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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2025-02-25 17:07:36

낯선 이와 사랑에 빠지고, 점차 무뎌지고, 또 다시 낯선 이가 되어가는 쌉사름한 인연(因緣)

“Hello, Stranger?”

  

소개  

 

 

  런던의 도심 한복판, 부고기자이지만, 소설가가 꿈인 ‘댄’(주드로)은 출근길에 눈이 마주친 뉴욕 출신 스트립댄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삶을 소재로 글을 써서 드디어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 ‘댄’은 책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앨리스’와는 또 다른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안나’ 역시 ‘댄’에게 빠져들었지만 그에게 연인이 있음을 알게 되고, ‘댄’의 장난으로 우연히 만난 마초적인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와 결혼한다. 하지만 ‘댄’의 끊임없는 구애를 끊지 못한 ‘안나’는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이 둘의 관계를 알게 된 ‘앨리스’와 ‘래리’는 상처를 받게 되는데…

 

 

 

모든 인연은 우연이라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필연일 것이다.

 

  앨리스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은 영국과 미국의 차도가 반대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우측통행이라는 미국과는 반대되는 규율이 있기 때문에, 댄과 앨리스는 만났다. 영국에서 너드 같은 안경을 쓴 부고 기자 댄과 붉게 물들인 커트 머리의 미국인 스트립댄서 앨리스, 너무도 다른 사람이기에 충돌하여 만나게 된 것이다.


 

 

 

‘클로저’에서 4인의 관계는 엉키고 설킨다. 모두 한없이 이기적이다.

 

 

  이방인을 마주친 첫 순간을 기록하는 안나. 그 순간의 소중함을 아는 섬세한 인물이다. 전형적인 성숙한 어른 여자로 보이지만, 사실 전형적인 회피형이다.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크게 말을 얹지는 않다가 저지르고 사과한다. 

 

  래리는 넷 중 가장 평범하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에, 마초적인 남성이다. 자신은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도, 다른 남자와 만나는 부인은 용서할 수 없는 찌질한 남자. 순간의 감정을 누르지 못한다. 특히 남성성에 관해 예민하다. 댄과의 잠자리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누가 더 좋았냐고 취조한다. 안나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자, 분노에 휩싸여 ‘slag’라 칭한다. 댄을 처참하게 만들기 위해 복수의 방법으로 스트립 클럽에서 마주친 앨리스와, 그리고 이혼을 청하러 온 안나와 잠자리를 갖는다. 그것이 래리가 댄에게 느낀 가장 모욕적인 감정이고, 참을 수가 없던 것이기에. 또한, 댄 역시 그럴 줄 알기에.

 

  댄은 섬세하고 다정하다. 작가를 꿈꿔왔고, 소설가가 된 만큼 감각에 예민하다. 영화 초반부, 담배를 끊었다던 댄은 앨리스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헤어진 후에도 담배를 끊지 못한다. 정작 흡연자던 앨리스는 끊었는데 불구하고 말이다. 댄은 끌림에 쉽게 매혹되기도,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기도 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리는 면이 있다. ‘자신과 안나’의 관계는 ‘래리와 안나’의 관계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같았다. 안나가 한 번 자주면 이혼해 주겠다는 래리의 부탁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너진다. 래리와 잤다는 말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은 앨리스에도 세상이 무너지고,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앨리스의 뺨을 친다. 섬세하고 다정하던 것이 매력이던 댄은 결국 래리와 다를 바 없었다.

 

 

 

  <클로저>는 <졸업>(1967, 마이클 니콜스)으로 아메리칸 뉴웨이브에 한 획을 그은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영화이다. 마이크 니콜스는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녀가 식장에서 도망쳐 버스에 탄 것이 엔딩인 ‘졸업’에서조차 주연 배우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다. 결국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거라는 것을 암시한다. 비관적이다. 우리가 클로저를 보며 마음 어디 한 편이 불편한 것은 너무나도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 친구와 나의 연인,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클로저>에서는 ‘앨리스’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추구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평생 서로를 모른다. ‘클로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평생 서로에게 낯선 사람일 것이다. 온전히 나를 이해해 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조차도 모르는데 그 누가 알 수 있겠나. 하지만 점점 아는 체를 하게 된다. 인연을 맺고 긴 시간을 함께하고, 대화를 나누면 그 사람을 안다고 착각한다.

 

익숙함에 속지 않는 것. 

 

미련이 남지 않도록 감정에, 그리고 현재 관계에 충실하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앨리스에겐 이 3가지가 있다. 댄이 간과한 점은 자신이 쓴 소설처럼 철없고 자유분방하고 그저 어리다고 생각한 것. 자신이 그려낸 ‘앨리스’인 줄로만 알았던 그는 ‘제인’을 모른다. 스트립 클럽, 래리는 자신을 제인으로 칭하는 앨리스에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격분하지만, 사실 그녀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입국 심사장에서 드러난 앨리스의 여권을 통해 알 수 있다. 

 

앨리스의 진짜 이름은 ‘존스 제인 레이첼 ’이다.

 

  영화 초반부, 앨리스는 댄과 함께 공동묘지에서 ‘타인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묘비를 본다. 엔딩, 댄은 앨리스와 처음 갔던 세 명의 아이를 구하고 죽었다는 묘비를 발견한다.

 

 

‘앨리스 에이리스 – 벽돌공의 딸’ '불속에 뛰어들어 아이 셋을 구하고 숨지다'

 

  앨리스는 불같이 거침없이 관계를 향해 달려들었고, 끝이라고 생각된 순간에는 깔끔히 놓았다. ‘순수한 사랑’ 말이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은 스트리퍼에 어리다는 취급을 받던 ‘앨리스’이다. 앨리스는 성숙한 체하는 세 명의 아이 댄, 안나, 래리를 구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제인(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낯설고 매력적이다. 완벽한 Stranger로. 묘비명은 앨리스 캐릭터를 투영한 함축된 글인 것이다. 

 

 

"where?" 

사랑은 형체가 없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느낄 수 있다.

 

어느 순간엔가 사랑이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결국 이별이 다가오는 것이다.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못하게 만났으니, 헤어짐 역시 그렇지 않을 이유 없다.

 

댄은 앨리스에게 눈을 떼지 못했던, 낯설기만 하던 첫 순간을,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 주던 두 눈을

다른 낯선 이를 만나더라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작성자 . 고미

출처 . https://brunch.co.kr/@gomi2y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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