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
철없는 나를 보듬어 주고,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그런 어른은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내가 (사회적인) 어른이 된 후였다.
나는 타인의 못남을 어루만지지도, 먼저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그저 그냥 그런 어른으로 자라났다. 아직도 나를 돌보기에도 능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타인을 위한 마음을 내는 것은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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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슬립, 2023> 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배우상을 수상한 독립영화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길호(최준우)와 기영(김영성)이 서로 부딪히며 함께 살아가 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캐릭터에, 평범한 이야기를 하며 새롭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그냥 지나가면서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 사람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과하지 않은데 따뜻하고, 얕은 것만 같은데 묘하게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담배와 식물
처음으로 피식거렸던 장면은 기영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면서 식물들에 물을 주는 씬이었다. 이 장면 하나로 별다른 설명 없이도 기영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한 핑크색 슬리퍼를 대충 구겨 신고, 앞에서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물을 챙겨주는 사람이라니.
어머니가 남겨준 식물들이 죽지 않도록 정성껏 돌봐주는 행위 그 어디에도 진한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 잘 자라길 바란다거나, 어느 식물은 어떤 주기로 물을 주어야 한다거나 그런 깊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흙이 마르면 물을 준다. 그게 다다. 그냥 거기에 식물이 있으니까, 할 만큼 한다. 기본적으로 기영은 생명에 대한 연민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길호에게 식물에 물을 주는 방법을 알려줄 때는 뿌듯해 보이기까지도 한다. 물을 주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기영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안 느꼈을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가 알려주고자 한 것은 물을 주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일상에 대한 사소한 부채감과 비슷한 어떤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을 주는 대상이 꽃에서 길호로 옮겨간 것은 기영의 성장과도 맥락이 이어진다.
#2. 야, 일어나봐
집 앞 평상에 자는 (누가 봐도) 가출 청소년을 건드리는 건 좋지 않다.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굳이 타인과 엮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기영은 그냥 '일어나'라는 말로 길호를 툭툭 건드린다. 그리고 그냥 으레 그렇듯이 잔소리만 하고 제 갈 길을 가버린다.
기영이 아마 길호에게 1mm의 마음의 틈을 열게 된 건 길호가 기영이 시킨 대로 평상의 쓰레기를 싹 치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말을 따르는 구석이 있는 아이들은 티가 난다.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어딘가 보살펴 주고 싶은 구석이 보인다.
기영은 본가에서 반찬을 얻어오던 날 길호를 집으로 초대한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기영의 본가에는 '아줌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기영은 꼬박꼬박 아줌마라고 부르면서도 겉옷을 사 입으라며 돈뭉치를 억지로 쥐어주고, 아줌마는 도망치다가도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별다른 부연 설명이 없어도 알 것 같았다. 그냥 그런 평범한 가족이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런.
순간적인 연민이 불쑥 커진 그날 밤부터, 기영은 길호를 조금씩 돌보기 시작한다. 마른 흙에 물을 주듯, 서툴고 천천히 양육이 시작된다.
하지만 당연히 양육은 쉽지 않다. 길호는 기영이 집을 비운 날 친구들에게 휩쓸려 집에 패거리들을 재우고 만다. 이 상황에서 길호가 잘못한 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기영이 혼자 집을 비운 것부터 부주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또 기영도 서투른 어른일 뿐이니까. 아버지의 똥을 열심히 닦고 와보니 또 길호가 똥을 싸놨다. 기영은 남의 똥을 치우기만 해야 하는 사람은 아닌데, 자꾸 주위 사람들이 똥만 싼다.
#3. 머리 위의 랜턴
영화를 보면서 랜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길호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도둑질을 할 때나, 어두운 굴다리를 걸어갈 때 주로 랜턴을 끼고 나오는데, 마치 길호의 시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랜턴이 있으면 눈 바로 앞은 밝게 잘 보인다. 내가 보고자 하는 건 잘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의 시야는 막상 가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어딜 봐야 하는지 당최 파악을 할 수는 없다. 길호도 마찬가지다. 길호의 눈앞에 당장 필요한 것은 잘 곳, 먹을 것, 그리고 있을 곳이다. (잘 곳과 있어야 하는 곳은 다르다)
하지만 길호는 랜턴을 벗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가진 아이다. 나쁜 일이란 걸 알고 있고, 벗어나고도 싶지만 랜턴을 벗으면 어둠뿐인 것을 알기에 벗지 못한다. 당장 먹고 자기 위해서라도 랜턴을 껴야만 했다, 기영을 만나기 전까지는.
기영은 길호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집도 기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라면도 있고 TV도 있고, 서로 결혼을 못 할거라는 사소한 악담도 나눈다. 마지막에 길호가 기영을 찾아가면서 친구들과 반대로 걷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고 좋았다. 드디어 길호는 랜턴을 본인이 정말로 가야 하는 길을 찾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길호가 랜턴이 필요 없는 일상을 보내기를 바란다.
#4. 연민의 확장
기영은 길호랑 지내는 기간 동안 직장에서도 한층 밝아진 모습을 보인다. 우는 모습도 못 본 척하며 무관심하던 기영은 어느새 초은(이랑서)과 조금씩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집에 데려다준다는 전에 없던 다정한 태도도 드러낸다.
참 조그맣던 기영의 세계는 본인도 모르게 길호로 인해 조금씩 넓어지고 밝아진다. 아마 길호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길호를 내쫓은 후 기영이 일하는 모습이 첫 장면과 비슷하게 나오는데, 지게차를 모는 장면은 같은 장면을 두 번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똑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라 보였다. 원래 사람은 잃어봐야 그게 마음에 있던 거라는 것을 알아챈다고, 사실 예전 일상과 다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영은 많이 허전하고 공허했을 것이 분명하다. 같이 돌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 호수가 기영과 길호의 마음이라는 건 스크린에서 본 나도 알겠으니까. 던진 돌은 결코 다시 안 던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5. 빅슬립
기영은 길호에게 '불쌍한 척 하지마, 그럼 진짜 불쌍해지는 거야'라며 충고한다. 기영은 스스로를 불쌍해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실에 타협하지도, 반항하지도 않는 적당한 사람. 여러 사회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관객이 보기에도 그는 불쌍하지 않다. 그냥 하루를 적당히 잘 보내고, 할 만큼 하고,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사람.
영화는 매우 남성적이다. 영화 보는 내내 여자 두 명의 이야기였으면 갈등부터 해결까지 단 하루밖에 안 걸렸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소통이 불가한 캐릭터 두 명을 갖다놓으니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초은이 등장해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할 때는 마치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으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과 꽤 높은 수준의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력이 놀라웠다.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서 몰입도를 끌어낼 수 있는 건 독립영화에서 약간 과장해서 8할은 배우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역 배우가 나온다면 연기력에 대한 기대는 사실 반쯤 내려놓고 보는 편인데, <빅슬립>의 두 배우 모두 캐릭터 그 자체로의 모습이어서 연기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앞으로도 어디에 나온다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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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불쌍해하지 않으면서 대가 없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을까.
내가 받았었던 약한 연민들의 순간, 그리고 그 찰나들이 지탱해 준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은 잠을 청해봐야겠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 시사회에 참석하여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