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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2025-05-30 13:31:13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덮치는 것

적이 온다(2023, 요시다 다이하치)



#26회전주국제영화제

 

은퇴한 불문학 교수 기스케는 아내가 죽은 뒤 홀로 지내고 있다. 기스케는 X-day라 칭하며 저축한 돈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가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에 ‘적이 온다’라는 불길한 메시지가 나타난다.  

 

기스케는 꼼꼼하고 깔끔하다. 대단히 주부력이 있다기보다, 자신만의 확실한 루틴을 가지고 있다. 업에 있어서도, ‘강의비는 100만 원, 교통비는 별도’라는 철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X-day라 칭하며 저축한 돈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가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악취, 비누와 똥

기스케의 창고에는 가장 무난한 선물인 비누가 쌓여있다. 이 선물은 괜스레 기스케를 주눅 들게 한다. 옆집에 사는 노인은 반복적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젊은 여성에게 똥을 치우라며 소리친다. 젊은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자, 자신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냐며 버럭 한다. 옆집 노인은 막무가내로 젊은 세대를 탓하는 노인들의 초상이고, ‘냄새’를 상징한다. 노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악취. 며칠에 한 번 씻는 옆집 노인의 냄새라기보다, 노인이 되어 생리학적으로 나는 악취. 자신에게서도 냄새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에 들어와 비누로 벅벅 씻어댄다.

 

 

 

 

‘죽음’이 온다

냄새나는 난민이 북쪽에서 밀려온다는 불길한 스팸 메일이 나타난다. ‘적이 온다’ 여기서 ‘적’은 ‘죽음’이다. 사의 이미지인 흑백 필름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자신이 한발 물러서야 할 때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려 하지만, 사실 물러난다는 것은 기스케에게 큰 공포이다. 유언장을 세세하게 고치며 죽음에 대해 초연한 척 일관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죽음과 늙음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노인이 가질 수 있는 공포들을 전개한다. 주류에서 벗어나고 도태된다는 공포, 더 머물고 싶지만, 후대에게 밀려난다는 공포, 구시대적 사고에 머무른다는 공포, 악취가 난다는 일반화에 대한 공포, 생물학적으로 노쇠해져가는 공포. 추한 퇴장에 대한 공포 등 말이다. 이는, 우리 인간이 나이가 듦에 따라 모두 느낄 공포이다. 

 

 

 

성욕에 대한 죄책감

기스케의 꿈, 환상에서는 반복적으로 부인과 여제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괜스레 금기시되는 노인의 성욕에 대한 이미지가 등장한다. 여제자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고, 여제자가 자신을 유혹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부인의 환상을 본다. 기스케 내면의 죄책감이 들 때마다 부인이 등장한다. 부인의 환상은 먼저 떠나보낸 부인이 지켜보고 있다는 죄책감,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젊은 여성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의 총체이다.

 

 

 

기스케의 환상

젊은 편집장, 기스케, 부인, 여제자. 흔히 개꿈과 같이 연관 없는 남녀 넷이 모여 집에서 밥을 먹는다. 기스케는 자신의 반복되는 자신의 환상에 성찰하고 지쳐간다. 더 이상 추하게 죽고 싶지 않아서인지 기스케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기스케의 집에 적이 찾아온다. 죽음. 결국, 그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한다. 기저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기스케를 죽지 못하게 한다.

 

 

퇴장, 그리고 이어짐

기스케는 자신의 꼿꼿하고 존엄한 퇴장을 바란다. 기스케는 증조할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오셨다고 했다. 여름에서 봄까지 사계절이 지나고 기스케는 퇴장한다. 영화 종반부, 증조할아버지를 본 줄 알았지만, 사실 자신이 유언장에 남긴 조카인 것이 밝혀진다. 선대에서 기스케로 이어지듯, 기스케에서 후대로 이어지며 반복된다. 

 

 

작성자 . 고미

출처 . https://brunch.co.kr/@gomi2ya/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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