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04 15:34:56
2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우리의 봉준호가 돌아왔다! <미키 17> 박스오피스 1위 등극

바로 어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가운데,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미키 17>은 개봉 첫 3일간 약 98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으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3월 3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30만 명을 돌파하며 앞으로의 성적을 기대케 했습니다.
개봉 전 진행된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의 향연과 미키와 미키와의 관계를 <미키 17>의 감상 포인트로 꼽았는데요.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제 바람은 제가 이 작품에서 느낀 걸 관객도 느끼는 거예요. 이 정도로 독특한 작품은 솔직히 정말 드물거든요. 이 작품은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영화예요."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여전히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누적 수익 1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2위는 우디 해럴슨, 시무 리우, 핀 콜이 출연하는 <라스트 브레스>가 차지했습니다.
<라스트 브레스>는 숙련된 심해 잠수부들이 맹렬한 자연의 힘과 싸우며 수백 피트 아래 바닷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려 하는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지난주 2위를 차지했던 호러 영화 <더 몽키>는 한 계단 내려와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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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Heretic, 2025)>, 종교는 거들 뿐인 밀실 탈출 스릴러
A24에서 또 한 번 강렬한 공포 영화를 내놓았다. <유전>, <미드소마>, <톡 투 미>와 같은 특유의 신선한 호러 감각이 이번엔 종교를 만났다. 외딴 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야기, <헤레틱>이다. *필자는 지난 3월 27일, 씨네렙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를 통해 <헤레틱>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
'헤레틱'은 영어로 '이단'이라는 뜻이고, 바로 내일(2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 기본 정보
제목: 헤레틱 (2024)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휴 그랜트
장르: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111분
국내 개봉일: 2025년 4월 2일
제작/배급: A24
줄거리: 어느 눈 오는 날, 몰몬 선교사 자매인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는 전도를 위해 한 남성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집 주인 리드(휴 그랜트)는 이들을 호의적으로 맞이하며 날씨가 궂으니 잠깐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규칙상, 여성이 있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아내가 있다'는 말에 두 자매는 의심 없이 문을 넘는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고, 남자의 대화는 점차 묘하게 불편한 질문들로 이어지는데... 자신들이 이 집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두 자매는 탈출을 감행한다.
1. 믿음과 의심 사이의 긴장감
최근 공포 영화는 점프 스케어보다 서스펜스와 심리적 긴장감으로 관객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헤레틱>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낯선 남자의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긴장감을 점진적으로 쌓아올린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에는 '종교'라는 소재가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무섭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섭다"는 역설적인 명제를 중심에 두고, 영화는 관객을 믿음과 의심 사이 긴장으로 이끈다. 궤변 같으면서도 논리적인 시험 속에서, 관객은 주인공들과 함께 끊임없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시험대에 놓인다.
물론 영화가 처음부터 이 철학적 긴장감만으로 공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궂은 날씨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외딴집, 그 안에 두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과 함께 있다는 상황만으로 관객은 익숙한 불안을 감지한다. 이 상황 속에선 성별에 따른 물리적 힘의 위계가 힘의 비대칭을 만든다. 이는 남성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끔찍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불안을 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여성, 그리고 관객이 처음으로 의심하는 것은 바로 남성의 정체이다. 중년 남성 리드가 정말로 겉모습처럼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곧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이 역할에 ‘노팅 힐’로 유명한 휴 그랜트를 캐스팅했다. 그는 젠틀하고 따뜻한 미소의 리드를 연기하며, 두 여성이 기꺼이 스스로 낯선 남자의 집 안으로 향하게 만든다. 물론 그들이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리드가 ‘집 안에 아내가 있다’고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리드는 부인이 낯을 가린다며 계속해서 그녀의 등장을 지연시킨다. 리드라는 인물에 대해 신뢰를 거둘지에 대한 판단은 영화 초반부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두 자매는 이러한 의심 속에서도 그들의 본래 목적대로 리드에게 전도를 하려 한다. 하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점차 리드에게 넘어간다. 그는 점점 종교적 신념을 정면으로 겨누기 시작하고, 미묘하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리드는 계속해서 두 여성의 신념을 흔든다. 그리고 두 여성은 점점 그가 만들어낸 심리 게임의 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모든 과정을 따라가는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리드의 질문에 동참하게 되고, 함께 시험을 받는 듯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헤레틱>은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실존적인 위협에 기반한 상황을 통해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믿음에 관한 심리 게임을 풀어나간다. 영화에서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는 방식은 매우 치밀하며,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 설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2. 치밀한 설계
영화는 상당히 치밀히 짜여져 있다. 결말에서 치밀한 설계는 단순히 장르의 플롯을 넘어서 주제의식으로 발현된다. 동시에 관객으로서 이 치밀함 덕분에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도 준다. 먼저 캐릭터의 균형이 잘 맞춰졌다고 생각했다. 팩스터와 반스는 모두 독실한 몰몬교 신자이다. 그들은 속옷마저 교회가 규정한 의상을 입고, 교회의 공동체에 기반하여 생활한다. 반스는 현실감이 없이 순진한 전형적인 신자처럼 보인다. 반면, 팩스터는 상대적으로 눈치가 빠르고 현실 감각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팩스터는 리드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반박할 수 있는 논리적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 덕분에 일방적으로 리드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맞서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고 탈출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인물들이 상당히 실행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심이 거두어진 순간에 망설임 없이 행동한다. ‘저건 믿으면 안 될 거 같은데’하는 답답함이 들 때쯤, 타이밍 좋게 인물들도 움직여준달까. 그런데 그 순간마다 절묘하게 새로운 변수나 불가항력적 상황이 또 던져진다. 결국 그들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치밀하게 설계한 덕분에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빈틈 없다고 느낀 부분은 대사이다. 감독들의 전작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설정 아래 대사를 최소화하며 긴장을 유도했다면, <헤레틱>은 그 정반대 지점에서 대사로만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감독들 역시 이런 극적인 대비를 하나의 창작 실험으로 삼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대사는 '말맛'이 살아있는 그 자체로 즉흥적인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 모든 대사가 계산된 구조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리드가 반스에게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자 반스는 ‘스파이더맨’이 말한 것이라고 받아친다. 리드는 이를 ‘볼테르’가 말한 것이라 정정한다. 처음 이 장면에서 이 대사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흘러갔기 때문에, 자그마한 유머라고 생각하고 웃고 넘겼다. 그러나 이후 영화가 반복적으로 원형과 복제, 신념의 계승과 변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앞선 대사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대화를 통해 서서히 분위기를 조이고, 이후 그 대사들이 퍼즐처럼 맞물려 돌아올 때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심지어 음악마저 아무 의미 없이 삽입되지 않고 있다. 이런 지점들이 감상 이후 곱씹을수록 서늘함을 안겨준다.
3. 총평
<헤레틱>은 스릴러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정교하게 설계한 작품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직 대화만으로 긴장을 구축하는 연출이 인상 깊었고, 이야기 자체도 흡입력이 있어 몰입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극의 대부분이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일부 장면에서는 다소 과하게 설명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리드라는 인물의 특성상 몇몇 장면은 마치 신학 강의를 듣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대사의 길이나 논리적 구성이 그러한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다시 보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할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이 ‘강의 장면’들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리드가 주도하는 그 ‘강의’가 실제로는 힘의 위계와 물리적 위협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그의 논리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 앞서 언급한 실존적 위협은 장르적으로는 훌륭한 장치지만, 영화가 내세우는 주제적 메시지(믿음과 확신에 대한 탐구)와는 결이 어긋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믿음에 대한 철학적 시험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몸부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 때문에 미묘한 뉘앙스만 주던 초반부에서 다소 노골적인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의 매력이 한풀 꺾인다. 결말 또한 만족스럽다고 하긴 어렵다. 여러 버전의 결말을 놓고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덧붙인 듯한 인상을 준다.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끝내 찾지 못한 채, 결국 캐릭터가 가진 ‘선(善)’의 속성에 기대어 마무리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의심하는 리드가 실은 누구보다 믿음을 갈구하는 인물처럼 마무리되는 아이러니도 다소 예측 가능한 부분이다.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휴 그랜트는 로맨틱 코미디의 상징과도 같던 자신의 이미지를 이번 작품에서 기민하게 비틀었다. 그가 완전히 다른 역할로 변신한 것은 아닌, 기존의 친근하고 젠틀한 이미지를 미묘하게 왜곡해 섬뜩한 설득력을 만들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당신이 알고 있던 '로맨틱한 휴 그랜트'의 잔상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팩스턴을 연기한 소피 대처는 어딘가 낯익은 인상이다 싶었는데, 제나 오르테가와 안야 테일러 조이를 반씩 섞은 것 같다. 실제로 과거 몰몬교 신자였다고 하는데, 그런 배경이 캐릭터의 미묘한 디테일을 풍부하게 만든 것 같다. 최근 개봉한 <컴패니언>에서도 색다른 연기를 보여줬는데, 배우에 관심이 생겼다면 해당 작품도 꼭 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컴패니언>에서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반스를 연기한 클로이 이스트는 <파벨만스>에서도 얼굴을 비췄던 배우다. 그녀 역시 몰몬교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흥미롭게도 "다른 삶을 살았으면 자매 선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 모두 2000년생으로 비교적 어린 배우들이다. 실제 나이와 캐릭터가 잘 맞아떨어지며, 두 사람의 호흡도 매우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캐스팅이 탁월하게 어우러졌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튼, 재밌게 감상했다. 필자는 종교에 큰 관심이 없어 처음엔 관람을 망설였지만, 막상 보고 나니 종교적 맥락보다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완성도와 장르적 매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인물 간의 긴장감이 주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반대로 말하면, 종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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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을 사랑하는 곰, 런던이 사랑하는 곰
코끝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마음이 들썩거려 여행지를 찾는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 아침 갑자지 뼛속으로 한기가 스미는 시기가 시작되면,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은 추위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유독 손발이 찬 편이라, 겨울이면 아침마다 양말을 두 개 신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어서 겨울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이가 달달 떨리는 기분이랄까? SNS에 올라오는 삿포로의 눈밭을 보며, 약간의 부러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집 밖으로 나를 꺼내어 내기엔 겨울 추위란 존재는 너무도 강력한 장벽이다. 올해도 나는 비행기티켓을 검색하는 대신, 이불 속에 들어가 OTT에서 콘텐츠 여행을 시작한다.
해리포터 시리즈 정주행을 시작으로, 눈 내린 호그와트와 론의 크리스마스 스웨터로 영국의 겨울 무드를 느끼고 나면, 파란 코트를 입은 패딩턴 2로 본격적인 ‘런던 여행’을 떠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패딩턴과 브라운가족, 그리고 ‘런던’이기 때문이다. 마치 윈저 가든 그 어딘가에 내가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영화다.
<패딩턴1 >이 아기 곰이 페루를 떠나, 패딩턴 역에서 브라운 가족을 만나고, 패딩턴이라는 이름을 얻고, 런던에서 진짜 가족을 찾는 이야기 속에서 이제 막 런던에 도착한 아기 곰의 시선으로 런던을 보여준다면, <패딩턴2>는 런던의 명소를 담은 팝업북을 주요 소재로 두고, 런던명소를 옮겨 다니며 주요 스토리가 전개되며 ‘런던’이 주인공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Dear Aunt Lucy, Life in London has been better than ever. I really feel at home..
루시 숙모에게. 런던에서의 삶은 그 어떤 때보다 좋아요. 저는 집처럼 편안하답니다.
페루를 떠나 런던 윈저 가든에서 브라운 가족과 지낸 지 3년 차, 패딩턴은 곧 다가올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을 고민하다 그루버씨의 골동품 가게에서 런던 명소 12곳이 담겨 있는 팝업북을 발견하고, 런던을 꿈꿔왔던 루시 숙모에게 선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코즐로바 부인이 만든 세상에 단 한 권뿐인 그 책의 가격은 꼬마 곰의 용돈으로 사기엔 꽤 비쌌고, 패딩턴은 책을 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발소 보조, 아쿠아리움 청소, 창문 닦기 등 열심히 아르바이트를한다. 어느덧 이제 하루만 더 일하면 팝업북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으게 된 패딩턴은 퇴근길에 그루버씨의 골동품 가게 창문안으로 팝업북을 보는데, 그 때 마침 골동품 가게에 침입한 도둑이 팝업북을 훔쳐가게 되고, 그를 뒤 쫓던 패딩턴을 범인으로 오해한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만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패딩턴을 대신해, 브라운 가족은 진범을 찾는 데에 매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누군가 변장을 한 채로 팝업북에 나오는 명소를 돌아다니는 것을 알게 된다. 런던이 배경 장소가 아니라, 스토리의 중심이며, 또 다른 주인공 중의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범인이 보물 상자를 열기 위해 팝업북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찾아가는 세인트폴 대 성당뿐 아니라, 브라운씨가 일하는 더 샤드, 패딩턴이 전화를 하는 빨간 전화박스와 그리고 범인이 탄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찾은 패딩턴역까지. 영화는 런던스러운 로케이션으로 가득 차 있다.
패딩턴에게 런던은 무슨 의미일까.
런던의 탐험가가 루시 숙모와 페스투조 삼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떠나며, 루시 숙모에게는 오랫동안 바랬던 꿈이었고, 패딩턴에게는 좋은 사람과 가족을 만나게 된 스윗홈이 되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런던은 아마도 가족과도 같은 ‘따뜻함’일지도 모르겠다. 패딩턴은 루시 숙모에게 그런 런던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깝고 다정한 내 친구를 소개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런던을 선물하고 싶었던, 꼬마 곰의 순수하고 다정한 마음은 서로를 더 가까이 만들었다. 그리고 눈이 오는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온 루시 숙모와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따뜻한’ 런던에서 백번째 생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Aunt Lucy said, if we're kind and polite the world will be right.
루시 고모가 말했어요. 우리가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면 세상도 올바르게 돌아갈 거라고요.
친절하고 예의 바른 다정한 런던을 만나고 싶을 때마다, 나는 패딩턴을 꺼내본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설레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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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내가 쓸모 있나요?
HOLY
Belgium/Netherlands/Luxembourg/France /2023/102min
핀 트로흐 Fien TROCH /월드 시네마
2023년. OTT 시장을 뒤흔든 작품이 있다. 바로 디즈니플러의 <무빙>이다. '무빙앓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무빙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누구나 한번쯤 해본 상상의 능력이 우리의 이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접근성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유명한 명대사가 있다. 바로 초능력자의 삶에서 하루 아침에 평범한 공무원이 된 남편에게 아내가 한 말.
"넌 나의 쓸모야"
영화 <HOLY>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십대소녀의 이야기다. 우리 곁에서 어디서든 볼수 있는 십대 소녀 홀리. 어느날 불길한 마음이 가득하여 학교에 가지 않는데, 이는 그날 하교에서 일어난 큰 화재로부터 그녀를 구해준다. 이러한 예지력이 있지만 학교에서는 마녀라고 취급당하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남자친구와 언니만이 유일한 대화상대이다. 그런 홀리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선생님은 홀리를 자원봉사활동을 할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거기서 홀리는 다른 사람을 만지기만 해도 그들의 아픔을 회복시켜주고, 슬픔을 경감키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제나 배경이나 엑스트라 같은 삶을 살던 홀리. 놀라운 능력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홀리를 찾게 되고 그 혼돈의 시간속에서 홀리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영화의 서사는 어느덧 찾아온 가을처럼 스며들게 만든다. 이미 <썸원 엘스 해피니스><2005>를 통해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감독의 핀 트로흐는 섬세한 십대의 감성과 함께 누군가에게 주어진 능력이 축복이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한 상황을 잘 그려나가고 있다. 특별히 신인 배우를 캐스팅하여 주인공으로 열연한 배우 카탈리나 게라츠의 연기는 현실과 영화의 세계를 혼돈시킬만큼 몰입하게 만든다.
감독은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단어를 던지고 싶었다고 영화전 인터뷰영상에서 언급한다. 누군가를 향한 진심 어린 위로는 상대를 믿고 자신의 몸을 맡겼을 때만 가능한것을 이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커다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타자가 아닌 사물화 시키는 모습은 결국 인격을 말살 시켜버린다는 경고 또한 우리에게 하고 있다.
가을이 오는 이 계절에 <홀리>는 타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잃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내가 당신에게 필요할까요? 그렇다면 천천히 나의 손을 잡아보시겠어요?"
어쩌면 영화 <홀리> 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쓸모있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답니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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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내가 만드는 신의 뜻
삶의 방향성은 내가 직접 조정하며 가는 것이 맞을까? 정말 힘들거나 미래가 불확실할 때 우리는 누군가를 찾는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 답을 찾지 못할 때나, 정말 너무 힘든 상황이 닥쳐오면 우리는 신을 찾는다. 예수나 부처 등 다양한 종교들이 그 힘든 상황을 위로해 준다. 마치 신의 뜻이 있었던 것처럼 그 모든 불행과 행복이 신의 뜻이었다고 믿는다.
종교가 주는 힘은 크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위로를 받고, 힘든 상황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종교는 희망을 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동시에 종교는 우리를 정적인 상태에 머무르게 할 수도 있다. 종교적인 분위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의 정적인 특성은 때로는 사람들에게 수동적인 태도를 유도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영화 <이매큘레이트>는 과연 신의 뜻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공포 영화다.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가면서 한 가톨릭 시설에 가게 된 주인공 세실리아(시드니 스위니)가 겪는 일이 스산하게 담겼다. 이매큘레이트라는 단어는 '무결점의', '순결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영화는 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중심으로, 세실리아의 경험을 통해 신의 뜻을 탐구한다.
[첫 번째 감정] 세실리아의 믿음
세실리아는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주 젊은 나이에 가톨릭의 수녀가 되기로 결정하고 종교에 귀의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래서 더욱 그녀는 신을 믿고 가톨릭을 믿는다. 그리고 그녀가 새롭게 만나게 되는 수녀들과 신부들을 전적으로 믿는다. 세실리아가 종교적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의 어린 시절 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강한 신앙심 때문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녀에겐 남아있는 가족이 없었고, 오직 신에 의지하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세실리아가 처음 이탈리아의 종교 시설로 갔을 때, 이탈리아어가 서툰 그녀지만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곳에 갔는지를 영화는 초반의 장면들로 보여준다. 종교 시설의 스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세실리아의 미소에 조금 밝아진다. 세실리아의 심리적 상태는 그가 가진 굳건한 믿음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잘못될 리 없는 신과 절대적 선인 수녀와 신부들을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찾아올 무서운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어떤 일이 찾아오든 그녀가 그것을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내 그 생각은 바뀌게 된다. 그녀의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고, 몸이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는데 세실리아는 그녀가 믿는 신부의 추천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게 된다. 오래된 초음파 기계 앞에 누워서 진료를 받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신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주변의 공기는 더욱 차가워진다.
[두 번째 감정] 신의 뜻
세실리아는 갑작스럽게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런 성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신했다는 상황은 무척 공포스럽다. 하지만 세실리아의 주변 인물들은 그것을 신의 뜻이라고 믿고 말한다. 영화는 그것이 마치 진짜 신의 뜻인 것처럼 이야기를 몰고 간다.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고조될 때, 그 수도원의 나이 든 수녀에게 세실리아가 왜 자신이 임신했는지 묻는다.
수녀의 답은 충격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것은 신의 뜻이 아니겠냐"는 답변이었다. 사실 멀리 가지 않아도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무수히 많이 일어났다. 과거 역사적으로 잘못된 믿음 때문에 일어났던 십자군 전쟁도 그러했다. 종교적 신념이 왜곡되면서 일어난 이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나마 현재는 과학적 연구와 사회적 이해가 발전하면서 덜하지만, 여전히 비슷한 일은 발생한다.
그래서 이 수녀가 말한 신의 뜻은 엄청나게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세실리아는 당연히 겁에 질렸고, 과연 그것이 신의 뜻인지를 본인도 고민하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과연 진짜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그것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그런 애매한 상황 속에 세실리아를 밀어 넣고 관객에게 기괴한 서스펜스를 전달한다.
[세 번째 감정] 세실리아의 의지
영화는 늙은 수녀의 그 말 이후 달라지는 세실리아를 보여준다. 후반부의 세실리아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된다. 그녀는 신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건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는 상황에서도 세실리아는 자신의 의지를 점점 강력하게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건 그 이상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공포심에 의해 발생한 본능 같은 것이지만, 세실리아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면 실행이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속 그 기도원은 이상한 믿음을 가진 집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믿는 잘못된 믿음은 깨뜨려야 할 장애물이 된다. 세실리아는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을 통해 신의 뜻을 만들어간다. 무언가 일어난 그 일 모두가 신의 뜻이 될 수 있다. 여전히 신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의 뜻이 될 수 있다면, 세실리아가 의지를 가지게 된 그 상황 자체도 신의 뜻이 될 수 있다.
세실리아가 보여주는 분노와 의지가 결국은 그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 바로 신의 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실리아가 수도원의 괴인들에 반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반항이 아니라,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맞서는 용감한 도전이다. 그녀의 의지는 종교적으로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한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용한다.
영화 <이매큘레이트>는 기본적으로 공포영화로서의 긴장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공포 효과는 약했다. 공포 요소들이 충분히 무서운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관객들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공포 영화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지만, 강렬한 공포 효과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영화 <이매큘레이트>는 세실리아가 자신만의 믿음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공포라는 장르 안에서 보여준다. 배우 시드니 스위니는 이 역할을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녀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강렬한 연기는 세실리아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잘 담아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마이클 모한은 과거 작품인 <깊은 관계> 등에서 보여준 섬세한 연출 스타일을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갔다. 그의 연출은 캐릭터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며, 관객에게 긴장감을 전달한다. <이매큘레이트>에서도 모한 감독의 특유의 섬세함과 치밀한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 <이매큘레이트>는 종교적 믿음과 개인의 의지, 그리고 신의 뜻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다룬다. 세실리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잘못된 믿음에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실리아의 변화는 단순히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믿음과 의지를 발전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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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2022)> 리뷰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20220>은 델리아 오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올리비아 뉴먼 감독 하에서 제작되었다. 드라마 장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1960년대의 미국 캐롤라이나를 주 무대로 삼으며, 놀라우리만큼 아름다운 영상미로 관객들의 시선을 거침없이 사로잡는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 카야 클라크(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어릴 적부터 마을과는 동떨어진 습지에서 나고 자랐으며,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를 비롯한 형제자매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떠나 결국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에 이르지만, 카야만큼은 고향에 남았다. 결국 아버지마저 집을 떠나던 그 순간에도 카야는 습지 안에서 잠들었고 또 눈을 떴다.
외부인과의 접촉이 철저히 격리된 공간에서, 아버지로부터 타인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카야지만 그의 삶이 지루했다고 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테이트 워커(테일러 존 스미스)와 애정을 쌓기도 하고, 자신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던 점핑의 부인인 메이블 매디슨(마이클 하이얏) 덕분에 학교를 가보기도 한다. 하지만 외부와의 접촉이 있을 때마다 돌아오는 건 어째서인지 상처뿐이다. 최소한의 접촉을 제외한 은둔 생활을 다시 이어지던 중 카야는 체이스 앤드루스(해리스 딕킨스)와 연인이 되었지만, 글쎄,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살인사건은 바로 체이스의 죽음이었다는 걸 상기해 보자. 이런 배경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외톨이 신세였던 카야에게 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과 ‘언젠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수군거림 뿐이다. 심지어 그의 집을 수색하던 보안관은 이렇게 발언한다. 과학자야, 마녀야?
드라마장르라고 명명되었지만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만큼,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적 요소가 존재한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카야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과 관객이 가진 정보량의 격차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점차 벌어지기 때문이다. 관객은 카야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에게 이입하게 되고, 자연스레 그의 무죄를 외치는 변호사 톰 밀턴(데이비드 스트라탄)이 승리하길 원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이 영화는 그 과정에서의 긴장을 추구하지도, 촉망받는 쿼터백 체이스를 살해한 용의자가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파헤치지도 않는다. 그저 카야의 삶과 자연의 풍경에 집중한다. 마치 체이스의 죽음은 곧 사라질 바람이었다는 듯이. 카야가 법정에 서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고, 최악의 경우 사형을 선고받게 될지도 모르는데도. 왜일까.
사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 지독하리만큼 익숙한 현대인이 카야, 아니, 습지로 대변되는 야생(혹은 자연)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라 해도 무방하다. 또한 그렇기에 그 과정엔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분류한 선악의 개념도,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규정된 윤리적 규범도 없다. 학교가 아니라 자연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다고 자처하는 카야는 이렇게 말한다. 습지는 늪이 아니며, 그곳엔 빛이 있다고. 다만, 습지가 늪을 품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 늪은 습지의 빛을 잠식하는 어둠이 아니며 우리가 관습적으로 진흙탕과 진배없이 부정적인 공간이라 상상하고 두려워한 늪은 습지의 전부가 아니다. 빛이 쏟아지는 저지대와 늪이 어우러진 습지라는 공간은 생태계의 한 면면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습지인가. 습지는 본디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닌(김태철, 2007)” 경계적 공간이다. 이러한 습지의 속성은 이름 있되 이름 없는 자, 세금을 낸 적 없어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도 주체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웠던 자, 그러하므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자였던 캐서린 카야 클라크의 속성과 겹친다. 특히 카야가 자신의 존재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했던 가족조차 잊고 살았다는 사실은 어느 날 문득 깨달아 슬퍼했던 모습을 보이는 씬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자신의 인간적 뿌리를 상실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동시에 그가 얼마큼 습지(자연)에 가까운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사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모더니티가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띠는 습지를 결국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았던 것처럼, ‘습지 소녀’로 불리며 배척받았던 카야 역시 마을사람들에게 자아성찰의 계기가 된다.
습지와 카야가 동화되었음을 반증하는 외부인은 비단 마을 주민뿐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미국 사회 전반의 이데올로기는 카야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카야와 일면식이 없는 사회복지과 주민은 그를 여성 전용 주거 시설로 보내려 한다.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외부인의 시선과 계산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카야는 그의 권유로부터 달아나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그는 제 뿌리를 옮기는 순간 자신이 말라죽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버림받은 소녀는 용기 있게 자립하여 삶을 일궈내는 자가 되어, 오래전 자신의 곁을 떠난 어머니를 기다린다. 습지는 그런 곳이다. 버려진 자신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고 키워준 곳이자, 가족들이 언젠가 다시 모일 지 모른다는 소망이 숨겨진 곳. 이렇듯 그 터전은 카야의 뿌리이자 인생이기에, 카야는 옮겨질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시선은 다르다. 국가 권력은 ‘젊은 여성’이 ‘습지에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마을 사람들은 듣기 거북한 소문을 퍼뜨린다. 심지어 습지를 말려 호텔을 지으려 한다는 자본주의가 밀어닥치기도 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지와 여성은 단죄의 대상이며 질서를 통해 교화가 필요한 대상, 즉 정복이 필요한 대상이기에.
카야는 이렇게 말한다. 갑각류의 껍질 안에는 생명이 있다는 걸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잊고 있다고. 카야는 습지를 자신의 입맛에 있게 변형시키려는 문명의 시도에 분노할 때 특별한 까닭을 읊지 않는다. 개발하지 않는 것이 사회에 더 도움이 되리라는 협상을 하지도 않으며, 생태계의 교란을 심각하게 걱정하며 성명을 내지도 않는다. 카야의 분노는 순수하다. 자신의 삶을 파괴하려는 시도 자체에 분개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자연과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 주는 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것도,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그저 우리가 그동안 분명한 목소리를 지녔던 자연과 여성을 얼마나 도외시했던지를 통렬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이에 따라 영화에서 아쉬운 면모를 찾을 수도 있었는데, 습지 구석구석에서 삶과 생존의 처절한 흔적을 읽어낼 수 있을 카야에겐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을 공간을, 카메라는 철저히 서정적인 시각으로 공간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의 제목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카야의 엄마가 말해주었다는 그 장소는 대체 어디일까. 카야의 손위오빠였던 제레미 "조디" 클라크(로건 맥레이) 또한 힘들면 그곳으로 달려 나가라고 말했던 그곳은. 영화를 보다 보면 사실, 그 제목이 맥거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카야는 자신이 힘들 때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장소를 점차 넓혀가지 않았나. 심지어 작가가 되어 카야는 누군가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될 수 있는 책을 출판하기까지 했다. 아빠의 눈에 띄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던 소녀의 성장은, 그를 끊임없이 체제에 맞추고자 폭력을 휘둘렀던 외부에 저항하고 자신만의 삶을 갈고닦아온 누군가의 삶은 그 자체로 눈부시기만 하다.
★★★☆
참고문헌
김완구. "특집 논문 : 생태위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 ; 야생지(wilderness) 철학과 생태학: 그 한계와 의미." 환경철학 0.14 (2012): 61-92.
김태철.“습지의 중심은 바닥이 없다” : 모더니티와 문학적 습지 인식.외국문학연구(2007):119-146.
전연희. "여성연극에서 전통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 한국연극학 15.1 (2000): 315-345. 캐롤 처칠의 <습지>(Fen)를 중심으로, Caryl Churchill's <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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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격 노출 뒤 드러난 세 남녀의 숨겨진 욕망
밀실을 소재로 얽히고설킨 세 남녀의 치정극.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히든 페이스>는 에로틱 스릴러로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원작만 봐도 수위 높은 노출과 파격적 설정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는 리메이크 버전의 기대 요소 중 하나. 에로틱 장인인 김대우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인지 극장에서 마주한 영화는 그 기대감을 충족할 만하다. 아름답고도 수위 높은 베드신의 완성도 뿐만은 아니다. 그 장면에 숨겨진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뜨거움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좀 일찍 찾아오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지휘자 성진(송승헌)은 오케스트라 첼리스트이자 약혼녀인 수연(조여정)의 영상 편지를 확인한다. 결혼 스트레스 때문에 해외로 떠난다는 내용을 본 그는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녀의 부재를 대신해 첼리스트 미주(박지현)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온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상류층의 삶에 염증을 느낀 그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과 흙수저라는 공통점을 가진 미주에게 매력을 느끼고, 술을 건하게 마신 비 오는 밤, 자기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낸다. 중요한 건 이 모습을 수연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 집 안에 있었던 밀실 공간에 갇힌 그녀는 이후 성진과 미주의 불륜을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작품을 제안받고 영화를 다시 보니 처음 볼 때와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와 DNA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발현되지 못한 욕망의 뿌리들이 저 먼 아래에서 서로 연결돼 있는 듯한 지점에 가장 이끌렸다.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우 감독은 <히든 페이스> 리메이크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기존 원작은 개연성과 디테일보다는 밀실 콘셉트를 밀어붙이며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욕망에 집중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주인공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의도가 결여되어 위험한 사랑의 테스트로만 비쳤던 게 사실이다.
김대우 감독은 원작의 단점을 메우고 자신만의 결로 다잡기 위해 계급 갈등을 집어넣는다. 성진은 개천에서 용 난 흙수저 케이스다. 그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된 건 단장인 엄마의 소중한 딸 수연의 힘이 크다. 자기 손을 일궈낸 결과물이 아닌 수연의 힘으로 엉겁결에 상류층이 된 그는 내색하지 않지만 수연의 꼭두각시처럼 생활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하소연할 때 없는 성진에게 슈베르트를 좋아하고 소주를 즐겨 마시는 흙수저 미주는 공감 대상이 되고, 서로 통한 마음을 바탕으로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욕정으로 분출된 것.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성진과 미주, 그리고 이를 밀실에서 본 수연의 관계는 더 복잡미묘하게 엮인다.
“인간은 포장이야” 오케스트라 단장이자 수연의 엄마 혜연(박지영)이 내뱉은 이 말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실력이 있든 없든 간에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 알맹이가 어떻든 남에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이 말을 역행하듯 감독은 성진과 미주의 베드신을 그저 아름답게만, 그리고 단순히 그들만의 복잡미묘한 사랑으로 그리지 않는다. 스포일러라서 밝힐 수 없지만 이 관계는 어떤 의도를 담고 시작된 위험한 불장난이다. 마치 <인간중독>의 진평(송승헌)과 가흔(임지연)과는 다른 결의 주인공들과 이야기로서 발전한다는 걸 내비치는 듯 말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밀실에 갇힌 건 수연이 자초한 일. 그 안에서 이들의 불륜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 설정 또한 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밀실에 갇히게 된 원작과 달리 수연이 스스로 들어가 갇히게 된 이유를 집어넣는다. 수연과 미주가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새로운 설정을 가미한 영화는 더 나아가 호의를 무기 삼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수연의 전사를 보여주며, 밀실에 갇힌 것 자체가 과거의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계급 갈등이란 무거운 주제 의식을 삽입, 밀실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차용한 에로틱 스릴러라는 고정관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음란서생> <방자전> <인간중독> 등 감독은 꾸준히 계급 갈등을 소재로 포장지에 감싸진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려왔다. 이런 점에서 <히든 페이스>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작에서 느껴진 애틋한 사랑과 연민은 이번엔 없다. 대신 정해진 계급 사회 안에서의 차가운 욕망을 발현하고 그에 따른 비틀어진 행복에 취하는 인물들과 결말을 보여준다.
<히든 페이스>는 김대우 감독의 진일보한 연출력을 보여준 건 맡지만, 마지막까지 관객들을 설득하기에는 힘이 달린다. 계급 갈등을 조장하는 부유층의 이미지는 피상적일뿐더러, 후반부 반전에 따른 관계 역전이 파격적인 놀라움을 주지만, 이를 도달까지의 속도감이 더디다. 결말에 따른 공허함도 크다. 이는 호불호가 갈릴 이유로 보인다. <주홍글씨> <상류사회> 등 소재와 이야기 흐름이 비슷한 영화의 기시감도 걸림돌이다.
이런 단점을 메우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송승헌은 꼭두각시로 살아갈 것인지,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갈등을, 조여정은 겉으로는 호의를 내비치지만, 그 자체를 족쇄로 삼아 사람들을 부리는 상류층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김대우 감독과 첫 협업인 박지현은 두 인물의 관계를 전복시키며, 반전을 꾀하는 모습을 잘 그린다. 특히 과감한 노출 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한다.
영화 제목처럼 세 인물은 숨겨진 자신들의 얼굴을 내보이고, 각자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취한다.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본연의 얼굴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잔혹한 사회에서 그나마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더 가져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게 공허함 뿐일지라도.덧붙이는 말: 극 중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4개의 즉흥곡 D.899 중 제3번, 그리고 교향곡 8번 ‘미완성’이 삽입되었는데, 각 곡마다 성진의 마음과 각 장면의 의미를 더 아로새긴다. 특히 초반 성진의 마음을 빼앗는 미주의 첼로 연주곡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후반부 이 영화엔 얄팍한 서정성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역설적으로 내보이는 듯한 교향곡 8번 ‘미완성’은 주의 깊게 들어보길 바란다.
평점: 3.0 / 5.0
한줄평: 원작보다 높은 수위, 원작보다 좋은 짜임새, 원작보다 아쉬운 속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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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도 못 쉬고 봤습니다..... 충격 결말, 시간 순삭 영화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세인트아가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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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천고결진> 예고편
“당신에게 입은 은혜를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어째서 나만 이 세상에 남겨둔 거야!” 〈천고결진〉 9월 15일(수) 밤 9시, 10시 왓챠 독점공개! 월/화/수/목 같은 시간 각각 2개의 에피소드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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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메리칸 트레이터> 메인 예고편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 정부는 평범한 여성을 반역죄 혐의 8건으로 긴급 체포한다.
그녀의 이름은 밀드레드 길라스 a.k.a '액세스 샐리'.
밀드레드는 독일 나치 선전부 장관 '괴벨스'(토마스 크레취만)의 지휘 아래,
미군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선전 방송을 진행해 미국 국민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는다.
그녀의 반역죄 유무를 결정하는 재판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쏟아지고,
유명 변호사인 '제임스 라플린'(알 파치노)이 밀드레드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