사랑하는 이혼남을 만났지만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는 소원하다(영화를 보면 안 소원한 게 신기하다). 묘사되는 특이 가족의 형태는 배우 김선영의 전작 중 하나인 <당신의 부탁>을 연상시키는데 전작에서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김선영은 이번에는 가족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당신의 부탁>, <세자매>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가족의 중심축은 엄마라는 역할이다(<당신의 부탁>의 영어제목은 <Mothers>다). 별의별 책임을 다 떠안아온 한국의 어머니들은(<당신의 부탁>에서 효진(임수정 분)은 심지어 친자식도 아닌 사별한 남편의 아이 종욱(윤찬영 분)을 맡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의견을 말살당해왔다. 미옥의 캐릭터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어떻게 본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 형태를 띠는 바람에 '엄마가 되는 것을 당하지 않은') 미옥이 유일하게 영화 내내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희숙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의견을 울먹이면서밖에 말하지 못하고 보다못한 희숙의 딸이 욕을 해가며 대신 소리를 질러준다. 영화 내내 고상한 부잣집 사모님 코스프레를 하던 미연은 남편의 내연녀를 조용히 밟는 모습으로 성격을 드러내다가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고함을 지른다.
세자매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대단히 한국적이게도 무언가를 먹는 순간들이다. 희숙은 조촐한 밥상을 차려 마요네즈를 좋아하는 딸과 함께 조금씩 먹는다. 평생을 눈치보며 살아온 희숙은 식사마저 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지나 부잣집 사모님이 된 미연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든 포장하려는듯 식사를 정갈하고 풍부하게 차린 후 기도를 끝마치고서야 식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미연의 딸이 식사기도를 하지 못하자 결국 식사를 포기하고 딸을 방에 데려다 혼을 낸다(미연은 영화 내내 자신의 직계 가족들과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편의 내연녀에게 복수(?)를 한 이후 다음날 아침은 대충 가져온 식사로 때우는 모습으로 속내를 표출한다. 영화 내내 과자와 술로 식사를 때우던 미옥은 언니인 미연을 만나서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후반부에는 엄마가 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어설픈 밥상을 차린다. 흥미로운 점은 자매들이 가장 잘 먹을 때는 서로를 만날 때이며 남이 차린 밥상이라는 점이다. 식사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희숙이 가장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은 미연을 만났을 때다. 서사에서 맥거핀으로 작용하는, 미연과 미옥이 여행가서 먹었던 식당은 결국 영화 내내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는 미옥이 제대로 된 식사를 추억하려는 시도의 매개체다. 미연이 있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는 미옥은 그래서 어떻게든 식당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하며 끝내 그 장소를 찾지만 식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하지만 미연이 없어도 식사를 차릴 수 있게 된 미옥에게 더 이상 식당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세자매>의 서사는 어김없이 싸우고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세자매가 뭉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묘사 양상은 파격적으로 다르다. 불우한 과거를 지닌 세자매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영화상에서 피해의식을 간직한 약자로만 그려져 오곤 했는데 최소한 미연과 미옥은 변주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피해의식을 가진 채 평생을 사과하며 살아온 희숙에게 미연은 이제 그만 사과하라고 종용하고, 도리어 자식들을 평생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살게 만든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가부장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자매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편을 들지만 아직 가부장제에 편입하지 않은 희숙의 딸 보미는 왜 어른들이 사과를 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식당에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막내 남동생이 갑자기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 데서 시작한 이 장면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려 하던 세자매가 합심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세대를 건넌 여성들이 피해자의 위치를 부정하고 일어서는 장면이기도 하다. 각기 나름의 가정에서 어머니의 위치를 가지고 가부장제의 또 다른 피해자로 살아오던 여성들은 순간이나마 어머니라는 지위를 거절하고 보호받고 사랑받는 자식으로서의 위치를 돌려받을 것을 주장한다. 희숙은 동생들을 대신해 폭력의 제물이 되었던 전사였으며 미연은 막내동생을 보호하려 집 밖으로 도망나왔던 보호자였고 미옥은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표출해왔던 예술가였다. 세자매가 서로를 피해자로서 연대하는 동시에 수직적인 가족관계에 맞서 사과를 요구하는 이 장면은 세자매가 단순히 가족이 아니라 같은 피해를 공유한 동료임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장면을 지나 서로가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줄 것을 확인한 세자매는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희숙은 암을 방치하는 대신 꾸준히 치료받을 것을 약속하고 미연은 별거한 남편을 무시하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 것을 다짐하며 미옥은 미숙하지만 엄마의 역할을 해내기로 마음먹는다. 희숙이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암이 치료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미연이 남편없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지만 타버린 반찬과 간이 안 맞는 국을 차린 미옥의 밥상처럼 이들의 삶은 불완전하지만 제 기능을 할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그려지던 가족의 클리셰는 개성 강한 세 배우를 만나 흥미롭게 변주되었고 노랑장판이 아니라도 충분히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또한 수많은 서사에서 엄마라는 역할을 강요받던 여배우들은 엄마를 넘어선 역할을 묘사해 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자매>는 가족중심적인 최루성 억지감동 서사를 고집하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드문 뒤틀린 가족영화지만 가족서사에서 여성서사를 추출하여 관객에게 신선한 서사를 선사했다. 이제 한국 영화계에서도 새로운 가족 서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걸까?
*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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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는 방법
그러니까, 안 가면 안돼? 웃는 얼굴에 농담투로 말했지만 사실 진심이 한 9할쯤 담겼다. 그러니까 며칠 전의 나는 여자 친구가 생겨도 안 할법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이것뿐일까? 난 갑자기 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런 말도 듣고 저런 말도 들었어. 아무 맥락도 없이 나는 내 장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 말의 이면에는 지질함이 배어있다. 너도 나랑 멀어지면 후회할걸?이라는 마음이 내 말 안에 담겨있는 것이다. 다 불안감 때문이다. 얘는 정말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친분이 있던 사람들 그 누구보다 얘는 잘해주고 싶은 사람에 가까웠다. 항상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준에도 부합했다. 갑자기 문득 정신이 들어왔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안돼. 이러다간 내 장점도 다 가려질 만큼 추해질 것 같다고. 나는 내 체면을 내려놓을 만큼 나는 얘가 맘에 들었나 보다. 항상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길 바랬다. 왠지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난 아무 말이나 막 질렀다. 있던 일들이 생각났다. 오래간만에 일러스트도 켰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즐거웠다. 이 기간 동안 있던 일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분이 복잡했다. 3달이 금방 갔다.
3달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런 시간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안 하던 짓도 하게 되는 게 사람이구만. 한 200번째 느낀 교훈이지만 오늘은 더 선명히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 추한 내 모습을 지우려 또 다른 깊은 생각에 빠진다. 뇌 비우고 잘해주기만 하고 싶은 사람을 참 오랜만에 만났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그분을 처음 봤을 땐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 선택은 옳았다. 근데 난 이것 빼고 나머지의 모든 걸 다 후회한다. 어렸던 시간이 자랑스럽다면 그건 소시오패스에 가까울 것이다. 난 더 행복할 수 있었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다. 그런데 난 자의건 타의건 그걸 고르지 못해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았다. 이것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이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 고맙다. 돌아오지 않는 화양연화를 한번 더 만들고 싶었던 게 원인이 되어 즐거운 추억이 또 생겼으니 말이다. 이 기억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화양연화>는 시간에 대한 영화다. 2000년대 가장 위대한 영화 손 들어보세요! 하면 대표적으로 뽑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덕인지 코로나19로 인한 왕가위 특별전이 기회가 되어 이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다. 감독 특별전이 나올 만큼 왕가위라는 이름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하다. 난 홍콩과 단 1도 관련이 없는 사람임에도 왕가위라는 이름은 알았으니 말이다. 이 덕인지 기대를 잔뜩 하고 극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난 꾸벅꾸벅 졸았다. '왕가위 하면 미장센'이라는 말도 사실 잘 체감하지 못했다. 이런 심심함에는 영화의 내용도 한몫한다. 서로 이어져선 안 되는 남녀 둘이 만나 잊힐 수 없는 추억을 만든다. 이게 끝이다. 결말 부도 이 영화의 도입부만 봐도 사실 예측 가능하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왓챠피디아에 들어가 '화양연화' 탭에 들어가면 '다들 위대하다고 칭찬하는 영화인데 나는 못 느낀다'라고 답한 글이 베스트 댓글에 올라가 있다. 이 영화는 심심한 영화가 맞다. 왕가위는 다른 영화보다들보다 진중한 화법으로 과묵하게 관객들에게 접근한다. 과연 <화양연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관객에게 물으면서.
이 질문의 답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예시를 들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를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감독이 생각하는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이 작품과 <화양연화>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이 <해피 투게더>를 한 20번 가까이 돌려보며 느낀 게 있다. 조금 과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가령 엔딩신의 이름 모를 후련함은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잘 못 느낄 것 같다. 또 폭포라는 공간 설정 때문에 작은 화면에서만 보면 실감이 잘 안 날 것 같다. 이건 공간 설정의 측면을 벗어나서도 말이 된다. 시각적으로도 폭포 엔딩신의 색이 진한 느낌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큰 패드나 모니터로 보면 이 느낌이 오롯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큰 스크린에 압도되는 기분이 무엇인지 OTT로 보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뜻이다. 이 왕가위 영화 감상 포인트의 중요 지점인 '왜 극장에서 봐야 할까'는 그의 작품을 볼 때 굉장히 중요하다. 극장의 큰 미장센이 영화에 몰입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런 쉬운 몰입은 왕가위가 잘 다루는 외로움이란 감정과도 닿아있다. 이 감독이 다루는 주요 정서는 단연 외로움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해피 투게더>에서는 군데군데 낡은 식당 조리실에서 춤만 춰도 이 감정이 잘 드러난다. 아무것도 없는 부엌에서 하는 행동이니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잘 부각되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극장에서 보면 보다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이니 감정의 전달이 더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해피 투게더>처럼 오직 영화만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서서히 쌓아 올린 감정을 마지막 지하철 엔딩으로 터트릴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동요되는 부분이 있었다. <타락천사>에서 감정을 표현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감독이 적절한 선을 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아비정전>을 보면 발 없는 새라는 모티프가 영화 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날개도 아니고 발이 없는 새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 이게 영화의 엔딩부를 비롯해 주인공 아비의 행동으로 이어지며 결말부와 시너지를 낸다.
이렇게 왕가위는 연출 지점과 플롯, 내고자 하는 분위기를 잘 어우러지게 연출한 감독이었다. 전작을 통한 감독의 말하기 방식은 미니멀하기보단 극대화의 화법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줬다. <화양연화>는 이 지점에서의 화려함이 좀 덜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절제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영화는 양조위와 장만옥이 연기한 두 캐릭터를 틀에 가둔다. 누군가와 통화할 때나 친구와 대화할 때 항상 주위에 뭔가가 있다. 피사체가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혼자의 모습이 세상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를 참고 있다는 뜻과도 닮아있다. 이는 주인공들은 욕망을 스스로 표현할 수 없고 항상 타인이 규정한 무언가 때문에 자기 혼자서 오롯이 서있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출에 의한 두 사람의 처지를 암시하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이 과정 역시 좀 심심하게 보일 수 있다. 좁은 틈으로 서로 걸어 다니는 모습. 참깨죽을 먹고 싶어 한다는 남자의 말. 왜 오늘은 전화하지 않았냐는 애정 어린 투정까지. 이런 소소한 장면 하나하나를 왕가위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으로 그렸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은 <화양연화>다. 이 과정이 주인공들의 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뜻이다. 또 엔딩부에 자막으로 처리되듯 남자는 이 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두 주인공의 들끓는 감정에 비해서 인생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오히려 소박했다는 뜻이 된다. 이 두 가지 연출법은 결국 '화양연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이뤄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됐던 사랑이었다. 이런 처지를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함이 누군가를 깊게 생각해봤다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 것이다. 이 뿐일까?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는 것도 사실 둘의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돌이켜본다고 하는 건 거의 대부분 소망이 소망으로 그칠 때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성공했으면 그냥 현재를 즐기면 되니까 굳이 과거를 회상할 필요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화양연화는 이 상황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왕가위의 <화양연화>는 두 주인공이 서로를 추억하는 모든 순간까지 포함한다는 뜻이다.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지만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될 비밀이 됐고, 또 과거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이 행복이 다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이 시간들이 나에게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웃기는 일이다.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라니.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이것이 생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인간이라서 모든 걸 다 잃기보다는 그런 소소한 무언가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이 오냐고? 근본적으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무엇이든 행복한 엔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랑의 끝은 좋게 끝나야 <라라랜드>였고, 초극한으로 나쁘게 끝나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다. 이건 사랑으로 국한 지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매사가 그렇다. 근데 우리는 이걸 뻔히 다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면 어때.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게 뭐 어때. 우리는 즐거웠기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고, 이것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걸 모두 다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평생 동안 그리워한다. 근본적으로 절대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자학하며 살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마저 없다면 우린 진짜 별게 아닐지도 모르거든. 다른 화양연화가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거든. 비밀이라고 치부하기에 우리 인생 각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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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붉그스름한 군자
감독: 박재민
러닝타임: 4분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 험난한 성인식을 치러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 과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애니메이션 1' 中 <성인식> 스틸컷
옛날 부족국가 시절, 제사는 신을 향한 행위였다. 돼지나 소와 같은 가축도 가능했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도 있었다. 제물이 희귀할수록 신에게 큰 기쁨을 전달할 것이라 믿었던 부족들의 행위였다. <성인식>은 인신공양까지는 아니고, 하얀 새를 제물로 바친다. 제단 위에서 제사장이 꼬마에게 하얀 새를 공양하라고 한다. 그러나 꼬마는 반대한다. 하얀 새를 제사장에게 던지며 제사장을 제단 밑으로 떨어트린다. <성인식>은 샌드아트와 복합적으로 연출하며 빠른 전개와 인상적인 효과를 보인다. 넘어진 제사장을 목격한 다른 하얀 새를 품고 있던 꼬마들은 각자가 품었던 하얀 새를 풀어준다. 하얀 새들은 자유를 찾는다.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 꼬마의 결단력 있는 행동은 성인(聖人)의 모습을 보인다.
상영일자: 9/19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9/1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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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운 노동에 영화라는 즐거움을 잊을 수 없어서
※영화 〈내일의 기억〉, 〈더 파더〉, 〈노매드랜드〉,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존 스타인벡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동이라고. 하지만 달리 보자면 또 그만큼 즐거운 외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 플랫폼에 적을 둔 사람들은 진정으로 고독을 즐길 줄 알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생각만 쌓아 둔 채 글쓰기를 제쳐두었다. 그게 본심이 아니라면 나는 단지 외로운 노동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가 뭐라고 한 적 없어도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는 거라면, 분명 나는 그 즐겁고도 외로운 감정이 그리웠던 것이다. 본 영화는 늘어만 가고 쓰고 싶은 글은 산더미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이 코앞으로 다가온지라 마음만 급하다. 이건 그간 봤던 영화들을 짧게 정리한, 말하자면 습작이나 초고와 비슷한 글이다. 아마 여기서 곧 발전할 글들이 생기리라 확신한다.
1. 내일의 기억 Recalled | 2021 | 서유민 | 99분
기시감, 흔히 ‘데자뷔 Déjà Vu’ 로 불리는 이 현상은 프랑스어로 "이미 본” 이란 뜻으로 최초의 경험을 마치 이전에 봤다고 느끼는 착각을 말한다. 처음 온 장소가 과거에 와 본 것처럼 익숙하고 방금 한 행동이 예전의 기억과 어렴풋이 일치하는 순간은 누구의 일상이든 찾아온다. 하지만 생사를 넘나든 큰 사고를 당해 이제야 의식을 찾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누구든 그 진위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기억을 잃은 수진이 단란한 가정에서 겪는 기이한 데자뷔로부터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관객을 집중시키는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과 조각난 기억을 함께 맞춰가는 추리의 맛이랄까. 이미 여러 영화에서 써먹은 소재와 구상에도 이 정도 재미를 뽑아내는 감독의 역량은 눈길을 끈다.
그런데도 플롯을 영화가 쫓아가지 못한다는 기분을 받는다. 실마리를 풀어가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무의식의 깊이를 구현한 수직적 이미지가 툭툭 끊기는 영화의 편집을 만난다면 관객은 수진과 함께 혼란에 빠지고 만다. 모든 감독은 비장한 각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구현한다. 물론 그게 영화의 만듦새와 함께 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제는 ‘한국적 신파’에 치가 떨린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간의 경험에 크게 덴 나머지 나름의 인장으로 넘길 수 있는 장면도 과민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말의 신파적 요소가 굳이 거슬린다면 〈해운대〉의 신파를 되새겨보며 이 정도면 영화적 기능으로 인정해 줬으면 한다. 만약 누군가가 등장 배우의 논란으로 영화도 보지 않은 채 덮어놓고 비판을 하고 싶다면 성인 수준의 상식에 미치지 못한 판단으로 드라마 전체를 망가뜨린 인물과, 이를 덮을 만큼 가십과 의혹만으로도 매장의 위기를 받는 인물 중 누가 현재의 가시적 해악에 더 가까운가를 생각해 보자.
2. 더 파더 The Father | 2020 | 플로리앙 젤러 | 97분
〈리어왕〉에서는 권력의 소용돌이에 비극적 선택의 첨병이 된 아버지로, 〈두 교황〉에서는 종교적 상징이자 시대와 평화의 ‘아버지’로 자신의 존재를 질문하고 토론하며 결국 내게 주어진 자리의 무게를 깨닫는 인물이 된다. 심지어 〈토르〉에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신의 기원이자 두 슈퍼히어로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안소니 홉킨스’에게 〈더 파더〉만큼 노골적으로 현대의 아버지를 연기하는 것이란 어쩌면 심심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탄탄한 각본을 여전히 놀라운 연기로 끌어가는 80대의 배우가 보여주는 진가는 그 모든 아버지의 모습이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에서 조금씩 드러나도록 완급조절을 한다는 사실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 ‘안소니’의 눈에 이 세상은 부조리하고 이해할 수 없다. 시공간의 왜곡과 변주는 원작인 연극을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였기에 가능했던 탁월한 지점이다. 내 눈앞의 무엇인가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내가 알던 세계가 의심받는 상황만큼 공포를 자아내는 것도 없다. 돌이킬 수 없어 더 안타까운 진실에 이해하려 애쓰는 안소니의 모습은 숙연하며 시종일관 놀랍다. 극적인 감정의 파고를 홀로 묘사하는 장면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의 제목이 ‘나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인 이유는, 그를 지켜보는 딸 ‘앤’이 바라보는 시선이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달라지는 아버지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딸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먼’의 연기 또한 눈을 뗄 수 없다. 어떤 감정이든 금세 관객이 이해하도록 만드는 능력은 미묘한 표정과 눈빛이 대답해주고 있다. 결국 모두의 삶을 위해 내리는 어떤 선택의 장면에 보이는 처연함과 머뭇거림, 슬픔과 확신이 뒤섞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뇌와 우주는 놀랄 만큼 비슷한 구조와 패턴을 보여준다고 한다. 달리 ‘소우주’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우주 宇宙라는 단어에는 ‘집’이 두 번이나 들어간다. 영화 속 인물만큼이나 중요한 주인공인 안소니의 집은 사라지는 인간의 기억이라는 집과 실제 물리적 공간인 집이 교차하고 어긋나며 공포와 혼란을 극대화한다. 뇌라는 우주가 사라지는 동안 나를 지탱하고 보호했던 집 역시 희미해져만 간다.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막막함이란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진 안소니를 두고 떠나야만 하는 불가역적 소멸의 정서와 조응한다.
3. 노매드랜드 Nomadland | 2020 | 클로이 자오 | 108분
올해 보았던 영화 중 최고를 꼽자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집과 일터,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은 ‘펀’은 밴 하나에 몸을 싣고 미국 전역을 유랑한다. 동명의 원작이 사회 현상을 포착하고 기록한 르포라면 영화는 책에 담긴 여러 인물을 펀이라는 가상의 인물에 대입해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헤쳐가는 유목민들, 더 나아가 인간의 실존과 삶, 영화의 근원에 관해 화두를 던진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클로이 자오 감독은 집을 소거한 삶의 공백에 우리가 놓거나 놓지 않는 것들을 찾아가는 한 인간으로 대답한다. 제작에 참여한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직접 출연한 영화 속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떠도는 인물의 고독과 치열한 생의 모습을 마치 실존 인물처럼 연기한다. 사회 영화를 연상시키는 끊임없는 노동의 이미지는 배우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치와 능력을 한껏 발휘한다. 해답을 바라는 구도자의 순례는 결국 출발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과거의 그와 지금은 다르다. 기억으로 가득 찬 집과 사막을 뒤로한 채 다시 떠나는 밴의 뒷모습은 영화의 완벽한 엔딩이다.
배우가 아닌 실존 인물을 그대로 영화에 녹여내 가상의 상황을 연기한 등장인물들은 현실감을 더욱 높여준다. 연출과 실제를 넘나드는 영화의 연출은 가상 인물인 펀에게도 유효하다. 사실 펀을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먼드도 영화의 절반까지는 ‘펀’보다는 프란시스 자신처럼 보인다. 유목민 선배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드넓은 자연을 바라보는 펀의 모습은 영화의 인물이 아닌 다큐멘터리의 호스트로도 보인다. 그래서 〈노매드랜드〉는 중반까지는 미국의 사회 현실을 포착한 다큐멘터리에서, 그 이후 펀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순간 그의 서사로 채워진다. 펀과 맥도먼드라는 두 인물이라는 정체성이 동화되고 중첩되는 과정은 영화라는 예술이 왜 인간에게 유효한가를 잘 드러낸다.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며 결국 커다란 서사가 자신의 이야기로 수렴하는 것이 곧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임을 깨닫는다.
흔히 미국은 자동차의 나라라고 불린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한 나라의 정체성과 상징을 드러낸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단단한 금속에 몸을 실은 유약한 인간은 그 넓은 땅덩어리를 쉼 없이 움직이며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유목민은 미국이 어떻게 건국하였고 여기까지 오게 된 그 정당성을 알려준다. 하지만 거창한 의미 안에는 피와 눈물로 맺힌 비운의 삶이 녹아있다. 노매드 nomad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주 transfer 하기 위해 돌아다니지만 이는 곧 밀려난 이들의 피난처 shelter를 전제한다. 필그림과 아메리카 선주민, 개척시대에 희망을 찾아온 이들, 그리고 부동산과 경제위기가 몰아낸 차 안의 노매드들. 상징으로 추앙받는 한가한 말들에는 나라는 존재가 부유하는 미국인의 역사가 담겨있다. 그들은 여전히 떠돌아다니며 외면받는 존재이지만 바퀴 자국으로 미국이라는 땅에 궤적을 남긴다. 영화 속 미국이라는 땅에 잠든 오랜 역사가 새겨진 돌과 화석은 그래서 노매드를 닮았다. 단단한 돌에 새겨진 바람구멍은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연약한 인간의 발자취,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단하게 남아 있는 미국의 수많은 자동차에 담긴 인간의 삶과 기억을 나타낸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간은 더는 그 자리에 없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던 빌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는 한 화석처럼 영원히 살아남아 흔적을 남기고 말 것이다.
4.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Judas and the Black Messiah | 2021 | 샤카 킹 | 126분
흑인 민권 운동사에 빠질 수 없는 1968년,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서거로 혼란스러웠던 미국에는 극좌파 민권 운동단체 ‘흑표당’이 세력을 결집하고 있었다. 당의 두 창립자 휴이 뉴턴과 바비 실은 각자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압적인 재판을 받고 있었다. 흑인 민권 지도자의 잇따른 부재로 구심점을 잃기를 바랐던 미국 정부와는 달리 위대한 혁명가는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흑표당 일리노이주 지부장으로서 투쟁을 이끌었던 20살의 대학생 프레드 햄프턴은 뛰어난 언변과 협상력으로 대중을 선동하며 후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에 FBI는 그를 반체제 인사로 규정, 그를 감시하기 위해 비밀 정보원을 투입한다. 차량 절도와 FBI 사칭으로 구속 위기에 놓인 윌리엄 오닐에게 이 은밀한 제안은 거부할 수 없었다. 흑표당에 들어간 오닐은 그를 감시하는 동시에 점차 미국 사회의 불평등을 직면하고 헴프턴에 동화된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오로지 민중을 위한 혁명을 외친 ‘블랙 메시아’와 그를 감시한 ‘유다’의 삶으로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 미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BLM 운동과 트럼피즘의 후폭풍,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어느 때보다 소수자의 입지가 좁아 든 작금의 시기에 영화는 60년 전으로 돌아가 혁명과 변혁, 진보의 길에 둘러친 억압과 폭력을 드러낸다. 제목처럼 영화는 ‘유다’의 시선으로 ‘메시아’를 들여다본다.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의 광풍에 ‘유다’ 윌의 배신이란 너무도 평범한 시민이 사회와 상황 앞에서 생존이라는 목표에 움직이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오닐 역의 ‘라키스 스탠필드’는 고뇌와 갈등 앞에 선 불안한 심리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된 사회에서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오닐의 피폐한 모습은 인간성과 도덕을 상실한 파시즘의 권력에 신념을 강요받는 무력한 인간을 묘사한다.
공포의 시대에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생리에 헴프턴은 단호히 부정한다. 직설적이지만 정확히 핵심과 구조를 꿰뚫는 화술을 지닌 그는 권력이라는 적에 대응하기 위해 연대와 사랑을 내세운다. 뛰어난 선동가이자 정치가인 그는 누구와도 손을 잡을 배포로 무지개 연합을 만들어 세력을 규합한다. 맹방기가 걸린 백인 빈민 교회에 당당히 들어가 고통의 역사를 직시하면서도 결국 그들을 설득해 당당히 남부의 깃발 앞 연단에서 백인들을 설득시키는 모습은 경이로우면서도 현대 정치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사유하도록 만든다. 위대한 인물을 연기하기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다니엘 칼루야’는 그의 삶을 되새기며 뛰어난 연기를 펼친다. 클로즈업으로 잡아낸 연설 장면에서도 머뭇거림 없이 카메라의 시선을 이겨내는 칼루야의 모습은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 데 일조한다.
이념의 특성상 여성의 권익에 적극적이었던 흑표당과 국가의 대립에 한 축을 담당하는 뛰어난 여성 인물들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헴프턴의 연인이자 운동가인 데보라 존슨은 그의 마음을 다잡으면서 새로운 세대에게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지적한다. 인간적이면서 강인한 여성으로 모든 상황이 종결된 마지막 장면에 잡히는 그의 감정은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든다. 헴프턴의 동료 주디 하몬은 영화 내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진보적인 조직의 면모를 보이며 신념 앞에 불굴의 의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소화한 ‘도미니크 손’의 커리어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시대의 영웅과 비극적 최후, 그리고 배신과 선택은 범죄 영화 〈무간도〉를 떠올리면서도 탁월한 정치 영화로서 그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특히 소수자를 결합하는 연대의 유산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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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입장' 빼고 나머지 다 한 느낌
과제 같은 느낌. 글을 쓰는 건 임무 같은 느낌이 강하다. 물론 재밌어서 하는 것도 있다. 창작의 재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걸 꾸준히 하는 거겠지? 재미있으니까. 재미는 인생의 엄청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잘 나가는 축구선수가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도 하는 거고. 누구는 매너리즘에 빠져 우울증도 하고 그런 거겠지. 실패 자체가 나만 기억하고 남들은 신경 안 쓴다는 속성을 일찍 깨달으면 좋은 게 많은 것 같다. 알아도 신경 쓰이긴 하지만 뭐라도 얻으면서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물론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장르에서 뭐가 실패하면 한국영화는 분명 성장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 <헤어질 결심>과 <소설가의 영화>가 나온 것이 아닐까? 질척이는 걸 빼고 누벨바그 향 첨가한 한국영화가 좋은 작품의 자양분이 된 건 참 뿌듯한 일이다. 그래서 극장에 자주 가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 내가 세상이랑 소통하는 재미도 얻고 함께 성장하는 것만큼 뿌듯한 건 얼마 없다. 그래서 이 뿌듯함을 얻는 연장선상에서, 어떤 글에는 정말 솔직하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다들 고생하셨겠지만 아닌 건 아니니까. 평생 연예인 얼굴 보고 살 팔자도 아니고 비판받아야 할 건 오로지 감독과 제작자뿐인 걸 아니 목표를 분명하게 정하기로 한다. 이번 주 금요일,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영화 하나를 발표했다. 엥? <베이비 드라이버> 아니야? 아니었다. 살짝 비튼 영화 하나가 공개됐다.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할 때 누구나 최악이 된다> 보고 싶다고 생각이 여러 번 들었던 <서울 대작전>이다.
혼란기 바로 직후
나라가 바뀌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신군부의 맨 위에서 군인들을 지휘했던 전두환이 물러났다. 어지러운 대한민국. 1988년이 되고 예정되어 있던 서울 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에 있다. 그런데 어지럽던지 안 어지럽던지 우리의 주인공 동욱에겐 알 바 아니다. 해외에서 외국 돈 달달하게 벌고 있는 동욱. 이제 적당히 벌었는지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귀국행 비행기를 탄 동욱. 집에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정장 입은 남자가 동욱을 불렀다. 어이! 동욱은 화들짝 놀란다. 고개를 두리번 휘젓는 동욱. 친구 복남의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다.
아지트에 도착한 동욱. 그런데 몸을 피했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었다. 아지트에서 고기 굽고 있는데 난데없이 양복의 남자가 찾아왔다. 일당을 장악하는 남자. 남자는 자기를 소개한다. 안평욱 검사는 공항부터 동욱 일당을 쫓아오고 있었다. 금세 동욱 일당의 범죄사실을 지적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기소할 수 있어’라고 겁박한다. 그러고 미션을 전달하는 안 검사.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사채시장의 대모인 강인숙의 운전기사가 되라고 주문한다. 검사의 진짜 임무는 전 대통령이 어떻게 비자금을 쌓아왔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과제에 당면한 동욱. 동욱과 친구들은 임무를 해결하고 전 대통령을 감옥에 넣을 수 있을까?
익숙한 맛
5공화국 직후의 대한민국이 영화의 소재다. 사실 이런 맛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뤘던 소재들이다. 또 한때 복고 열풍이 불었던 때도 있었던 만큼 나 같은 90년대 후반생들도 이 시절 한국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들국화부터 이선희, 송골매와 장국영까지 국내외 문화예술계가 꽃피웠던 당시의 대한민국. 이 영화는 다른 작품과 다를 바 없이 그때 고증에 철저하다. 일단 1988년 대한민국을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소재가 가장 도입부에 등장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퇴장하고 난 후에도 외국과 교류했던 한국의 세태를 묘사하는 좋은 수였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권력에서 바로 퇴진하지 않았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후에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두 분의 대통령이 집권하고 난 후에 두 범죄자의 법적 처벌이 이루어졌던 것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이 곧바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설정의 치밀함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또 김성균 배우가 연기한 이현균 캐릭터는 군인이다. 군사정권이 퇴진한 이후 군인 출신 정치인이 권력자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위에서 쓴 부분과 비슷한 맥락으로 현실성을 덧붙인 설정이 됐다. 정치현실에 대해서 허술해 보이지만 리얼리티를 남겨둔 설정을 유지한 셈이다. 또 이 외에도 1988년 당시의 나이키 조던 시리즈나 코디 스타일, 음악, '오우삼'으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 등등 시각적, 청각적 고증은 고생을 많이 한 티가 난다. 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감독의 역량보다 더 한 미술팀의 열일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현대사의 단면을 잘라 구현한 설정은 러닝타임의 중반부를 돌아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후술 할) 맹숭맹숭한 전반부가 끝나면 영화의 톤이 급변한다. 끔찍하게 묘사된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 영화의 설정이 좀 더 내밀하게 제시된다. 그리고 톤이 바뀌고 난 후인 이 중반부의 한 시간이 아마 감독이 의도했던 영화의 주요 포인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시대극과 스릴러의 중간지점에서 나름의 균형감각을 가지며 후반부까지 질주한다. 예고편만 보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교묘하게 본뜬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이 <서울 대작전>은 <베이비 드라이버>랑 다른 맛이다. 같은 것이라곤 운전 잘하는 주인공 빼곤 없다는 거? 오히려 <베이비 드라이버>보단 <택시운전사>의 2022년 버전에 좀 더 가깝다. 차량 액션부터 군부세력에 대한 쓴소리까지. 기본적인 틀은 나름 신선하게 설정을 잘 한 듯 보인다. 이에 힘입어 문소리라는 큰 배우의 캐스팅은 굉장히 주요하게 작동한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구는 헛스윙 스트라이크
첫 번째 시퀀스다. 유아인 배우가 내려서 어떤 제스처를 취한다. 이때 보여준 제스처만 봐도 느낌이 안 좋아진다. 바로 다음, 조력자 롤을 맡은 배우가 동욱에게 문서를 전해준다. 그리고 동욱이 문서를 볼 때 선글라스를 살짝 내린 채로 문서를 본다. 오케이. 이것도 살짝 올드한 느낌이 드는데 그럴 수 있어. 직후 동욱이 ‘오 마이 갓뜨’라고 말한다. 거의 3~4년 만에 ‘오 마이 갓뜨’라는 영화, 드라마 대사를 들어본 것 같다. 그리고 그 3~4년 전에도 2018, 2019년의 최근작 영화를 봐서 들은 게 아니다. <논스톱>같이 00년대 초반에 인기 있던 작품을 보다 그 멘트를 들은 기억이 있다. 뭐 영화 배경이 1988년이니까 예전에 쓰던 말을 넣는 건 별 일 아닐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고증이 다른 영화와 차이점이 될 정도로 강점으로 작동하는 영화니까. 근데 관객은 2022년에 이 영화를 본다. 굳이 이 대사가 아니어도 시대상에 대한 고증이 더 꼼꼼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올드한 연출이 제일 첫 시퀀스부터 들어가니 중반부까지의 모든 러닝타임이 헐거우며 조악하기까지 하다. 일단 유아인 배우 옆에 있는 준기 역이 “형이 여기 나가는 게 꿈이잖아요!”라며 차 엔진 소리 ‘우우웅~’을 입으로 낸다. 김무열 배우 닮은 남자다움에 가벼운 역을 하니 뭔가 안 어울리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영화의 전체적으로 써져 있는 올드한 디렉팅에 대사 쓰는 방식까지 너무 과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닌 ‘그냥 과거 영화’ 느낌이 강하니 보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고루한 느낌은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 중반부에 무게감이 생기긴 하는데 그 무게감 중간중간마다 끊임없이 제시되니 집중을 깬다.
두 번째도 헛스윙 스트라이크
바로 다음 시퀀스로 넘어간다. 동욱, 준기 형제가 한국으로 귀국했다. 옆에서 복남이 형제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첫 번째 대사. “이게 누구여. 누구누구 아니여?”다. 그리고 카메라가 복남을 가까이서 찍는다. 음.. 뭐 이상한 대사는 아니다. 그런데 좀 많이 올드하다. 1988년에 나올 법한 인물 소개가 그대로 쓰였다. 다음 장면에서 윤희가 등장한다. 박주현 배우가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내며 등장한다. 윤희는 동욱의 동생이다. 그럼 준기의 누나가 되겠지? 윤희가 준기의 볼을 꼬집으며 “우리 준기, 잘 지냈어?”라고 묻는다. “누나 보고 싶었지?” 뭔가 이질감이 든다. 너무 익숙하게 많이 봐서 이질감이 드는 느낌이다. 이 부분까지 극초반부니 일단 참고 나머지 130분을 보기로 한다.
남매가 그렇게 오랜만에 조우한 후에 카메라는 어떤 인물에게로 옮겨간다. 모피 코트를 입은 남자가 마이크에다 준기, 동욱 형제를 환영하고 있다. 노래를 간단하게 부른다. 조명이 휘황찬란하다. 윤희 한 숨 쉰다. “저 또라이.” 남자가 대사를 말한다. “동욱, 준기 형제님. 어서들 오십시오.” 유아인 배우가 남자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슬쩍 웃는다. 남자는 자기를 소개한다. 보니까 이 인물 이름이 ‘우삼’이다. 설마 영화감독 오우삼을 오마주 한 건 아니겠지? 우삼의 바로 다음 대사를 보니 아마 맞는 것 같다. “아, 그럼 귀국 선물이 없다 이 말씀?” 어.. "이 말씀"이라고?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 음. 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다. 이 기시감 때문에 인물들이 다 뻔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이기도 해서 어색함까지 느껴진다.
정확히 다섯 명의 인물 등장 신을 쭉 썼다. 이 어색한 인물 연출은 러닝타임 내내 쭉 이어진다. 이 다섯 명이 영화에 사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인물들 모두가 올드해서 첫 시작을 굉장히 이상하게 끊은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시한 인물의 내면이 중후반부까지 주요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메인 주인공은 유아인 배우가 맡은 동욱 역이다. 동욱 역에게 어떤 특성이 있어서 중반부에 이어지는 '인물을 관통하는 질문'에 그렇게 대답할 근거가 생긴다. 그런데 이 동욱이라는 캐릭터에게 이런 설명이 없다. 그냥 단지 좋게는 밝게 나쁘게는 유치하게만 묘사해서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히 이 사람들이 구면이고 예전에 인연이 있다는 것만 알기 때문에 사채업의 큰 손의 뒤를 캐는 예리함과 주도면밀함이 느껴지지도 않다. 금세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이 생각난다. <오징어 게임>에서 성기훈 캐릭터가 도망가고, 어머니에게도 궁색 맞은 캐릭터를 설정해 관객에게 ‘이 사람은 이렇게 무책임한 인간’이라는 묘사를 했던 것을 기억하는 관객이 많을 텐데, 이런 방식은 좀 고리타분하다고 느꼈다. 또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음악과 운전을 결합해서 베이비의 운전 실력을 묘사했던 방식과 멀리 떨어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과 괜히 비교하게 된다.
이렇게 주인공 5인방이 다 조악한 방식으로 소개되기 때문에 첫인상이 안 좋다. 캐릭터성을 강조한 액션 영화에서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초장부터 어색하니 균열이 어긋나는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인상은 영화 러닝타임 중반까지 내내 지속된다. 이 어색하고 따로 노는 톤은 유아인, 고경표 같은 베테랑들도 피하지 못했다. <지옥>에서 내면에 분노를 가진 채로 운명론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이비 교주, <헤어질 결심>에서 일에 진심이지만 살짝 유머러스한 경찰을 보기엔 좀 많이 낯설다. 아. 대신 오정세 배우가 연기한 안 검사 역은 초장부터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이 인물은 극의 톤을 바꾸는 굉장히 중요한 반환점이 된다. 이때 처음 등장부터 발성과 억양으로 인물들을 휘어잡기에 극의 강약 조절을 부여하는 역할이 된다. 이 사람이 등장하면 뭔가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이다. 또 문소리 배우가 맡은 역할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이 강 회장 역은 전 대통령 부역자로서 비겁하고 저열한 인간이다. 그런데 이중적인 측면에서 인간적인 면모도 있다. 이 인간적인 면모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혹은 아닌가? 가 극에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두 번째 방식이 될 것이다. 살짝 뻔한 것 같지만 당연히 어렵다. 문소리라는 큰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중압감 있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인물 연출이 이 베테랑도 비켜나가지는 못했다. 조명을 쓰는 방식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인물에게 집중이 안 되는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인물에게 불협화음이 느껴지는데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 부분이 평범하게 쉭 지나간다. 특히 이 인물이 극후반부에 감정연기를 하는 걸 보면 이렇게 소박하게 안 해도 될 대사들이라고 생각했다. 더 터트려도 되는 연기를 해야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텐데 인물이 느낄 감정에 비해 대사들이 죄다 간단하다. 배우가 들끓어 오르는 연기로 소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정세 배우 역시 다른 역할이 뽐내는 이질감 때문에 이 배우의 호연에 집중이 안 된다. 연기는 분명 잘했는데 뭔가 깔끔하지 못한 것이다.
3구도 역시 헛스윙
이런 식으로 인물 연출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쪽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별로 안 느껴진다. 사실 중후반부도 그렇게까지 서스펜스가 엄청나지는 않았다. 군사정권의 잔혹함이 어느 정도 사려있다 뿐이지 전체적으로 유치한 톤이 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한 러닝타임의 강약 조절 실패 때문에 솔직히 많이 지루하다. 박주현 배우의 사랑스러움과 유아인-문소리-오정세 배우의 카리스마로도 덮어지지 못한 것이다. 극후반부에 인물 두 명이 감정을 드러내는 신에서는 두 배우의 테크닉이 느껴지기는 한다. 그런데 대사 중에 '엥' 싶었던 부분이 있다. 구체적으로 쓰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니 여기다 쓸 수는 없다. 예를 들자면 <명량>에서 "미래 후손들이 우릴 잊어버리면 후레자식들이지"를 2022년 버전으로 듣는 느낌이었다. 또 초중반부에 안 검사와 주인공 일행이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장면이 있다. 이거 좀 모순적이다. '내가 소맥이란 걸 개발했다'라는 말로 퉁 치는데, 그냥 어디서 주워 들었다고 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을 뻔했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 '알잖아. 내가 운전은 이찌방인 거'라는 말이 나오는데 감정 몰입이 확 깬다. 배우들의 연륜이 감정선을 끓어 올리다가 대사 때문에 중간에 끊겼다. 이런 식으로 인물과 갈등관계를 어디서 본 것처럼 설정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산만한 톤이 유지되는 건 치명적이다. 영화를 본 후세대를 지나치게 의식한 느낌? 오히려 이 느낌이 <응답하라>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크게는 꼽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분명 연기를 잘하는데 영화는 딱히 연기를 잘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중반부를 넘어가서 군부의 위협이 들어가는 부분부터는 보는 재미는 있는 케이퍼 무비임에도 좋은 평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은 중반부까지 안 보고 그냥 껐을 것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작전
물론 이 영화에는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유아인 배우는 그중에서도 상대 배우와 감정을 집중시키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전체적으로 들쭉날쭉 종잡을 수 없는 영화의 톤 중에서 이 정도의 재미도 찾을 수 있었던 건 이 배우의 경험치 덕이다. 그런데 유아인 배우의 열정으로도 숨길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바로 준기 역의 모든 것이 이상하다. 다들 들쭉날쭉 다른 영화를 연기하는 와중에서도 유독 튀었다. 지나치게 오버하는 느낌이 강하다. 안 그래도 오그라드는 영화의 톤에 오버하는 연기가 주인공 옆에 있으니 보기 어려운 영화의 난이도를 더 높인 셈이다. 그리고 배우 이미지랑도 안 맞았다. 이 배우의 다른 사진들을 찾아보면 엄청 잘생겼다. 아이돌 출신 중에서도 깊이 있게 잘생긴 미남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메이크업 방식 자체가 박주현 배우의 동생이라는 설정에 어긋나 보인다. 시각적인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고증에 진심이었던 영화가 배우 코디부터 실패하면 몰입이 안 된다는 걸 몰랐던 걸까? 잘생긴 미남 아이돌을 어깨가 좁아 보이게 코디한 건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런 불균형이 배우 본인의 책임은 아니다. 박주현 배우 같은 경우도 이 영화에서 좀 따로 논다. 몸을 쓰는 게 어색한 느낌? 근데 이런 단점을 상쇄할 만큼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나? 그건 아니다. 아예 납작했던 인물의 개성을 박주현 배우의 그나마의 매력으로 이끌었다 뿐이지 캐릭터의 특성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윤희 역이 아니라 그냥 박주현 역 같다. 박주현 배우의 드라마 <인간실격> 잠깐 본 게 전부지만 이 분은 이런 식으로 연기했을 것 같다. 이는 신선한 얼굴이었던 박주현 배우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 뿐만 아니라 김성균 배우도 좀 연극 톤 느낌이 강하다. 이 배우가 군인 역을 맡으면 할 것 같은 연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연기 잘했다. 근데 이런 연기 보려고 이 영화 보는 거 아니다. 어차피 김성균 배우 좋은 연기자인 거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럼 뭔가 새로운 게 있어야 하는데 <범죄와의 전쟁>에서 봤던 모습에서 목소리 톤만 높은 방식이라 첫 대사부터 식상하다. 이 캐릭터에서 기억에 남는 건 강 회장과의 독대 신이다. 이 외에는 그냥 '김성균 배우가 군인 역할을 맡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이 작품이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를 희생시킨 영화인 것은 굉장히 아쉽다. 케이퍼 무비에 캐릭터 개성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볼까? 감독의 영화 해석이 중심인 게 아니라 배우의 인기나 매력으로 극을 주파하니 이런 아쉬운 단점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따로 놀게 영화가 느껴지는 것 때문에 뻔한 답을 골랐던 각본이 더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긴장감을 넣는 연출은 했는데 서스펜스는 안 느껴지고. 어쩐지 예상대로 딱딱 이어지고. 심지어 다른 장면에서 이 배우가 이 대사를 치고 어떤 역을 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바로 그대로 이어진다. 연기도 어디서 본 것 같다. 이야기 흐름? 카메라 워킹? 좀 예전에 보던 방식이다. 카체이싱을 껍데기로 군사정권의 위선과 모순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히 착한 영화를 만드는 게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금은 2022년이다. 마석도 형사가 악당들 두드려 패고 톰 크루즈가 저세상 액션으로 관객을 800만 관객 동원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단순히 인기 있는 래퍼 섭외해서 카메오로 넣고. 연기 잘하는 남자 배우 섭외해서 원톱 주연 놓고. 역사의 흑막을 묘사해서 보편적으로 나쁜 놈 만들고. 매력 있는 배우 섭외해서 히로인 포지션에 놓고. 이런 어디서 본 것 같은 기획은 많은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한국영화의 팬으로서 아쉽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마이 네임>같이 작가주의적인 성향을 유지하며 개성 있는 영상물을 만드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게 과연 전부일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의도고 뭐고, 관객들은 재미있는 걸 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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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포머 ONE | 너무 늦게 도착한 이야기의 시작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이버트론 행성의 지하 광산에서 일하는 '오라이온 팩스'(크리스 헴스워스). 변신도 못 하는 하급 로봇이지만, 그는 오래전 사라진 에너존의 근원인 매트릭스를 찾아내려 한다. 사이버트론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 그 일환으로 오라이온 팩스는 둘도 없는 절친 'D-16'(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수다쟁이 로봇 'B-127'(키건 마이클 키), 카리스마 넘치는 '엘리타 원'(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출입이 금지된 지상에 도달한다.
그들은 과거 '쿠인테슨'과의 전쟁 이후 지상에 잠들어 있던 프라임, '알파 트라이온'을 찾아내고 그의 도움을 받아 잠재되어 있던 변신 능력을 얻는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는 함께 따라오는 법. 그들은 사이버트론의 구원자로서 군림하던 '센티널 프라임'이 사실 쿠인테슨과 손잡은 변절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오라이온 팩스와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변신 능력과 힘을 살려 센티널과의 전쟁을 개시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고질병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 10억 달러 돌파 작품을 두 편이나 배출했지만, 눈을 의심케 하는 화려한 CG만큼이나 허점투성이인 스토리텔링으로도 악명 높은 프랜차이즈였다. 특히 마이클 베이가 메가폰을 잡은 첫 5편이 유독 문제였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5편 내내 싸웠지만, 정작 그들이 충돌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렇다. 내전으로 인해 황폐화된 그들의 행성, 사이버트론을 구할 에너지원과 자원이 하필이면 지구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 이에 메가트론은 지구를 정복하고 인간을 노예로 부려서 행성을 구하려 하고, 옵티머스 프라임은 메가트론의 욕망을 저지한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옵티머스 프라임이 메가트론에 반대한다는 것만 보여줬을 뿐, 그가 메가트론을 저지하는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리즈 내내 옵티머스 프라임의 행적은 다소 억지스럽다. '왜 그에게는 인간의 자유가 사이버트론보다 중요할까?' '대체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자유는 무슨 의미일까?' '인간이 그를 죽이려 하는 데도 그는 왜 인간을 도울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보니 <트랜스포머> 시리즈만의 볼거리만으로는 관객들의 관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마침내 드러난 근본 원인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트랜스포머 ONE>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실사영화만 본 입장에서는 17년 만에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갈등을 빚은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 둘도 없는 절친, 오라이온 팩스와 D-16는 사이버트론 사회의 최하위 계급이었다. 그들은 행성을 지탱하는 에너지원, 에너존을 채굴하는 광부 로봇으로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였다.
<트랜스포머 ONE>은 그런 그들이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으로 거듭나고, 사이버트론의 영웅으로 알려진 센티넬 프라임의 실체를 깨달은 뒤 그에게 맞서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그토록 중시한 자유의 의미가 마침내 드러난다. 노예나 다름없었던 그와 동료들에게 자유는 추상적으로 선한 가치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존을 뒷받침하는 생명력 그 자체였던 것.
더 나아가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자유는 보편적인 가치였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센티넬 프라임 치하에서는 언제든 폐기될 수 있었던 로봇들이 대우받을 수 있는 원동력도 그들이 직접 쟁취한 자유로부터 나왔으니까. 따라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보기에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살아남아야 했고, 그가 보호해 줄 이유가 충분했다. 설령 그들이 그를 배신하고 공격하더라도.
흥미롭게도 메가트론에게 자유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누구보다도 신뢰했고 경외했던 영웅, 센티넬 프라임에게 배신당한 그에게 생긴 자유의지는 복수와 동의어였다. 자기가 느낀 충격과 분노를 되돌려 줄 수 있는 힘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입장에서 인간은 보호받을 이유가 없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표출하고 지켜낼 힘조차 없는 존재니까. 따라서 그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가치관과 신념의 차이를 보여준 덕분에 <트랜스포머 ONE>은 시리즈 중 가장 몰입도가 뛰어나다. <엑스맨> 시리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도 유사하지만,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더 높다. 사실 두 영화는 유사점이 적지 않다.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라는 캐릭터의 관계성도, 두 절친이 적이 되고 각자의 팀을 모아 내전을 벌인다는 이야기도 모두 겹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인상은 사뭇 다르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두 주인공의 사연을 더 깊게 알 수 있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를 반복하기에 신선함이 떨어진다. 그에 반해 <트랜스포머 ONE>은 17년 간의 공백을 마침내 채워 넣었기에 더 새롭고, 흥미롭다. 과거 실사 영화에 등장했던 범블비, 재즈, 스타스크림과 쇼크웨이브 같은 오토봇과 디셉티콘을 찾아내는 재미가 더해지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완성도만큼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미치지 못했다. 억지스러운 전개가 종종 보이기 때문. 특히 오라이온 팩스에 비해 D-16만의 서사가 부족하다 보니 그가 메가트론으로 거듭나는 감정선의 변화는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오라이온 팩스와 D-16가 전쟁 도중 실종된 프라임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를 손에 넣는 경위, 센티넬 프라임과 쿠인테슨의 관계를 알게 되는 과정 역시 다소 기능적으로 제시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단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 ONE>의 몰입감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린 액션 연출이 평이하거나 작위적인 전개를 잊게 만든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실사 영화에 비해 연출과 표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데, <트랜스포머 ONE> 이 장점을 극대화했다. 일례로 공중에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를 자주 등장시켜 360도로 움직이는 현란한 연출로 관객의 눈을 현혹한다.
또 트랜스포머다운 변신 기능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트랜스포머끼리의 레이스 경기 도중에 신체 일부만 차량으로 변하거나, 전투 도중 차량과 로봇 형태를 빠르게 오가는 식이다. 이는 실사 영화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실사 작품이 변신하는 과정 그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활용했다면, 애니메이션은 변신이라는 기능 자체를 마치 하나의 무기로써 활용하는 듯하다.
액션 외의 볼거리도 인상적이다. 항상 오프닝 시퀀스 배경으로만 잠시 스쳐 지나간 사이버트론의 전경을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대표적이다. 물론 애니메이션다운 장점은 그 자체로 단점이 될 여지도 충분하다. 아무래도 <트랜스포머>만의 매력이 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인 연출이 가볍고 빠르다 보니 실사 영화에서 맛볼 수 있었던 로봇다운 무게감은 느끼기 어렵다.
너무 늦게 도착한 근본
종합하면 <트랜스포머 ONE>은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 <트랜스포머> 1편 이후로 재미와 완성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부트 이후로 흥행력도 관심도 예전 같지 않은 현 상황을 타개할 작품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실사 작품에 비해 애니메이션 작품의 소구력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트랜스포머 ONE>은 너무 늦게 도착한 듯 보인다. 탄탄한 이야기와 화려한 액션의 조합은 시리즈에 새 숨결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지만, 실사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론조차 되지 않아서 파급력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근본은 마침내 되찾았지만, 조금만 일찍 도착하거나 실사 영화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되기에는 이미 한계가 명확한 시리즈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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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복 후기 / 티빙 동시 개봉 / 공유, 박보검의 환상 케미 / 복제인간이 현실이 된다면...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서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복제인간, #박보검, #공유, #브로맨스, #티빙, #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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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큐!! 극장판 / 쓰레기장의 결전 / 많이 보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 쇼요와 켄마의 매력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끝나고 제대로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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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매드랜드> 메인 예고편
전 세계가 동행한 가슴 벅찬 여정, 길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삶도 계속된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열리는 새로운 길 그리고 희망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과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펀’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노매드들을 만나게 되고,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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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의 편지> 티저 예고편
딩동🎵 첫 번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책상 서랍 속 발견한 의문의 편지로 시작된 이야기 악뮤 수현 더빙 & 평점 9.98의 동명 웹툰 원작 [연의 편지] 10월 1일, 극장에서 우린 만나게 될 거야! #연의편지 #Yourletter #이수현 #김민주 #민승우 #남도형 #10월1일극장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