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1-30 11:14:31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이 글은 영화 [서브스턴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는 가상의 상황에서 편지를 받았다고 제발 믿어주라(?)

리지 씨에게.
안녕하세요.
우선 너무 늦게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저 역시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라는 같잖은 헛소리를 최근까지도 들으면서 자란 사람이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본 친구들은 분명 징그럽고 피 튀기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올 때 저를 지배했던 감정은 당신을 향한 슬픔과 동병상련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의 부조화는 마치 당신과 또 다른 당신의 관계처럼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마음이 꽤 오랫동안 복잡했어요. 어쩌다 거울 속의 당신을 스스로가 미워하게 된 것일까.라는 물음에 제가 감히 답을 낼 수도, 내기도 어려웠거든요. 저의 얕은 생각과 비루한 기억력을 거스르고 또 거슬러 올라가서. 그 미움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를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답(?)이 나오더라고요.
단 한마디였습니다. 당신의 빛남(sparkle)을 가져간 것은. 타인. 그것도 당신보다 더 나이가 들었으면 들었지.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남자의 단 한마디. 아마도 당신은 여태껏 스스로 빛을 내는 별(항성)인 줄 알고 살아왔을 텐데. 그 비수는 참 힘이 세서. 당신의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핵융합의 심장부에 꽂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당신 안의 반짝임을 스스로가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의 평판을 반사해야만 빛나는 행성이 되어버린 순간이라고 할까요. 아, 그리고 저는 당신이 새우를 씹던 하비의 입을 찢어놓지 않았다는 그 절제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저였으면 포크로 아마 콧구멍을 후벼 팠을 거예요.

한국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은교]에서는 이런 문장(대사)이 있습니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이죠. 분명 당신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패배감과 상실감.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 빛날 수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도 없으니 반사되어 빛나기라도 할 수 없다는 초조함이 아마도 수의 탄생을 부추기는 힘이 되어버렸으리라고 생각해요.
나였어도 그랬을 것입니다. 저 역시 또 다른 나의 탄생을 막을 수 없었을 거예요. 과연 누가 당신의 선택에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그리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차라리 저는 수의 탄생 이후에 당신이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어쨌거나 서브스턴스 제공사(?)측의 말처럼 당신과 수는 하나였으니까. 두 사람 간의 균형이 지켜질 것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당신이 멍하니 TV앞에 앉아서 수의 탄생 전 보다 더 슬픈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과의 데이트에 앞서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이라도 하듯 립스틱을 빡빡 닦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미워하는 듯한 당신의 모습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언젠가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물론 그 어떤 위로도 당신에겐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수를 탄생시킨 것은 당신이고.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젊음을 누리고 싶었던 것도. 그리고 그토록 증오했지만. 어쩌면 당신에겐 가장 필요했을 하비의 인정을 바랐던 것도 당신이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더 빛나고 싶다는 스스로의 욕망이 이토록 큰지. 당신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욕망이라는 게.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깊이의 우물 같은 것이니까요.

육신이라는 게 참 덧없지요.
분명 미워해 마지않던 50대의 당신이었잖아요. 하지만 그마저도 수에게 하루 이틀, 야금야금 빼앗기고 난 후의 당신의 눈빛은 참 아팠습니다. 그리워하고 있더군요. 커다란 액자 속 스스로가 미워했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절박감은 수에게도 찾아왔죠. 그녀가 늦게 깨달은 것인지. 당신이 일찍 깨달은 것인지. 줄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의 치아가 뽑혀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그저 한 사람의 절박함과 공포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의 정중앙에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록되어야 할 그 순간에. 피를 흘리다 못해 분사하는 당신의 모습은 여태 하고 싶었던 본심을 모두에게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괴물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괴물인가. 아니지, 우리 모두 괴물인거지.라고 울부짖는 것만 같았어요. 마치 영화 [샤이닝]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그 괴기스럽기도, 또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는 장면에서. 저는 허망하게 흩어지는 당신의 살점과 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주변 세탁소에서 기함을 토하며 그냥 이 옷을 버리라고 말할 것 같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꼭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아 물론 정상적인?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피를 그만큼 흘릴 수도 없을뿐더러 그만큼 흘리면 명예의 전당까지 기어갈 힘도 없겠지만. 이것은 저의 직업병이며 영화적 허용이라 보고 넘어가도록 하죠(?)

마지막 인사를 뭐라 해야 할지 참으로 많이 망설였습니다.
당신은 그래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이해한다 라는 뭉뚱그린 말로도 그간 입은 상처를 다 보듬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동안 외로웠죠.라는 개똥철학도 건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힘내라는 뻘소리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최후는 바닥에 묻은 케첩의 말로처럼 참 처참했지만. 그러면서도 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끝나버렸죠. 이 모든 것이 아 시발 꿈처럼 느껴지는 마지막이었기에 더 어떤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당신이 겪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절대 없어지지 않겠죠. 두 번째 당신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저 역시 그 푸른 드레스를 입은 살덩어리를 괴물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제일 먼저 도망갈걸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기억될 거예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이죠. 그게 정말 당신이 원했던 것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신.
그…. 주삿바늘은 한 번쓰고 버리신 거 맞죠? 어우.. 제발..
[이 글의 TMI]
1. 이렇게 자도 될까 싶을 정도로 연휴 내내 자는 중.
2. 이럴 거면 그냥 겨울잠을 자라.
3. 노동요 추천받습니다.
#영화리뷰 #최신영화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서브스턴스 #데미무어 #영화리뷰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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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한 그때의 힘
실패의 느낌을 나는 통각으로 기억한다. 무언가 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덜컥 접할 때,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라든지 실연당했을 때라든지 뭐 그런 때. 몸인지 마음인지 알 수 없는 어딘가 갑자기 주사기가 꽂힌 것처럼 그 자리에서부터 아릿하게 통증이 퍼지고 눈물이 고이는 그 기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겠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그런 느낌이 있다. 실패감과 자괴감, 무력감과 절망감이 몸을 뒤덮는 아픔.
그리고 그게 두렵기 때문에 때로는 올인해야 하는 순간에 주춤거리게 되기도 한다. 있는 힘껏 몸을 던져야만 공중그네를 탈 수 있는데 떨어질까 두려워서 몸이 빳빳하게 굳는다. 다음 그네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는 순간의 아찔함이 자꾸 뇌리를 울려와 뛸 수가 없는 그런 마음.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있는 힘껏 뛰어야 한다. 공중그네를 잡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그 이유는 분명 그 두려움이니까. 그러니까 못 할 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될 일도 그르친다고, 그러니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이야 쉽지. 모든 희망의 말에 냉소적이 될 만큼, 나는 계속 그런 두려움에 주춤거리고 있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이 영화가 너에게 많은 힘을 줄 것 같아.
나한테는 그런 영화였거든.그때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주연 배우는 마리옹 꼬띠아르라 했다. 그럼 시놉시스는? 복직을 앞둔 직원 산드라의 회사 동료들이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중 보너스를 택했고 산드라에게는 이제 돌아갈 자리가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작업반장이 협박조의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된다. 산드라는 16명의 동료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그들을 설득해 보려 하고, 주어진 시간은 주말 이틀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deux jours, une nuit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고, 또 다른 제목은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이게 논술 문제라고 하면 차라리 뭘 좀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영화 시놉시스라니 별로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답고 강한' 마리옹 꼬띠아르라면, 아마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꼿꼿한 인물이 투쟁을 하는 모습이 감동적인 그런 영화겠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내 예측은 무참히 깨졌다. 푸석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눈을 붙이고 있다가 받은 전화, 전화를 받는 그 짧은 시간에도 오븐에서 타르트를 꺼내고 칼로 자르는 그 일상적 허드렛일의 느낌... 거의 도망치다시피 뚝 전화를 끊은 산드라의 얼굴에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보여주는 강인함도 아름다움도 없었다. 다만 실패의 통각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얼굴이었다. 억지로 신경안정제를 꾹꾹 눌러 삼키는 건 또 얼마나 익숙한 풍경인가.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저 표정을 지을 때의 마음과 생각과 얼굴 근육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영화는 단조롭다. 처음에 전화를 걸어주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입장의 사장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함께 내 준 동료도 있고, 전화 한 통으로 바로 산드라의 복직 찬성에 표를 던지겠다고 말해준 동료도 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산드라가 주소를 알아내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산드라의 대사는 계속 똑같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고,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재투표를 할 거고, 쉽지 않겠지만 날 위해 투표해 주면 좋겠어. 매번 벨을 누르기 전에는 긴장하고, 잘 되면 얼떨떨해하면서도 환한 웃음이나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만 잘 되지 않을 때는 또다시 나락으로 빠진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감정만큼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니 오히려 그간의 노력을 다 수포로 돌리게 될까 봐 두려워서인지 점점 더 괴로워한다.
그만 하고 싶어, 그냥 관둘래,라고 말하며 울기도 여러 번 한다. 심지어 남은 신경안정제를 모두 다 한 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산드라는 많이 아팠고, 아프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아직도 건강하지 않다. 희로애락을 가파르게 오고 가야 하는 이 시간, 잘못한 게 없음에도 머리를 숙여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조르듯이 부탁해야 하는 이 입장이 산드라에게는 쉽지가 않다.
절망과 희망을 오고 가다 산드라가 주저앉을 때마다 붙잡아 주는 건 그 남편 마누다. 마누는 산드라의 아픔에 같이 한숨 쉬고, 단조로운 몇 마디 말을 건네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산드라가 울면서 그냥 다 관두겠다고 할 때도, 신경안정제를 한번에 먹어 버렸을 때도, 병원에 누운 산드라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도, 마누는 그렇게 단조롭고 평면적이다. 산드라가 걱정하는 일들이 마누에게도 큰 걱정거리일 텐데도, 산드라가 신경안정제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산드라를 신경 써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가사가 잘 들리지 않도록 소리를 줄일 만큼 예민하게 신경 쓰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기 톤을 고요하게 유지한다. 마누는 반짝반짝 웃는 얼굴로 희망을 말하지도 않고, 대본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도 않을 단조로운 몇 마디 말만을 한다. 그러나 그 말과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가 산드라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 그러나 산드라가 그 힘을 직접적으로 느끼거나 그런 마누가 빛을 발하는 장면 같은 건 없다. 그냥 산드라는 허덕이는, 절망에 빠진 사람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사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엄청난 대형 사건보다 매일 반복되는 것들일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를 그런 일상에서 구원해 주는 것도 그런 사소함이다. 공원에서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 점심 먹고 고르는 커피 한 잔, 뭐였다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없는 매일 비슷비슷한 반찬과 이불 무늬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계속 함께 있는 사람들. 마누는 산드라에게 그런 사람으로 있어 준다.
주변 인물이 마치 게임 속의 성직자처럼 몇 번 힘을 부어주고, 그러면 주인공이 빙의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으랏차차 최종 보스를 무찌르고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리는 구도는 사실 만화 속에나 있다. 우리 사는 세상에 그런 슈퍼히어로는 몇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고, 그러니 이 영화도 구태여 말하지도 강조하지도 않고 슥 담았다.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라고 해서 "1박 2일"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절망에 빠져 날려버린 한 번의 밤을 제외한 이틀이었다. 산드라는 계속해서 동료들을 찾아다닌다. 동료들의 상황과 사정도 모두 다르고, 입장도 모두 다르다.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영화는 동료들을 범주화하지 않으려고 공 들인 느낌이 물씬 난다. 동료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는 것은 물론이다. 전화로 간단하게 찬성표를 약속한 동료조차도 이름이 카데르라는 걸 몇 번이나 불러준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입장을 말하는 동료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료들 중에는 공교롭게도 이혼을 결심한 여자 동료가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지금 생활을 버리고 남자친구와 새 출발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딱 잘라 거절한다. 다른 한 명은 남편이 절대 안 된다고 돈이 빠듯하다며 펄펄 뛰는 걸로도 모자라 산드라에게 뻔뻔하다고 욕하는 걸 두고 그 집을 나와 버린다. 그리고 산드라를 위해 투표하겠다고 하며, 같이 차를 타고 가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클럽에라도 간 것처럼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시원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 음악이 강조되는 부분은 자동차에서 음악을 듣는 두 장면뿐인데, 각각 가사를 유심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이민계 동료들도 있다. 부득이하게 둘 다 집을 비운 상황이다. 휴일이라고 쉴 수 없는, 다른 일을 또 해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고 그러니 더더욱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집에서는 동료의 아내가 집을 비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산드라가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들의 언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고는 짤막하게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나가는 길에 급하게 물을 사던 슈퍼마켓에서 마주친, 박스를 나르고 있던 그는 여전히 불편해하면서도 도저히 안 된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
다른 동료는 축구장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고 있던 참이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와서는 준비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놓는 산드라에게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런 투표를 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고, 찾아와 주어 고맙다고, 당연히 네 복직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이야기한다. 미쟝센에 정말로 햇빛이 많았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서 이 장면은 축구장의 잔디밭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장면처럼 기억되어 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를 노스탤지어를 자아냈다. 그의 이름은 티무르였는데, 나는 막연하게 그의 먼 선조를 상상해 보았다. 집에 들어온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고 여유로운 얼굴로 벙글벙글 웃고 있었을, 그의 머나먼 조상의 삶에 비하면 오늘 그의 삶은 얼마나 빠듯하고 이방인의 것이 되었나. 그럼에도 그 풍족한 마음은 잃지 않아서 그는 산드라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눈물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전의 동료가 보인 불편한 표정도 이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내가 상상한 선조 대였다면 분명 그도 넉넉하게 웃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산드라에게 벌컥 화를 낸 사람도 있고, 생활에 지친 얼굴로 삶의 경비를 헤아려 보며 안 된다고 조곤조곤 설명한 사람도 있었고, 산드라 복직의 당위성 자체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 없는 척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린 제롬의 집에서 산드라만큼이나 어려운 제롬의 선택을 듣는다. 산드라의 복직에 찬성해야겠지만, 그러면 계약직인 제롬은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게 될 게 뻔했다.
아, 계약직. 70-80년대 노동의 아픔이 집약된 단어가 저임금이라면 오늘날의 아픔은 계약직이라는 단어로 수렴되는 거 아닐까. 그 아픈 단어까지도 동료들 안에 담아낸 이 넓은 스펙트럼. 제롬의 말투가 덤덤해서 더 곤혹스러웠다. 아무튼 산드라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월요일 아침 8시, 작은 회사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누구도 악역은 없는데 누구나 괴로운 시간이었다. 협박조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는 작업반장조차도 산드라에게 자기 정말 그런 적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진실일까?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두세 명만 돌아와도 이야기는 와전될 수 있고, 입장의 차이가 첨예한 이런 때도 물론 예외는 아닐 테니까. 아무튼 작업반장까지 포함해 절대악은 없지만 피해는 생기는 괴로운 상황이 되었다.
투표의 결과는 8대 8. 최선을 다했지만 과반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산드라의 복직은 성사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소식,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소식, 누군가에게는 복잡 미묘한 심경이 드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산드라는 담담하다. 오히려 선심 쓰듯 산드라에게 '계약직 기간이 끝나면 복직시켜 주겠다'는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일어날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회사를 빠져나가며 마누에게 전화를 걸고 씩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맞다. 산드라는 싸웠다. 동료를 설득한 게 아니라 삶과 싸웠다. 그리고 이건 패배일까 승리일까? 객관적인 지표가 변하는 건 별로 없다. 처음에 산드라가 울면서 이야기했던 괴로운 일들이 다 일어날지도 모른다. 임대 아파트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생활은 더 빠듯해질 것이며,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날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마누의 한숨이 늘고 산드라가 눈물을 훌쩍거리는 날들이 또 있을 수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은 정말로 내일을 위한 시간이었다. 산드라는 그 시간 동안 건강해졌다. 복직은 하지 못했지만 다른 일을 구해서 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여태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한 번 병원균에 맞서 본 몸은 항체를 만들어낸다. 한 번 싸워본 사람은 싸움의 감각을 익힌다. 그렇게 우리는 연약한 와중에 실패와 싸우며 역설적으로 강해진다. 실패한 사람도, 실패가 두려워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도 다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 대단한 업적이나 따스하고 예쁜 말이 아닌, 별 거 아닌 일상성으로 다르덴 형제는 우리를 위로한다. 나도 당신도 약하고 두렵지만 분명 그렇게,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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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조2> 잘못된 첫 단추가 굴려 보낸 스노우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북미 수교를 앞두고 국제 마약 밀매 조직의 우두머리인 ‘장명준(진선규)'이 '잭(다니엘 헤니)'이 이끄는 FBI에 의해 뉴욕에서 검거되자, ‘림철령(현빈)'은 그를 인도받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장명준은 호송 중에 탈출에 성공하고, 그가 남한에 들어간 것을 알게 되자 철령도 다시 한번 휴전선을 넘는다. 한편 수사 실패 이후 광수대 복귀를 노리던 '강진태(유해진)'도 또 한 번 철령과의 공조 수사에 자원한다. 한 층 더 돈독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의심하면서 공조 수사를 펼치던 철령과 진태. 그러나 눈앞에서 장명준을 놓친 잭이 남한에 오면서 세 형사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피어오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장명준의 진짜 계획이 드러나면서 공조 수사는 위기에 봉착한다.
2017년 설 연휴에 개봉해 781만 관객을 동원했던 <공조>는 예상치 못한 흥행 성공을 일구어냈다. 현빈과 유해진의 케미가 돋보이는 가운데 짧은 분량 속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은 윤아의 푼수 연기, 강렬한 악역의 존재감과 나름 짜임새 있는 액션의 조합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공조2: 인터내셔날>은 전편의 성공방식을 고스란히 취하되, 규모를 착실히 키우며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로 잔뜩 무장한 종합 선물세트로 돌아왔다.
성공 공식을 답습한 <공조2>의 명암
실제로 <공조2>는 전작에 비해 한층 돈독해진 림철령과 강진태의 케미에 새로운 인물인 잭을 더해 더 다채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민영과 철령의 로맨스 코미디도 잭 덕분에 삼각관계로 발전한다. 뉴욕에서의 총격전처럼 한층 커진 스케일이 돋보이는 장면도 눈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결과물은 전편처럼 명절 연휴를 겨냥한 선택이 상업적으로 적중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메가폰을 잡은 이석훈 감독이 <댄싱퀸>, <히말라야>,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을 흥행시킨 전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명절 연휴를 겨냥한 흥행이 점쳐지는 것과는 별개로 <공조2>의 결과물은 실망스럽다. 동일한 성공 방정식을 활용했지만 전편에 비해 영화의 톤과 분위기는 일정치 않다. 많은 이들이 좋아할 다양한 상차림을 펼친 것과 달리 정작 메인 디쉬는 없는 듯 보이고, 깊은 맛도 부족하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하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중심에는 장명준과 림철령이 있다. <공조2>는 새로운 인물인 장명준의 서사를 펼쳐 보이면서 스타트를 끊는데, 첫 단추에서 시작된 불협화음이 거대한 스노우볼로 이어진다.
<공조>와 <공조2>의 결정적 차이
당장 오프닝 장면부터 <공조2>는 전작과 매우 유사하다. 일전에 '차기성(김주혁)'의 범죄를 막으려다가 실패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던 림철령은 이제 장명준의 범죄와 탈출을 막는 데 실패하고 아끼는 동료를 잃는다. 이후 차기성처럼 남한으로 향한 장명준을 쫓아 철령은 다시 한번 휴전선을 넘어 내려오고, 진태를 만나 공조 수사를 펼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조2>는 전편이 개척한 길을 착실히 뒤따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바로 극의 주도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공조>는 한 마디로 말해 림철령의 복수극이다. 자신이 신뢰했던 상관의 손에 아내를 잃은 철령의 복수심이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령의 시점에 몰입한 관객들은 자연히 차기성을 응징하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되고, 그 덕분에 감정의 밀도가 자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공조2>는 장명준의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외화를 벌기 위해 당의 명령을 따라 군인의 명예도 버리고 마약 밀거래를 시작한 장명준.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벌어온 외화가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자의 수중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고 범죄자의 길을 택한다. 이후 북한 정권에 의해 가족이 처형당한 사실을 알고서는 북한 측 10억 달러의 비자금을 훔쳐 복수를 실행할 미끼로 삼는다.
따라서 작중 모든 사건과 에피소드는 장명준에 의해 발생하며, 공조를 펼치는 세 형사는 그 사건들에 휘말리는 수동적인 캐릭터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명준이 숨기는 진짜 목표와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할 뿐, 그의 큰 그림과 동기가 무엇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그 결과 뉴욕이나 폐공장, 클럽 VIP룸과 북한 대사 숙소처럼 장명준과 주인공들이 직접적으로 대면하거나 충돌하는 시퀀스를 제외하면 이들 간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명준과 세 형사의 서사는 하나의 이야기로 긴밀하게 엮이는 대신 다 따로 노는 듯 보인다.
달라진 주도자가 밀어버린 스노우볼
물론 장명준을 스토리텔링의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은 나름의 순기능이 있다. 각 캐릭터에게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고,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티키타카는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를 오가는 <공조2>의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장명준을 매개로 잭이 공조수사에 투입되어 림철령과의 라이벌리를 조성한 결과 강진태의 큰 형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 대표적이다. 또 빌런과의 직접적인 연관성 혹은 복수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기에 림철령은 한결 여유롭고 느긋해질 수 있으며, 그래서 철령과 진태의 관계에서는 익숙한 듯 새로운 면모가 엿보인다. 이에 더해 조연이었던 민영의 역할이 늘어나 로맨틱 코미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변화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해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에피소드 간의 집약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실 장명준은 철령에게 잔혹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비록 뉴욕에서 철령이 동료를 잃기는 하지만, 눈앞에서 아내가 살해된 것에 비하면 정서적인 유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동료가 죽는 것은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기제라고 보기 어렵다. 즉, <공조2>는 전편만큼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동기를 대체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했다. 이때 영화는 굳이 장명준과 주인공들의 관계성을 강화시키기보다는 장명준이라는 빌런의 캐릭터성을 강화하여 옅은 관련성을 가리려는 듯 보인다. 악역의 잔혹함이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각인시켜 주인공들과의 대립에 개연성을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약 밀수를 통해 북한 정권의 비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복수하려는 장명준의 서사는 전작의 악역이었던 차기성에 비해 꽤나 상세하게 제시된다. 전편의 철령만큼이나 장명준은 절박하고 다급해 보이는 캐릭터로 비친다.
그런데 정작 카메라의 포커스는 진태, 철령, 잭에게 쏠려 있고 장명준은 국면 전환이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는 언밸런스하고 거칠게 느껴진다. 민영이 호감을 느끼자 잭을 질투하는 철령이나 국정원 요원들과 갈등을 빚는 진태처럼 부차적인 장면들이 거듭 더해지다 보니 장명준의 존재감과 복잡한 서사를 소화해낼 충분한 비중과 분량은 미처 주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서브플롯 중 무엇을 희석시키고 무엇을 농축시켜야 할 지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다. 림철령과 잭이 아니라 현빈과 다니엘 헤니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담기 위해 심심할 때마다 등장하는 슬로 모션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편을 좋아했을 관객들에게 추파를 보내기에 바빠 극의 전반적인 밸런스를 좀처럼 잡지 못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산만함
결국 전편이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액션과 코미디를 활용했다면, 이번 편은 액션과 코미디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짠 것처럼 보인다. 액션이 등장할 때, 민영과 함께 코미디가 나올 때, 강진태의 가족 드라마가 펼쳐지고 장명준의 범죄 행각이 묘사될 때마다 영화의 톤과 템포가 전혀 다른 작품을 이어 붙인 듯 널 뛰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래서 악역인 장명준은 망설임 없는 잔혹한 악행과 독특한 비주얼, 림철령에 견줄 만큼 날렵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극에 녹아들지 못한다. 전편의 경우 전체적인 서사의 흐름이나 구조가 월터 힐 감독의 1988년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 <레드 히트>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속편은 그보다도 못한 부실한 서사를 선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조2>는 산만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영화가 중심을 못 잡는 사이 커진 스케일 사이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장면도 발견된다. 새로운 캐릭터인 FBI 형사 잭을 투입하기 위한 배경 설정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이전에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남북 공조에 미국을 개입시키기 위한 지렛대로 북미 관계의 개선이라는 소재를 끌고 온다. 북한과 미국이 안정적으로 정식 수교 관계를 맺기 위해 잭이 뉴욕에서 검거한 북한 측 범죄자 장명준을 림철령에게 인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했던 북미 고위급 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것이나 평창올림픽 당시 김영철의 방남을 연상케 하는 내용도 <공조2> 배경의 시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북미 관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2022년 현재 시점에서, 추석을 앞두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이러한 배경 설정은 무리수로 느껴질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이를 그저 영화 전개를 위한 가상의 설정으로 볼 수도 있다. '인터내셔널' 대신 촌티가 느껴지는 '인터내셔날'이 부제목인 데에는 첨예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스크린 속으로 끌고 오지 않겠다는 의도가 느껴진다. 또 명절에 걸맞게 웃기는 액션 영화로 남겠다는 <공조2: 인터내셔날>의 정체성과도 맞닿아있다. 비록 코미디가 신선하다고 보기 어렵고 휴지 대신 파리채를 쓰는 액션씬이 인상적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웃음을 강요하지 않으며 나쁜 놈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이기는 액션은 <공조2>가 목적을 이루는 데에 충분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공조2>의 완성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처럼 명절을 겨냥한 장르물이 OTT로 공개되는 가운데 명절 영화라는 이유로 못 만든 영화라는 비판을 피해 가는 기획과 제작에 어떤 의의가 있을지 의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땅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빈집 털이에 가까운 <공조2>의 성공 역시 과연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을지, 그 의문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D(Dreadful, 끔찍한)
흥행만을 노리는 선물 세트에 담긴 한국 상업 영화의 절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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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에 담긴 따뜻한 가족애 영화 스위치 Switch
크리스마스 캐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은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어 현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뒤, 의미 있는 시간들로 바꿔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어느 누구나 순수하고 사랑을 전하는 시절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때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한 헐리우드 영화 '패밀리맨'이 있다. 음울한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니콜라스 케이지 배우가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냈던 영화로 잔잔한 감동의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한국 영화로 올해 초 '스위치 Switch'가 개봉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 이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펼쳐지고 그 상황들 안에서 무엇이 진정한 삶의 행복을 주는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개봉 직전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스위치'로 제목을 변경한 영화 안으로 들어가 보자.
스위치 Switch
스위치 Switch는 12세 이상 관람가로 몇몇 비속어 등이 나오지만, 유쾌한 코미디물로 "어?! 엄마! 아빠! 우리 집도 저러잖아~~!"라는 말이 나올 만한 장면들이 많아 어린 자녀들과 함께 볼 만하다.
자아도취 '박강' 역을 맡은 권상우, 금사빠 '조윤' 역의 오정세, 그림을 그리는 '공수현'에 이민정, 햇살같은 맑은 웃음의 '박로희'와 '박로하' 역은 박소이, 김준이 연기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이익준'의 아들로 사랑스러운 연기를 펼쳤던 김준은 이 작품에서도 해맑은 모습을 보여준다.
박강의 엄마로 분한 배우 '김미경'은 코믹물의 좌충우돌 흔들리는 분위기 속 , 마치 시소의 중심축처럼 안정적인 중심을 잡아주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2D 디지털로 제작, 러닝 타임 112분으로 2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손익분기점은 145만으로 41만의 관객이 들었으니, 흥행은 저조했다. 2월 8일부터 VOD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집에서 감상하기에 무난하다.
김철홍 평론가는 " '스위치', 웰메이드 가족영화의 탄생"이라는 평을 냈다.
여러 이슈들이 있는 작품이지만, 영화 자체는 웃기고 재미있다.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이 정도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은 작품이다.
평행우주를 소재로 한지라 같은 상황 속 다른 인물로 대체된 장면에서 그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서로의 다름을 볼 수 있는 것도 재미가 있다. 어떠한 배우가 어떠한 작품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가 고사해 다른 이가 맡았을 때 대박이 나면, 첫 캐스팅 제의를 받았던 이가 연기를 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말이 나오곤 하는데, 그러한 말이 왜 무색한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박강 역을 맡은 권상우 배우는 탑 스타였을 때와 매니저로 변모했을 때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없었으나, 악역 전문이라는 오정세 배우는 오히려 그 차이가 극명해 앞으로의 연기가 기대된다.
'히트맨'에서부터 시작된 유부남 연기가 참 잘 어울리는 권상우 배우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히트맨 캐릭터와 오버랩 되는 장면들이 속속 등장한다.
스크린에서 만나는 이민정 배우가 반갑다. 앞으로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그의 연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따뜻한 가족애가 담긴 가족영화로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소원하였어도 나와 자녀와의 관계는 다정할 수 있음을 보며 많은 이들이 희망적인 소망을 발견하는 시간이 될 듯하다.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좀 더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애쓰는 가장의 마음이 배우의 진심 어린 눈물과 함께 젖어드는 스위치는 대한민국의 아버지 겸 남편인 남성들에게는 위로와 공감을, 남편의 꿈을 이루는데 숨은 조력자로 함께 하는 공수현은 아내들에게 있어 격려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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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사로잡는 레드, 강렬한 색감의 영화 -9-
❣️[Cinelab Curation]❣️
이번 주에는 강렬함으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빨간색이 인상적인 영화를 들고 와 봤습니다.
영화에서 빨간색은 파워, 열정, 공포, 분노, 폭력 등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담은 은유적 표현의 하나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죠.
색감이 주는 강렬함 때문인지 포스터에서도 빨간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 큐레이션에 등장하는 <콘클라베>, <더 폴> 뿐만 아니라
<위플래쉬>, <퇴마록>, <에밀리아 페레즈> 등 현재 박스오피스에도 빨간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포스터들이 많네요..!
여러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빨간색이 가득한 영화는 무엇이 있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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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 리차드>가 흑인을 위한 정치일까?
‘철저하게 계획하고, 노력하여, 꿈을 현실로 만들라’는 말을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기분이 드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 세상이 계획한 대로, 노력한 대로, 꿈꾸는 대로 굴러가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부유한 백인과 가난한 흑인은 같은 계획을 품고, 같은 노력을 기울여, 같은 꿈을 항해 나아가도 다른 결과를 마주할 확률이 크다. 아무리 치열해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사회‧문화‧경제적 부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오력’을 향한 조롱,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킹 리차드〉는 다른 길을 간다. 현실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대신 더 철저하게 계획하고, 노력하며, 꿈꾼다. 주인공은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의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다. 리차드는 두 자매가 태어나기 전부터 테니스 선수로 키울 것을 ‘계획’했다. 그것만이 딸들이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하게 자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가족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리차드는 이웃 주민에게 아동학대 신고를 받을 만큼 열정적으로 두 자매를 훈련시킨다. 딸들이 혹독한 경쟁 시스템에서 소모되다 버려질 것을 우려하여 유명 코치와 스폰서, 에이전트의 제안을 모두 물리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뤄낸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리차드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
리차드와 비너스, 세레나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인종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분명 흑인의 꿈을 증폭시켰다. 세 부녀가 ‘백인 스포츠’인 테니스에 낸 균열은 그들을 보고 테니스 선수를 꿈꾸기 시작한 흑인들로 인해 더 커질 수 있다. 그럼으로써 흑인이라는 이유로 과잉진압을 당하거나 총에 맞지 않는, 마약과 폭력에 빠지는 않는 삶의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흑인에게 다른 미래가 있음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 부녀의 기적적인 성공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갖는다고 할 수는 없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강한 의지와 용기,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건 소수에게만 허락된 ‘기적’이다. ‘하면 된다’의 주술은 모두에게 빛나는 미래를 허락하지 않는다. 언제나 소수만이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이 소수의 존재가 기적을 꿈꾸며 계획‧노력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할 사람들의 공허한 기다림을 양산한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통치술이다.
지금껏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는 대체로 두 가지 길을 걸어왔다. 첫 번째는 〈킹 리차드〉처럼 흑인 개인의 성취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두 번째는 집단으로서의 흑인의 문제와 그들을 위한 정의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흑인이 차별을 받는다는 건 영화가 그리는 공통적인 현실이지만,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영화가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이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성공한 흑인도 언제나 피부색으로 환원되어 독해될 가능성이 있고, 흑인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는 운동도 뛰어난 개인의 역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흑인 영화의 범주적 구분이 아닌 해석이다. 영화가 흑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집중하기보다는 사회적 수용의 측면에 집중함으로써 영화 스타일에 한정되지 않는 다채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윌리엄스 가족의 노력과 이 이야기를 재생산하여 전파하는 일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계획, 노력, 꿈은 소중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성취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이 ‘덜’ 계획하고 노력하며 꿈꾼 자들을 향한 비난의 근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또 다른 계획‧노력‧꿈에 대한 폄하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결국 〈킹 리차드〉가 할리우드의 문법과 방식으로 풀어낸 세 부녀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우리 사회의 몫이다. 왜 이들이 재능과 꿈을 가졌음에도 남들보다 더 철저하게 계획하고 노력해야만 했는지에 주목하여 계획‧노력‧꿈을 평등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지, ‘결국 하면 된다’는 부조리한 명제의 반복에 그칠지는 영화를 소비하는 사회의 역량에 달렸다. 이는 영화 제목의 ‘King’을 리차드의 헌신에 대한 존중을 담은 표현으로 이해할지, 성공하지 ‘못한’ 절대다수를 발아래 두는 왕의 의미로 해석할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인종적 정의의 방법론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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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러스처럼 스며들고, 사라지는 사랑
사랑은 언제 오는 걸까.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왔다가 가는 걸까.그건 정말 ‘온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일까. 우린 이 감정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없어져 버린 순간,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린 사랑이 왜 그렇게 가버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 안에 들어왔다가, 어느 날 낯선 표정으로 우리를 갑자기 떠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우리는 항상, 너무 늦은 이후에야 알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의학적 의미의 바이러스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바이러스처럼 겹쳐 놓는다. 한 사람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진짜였을까? 진짜였다면, 그게 진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영화 <바이러스>는 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결국 다 지나가지만, 다 지나갔다는 걸 먼저 아는 쪽이 더 외로워진다. 더 외로워지는 사람이 사랑의 바이러스의 희생자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사랑은 올 때도, 갈 때도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감정] 택선의 우울
택선(배두나)은 꽤나 부정적이고 우울한 사람이었다. 사랑 바이러스 감염 이전의 그녀는 무표정하고 삶의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이 귀찮은 듯한 그 모습은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회의적이고, 냉소적이며, 따뜻한 말을 건네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사람. 누군가가 그녀에게 “괜찮아?” 하고 물어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어딘가 무너져 있는 표정의 택선은 생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건 이제 없다고 믿는 사람만이 가지는 눈빛이 있었다.
번역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녀는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한다. 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중, 동생이 주선한 소개팅 자리에 나간 그녀의 얼굴은 처음부터 짜증으로 가득하다. 소개팅에 늦었지만 사과조차 없는 남자, 수필(손석구)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이내 일 때문에 먼저 자리를 뜨고, 자신의 우산까지 가져가버린 별종을 바라보며 더 큰 우울감에 빠진다. 원래 우울함을 가지고 있던 택선은 수필을 만나도 오히려 우울이 증폭되어 버린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택선에게는 사랑 따윈 없을 것만 같았다. 영화는 행복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수필이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택선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설정을 따른다. 이후 수필은 택선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감정은 어느새 그녀에게도 전염된다. 그렇게 택선은 강제적으로 ‘행복’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택선이 느낀 건 정말 바이러스 때문만이었을까. 아니면 택선의 마음속에 원래 자리하고 있던 몽글몽글한 감정이 튀어나온 것일까.
[두 번째 감정] 택선의 사랑
그녀는 감염되고 나서도 처음엔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택선의 얼굴은 붉어졌고, 시선은 부드러워졌다. 스스로는 알지 못한 채, 행복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티내기 시작했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이해되었지만, 몸은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긍정적인 생각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왠지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희망이 그녀를 이끌었다.
택선이 경험했던 모든 감정이야말로, 그게 진짜 사랑이었다는 증거 아닐까.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이균 박사(김윤석)와 가까워지며 그녀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균은 그것이 감염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택선을 밀어내지만, 서로를 향한 호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재난 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이러스보다 두 사람의 감정 변화다. 이 사랑이 진짜인지, 아니면 병적인 착각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그건 진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감염된 신경전달물질의 결과였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밝은 모습으로 웃던 택선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온전히 긍정의 세계에 몸을 맡기던 택선. 그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그게 진짜 택선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울했던 택선이나, 공허했던 택선보다 더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에게 다가가려 했던 그 모습이 가장 택선답게 느껴지니까.
[세 번째 감정] 택선의 공허함
치료가 끝났을 때,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아니, 무표정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 자체가 사라진 얼굴이었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처음보다 더 고요하고 더 슬펐다. 감정이 없어졌다는 것은, 감정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 모습은 이별을 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사람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약간의 외로움과 공허함이 공존하는 시간. 택선은 잠시나마 사랑을 느끼게 해줬던 수필을 추모하며, 그가 있던 장소를 다시 찾는다.
그곳에서 이균 박사를 다시 만난 택선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이균 박사는 조용히 되묻는다. “정말 감정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 질문은 그녀가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택선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살짝 달라진다. 조금 밝아진 그 표정은 관객의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아마도 택선은 자신이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떠올렸던 게 아닐까.
공허는 사랑보다 더 오래 남는다. 무언가를 격렬히 사랑하고, 그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단순한 허무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견디는 일, 그 자체다. 이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택선의 감정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6년 동안 창고에 있던 영화, 빛을 보다
<바이러스>는 장르적으로 정의하기 애매한 영화다.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던 감정적 파국은 초반 10분에서 정점을 찍고, 이후에는 한없이 조용하고 모호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로맨스도 아니고, 재난도 아니며, 스릴러도 되지 않는다. 어쩌면 6년간 창고에 잠들어 있었던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두나만큼은 이 역할을 정확히 이해한 듯하다. 사랑에 빠진 얼굴이 너무도 사랑스럽다가도, 금세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끝까지 버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김윤석은 묵직하게 감정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고, 장기하는 첫 연기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손석구는 짧은 출연이지만 분명한 인상을 남긴다.
강이관 감독은 차갑고 낯선 정서를 아주 천천히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쉽게도 그 정서를 끝까지 관객에게 전이시키지 못한다. 감정은 있고, 질문도 있지만, 답이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미지근함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깊은 여운이 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란 감정은 단지 호르몬의 장난일 뿐일까? 전체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사랑은 단지 호르몬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은 생화학적인 반응에서 출발할 수는 있다.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같은 물질들이 감정의 방향을 잠시 바꾸긴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이어가고, 견디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감염이 만들어낸 사랑이었다 해도, 그 안에 진심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반응’이기 때문이다. 택선이 웃고, 두근거리고, 외로워했던 시간들은 모두 그녀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건 진짜였다. 단지 시작이 바이러스였을 뿐. 감정이란 건 그렇게 만들어진다. 원인을 따져 물어선 결코 닿을 수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가 던지는 사랑에 대한 질문이 궁금하다면, 지금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gV4P7Oz3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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