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_Rec2025-02-23 23:46:45
하지만 기계가 못 하는 일도 있지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리뷰
기술 혁명의 양면성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수많은 발명품이 만들어졌고, 혁신을 이루어냈다.
휴대폰으로 알람을 맞추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일상 속 사소한 것들이 편리해졌다.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속 월레스도 덕분에 매일 아침 루틴을 속전속결로 해치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단순노동을 대신해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무조건적으로 편리함만을 생각하지 말고 적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을 위협하는 존재도, 그들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존재도 모두 ‘노봇’이었기 때문이다.
'노봇'의 흑화
월레스의 발명품 ‘노봇’의 흑화는 기술 발전의 양면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처음에는 월레스의 친구 그로밋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노봇은 뛰어난 실행력으로 순식간에 가지치기 임무를 완수하고 잔디를 깎으며 정원을 ‘깨끗이’ 손질한다. 노봇을 창조한 월레스는 매우 기뻐하고 마을 사람들 역시 그의 기술력에 감탄하며 노봇을 대여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노봇을 이용한 보수 서비스 사업을 통해 밀린 청구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로밋은 노봇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유심히 지켜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밋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움직이는 노봇들의 허점을 처음부터 알아차린다. 단순히 울퉁불퉁 튀어나온 잔디와 잡초를 정형화된 방식으로 ‘정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노봇은 그로밋이 가꾸던 꽃과 나무의 의미와 소중함을 알 방도가 없기에 모조리 잘라버린다. 흑화되기 전의 노봇도 기술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노봇을 무조건적으로 편애하는 월레스와 노봇 군단이 어떤 문제를 초래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노봇의 흑화를 가능케했던 요소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원격 조정하는 것을 넘어서 성격 세팅이 가능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에 연동하여 해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악용하는 것은 바로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빌런 페더스 맥그로이다. 그는 인터넷에 연결된 노봇을 '사악함'으로 세팅하고 월레스 집에 있는 블루 다이아몬드를 훔칠 계획을 펼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로봇 혹은 AI 서비스를 왜곡하여 설정하거나 해킹하는 등 기술을 악용하는 것은 현실에서도 흔히 들려오는 이야기이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기술의 (불)편함
‘사악함’ 모드로 설정된 노봇들이 페더스 맥그로의 명령에 따라 블루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과정이 영화의 ‘위기’ 단계의 주를 이루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장면을 고르라면 노봇들이 월레스가 그들의 계략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잠에 들게 하는 장면을 꼽겠다.
월레스 역시 이 부분에서는 노봇들에게 “이게 다 뭐야?” 라며 되묻고 “천천히” 하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내 노봇들의 수면 유도 ‘서비스’에 정신을 빼앗긴다. 월레스가 원하지도 않았던 마사지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음냐음냐 코코아’를 마시게 하는 노봇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필요성을 느껴서 기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우리 대신 자체적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필요하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일상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린 이미 그렇게 시스템화된 삶에 적응해 있는지도 모른다.
대체 불가한 무언가
그러나 영화는 노봇들을 악하게만 그려내지 않고, 결점과 비례하는 장점도 있음을 보여준다. 디폴트 값인 ‘착함’ 모드의 노봇들은 월레스와 그로밋을 절체절명의 순간 구해낸다. 영화의 마지막 월레스도 노봇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 개조하여 정원일을 돕는 방법을 택한다.
발명품을 만드는데에만 몰두해 있던 월레스가 기계 중심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아날로그함을 받아들이면서, 소소하지만 소중한 ‘인간적인’ 따뜻함을 다시금 일깨운다. 쓰담쓰담 기계가 아닌 자신의 손으로 그로밋을 쓰다듬어주는 장면으로 우리는 기술을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이들이 대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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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무겁고 교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메시지가 호러와 액션 스릴러의 색채가 더해져 마냥 잔잔하지 않고 몰입감 있게 전달된다. 진지해지다가도 페더스 맥그로의 허접하면서도 귀여운 변장술과 계략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다. 특히 노봇들이 지하실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드는 장면과 페더스 맥그로와 그로밋의 추격전을 그려내는 방식이 인상 깊다.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가 전하는 아날로그의 미학과 기술 발전에 대한 메시지가 더욱 와닿는 이유는 제작 과정에도 숨겨져 있다. 합성이나 AI와 같은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스톱모션 형식의 제작 방식을 고수하였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제작 방식을 유지함에는 아날로그의 매력을 지켜내고자 하는 바람이 깃들어있지 않았을까?
아날로그에 “느리고 불편한” 아니라 “섬세하고 정밀한”이라는 수식어가 더욱 강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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