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2-22 18:50:57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
- <퇴마록>(2025)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각자 크고 작은 상처를 품은 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서서히 드러나는 악을 처단하러 함께 떠나는 여정은 늘 흥미롭기 마련이다. 이러한 퇴마사의 모험담이 사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90년대 한국의 오컬트 장르에서 독보적이었던 소설 <퇴마록>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당시 많은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며 익숙하게 만났던 이름들, 박신부, 현암, 준후, 승희의 이야기가 이제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탄생했다. 이 작품은 소설 ‘국내편’의 첫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상처를 지닌 퇴마사들이 우연히 만나 ‘악의 교주’를 물리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첫번째 감정] 박신부의 상실감
영화에서 절대 악이 먼저 화면에 소개된 이후, 그 다음 장면부터 관객을 맞이하는 인물이 바로 박신부다. <퇴마록> 전체 서사에서 그는 리더 역할을 맡으며, 팀원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런 박신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상실감이 도사리고 있는데, 바로 과거에 구하지 못했던 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다. 악귀에게 빙의된 아이를 제때 구해내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그를 계속해서 괴롭힌다. 이 사건 이후, 박신부는 ‘악을 처단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전부 바쳐가며 악령을 찾아다니는 사냥꾼이 되었다.
영화에서 이 상실감은 박신부가 다시 한 번 아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게 되는 동기로 드러난다. 파면된 신부라는 낙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동밀교의 스님 요청에 응하여 본산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악령을 막고, 같은 상황에 처한 준후를 구해내려 한다. 결국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두 번 다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간절함이며, 그 강인한 의지가 이번 영화에서도 핵심적으로 부각된다.
무엇보다 박신부의 상실감은 그가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칠고 처절한 기도를 올릴 때, 또는 심한 부상을 입고도 다시 일어나 방어막을 펼칠 때, 우리는 그가 겪은 슬픔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이 애니메이션은 간결하면서도 묵직하게, 그의 고뇌를 스크린에 옮겼다. 그래서 박신부의 상실감은 단지 과거를 후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팀을 이끄는 진정한 동기가 된다. 이처럼 박신부는 아픔을 동력 삼아 누군가를 살리려는 ‘주체적 신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이야기 전반에서 든든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두번째 감정] 현암의 상실감
현암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불같이 무공을 펼치는 ‘행동파’로 그려진다. 그런데 그의 강인함 뒤에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상실감이 자리하고 있다. 물에 빠져 죽은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물귀신’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집념은 그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가 외형적으론 분노를 뿜어내지만, 사실 그 분노의 기저에는 상실감이 깔려 있는 셈이다. 무공을 배워나가면서 분노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을지 몰라도, 동생을 잃었다는 사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감정적 배경 덕분에 현암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정의감이 넘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동밀교를 찾다가, 그곳에서 악령에 씌인 교주의 끔찍한 실상을 발견한다. 이때 우연히 마주한 박신부와 준후와 함께 ‘지금 당장 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결의를 보여주며, 공략법을 논의하기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 불같은 성격 탓에 충돌도 자주 일으키지만, 결국 그의 저돌성과 능숙한 무공은 팀 전체에 큰 도움이 된다.
현암이 무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동생을 지켜내지 못한 상실감이, 누군가를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가 불가침의 영역으로 보이는 적에게도 거침없이 달려드는 것은 ‘누구 하나 더 잃을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현암이 분투하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호쾌한 액션 쾌감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슬픔과 트라우마가 녹아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 덕분에 현암은 단순히 ‘센 무공인’이 아니라, 깊은 상실감에 갇힌 채로도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완성된다.
[세번째 감정] 준후의 상실감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준후는 무척 밝고 쾌활한 아이다. 어린 외모와 철없는 모습으로 인해, 보호가 필요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잠재력은 해동밀교 안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묘사되며, 특히 술법과 관련해선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그 능력을 어설프게 사용하며 일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는 준후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상실감이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교주의 폭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준후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인물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토록 밝았던 준후는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던 강력한 술법을 폭발적으로 각성해낸다. 하지만 막강한 힘을 쏟아낸다고 해서, 잃어버린 이를 되찾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상실감은 준후에게 ‘내가 가진 능력이 때로는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결과적으로 준후는 가장 어린 존재이면서도, 누구보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된다. 이는 단순히 슬프게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캐릭터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암시하는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준후가 보여주는 철없던 표정이,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는 비장함으로 물드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준후의 상실감은 아이 같은 순수함마저 침식해버리는 폭력적인 감정이지만, 동시에 그가 ‘다시는 소중한 이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결심으로 이어질 토대가 된다.
이게 바로 성공적인 영화화
<퇴마록> 애니메이션은 ‘정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짧은 에피소드 안에 밀도 있게 담아낸다. 퇴마사라는 설정은 과장된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각 인물이 지닌 상실감과 트라우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고뇌를 반영한다. 박신부, 현암, 준후가 힘을 합쳐 교주의 폭주에 맞서 싸우는 과정은 곧, 이들이 스스로를 추스르고 더 큰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정의의 구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극복하려고 하는 악은 단순히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힘에 도취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사회적·도덕적 시사점을 던진다.
그렇기에 이번 애니메이션판 <퇴마록>은 원작 소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새로운 시청자에게도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들이 늘 그렇듯,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프로젝트지만, 이번 결과물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퇴마록> 영화다’라고 평가해도 좋을 만큼 만족스럽다. 특히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화려한 작화로 되살아나, 각자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꽤나 장쾌하고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저 한 편의 에피소드로 끝나기보다는,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원작에서 다뤄졌던 수많은 사건과 캐릭터의 서사가 이번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도 어떻게 풀려날지 궁금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박신부, 현암, 준후 외에도 함께 맞설 승희의 활약, 그리고 더 거대한 악령들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직접 이 세계에 빠져드는 일이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오컬트 장르의 대표작 <퇴마록>을 추억하는 분들이라면, 그때의 감성과 긴장감을 다시금 되살려볼 좋은 기회다. 또 원작을 모르는 처음 관객이라도, 박신부, 현암, 준후가 보여주는 진솔하고 때론 처절한 사투를 통해 오컬트 판타지의 매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명작의 재탄생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품은 영웅들의 여정이 보고 싶다면, 이번 <퇴마록> 애니메이션을 적극 추천한다. 과연 이들이 어떤 식으로 상실감과 싸워나가며 앞으로 펼쳐질 시리즈를 이끌어나갈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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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당신께
<헤어질 결심>과 <미쓰 홍당무> 그 사이 어드메를 노니는 영화가 2024년에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재소환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그 전에 그런 혼종적인 게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레 존재할 수 있을까?
포스터만 보고는 노인 성폭행 피해를 다룬 <69세>의 임선애 감독이 묵직하고 깔깔한 전작에 비해 산뜻하고 푸근한 사랑 영화를 만들려던 줄로만 알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당도한 것은 숨이 턱 막힐 만큼 밀도 높은 감정의 홍수다. 둘러가지 않고 변명하지도 않아서 선명도가 아주 높은 서사와 대사들, 박찬욱이나 이경미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한 스토리텔링, 천재적인 리듬감, 두 눈의 연기만으로 일렁이는 마음들에 함께 올라탈 수 있게 해주는 매력적인 배우들까지. <세기말의 사랑>은 정말이지 감탄밖에 안 나오는 영화다. 그리고 임선애 감독은 단순 '유망주'로만 불리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아깝다. 연차만 낮을 뿐 (한국에서 여성 감독의 권위가 아직 없다는 것은? '그런' 감독의 '이런' 영화에만 유독 젠체하고 가르치려 드는 이들의 저평가를 몇 년이고 버텨야 한다는 의미) 이미 한국 영화계 거장의 반열에 성큼 올라설 수 있는 포텐셜을 다 갖추었기 때문. 윤가은, 이옥섭, 김초희에 이어 이지은과 임선애를 차세대 한국 영화의 희망으로 믿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정말로 간만에 너무 좋은 사랑 영화였다(지금의 여성 관객에게 국내 제작+로맨스 영화가 좋게 다가오기란 거의 바늘구멍 뚫는 일에 가까운데도). 그리고 이때 사랑은 영미와 도영 사이 이상하고 풋풋한 긴장, 유진과 영미의 아웃사이더 연대를 거쳐와서, 기어이 도영과 유진의 눈물로 완성되는 삼각관계 속 연인 간의 애달픈 감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유전병 발현으로 목 아래 몸이 모두 굳어 혼자 힘만으론 꼼짝할 수도 없는 조유진에겐 친한 푼수떼기 동생 오준과 가출한 조카 미리와의 투닥대는 사랑이 있다. 못나고 외롭고 놀림받기 일쑤인 데다 튀어나온 앞니를 목도리 사이에 푹 파묻고 다녀 '미쓰 홍당무' 양미숙을 연상시키는 회계과장 '세기말 Miss Apocalypse' 김영미에겐... 원래는 아무도 없었다가, 유진과 오준 그리고 도영이 생긴다. 또 영미의 실패한 (줄 알았던) 사랑은 도영만을 향하지 않으며, 부모 잃은 그애가 평생 돌보았던 큰엄마와 그 큰엄마의 짝사랑이던 사촌오빠가 보답해주지 않은 가족 간의 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토록 다양한 사랑이 영화 내내 말 그대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며, 그 사랑들은 자주 내 눈과 뇌가 성급히 직조했던 적당한 상식선의 예상을 배반하기도 한다. 미리의 친아빠와 친엄마가 누구인지 너무나 갑작스럽게 툭 던져지던 씬처럼. 유진의 명품 구두가 왜 모두 '짭'이었는지, 누가 유진의 장애 '덕'을 봤는지, '지랄 1급'이라던 유진에게 들러붙어 있었던 처연한 체념의 그림자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까지, 역시 예고도 없이 우르르 한 방에 깨닫게 해주던 오준의 미용대회 시퀀스의 폭풍우 같은 흐름처럼.
어쩌면 이런 예측 불가성을 즐기지 않는 이에게, 혹은 특정한 '부류'의 돌출성을 불편해하는 이에게 영화의 화려한 곁다리들은 일면 산만하거나 심지어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곁다리' 즉 삼각관계와 무관하면서도 구구절절 늘어지는 각 인물들의 사연은 모두 하나의 다정한 진리로 수렴한다.
타인에게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치러내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사랑(들)의 경중을 가리면서 너무 많은 인물의 너무 많은 이야기가 혼란스러우니 어떤 것은 받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복잡한 일이므로. 같은 남자를 사랑한 영미와 유진이 처음엔 너무 다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도영에게 부인이 있다는 형사의 말에 절망으로 물들던 영미의 표정과, 들들 볶이던 자원봉사자 학생의 “우리 엄마 죽었다 미친년아”에 남몰래 무너지던 유진의 표정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 보면 그 둘이 얼마나 닮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미리의 이기적인 가출과 카드 도용을 힐난하더니 실은 저도 유진의 장애 등급을 이용해 몰래 차를 샀다던 오준의 욕심과, "지금 누나한텐 나밖에 없으니까" 곁을 지켜야 한다는 오준의 강인한 책임감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처럼. 각자의 바닥은 다 너무 깜깜하고 처량해서 가끔 거기 떨어진 채로 만난 사람에겐 뭐든 다 말하고 날 내맡기고 싶어질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계하되 타인을 밀어내지 않을 수 있고, 이해하되 섣불리 다 안다고 말하지 않는 신중함을 발휘할 수 있다.
돌봄노동에 최적화된 영미의 성실한 다정과 경청 그리고 손길이 필요했던 거면서 오로지 돈 때문에 같이 있는 거라고 처음부터 스스로를 속이던 유진이의 위악을 나는 알고,
“끝까지 버텨보는 거 나쁘지 않던데요. 그래서 저는 감옥엘 갔지만. 후회는 안 해요.”라며 이상하리만치 끝까지 가보고 싶은 충동을 참지 않는 영미의 달콤한 자포자기도 나는 알지.
그래서 내겐 유진의 영미를 향한 “화상이 맨드라미 닮았네”가 이 시대 최고의 인류애를 함축한 대사 같았다. “그 화상 만져본 적 있어? 내가 한 번 만져봐도 돼?”라는 유진의 묘한 요청. 물렁한 영미의 수락에 유진이 상처를 보듬으며 "생각보다 부드럽네"라고 말하자 영미는 설핏 웃으며 “하여튼 이상해”로 화답한다. 그 욕조 옆에서, 또 미용대회 대기실에서 넘어진 유진의 휠체어 옆에서, 영미는 몸을 낮추어 유진과 시야의 높이를 맞춘다. 제 몸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여자가 멸시받던 여자를 똑바로 바라볼 때, 그늘진 유진의 앞에 놓인 건 환히 쏟아지는 빛처럼 다가오는 영미의 옅은 눈동자와 상냥한 미소다.
회사 돈을 빼돌리는 남자가 제게 조금 다정했단 이유만으로 지구가 망하기 전날 밤에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이상하고 대책 없는 외로운 여자. 그런 여자를 두고 맨드라미의 꽃말이 '치정'인 걸 아느냐고 놀려대던 역시 이상하고 화가 많아진 외로운 여자. 소시지 반찬, 모기 물린 자국 위의 십자가, 그게 뭐라고. 그게 다 뭐라고, 사랑하는 이를 구하지도 못하는 내가 나인 게 너무 싫었을 여자들이 서로를 죽어라 질투하면서도 그 '구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줄 유일한 상대를 마음 속으론 악착같이 갈구한다.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사의하고 어려운 일인지, 결국 영미의 '저 사람 나 아니면 어떡하나'가 유진의 짐을 덜고 유진은 도영에게 "그 여자 보니까 처음으로 네가 마음 놓이더라"라고 말한다. "저는 아직 유진 씨가 마음 놓이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도영의 말은 온라인 접견 시간 종료로 뚝 끊기고 말지만, 그 이후로 유진은 완전히 퇴장하고 도영과 영미가 꾸준히 재회해 채무 관계를 핑계로 '다시' 친해지는 에필로그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도영과 영미처럼 유진은 잘 살아갈 것이다 꿋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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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공감, 그리고 연대와 저항의 상징이 되기까지. 종이의 집: 신드롬이 된 드라마 (2020)
<종이의 집>은 어쩌면 지금까지 본 넷플릭스 드라마 중 손에 꼽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나도 이 드라마에 빠져 이렇게 까지 공감하고, 열광하게 될 줄이야. <종이의 집 : 신드롬이 된 드라마>는 종이의 집의 성공 비결뿐만 아니라 그들의 땀과 열정, 뒤이어 일종의 '레지스탕스'의 아이콘이 된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 Parte 1을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여섯 도둑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특함과 특유의 긴장감이 보는 이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언급한 <종이의 집>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 Parte 1. '공감'은 가장 큰 소통의 언어이자, 강력한 힘이다 -
<종이의 집>은 처음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가 아니다. 스페인 단독으로 방영되는 드라마였지만, 생각보다 저조한 시청률에 Parte 2가 마지막임을, 배우들을 포함한 모든 제작진들이 예상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들이 넷플릭스의 손을 잡게 되며 '로또'를 맞는 순간이 오게 된다. 예상보다 높은 시청률이 연이어 나오고, 현재는 전 세계 스트리밍 순위 2위에 빛나는 성과를 거둔 드라마가 바로 <종이의 집>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가장 큰 역할은 바로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뻔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서사가 매력적이고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과연 있을까. 보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조폐국 그리고 스페인 은행을 터는 도둑과 이를 쫓는 경찰이 있을 때 우리는 과연 누구의 편이 될까? 망설일 필요 없이, 바로 경찰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이 도둑들을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우리와 다름없이 개개인의 사연이 있고, 인생이 있다. 이들의 '범행 계획'또한 보는 재미가 있지만, 여러 인물이 얽히면서 발생하는 감정들을 따라가는 것 또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그 감정에 대해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 공감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비록 스크린이라는 벽이 있지만, 이는 금세 허물어지고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 진솔하게 소통하게 된다.
무엇보다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특색이자 아이덴티티를 살린 것 또한 포인트이다. 정열과 사랑의 국가에 걸맞게, 여러 감정들 중 '사랑'이 가득한 드라마이다. 범죄물에 사랑이라니, 조금은 대조되는 조합이지만, 이렇기에 더욱 이들의 관계성이 돋보인다. 이는 인물 간의 사랑이기도 하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사랑이기도 하다. 인물들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예정되어 있던 사랑도 존재하지만,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어놓는 순간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는 이들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바라보며 같이 마음 아파하고, 설레어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우리들의 사랑을 말하자면, 극 중 흔히 말하는 '민폐 캐릭터'또한 존재하고, 당최 걷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보는 이들에게 불안감과 공포를 안기는 인물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들도 미운 구석이 있을 뿐,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 Parte 2. 유연한 제작 과정,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
<종이의 집>은 대본을 미리 짜고 한꺼번에 촬영에 들어가는 방식이 아닌, 촬영을 함과 동시에 다음 각본을 짜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이어간다. 그렇기에 좀 더 유연한 사고와 매 상황에 맞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이들의 제작 과정 또한 등장하는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오고 가는 그들 대화의 결과물이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될지,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건 바로 이들의 '시간 전개 방식'이다. 보통은 계획에서 행동의 옮기기까지의 시간 흐름대로 내용 전개가 이루어지는 반면, 이 드라마는 첫 화부터 사건 당일을 바로 보여준다. 범행 시작을 보여줌과 동시에 중간중간 그들이 아지트에서 했던 계획 동기와 과정을 보여주며 과거로 돌아가는 시점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두 시점이 동시에 흘러감을 보여주면서 <종이의 집>만의 차별화된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범죄'라는 장르에 맞게, 반전 또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특히 매 시즌의 마지막 장면은 놀라움의 연속.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가담과 희생은 서스펜스물로서의 강점을 충분히 보여준다.
- Parte 3. 이들이 주는 메시지 -
아마 이것이 <종이의 집>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자,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극 중 그들이 입는 붉은 점프슈트와 달리 가면, 이것은 이제 '저항'그리고 '연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내용 중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위 모습은 여성 인권, 자유를 위해 맞서는 사람들의 현재를 담아낸 실제 상황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붉은색이 자주 등장함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저항군'이라는 그들의 투쟁에 걸맞은 색이다. 이에 사람들은 영향을 받아,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맞서나가기 위해, 빨간 점프슈트를 입고 달리 가면을 쓴 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주제곡인 'Bella Ciao' 또한 파급력이 엄청난데, 실제로 세계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저항군이 사기를 높이기 위해 불렀던 노래이다. 제작진들도 자신들의 일종의 노동요였던 이 노래를 결국 메인 테마곡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노래는 변화의 불씨가 되었고, 75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평화를 외치며 Bella Ciao로 그 순간을 기념하고 있다.
<종이의 집>을 간단히 말하자면 공감과 사랑, 그리고 저항이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 자신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 드라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종이의 집>의 팬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그렇기에 더 경이로운 다큐멘터리이다. 미디어 매체의 좋은 영향력이자, 본보기가 되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W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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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이별부터 공존까지 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일부.
한국단편경쟁 6은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어내었다. <너에게 닿기를>, <작별>,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곰팡이>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시놉시스
학급반장 수진은 의도치 않게 같은 반의 청각장애인 주연을 다치게 한다. 수진은 친구들과 함께 주연을 찾아가 사과하려고 하지만, 주연은 사과를 받지 않고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뷰
여러 가지 수단으로 전달되는 말과 표정의 중요성.
반장인 수진이 같은 반 청각장애인인 주연을 다치게 했다. 그로 인해 주연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려 하지만 주연은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수진은 '수화'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도무지 전달되지 않는다. 무표정 때문일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사과를 건네고 오해가 풀리길 바랄 뿐이다.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건넨다고 해서 나의 모든 말이 누군가에게 닿는 것은 아니다.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다 알아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무언의 목적으로 인해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에게 닿는 그 순간은 어떤 ‘오해’에서 벗어나 다시 진심이 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유하는 건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작별
공선정 감독
시놉시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영주는 외상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중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영주는 치료와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해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와 작별한 지 1년째 되는 10월, 영주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하게 되었을까.
리뷰
누군가의 슬픔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굉장히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 대한 위로와 추모보다는 원인에 대한 책임이 우선시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과 추측만이 남아있다. 사회에서 수많은 슬픈 일들이 반감을 일으키는 일이 된 건 무엇 때문일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전찬우 감독
시놉시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연인의 집에 모르는 남자아이가 텔레비전을 고쳐 달라며 찾아온다.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치는 남자와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서 아이와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리뷰
두 사람이 외출한 사이, 모르는 남자아이가 집에 앉아있다.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의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이 되어 아이 엄마가 연인의 집에 찾아왔고, 아이와 다시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가 중요해서 떨어질 수 없지만 함께 할 수도 없는 사이에 대한 어떤 정의를 보여주는 영화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던 영화였다. 장면이 조각조각 연결되며 같은 시간 속 다른 대화는 더욱 희미하게 흩어진다.
곰팡이
박한얼 감독
시놉시스
30대 여자 J는 배우자의 유골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곰팡이를 밥에 올리자, 곰팡이가 스스로 움직여 음식을 찾아간다. J는 곰팡이 핀 음식을 욕조에 넣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리뷰
J의 상황이나 과거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배우자의 존재는 J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에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듯 보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검은색 자국을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J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곰팡이가 핀 음식을 욕조로 옮겨 담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 속의 자신을 담근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일까. 진짜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하는 상실의 마무리가 참으로 무섭게 여겨졌다.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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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1950, 1995년. 레즈비언 로맨스의 두 계보
(왼)〈올리비아〉, 자클린 오드리 감독 작품, 1950, 프랑스, 7★/10★
(오)〈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 마리아 마젠티 감독 작품, 1995, 미국, 7★/10★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복원: 아카이브의 맹점들’이라는 제목의 세션이 열렸다. “최근 몇 년간 세계 각지의 내셔널 아카이브와 필름 파운데이션에서 복원된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표방한 세션이었다. 그중 〈리옹으로의 여행〉, 〈올리비아〉, 〈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를 봤다. 첫 번째 영화는 역사에 중대한 공헌을 했으나 잊힌 여자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좇는 작품이고, 나머지 두 작품은 레즈비언 로맨스‧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각각 1950년 프랑스, 1995년 미국에서 제작된 후자의 영화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영화제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리비아〉를 연출한 자클린 오드리는 1950년대의 거의 유일한 여성 감독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의 한 기숙학교다. 주인공 올리비아는 영국 기숙학교에 있다가 막 프랑스로 옮겨 온 참이다. 그녀가 영국과 프랑스의 기숙학교를 비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그는 교장 쥘리에게 영국 기숙사의 엄한 규율과 도덕적 규제가 숨 막혔다고, 그와 반대되는 이곳이 좋다고 말한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학교에서 규율과 도덕 없음이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분출로 이어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올리비아가 새로 옮긴 기숙학교에는 교장 쥘리와 또 다른 선생님인 카라를 중심으로 한 두 세력 축이 있다. 쥘리와 카라는 묘한 경쟁관계에 있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경쟁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인기’다. 그러나 '인기'는 레즈비언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올리비아를 유독 아끼는 카라는 올리비아가 쥘리에게 빠진 게 명백해지자 질투에 사로잡힌다. 카라를 연기한 시몬느 시몽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인데, 그녀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늘 신경질적이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여성’ 캐릭터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연기해낸다. 질투에 빠진 카라의 존재로 인해 암시적으로 언급되는 쥘리와 올리비아의 로맨스도 한층 강렬해진다. 쥘리 방 바로 옆에 배정된 올리비아의 방, 우연한 스킨십에 뒤따르는 “열정이 넘치는구나!”라는 말, 올리비아와의 밀회 약속을 ‘망상’이었다고 철회하는 쥘리 등등…. 카라의 질투와 결부된 두 사람의 은밀한 로맨스는 성애적 장면 없이도 섹슈얼리티를 강렬히 그려낼 수 있음을 보인다.
영국에서 이 영화가 상영 금지되었다는 데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위반하는 힘은 한층 더 강해지기도 한다. 파국적 사건 이후 비밀을 품은 우아함을 지닌 채 학교를 떠나는 쥘리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매달리지 않겠다는 올리비아의 표정도 압권이다. 남성/권력이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뒷모습만으로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대목은 쥘리, 올리비아, 카라 등 여성들이 구축한 내밀한 세계가 독립성‧자립성을 갖추었음을 보이기도 한다.
〈올리비아〉가 고상하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세계를 엿보게 해준다면, 〈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는 유쾌하고도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레즈비언 로맨스를 풀어낸다. “1990년대 퀴어 로맨스 영화의 정전과도 같은 영화”라는 평을 받는 영화답게, 영화에는 그 시대 레즈비언 하위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주인공 랜들 딘은 낙태 반대 운동을 하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레즈비언 애인과 함께 사는 이모네 집에서 지낸다. 딘에게 ‘다이크’라는 모욕이 일상적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그 역시 전형적인(그래서 멋있는) 톰보이 미학을 체현한 레즈비언이다.
주유소 화장실에서 이성애 결혼을 한 여자와 몸을 섞으며 욕망을 충족하던 딘은 어느 날 자신과는 모든 게 정 반대인 한 여자를 만난다. 딘의 정체성은 노동자계급, 백인, 남성성, ‘문제아’ 등으로 구성된 데 반해 이비는 부유하고, 흑인이며, 이제 막 남성 애인과 헤어진 '이성애자'고, 모범생이다. 완벽하게 다른 둘은 금세 사랑에 빠지고 다름 앞에 놓인 금기들을 하나하나 헤쳐 나간다. 그리고 다름을 조율하는 동시에 유지하며 서로를 매혹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영원히 탐색할 것임을 약속한다.
모든 소란이 한 장소에 모여 폭발하듯 분출되는 영화의 유쾌한 결말에서 그 모든 소음이 상관없다는 듯 서로의 귀를 막아주고 생긋 웃는 딘과 이비의 얼굴은 〈올리비아〉가 창조한 세계와 닮은 데가 있다. 누가(특히 남성/권력) 뭐라 하든 그들 관계의 주인은 자신이며 그 주권을 빼앗기지 않은 채 앞으로도 여성을 욕망하는 여성으로 남겠다는 의지가 읽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영화에서 파생된 수많은 여성/퀴어 영화가 남성중심적‧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순되는 점이나 틈’인 맹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계보는 세계가 변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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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없어서 재미있었던 '지옥의 화원' 리뷰
*본 본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옥의 화원
(2022.12.15 개봉)
감독: 세키 카즈아키
출연: 나가노 메이, 히로세 아리스 등
안녕하세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선정된 에깸입니다 ♥
이번에 지옥의 화원 시사회에 초청받아서 개봉 일주일 전 미리 보고 왔는데요
사실 기대 안 했던 작품인데 ㅋㅋㅋㅋ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지옥의 화원은 오피스 코믹 무비인데요
힘이 세다면 '최강 여직원' 타이틀을 달 수 있는 대양아치 세계관(??)을 배경으로 했고요
왕년의 양아치, 폭주족들이 사내 파벌을 형성하여 싸우는 와중
신입으로 들어온 란으로 인해 계급도가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한 여직원인 나오코...
아주 강력한 스포일러죠? ㅋㅋ
하지만 이 말만 듣고 멋대로 추측하며 영화를 보셨다가는 큰코 다칠 수도 있는 게 지옥의 화원인 거 같아요
네??! 쟤가 저런 애였다고요!!?? 의 연속인 영화랄까...
ㅋㅋㅋㅋ 그게 지옥의 화원 매력 아닐까 싶어요
지옥의 화원이 좋았던 이유는 또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젠더의 이미지를 뒤바꿨다는 거예요
사실 이런 양아치,, 폭주족,, 의 싸움은 흔히 남성들 사이에서 일어나잖아요?
우리나라만 해도 여자끼리 이렇게 피 흘리며 싸우는 영화 많지 않고요.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를 완전히 체인지 해 놨더라고요
보통의 영화가 지나가는 여자에게 시비 거는 남자 폭주족, 그런 폭주족을 한 방에 무찌르는 남자 주인공 이었다면!
지옥의 화원의 경우 지나가는 남자에게 시비 거는 여자 폭주족, 그런 폭주족을 한 방에 무찌르는 여자 주인공 이 되었습니다 ㅋㅋ
끝까지 로맨스가 나오지 않는 것도 한몫 한 거 같아요. 사알짝의 로맨스가 첨가되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코믹 요소로 사용되니까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엔딩이 완전 대반전이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옥의 화원은 100 퍼센트 코믹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예요. 조금의 신파, 조금의 스릴 전! 혀! 없고요
싸우면서 피가 철철 흐를 텐데 무섭지 않냐고요? 피도... 웃기게 나더라고요(??) 중간중간 일본 만화틱한 요소들이 등장하는데 그게 젤 웃겼어요. 주인공끼리 싸우는데 염력 뿜으며 여기저기 날아댕기고, 나레이션으로 '만화에선 이럴 때 혼자 등장하지, 그렇지!' 하기도 하고요 ㅋㅋㅋ 걍 진짜 무협만화 세계관,,,
포스터를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보고 나면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였거든요
사실 포스터 보고 이건 재미없을 거야 했던 편견도 있는 거 같구요. 미리 말하자면 대단한 스토리 라인은... 없습니다
줄거리가 이렇고 연출이 이렇고 말하기에도 어이없달까요. 그래도 기승전결 하나 만큼은 완벽한 거 같기도요 ㅎㅎ
지옥의 화원!
2022 보내야 하는 이 연말에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니까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 찾고 계시다면
12월 15일 개봉 예정인
지옥의 화원 추천합니다~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재관람 의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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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 카우리스마키, 사랑은 낙엽을 타고 (2023)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빌어 이렇게 말해본다. 행복한 노동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노동의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행복하고 만족 스런 자본주의 노동은 무엇일까? 일을 적게 하고 많이 버는 것? 유명세를 떨치는 것? 늙어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적어도, 카우리스마키의 세계관 안에서는, 노동과 감정(행복 혹은 불행)을 연결 짓지 않는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소위 ‘일의 기쁨과 슬픔’ 자체가 부재하는 사회인 것이다.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일률적인 표정의 부재는, 자본주의 사회 노동의 동적인 단면(들뢰즈의 표현을 빌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예컨대 일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시기는 사회초년생 시기에 한정된다. 연차가 쌓일 수록, 모니터 앞에 무표정하게 앉아서 덤덤하게 일을 처리하는 시간의 비중이 늘어나고, 사회는 이를 프로답다고 여긴다. 안사의 슈퍼마켓 가드는,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몰래 가져나오는 안사를 발각한다. 잠시 멈추어 보여지는 그의 표정은 우스꽝스러운데,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 노동의 총체적인 비디오를 돌리다가 순간, 일시 정지를 누른 것과도 같다.
영화는 인물의 무표정과 무감동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동시대의 감각을 없애서 이러한 노동 조건이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고 영구고착되었다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유일하게 시대 감각을 일깨우는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 마저 전기세가 비싸기 때문에 단
절된다.
노동자들은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세계에서, SNS 대신에 80년대스러운 무대형 가라오케와, 술 담배가 주는 도파민에 절어 있다. 우연한 만남에서 오는 도파민은 그 중 최고이다. 과장하자면, 이 모든 쾌락들은 노동을 지속하고, 삶을 지속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무리 심한 중독이나 의존증이라도 노동 자체를 이길 수는 없다. 안사는 홀리파의 부주의한 실수로 몇 차례씩 바람을 맞고 마음이 무너지지만, 다음 날은 어김없이 여전한 무표정으로 공장에 출근해야 한다. 홀리파는 술 때문에 산업재해 처리도 못 받고 해고 당하지만, 그 즉시 다른 일자리를 찾아 전전한다. 한 마디로, 인간의 노동에 대한 의존은 가장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러한 노동이라 하더라도, 다가오는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노동조차 끊지 못하게 하는 술에 대한 중독을 사랑은, 언젠가 치유해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킬 힘은 없지만, 안락사 당할 뻔한 개를 구하고, 혼수상태의 연인에게 책을 읽어줘서 마법처럼 그를 일으킨다. 안사와 홀리파가 (그들의 강아지와 함께) 전기세를 나눠내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쟁소식에도 귀기울이는 상상을 한다.
[Eurofilm 13. 핀란드, 독일]
- 이미지 제공 : 씨네랩
2023년 12월 13일 감상 / 2023년 12월 20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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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2> 티저 예고편
게임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모두 준비되었는가? 《오징어 게임》 시즌 2, 12월 26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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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맨 인 더 다크2> 메인 예고편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그날 밤 이후,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진 소녀 ‘피닉스’와 함께 세상과 단절된 일상을 보내던 눈 먼 노인 ‘노먼’
어느 날 밤,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침입해 ‘피닉스’를 납치하고
소녀를 되찾기 위해 잠들어있던 그의 광기가 다시 깨어나는데…
그는 과연 소녀의 수호자인가 괴물인가?
어둠 속 진실이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