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
- 진부한 전개와 신파 등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아쉬움을 극복한 연상호 감독
- <반도>의 서대위에 이어 또 한 번 구교환 배우에게 딱 맞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물한 연상호 감독
- 사회에 불신과 두려움을 심어준 기생 생물. 기생 생물의 등장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 믿음을 지키려는 자 vs 믿음을 잃은 자의 대립과 상반되는 기생 생물을 대하는 태도
- 준경이 남편의 기생 생물에게 씌운 특수 가면의 의미
- 배신보다 큰 힘을 가진 믿음과 희생. <기생수: 더 그레이>가 말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
기생수: 더 그레이 (Parasyte:
The Grey, 2024)
기생 생물들 사이에서 믿음과 인류애를 외치다.
개봉일 : 2024.04.05.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SF, 액션, 크리처, 판타지
러닝타임 : 6부작, 총 300분
감독 : 연상호
출연 :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문주연, 유용, 이현균, 윤현길
개인적인 평점 : 3.5 / 5
연상호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느껴졌던 아쉬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더 그레이>는 크리처 장르의 신기원이었던 애니메이션 <기생수>의 세계관을 차용한 리메이크작이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지옥>, <괴이>, 영화 <부산행>,
<반도>, <정이>, <염력> 등의 매력적인 크리처, SF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가 연출, 각본을 맡은 작품들은 신선함과 상업성을 갖췄다는 호평과
진부한 전개와 신파가 너무 심하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다행히도 취향 차를 제외하면 혹평을 받을 일은
크게 없을 것 같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 분위기를 깨는 과도한 감정, 액션이
나오거나, 감정을 챙기느라 개연성을 놓치는 부분이 보일 때면 참 아쉬웠다. 그런데 <기생수:더
그레이>에선 이런 부분들을 최소화하여 이전 작품에서 느꼈던 아쉬움 들을 잘 만회해냈다. 크리처 물이라면 보통 누군가의 희생과 그에 따른 각성 과정이 나오기 마련인데 여기서 감정과 액션을 너무 폭발시켜버리거나
질질 끌게 되면 매번 봤던 신파라고 욕먹기 딱 좋지만, 이번엔 적당하게 잘 잘라냈다. 약간의 개연성 공백들은 회상과 대사를 활용해 친절하게 채운다. 멋있는
방법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빈틈은 잘 막아냈다. 덕분에 초반부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의 분노와
공황도 후반부에 가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개연성과 감정 다음으로
걱정했던 건 액션과 비주얼이었다. 손이 아닌 머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생 생물이라니. 이런 설정 탓에 캐릭터의 외관이나 액션이 좀 바보같이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으나
그 부분도 잘 극복했다. 개인적으론 신체가 변형되는 것과 촉수 괴물을 싫어해서 초반부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불쾌하지 않게 적당한 선에서 구현해낸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촉수와 총만을 이용한
액션이었음에도 작위적이거나 속도가 떨어지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아 액션 또한 괜찮은 편이다.
캐릭터의 밸런스도 좋다. 전체적으로 출연 배우들의 능력치가 좋아서 연기 구멍이 크게 없고 극 중 캐릭터의 설정과 합도 좋다. 특히 구교환 배우의 강우 캐릭터가 공감이 될 듯 말 듯하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인 게 딱, 배우와 잘 맞았다. 배우가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매력적이었던 걸수도
있지만, 애초에 이 캐릭터 자체가 배우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이전에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맡았던 <괴이>에선 구교환
배우의 매력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번엔 <반도>때처럼
배우에 딱 맞는 캐릭터 구성을 제대로, 매력적으로 해낸 것 같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다양한 크리처가 나오는 박력 있는 액션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는 시청자보다는 그 안에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크리처 물로서 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넓은 세계관과 다양한 기생 생물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조금 아쉽게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기생수 설정만을 가져와 이야기 자체를 새롭게 만든 거라 원작과 비스무리한 리메이크작은 아니니 이 부분을
고려하여 선택하길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기생 생물과 함께 사회에 파고든 강력한 불신
인간은 강하지 않다. 신체적인 장점이 없어 커다란 짐승 한 마리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을 쳐야 살아남을 수 있고, 자연재해 앞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한곳에 똘똘 뭉친 인간들은 각자의 생각과 능력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와 자신의 삶을 지켜왔다. 사회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사회에 종속되어 살고 있다. 어쩔 땐 든든하고 어쩔 땐 불안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누군가를 믿으며, 이 사회가 아직은 살만한 것이라 애써 믿으며 대한민국이란 사회와 그
아래의 작은 사회들을 지켜가고 있다. 사회를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힘이 아닌 서로를 향한
믿음이다. 인간이 서로를 믿지 않고 미워한다면 사회는 금방 와해되고 말 것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 ‘믿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생 생물들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기생
생물은 사람의 뇌를 먹어 그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다. 감염되기 전과 생김새는 달라지지 않지만, 정신과 신체적 능력치는 기생 생물과 동기화된다. 기생 생물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강력한 힘을 드러내며 명령받은 대로 인간을 먹어치운다. 얼굴에 변형이 일어나기 전까진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기생 생물을 인식한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지는 건 당연하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는
인물들과 믿음을 잃은 인물
준경이 기생 생물에게 씌운
특수 가면의 의미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이런 삭막한 배경과 여러 역경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공생하는 인물들을 통해 믿음과
공생의 가치를 보여준다.
주인공 수인은 어릴 때
가정 폭력을 당했다. 사람들은 어린 수인을 ‘자기 아빠를
신고한 독한 애’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래도 수인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른이 되어 열심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이번엔 또 어떤 미친놈이 수인을 죽이려
뒤따라온다. 수인은 언제나 불행하고 외로웠고, 수인을 둘러싼
세상은 항상 그녀를 배신했다. 강우는 돈을 벌기 위해 조폭 조직 망나니파에 들어갔다가 한순간에 배신을
당하고 만다. 조직의 리더뿐만이 아니라 끝까지 믿었던 조직의 동생마저도 그를 배신한다. 수인을 구해준 형사 철민은 가까운 사이였던 원석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는다.
세 사람은 모두 세상에, 자기가 속해있던 조직에서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을 보인다. 수인은 믿을 구석 없어 보이는 강우를 살리기 위해 절벽 끝에서
손을 뻗었고 하이디는 자신을 죽이려 끝까지 쫓아온 준경을 살리기 위해 뒤에서 다가오는 기생 생물을 타격한다. 강우는
배신당했단 걸 알면서도 죽어가는 규민(조직원 동생)을 챙기려
했고 더 이상 엮이지 않아도 될 수인의 일에 뛰어들어 수인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수인에게 손을 뻗는다. 철민은 수인이 기생 생물이 되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있지만 끝까지 수인을 지키려 했으며 원석이 괴물이라는
제보를 듣고도 그를 바로 고발하지 않는다. 철민은 수인과 원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심은 갖고 있지만
끝까지 둘을 믿으려고 노력했다.
수인, 강우, 철민과 반대쪽에 서있는 인물은 더 그레이 팀의 팀장 준경이다. 준경은 기생 생물에 감염된 남편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고, 그에게
공격을 당해 귀 한쪽을 잃는다. 남편을 빼앗았기 때문일까, 준경은
기생 생물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기생 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기생 생물이 된 남편을
미끼로 이용한다. 단, 얼굴이 보이지 않게 가면을 씌운 채로
말이다. 경찰서에서 상황 설명회를 가질 때, 서장이 ‘그래도 사람(준경의 남편)을
저렇게 괴롭혀도 되냐’고 말하자 준경은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선 안돼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잘린 귀와 손등의 상처를 보여준다. 기생 생물이 된 남편을 목격한 순간부터 준경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가장 믿었던 남편이 괴물이 되었는데 과연 누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수인과 하이디는
끝까지 준경에게 믿음을 보여준다. 원석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하이디는
특수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 그대로 준경을 바라보고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 준경을 지키기 위해 기생 생물을 타격한다. 준경은 이런 하이디의 모습을 보고 마지막엔 ‘정수인은 괴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수인이 강우의
도움을 받지 못해 특수 가면을 벗지 못했다면 이러한 극적인 화해 장면은 보지 못했을 거다.
준경은 남편의 모습을 한
기생 생물에게 특수 가면을 씌워 얼굴을 가리고 사냥개로 이용한다. 이제 그는 남편이 아닌 괴물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성적인 판단이지만 너무도 냉정한 모습이다. 보통
좀비물엔 “내가 아는 가족의 모습 그대로인데, 어떻게 죽이지? 얘가 진짜 괴물/좀비라고?”하는
딜레마와 슬픔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철민도 잠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준경과 대립을 이루는데 준경은
단호하게 남편을 괴물로 분류한다. 그런데 남편이 원석에게 죽은 후 그의 가면을 벗겼을 때 준경은 잠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괴물에게 씌워둔 가면을 벗겨보니 내가 알던 남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기생 생물에게 씌워둔 가면은 준경을 단호하고 강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인격이 그대로 남아있는 수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준경과 수인이 처음 창성랜드에서 마주쳤을 때 원석이 남편을 공격하는 바람에 준경은 급하게 차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준경은 수인과 얼굴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고 다시 돌아왔을 때도 수인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바로 가면을
씌운다. 마지막쯤에 와서야 준경은 가면을 쓰지 않은 수인/하이디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다. 그리고 무조건 인간을 해하는 게 아닌, 인간에게
믿음을 주는 기생 생물 하이디를 목격하고 마음을 바꾼다.
배신보다 큰 힘을 가진
건 믿음
원석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인간 사회를 배신하고 기생 생물들에게 빌붙는다.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도 매일 비슷한 월급만 받고 신세도
못 펼 바엔 기생 생물 하나를 인간 사회의 머리, 꼭대기 쪽에 앉히고 자신도 한몫 받아먹으려는 속셈이다. 이기적이고 멍청해 보이지만, 왜 배신을 했는지는 이해가 간다. 원석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배신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원석과 목사의 기생 생물은 배신을 반복하며 인간에게도 기생 생물(경희)에게도 적이 되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목이 날아가고 만다.
수인과 하이디, 강우는 본인에게 하나도 이득 될 것이 없지만 사회를 위해 희생한다. 누가
죽든 누구 머리에 기생 생물이 앉든, 그건 수인과 하이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사회는 그들을 괴물이라 칭하며 공개 수배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수인, 하이디는 기생 생물을 잡기 위해 풍물축제 현장으로 향하고 강우는 그들의 뒤를 따른다. 그저 조용히 살아만 있는 것이 목적이었던 하이디는 수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수인에게 물들어 그녀의 믿음을
따라 해보기에 이른다. 어차피 내 알 바도 아닌데 왜?라는
의문이 드는 비합리적인 선택과 믿음이었지만 이 선택과 믿음은 수인과 하이디, 강우.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구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희생과 믿음이지만 그럼에도
원석의 기생 생물은 최용재
의용대장 기념관에서 ‘사람들은 이 전쟁 기념관처럼 머리만 기억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후대 사람들은 최용재 의용대장만 기억한다. 사실 사회가 그렇다.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만 기억하고 그 밑에
있는 이들의 노력, 희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여전히 누군가는 사회를 위해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 비합리적인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두 종류의 생명체와 극중 사회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믿음과 희생이 이 사회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공생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반복해 이야기한다.
어디선가 툭 나타난 기생
생물처럼 언제부턴가 나타난 불신과 혐오가 사회 여기저기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큰 불안감과 분노를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가 <기생수: 더 그레이>를 보며 느껴야 하는 건 단순한 장르적 쾌감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