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2025-05-30 13:31:13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덮치는 것
적이 온다(2023, 요시다 다이하치)
#26회전주국제영화제
은퇴한 불문학 교수 기스케는 아내가 죽은 뒤 홀로 지내고 있다. 기스케는 X-day라 칭하며 저축한 돈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가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에 ‘적이 온다’라는 불길한 메시지가 나타난다.
기스케는 꼼꼼하고 깔끔하다. 대단히 주부력이 있다기보다, 자신만의 확실한 루틴을 가지고 있다. 업에 있어서도, ‘강의비는 100만 원, 교통비는 별도’라는 철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X-day라 칭하며 저축한 돈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가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악취, 비누와 똥
기스케의 창고에는 가장 무난한 선물인 비누가 쌓여있다. 이 선물은 괜스레 기스케를 주눅 들게 한다. 옆집에 사는 노인은 반복적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젊은 여성에게 똥을 치우라며 소리친다. 젊은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자, 자신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냐며 버럭 한다. 옆집 노인은 막무가내로 젊은 세대를 탓하는 노인들의 초상이고, ‘냄새’를 상징한다. 노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악취. 며칠에 한 번 씻는 옆집 노인의 냄새라기보다, 노인이 되어 생리학적으로 나는 악취. 자신에게서도 냄새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에 들어와 비누로 벅벅 씻어댄다.
‘죽음’이 온다
냄새나는 난민이 북쪽에서 밀려온다는 불길한 스팸 메일이 나타난다. ‘적이 온다’ 여기서 ‘적’은 ‘죽음’이다. 사의 이미지인 흑백 필름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자신이 한발 물러서야 할 때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려 하지만, 사실 물러난다는 것은 기스케에게 큰 공포이다. 유언장을 세세하게 고치며 죽음에 대해 초연한 척 일관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죽음과 늙음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노인이 가질 수 있는 공포들을 전개한다. 주류에서 벗어나고 도태된다는 공포, 더 머물고 싶지만, 후대에게 밀려난다는 공포, 구시대적 사고에 머무른다는 공포, 악취가 난다는 일반화에 대한 공포, 생물학적으로 노쇠해져가는 공포. 추한 퇴장에 대한 공포 등 말이다. 이는, 우리 인간이 나이가 듦에 따라 모두 느낄 공포이다.
성욕에 대한 죄책감
기스케의 꿈, 환상에서는 반복적으로 부인과 여제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괜스레 금기시되는 노인의 성욕에 대한 이미지가 등장한다. 여제자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고, 여제자가 자신을 유혹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부인의 환상을 본다. 기스케 내면의 죄책감이 들 때마다 부인이 등장한다. 부인의 환상은 먼저 떠나보낸 부인이 지켜보고 있다는 죄책감,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젊은 여성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의 총체이다.
기스케의 환상
젊은 편집장, 기스케, 부인, 여제자. 흔히 개꿈과 같이 연관 없는 남녀 넷이 모여 집에서 밥을 먹는다. 기스케는 자신의 반복되는 자신의 환상에 성찰하고 지쳐간다. 더 이상 추하게 죽고 싶지 않아서인지 기스케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기스케의 집에 적이 찾아온다. 죽음. 결국, 그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한다. 기저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기스케를 죽지 못하게 한다.
퇴장, 그리고 이어짐
기스케는 자신의 꼿꼿하고 존엄한 퇴장을 바란다. 기스케는 증조할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오셨다고 했다. 여름에서 봄까지 사계절이 지나고 기스케는 퇴장한다. 영화 종반부, 증조할아버지를 본 줄 알았지만, 사실 자신이 유언장에 남긴 조카인 것이 밝혀진다. 선대에서 기스케로 이어지듯, 기스케에서 후대로 이어지며 반복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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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를 초월하는 아름답고 슬픈 영화적 체험
- 햇볕에 피부가 타지 않도록 바르는 제품이 선크림이라면, 애프터썬(Aftersun)은 타버린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르는 제품을 말합니다. 햇빛 아래에 있을 때는 까맣게 모르다가 하룻밤 자고 나서야 따끔따끔 아파지는 살갗 위에 우리는 애프터썬을 바르죠.영화 <애프터썬>은 그 이름처럼 ‘애프터썬’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볼 때는 까맣게 모르다가 다 보고 나서야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오기 때문입니다. 곱씹을수록 아프고 저린 영화 <애프터썬>에 관한 감상을 나눕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1월 31일(화)에 진행된 <애프터썬>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애프터썬>은 2023년 2월 1일 국내 개봉했습니다.애프터썬Aftersun<애프터썬>은 30살 아빠 ‘캘럼’과 11살 딸 ‘소피’가 어느 여름날에 떠난 휴가지에서 촬영한 캠코더 영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캘럼’과 ‘소피’가 찍은 캠코더 영상은 때때로 어지러이 흔들리며 어느 한 곳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데요. 이 영화도 비슷합니다. 단 한순간도 의도적인 대사나 장면으로 주제를 명확히 짚어주지 않죠. 대신 아빠이자 청년인 ‘캘럼’과 딸이자 소녀인 ‘소피’, 그리고 그 여름날의 휴가를 오롯이 체험할 수 있도록, 지근거리에서 인물과 사건을 포착할 뿐입니다. 관객은 이러한 영화적 체험 안에서 직접 영화의 주제를 찾아 나서야만 하죠.저는 ‘소피’였다가 ‘캘럼’이기를 반복하며 영화를 보았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 가능성은 없는지 스리슬쩍 떠보는 ‘소피’였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소속감을 잃어버린 곳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캘럼’이었죠. 그러다 다시 어른스러운 척하면서도 실은 성숙해지고 싶은 어린 소녀 ‘소피’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는 새에 어른이 되어버린 미성숙한 청년 ‘캘럼’을 이해했습니다. <애프터썬>에는 이러한 체험의 순간들이 상영시간 내내 이슬비처럼 슬며시 내립니다. 작고 미세한 이슬방울은 알아차리기가 어렵듯이,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이런 순간들이 그저 흘러가버리죠. 관객은 영화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이슬비에 온몸이 젖어버렸다는 걸 깨닫습니다.⊙ ⊙ ⊙아빠 ‘캘럼’과 딸 ‘소피’가 휴가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며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제가 온몸이 다 젖어버렸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애프터썬>은 여러 장면을 통해 ‘캘럼‘이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딸 ‘소피’가 없을 때의 ‘캘럼’은 난간에 위태롭게 올라서고, 살이 베일 정도로 거칠게 깁스를 풀며, 남이 버린 담배를 주워 피는 등 삶에 큰 미련을 보이지 않습니다.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 시도를 하려다가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춤을 추거나 기체조를 하며 몸을 움직일 때였죠. ’캘럼’은 그 감각을 ‘소피’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춘 춤은 아빠에 대한 ’소피‘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소피‘는 춤을 추는 아빠를 계속해서 떠올립니다.이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퀸(Queen)의 노래 ‘Under Pressure’에는 “This is our last dance”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토해내듯 절정을 향해 치닫는 퀸의 노래 속에서 가사처럼 모든 걸 뒤로 한 채 그저 딸과 함께 마지막 춤을 추는 ‘캘럼‘의 모습을 보고, 울컥 눈물이 차올라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모르게 <애프터썬>의 감정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이죠. 햇빛 아래에서는 약해진 피부의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애프터썬>의 주제는 한 문장으로 명확히 정리하기 어렵지만, <애프터썬>의 감정은 분명히 와닿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덩어리로 분명히 존재하는 이 감정을 무어라고 정의하기는 또 쉽지 않습니다. 샬롯 웰스 감독은 이 영화의 맥락과 맞닿아있는 단어로 튀르키예어 단어 ’harset’을 골랐다고 합니다. 튀르키예어에서 ‘harset’은 그리움, 사랑, 상실의 어떤 조합을 의미합니다. 영어 단어로도, 한국어 단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표현이죠.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한데 엉겨 붙어 있는 영화 <애프터썬>은 그 감정의 힘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 ⊙‘소피’에게 그 여름날을 담은 캠코더 영상은 살갗을 벗길 만큼 뜨거운 태양이겠지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빠를 잃은 상실감, 아빠를 향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그를 아프게 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상처 입은 피부 위에 덧바를 수 있는 ‘애프터썬’이기도 할 겁니다. 위태로움과 미숙함 속에서도 있는 힘껏 나를 사랑해 주었던 아빠의 모습이 그 안에 가득할 테니까요.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너무 아파서, 또 그만큼 너무 좋아서, 고통과 치유 사이를 오가며 이 글을 썼습니다. 아무래도 <애프터썬>은 제게도 뜨거운 태양이자 '애프터썬'인가 봅니다.Summary아빠와 20여 년 전 갔던 튀르키예 여행. 둘만의 기억이 담긴 오래된 캠코더를 꺼내자 그해 여름이 물결처럼 출렁이기 시작한다. (출처: 씨네21)Cast감독: 샬롯 웰스출연: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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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바로 어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가운데,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미키 17>은 개봉 첫 3일간 약 98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으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3월 3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30만 명을 돌파하며 앞으로의 성적을 기대케 했습니다.
개봉 전 진행된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의 향연과 미키와 미키와의 관계를 <미키 17>의 감상 포인트로 꼽았는데요.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제 바람은 제가 이 작품에서 느낀 걸 관객도 느끼는 거예요. 이 정도로 독특한 작품은 솔직히 정말 드물거든요. 이 작품은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영화예요."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여전히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누적 수익 1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2위는 우디 해럴슨, 시무 리우, 핀 콜이 출연하는 <라스트 브레스>가 차지했습니다.
<라스트 브레스>는 숙련된 심해 잠수부들이 맹렬한 자연의 힘과 싸우며 수백 피트 아래 바닷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려 하는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지난주 2위를 차지했던 호러 영화 <더 몽키>는 한 계단 내려와 3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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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합작으로, <스탑 메이킹 센스>
스탑 메이킹 센스 Stop Making Sense, 1984
미국 다큐멘터리 88분
감독: 조나단 드미
모두의 합작으로, <스탑 메이킹 센스>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르 영화를 보고 나면, 꼭 되뇌는 질문이 있다. ‘이 영화는 기록뿐인가, 아닌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분하는 과정이 아니다. 나만의 ‘의미 있는 작품 목록’을 채우는 지극히 사적인 감상법 중 하나로, 사회적‧역사적 소재 혹은 특정 이슈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신중한 물음표다. 특히 다큐멘터리 장르는 극의 무게 중심이 시작이 아닌 끝에 있기에, 결말은 주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 절대 잊지 말자는 호소나, 일반적이지 않은 메시지의 질주, 숨겨놓은 사건의 탈주, 인물들의 날 선 고백 등, 본 작품만이 가진 특징을 빼고 오직 정보만 나열하는 기록은 재미도 없을뿐더러 열심히 달려온 목적까지 앗아가기 일쑤다. 속 빈 강정뿐인 결말을 오래 곱씹는 일은 드물고, 설령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무의미한 과정이란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탑 메이킹 센스>는 내게 의미가 있었다.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안녕하세요, 테이프 하나 틀게요.”
아직 다 준비되지 않은 무대 위에 프론트맨 데이비드 번이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등장한다. 짧은 인사 후 테이프를 틀고는 기타를 튕기며 노래 ‘사이코 킬러’를 열창하는데, 새하얀 신발이 존재감을 내뿜으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자리에서 오른 다리로 연신 바닥을 힘주어 차며 리듬을 타더니, 곧이어 온몸을 흔들며 무대를 휘젓는다. 스태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무대를 세팅하는 데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사이코 킬러’ 가사 속 ‘대체 이건 뭐야? 차-차-차- 차라리, 도-도-도- 도망쳐-’가 튀어나올 때마다 더 격정적인 막춤을 선보인다.
첫 곡이 끝나자, 멤버 티나 웨이마우스가 기타를 메고 등장한다. 곧바로 두 번째 곡이 시작되고. 그녀를 기점으로 코러스를 포함한 모든 멤버가 새 곡이 시작될 때마다 차례로 등장한다. 완전히 노출됐던 무대 뒤에 벽(대형 스크린)이 내려오고 핀 조명이 주인공들을 향하는 등, 미완성이었던 무대도 곡과 함께 호흡하듯 차근차근 완성된다.
누구도 자신을 소개하지 않고, 다음 곡이 어떤 노래인지 설명해 주지도 않고,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긴 채 공연을 이어가는 토킹 헤즈. 관객은 그들에게서 뭘 느꼈을까. 무엇이 가슴을 뛰게 했을까. 자유? 해방? 공동체 의식? 그들만의 독특한 공연 방식? 거기서 느낀 주체할 수 없는 날 것의 감정들? 그때, 그 순간, 공연장에 있던 이들에겐 뭐든 자연스럽고 당연했을 거다.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하지 않지만, 함께 한다고 믿으며 공연을 즐기고 있는, 스크린 앞 좌석에 앉은 우리에겐 무엇이 전달되었을까.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스탑 메이킹 센스>가 토킹 헤즈의 콘서트를 기록한 게 아니라 관객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담아낸 ‘영화’라는 걸 전제로, ‘Stop Making Sense!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란 메시지는 이미 첫 곡에 울려 퍼졌다. 중요한 건 이다음에 오는 무엇, 조나단 드미 감독은 카메라의 꾸밈없는 시각 안에 토킹 헤즈의 이야기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답한다. 그들만의 독특한 공연 방식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열정적인 밴드의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건 물론이고 곡에서 곡을 연결되는 찰나의 틈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대한으로 절제하면서도, 휘발되고 마는 잠깐의 희열과 즐거움을 오래도록 음미하고 나아가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길 원하는 듯, 공연하는 이들을 수시로 클로즈업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현란한 손과 발, 이와 함께 반응하는 몸, 관객보다 더 곡에 빠진 표정까지, 전체와 일부를 넘나들며 밴드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공연장이란 무대는 ‘이야기 배경’으로, 이어지는 곡 연주는 ‘사건 전개’, 화면 전환은 ‘사건을 겪는 인물의 감정선’, 노래 가사는 ‘인물의 대사’로 표현된다. 특히 제 몸보다 두 배 이상 큰 의상을 입은 데이비드 번의 계산되지 않은 몸짓이 격렬해질수록 극은 더 극적으로 흘러가는데, 이는 토킹 헤즈의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물론 그들의 언어는 대부분 음울하고 착잡하다. 그러나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다. 광기에 휩싸인 노래가 뒤로 갈수록 그들이 오랜 투쟁 끝에 찾은 한없이 따뜻한 가사로 흘러나오고 있음을 말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삼켜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니, 어느 누가 토킹 헤즈의 서사에 더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스탑 메이킹 센스>는 ‘모두’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밴드와 관객, 무대, 그리고 스크린 밖 우리까지 하나가 되어, 견고하고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고, 단숨에 끝냈다. 여기서 끝은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옷자락을 펄럭이는 데이비드 번의 상징적인 춤이 계속 떠오르고, 파격적인 밴드의 무대 연출이 잊히지 않는 건, 단순히 기억되어서가 아니다. 영화는 모두의 몸과 마음을 날뛰게 하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현실엔 없는 특별한 도피처로 우릴 안내했다. 그리곤 보고 직접 느끼게 했다. 어떤 상황에 있든 상관없이 이곳, 안전지대에선 누구나 자유롭고, 언제든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으며, 또 얼마든지 서로에게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말이다. 덕분에 1983년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에서 펼쳐졌던 토킹 헤즈의 콘서트가 왜 전설이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토킹 헤즈와 <스탑 메이킹 센스>가 만든 파동이 얼마나 많은 이의 파동과 연결되어, 새롭게 탄생했는지도 궁금하게 했고.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데이비드 번이 밴드 멤버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소개하더니, 스태프 전원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한다. 그리곤 첫 등장 때처럼,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과 우릴 향해 모두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짧은 인사를 건네곤 홀연히 사라진다. 분명 토킹 헤즈는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러나 <스탑 메이킹 센스>는 퇴장하지 않았고, 우리 또한 공연장을 나가지 않았다. 나갈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할 권한은 오롯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니 눈치 보지 말고 냅다 즐기자. 거리낌 없이 함께, 그때 그 순간 모두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엄청난 공연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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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 끝나지 않을 운명적 사랑에 대한 믿음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뻔하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늘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플레이 리스트에는 왜 예전에 즐겨보던 작품들뿐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저 재미있게 보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게 해주었던 로맨틱 코미디만의 몽글몽글함이 이제는 장르적 쇠퇴를 맞이한 것일까?
할리우드 또한 시대별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1930년대 계급 차이를 극복하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스크루 볼 코미디를 시작으로, 50~6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앞세운 관습적인 역할을 지나 90~2000년대 전문직 여성까지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점도 있는데,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업적 경력에도 언제나 실수를 남발하고 꼭 위기 상황에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며, 사회적 성공과 반대로 연애의 부재로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자 취향을 맞춰주는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며 언제나 파트너의 행동에 맞춘 쿨한 매력을 겸비한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평한 관계를 이상적으로 그려나갔으니 양산형 영화가 쏟아지는 흐름에 갈피를 잃고,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PC 요소들의 대두되며 더욱 괴리감이 생겼으리라.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치부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일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사랑과 운명을 믿고 싶다면 꼭 기억해 달라고 언급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뉴욕 타임스와 에스콰이어의 기자이자, 에디터로 활동했고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며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노라 에프론이다. 인간의 소통에서 비롯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들어 가는 두 사람의 운명적 이끌림을 통해 사랑의 힘을 전하며 관객의 감정적 동조를 일으킨다. 시대가 흐르며 여타 장르들과의 혼재를 통해 다양한 변주로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로맨스가 유행되었지만, 그때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판타지에서 만족감과 감동을 안긴다. 어쩌면 남녀 관계와 사랑에 대해 가벼워진 사회 분위기에 운명은 고리타분한 올드 스타일일지도 모르지만,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로맨스 코미디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즐거운 무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참 낭만적인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이끌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점에 대해 노라 에프론이 남긴 한마디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정확하게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지만, 우스갯소리를 덧붙여 정작 본인의 카피는 언제쯤 나올지 몰랐던 것 같다. 대표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 대부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할 남녀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설렘을 다루며 빠져들 수밖에 없는 멜로/로맨스를 선보였다. 특히, 말장난 섞인 가벼운 하위 장르로 여겨졌던 로맨틱 코미디에서 알면서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을 통한 하나의 형식적 법칙으로 정립하며 시대를 대변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파워우먼으로 꼽히게 된다.
대체로 뻔하고 명확한 형태로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과정에도 오히려 관객이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로 전환시키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매력을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통해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표현한다. 이 같은 전개는 고전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과도 같은 맥락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비틀며 시대상을 반영한 노라 에프론식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난다. 운명에 대한 믿음을 유쾌하면서도 절절한 고백으로 이어가며 아직도 그녀의 작품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도 될 근사한 낭만으로 가득 찬 사랑의 기억을 머물게 만든다. 현실에 존재할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를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추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①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년 발표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대화들이 즐비한 고전적이고 익숙한 스타일인 동시에 노라 에프론이라 각본가로서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정립한 첫 히트작이다. 두 사람이 이어지기까지 12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고, 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제2의 연인’ 속 결혼 전을 보는 듯한 전개를 보인다. 1977년 봄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졸업과 함께 직장이 있는 뉴욕으로 우연히 동행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라는 결론이 날 수 없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고 서로를 별종이라 칭하며 헤어진다. 몇 년 뒤, 각자의 이별과 이혼을 통보받은 시기에 운명처럼 재회하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은 늘 해리와 샐리 주변을 맴돌았고, 그저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라는 선을 긋고 다가가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스킨쉽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첨예하고 장황한 설명은 지칠 법도 한데, 결국 헤어지기 싫다는 애증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보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으로 즐거움을 준다.
재치 있는 각본과 별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로맨스는 아니지만,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따뜻하고 포근한 케미스트리는 설렘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견고히 하고, 사소한 단점 하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성장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오랜 친구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연인이 된다는 뻔한 전개와 뻔한 결말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 평범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가 5년 공백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노부부(연기자들) 이야기들이 들어간 부분은 이런 삶의 진리를 전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처음 만났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짧지도 길지도 않게 말해주며 각자의 사연들을 통해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에 진정성 있는 현실을 입힌다. 마치 해리와 샐리에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인생의 평범함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노라 에프론은 보편적인 삶 속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들과 운명적인 상황들로 극적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관객에게 영화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카츠 델리’ 식당에서 맥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슴’이라는 잊히지 않을 명장면은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당시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스탠 바이 미’로 명장 반열에 오른 로브 라이너의 창의적인 연출력과 ‘아리조나 유괴사건’, ‘빅’ 등의 촬영 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 등 독특한 세계관을 펼친 베리 소넨필드가 의기투합해 빛났던 재능꾼들의 젊은 시절이리라 생각된다.
②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뒤 1992년 ‘행복찾기’로 감독까지 데뷔한 그녀는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를 발표한다. 극 중 여주인공 애니가 매일 밤 보며 대사까지 외우는 1957년 ‘러브 어페어’에서 영감을 받아 쓴 각본을 바탕으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을 믿으시나요?’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풀어헤친다. 이후 ‘유브 갓 메일’에서도 빛나지만, 남녀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에 대한 설정에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감성을 품고 있다. 지금은 앱으로 간소화까지 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 수천 마일이 떨어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적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실의 빠져있는 아버지 샘을 위로하려는 아들 조나의 발칙한 사연으로 시작된 운명의 장난은 매일 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진심이 담긴 그의 행복한 추억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애니의 마음을 강타해 공감 어린 눈물을 흘리게 하며 결혼을 앞둔 약혼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운명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이별과 상처가 되는 순간이 교차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아도 이상하지 않지만, 해리와 샐리가 서로에 대해 고민한 많은 시간만큼 여기에서도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는 세 번의 장면들로 에프론은 운명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 같은 장치는 마지막 엠파이어 빌딩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으로 감독의 확신에 찬 답변으로 보인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바라보는 방식은 실제 마주하지 않기에 오롯이 배우들이 홀로 표현하는 감정선에 집중한 채 과거 50~60년대 로맨스 드라마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소통으로 인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애틋함을 더한다. 라디오라는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사연을 주고받고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느리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향수들이 불현듯 찾아온 운명이 보내는 신호를 믿고 싶은 마음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운명의 사랑에 대한 답변을 나타내는 듯하다. 1990년 ‘볼케이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을 보고 캐스팅한 것이겠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의 확신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연기는 마법과 같은 사랑을 향한 9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을 짙게 한다. 셀린 디온과 클리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When I Fall In Love’, 태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또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감성 한 스푼을 더해준다.
③ 1998년 <유브 갓 메일>
전작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애틋함에 안타까웠던 것인지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 컷에 담아 1998년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로 찾아온다.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독립서점처럼 보이는 길모퉁이 서점과 웹서핑 초기 시절의 이메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사랑스러운 상황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문학과 뉴욕을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진 뉴요커 조와 캐슬린이 우연히 채팅룸에서 만나 친분을 쌓지만, 현실에서는 앙숙인 대형 체인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과 길모퉁이 서점의 사장으로 빚어지는 갈등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담는다. 동생 델리아와 함께 집필한 이번 작품에서 자매의 문학적 소양 차이를 두 캐릭터에 녹여낸 듯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조지 버나드 쇼의 ‘캠벨 여사와의 서신 교환’, 영화 대부 등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급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향과 성격임을 남녀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작지만 예쁜 서점을 지키려는 감성적인 캐슬린과 따뜻한 마음에도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차갑게 비치는 조의 설정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쫄깃한 밀당을 더욱 마음 졸이게 한다.
익명에 숨긴 채 서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행동과 매번 울리는 ‘You've Got Mail!’의 알림은 그들이 이미 서로를 알고 미워하지만 깨닫지 못했다는 상황을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결말에 이르러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전환된다. 서로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들이 쌓여 그들이 마주한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감독의 운명론적 이야기는 컴퓨터를 켰을 때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던 ‘You've Got Mail’ 알림음과 ‘당신이길 바랐어요’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다시 한번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소소한 일상, 누구나 해보는 고민들, 사람들 간의 따뜻한 대화들이 담긴 섬세한 묘사들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질지 모르는 지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중간에 놓인 감독만의 감성을 품는다. 늦게 데뷔해 단숨에 최전성기에 오른 감독으로서 뉴욕을 향한 자신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가장 뉴욕다운 풍경으로 담아낸 실력,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더할 나위 없는 호흡, 꿈같은 사랑이 전하는 특유의 안락함은 이 작품을 최고는 아니더라도 명작으로 기억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운명과 뉴욕을 사랑한 뉴요커
우리가 사랑한 노라 에프론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통적으로 뉴욕이 배경에 꼭 들어간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로 운명을 믿는 마음을 담아낸다. 조금 지나간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일명 ‘자만추’라는 정해진 소개팅이나 맞선이 아닌 남녀 주인공 모두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연애를 추구한다. 지고지순한 순애보 끝에 다다른 일방적인 구애가 아닌 N, S로 분리된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말한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서도 일어날 수 있는 남녀의 스파크를 캐치해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믿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운명을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스스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내세우는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시나리오 데뷔작 ‘실크우드’에서는 진실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조 대표를, ‘제2의 연인’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상처를 빗대어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커리어 우먼을, 첫 연출 데뷔작 ‘행복찾기’(1992)에서는 판타지 속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을 기다리던 공주가 아닌 세상과 타협하기보단 자신에 대한 믿음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과 이에 얽힌 운명적 상대를 그린다. 보수적인 90년대의 분위기에서 억압되었던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행동의 제약을 깨부수며 신여성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가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맥 라이언의 등장이다. 초창기 두 작품의 시나리오로 연달아 만난 메릴 스트립도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2의 연인’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앞서 언급한 ‘행복찾기’에서 싱글맘 코미디언을 연기한 줄리 카브너 역시 큰 전환점을 만들지만, 노라 에프론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연달아 흥행한 세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아 완벽한 페르소나로 거듭나며 배우와 감독으로서 두 사람 모두가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시절 맥 라이언은 지금도 정석이라 불리는 숏단발컷을 유행시켰고 헐렁한 오버사이즈의 놈코어 룩으로 편안함과 러블리함, 커리어 우먼의 세련미를 동시에 추구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오죽했으면 ‘맥 라이언이 노라 에프론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 패러디가 생겼을 만큼 그저 귀엽기만 했던 한 여배우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열었다. 지금의 애인이 진정한 사랑일까라는 고민을 늘 품는 주인공에 어울리는 왠지 모를 나약함과 몽상적인 상상이 어색하지 않은 귀여움은 많은 이들을 판타지에만 존재할 것 같은 운명으로 초대했고 감독이 원하는 사랑은 인생이고, 인생은 판타지라는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고전 로맨스에 대한 적절하고 탁월한 활용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카사블랑카’와 우디 앨런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를 효과적으로 배치했으며, ‘유브 갓 메일’에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 리메이크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에서 보이는 허영심에 비친 비현실적인 요소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짜이지만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첫 작품 ‘실크우드’에서는 기자였던 과거 시절처럼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들었고, 이혼 문제를 다룬 ‘제2의 연인’에서는 사회적인 시선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토로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내 프레임을 씌우고 언제나 자신을 반영시킨 캐릭터를 통해 희망적 판타지의 결론을 통해 웃음과 설렘을 선사한 것이다. 남녀의 성격묘사에서 서로를 공격해 무너뜨리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내는 묘미는 이러한 경험적 요인들이 작용해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든다. 그리고 감독에 이르러 공통적으로 내세운 운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주인공의 만남에 마법 같은 느낌을 부여해 대중을 만족시키는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클래식 할리우드의 느낌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별은 영원히 반짝인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는 지났어도 한참 지났을 요즘이다. 주인공 커플들이 재미를 선사하려고 온갖 멜랑꼴리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로맨틱 홀리데이’, ‘500일의 썸머’, ‘비포 선라이즈’, ‘노트북’,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정확히 로맨틱 코미디로 한정 지었을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큰 성과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다시 불길을 살리려 하지만, 지금 영화 업계에서 슈퍼히어로물이나 액션 영화 등 속편, 스핀오프, 리부트라는 명명하에 흥행하면 좋다는 식으로 찍어내는 제작사의 방식도 현실적 어려움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볼만한 작품이 아니면 극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진 현실과 DM으로 고백과 이별을 전하는 세대들에게 있어 과거 로맨틱하고 희망적이며 사랑스러운 운명의 만남으로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며 감정을 이입시켰던 전형적인 로맨스 방식은 이제 꿈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이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감성과 레트로라는 문화를 이끌며 다양해진 OTT 서비스를 통해 고전 멜로/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를 접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 점에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 그러고. 난 믿고 있어’라는 명대사처럼 시대가 변하며 뻔한 로맨스라 여겨지는 지금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보는 영화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고 저장되며 로맨스 하면 TOP 10에 꼽히는 건 희망적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로맨스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첫사랑처럼 다가온 운명의 두근거림과 가슴 뛰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감성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와 세대의 취향은 시시각각 바뀌어 갈지 몰라도 최소한 낭만은 계속 이어지고,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또 다른 노라 에프론의 등장을 희망하며 사라지지 않을 로맨틱 코미디의 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시작될지 모를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칼럼식으로 써봤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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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전락하더라도 놓을 수 없는 것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인 박쥐를 다시 봤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 영화를 봤는지 셀 수도 없다.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는 아니지만 내용과 대사를 다 알아도 항상 소름이 돋은 상태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이다 보니 소모임 멤버들에게 하도 호들갑을 떨어 놔서 다들 많은 기대를 하고 봤을 것 같은데, 개봉 당시에도 평가가 엇갈렸듯이 보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 다른 것 같아서 신기했다. 그 와중에도 불쾌하고 찝찝하다는 평은 모두의 입에서 나왔던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외모라고 했다. 배역에 어울리는 외모와 분위기가 1순위라는 감독의 말을 증명하듯이, 이 영화는 송강호 김옥빈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인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
출처: 유튜브 영화
본작의 주인공인 현상현은 정말 숭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신부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없음에 허무함을 느끼고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신부로서의 자신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직접적인 구원자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 또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결국 불치병 바이러스의 치료약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실험 대상으로 자원하게 된다. 치사율이 100%인 바이러스를 몸에 집어넣은 뒤 행하는 그의 기도문 독백은 이 신부가 얼마나 희생적인 사람인지를 초반에 확실히 설명해주는 역할과 이후의 장면들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떠한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결국 현상현 신부는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 직전에 이르게 되어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이후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사망 판정을 받지만, 기적적으로 회생해 한국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혼자 살아 돌아온 현상현 신부의 앞에는 그를 메시아로 칭하며 치유받기를 원하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아버지와도 같은 신부님에게 '치유되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만..'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구원자가 되고자 했던 자신이 약간이라도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와중 부산에서 친구로 지냈던 강우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어머니인 라 여사에게 듣게 되고, 그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되면서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인 태주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어렸을 때 강우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던 상현은 '집에 놀러 가면 여동생이 부끄럽다고 숨고 그랬었는데..'라고 회상한다. 이 말을 들은 태주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이는 태주라는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첫 장면임과 동시에 이후 어떤 장면에서 태주의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이 때의 인연으로 현상현은 라 여사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마작 모임에 초대받게 되고, 태주와는 두 번째로 대면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해당 장면에서도 느껴지는 박찬욱 영화의 특징은 현실에서 흔하게 쓰이지 않을 것 같은 소품과 장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올드보이의 사설 감옥 벽지가 그러했고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집 벽지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 속 중심이 되는 장소인 한복집 건물 역시 여러 나라의 특징이 결합된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 마작을 하고 있다는 설정도 특이하게 느껴진다. 모두에게 보이는 1층에는 한복집이 위치하고 있으나, 그 위 층에서 다양한 인물이 모여 도박인 마작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반복적인 삶 속에 갇혀 있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고자 하는 태주의 심리 상태를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개성 있는 소재들이 충돌하고 있는 이 공간은 편안한 집이 아니라 음침한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에는 팜므파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 등장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영화 속 태주는 그러한 면모를 극한까지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태주는 자신이 원치 않는 반복적인 삶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물이며 이를 약간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몽유병을 핑계로 밤마다 맨발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인물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억압받은 그녀는 집에서 완전히 도망치지는 못하고 동네 골목까지 뛰어갔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태주의 가족은 라 여사의 집 작은 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태주가 어렸을 때 그녀를 두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서 혼자 남겨진 태주를 라 여사가 거두어 딸처럼, 강아지처럼 키웠다고 한다. 이 대사를 딱 들으면 때 단순히 태주를 아끼고 귀여워하며 키웠다는 말인 듯싶지만, 이 집안 속에서 태주의 취급을 보았을 때 '개처럼 키웠다'라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중반에 밤마다 달리러 나가는 태주를 막기 위해 라여사가 문에 자물쇠를 거는 것만 봐도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이는 것 같다. 라 여사는 태주를 강우의 간병인처럼 기능적으로 대하고 있는 인물이며, 다른 마작 멤버들 역시 외국인인 이블린을 제외하고는 도덕적으로 해이한 인물들로 묘사가 되고 있다. 태주는 원래 이 마작 멤버에 포함될 수가 없는, 즉 자신의 욕구를 펼칠 수가 없는 인물이지만 현상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그녀를 묶고 있던 속박의 끈이 끊어지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한편 현상현 신부는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피를 갈구하게 되면서 자신이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하고자 했던 현 신부는 의도치 않게 타인의 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흡혈귀가 되어 육체적 쾌락에까지 이끌리게 된다. 자해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려고 했던 상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태주에게 끌리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태주 역시 상현에게 호감을 느끼고 상현을 통해 한복집의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상현이 맨발로 뛰고 있는 태주를 번쩍 들어 자신의 신발을 신겨주는 것은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설렘을 이끌어내는 박찬욱 감독만의 독특한 멜로 연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출처: 유튜브 영화
결국 두 사람은 육체관계를 가지게 되고, 태주를 사랑하게 된 현 신부는 자신의 몸 상태를 태주에게 고백한다. 남의 피를 마시는 현 신부의 모습을 본 태주는 경악하며 자신의 집으로 도망친다. 현 신부는 태주를 쫓아가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며 자신이 마신 피의 주인은 원래 다른 사람들 먹이는 것을 좋아했던 분이라 이해해주실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뱀파이어가 되어 타인의 피를 마시게 된 1차 전락, 신부로서 금기인 육체관계를 가지게 된 2차 전락을 겪은 상현은 끝없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신부로서의 자신과 흡혈귀로서의 욕망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한다. 처음에 두려움을 느꼈던 태주는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자신의 지루한 일상과 정 반대에 있다고 느끼며, 밤의 골목을 뛰어다니는 행위를 중단함과 동시에 밤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자신의 삶 속에 집어넣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상현은 사랑하는 태주를 안고 마치 놀이기구를 태워주는 것처럼 높은 건물 위에서 쉽게 뛰어내리지만 건물을 다시 올라갈 때는 태주를 안고 계단을 오른다. 이 장면을 건물을 뛰어내리는 태주의 표정과 연결 지어 생각해봤을 때 뛰어내리는 것, 즉 전락하는 것은 정말 즐겁고 쉬운 일이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해준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속아 자신의 직업윤리와 가치관 버리게 된 상현은 결국 물에 가라앉은 집 속 옷장에 강우를 가둬 살해하게 된다. 그래도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며 자기 합리화를 했던 상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살해하는 3차 전락에까지 이르게 되며, 인간도 짐승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신부까지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모습을 목격한 상현은 더 이상 신부로서 존재하기를 포기하게 되고, 더욱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내 얼굴은 비록 냉담하고 둔감할 것이나 내 심장은 항상 당신을, 오직 당신만을 위해 뛰겠나이다.
모두를 구원하고자 했던 상현은 결국 끝없는 전락의 과정 속에서 태주 한 사람만을 구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태주의 손을 잡고 기도하듯이 말하는 위 대사를 영화 초반부의 기도문과 비교해봤을 때 상현의 정체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강우를 제거하면 거칠 것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게 된다. 태주 자신이 그리했던 것처럼 강우의 환영이 자신의 입에 쪽가위를 집어넣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하고 몸이 물속에 잠기는 체험을 하기도 하며 육체관계 중 두 사람 사이에 강우가 끼어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멀어져 다른 마작 멤버와 잠자리를 가지기도 하는 등 강우를 죽이기 전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 영화의 내용을 사랑의 과정으로만 생각했을 때, 상대를 사랑함에 있어서 여러 긴장과 제약이 많았던 연애 시작의 설렘을 잃어버린 두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출처: 유튜브 영화
태주의 욕망에 의해 자신이 이용당했음을 알게 된 상현은 태주를 다그치지만, 태주는 오히려 '내가 아니었어도 당신은 강우를 죽였을 것'이라며 상현의 합리화를 비웃고 그를 병균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강우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태주의 말에 이성을 잃은 상현은 결국 그녀까지 살해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4차 전락에 이르게 된다. 이 장면의 구도와 음악이 모두 압도적이라 가장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죽여 놓고도 슬퍼하기 이전에 흡혈 본능에 이끌려 그녀의 피를 마시는 상현의 모습은 소름 끼치기 가지 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정신없이 피를 마시던 상현은 라 여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에 놀라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파악하게 된다. 영화 최후 반부까지 태주와 상현이 라 여사만은 죽이지 않는다는 점과 두 사람의 모든 죄를 지켜보거나 폭로하는 사람이 라 여사라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라 여사는 태주와 상현의 최후의 양심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상현은 태주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피를 먹이고,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난 태주에게 '해피 버스데이 태주 씨'라고 말한다. 이 대사 역시 그녀를 우발적으로 살해해 놓고, 마치 그녀에게 뱀파이어로서의 새 삶을 선물하려고 의도했던 것처럼 합리화를 하는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뱀파이어가 된 태주는 상현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흡혈을 하고 다닌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며 자신이 도와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더 편하게 죽는 것 같다고 또다시 합리화하는 상현에게 태주는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처럼 생각하지 마라',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냐?'라는 대사를 통해 상현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폭주하는 태주의 모습을 보며 상현은 자신의 선택이 전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더 이상 태주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태주는 '당신을 살린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줘'라는 상현에게 '당신은 나를 죽여도 후회, 살려도 후회야'라며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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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는 라 여사의 폭로로 인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마작 멤버들을 죽이고, 상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를 돕는다. 마작을 하지 않았던 이블린만이 상현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되는데, 이 영화 속에서 마작이 인간의 욕망이나 악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면 작중 유일하게 도덕적 해이를 보이지 않는 인물인 이블린만이 살아남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 선한 인물들이 이유 없이 죽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감독의 뚜렷한 가치관이 보이는 장면이기도 한 것 같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죽을 필요 없는 인물이 죽는 것에서 나오는 감정 소모를 자신도 잘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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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다짐한 상현은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는 신도들의 캠프에 찾아가 부정을 저지르는 모습을 일부러 들킴으로써 그들을 헛된 희망으로부터 구원한다. 이후 상현은 새벽이 되기 직전 시간에 태주와 라 여사를 데리고 허허벌판 끝의 절벽에 도달한다. 처음에는 죽기를 거부하고 그늘 속에 숨던 태주였으나, 상현의 진심을 깨닫고 그와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한다. 이 장면에서 태주가 상현이 신겨줬던 구두를 신는 것은 죽는 순간에 자신이 살면서 느낀 가장 행복한 감정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서야 관객들은 태주도 상현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구원자가 되고자 했던 상현은 전락의 끝에 도달해서야 자기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구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합리화가 아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상현은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태주, 앞으로 희생될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라 여사가 웃으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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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출처: 유튜브 영화
극단적인 이야기 속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박찬욱 감독의 능력이 이 영화에서도 통했던 것 같다. 자의와 타의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만나 그 극한까지 달려간 뒤 허무하게 재가 되는 것은 굳이 뱀파이어나 재와 같은 소재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상상하는 일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를 꼽을 수 있겠다. 또한 전락의 끝에 가서야 구원의 길을 깨닫게 되는 결말 역시 흥미롭다. 결국 현상현은 인간의 상식이나 양심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 먹는 짐승'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인간으로서 죽기를 선택해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를 다시 보며 느꼈던 것은 박찬욱 감독 영화 속에서는 역시 여성 캐릭터들이 빛나 보인다는 것이다. 박쥐의 태주와 헤어질 결심의 서래를 비교해 보면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팜므파탈처럼 보이는 공통점이 있으나, 감독 자신의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테주보다는 훨씬 더 감성적이 된 서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던지는 주제의식을 무시하고서 보더라도 다른 영화들에서 볼 수 없는 훌륭한 장면들에 압도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장면마다의 의미를 곱씹으며 보면 두 배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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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짓>의 게오르그
매혹적인 은유 덩어리, <트랜짓>
"그러니까 내가 이 호텔에 머무르려면 이 나라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걸 증명해야만 하네요?"
어렵게 마르세유에 도착해 호텔에 잠시 묵으려는 게오르그에게 호텔 주인은 체류 허가증을 요구하며 그가 잠시 머물다 갈 사람임을 증명하라고 한다. 머물고 싶어도 마음대로 머물 수 없고, 떠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떠날 수 없다. 영화 <트랜짓(Transit)>(2018)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해 방황을 거듭하는 자들의 딜레마를 조명한다.
<트랜짓>은 선명한 영화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기묘하게 점유하는 영화의 배경은 영화의 선명도를 한껏 낮춰 그 자리를 모호함으로 채운다. 선명하지 않다는 말은 곧 규정짓기 어렵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이 영화는 특정 관점을 견지한다기보단 복합성을 머금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트랜짓>은 그 자체로 시공간대를 중첩하고, 인간상을 교차하고, 다양한 실존적 딜레마 요소를 얽어내어 가공해낸 매혹적인 은유 덩어리에 가깝다. 모호한 기운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무정형의 덩어리 <트랜짓>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과정에서, 겹과 겹 사이의 공간이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나타난 난민 문제는 오랜 기간 논의가 되어온 범세계적 사회 이슈다. 이때 나는 조금 디테일한 면에 주목하고 싶다.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오르그를 관찰하려고 한다. 그를 통해 영화에서 난민들의 삶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게오르그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없다. 그는 죽은 바이델의 소지품과 편지들을 챙겨 마르세유로 떠난다. 상태가 위독한 동료 하인츠는 마르세유에 도착하기 전에 죽는다. 번듯한 신분증조차 없이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던 게오르그는 졸지에 두 남자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삶에 직면한다.
두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오르그
누구의 신분도 빌리지 않은 게오르그의 민낯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게오르그는 독일 출신의 난민이다. 하인츠의 아들 드리스가 골키퍼는 독일이 최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게오르그는 독일인이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현대 독일 국민의 스포츠 문화를 염두에 둔다면 독일인으로서 게오르그가 품은 정체성은 은근슬쩍 뭉그러진다. 영국, 스페인, 독일 등이 축구 문화의 선봉장인데다 자국민들의 관심도도 매우 높고 독일이 축구사에 있어 걸출한 골키퍼를 많이 배출한 국가라는 사실 등이 자연스레 뒤따라온다는 점에서, 게오르그는 분명 소속감이 결여된 타자다. 어쩌면 그에게 정체성이 지워진 껍데기로서의 삶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바이델의 신분으로 위장하거나 하인츠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은 상태의 게오르그는 피상적으로 존재는 하지만, 내면이 텅 비어버린 갈 곳 잃은 유령이다.
우선 게오르그에게 죽은 동료 하인츠의 삶을 대체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인츠의 아내 멜리사와 아들 드리스 역시 게오르그와 같은 불법 체류자로, 정착을 어려워하는 불안정한 존재들이다. 드리스는 게오르그를 통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한다. 멜리사에게 청각 장애가 있으므로 소통에 있어 제약을 받기 때문에, 게오르그와 드리스의 관계가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게오르그는 드리스와 유대를 쌓아가며 아이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의사 리처드가 볼 때 게오르그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 의사는 게오르그에게 왜 그 아이를 사랑하는데 버리려 하냐고 추궁하지만, 정작 게오르그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상투적인 이유를 거들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소속감이 없는 유령 같은 게오르그는 아무리 자신에게 딱 맞는 자리처럼 보여도 쉽사리 녹아들지 못하며, 이는 곧 게오르그의 텅 빈 정체성을 부각한다. 멜리사와 드리스 모자 역시 끝내 마르세유를 떠나 홀연히 사라진다는 점에서 난민들의 처지에 대한 상징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게오르그는 죽은 작가 바이델의 신분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멕시코 영사관을 떠올려보자. “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요? 떠난 사람일까요? 남겨진 사람일까요?”. 게오르그는 바이델과 마리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참고할 만한 자료는 오면서 읽었던 편지뿐인 상황에서 그는 “나는 더 이상 아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남겨진 이가 먼저 잊을 거라는 암시를 날린다. 이 말은 마리의 말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그녀는 게오르그에게 “남겨진 사람에겐 슬픈 노래와 동정이 있지만 떠난 이에겐 아무것도 없다”라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영사의 질문은 남녀 관계의 딜레마를 건드리는 아련한 물음이지만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겠다. 남편을 떠난 마리는 남편을 계속 그리워하며 찾으려 한다. 독일을 떠나온 게오르그 역시 라디오 수리를 하며 어렸을 적 엄마가 자장가로 불러줬던 노래를 부르며 추억에 잠긴다. 게오르그는 자국의 골키퍼가 유명한 지조차 모르는 독일인이다. 자국에서의 삶은 저 멀리 기억 저편에 묻어둘 법도 하다. 그런 게오르그가 아직도 자신이 떠나온 국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게오르그의 양가적 면모는 그를 스스로 모호한 존재적 잔상에 갇혀 있도록 만든다.
유령 난민 게오르그를 구속하는 경유지
게오르그라는 존재는 소속감 없이 부유하는 난민의 공허한 삶의 표상이다. 미국 영사관에서 자신의 신분을 의심하는 듯한 영사의 질문에 게오르그가 바이델의 유작 원고 일부를 읊는다. “여기가 지옥”이라는 그의 말은 비록 바이델의 표현을 빌렸음에도, 게오르그 본인의 처지를 강조하는 역설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지옥 그 자체인 셈이고, 정체성과 목적지를 모두 상실한 방랑자로서의 비참한 최후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런데 지옥에서의 삶을 체념하고 받아들여야만 오히려 살아남는 건 아닐까. 재밌게도 게오르그의 곁을 떠나 마르세유라는 경유지(지옥)를 탈출한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거쳐가는, 그 누구도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는 경유지가 난민에게만큼은 운명적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씁쓸함이 몰려온다.
이제 게오르그는 지독한 상실감을 받아들여야 한다. 돈도 있고 장비도 있으니 바텐더에게 게오르그는 산맥을 넘겠다고 말했지만, 모든 걸 포기한 채 마리의 잔상에 취해 있는 그의 뒷모습에선 탈출과 전진을 향한 동력을 찾을 수 없다. 비자도 없고, 점령군의 세력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으며, 사랑하는 이들도 전부 자신을 떠나갔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현실을 헤쳐나갈 힘을 상실한 채 공백에 사로잡혀 끝없는 표류의 세계로 침잠하다가 문득 유령 같은 마리를 마주하길 고대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오르그의 삶은 정상궤도에 다시 오를 수 있을까? <트랜짓>의 모호한 기운을 빌려 말하자면, 대답할 수 없다. 그저 경유지에 발이 묶여 허우적대는 유령만이 보인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드플레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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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은 창문 청소부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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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존’은 특별한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아직 어리지만, 말도 잘 듣고 예절도 잘 지켜요.
내 아이를 키워줄, 새 부모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