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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5-01-27 11:11:28

쿠데타와 재즈의 역학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하비에르 마리스칼과 페르난도 트루에바의 첫 번째 협업 영화인 〈치코와 리타〉(2010)에서도, 정치는 넘실대는 낭만의 뒤편에 분명하게 도사라고 있었다. 이 영화는 1950년대의 쿠바 아바나와 뉴욕이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연인이자 음악가인 치코와 리타의 상승과 하강을 그려낸다. 혁명을 앞둔 쿠바와 인종차별이 횡행하지만 아메리칸드림 역시 가능하던 시절의 뉴욕, 두 공간 사이에서 샘솟는 긴장은 진득한 재즈 선율과 함께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두 사람을 향한 애잔한 마음을 샘솟게 해주는 하나의 그럴듯한 무대가 되어주었다. 모든 것이 좌절된 후 쿠바로 돌아왔으나 혁명 이후 재즈가 ‘제국주의 음악’이라는 이유로 억압받는 장면 역시 별 관계가 없어 보이던 정치와 음악의 연결점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두 번째 협업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에서, 정치와 음악이라는 문제의식은 더한층 분명하게 도드라진다. 영화는 한 기자가 브라질의 보사노바를 취재하러 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재즈와 삼바를 혼합해 1960년대에 태동한 보사노바는 음악사에 있어 영화의 누벨바그라 불릴 정도로 혁신과 변화의 중심에 선 흐름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를 경험한 한 뮤지션이 자랑스레 회고하듯, 그 시대 사람들은 극장에서는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을 봤지만 바와 클럽에서는 보사노바를 즐겼다. 기자가 만난 또 다른 취재원은 만약 보사노바가 맥없이 단절되지 않았더라면 브라질 음악이 세계 음악의 중심이 되었으리라 아쉬워한다. 그렇다면, 왜? 왜 보사노바는 어느 날 갑자기 위기를 맞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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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를 휩쓴 쿠데타 때문이다. 1963년 브라질, 1973년 칠레(그 유명한 피노체트의 쿠데타), 1976년 아르헨티나……. 1960~70년대의 남미는 쿠데타의 시기였다. 민주적으로 집권한 좌파 세력이 남미를 장악할 것을 우려한 미국의 묵인하에 군부 세력이 불안에 떠는 우파의 구원자로 등장했고, 남미는 쑥대밭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후과에 시달리고 있다. 쿠데타 이후 남미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불쑥 체포되었고, 체포당한 자는 고문에 시달리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실종 상태로 처리되었다. 국가가 주도한 테러였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애드리브를 핵심으로 하는 재즈가 인간의 정신과 사상을 검열하는 체제와 화목하게 공존하기는 어려웠다. 개인의 정체 성향 문제가 아니다. 그저 재즈와 독재의 본질적인 성향이 극단적으로 달라서다. 보사노바는 이렇게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있다. 재능을 인정받은 천재적 재즈 피아니스트였으나 단 한 장의 정식 앨범만 남기고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사람. 샌드위치, 혹은 담배를 사 오겠다는 메모를 남기고는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 네 아이의 아버지이자 곧 다섯 번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었던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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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사노바 취재기를 엮어 책으로 낼 계획이던 기자는 점점 테노리우의 이야기에 마음이 쏠리고, 어느새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과 흔적을 찾는 데 몰두한다. 동료 음악가, 가족, 연인을 만나며 그는 점차 재즈 피아니스트 테노리우에 관한 음악적, 인간적 퍼즐을 맞춰나간다. 기자는 결국 테노리우의 최후를 확인한다. 아르헨티나 투어 중 납치되어 고문당하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살된 후 버려졌다는 것. 이 사건에는 단지 촉망받던 장르의 천재 한 명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죽었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후 브라질 음악이 독재 세력과 대기업에 의해 주도된 것은 재즈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3분이라는 시간적 제약과 틀에 박힌 형식은 재즈 뮤지션들의 역량과 지향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테노리우의 죽음은 브라질 음악의 죽음에 대한 메타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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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치코와 리타〉는 다채로운 색감과 귀를 간질이는 재즈 선율로 인한 감각의 즐거운 자극, 그리고 그로부터 인상적인 이야기를 빚어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음악과 정치를 버무려 낭만과 폭력의 시대를 통과하는 누군가의 이야기 말이다. 다만 전작이 멜로드라마풍의 끈적거리는 판타지 로맨스라면, 이번 작품은 씁쓸함을 자아내는 다큐멘터리라는 점이 다르다. 〈치코와 리타〉가 좋았다면, 혹은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가 괜찮다면 같은 듯 다른 전작 혹은 최신작을 함께 감상하며 재즈와 함께 부풀어 오르다 의기소침해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경험일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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