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2-22 18:50:57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
- <퇴마록>(2025)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각자 크고 작은 상처를 품은 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서서히 드러나는 악을 처단하러 함께 떠나는 여정은 늘 흥미롭기 마련이다. 이러한 퇴마사의 모험담이 사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90년대 한국의 오컬트 장르에서 독보적이었던 소설 <퇴마록>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당시 많은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며 익숙하게 만났던 이름들, 박신부, 현암, 준후, 승희의 이야기가 이제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탄생했다. 이 작품은 소설 ‘국내편’의 첫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상처를 지닌 퇴마사들이 우연히 만나 ‘악의 교주’를 물리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첫번째 감정] 박신부의 상실감
영화에서 절대 악이 먼저 화면에 소개된 이후, 그 다음 장면부터 관객을 맞이하는 인물이 바로 박신부다. <퇴마록> 전체 서사에서 그는 리더 역할을 맡으며, 팀원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런 박신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상실감이 도사리고 있는데, 바로 과거에 구하지 못했던 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다. 악귀에게 빙의된 아이를 제때 구해내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그를 계속해서 괴롭힌다. 이 사건 이후, 박신부는 ‘악을 처단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전부 바쳐가며 악령을 찾아다니는 사냥꾼이 되었다.
영화에서 이 상실감은 박신부가 다시 한 번 아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게 되는 동기로 드러난다. 파면된 신부라는 낙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동밀교의 스님 요청에 응하여 본산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악령을 막고, 같은 상황에 처한 준후를 구해내려 한다. 결국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두 번 다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간절함이며, 그 강인한 의지가 이번 영화에서도 핵심적으로 부각된다.
무엇보다 박신부의 상실감은 그가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칠고 처절한 기도를 올릴 때, 또는 심한 부상을 입고도 다시 일어나 방어막을 펼칠 때, 우리는 그가 겪은 슬픔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이 애니메이션은 간결하면서도 묵직하게, 그의 고뇌를 스크린에 옮겼다. 그래서 박신부의 상실감은 단지 과거를 후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팀을 이끄는 진정한 동기가 된다. 이처럼 박신부는 아픔을 동력 삼아 누군가를 살리려는 ‘주체적 신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이야기 전반에서 든든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두번째 감정] 현암의 상실감
현암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불같이 무공을 펼치는 ‘행동파’로 그려진다. 그런데 그의 강인함 뒤에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상실감이 자리하고 있다. 물에 빠져 죽은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물귀신’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집념은 그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가 외형적으론 분노를 뿜어내지만, 사실 그 분노의 기저에는 상실감이 깔려 있는 셈이다. 무공을 배워나가면서 분노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을지 몰라도, 동생을 잃었다는 사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감정적 배경 덕분에 현암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정의감이 넘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동밀교를 찾다가, 그곳에서 악령에 씌인 교주의 끔찍한 실상을 발견한다. 이때 우연히 마주한 박신부와 준후와 함께 ‘지금 당장 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결의를 보여주며, 공략법을 논의하기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 불같은 성격 탓에 충돌도 자주 일으키지만, 결국 그의 저돌성과 능숙한 무공은 팀 전체에 큰 도움이 된다.
현암이 무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동생을 지켜내지 못한 상실감이, 누군가를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가 불가침의 영역으로 보이는 적에게도 거침없이 달려드는 것은 ‘누구 하나 더 잃을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현암이 분투하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호쾌한 액션 쾌감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슬픔과 트라우마가 녹아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 덕분에 현암은 단순히 ‘센 무공인’이 아니라, 깊은 상실감에 갇힌 채로도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완성된다.
[세번째 감정] 준후의 상실감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준후는 무척 밝고 쾌활한 아이다. 어린 외모와 철없는 모습으로 인해, 보호가 필요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잠재력은 해동밀교 안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묘사되며, 특히 술법과 관련해선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그 능력을 어설프게 사용하며 일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는 준후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상실감이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교주의 폭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준후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인물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토록 밝았던 준후는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던 강력한 술법을 폭발적으로 각성해낸다. 하지만 막강한 힘을 쏟아낸다고 해서, 잃어버린 이를 되찾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상실감은 준후에게 ‘내가 가진 능력이 때로는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결과적으로 준후는 가장 어린 존재이면서도, 누구보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된다. 이는 단순히 슬프게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캐릭터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암시하는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준후가 보여주는 철없던 표정이,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는 비장함으로 물드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준후의 상실감은 아이 같은 순수함마저 침식해버리는 폭력적인 감정이지만, 동시에 그가 ‘다시는 소중한 이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결심으로 이어질 토대가 된다.
이게 바로 성공적인 영화화
<퇴마록> 애니메이션은 ‘정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짧은 에피소드 안에 밀도 있게 담아낸다. 퇴마사라는 설정은 과장된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각 인물이 지닌 상실감과 트라우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고뇌를 반영한다. 박신부, 현암, 준후가 힘을 합쳐 교주의 폭주에 맞서 싸우는 과정은 곧, 이들이 스스로를 추스르고 더 큰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정의의 구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극복하려고 하는 악은 단순히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힘에 도취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사회적·도덕적 시사점을 던진다.
그렇기에 이번 애니메이션판 <퇴마록>은 원작 소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새로운 시청자에게도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들이 늘 그렇듯,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프로젝트지만, 이번 결과물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퇴마록> 영화다’라고 평가해도 좋을 만큼 만족스럽다. 특히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화려한 작화로 되살아나, 각자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꽤나 장쾌하고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저 한 편의 에피소드로 끝나기보다는,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원작에서 다뤄졌던 수많은 사건과 캐릭터의 서사가 이번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도 어떻게 풀려날지 궁금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박신부, 현암, 준후 외에도 함께 맞설 승희의 활약, 그리고 더 거대한 악령들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직접 이 세계에 빠져드는 일이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오컬트 장르의 대표작 <퇴마록>을 추억하는 분들이라면, 그때의 감성과 긴장감을 다시금 되살려볼 좋은 기회다. 또 원작을 모르는 처음 관객이라도, 박신부, 현암, 준후가 보여주는 진솔하고 때론 처절한 사투를 통해 오컬트 판타지의 매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명작의 재탄생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품은 영웅들의 여정이 보고 싶다면, 이번 <퇴마록> 애니메이션을 적극 추천한다. 과연 이들이 어떤 식으로 상실감과 싸워나가며 앞으로 펼쳐질 시리즈를 이끌어나갈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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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공화국에 던져 잔인할 정도로 짓궂은 질문
7★/10★
사상 초유의 대지진이 일어나 서울의 모든 건물이 무너졌고, 딱 하나의 건물만 살아남았다. 바로 황궁 아파트.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황궁 아파트로 모여든다. 누군가는 그들을 자기 집에 들이고, 누군가는 자꾸만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불안을 느낀다. 아노미 상태가 이어지자 주민회의가 열린다. 몸을 던져 아파트 단지 내 화재를 막은 영탁이 대표로 선출되고 아파트는 빠르게 질서를 확립해나간다. 영탁의 지침은 간단하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 영탁은 기존의 모든 위계와 도덕, 질서가 무용해진 환경을 ‘주민 vs 외부인’의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구도로 빠르게 정리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재난 영화와 다른 길을 간다. 보통의 재난 영화는 재난 장면의 스펙터클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우리는 주인공들이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가던 사람들과 재난의 징조가 교차하는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여럿 떠올릴 수 있다. 이들 영화에서 거대한 재난은 영화의 중후반부, 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미 재난이 일어난 후에 시작된다. 이유가 있다. 대지진보다 그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기존 생활방식이 대지진보다 더 큰 재난이 아니냐고 묻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수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살길 희망한다. 그리고 개별 아파트는 거주민의 품격을 대변한다고 여겨진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바로 옆의 드림 팰리스 주민들에게 종종 무시당했다.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 주민이 자기네 단지 내부로 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 근거로 종종 집값을 들먹였다. 아파트의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더 비싼 아파트에 사는 자신들이 황궁 아파트 주민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난은 드림 팰리스와 황궁 아파트의 지위를 뒤바꿨다. 떵떵거리던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에게 제발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읍소한다. 그러나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지금껏 그들이 받아온 모욕을 생각한다면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그저 재난 이전에 자신들이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줬을 뿐이니까.
물론 위계를 나누는 선은 두 아파트 사이에만 있지 않다. 자가, 전세, 월세, 대출 여부 등의 기준은 황궁 아파트 내부에서도 위계를 만든다. 그러나 대지진 후 황궁 아파트 주민회의 참가자들은 ‘너그럽게’ 모든 형태의 거주자를 주민으로 인정해준다. 그러나 여기까지. 그들의 온정은 더 넓게 확장되지 않는다. 재난 이후 아파트라는 특권은 오직 황궁 아파트 주민에게만 허락된다.
덥수룩한 머리에 별다른 존재감도 없던 영탁은 이 모든 과정을 능숙하게 처리해 재난 이전이라면 그가 결코 갖지 못했을 명예를 얻는다. 완장을 찬 영탁은 그 누구보다도 주민을 지키는 데 열심이다. 그는 드림 팰리스 주민들이 그러했듯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쌓고 경계를 강화한다.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식량을 구하러 바깥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주민이 아니면서도 몰래 아파트에 숨어들고, 위험 끝에 얻은 과실을 무상 취식하는 자들이 있다. 영탁과 그를 따르는 대다수의 주민들은 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존재들은 색출, 퇴출되어야 한다. 황궁 아파트 주민이라도 바퀴벌레를 돕는 자들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바퀴벌레 색출은 나치의 유대인 색출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나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이미 끝났고, 인류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영탁/주민/바퀴벌레에게서 히틀러/나치/유대인(쥐)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히틀러와 나치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영탁과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아파트를 사수하려 했듯이 말이다. 국가주의적 욕망이 아파트를 매개한 자본주의적 생존 욕망으로 변화한 것 말고는 둘 사이에 별다른 차이는 없다. 한국 현대사의 ‘빨갱이’ 색출 메커니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대와 맥락을 조금씩 바꾸면 황궁 아파트의 ‘바퀴벌레 색출’과 닮은 폭력의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때문에 문제는 영화를 보는 누구도 영탁과 황궁 아파트 주민들을 쉽게 손가락질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간주하는 시대의 욕망이 폭력의 정당성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 혹은 외피를 바꿔 등장한 폭력의 체제에 손쉽게 속아 넘어갈 만큼 피상적으로만 역사를 배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대지진보다 무서운 재난은 이미 집값과 아파트의 격을 따지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단지 한 번에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대신 조금씩 우리를 좀먹으며 서서히 사회의 밑동을 갉아내는 중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재난 영화와 전개가 다르다는 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재미’에 관한 통상적 기준을 적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이병헌이 있다. 매번 다른 결의 독보적 연기를 선보이는 그는 이번에도 존경과 미움을 한몸에 받는 영탁이라는 인물을 탁월하게 연기해내며 서슬 퍼런 존재감을 뽐낸다.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리는 몇몇 장면이 이를 대변한다. 재난 영화의 문법 대신, 영탁이 변화와 그의 비밀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충분할 것이다. 평범한 공무원이었으나 서서히 영탁에게 물들어가는 민성과 영탁의 대척점에서 공동체를 대변하는 명화를 연기한 박서준, 박보영의 연기도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영탁의 든든한 조력자인 부녀회장을 연기한 김선영이 극에 선사하는 현실감도 몰입에 큰 역할을 한다.
장르의 관습을 비켜 간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무엇보다 ‘너라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잔인할 정도로 짓궂은 영화의 질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잠깐이라도 멈춰 설 계기가 필요한 우리에게 도착한 시의적절한 재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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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증 남자와 관종 여자의 잘못된 만남?
관음과 관종. SNS 중독 시대를 살아가면서 두 단어가 지니는 부정적 무게감은 더 커지고 있다.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해 두 단어로 촉발된 범죄 등 SNS의 폐해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사회관계망에 의존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SNS는 시간 낭비다”라는 명언을 남긴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말은 이제 무용지물. 이를 반영하듯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SNS 중독 시대 속 병든 관음증 남자와 관종 여자의 잘못된 만남(?)을 그리고 있다. 과연 이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직업은 공인중개사 취미는 남의 일상 훔쳐보기. 심각한 관음증에 빠진 구정태(변요한)는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부동산 매물을 맡긴 이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사소한 물건을 가져오기까지 한다. 심지어 외딴 창고에 그 물건을 전시해 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레이더망에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가 걸려든다.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며, 샐러드 이미지를 SNS에 올리는 소라의 모습을 본 정태는 반은 호기심, 반은 팬심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런 노력(?)에 하늘도 감동한 걸까? 집을 내놓기 위해 구정태의 공인중개사를 찾은 한소라는 고맙게도 그에게 키를 맡긴다. 더 활발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구정태. 하지만 여느 날처럼 소라의 집에 몰래 들어간 그는 흉기에 찔린 채 누워있는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관음과 관종이 만연한 SNS 중독 시대의 병든 남과 여. 이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 <그녀는 죽었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 더 나아가 시선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강력해지는 권력의 폐해를 미스터리 장르로 보여준다. 정태가 소라의 실제 모습을 보기 위해 몰래 따라다니거나,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하는 등의 이상한 고군분투를 하는 것처럼, 관객 또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에 ‘좋아요’를 누르며 동참한다. 특히 소라의 시신을 본 이후 정태를 향한 협박과 이름 모를 범인의 출현 등 과연 진범은 누구인지 영화는 이 미스터리를 계속 지켜보게 한다.
시선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큼, 영화는 정태의 시선만이 아닌 소라의 시선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퍼즐은 소라의 이야기가 보인 후에 맞춰진다.
정상인이라 보기 힘든(정작 극 중 본인들은 정상이라 생각하는) 두 주인공은 각각 전, 후반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재미있는 건 각자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변론이 점점 궤변처럼 느껴지고, 자기합리화의 최대치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SNS 게시물 내 작위적 연출과 멋스러운 필터로 보이지 않던 오리저널 이미지가 명확히 보이고, 자칫 죄의 무게가 한 쪽으로 치우쳐지는 것을 미연의 방지한다. 여기에 감독은 오영주 형사(이엘)를 통해 윤리와 법에 입각한 시선을 관개에게 부여하며, 최대한 두 캐릭터를 미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다만, 장르에 입각한 연출이 강하다 보니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활용도와 추리 과정에 대한 디테일은 아쉬움을 남긴다. SNS의 부정적 측면에 집중해 익명성에 기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려고 했다는 감독의 의도에 맞춰 두 주인공이 전사는 깊이 있게 그려지진 않는다. 이는 전사로 인해 이들을 행위 자체가 용인되는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연출이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캐릭터를 표면적으로만 보게 되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병적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정태 보단 소라가 불우한 가정사 등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또한 빈약해 보인다.
다행히 이 단점은 변요한, 신혜선의 연기가 채운다.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급변하는 상황에 맞게 두 얼굴의 모습을 연기로 잘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변요한은 관음증으로 너무나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다 그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소라는 소셜미디어와 현실의 모습, 결이 다른 내외면의 모습을 빠르고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 자체가 소셜미디어 세상 속 사람들의 표상까지는 아니지만 어두운 단면을 잘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다.
관음을 소재로 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이 개봉한 지 70년이 흘렀지만, <그녀가 죽었다>가 개봉하는 걸 보면,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외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관음의 포로인 셈이다. 영화 자체가 남의 삶을 보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보는 것은 물론, 소셜미디어에 이 영화를 보고 단평을 올리는 이들은 아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관음 자체가 문제라기 보단 그 지나친 행위 자체와 도덕과 윤리의 기준선을 모호하게 하는 자기 합리화가 문제다. 인간이라면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 기준선을 잘 지켜야 한다. <그녀가 죽었다>의 마지막 장면의 두 주인공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사진제공: 콘텐츠 지오
평점: 3.0 / 5.0
한줄평: SNS 중독 시대가 낳은 병든 이들의 웃지 못할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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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포스터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페셜 포스터 ⓒ 네이버 영화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고민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박강아름과 정성만은 타이머를 맞춰두고 사진을 찍는다. "보리야 이리 와"라며 들뜬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부르는 아름의 모습은 달달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결혼은 아름의 표정처럼 달지 않았다. 가끔은 삼키기 힘들어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아름과 성만은 진보 정당 활동을 하다 만난 사이다. 당시 아름은 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하며 영화감독의 길을 밟고 있었고 성만은 정당 활동가이자 식당 종업원이었다. 남는 시간 글을 쓰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했고 결혼했으며 프랑스에서 예술을 배우고 싶다는 아내 박강아름에 의해 프랑스로 떠났다. 아름은 성만에게 "나는 영화를 공부하고 당신은 요리를 공부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성만은 아름을 만나기 전까지 대한민국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름과 달리 성만은 프랑스로 날아가서 이룰 꿈이라는 게 애당초 없었던 것. 타의로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으로 간 개구리는 마치 소중한 서식지를 잃어버린 존재처럼 시들어간다. 박강아름은 그런 성만이 신경 쓰이지만 출산과 학교 생활로 지쳐 본인 몸을 돌보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경제와 행정 담당 아내 박강아름과 집안일과 육아 담당 정성만의 현실적인 결ㅁ혼 생활을 담아낸다.
집밥으로 만나는 집 밖 사람들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아름은 우울증에 걸린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요리사였던 성만의 특기를 살려 주말에만 한국식 집밥을 파는 식당을 열게 된 것. 부부의 식탁은 어느새 유학생이나 교포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공유 식탁이 되었다. 성만의 우울한 마음은 집밥으로 만난 집밖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듯했지만 그들의 경제 사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만은 좋은 재료로 건강한 요리를 내놓는 걸 좋아했고 집안의 경제를 맡고 있는 가장 박강아름은 그 모습이 아니꼬왔기 때문. 첫 번째 '외길식당' 프로젝트는 오래 가지 못해 마무리됐다.
박강아름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고립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찍자고 제안했다. 영화의 초중반을 촬영하고 나서 성별의 역할이 바뀐 가부장제를 인식했다. 사실 매일 서포트를 받고 있는데도 영상 속에서 제가 '오늘은 나 서포트해줘야 돼'라고 말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덧칠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 정도 본인의 시각이 가미됐을 카메라. 그 카메라가 자신의 가부장성을 담은 것이다.
아름은 가부장성을 인식한 이후에도 쉽게 본인의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경제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현재의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사회적 성 역할이라는 게 바뀔 수 있음을 두 부부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주부우울증에 걸린 성만은 토마토 대신 체리토마토를 사왔다고 타박하는 아름의 말에 하루 동안 가사 파업에 들어간다. 흥청망청 돈을 쓰겠다고 다짐한 그는 겨우 3유로 커피 프라페를 마시며 마음을 달랜다.
또한 외관상 특별해보이는 그들마저 여느 부부처럼 끝없이 갈등한다. 아름은 결국 '외길식당'이 아니라 본인들의 결혼에 대해, 더 나아가 결혼의 의의에 대해 주제를 확장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외길식당>이 아니라 <박강아름 결혼하다>인 것. 박강아름 시각에서 장면들이 보이니 <박강아름과 정성만, 결혼하다>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정성만과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더욱 어렵다.
결혼, 그 막막함에 대하여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비혼주의자였던 성만과 달리 아름은 원래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임신 초기 아름은 나흘 연속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속을 게워냈다. 막달에는 한 달 내내 변비에 시달려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고통은 계속됐다. 그는 용변을 볼 때 성기가 흘러내릴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출산 후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몰라 내내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다고 했다. 출산 직후 아기를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에 대한 책은 많았지만 출산 직후 여성을 위한 책은 없었다고 회의를 표했다. 꿈에서라도 가고 싶었던 암스테르담 영화제에 본인의 작품이 초정작으로 선정됐지만 그는 결국 가지 못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그 시각 아름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혼에 접근하기도 한 아름.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름 대신 육아를 책임진 성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다니던 어학원까지 잠시 휴학하고 아이를 돌봤다. 아름도 성만도 딸 보리를 사랑하지만 결혼과 마찬가지로 출산 또한 그들에게 유쾌하고 행복하기만 한 경험은 아닌 것이다.
지켜야 하는 생명부터 생활비, 챙겨야 할 서류까지 늘어났다. 아름은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고민한다. 두 번째 외길식당을 열고 다양한 커플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결혼과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의 차이는 뭘까. 본인의 꿈 대신 사랑만 선택해 해외로 이주한, 소위 '결혼망명'도 행복할 수 있을까. 대화가 오갈수록 질문들은 더 많아진다. 아름은 다시 연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실패라고 표현했다. 목이 붓도록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지만 궁금증은 당최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보며 고민해보는 것이다. 결혼 그 막막함에 대하여.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쉬이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
이 영화의 끝부분, 아름-성만 부부와 반려견 슈슈, 딸 보리는 덩케르크 해변을 찾는다. 아름이 본인의 카메라에 그 바다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파도는 없다. 파도는 무겁게 오간다. 유모차는 모래 위에서 매끄럽게 밀리지도 않는다. 성만은 몸이 아프다며 투덜댄다. 아름은 그래도 이왕 온 것이니 비를 맞으면서라도 바다 가까이에 가보자고 우긴다. 결국 그들은 보리가 탄 검은색 유모차를 함께 들고 기어이 모래를 밟는다. 사진을 찍고 돌아온다.
영화 출연은 물론 촬영부터 편집까지 담당한 박강아름. 그가 이 부분을 영화의 엔딩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 터다. 그는 쉬이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을 결혼이지 않을까 짐작했을 것이다. 부부가 들어야 되는 건 유모차가 아닐 수도 있다. 생활비일 수도, 챙겨야 할 서류일 수도, 서로의 꿈과 인생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건 보기보다 무겁고 손이 저린 일이다. 한 명이 독박 운반하는 것보다야 덜하겠지만 두 명이라도 쉽지 않은 행위인 것. 심지어 그게 진정 의미있는 일인가는 더욱 어려운 질문이다. 상황에 따라 몇 번이고 대답이 달라질 터다.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아름-성만 부부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개인의 일기이자 결혼에 대한 묵직한 물음이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박강아름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내가 결혼하고 해외로 떠나자 해도 나 잡을 거야?", "결혼은 확실히 연애랑은 다른 것 같아", "팍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의 재미와 만듦새에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그래도 박강아름은 성공했다. 그들도 박강아름처럼 결혼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더 고민하기 시작했으니까.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오늘(19일) 정식 개봉한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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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그 엉망 진창에 대하여.
이 글은 영화 [루이스 웨인;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 봄의 다른 이름이자 숨겨진 본심처럼 느껴지는 단어다.
오래 기다려온 아름다움으로 눈앞이 아찔해지는 경험은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마음과도 같아서, 짧아서 언제나 아쉬운 마음도 더해져 계절 내내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는 마음이 솜털처럼 푹신해지는 봄과 사랑을 둘 다 담은 영화이다. 또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필모에도 봄바람이 부는 것 같은 영화이니 터지는 꽃망울처럼 거부할 수 없는 영화가 되기를 빌어본다.
돋보기를 프리즘으로 바꾸기;베니가 사랑에 빠지면 일어나는 일.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에서 제2의 주인공이라 불릴만한 요소는 당연히 고양이다. 무려 산책하는 고양이 피터의 귀여움을 앞세웠으며 루이스 웨인은 익숙지 않았던 고양이 그림으로 자신의 유명세를 날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영화에는 고양이만큼 폭력적으로(?) 존재감을 어필하지는 않지만 분명 다른 주인공이 하나 더 있다. 사랑을 속삭이는 두 연인의 대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대상인 "빛"이다.
루이스의 삶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단 한 곳, 삽화에 집중한 돋보기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성공적으로 종이의 한 부분을 태울 수 있었지만 다른 모든 것들에 있어서는 그 어떤 요령도 터득하지 못한 채 살았다. 삽화를 그리는 행위 외의 모든 것은 그를 그저 괴롭히는 것들에 불과했고,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을 빼앗길수록 그림에 집중하려는 마음은 더 강해졌다.
루이스의 삶은 에밀리를 만나면서부터 달라졌다.
그녀는 프리즘과 같은 삶을 살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총천연색 무지개로 바꿀 줄 알았다. 덕분에 루이스는 난생처음 보는 색의 축제 속에 삶을 내던질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집중할 줄 알았고, 서로에게 받은 마음을 여러 색으로 한껏 풀어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 행복을 만들어가는 장면들에 유독 빛이 아름답게 촬영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비록 영화이지만 화면 가득한 빛들을 보면 움츠러들었던 마음도 보송하게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랑.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던 것에 대해서.;하나의 사랑이 아닌 다양한 사랑.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타이틀에 내걸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단어에서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연인 사이에서 존재하는 감정"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천륜이라는 단어에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애증에 가까운 사랑. 루이스가 직업에 대해 가진 사랑, 그리고 루이스의 작품으로 인해 많은 기쁨을 얻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함께 보여준다.
에밀리가 루이스에게 삶을 보는 태도를 바꿔준 것처럼.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루이스는 조금씩 자신이 알고 있는 형태의 사랑이 아닌 다른 모습의 사랑들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책임감으로 착각했던 가족의 사랑과 인정을 조금씩 쌓아가고, 직업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덕에 초라한 말로를 맞이할 뻔했던 한 예술가의 인생은 그나마 정상 궤도 가까이 올라오게 된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영화에 등장할수록, 평생을 그 어떤 무언가에 눌려 살았던 루이스의 모습이 더욱 딱하게 느껴진다. 만약 에밀리마저 없었더라면, 이 모든 형태의 사랑은 그에게 평생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었을테고. 이로 인해 루이스는 에밀리를 만나기 전의 그 어벙하고 멍해 보이는 상태로 오늘도 길을 걸어가기 바빴을 것이다.
루이스는 눈치챘을까.
에밀리와의 달콤했던 시간 이외의 모든 순간들도 자신을 향한, 혹은 자신이 원한 사랑들의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던 삶이 존재했음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배우가 된 그 남자.;이젠 그냥 멋있음.
사진출처: 다음 영화
유튜버 [거의 없다]님의 최신 영상에 의하면.
배우는 크게 감정을 안으로 소화시키는데 능한 사람과 터뜨리는 것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영화 [신세계]가 흥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전자에 속하는 배우 이정재와 후자의 황정민이 만났기 때문이라고.
가끔 베니(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애칭)를 보고 있으면 이 희한한 배우는 대체 어디에 속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데뷔작에 가까운 상업 드라마가 국제적 대박을 치고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고. 하는 작품마다 자신의 위치를 완벽하게 찾아들어가 어떤 오점도 남기지 않는 연기를 하는 이 사람. 호통을 쳐도. 한숨을 내쉬어도. 이 배우 외의 다른 사람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 물론 아쉬울 때도 있었다.
예전에도 리뷰한 것처럼 상실에 젖은 천재의 역할에 너무 자주 거론되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연기하는 모든 인물들은 다 다르게 느껴진다. 그들은 모두 각각 다른 슬픔과 고뇌를 가지고 있고 이 모든 역할들은 베니의 노력으로 우리에게 항상 마음의 이곳저곳을 울리곤 한다.
그가 어떤 곳에 속하는 배우이건 상관없이.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인해 우리에게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을 마음으로나마 전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베니는 루이스 웨인의 일대기를 연기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 한 편에서 보여주는 연기의 스펙트럼 만으로도 그가 영화사(史)에 해야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배우가 아닌 인간 베네딕트 컴버배치만큼은 사랑이 무엇인지 충분히 느끼고 마음 가득 머금기만을 바랄 뿐이다.
마치면서
가끔 예고편이 영화를 좀 더 (효과적으로) 망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예고편이 보여주는 모습이 인물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드라마틱 했기에 루이스와 에밀리의 모습을 영화 전면에 내세운 것이겠지만. 이 영화를 두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로 착각하면 매우 실망하기 쉽다. 또한 고양이가 엄청 나올 것이라 예상하면 더욱 재미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 웨인의 삶과 그 안에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에 집중한다면. 단지 달콤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지만 조금 더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 이제 정말 대배우가 되어버린 베네딕트의 연기도 가슴을 울리기 충분하다. 흔치 않은 그의 멜로 눈깔(?)을 감상할 수 있었기에 더 귀하기도 한 영화랄까.
카카오뷰도 있어요+_+
[이 글의 TMI]
1. 이제 어느 정도 일정이 정리되었다.
2. 응원해 주신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백수 처음 해보는데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음다.
4. 코로나 후유증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하다.
5. 그래도 그릭요거트 퍼먹으면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루이스웨인사랑을그린고양이화가 #베네딕트컴버배치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내일은파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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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신이 추는 칼춤
강아지 한 마리 죽음으로 발생한 나비효과는 과연 어디까지 퍼지는가. <존 윅> 시리즈는 액션 장르의 고점을 갱신하는 액션 영화라고 치부한다. 후속 편이 나올수록 화려하고, 고도화되는 액션의 질은 고혹하기까지 하다. 검은 방탄 슈트를 입으며 적들을 피로 물들게 하는 모습이 마치 피어오른 붉은 꽃이 그려진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하게 한다. 바바야가, 존 윅, 조니, 조나단, 부기맨 등 별명도 참으로 많은 사신(死神) 존 윅이 추는 라스트댄스 <존윅 4>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존 윅 4> 스틸컷
<존 윅 4>라는 제목이 다가오는 느낌은 <존 윅> 시리즈를 끝맺는 수미상관을 보여준다. 1편 제목이 <존 윅>이었던 반면, 후속작 2,3편은 각각 '리로드', '파라벨룸'이라는 부제가 있었다. 킬러들의 세계관에서 최고 회의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아무도 얻지 못할 자유를 통해 '헬렌'의 다정한 남편이 되고자 한다. <존 윅 4>는 <존 윅> 시리즈의 끝맺음이다. 애초에 영화가 끝맺음을 짓기 위해 흘러간다. 이들도 아무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이 사람을 죽이고, 최고 회의 간부를 몇 차례 죽인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도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 속에서 존 윅(키아누 리브스)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 장르를 있는 힘껏 선사한다.
초반에 등장하는 사막에서 말을 타고 추격하는 장면과 마지막 플롯에서 케인(견자단)과 권총 한 자루로 자웅을 겨루는 일대일 장면은 웨스턴 장르에 자주 등장하는 액션을 떠오르게 만드는 장면이다. 그리고 <존 윅:파라벨룸>에서도 등장했던 동양 무술을 이번 영화에도 선보이는데, 오사카 콘티넨탈 호텔이라는 장소에 맞는 일본식 검술도 등장하여 동양 무술 액션에 폭을 넓혔다. 심지어, 이번 등장인물에 동양 무술영화의 대가인 '견자단'까지 등장하니 깊이까지 더한다. 배우 견자단이 맡고 있는 '케인'은 존 윅(키아누 리브스)과 비슷하듯 비슷하지 않다. 케인(견자단)은 장님인데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적들을 소탕한다. 칼과 총, 주먹으로 해결하는 케인이지만, 존 윅은 이번 편에도 다양한 무기를 사용한다. 특히, 쌍절곤을 활용한 액션이 기억이 남는데, 이소룡이 떠오르게 만드는 장면이자 동양 무술의 폭을 넓혔다는 취지에 어울리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존 윅> 시리즈는 장소에서 가져올 수 있는 특징을 액션으로 활용할 줄 안다.
그러나 <존 윅:리로드>부터 장소의 특징뿐만 아니라 화려한 색감과 조명이 가미된 장소에서 선보이는 액션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감각적인 색채와 조명을 배경으로 벌이는 고도화된 액션 장면들은 오직 <존 윅>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미장센이 돼버렸다. 그러나 감각적인 색채와 조명을 배경으로 벌이는 액션이 재미는 더하지만, 자칫 관객 눈을 더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존 윅 4>는 로테이션 액션 촬영에 더 비중을 중요시했다. 후반부 프랑스 시내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은 또 한 번 신선함을 선보인다. 프랑스 이름 모를 시내 내부와 개선문, 사크레쾨르 대성당과 성당까지 가기 위한 222 계단 등에서 펼치는 액션은 장소 특징을 살린 것과 동시에 자연광이 비치는 풍경의 미학까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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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와 상처 속 인물들의 버라이어티한 티키타카
개봉 전 시사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은 예상할 수 없다. 오늘 새롭게 만나는 사람과 친한 사람이 될지, 사랑하는 사람이 될지, 아주 먼 관계가 될지 알 수 없다. 그저 서로 대화를 하고 같이 무언가를 해 나가면서 조금씩 그 관계를 알게 될 뿐이다. 그러다 어떤 사람과는 가까워짐을 멈추고 심지어는 밀어내는 경우도 생긴다. 어쩌면 그 일련의 과정은 우리 내면에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생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한참이 지나고 보면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몇 안 남는다. 그 관계의 끝을 보기 위해 그렇게 무수한 소통을 해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무수한 소통과 관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좀 더 깊은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예측할 수 없듯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시기도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싹튼 사랑의 감정은 상대방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게 하고 어떤 경우에는 상처를 받게 하게도 한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는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다.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고 밀어내려 한다면 그것에서 오는 상처는 온전히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의 몫이다. 그렇다고 그 관계를 밀어내는 사람의 마음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부담감과 미안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잘 맞으면 가장 좋겠지만 여러 관계를 만나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를 꽤 많이 만나게 된다. 그래서 각자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반대로 내가 상처를 받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상처들을 어떤 식으로 보듬을 수 있는지도 조금씩 알게 된다.
관계와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 <장르만 로맨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작가인 주인공 현(류승룡)과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현은 유명한 작가로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직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혼 후 재혼한 상태인 그는 전처 미애(오나라), 아들 성경(성유빈), 출판사 사장 순모(김희원) 그리고 새롭게 그의 앞에 나타난 제자 유진(무진성) 사이에서 정리되지 않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관계들 속에서 방황한다. 영화 초반 그와 그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관계는 깨지기 직전으로 보인다. 가장 친한 친구인 순모는 현을 아끼는 마음도 있지만 사장으로서 그를 계속 압박하고 현의 전처인 미애와 아들 성경은 현현의 마음을 쉽게 이해해주지 않는다. 현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들의 야속한 마음을 술을 마시며 달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그를 밀어내지 않는 인물은 유진이다. 유진은 현의 앞에 어느 순간 나타나 자신이 쓴 원고를 전달하고 친절하게 다가오는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사실 영화 초반에는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예상하기 어렵다.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있어 현이라는 인물이 그 꼬인 실타래를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오는 그의 유쾌한 모습은 보는 사람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 간의 벌어지는 대화와 상황들은 큰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가만히 현을 지켜보다 보면 그가 왜 그렇게 가벼운 모습이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 사이에서 그가 있는 위치를 확인해 나가면서 그 궁금증은 점점 짙어진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그의 뒷모습은 꽤 무거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선뜻 글을 쓰기 위한 타이핑을 해나가지 못한다.
유진이 등장하고 그와 현이 같이 글 쓰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영화는 이 둘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유진은 현이 쓴 습작이 너무 마음에 들어 협업을 제안했지만 왠지 그가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진이 가진 글을 쓰는 능력과 감성은 현이 글을 쓰는데 꽤 많은 도움이 된다. 현은 같이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유진을 대하는데, 그 태도에는 이미 유명한 작가로서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봐 조심하는 태도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조심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갈 상처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상처 받는 인물, 상처 주는 인물
사실 영화 안에서 마음의 상처를 표현하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현의 아들인 성경이다. 여자 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울음을 터뜨리는 그는, 영화 중반부에 만나는 이웃집 여자 정원(이유영)을 만나면서 작은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일탈의 과정에서도 무언가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낀다. 연기자 지망생인 조금 엉뚱 발랄한 정원은 연기 연습을 하며 남는 시간에 성경과 시간을 보내지만 그것이 어떤 마음이었지는 알 수 없다. 현과 유진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풀려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성경과 정원의 관계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다.
유진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의도하지 않은 색깔로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유명 작가인 현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서 글을 인정받으려고 시도하는 그는 영화 내내 현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간다. 글쓰기라는 과정 속에서 완전히 그를 믿지 못하는 현의 옆에서 그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그것은 유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내면의 감정이고 그것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근원적인 감정이 된다. 그 모든 힘은 바로 두 사람이 대화하고 때론 다투며 새롭게 긍정적인 관계에서 나온다.
극 중 대부분의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인정받기 원하고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길 원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마치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관계에서 겪는 것처럼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준다. 누군가와의 관계는 그렇게 수없이 주고받는 상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상처를 받았을 때는 현의 아들 성경처럼 그저 자신의 감정을 울음과 고함으로 온전히 외부로 표출하지만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여러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게 될 것이다. 상처에 좀 더 담담해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자신의 상처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주인공 현이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주인공 현이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 그가 각 인물들과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어떤 마음으로 만나는지를 화면으로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의 현재 얼굴을 계속 보다 보면 그가 과거에 겪었을 상처들이 조금씩 보인다. 그가 가진 우스꽝스러운 모습 뒤에 감춘 상처들은 자신에게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람과의 관계를 밀어낼 때, 좀 더 조심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가 가진 상처와 부담의 감정은 새로운 사람인 유진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만든다. 그들 각자가 가진 생각과 감정이 합쳐져 하나의 책으로 완성된 것처럼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들에는 자연스럽게 상처와 부담의 감정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 감정들이 모두 함께 겪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관계가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현과 유진은 각자의 위치와 입장에 맞게 적당히 거리를 두며 좋은 관계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둘의 책이 과연 좋은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하게 된다.
불편함이 없는 유쾌하고 따뜻한 영화
현의 전처인 미애도 자신이 가진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전남편인 현에게 분노와 짜증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그건 공통적으로 신경 써야 할 아들 성경의 문제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대체적으로 쾌활하고 밝아 보이는 미애는 순모가 가진 순수함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면서 그도 다음 가야 할 곳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한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조은지 배우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상업영화로서는 첫 도전이기도 하다. 조은지 감독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가진 감정을 세세히 표현하는데 특히나 관계를 시작 한려한 인물들의 감정을 잘 담아냈다. 무엇보다 주인공 현이 가진 억눌려있는 듯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면서 유머러스하게 그것을 조금씩 보여줘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그런 측면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굉장히 쉽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상하지 못하고 웃으며 지켜보다가 마지막에는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캐릭터의 감정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영화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현을 맡은 류승룡 배우는 오랜만에 그에게 아주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났다. 그가 가진 유머러스한 모습뿐만 아니라 진중한 모습을 같이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의 마음이 더욱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또한 유진 역을 맡은 무진성 배우는 이번이 첫 영화 데뷔작인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적절히 절제할 줄 아는 20대 청춘의 삶을 안정적인 연기를 통해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 오나라 배우, 김희원 배우, 이유영 배우 그리고 성유빈 배우까지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김희원 배우 같은 경우,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소심하고 사랑에 상처 받는 캐릭터도 그에게 잘 어울린다는 것을 그의 눈물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장르는 로맨스>는 불편함이 없는 영화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해 갖가지 소동이 벌어지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연출되어 있어 편안하게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일들을 즐길 수 있다. 코믹한 장면들도 간간히 포함되어 있어서 키득거리며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이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블럭버스터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는 가운데 오랜만에 한국에서 <장르는 로맨스> 같이 따뜻하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영화가 개봉하게 되었다. 즐거움과 따뜻함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극장에서의 관람을 추천한다.
이 리뷰는 영화 <장르만 로맨스> 마케팅 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작성되었으며, 이 내용은 주관적인 개인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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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1. 24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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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3 할리 키너
05:06 모건 스타크
06:28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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