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몬2025-02-25 14:53:56
정치 고발 영화에서 중립적 자세가 가능한가? 혹은 필요한가
<화씨9/11>, <공동정범>을 통해서 본, 조금은 민감한 이야기
<마이클무어 화씨9/11>
마이클무어 감독의 <화씨 9/11>은 미국 2001년 9월 11일 911테러와 그 당시 미국 행정부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권 비판을 담은 내용이다. <화씨 9/11>은 자극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정치 이야기로 가득하다. 초반에 영상을 볼 때는 음모론처럼 느껴질 정도로 편파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점점 다큐멘터리가 진행되면서 그가 내세운 이야기들에 공감을 하는 ‘나’를 보게 됐다. 그리고 비단 미국의 상황만이 아닌 우리 나라의 모습도 떠올랐다.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 다큐에서는 국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다. 국민은 국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 대표해서 우리 모두 잘 살기 위해서 뽑은 대통령이지만, 국민보다는 자본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다. 자본으로 움직이게 된 국가는 테러와 전쟁을 일으킨다.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명확한 실체를 향해 고민해보지 못한다.
이라크 전쟁에서 자신의 가족을 하루 걸러 장례를 치루면서도 알라신에게 복수해달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이라크 국민들이 있다. 그리고 빈곤한 마을에서 태어나 군대에 입대하면 더 많은 세계를 경험해 볼수 있다는 말에 입대를 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히며, 자신 또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 잡혀 살고 있는 미군이 있다.
그리고 희생당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끊임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간다. 이 실체를 부시 행정부에 포커스를 맞춘 마이클 무어는 끊임없이 부시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정권이 잘못 되었다고 말한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국민들에게 잘못된 이야기를 하며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한다.
<김일란, 이혁상 공동정범 >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은 용산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참사 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의 도덕성, 신뢰, 믿음, 분노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고 트라우마를 어떻게 수용하며 살아가는 지에 대한 모습도 확인해볼 수 있다.
용산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하며 왜 화재가 났는가? 그리고 왜 그들은 사망했는가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쉽게 진실을 판명할 수 없다. 솔직히 진실을 판명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미 망루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화재 속 어둡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 화재의 불빛 속 기억들로만 조각난 기억을 맞추고 있다. 이것으로는 진실을 규명하긴 어렵다. 그렇기에 그들이 더 고통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망루로 향해야만 했던 이유는 남들이 보면 테러범들이자 폭동들이지만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신념이자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이라는 가정은 없다. 철거민들과 그의 연대는 화염병을 모으며 망루를 만들고 그 속에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없애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들을 물대포를 쏘고 억지로 끄집어 내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줬으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는 무관용의 원칙으로 망루를 향해 물대포를 쐈으며 그 속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나고 사망자가 발생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공동정범으로 징역형에 처했다.
<두 다큐의 차별성과 공통점>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이끄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개인의 신념을 조작하거나 이용하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과 김일란·이혁상의 <공동정범>을 통해서 본다면 각기 다른 사회적·정치적 배경 속에서 국가가 개인의 믿음을 조작하고, 때로는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환경과 경험에 따라 변화한다.
두 작품은 미디어와 법을 통해 어떻게 국민을 통제하는 지 보여 준다. <화씨 9/11>에서 마이클 무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이후 미국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이를 이라크 전쟁 정당화에 이용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미디어를 통해 공포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전쟁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방식은 전형적인 국가 권력의 선전 전략이다. 정부는 미디어를 장악하고 애국심을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국가의 결정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반면, <공동정범>은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법과 공권력을 이용하여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용산 참사 사건에서 철거민과 연대인들은 강제 퇴거 과정에서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은 이 사건을 ‘폭력적인 시위’로 규정하며, 생존자들을 범죄자로 몰아갔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법과 제도를 활용해 사회적 약자들을 배제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두 사례를 비교하면, 미국은 패권국가로서 전쟁을 정당화하는 방식을, 한국은 소수자들의 사회적 갈등을 국가가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탄압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국가 권력은 개인의 신념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이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화씨 9/11>에서 미군들은 애국심을 이유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다. 하지만 전쟁의 실상을 경험한 후 신념이 흔들린다. 이는 신념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과 새로운 정보에 의해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국가가 조작한 정보만을 접할 때 신념은 쉽게 형성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현실을 접할수록 개인은 자신의 믿음을 다시 검토하게 된다.
<공동정범> 또한 용산 참사 생존자들은 처음에는 국가의 폭력에 저항했지만, 법적 처벌을 받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갈등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사건을 회고하고,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신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인물들이 자신의 신념을 되돌아보고 재구성하는 과정 자체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정치고발 영화에서 중립적인 자세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보면서 관객 스스로가 판단하고 정립해나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정말로 맞는가, 아닌가, 찾아보고 고민해보면서 가꿔나가야할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여러가지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자기 검열을 해나가야 한다고 느낀다.
이 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참 정치인들은 취약 계층의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그저 무시하고 외면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또는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움직인다고 말하지만 정작 국가를 움직이게 하는 국민이란 매우 소수라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 속에서 살아가야한다.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신념’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신념’이 뭐길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또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지에 대해 고민이 되었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정부의 말을 무조건 적으로 믿어서는 안되는것 같고, 그렇다고 모든 말을 무시하고 화염병을 만들고 망루를 세워서 폭력 시위를 하는 것도 안 될 것같다.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그리고 이 신념이 올바르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