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1-30 11:14:31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이 글은 영화 [서브스턴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는 가상의 상황에서 편지를 받았다고 제발 믿어주라(?)

리지 씨에게.
안녕하세요.
우선 너무 늦게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저 역시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라는 같잖은 헛소리를 최근까지도 들으면서 자란 사람이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본 친구들은 분명 징그럽고 피 튀기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올 때 저를 지배했던 감정은 당신을 향한 슬픔과 동병상련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의 부조화는 마치 당신과 또 다른 당신의 관계처럼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마음이 꽤 오랫동안 복잡했어요. 어쩌다 거울 속의 당신을 스스로가 미워하게 된 것일까.라는 물음에 제가 감히 답을 낼 수도, 내기도 어려웠거든요. 저의 얕은 생각과 비루한 기억력을 거스르고 또 거슬러 올라가서. 그 미움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를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답(?)이 나오더라고요.
단 한마디였습니다. 당신의 빛남(sparkle)을 가져간 것은. 타인. 그것도 당신보다 더 나이가 들었으면 들었지.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남자의 단 한마디. 아마도 당신은 여태껏 스스로 빛을 내는 별(항성)인 줄 알고 살아왔을 텐데. 그 비수는 참 힘이 세서. 당신의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핵융합의 심장부에 꽂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당신 안의 반짝임을 스스로가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의 평판을 반사해야만 빛나는 행성이 되어버린 순간이라고 할까요. 아, 그리고 저는 당신이 새우를 씹던 하비의 입을 찢어놓지 않았다는 그 절제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저였으면 포크로 아마 콧구멍을 후벼 팠을 거예요.

한국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은교]에서는 이런 문장(대사)이 있습니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이죠. 분명 당신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패배감과 상실감.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 빛날 수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도 없으니 반사되어 빛나기라도 할 수 없다는 초조함이 아마도 수의 탄생을 부추기는 힘이 되어버렸으리라고 생각해요.
나였어도 그랬을 것입니다. 저 역시 또 다른 나의 탄생을 막을 수 없었을 거예요. 과연 누가 당신의 선택에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그리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차라리 저는 수의 탄생 이후에 당신이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어쨌거나 서브스턴스 제공사(?)측의 말처럼 당신과 수는 하나였으니까. 두 사람 간의 균형이 지켜질 것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당신이 멍하니 TV앞에 앉아서 수의 탄생 전 보다 더 슬픈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과의 데이트에 앞서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이라도 하듯 립스틱을 빡빡 닦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미워하는 듯한 당신의 모습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언젠가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물론 그 어떤 위로도 당신에겐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수를 탄생시킨 것은 당신이고.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젊음을 누리고 싶었던 것도. 그리고 그토록 증오했지만. 어쩌면 당신에겐 가장 필요했을 하비의 인정을 바랐던 것도 당신이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더 빛나고 싶다는 스스로의 욕망이 이토록 큰지. 당신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욕망이라는 게.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깊이의 우물 같은 것이니까요.

육신이라는 게 참 덧없지요.
분명 미워해 마지않던 50대의 당신이었잖아요. 하지만 그마저도 수에게 하루 이틀, 야금야금 빼앗기고 난 후의 당신의 눈빛은 참 아팠습니다. 그리워하고 있더군요. 커다란 액자 속 스스로가 미워했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절박감은 수에게도 찾아왔죠. 그녀가 늦게 깨달은 것인지. 당신이 일찍 깨달은 것인지. 줄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의 치아가 뽑혀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그저 한 사람의 절박함과 공포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의 정중앙에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록되어야 할 그 순간에. 피를 흘리다 못해 분사하는 당신의 모습은 여태 하고 싶었던 본심을 모두에게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괴물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괴물인가. 아니지, 우리 모두 괴물인거지.라고 울부짖는 것만 같았어요. 마치 영화 [샤이닝]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그 괴기스럽기도, 또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는 장면에서. 저는 허망하게 흩어지는 당신의 살점과 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주변 세탁소에서 기함을 토하며 그냥 이 옷을 버리라고 말할 것 같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꼭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아 물론 정상적인?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피를 그만큼 흘릴 수도 없을뿐더러 그만큼 흘리면 명예의 전당까지 기어갈 힘도 없겠지만. 이것은 저의 직업병이며 영화적 허용이라 보고 넘어가도록 하죠(?)

마지막 인사를 뭐라 해야 할지 참으로 많이 망설였습니다.
당신은 그래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이해한다 라는 뭉뚱그린 말로도 그간 입은 상처를 다 보듬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동안 외로웠죠.라는 개똥철학도 건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힘내라는 뻘소리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최후는 바닥에 묻은 케첩의 말로처럼 참 처참했지만. 그러면서도 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끝나버렸죠. 이 모든 것이 아 시발 꿈처럼 느껴지는 마지막이었기에 더 어떤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당신이 겪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절대 없어지지 않겠죠. 두 번째 당신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저 역시 그 푸른 드레스를 입은 살덩어리를 괴물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제일 먼저 도망갈걸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기억될 거예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이죠. 그게 정말 당신이 원했던 것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신.
그…. 주삿바늘은 한 번쓰고 버리신 거 맞죠? 어우.. 제발..
[이 글의 TMI]
1. 이렇게 자도 될까 싶을 정도로 연휴 내내 자는 중.
2. 이럴 거면 그냥 겨울잠을 자라.
3. 노동요 추천받습니다.
#영화리뷰 #최신영화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서브스턴스 #데미무어 #영화리뷰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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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면 생각나는 영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저는 노래는 에픽하이에 <우산> 영화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생각나는 거 있죠?! 비가 오는 날에 시작되는 마법 같은 기적. 일본 원작도 정말 재미있다고 하는데~ 저는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만 봤었네요! 오늘은 감동 한가득 받을 수 있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리뷰 시작할게요!
기본 정보
장르 : 판타지, 멜로, 로맨스, 드라마
감독 : 이장훈
각본 : 강수진
출연진 : 소지섭, 손예진
개봉일 : 2018년 03월 14일
평점 : 8.99
스트리밍 : tvN , 웨이브, 왓챠
기획 의도
세상을 떠난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믿기 힘든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수아' 그로부터 1년 뒤 장마가 시작되는 어느 여름 날, 세상을 떠나기 전과 다름없는 모습의 '수아'가 나타난다. 하지만 '수아'는 '우진'이 누구인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난, 너와 다시 사랑에 빠졌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에 젖은 '우진'과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와의 이야기가 궁금한 '수아', '우진'이 들려주는 첫 만남, 첫사랑, 첫 데이트, 첫 행복의 순간을 함께 나누며 '수아'는 '우진'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데...
기다려 주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여담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의 동명의 영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 보니 캐릭터 배경 설정 모두 2004년도 배경으로 만들었다.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호응을 받았지만, 일본 원작과 비교하는 평이 종종 있지만, 8.99라는 훌륭한 평점을 유지하고 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결말을 살펴보자면.. 장마가 끝난 후 수아(손예진)은 우진(소지섭)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우진은 아내의 일기장 속에 적혀있는 학창 시절의 자신을 좋아했던 일기를 보며 둘의 만남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과거 수아는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때 그 시간 동안 미래에 남편 우진과 아들 지호를 먼저 만나게 되며 자신이 가족을 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혼수상태가 빠져있던 수아가 깨어나며 미래에 와 똑같이 우진과 결혼하고 아들 지호를 낳으며 행복한 생활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는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를 통해 미래를 먼저 다녀온 수아가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장면이 진하게 여운이 남습니다.
비가 오면 유독 더 생각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인 것 같아요.
비가 오는 날, 지금 만나러 갑니다 한편 보는 거 어떨까요?~
한줄평 : 비 오면 생각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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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이라는 주체를 다시금 확인하다 _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내 생애 첫 영화관에서 보는 다큐멘터리였던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다큐멘터리는 항상 집이나 학교에서 봐왔었는데 영화관에서 집중하며 보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가 되기도,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깔깔깔 재밌게 보고나왔던 작품이었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시놉시스
“일도 사랑도 다 가지고 싶어!” 의욕 충만 아름
“아름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사랑 하나만 믿고 떠난 로맨티스트 성만
오직 의욕과 사랑만 가지고 프랑스로 떠난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학업, 생활비, 육아, 가사 노동이다.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결혼했을까? 결혼, 도대체 뭘까? 에펠탑 아래에서 시작된 아름과 성만의 좌충우돌 결혼살이를 들여다본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일러스트를 잘 활용하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부분은 일러스트의 활용이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대부분의 장면을 일상생활에 찍은 자신과 남편,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내면적인 고통과 스트레스, 그리고 출산의 생생한 장면 등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장면들을 하얀 도화지에 검정색 색연필로 그 감정과 상황을 추상적이지만 단적으로 표현해 나레이션과 함께 배치했다.
오히려 사실적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이렇게 나레이션과 추상화된 감정과 상황을 보는 것이 더 강한 임팩트로 다가왔다.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만 가는 자신의 정신상태와 젖을 물리는 고통들을 오히려 더 시각적으로 직관적이게 표현을 해서 머리 속에 잘 각인될 수 있었다.
결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다
만약 박강아름이 한국에 살았다면 이러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은 한치에 망설임 없이 NO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굉장히 정형화 되어 있고 단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남녀가 만나 혼인신고를 하고 집안끼리 연결되는 것. 이 외의 다른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프랑스를 유학을 떠난 박강아름이 마주한 결혼은 꽤나 다양하다. 팍스(PACS)라는 제도를 통해 대안결혼 제도를 살펴볼 수 있었고, 동성들의 만남에 대해서도 편견없이 담아내고 있었으며 우리와 같은 정형화된 결혼과 혹은 국제결혼까지 다양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렇게도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기적인 것일까?
이기적이라고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일까?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결혼하다는 팍팍한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굉장히 유머러스한 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박강아름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약간의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느꼈다.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간 박강아름과 그녀를 위해 혈혈단신 타지로 함께 넘어온 성만. 성만은 외조를 하기 위해 집안일을 혼자서 다하고 독박육아, 독박살림을 하게 된다. 이러한 '독박'이라는 단어를 영화 속에서 계속 사용하면서 아름이 도와주긴 하지만 전적으로 집안일은 남편 성만의 몫인 것처럼 표현이 되는 모습에 언뜻언뜻 박강아름이라는 여성이 이기적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성만이 일을 하고 아름이 집안에서 독박육아, 독박살림을 했더라면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지속적으로 느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직도 변한게 없구나! 하는 가부장적인 회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그 삶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의 모습과 역전과 아름과 성만의 관계를 보면서 아름을 향해 이기적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 정말 아름이 이기적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개인이 느끼는 불편함에서 비롯된 판단인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굉장히 웃음기가 넘치면서도 사회 속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잘 녹여낸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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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지만 쉽게 망각하는 사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영적 세계를 표현한 픽사의 엄청난 상상력과 표현력은 놀랍다. 이래서 픽사 영화는 믿고 봐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단순히 쉽게 흘러가는 줄거리 속 숨어 있는 심오한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소울>에서 가끔 등장하는 한국어와 한글은 한국인이 봤을 때 친근함과 소소한 웃음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나에게 불꽃을 만들어준 영화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화 서두에 적었다시피 한글과 한국어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우리들처럼 흑인들이나 뉴욕에 사는 사람들도 <소울>에 소소한 재미를 느낄 것이다. 거대한 뉴욕 도시 풍경과 분위기는 물론,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의 인종에 맞춰 소울 가득한 재즈 음악과 흑인 바버샵, 흑인 특유의 억양과 발음 등 자연스럽게 녹아든 흑인 문화들을 살펴볼 수 있고, 같이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조 가드너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라라 랜드>의 세바스찬(라리언 고슬링)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과 비슷하여 그를 떠올렸지만, 피아노 연주로 전해져 오는 분위기와 소울이 달랐다. 역시 재즈는 흑인 문화인만큼 그 소울을 따라갈 순 없나 보다. 표현 같은 픽사 작품인 <인사이드 아웃>이 인간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창의적이게 표현한 영화라면 <소울>은 인간의 영적인 세계 즉, 죽음과 창조에 대해 창의적으로 표현한 영화다. 인간이 죽고 난 후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의견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소울>은 우주처럼 보이는 배경에 거대하고 환한 빛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으로 죽음을 표현한다. 환한 빛을 향하니 긍정적인 세계로 향하는 듯 보인다. 반면, 창조는 생물학적인 탄생 이전으로 인간이 가지게 되는 성격이나 성향을 미리 만든 상태로 성장해간다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자아를 미리 만들어놓고 성장하면서 그 자아를 발현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이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든 영적 세계는 신기함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인간의 자아 형성은 어떻게 되고, 죽음 이후에 다가오는 과정은 이러한지 그리고 인간이 지닌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순간 <소울>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상의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가자라고 느낀 영화다. 이 주제는 너무 단순해서 금방 망각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소울>은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영화다. 일상의 즐거운 순간,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다독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주제와 더불어 '목적'이라는 키워드도 언급하고 싶다. 조 가드너는 '하프 노트'라는 재즈 클럽 멤버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막상 꿈에 그리던 재즈 멤버가 되니 그는 마냥 기뻐하지 않고, 공허함을 느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꽃이 약해진 것이다. 목적, 목표를 정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긍정적인 성과나 변화를 얻길 원하고, 실제로 얻기도 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좋은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한 없이 높아지고 과장되어 간다. 그리고 결국 꿈에 그리던 목표에 도달했을 때, 과장되었던 기대감에 김이 빠지기 시작하며,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기대감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두려워서 무계획을 실현할 수도 있다. <소울>은 한편으로 목적 있는 삶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정확히는 무조건 목적이 있어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꽃이 생겨날 수 있는가를 묻지만, 단순하고 일반적인 순간에도 마음속 불꽃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신롬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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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함의 미학, <해피 엔드>와 <달콤한 인생>
오늘 학생과 얘기하다가, 사람들은 미묘한 관계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해피 엔드>를 본 관객들은 두 사람의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헷갈린다). 만에 하나 둘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이 영화에 대해서 지금처럼 계속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키스는 미묘함을 끝내는 확실한 방법이다. 퀴어 영화에서 스킨십은 영화의 독해가 불가능한 이성애중심주의적 관객들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퀴어 영화는 퀴어 비평으로 읽어 볼 만한 재미가 있는 작품들이 드물다.
어쨌든 나 또한 이분법의 논리에 빠져 있었고, 영화 시놉시스를 쓰는 수업시간에도 인물들의 감정선은 명확해야 한다고 늘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는 모호함의 미학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다. 모호함의 미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인생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성에서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달콤한 인생>도 모호함에 관한 영화였다. 조폭인 이병헌이 자기 보스랑 맞짱을 뜨는 이유는 ‘왜 흔들렸는지’ 말을 못해서다. 몇 년 전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이병헌의 질문만이 강조되어 들렸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 그런데 어제 다시 보니 대답을 안 한 건 이병헌이 먼저였다.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관객은 영화를 추동하는 그 핵심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랬기에 이 영화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 같다.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으로 한국의 느와르 장르를 해 보고 싶었는데, 그 안에는 사실 한 남자의 어떤 섬세한 심리가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모호함’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모호함에 관한 것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같았다고. <해피 엔드>와 <달콤한 인생> 두 영화 모두 모순적인 제목을 갖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해피 엔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고, <달콤한 인생>도 달콤한 인생을 그리지 않는다. 영제는 <A Bittersweet Life>로 더욱 직접적이다. 우리는 어쩌면 명확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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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속에서 끝없는 노래로 재생되는 순간들
화양연화: 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이 영화를 본지 몇 달이나 지나 벌써 2023년 2월이 되었지만 다시 글을 쓸 생각을 못 하고 있다가, 이대로 살면 큰일날 것 같아서 글쓰기를 포함해 놓고 살던 것들을 다시 잡기로 했다. 이터널 선샤인 이후에 굉장히 다른 느낌의 사랑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이터널 선샤인을 볼 때는 화창한 겨울 눈밭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 영화를 볼 때는 내내 장마 속에서 양말까지 젖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실제 영화 속 장면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주모운 부부와 비서로 일하고 있는 소려진 부부는 같은 날 같은 건물의 옆 방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저녁 시간마다 반복되는 배우자들의 부재로 인해 둘은 불륜의 낌새를 느끼고, 심지어 서로의 배우자들끼리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동병상련을 느낀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저녁 시간에 점점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시장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마저 소중해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집주인 손 부인은 소려진의 잦은 저녁 외출에 대해 경고하고, 둘은 자주 만나지 못해 오히려 마음이 깊어지는 상태에 이른다. 박수 받을 수 없는 사랑을 끝내기 위해 주모운은 싱가포르로 떠날 결심을 하고, 둘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소려진은 주모운을 찾아가고 주모운은 소려진을 찾아가지면 결국 둘은 마주치지 못한다. 주모운이 앙코르와트의 수많은 구멍 중 하나에 무언가 속삭인 뒤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보고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주모운과 소려진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다. 해당 장면들에는 대사가 하나도 없고 똑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며 장면이 느리게 재생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해당 효과가 너무 자주 사용되는 느낌을 받아서 살짝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현재까지 남은 알 수 없는 여운의 힘은 해당 장면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가 말 한마디 없이 눈인사를 하고 지나갔던 그 짧은 순간들은, 주모운과 소려진의 머리 속에서 평생 그 음악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은 몇 월 몇 일 몇 시로 기억되지도 않고, 어느 시장의 어느 골목이었는지로 기억되지도 않지만, 마주침의 순간마다 심장이 연주했던 하나의 노래로 뭉쳐져 아스라이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머리 속에 맴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감독이 "나 이거 찍으려고 영화 만든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강조 되었고, 그만큼 내 머리 속에도 남았다.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처음 각자 배우자의 불륜을 알게 된 뒤 분노했지만 결국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어버린 두 사람처럼, 이 세상에는 그렇게 완성되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이 마치 앙코르와트의 구멍 개수만큼 존재한다는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분노했던 대상의 감정을 그대로 느껴버린 그들을 비난하거나 조소할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본 우리는 그들이 절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불륜 영화이지만 불륜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점, 결국 서로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마음 속에 남았다는 점에서 헤어질 결심을 한국의 화양연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나는 둘 다 너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위의 시각도 재밌다고 생각한다.
둘의 사랑이 쓸쓸하게 끝나며 영화도 끝이 나지만, 주모운과 소려진은 다른 어딘가에서 더 아름답고 찬란한 사랑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시기가 화양연화일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의 기억, 특히나 이루지 못한 애틋한 것에 대한 기억은 더욱 아름답게 포장되는 것 같다. 이루었으면 금방 식어버렸을 수도 있는 둘의 사랑이지만, 이루지 못했기에 오히려 가장 뜨거웠던 순간으로 마음 속에 남아 화양연화가 되었다. 다만 이렇게 미화된 기억은 현실의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덧칠해 미술관에 걸어 둔 일종의 작품으로 분류해야 맞을 것이고, 따라서 현실을 사는 우리는 과거의 미술관에 매몰되지는 말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화양연화는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이 나는가. 또 인생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이 몇 개나 생길 수 있을까.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모두 소중한 기억들이며 저마다의 노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머리 속에서 이따금 노래로서 끝없이 재생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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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 돌봄'이라는 새로운 부녀 관계
8/10
11살 딸 소피와 30대 초반의 아빠 패터슨이 소피의 방학을 맞아 함께 여행을 떠난다. 부부의 이혼 후 소피가 엄마와 함께 살기에 두 사람 모두에게 아주 소중한 여행이다. 행선지는 튀르키예. 매끄럽지만은 않다. 두 개의 침대를 확인하고 예약한 호텔 방에는 침대가 하나뿐이고, 호텔 바로 옆에서 진행 중인 공사는 부녀의 신경을 긁는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여행의 기쁨이 더 크다. 패터슨은 다정한 얼굴과 몸짓으로 딸에게 선크림을 발라주고, 소피는 그런 아빠에게 의지하며 둘이 함께 만들 추억에 들뜬 상태다.
11살은 애매한 나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 사이 어딘가. 소피는 아빠와 함께 노는 것도 좋지만 수영장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과 어울리며 그들처럼 놀고 싶기도 하다. ‘소피의 오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은 아빠인 패터슨 역시 그런 소피의 마음을 알고 보호자와 친구 역할을 오가며 소피를 배려한다.
어른이 되어가는 소피와 젊은 아빠라는 패터슨의 부녀 관계는 미묘하다. 소피가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젊은 청년인 패터슨 역시 소피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다. 부녀 관계를 따뜻하게 담아내는 〈애프터썬〉이 흥미로워지는 건 이 지점이다. 성장 중인 딸과 여전히 방황하며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한 아빠가 만들어내는 관계에서는 기존의 부녀 관계와는 다른 역동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피 앞에서는 늘 밝고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패터슨은 고통의 시간을 겪는 중이다. 최근 사업에 실패한 패터슨은 미래가 두렵다. 딸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돈은 넉넉하지 않고, 당장 자신의 미래조차 확신할 수 없다. 딸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소피도 아빠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빠의 간섭과 참견을 귀찮아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을 활용해 아빠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녀가 더는 어린아이가 아님에도 말이다.
일상적 배려와 스치듯 지나가는 다정한 말 한마디로 서로를 응원하는 부녀. 그런 그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위기는 두 사람의 정체성이 엇갈릴 때마다 찾아온다. 어린이이자 청소년이고, 아빠이자 (위태로운) 청년인 부녀. ‘어린이’와 ‘아빠’, ‘청소년’과 ‘청년’이 만날 때는 좋은 시너지가 난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년’, ‘청소년’과 ‘아빠’가 만나면 불협화음이 난다. 지금 이 순간의 정체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돌봄의 화살표가 바뀌기 때문이다. 두 정체성 사이를 오고 가는 둘은 매 순간 서로를 면밀히 탐색하며 미세하게 관계를 협상해야만 한다. 정체성을 오인하면 감정이 상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 생긴다. 함께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자는 소피의 제안을 패터슨이 거부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어린이’ 소피는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가족의 전통을 거부하는 아빠에게 서운하고, ‘청년’ 패터슨은 남들 앞에서 가무를 하는 게 부끄럽기 때문이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때로는 상처주는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이어지는 동안 부녀 관계의 깊이와 갈등 모두 고조된다. 더불어 패터슨의 아픔과 상처가 서서히 부각되며 소피와 패터슨의 부녀 관계는 점차 ‘청소년’과 ‘청년’의 관계, 즉 돌봄의 화살표가 딸에게서 아빠를 향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애프터썬〉의 성취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빠에서 딸로 향하는 일방적‧일반적 부녀 관계를 거스르며 상호 돌봄의 부녀 관계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아빠/아버지는 늘 강인한 존재일 것을 요구받는다. 이 요구가 내면화되어 남성이 스스로를 그렇게 재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젠더 이원론의 각본에서 태생적‧본질적으로 강한 존재는 없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각본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별자들이 있을 뿐이다. 〈애프터썬〉은 방황하는 청년이라는 보편적 인간에게 ‘아빠’ 정체성을 더함으로써 ‘아빠/아버지’ 역시 취약한 존재임을, 즉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보인다.
영화에는 패터슨과의 상호 돌봄 관계가 소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성인이 된 소피가 동성 애인과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녀가 패터슨과 서로 기대며 버티고 지나온 시간을 바탕으로 성숙한 돌봄의 관계를 꾸렸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돌봄이 필요하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친밀한 사람에게 기대는 사람만이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돌본다. 이것이 상호 돌봄의 부녀 관계를 감동적으로 영상화한 영화 〈애프터썬〉의 메시지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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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2차 예고편
“우리는 격하게 세상을 구하고 싶다!”
살고 싶다면 무조건 성공시켜라!
최강 우주 빌런에 맞선, 자살특공대에게 맡겨진 ‘더’ 대책 없는 작전.
팀플레이가 ‘더’ 불가능한 최악의 안티히어로들.
최고의 팀워크를 기대한다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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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사랑은 딥하게> 공식 예고편
바다를 사랑하는 해양학자 여자와 거대 마린 리조트 개발에 인생을 건 남자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