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5-02 19:45:52
[JIFF 데일리] 독립‧예술영화의 최대 축제, JIFF 개막식 이모저모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2024년 5월 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4,000여 명의 관객이 참여한 가운데 공승연, 이희준 배우의 사회로 열렸다. 이번 영화제에는 국제경쟁 부분에 747편, 단편과 장편을 합한 한국영화 부문에 1,513편이 출품되어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독립과 대안이라는 가치로 다양한 영화를 선보여왔다”는 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의 말에 더한층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팬데믹 강타의 후유증이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고, OTT의 등장으로 기존 영화 산업을 관통하던 모든 공식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여러모로 영화계는 격변의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도 독립‧예술영화의 기반을 오랫동안 다져온 전주국제영화제에 이토록 많은 작품이 출품되었다는 건 영화인들이 안팎의 위기에도 영화로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의미일 터.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지난해의 슬로건을 올해도 유지한 이번 영화제가 어떤 영화를 펼쳐낼지가 유독 기대되는 이유다.
개막식에는 민성욱,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의 축사와 우범기 조직위원장 겸 전주 시장의 개막 선언, 개막 축하 공연, 경쟁 부문 심사위원들의 심사 기준 언급 등의 순서로 채워졌다.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유지태 배우는 누군가 정성들여 만든 영화를 심사위원의 주관으로 평가하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면서도 "이번 영화제가 지금도 골방에서 글을 쓰는 감독과 작가, 예비 배우들을 위한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역대 최대 출품작 중 어떤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누릴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한편 개막작으로는 최근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을 수상한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 선정되었다. 각각 월경전후증후군인 PMS와 공황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두 남녀가 서로를 도우며 연대와 희망을 벼려내는 영화다. 생리 때만 되면 평소의 차분하고 사려 깊은 성격과는 달리 공격성이 마구 분출되는 후지사와는 이 문제로 난처한 일이 반복되자 새로 들어간 회사를 2달 만에 그만 둘 수밖에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하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가 찾아온 야마조에 역시 이 때문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둘이 어린이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자그만 회사에서 함께 일한다. 서로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상대가 불편하고 짜증나기만 했지만 우연한 계기로 상대 역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조금씩 ‘참견’하는 ‘오지랖’으로 서로를 보듬어나간다. 야마조에의 말마따나 둘 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서로를 도와줄 수는 있다. 〈새벽의 모든〉은 이 사소한 사실을 차근히 펼쳐내 보인다.
두 사람이 벼려내는 연대의 장소가 회사라는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회사’는 자본주의의 핵심인 장소다. 회사에서의 끝없는 경쟁과 자기 갱신은 인간의 정신을 소진시키다 이내 탈진시킨다. 모든 정신 질환의 원인이 자본주의일 수는 없지만, 동시대 정신질환의 많은 특징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회사에서 만나 회사에서 연대한다. 아무도 없는 주말 저녁의 캄캄한 회사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을 쌓는 식이다. 그들이 하는 노동도 마찬가지다. 밤하늘의 별자리와 관계된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며, 두 사람은 기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밤’의 의미를 되새긴다. 밤은 어둡고 깜깜하지만 해가 떠 있을 때는 미처 볼 수 없는 별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인간은 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구 밖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제품 개발 과정에 별에 얽힌 신화적 이야기를 덧대 밤에만 가능한 서사를 탐색하기도 한다.


여기서 밤은 정신 질환자가 침잠하는 세계의 은유다. 지구 밖에도 무한한 우주가 있지만 인간의 내면에도 그만큼 큰 우주가 있다. 때문에 두 사람이 노동하면 노동할수록, 즉 인간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활동에 충실할수록 자본주의가 옥죈 내면의 세계가 깊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야마조에의 말마따나 두 사람에게는 여전히 미래 전망이 없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세계를 탐닉함으로써 결코 자본주의가 잠식할 수 없는 자기 내면의 무한한 공간을 마주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두 사람 회사 사람들이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을 배경으로 올라가는 것 역시 우리가 자본주의의 일터인 회사를 다른 방식으로 재의미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아기자기하게 관계 맺으며 조금은 여유롭게 일하는, 나의 모든 것을 갈아 넣을 필요가 없는 동시에 일과 삶을 괴리시킬 필요가 없는 그런 일터의 가능성 말이다. 그곳에서는 일할수록 불행해지는 현대인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만 같다. 〈새벽의 모든〉은 정신 질환에 관한 차근하면서도 급진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개막작 〈새멱의 모든〉 상영 시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영화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1일 19:30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001)
-5월 2일 13:30 CGV전주고사 3관(120)
-5월 5일 10:30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401)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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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감한 생략과 예술적 기교로 엿보는 사랑의 공식
〈스프링 블라썸〉의 원제는 ‘Seize Printemps’다. 직역하면 ‘16살의 봄’, ‘16살 청춘’ 정도의 의미다. 영화의 제목은 영화의 내용이기도 하다. 〈스프링 블라썸〉은 16살의 수잔이 35살의 라파엘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담았다. 그런데 이 영화, 범상치 않다.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수잔 랭동의 데뷔작이라는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거치는 여러 단계를 굉장히 감각적으로 연출했다. 핵심은 과감한 생략과 예술적 기교다.
16살의 수잔은 친구들과의 대화가 지루하다. 맘껏 재잘거리는 친구들 사이에 있음에도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지독히 고요하고 무료하다. 일상의 따분함은 우연한 마주침으로 극복된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남자 라파엘을 만난 수잔은 애타는 마음으로 탐색전을 벌인다. 라파엘도 수잔에게 호감을 보인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점점 달아오른다. 학생인 수잔은 라파엘을 만날 핑계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라파엘은 그런 수잔을 사랑하고 아껴준다. 이렇게 둘은 연인이 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권태를 맞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삐걱대며, 강한 애착으로 엮였던 두 사람은 다시 남남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스프링 블라썸〉은 다소 뻔한 줄거리의 영화다. 비슷한 줄거리를 가진 영화가 수도 없이 많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관객에게 새로움을 줄 수 없다는 소리다. 이에 수잔 랭동이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과감한 생략이다. 영화는 수잔과 라파엘이 거치는 사랑의 각 단계를 유기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남-설렘-사랑-권태-이별의 과정을 거쳤음을 알려줄 뿐 둘이 어떻게 감정에 깊이를 더해가는지, 왜 갑자기 권태를 겪고 이별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 궤적의 구체적 양상을 좇는 대신 궤적 자체에 집중한 느낌이랄까. 그들이 어떻게 경험과 감정을 쌓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거치는 사랑의 매 단계를 지켜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수학 문제 풀이가 아닌 수학 공식, 영어 문장 독해가 아닌 영문법에 집중했을 때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수학과 영어처럼 사랑에도 공식과 문법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스프링 블라썸〉이 포착하고자 한 것 것이다. 우리는 이 건조하고 딱딱한 무언가를 알아야만 이를 ‘응용’해 현실을 해석할 수 있다.
수잔 랭동이 줄거리의 평이함을 극복하기 위해 채택한 두 번째 방법은 예술적 기교다. 영화에는 사랑을 속삭이던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세 번 나온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이 춤추는 장면 역시 앞뒤로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교감이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쯤, 갑자기 음악이 바뀌고 약속이나 한 듯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제 막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고 설렘을 느끼던 둘이 카페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의 춤은 서로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상상 속 교감에 가깝다. 세 번의 댄스신 모두 굉장히 매혹적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잘 합을 맞춘 몸짓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깊게 의지하고 믿고 있음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이 영화에서 춤은 두 사람이 느끼는 기분 좋은 설렘과 사랑의 깊이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지간한 대사보다 훨씬 강렬한 방식으로 말이다.
요컨대, 수잔 랭동은 과감한 생략과 예술적 기예로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랑의 단계를 관객에게 새로이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를 본 후, 왜 그녀가 영화가 수많은 영화제에서 후보에 올랐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과감한 스타일로 진부함을 혁신한 수잔 랭동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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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랜 75(Plan 75), 2022
일본 / 드라마 /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플랜 75>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가 국회를 통과한다.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를 대처할 방안”이란 일본 정부의 덧붙임은 “넘쳐나는 노인이 청년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총으로 노인들을 죽이고 자살한 한 청년의 유언과 노인들에게 오랫동안 은밀히 분노의 손가락질을 겨눴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합일되어 파생된 결과다. 플랜 75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아닌 국민 과반수의 직접적이면서도 암묵적인 동의로 탄생했다. 나의 죽음을 나보다 제삼자가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플랜 75를 전례 없는 문제 해결의 묘수로 믿는 과반수 안에 고령자가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랜 75는 간편하다. 가족의 동의나 건강진단 결과가 신청자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과정도 일사천리로 평범하게 진행된다. 신청자의 조건은 딱 하나, 자기 의사에 의한 결정(신청)이다. 신청 후엔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금 10만 엔을 받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세하고 단호한 필수조건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 감시 없이 신청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신청자를 위한 맞춤 콜센터도 운영된다. 심리상담소 역할을 하는 콜센터는 신청자의 마지막 날 전까지 함께 한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신청과 신청을 취소하는 일 모두 본인의 자유다. 이미 죽을 날짜를 받은 한 할머니는 플랜 75 홍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라고. 플랜 75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저물어 가는) 세대의 숭고한 결정이란 순풍을 타고, 신청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일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은 결정,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도 판단하고 선택하려면, 플랜 75 안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플랜 75를 샅샅이 해부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서비스 대상자 ‘78세 미치’와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신청받는 ‘시청 직원 히로무’, 신청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들은 플랜 75의 뼈대가 드러난 설계도를 세상에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플랜 75>에서 유일하게 강제 적용된 조치였다는 것만 알아두자.
플랜 75에 대해 고령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인터뷰한 할머니처럼 긍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사는 데만 집중하는 자가 있다. 78세 미치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텔 객실 청소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치는 삶을 긍정한다. 몇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문을 열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모습과 낙상사고를 당한 친구(이네코)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고 모든 동료가 불만을 터트리며 떠날 때 홀로 개인 사물함 앞에 서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이지만, 외로움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꿋꿋하게 구직 활동에 힘쓴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치 또한 플랜 75에 가입한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이네코)의 고독사를 직접 접한 탓이고, 집이 철거될 예정인데 구직 활동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고령이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굶주린 자신에게 시청 직원 히로무가 무료 급식(플랜 75 홍보 목적)을 건넨 탓이다. 미치는 과반수가 찬양하는 순리대로 준비금을 받고, 콜센터 직원(요코)을 배정받는다. 과반수 안에 포함된 미치를 통해,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들이 왜 자기 생을 내놓는 것에 동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직접 신청서를 받는 일 말고 직원 히로무에게 주어진, 특별한 다른 일은 없었다. 수천 장의 신청서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신청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 그의 앞에 앉아 상담도 없이 신청서를 불쑥 내민 순간 히로무의 가슴은 요동친다. 삼촌은 과거 건설업자였다. 전국을 다니며 터널과 댐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헌혈은 일과였다. 히로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을 받는다. 다량의 헌혈증은 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고,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국민, 한 사람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헌혈증이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삼촌의 업적과 흔적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게 분명했다. 그는 범법자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본인과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무는 플랜 75의 끝을 몰랐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의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플랜 75의 신청 조건뿐이었다. 히로무는 광고판에 날아드는 토마토를 맞으며,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플랜 75의 유골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휩싸인다.
아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센 유품정리사로 일하기 전, 이주노동자 마리아의 직업은 요양보호사였다. 과거엔 살아있는 노인들을 따뜻한 눈과 마음으로 보살폈으나 지금은 죽은 노인들의 옷을 벗기고 유류품을 수거하기 바쁘다. 현금이나 고급 시계 같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어차피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으니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자고 우기는 동료를 따라, 마리아 역시 떠난 자들의 것을 훔친다. 그리곤 어찌 됐든 본인은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열심히 합리화한다.
콜센터 직원 요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신청자 한 명당 15분 동안 감정은 배제하고 열심히 입만 움직인다. 지나친 감정적 대처와 신청자 대면 금지만 지키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미치와의 통화를 특별하게 느낀 요코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미치의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대면한 순간, 동요한다. 긴 대화를 나눠주어 고맙고 잘 지내라는, 오직 미치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플랜 75의 보이지 않던 장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눕는 히로무 삼촌과 미치. 담당 직원은 간호사 복장과 유사한 옷을 입고 두 사람에게 울렁증을 막아주는 약을 건넨다. 친절함도, 냉정함도 아닌 도통 모르겠는 직원의 미소가 미치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참이었다.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이 감기는 미치, 그 순간 커튼 사이로 히로무 삼촌과 눈이 마주친다.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툭 아래로 떨어지자, 미치는 극한의 두려움에 호흡기를 떼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한발 늦게 온 히로무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삼촌을 마주한다. 미치가 죽은 자들에게서 벗어날 때 히로무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 시신을 빼돌린다. 마리아 또한 더는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플랜 75는 완벽한 통제와 촘촘한 계획, 그리하여 대부분 만족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났고 고령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었다. 정부가 신청 조건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정도니, 플랜 75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플랜 75가 잘못된 방식임을 노골적으로 노출했다. 자발적이며 비강제적이고, 자유로우며 신청자를 향한 따뜻한 지원들로 채워진 플랜 75는 묘수가 아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악수란 사실을 말이다. <플랜 75>는 단순히 영화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의 유언을 총소리 전에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살로 인해 시작된 플랜 75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총을 겨눌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인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배한다. 동시에 앞선 목적과 같은 이유로 본인들이 만든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플랜 75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탄생한 집단적 합리화가 계속 연장되었기에 흥행에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던 히로무에서 요코를 거쳐 유품을 정리하는 마리아까지, 그 누구도 75세가 기준이 된 이유와 왜 이들만 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준비금에 조건이 왜 붙지 않는지, 콜센터는 왜 대면은 금지하고 전화 서비스만 진행하는지, 진짜 이유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작 폭탄을 미치와 같은 이들에게 넘겨버렸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미치와 같은 이들을 플랜 75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삼촌의 미래는 히로무의 미래였고, 미치의 뜀박질은 요코와 마리아가 이어받게 될 게 분명했다.
해서 영화는 타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미치는 물론이고 세 청년, 이들을 훔쳐보는 관객까지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마치 우리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듯 고집스럽게 장막을 둘러싼 거짓과 폭력을 응시하게 했다. 플랜 75의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설계한 집단 살인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벗어난 미치가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어둡기만 했던 관객의 얼굴에도 빛이 스며든 때였다. 마침내 플랜 75의 장막이 내부에서 걷힌 것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플랜 75>는 관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희망이 깃든 안도를 전달한다. ‘3의 법칙’이 관객에게 제대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숫자 3은 사회 심리학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환되는 기준점으로 세 명 이상이 되는 순간 개인들의 힘은 집단의 힘이 되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확실하게 이용했다. 나약한 인간들의 움직임(플랜 75)이 아니라, 진짜 악수를 진짜 묘수로 바꾸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자가 나약한 인간인 동시에 충분히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했다. 플랜 75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소멸도 얼마든지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직 인간(나)만이 용기를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히로무와 요코, 마리아 그리고 미치를 통해 전달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건, 당사자인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서, 유일한 강제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이 된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인간들의 끝은 굳이 묻지 않기로 하자. 답은 ‘히로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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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리함을 뽑내는 펭귄, 그리고 관심이 필요한 문어
귀여운 것에 환장하는 사람으로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귀여운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웨이브의 늪에서 귀여운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발견했다. 정말 처음부터 귀여운 펭귄들이 잔뜩 나와서 행복했고, 남극의 빙하 위에서 뒤뚱뒤뚱 걸어가며 생각없이 살아가는 펭귄들과 이 생각없음에 개탄하는 4총사 펭귄의 대치가 초반부터 굉장히 귀여워서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 시놉시스
넘치는 유머, 감쪽 같은 위장술, 똑소리 나는 브레인! 날 때부터 남달랐던 악동 펭귄 스키퍼, 코왈스키, 리코, 프라이빗! 어느 날 그들 앞에 복수심에 불타는 문어박사 옥토브레인이 나타나고, 그의 거대한 음모를 알게 된 펭귄 4총사는 비밀 조직 ‘노스윈드’와 함께 세상을 구할 사상 최대의 작전을 펼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마다가스카의 펜귄 스포가 존재합니다.
자그마한 관심도 못받던 문어의 발악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관심받지 못한 문어가 열폭하고, 그 문어를 막기 위해 펭귄 4총사가 나서는 이야기다. 생김새만으로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펭귄들과 달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던 문어 데이브는 이 모든 것이 펭귄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약물을 개발해 펭귄들을 세상에서 다 없애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기회가 실패로 끝나면서 문어 데이브가 좌절하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아진 문어 데이브를 향해 한 아이가 하핫! 너무 귀엽잖아~ 이 한마디를 시전하자 데이브는 굉장히 행복해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관심 한 번을 받지 못해 시작된 이 이야기. 어찌보면 사소한 관심이 막대한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마다가스카의 펭귄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특색을 잘 담아내다
문어 데이브가 세계 각지에 있는 펭귄들을 납치하면서 펭귄 4총사가 이를 막기 위해 문어 데이브를 뒤쫓는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여러 나라를 거치게 된다. 잠깐잠깐 등장하는 나라들이었지만 이탈리아면 이탈리아, 중국이면 중국 등 굉장히 해당 나라의 특색들을 잘 녹여내서 괜시리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데이브를 따돌리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에서는 베네치아의 가장 유명한 그,,, 배,,, 노래 불러주는 사공,, 뭐라 그러더라,,? 어쨋든 여유로운 베네치아의 모습과 상반되는 추격전이 대조되면서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뛰어난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가장 멋있었어!
프라이빗은 다른 펭귄 스키퍼, 코왈스키, 리코보다 한참 어린 덕분에 사실 작전 수행을 하면서 큰 역할을 수행하진 않는다. 그래서 작품 중간쯤 프라이빗을 스피커에게 나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스키퍼는 지금 너가 맡은 역할도 중책이라며 어르고 달래서 쉬운 역할을 맡긴다. 하지만 그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스키퍼를 당황하게 만드는 귀여운 프라이빗이다.언제나 막내일 것 같은 프라이빗이었지만 형들이 다 데이브 문어에게 잡혀가서 이상한 괴생명체로 변하는 약을 맞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자 일사분란하게 형들을 구하고 형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우리 프라이빗이 달라졌다!
자신의 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프라이빗은 자신을 희생하며 결국 모든 펭귄들을 구하는데 성동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드래곤 시수가 생각났다. 가장 막내였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세상을 구한 것은 막내였던 시수와 프라이빗이었다.
펭귄으로 좋아한다면, 작고 귀여운 펭귄이 얼마나 영리한지 알고 싶다면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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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주관적인 정답만 있을 뿐이다.
시놉시스
마거리트는 수학에 재능이 있으며 대학원 수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천재이다. 그녀가 원하는 건 바로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도 교수도 풀기 어려운 난제이지만 마거리트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세미나에서 보여주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그로 인해 마거리트는 학교를 자퇴한다는 통지서를 교수에게 내고 자신이 앞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과연 마거리트는 수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그녀의 새로운 일탈이 시작된다!
자퇴한 마거리트가 할 수 있는 건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과 숙박할 곳을 찾아보는 것이다. 지도 교수가 마거리트를 다시 학교에 복학시키려고 하지만 마거리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렸다. 일자리 교육에서도 논리적인 두뇌로 지도 강사에게 말대답을 한 마거리트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이 말대답을 한 노아를 만난다. 노아를 따라간 마거리트는 노아와 룸메이트 생활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노아를 따라 일탈을 시작한다.
노아는 댄서이며 클럽에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데 노아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을 옆 방에서 듣고 클럽에 따라가 자신도 성관계를 할 남자를 찾는다. 마침내 찾게 된 남자는 예니스라는 남자인데 마거리트와 똑같이 매력적이지 않는 남자였다. 둘은 원나잇을 하게 되고 마거리트는 단순히 즐긴 거라며 그 이후의 일을 신경쓰지 않는다.
마거리트가 빠진 취미가 있으니 바로 마작이다. 마작을 집 주인인 콩 아저씨에게 소개받은 후에 모바일 게임으로 연습하는데 나중에는 불법 도박장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엄청난 돈을 매 달 벌어들이고 노아의 월세도 마거리트가 내준다. 그럼으로써 그 동네에서 마작하면 마거리트를 떠올리는데 수학을 해서 그런지 논리적이고 차분하다. 하지만 냉철한 면도 있긴 하다.
그런데도 마거리트는 수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방에 검은 페인트칠을 해서 그곳에 수학 공식을 적고 방 안이 온갖 수학 공식이 적히도록 한다. 노아는 그런 마거리트를 보고 신기해하지만 나름 마작으로 월세까지 대신 내주니 존중해준다.
지도 교수는 마거리트에게 여러 번 기회를 줬다. 하지만 그 기회를 찬 건 마거리트였다. 그렇지만 마거리트는 언젠가 세레메디의 정리를 이론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연구 논문을 낼려고 했다. 그런데 지도 교수가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는 TV 소식을 듣고 좌절한다. 포기를 할려고 했으나 다시 골드바흐의 추축에 대한 논제를 풀기 위해 또 수학 공식을 적고 열심히 수학에만 매달린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는데 그건 바로 루카라는 자신과 동일한 남자 대학원생이다. 마거리트는 처음에 루카를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연구하는 걸 좋아했고 공동 연구는 그녀에게 독이라고 생각되었는데 루카를 다시 만나서 둘은 동료가 되어 최대 수학의 난제인 골드바흐의 추축에 대한 논제를 연구한다. 그러다가 둘은 동료 이상으로 발전해 연인이 되는데 여기서 노아와 충돌이 일어난다. 노아가 멀리서 춤을 배우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온통 벽지에는 수학 공식이 적혀 있었고 검정 페인트칠로 되어있어서 온통 엉망인 걸 알아챈다.
노아는 그 난장판을 보고 방을 나간다. 또한 콩 아저씨의 듬듬한 자산 벌이가 되어준 마작도 루카와 싸우고 난 후에 더 못하게 되고 결국에는 마작도 지고 만다. 그래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다시 어머니가 있는 집에 가는 것이었는데 그곳에서 쉬다가 골드바흐의 피라미드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관점을 바꾸면 된다는 걸 알고 다시 대학 세미나로 간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수학 천재와 세미나 스타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수학 실력을 가진 마거리트가 자신이 너무 냉철하고 모범적인게 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서 생긴 문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성격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하는 모습도 영화에서 나오나 중요한 건 인생의 모든 것은 수학처럼 정답이 있는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모든 걸 계산하고 맞다고 생각했던게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틀렸다는 걸 인정을 해야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다는 지도 교수의 말을 어겼다.
이 영화의 메세지가 주는 의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게 틀릴 수도 있고 정답은 수학에만 있지 모든 것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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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조커가 된 것일까? 사회가 만든 것일까?
사실 다크나이크를 보지 않았기에 조커라는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영화 <조커>를 보는 것이 많이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커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었던 한 편의 다큐와 같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조커> 시놉시스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짜 ‘조커’를 만나라!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 하지만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는 그가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조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스펙타클보다는 한 편의 다큐같았던 작품
매력적인 악당 조커.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어서 솔직히 굉장히 스펙타클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이 어째서 사회적인 제도라는 틀 속에서 악당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조커라는 인물 자체에 궁금증이 많았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좋아할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보니 집중이 잘 됐던 것은 사실이나 단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설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일이 다 설명을 해주다보니 굳이..? 이런 감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특히, 소피와의 관계가 플렉의 환상이었다는 점은 소피의 표정과 태도를 통해서도 바로 알 수 있었음에도 구디 화면에서 소피를 지우는 방식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나름 반전이었는데 그 효과가 상쇄하는 느낌이어서 안타까웠다.
결국 개인의 탓인가?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영화는 전반적으로 두 가지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문제 혹은 사회 구조의 문제 둘 중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 경계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엇던 작품이었다.
영화는 고담시의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다는 것을 뉴스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광대가 되어 일을 하지만 불량배드이 판치는 고담시에서 아서 플렉은 그들에게 된통 당하고 만다. 이렇듯 초반에는 사회구조적으로 문제가 많은 고담시를 조명하면서 구조의 영향에 무게를 실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이 될수록 아서 플렉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과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어린시절을 보여주면서 고담시의 구조적 문제는 배경으로 밀려나고 초점을 개인의 트라우마로 옮겨간다. 그렇게 개인의 트라우마로 조커가 된 아서 플렉이 시위가 판치는 고담시에서 영웅으로 추앙되면서 다시 사회 구조 속으로 편입된다.
뮤지컬 넘버의 차용
조커를 보다가 눈이 한 순간에 커졌던 장면은 지하철에서 3명의 술주정뱅이들이 아서 플렉을 향해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는 사실 내요이 남을 조롱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다. 뮤지컬 <Little night music>에서 여주인공이 20년 전 배우로서의 경력을 위해 헤어졌던 남자 주인공과 재회하면서 다시 사랑을 이어가고 싶지만 벽에 부딪히면서 부르는 넘버다. 자신을 조롱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의지하고 싶은 감정이 낭낭한 이 넘버가 영화 조커에서 남을 조롱할 때 가장 먼저 쓰인다.
이 역설에 귀가 트였고, 아서 플렉이 조커 분장을 한 채 그들의 노래를 따라부를 때는 뮤지컬 속 여자주인공처럼 자조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뮤지컬에서는 현시에 없는 어릿광대라는 존재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지만 영화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실제 광대가 되면서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조커>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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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특별한 '퍼스널 서비스'
- "이 배우가 그 배우였어?" 이 소리는 영화를 보다가 제 입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놀라움의 소리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동양인이라 서양권 배우들의 얼굴을 잘 분간하지 못하는 탓도 있겠습니다만, 특출난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 핑계를 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르고 보면 소름 돋고, 알고 봐도 믿기지 않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들이 존재하는 걸 저더러 어쩌란 말입니까.배우 엠마 톰슨은 바로 그런 배우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아직도 명예를 위해서라면 어떤 악독한 일도 마다하지 않던 <크루엘라>의 '남작 부인'과 남편의 외도를 알아차리고 숨죽여 눈물 훔치던 <러브 액츄얼리>의 '캐런'이 모두 엠마 톰슨이라는 걸 믿을 수 없습니다.<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엠마 톰슨의 또 다른 연기 변신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40년 연기 인생에 처음으로 노출 연기에 도전했습니다. 여성의 몸과 섹스, 그리고 아주 특별한 ‘퍼스널 서비스’에 관한 영화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7월 26일(화)에 진행된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의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2022년 8월 11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Good Luck to You, Lio Grande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성적 욕구가 적거나 없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남성이 성적 욕구의 해소가 필수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과는 정반대죠. 그런데 성적 욕구가 적거나 없는 여성이 과연 표준일까요? 아마 지구에는 성적 욕구를 억누르며 살아가는 여성, 남성 위주의 섹스에 불만족한 여성, 하지만 섹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입에 담지 않는 여성이 태반일 겁니다. 그러나 여성의 주체적 욕망은 끊임없이 지워져 왔죠.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의 주인공 '낸시'는 바로 그러한 여성들을 대표합니다. 60대가 될 때까지 자신의 욕망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해본 적 없는 인물이죠. 얼마나 오랫동안 정숙한 여성으로 살아왔는지, 그녀는 ‘만족스러운 섹스가 하고 싶다!’는 마음속 소리에 이끌려 사람을 불러놓고도 어찌할 줄 모릅니다.사람들은 모두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본성을 숨긴 채,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과 질서를 따르는 인격체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죠. ‘낸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의 본성은 만족스러운 섹스를 강렬히 원했지만,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가르쳤던 선생으로서의 페르소나가 이를 막아섰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의 전화를 한 번도 거절해본 적 없는 엄마지만, 그녀의 본성은 육아를 멍든 손톱처럼 불편한 일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그녀는 모릅니다. 어느 것이 본성이고, 어느 것이 가면인지요. 평생을 겹겹의 가면 뒤에 갇혀 살아온 그녀는 은밀한 욕망을 '나답지 않은 짓'이라 여기며 망설입니다.이런 '낸시'가 퍼스널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오'와 만나 내 것으로 생각했던 가면들과 조금씩 이별하기 시작합니다. ‘낸시’와 ‘리오’는 호텔 방에서 여성의 몸과 섹스에 관한 끝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주제를 깊이 탐구한다는 면에서 이 영화는 연극과도 유사하죠. '리오'가 제공한 서비스는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입니다. '리오’와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목소리에 가까워지는 ‘낸시’의 모습은 심리 상담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리오’에게 몇 번의 퍼스널 서비스를 받은 그녀는 두꺼운 가면들을 벗어 던지고, 마침내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합니다. 여기에 황홀한 오르가슴은 덤이죠.⊙ ⊙ ⊙영화 후반부, 해방감과 자유를 얻은 '낸시'는 자신의 나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미소 짓습니다. '리오’는 '낸시'에게 실증적 섹시함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그녀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합니다. 엠마 톰슨의 용기 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60대 여성으로서 나체를 노출하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엠마 톰슨은 "자연스러운 내 몸을 보여준 것이 이 영화의 성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엠마 톰슨의 용기에 힘입어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적극적으로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바디 포지티브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는 운동입니다. 사람은 모두 늙습니다. 여성의 몸도 당연히 늙죠. 그러나 이를 실증적 섹시함이라 표현하는 '리오'와 달리, 이 사회는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여성의 몸을 긍정하지 않습니다. 여성에게 드리워진 잣대는 유난히 뾰족하고 날카롭죠. 젊은 여성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마르면 마른 대로,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심지어는 정상 체중이어도 비난을 들으니까요.<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바디 포지티브와 함께 성적 충족감이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섹스 포지티브(Sex Positive)도 함께 외칩니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여성들도 많아졌지만, 섹스 포지티브를 어려워하는 여성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누려온 섹스 포지티브가 여성들에겐 두꺼운 페르소나를 깨부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앞으로 여성의 섹스 포지티브가 미디어에서 더 적극적으로 다뤄지길, 그래서 더 많은 여성이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응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퍼스널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본능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기며, 그것이 가진 힘(섹스 포지티브)을 전파하는 사람이죠. 당신을 사서 쾌락을 위해 쓰는 게 불쾌하지 않으냐는 '낸시'의 말에 '리오'는 사람이 아니라 서비스를 사는 거라고 정정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모든 서비스는 다 돈을 내고 이용하지요. 하지만 성에 관련된 서비스만 유독 부정적인 인식이 강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이 작품은 성매매 종사자의 직업적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성매매의 아주 이상적인 일면만을 묘사하는 것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시선도 분명 필요합니다.은밀한 생각이 썩어 곪아버리기 전에 모두가 건강하게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쩌면 영화 속 ‘낸시’의 말처럼 퍼스널 서비스가 공공 서비스로 자리 잡을지도 모릅니다. 뭐, 아직은 여성의 섹스 포지티브마저 남성들의 더 자유롭고 다채로운 섹스에 사용되는 씁쓸한 세상이지만요.Summary“난 느껴본 적 없어요, 누구와도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섹스에 만족해 본 적 없는 인생 6*년차 ‘낸시’. 남편과 아이들이 떠나고, 은퇴 후 혼자 남은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해보기로 결심한다. “이끌리는 대로 다 잊고 당신만 생각해요.” 낯선 호텔, 모든 게 자신 없는 ‘낸시’ 앞에 젊고 매력적인 ‘리오 그랜드’가 나타나고, 처음 경험하는 퍼스널 서비스는 예상치 못한 해방감을 선사하는데... (출처: 씨네21)Cast감독: 소피 하이드출연: 엠마 톰슨, 다릴 맥코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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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숨막히는 긴장감이라니!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 가 공개 되었습니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는데요.
서부극에 흔하게 등장하는 총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막히는 긴장감을 보여주죠.
대신 네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데요.
매우 긴장감있게 이들의 관계가 펼쳐집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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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Campion's Power of Dog has been released.
It was released on Netflix.
Guns that commonly appear in western movies do not appear.
Nevertheless, it shows a breathtaking tension.
Instead, it shows the psychology of four characters.
Their relationship unfolds with great tension.
Please refer to the video for detailed revi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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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은 없지만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들은 죽게 됩니다 [반전리뷰/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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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워크 먹여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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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담> 메인 예고편
경성 최고의 의료기술이 갖춰진 ‘안생병원’,
동경 유학 중이던 엘리트 의사 부부 ‘인영’(김보경)과
‘동원’(김태우)이 부임하고
병원 원장 딸과의 정략결혼을 앞둔 의대 실습생 ‘정남’(진구)은
유년 시절 사고로 다리를 저는 천재 의사 ‘수인’(이동규)과 함께
경성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저마다 비밀스런 사랑에 빠져든 이들은
점점 지독한 파멸의 공포와 마주하게 되는데…
1942년 경성 안생병원
우리는 죽은 자와 사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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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변의 에트랑제> 메인 예고편
오키나와 외단섬, 해변 벤치에 혼자 멈춰있는 소년 '미오' . 그런 미오가 몹시 신경 쓰이는 소설가 지망생 '슌'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졌다 생각한 순간, 미오가 돌연 섬을 떠난다.
그리고 3년 후, 그토록 그리워하던 서로를 다시 만난 둘은 이제 마음을 알아가며 서툴지만 따뜻한 사랑을 시작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