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17 15:03:45
3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북미 박스오피스 올해 최저 수익 기록, 위기에 빠진 극장가

극장가의 위기는 팬데믹 이후 매년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최근 극장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가 총 5,470만 달러로 올해 최저 주말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파라마운트의 신작 <노보케인>이 누적 수익 870만 달러로 1위를,
<미키 17>과 <블랙 백>이 누적 수익 약 750만 달러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하며
한 주말 동안 단 한 편의 영화도 1,000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썰렁한 극장가에 곧 개봉을 앞둔 디즈니의 실사영화 <백설공주>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펼친 인상적인 가창력과 연기력을 뽐낸 레이첼 지글러가 주연을 맡은 <백설공주>는
북미 개봉 첫 주 5,000만~5,6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대받고 있습니다.

국내 극장가 역시 한산하긴 마찬가지입니다.
1위를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주말 관객 수 32만 명을 불러들여 누적 관객 수 26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인기 애니메이션을 극장판으로 제작한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이 누적 관객 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2위를,
교황 선거를 다룬 <콘클라베>가 지난주에 이어 3위에 올랐습니다.
가장 최근 개봉했던 디즈니 프린세스 실사 영화인 <인어공주>가 국내 누적 관객 수 64만 명에 그친 가운데,
오는 19일 개봉하는 새로운 프린세스 실사 영화 <백설공주>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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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한다고 XX! 「러브 라이즈 블리딩」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을 지키겠다는 판단이자 결의'다. 사랑에 대한 그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사랑이란 일종의 자기 파괴다. '모든 이해란 오해'라는 니체의 말을 받아들였을 때도, 사랑은 일종의 자기 파괴다. 이해할 수 없는 필연적인 오해를 지키겠다는 결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에서 '로맨틱'은 잠깐이고 지리멸렬한 갈등은 법칙이다. 성공하는 사랑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에 밖에 없다. 진짜 깊은 사랑은 서로를 파괴한다.
로즈 글래스가 연출한 「러브 라이즈 블리딩 Love Lies Bleeding」의 사랑은 어떤가. 헬스장 매니저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루’ 앞에 보디빌딩 대회 우승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 ‘잭키’가 나타난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그들은 스테로이드(?)를 나눠 맞으며 사랑을 나누고, 잭키가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는 날에 함께 지겨운 도시를 떠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가정폭력을 당하는 언니를 도우려던 '루'의 시도가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결국 '잭키'는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폭력을 숨기기 위해선 더 큰 폭력이 필요한 법. 피비린내 나는 그들의 사랑은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단 주요 캐릭터들의 존재감이다. 여성 보디빌더 '잭키'를 연기한 케이티 오브라이언의 무게감은 말할 것 없고,'루'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지금껏 보여준 연기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지겹게 느껴지진 않았다. 약간 우스꽝스러운(변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음에도 위엄을 잃지 않는 에드 헤리스는 명불허전이다. 저런 머리를 하고 있는데도 무서운 건지, 저런 머리를 하고 있어서 무서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렬한 캐릭터 뒤로는 미덕과 아쉬움이 동시에 있다.
우선, 테마적인 면에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힘'이다. 이 '힘'이라는 것이 가질 수 있는 양태를 다면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영화적 미덕이다.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발현되는 구체적인 형태와 성격은 세계의 인구수만큼 많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인 잭키를 보자.
잭키
이 영화에서 '힘'은 중요하다. 우선 '잭키'부터가 순수한 힘을 쫓는 보디빌더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도망쳐 거리의 삶을 살았던 '잭키'에게 힘은 곧 생존이다. 순수한 힘을 향한 '잭키'의 집착은 영화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사격장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 '잭키'는 총 같은 도구보다 육체 본연의 힘을 더 믿는다고 말한다. 체육관 앞에서 몇몇 남자들과 난투극을 벌인 후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루'에게 '잭키'는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있어"라고 말하는데, 이는 '잭키'가 '루'에게 처음으로 정색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잭키'의 힘은 미숙하고 약하다. 그것은 버려진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기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잭키'가 격투기 선수나 역도 선수가 아닌 보디빌더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사실 보디빌딩은 '힘'을 쫓는 운동이 아니라, '미美'를 쫓는 운동이다. 실제로 보디빌딩의 번역어는 '육체미'다. 아름다운 몸(물론 여기서 '아름답다'의 기준은 근육의 크기, 강도, 균형 등이긴 하다)을 가꾸는 시합이지, 강력한 몸을 가꾸는 시합이 아닌 셈이다. 엄밀히 말해 보디빌딩은 스포츠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잭키'에게 원한 건 강한 게 아니라 강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잭키'는 시도 때도 없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근육을 관찰하고 포즈를 취하고, 누군가에게 강해 보이기 위해 불필요하게 선을 넘기도 한다(사격장 면접 씬과 헬스장 앞 난투극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으면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 기대도 어리숙하고 헛되다. 영화 속에서 묘사된 보디빌딩 대회를 보면 그다지 큰 규모도 아님을 알 수 있는데, 그런 대회에서 상을 몇 개 받는다고 인생이 크게 변할 순 없다. 감독이 어디까지 현실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애초에 훈련만큼 휴식과 영양, 값비싼 불법 약물 등이 더 중요한 보디빌딩에서 '잭키' 같은 사람이 성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작중에서 '루'가 '잭키'에게 스테로이드를 권유했을 때 '잭키'는 매우 당혹스러워하는데, 이를 보면 그녀는 한 번도 약물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이때 '잭키'는 '루'에게 스스로를 내추럴*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신념이 있어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루'가 스테로이드를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말하자 '잭키'는 곧바로 중독에 빠진다).
결과적으로 '터프함', '강함'에 대한 잭키의 어리숙한 집착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든다. 사실 영화 속에서 '잭키'가 살인을 할 이유는 딱히 없다. 물론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폭력성 과다, 숨기고 싶은 과거(잭키가 처음 도시에 왔을 때 일자리 알선을 위해 '루'의 형부와 원나잇을 했었다) 등이 엮여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살인을 설명하긴 무리다.
정작 당사자인 '루' 역시 '잭키'의 개입을 원치 않았음에도 굳이 그녀를 돕겠다고 나서 살인까지 저지른 건 순전히 '잭키'의 어리광이다. 물론 그 미숙한 집착이 개인의 개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문화 탓에 자라났다는 사실도 분명하지만.
*불법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보디빌더. 흔히 피트니스 업계에서 내추럴과 로이더는 함께 경쟁하지 않는다.
랭스턴
그에 비해 '랭스턴'(루의 아빠)이 가진 힘에의 의지는 결이 좀 다르다. 대형 사격장의 주인이자 총기 밀매 업자인 '랭스턴'은 실질적인 힘을 추구하고, 실제로 힘을 가지고 있다. '랭스턴'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의 유력자다. 사업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능력도 가지고 있고, 막대한 부를 축적해 공권력까지 손에 넣고 주무른다.
'랭스턴'이 가진 힘에의 의지가 어디서 비롯된 건지는 영화 속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어쨌든 영화 속 시점에서 그것은 '잭키'의 자기방어기제 단계는 넘어선지 오래로 보인다. 총을 좋아하냐는 자신의 질문에 '잭키'가 총보단 스스로의 힘을 믿는다는 엉뚱한 대답(사격장 매니저를 뽑는 자리였으니까)을 했을 때도, '랭스턴'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잭키'를 채용한다. 아마도 그것은 '잭키'가 힘에 대한 미숙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언젠가 자신을 위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지 않았을까(실제로 그는 '잭키'를 '처리'의 도구로 이용한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의 근육을 구경하는 '잭키'에게 사격을 경험시키면서 "진짜 '힘'은 이런 것"이라고 위계(?)를 보여주는 장면 역시 '랭스턴'이 가진 지배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가진 '랭스턴'의 지배 욕구는 단순하지 않고, 그래서 그의 욕구 역시 불완전하다. '랭스턴'은 힘이나 돈으로 찍어누르는 1차원적인 지배를 원하지 않고, 좀 더 완결적이고 총체적인 지배, 그러니까 '완전한 장악'을 원한다. 그에게 인간이란 사무실에서 애지중지 기르는 애완용 벌레 같은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랭스턴'이 딸인 '루'를 자신의 사업(총기 밀매)에 끌어들이려고 한 것 같은 묘사를 생각해 보자. 보통 영화에서 성공한 갱이나 마피아들은 자식을 범죄로부터 멀리 떨어뜨려놓으려 하기 마련인데, '랭스턴'은 '루'에게 사업을 가르쳐 주고 일에 방해되는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까지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랭스턴'의 묘사로 볼 때 그에게 인력이 부족해서 '루'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랭스턴'은 '루'를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다. 다만 그에게 사랑이란 '자아의 연장'이자 '힘의 확장'과 유사한 개념이었을 뿐이다.
'루'의 언니가 가정폭력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을 계기로 '랭스턴'과 '루'는 불편한 재회를 하게 된다. 이때 '랭스턴'이 '루'를 대하는 방식은 결코 미움이나 혐오가 아니다. 미움보다는 '그냥 내 말 듣고 시키는 대로 했으면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사서 고생이냐'는 전형적인 K-아버지식 태도에 가깝다. 나아가 '잭키'가 저지른 실수 탓에 '루'가 곤경에 빠졌을 때도 '랭스턴'은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루'를 돕는다.
그러나 극의 후반부 결국 그의 사랑은 힘을 갖지 못한 채 막을 내리게 된다. 그의 사랑은 끝없는 자기 확장 욕구의 발현 방식이었을 뿐, '자기 파괴의 감수'까지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가 '랭스턴'의 입지를 흔들만한 비밀을 폭로하려 하자, '랭스턴'은 곧바로 돌변했다.
데이지와 베스
작중 양아치 남편 JJ로부터 끊임없이 폭행을 당하면서도 그를 떠나지 못하는 '베스(루의 언니)'와 '루'를 짝사랑하는 '데이지'가 가진 힘의 욕구는 수동적이고 퇴행적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에게도 욕구가 있다.
'베스'는 양아치 남편에게 가정폭력 피해를 당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떠나지 못한다. 일반적인 가정 폭력 피해자들의 경우와는 다르게 '베스'는 강력한 무력과 재력을 가진 아버지가 있음에도 JJ를 떠나지 못하는데, 이는 '베스'가 가진 왜곡된 사랑 탓이다. (작중 '베스'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지 않지만) 심각한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한 자신을 타이르는 '루'에게 '베스'는 "너는 (자기 파괴적인) 사랑을 몰라"라며 JJ를 옹호한다. 이에 더해 '베스'는 '루'와는 달리 아버지 '랭스턴'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던 듯 묘사되는데, '베스'는 사랑이 가진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온몸으로 수용하지만(JJ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악행 역시 감내했다) 그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그래서 이해될 수 없는 타인을 지키겠다는 결의로서 사랑은 무비판적인 수동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은 상대를 향한 적극적인 행동 양식이다. 베스가 진정 JJ를 사랑했다면, JJ의 인격적인 성장을 위해 힘썼을 것이다. 그게 JJ를 떠나는 방식이 된다고 하더라도.
데이지의 경우는 전형적인 '왜곡된 사랑' 그 자체다. 우선 영화는 데이지의 미성숙을 도드라진 방식으로 보여준다. 다 큰 어른이지만 우유와 사탕을 입에 달고 살고, 유아적인 표정과 말투를 가졌다. 다 빠져버린 치아의 상태를 봤을 때 아마도 그녀는 마약을 남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녀는 '루'에게 대마초를 권유하기도 한다).
'데이지'는 '루'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짝사랑을 가지고, 이에 대한 '루'의 반응으로 봤을 때 그 세월도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항상 기름진 머리로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데이지는 '루'를 자신의 답답한 인생에서 탈출시켜줄 구원자처럼 여긴다. 그들이 체육관 화장실에서 처음 마주치는 장면을 보면, '데이지'를 귀찮아하는 '루'는 마치 어린아이 어르듯 돈을 건넨다. 그러자 '데이지'는 상처받은 듯 실망하지만 이윽고 돈을 보고 웃는 낯을 보이는데, 이와 같은 '데이지'의 양가적인 모습은 영화 내내 계속 반복된다. 특히 시체를 싣고 가던 '잭키'를 목격한 이후, '데이지'는 '루'의 약점을 가지고 선을 넘을 듯 말 듯 교묘하게 그것을 활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데이지'는 순수하게 '루'를 사랑하는 순애보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데이지'는 '루'를 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계속해서 '잭키'와 JJ의 자동차와의 연결고리를 묻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삶에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힘(목격자의 지위)을 가지게 된 '데이지'의 행동을 보았을 때, '데이지'의 사랑은 어린아이와 같은 형태의 퇴행적인 자기애에 가까운 셈이다.
루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힘을 가지는데 성공하는 인물은 '루'다. 오직 '루'만이 주체적으로 '자기 파괴'의 결단을 내리는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우선 '루'는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랭스턴'의 악행을 스스로 거부하고 독립에 (반쯤?) 성공한 상태다. '잭키'를 먼저 발견하고, 관계를 리드하는 것도 '루'다. '잭키'를 위해 매일 계란 노른자를 분리해 주고, 스테로이드를 제공한다(비록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러브 라이즈 블리딩」 속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파괴를 겪는다. '잭키'는 평생을 꿈꿨던 무대를 망치고 살인자가 됐고, '랭스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군 왕국을 잃었으며, '베스'는 엉망이 된 채 JJ를 잃고 '데이지'는 배신당한 채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이 중에 타인을 위해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아를 희생한 것은 '루'가 유일하다.
'루'는 평생 아버지의 악행을 혐오하며 그와 닮지 않기 위해 우악스럽게 살아왔지만, 결국 '잭키'를 위해 피를 두 번 묻힌다(엉망이 된 JJ의 시체를 숨기며 첫 번째 죄를 저지른 후 영화의 결말에 또 한 번 결정적인 죄악을 저지른다). '잭키'를 위한 '루'의 자기 파괴적 희생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요소는 바로 담배다. 작중에서 '루'는 금연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하면서도 계속 담배를 끊지 못하는데(금연 교육 테이프를 들으면서도 담배를 피운다), '잭키'가 떠나고 난 후 금연을 선언하고 실제로 금연에 성공한다.
그러나 '잭키'와 함께 사막을 떠나던 중 반쯤 죽었던 '데이지'가 다시 꿈틀거리고 '루'가 이를 다시 처리(?) 하는데, 이때 결국 '루'는 '데이지'가 가지고 있던 담배를 꺼내 물어버린다. 이 장면에서 '잭키'는 세상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루'는 타자를 지키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도덕적인 자기 파괴를 감행했고, 결국 (담배처럼) 자기 자신을 갉아먹을 것이 분명한 '잭키'와의 사랑을 스스로 선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 '랭스턴'의 저택에서 '루'와 '잭키'가 힘을 합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랭스턴'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잭키'의 거대화(?)다. 그러나 이 거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 다시 말해 '잭키'가 그토록 갈망하던 '커 보이는 것 / 강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힘(거대화)'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목숨을 걸고 '랭스턴'의 저택으로 돌아온 '루'의 용기 덕이었다.
'잭키'는 모든 것을 잃고 친동생에게 전화해 "(너무 힘드니까) 넌 사랑하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루'는 (베스와) 소리를 지르며 싸우다 가다도 "언니 사랑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힘에 대한 갈망이 가장이 없었던 '루' 만이 진짜 사랑에 도달해 '힘'을 얻었다.
카메라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 힘을 갈망하는 마지막 주체는 카메라다. 이 영화에서 '형식'은 끊임없이 저 자신을 드러낸다. '루'가 손으로 직접 막힌 체육관 변기를 뚫고 있는 매우 부담스러운 클로즈업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후 땀에 젖은 육체와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접사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종교화의 색채를 띤 사막 위의 생명체와 기물들을 '몽타주'하는가 하면, 폭력을 전시하듯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연극적인(극단적인) 조명 연출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다가, 종국에는 (약간?) 당혹스러운 CG까지 나아간다. 저 자신의 영화적인 스타일리시를 백분 활용하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카메라 역시 힘에 대한 욕구(사랑)가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사랑은 어디를 향하며, 또 성공했을까?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어느 영화나 다 그렇듯) 영화를 본 관객마다 다를 것인데, 나의 경우 개인적으로 반쯤은 성공했고 반쯤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우선 개인적으로 카메라가 [내러티브 - 인물]보다 앞섰다고 보았다(앞서 언급한 클로즈업/조명/인서트들이 내러티브를 돋보이게 한다기보단 저 자신의 스타일에 더 집중한다). 이를테면 '잭키'가 스테로이드 취해 '루'를 토해내는 환상을 보는 장면 같은 겨우, '잭키'가 겪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잭키'가 자신 속에 있는 '루'를 토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야기의 맥락('루'가 '잭키'의 살인을 수습하고 있을 때다)으로 봤을 때 만약 토해내야 한다면 '루'가 '잭키'를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이와 같은 스타일리시의 과잉은 캐릭터와 내러티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저 자신의 형식에 더 취하는 것으로 보여 아쉬웠다. 그러나 이는 A24 영화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로즈 글래스 감독의 성향이기도 해서, 사실 미덕의 문제라기보단 취향의 문제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종횡무진 활보하는 '스타일'의 수위를 조금만 더 낮췄다면 '80년대 미국 시골'이라는 배경과 '가부장제를 부시는 아웃사이더'라는 소재와 현대적인 스타일, 이 세 가지 부조화스러운 영화적 요소들이 조금 더 매력 있는 간극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인서트 컷들만 남기도 눈에 튀는 연출들을 배제했다가 영화의 후반부 거인화 장면이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왔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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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틴 코미디로 그냥 넘어가기엔 좀 그렇지
난 인기가 있는 사람일까? 내 뒤에 있는 아빠는 인기가 많다. 사진작가로서 잘 나간다. '매사에 겸손해라'라고 하긴 했지만 인기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방송 출연도 하고 책도 나오지. 사실 아빠가 부럽다. 나도 내가 미래에 직장을 갖고 싶은 분야에서 전문가 대접받고 싶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이런저런 경험치도 많이 쌓았다. 뭐 26살이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경험과 공부들이 미래의 성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그냥 별 볼일 없는 20대 중반의 평범한 사람이다. 공부할 것 많은데 오늘 4시에 일어났으며 한 일이라곤 이 글을 쓰는 것 빼곤 없다.
가끔 저 인스타그램 안의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부럽다. 나도 이 노예생활 끝나고 좋은 직장 가져서 저렇게 살고 싶다. 저렇게 인기가 많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나도 저 사람들처럼 무언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까? 내 이름 아래에 '인기 많다'는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느닷없이 이불 킥을 유발하는 20대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으으. 과연 나는 관심받기 위해 어떤 미친 짓까지 했단 말인가. 홍상수의 영화 몇 편이 생각나며 이 모습이 과연 나와 다른 점이 있을까 싶어 픽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지만 나의 흑역사는 어마 장장하니 오답노트가 필요하다. 37살, 미국의 어느 곳에서 실시간으로 흑역사를 갱신 중인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이런 우리에게 자기의 흑역사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생중계하고 싶다고 한다. 넷플릭스로 가보자.
20년이 사라졌다
호주에서 전학 온 10대 여학생 스테프. 스테프는 새로운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이고 싶다. 뭔가 열심히 연구하는 스테프. 그녀는 인기가 많아지고 싶었다. 고등학교 4학년이 된 그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내 치어리더 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내 원했던 목표들이 점점 이뤄지는 걸 확인하는 스테프. 인싸가 되기 위해 보내왔던 것들이 효과가 있어 나름 뿌듯하다. 스테프의 행보에 화룡정점을 찍는 것은 역시 섹시한 남자 친구다. 블레인을 점찍어 놨었던 스테프. 역시 인생은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게 맞다. 스테프는 블레인과의 연애에 성공한다. 그렇게 원하는 것들이 다 만족됐던 10대. 학교 치어리더 팀 단장이었던 스테프는 자신감 풀 충전의 상태로 치어리더 공연을 나선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났다. 받아주는 사람 없이 뒤쪽으로 떨어져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20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던 스테프. 17살이었던 그녀가 37살의 몸을 갖게 되었다. 살도 찌고, 운동능력도 떨어졌다. 예뻤던 10대 시절은 이제 없다. 스테프에겐 꿈이 있었고 목표도 있었다. 졸업식의 퀸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스테프. 상큼 발랄한 꿈과 희망이 사라졌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법도 했지만 그녀에게 포기할 수 없던 것이 있었다. 스테프는 친구 마샤가 다니던 학교의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점을 이용해서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영화는 몸은 37살이지만 정신연령은 17살인 스테프의 학교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아
영화는 편하다. 이 영화는 편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영화다. 어려운 메타포도 없고 긴박한 서스펜스도 없다. 톡톡 튀는 주인공의 매력과 코미디가 함께 있어 보기 어려운 작품은 아니다. 또 후반부를 넘어가면 묵직한 메시지까지 안고 있다. 주인공은 내적 성장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삶의 교훈까지 얻게 된다. 이 영화는 쉽게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던지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좀 뻔뻔한 느낌이었다. 이 뻔뻔함이 능글맞아서 장점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쉬운 영화의 특성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 것이다.
2002년과 2022년 사이의 시간 차를 묘사한 거 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비판은 충분히 유효타로도 작용했다. 예를 들어 스테프의 입에서 '게이'라는 단어가 나오며 유머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이어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어 '미안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장면을 이렇게 구성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뭐 그리 불편한 게 많아?'라며 흔히 말하는 '불편러'를 비판하고 싶었던 의도는 좋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에 대해 반대의 시각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학교 안의 어떤 단체에 대해 특정 셀럽이 혐오 집단으로 규정했다는 말은 영화에서 나름의 균형감각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인 사람들의 움직임의 허상도 꼬집었으니 영화가 풍자하고 싶었던 것들은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다. 그러나..
모호하게 퉁 치는듯한 이야기
영화는 구멍이 많다. 37살이 고등학교를 다시 다닌다? 아무리 교장이 친구라도 해도 설정에 대한 큰 구멍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친구가 교장이라고 37살이 고등학교 생활을 재개한다고 하면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날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영화의 만듦새를 지나치게 따지는 건 살짝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개연성, 핍진성, 현실성을 따진다고 했을 때 내가 최근에 재미있게 봤던 <닥트 스트레인지 2>나 <범죄도시 2>도 말이 안 될 것이다. 마 석도 같은 괴물 형사나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마법사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 설정의 현실성 문제는 또 다른 부분의 단점을 낳는다. 20년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던 인물이 며칠 만에 치어리더 팀의 수장이 되어 춤을 춘다. 최소한의 재활훈련도 없이 이 사람은 모든 일들에 무리가 없다. 또 영화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은 '스테프의 혼수상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부분일 것이다. 이 범인의 존재가 굉장히 쉽게 드러난다. 그런데 쉽게 드러나기만 하고 끝나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보여줬던 문제 해결 방식은 솔직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내 입장이라면 그렇게 안 했다. 또한 극에서 한 모녀관계가 있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모녀다. 모녀로서의 유대감을 묘사도 없이 '그냥 그래야만 한다' 식으로 어물쩡 넘어간다.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들 성격 묘사가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이 주위 사람들의 성격은 주인공의 개과천선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중요할 것이다. 친구들에 감정 이입해서 대신 말해주는 사이다가 터져야 극에 집중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들이 착하다. 후반부의 강한 임팩트를 위해 인물이 희생된 것이다. 이런 단점들을 품고 있다 보니 극의 메시지에 강하게 집중이 안 된다. 끝에 하고 싶은 말을 빡 하기 위해서만 이뤄지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이야기했듯 단점이 많은 영화지만 장점도 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나에게도 적용된다. 아직도 인간관계의 부담감을 느끼는 나. 나름 학습해야 했던 관계에 대해서 10대 때 놀았으니 이 대가는 필연적이다. 그래서 가끔 인스타그램의 누군가들이 부럽다. 내 짝은 누굴까?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못 받을까? 난 누군가에게 진심이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이 마음이 아닐 것 같다. 이렇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영화는 힘 있는 메시지를 보낸다. 극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긴 하나 어렵지는 않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감동이 분명히 있긴 할 것이다. 후반부 어떤 인물의 입에서도 나오듯 현실은 인스타그램 밖에 있다.
또 주인공을 맡은 레벨 윌슨의 열연이 돋보인다. 레벨 윌슨은 미국에서 유명한 개그우먼이자 여배우라고 한다. 코미디/로맨틱 코미디 장르 장인으로 유명한 그녀. 연기라는 주종목을 살린 탁월한 열연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또 인스타그램 인기의 허상을 묘사하는 방식은 적절했다. 이것 하나 때문에 좀 많은 게 희생된 것 같긴 하지만 나 같은 유사 아웃사이더들에게 좋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이외에 이런 코미디 요소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무난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 안무 짠 배우들이 고생 많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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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의 부모에 대하여
이 글은 영화 [매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우자를 먼저 잃은 자에 대한 단어는 있어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뜻하는 단어는 없다고 했다.
자식을 먼저 잃은 슬픔은 마치 창자가 끊어진 슬픔과 같아서 단장지애. 라고 부른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간접적으로나마 마음을 표현할 뿐 그들의 마음을 정형화할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영화 [매스]는 겉으로 봤을 때는 총기 사고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피해자의 부모와. 사건의 가해자 부모가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 피해자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순간도. 한 사건을 통해 용서에 다다르는 이야기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오히려 끊어진 창자가 다시 이어지는 것이 쉽지 않을까. 하고 느낄 정도다.
피할 수 없는 문제 같았던 방, 그리고 제목의 이유;갑갑하고도 현실적이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의 주 무대( 혹은 거의 모든 무대)는 교회에 있는 한 방이다.
초반 부분을 꽤 집요하게 그 방에서 일어날 대화와 방의 "적합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이 방이 가지는 의미가 꽤 클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방은 그 어떤 상담 장소보다도 좁고. 답답해 보인다. 물리적인 환기를 위한 창문도. 심리적인 환기를 위한 피아노도 놓여있지만. 실제로는 눈물을 닦을 티슈마저도 사치(혹은 사족)처럼 보이는 공간이다. 덕분에 불안함과 함께 신중함이 공존한다.
이 공간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담은 영화의 제목이 왜 매스(Mass)여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어떤 것의 물리학적인 무게(1)를 뜻하긴 하지만, 미사(2)도 상징한다. 또한 스펠링은 다르지만 엉망진창(Mess)을 의미하는 단어(3)와도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은 재미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자신의 아들이 일으킨 실질적인 사건으로 인해 생긴 마음의 무게(1)는 살아남은 자들의 남은 삶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3). 피할 수 없는 책임과 동시에 죄의 승화를 이뤄야 하는 곳은 뜬구름을 잡는 천국이나 화려한 장소가 아니어야 함은 당연했고, 그곳에서 이뤄지는 네 사람의 대화(2)야말로 스스로에 대한 구원도 함께 이룰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 장소, 그리고 실질적인 주제까지도 맞아떨어지게 하기 위해 고심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답답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장소가 얼마나 제대로 된 선택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반지의 유무로 알 수 있는 부부의 뒷날들;상실을 견뎌내는 힘.
사진 출처:다음 영화
가해자와 피해자 측으로 분류되는 두 부부는 외적인 모습에서부터 많은 것을 달리한다. 아니, 반대의 성향을 보인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옷차림도, 금전적인 여유도. 혹은 오고 가는 단어나 말투도.
그러나 그 들을 가장 다르게 만드는 점은, 가해자 측의 부부는 반지를 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린다와 리처드는 묘하게 시선이 제대로 맞부딪치지 못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며 던진 문장들이 이어지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면 방어막을 한껏 두른 말만을 내뱉는 리처드에 대한 원망의 시선조차도 리처드는 받아주지 않는다.
이는 게일과 제이가 그 "사고"이후의 삶을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왔지만. 린다와 리처드는 어쩌면 상처를 잊기 위해 현실적인 문제에 더 매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 어떤 방법을 썼다 해도 상처를 잊을 수 있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을 수 있기에 무엇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그들 모두 잊기 위해. 혹은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음에는 이견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과로는 용서를 얻을 수 없다;용서를 구하는 방법.
사진 출처:다음 영화
최근 많은 공인들의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그들이 일으킨 죄는 음주 운전일 때도 있고. 때론 학교폭력일 때도 있다. 뭐 더 심하게는 성범죄이기도 했고. 그 죄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사과하는 방식임과 동시에 용서를 구하는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보면 내가 사과했으니 된 거 아니냐.라는 말을 돌리고 돌려 성명문, 혹은 입장문이라는 종이 쪼가리 하나로 "퉁치려는"성향을 보일 때가 있는데. 사과는 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속 편한 그들에 비하면 이 영화는 참 답답해 보인다.
가해자의 부모는 우리도 어쩌면 피해자라며 용서를 구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과를 윽박지르며 협박처럼 쓰지도 않는다. 그저 피해자의 부모가 달랠 수 없는 마음을 토해내고 용서로 이르는 길에 묵묵히 함께 따라간다.
비록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죽음으로 인해 시시비비를 직접 가릴 수는 없고. 린다와 리처드 역시 피해자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타인과 함께 자신을 용서하는 여정이 얼마나 길고 힘든지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또한 용서는 가해자 측에서 원할 때 꺼내주는 "맡겨놓은"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이 영화는 잊지 않았다.
이런 균형을 잃지 않은 덕에 영화는 양쪽의 입장 모두를 이해하게 한다.
마치면서
우리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부모의 잘못된 훈육과 어쩌고가 아이를 어떻게 망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쩌면 가해자와 부모 모두 똑같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에서는 또 다른 영화인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겹치기도 하지만. 영화는 교묘하게 언급한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점들을 피해 간다. 그와 동시에 다루지 않은 점들을 잘 다루고 있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방은 너무도 간결하다.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손을 떨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영화를 보게 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많이 풀리는 순간.
그 어떤 부모도 자신의 부모가 잘못되기를 바란 적이 없으며.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책임은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알 수 있어서 많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이 좔좔
2.네 분의 연기 진짜 진땀이 줄줄 날 정도였음.
3.아니 복숭아 언제 나오냐고요.
#매스 #제이슨아이삭스 #앤도드 # 마샤플림튼 #프란크랜즈 #영화추천 #최신영화#영화리뷰 #영화리뷰어 #총기사고영화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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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나다운 '나'
이일하 감독의 다큐멘터리 <모어>에서 모지민은 이태원 클럽 무대에서의 드랙쇼를 한다. 드랙에 대해서는 미국의 한 버라이어티 쇼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때는 미국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런 드랙 문화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모어>가 드랙쇼를 하는 퀴어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봤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 수록 이 요소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어>는 내가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순간들을 담았다.
영화는 자주 드랙 모지민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장면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감정의 표출로 느껴졌다. 그 순간 느꼈던 강렬한 감정의 폭발을 모지민은 화려한 메이크업과 옷, 때로는 나체로 표현한다. 인터뷰나 자료화면 중심이 아닌 퍼포먼스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모지민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는 실제 발레 연습실, 거울 앞에서의 메이크업, 무대 뒤의 대기실 등이 교차된다. 이때 삽입된 노래는 설명 없이도 그의 감정을 전달한다. 음악은 내면의 독백이자 정체성의 진술이다. 인터뷰를 통해 그저 듣기 보다는 가장 ‘모지민’스러운 방식으로 그의 이야기를 느낀다.
화려한 조명과 격렬한 비트의 음악 속에서 모지민은 스스로를 “털 난 물고기”라고 소개한다. 이 상징적인 표현은 성적 경계를 벗어난 정체성의 선언이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아버지와의 대화 장면은 감정적으로 중요한 장면이다. 모지민은 아버지에게 과거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자신을 이야기한다. 이 장면에는 긴 대화보다 간헐적인 침묵과 표정이 강조되며, 배경음악은 잔잔하게 흐른다. 이 음악은 불안과 용기를 동시에 표현하며, 인물 간 감정의 간극을 채운다.
모어가 드랙 분장을 완성하고 거울을 마주보는 장면에서 별도의 설명을 넣지 않는다. 음악은 서서히 고조되고, 그 감정의 흐름 속에서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순간을 보게 된다. 메이크업과 코스튬은 단순한 변장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진짜 자신으로 ‘보이게’ 만드는 도구다.
기존 다큐멘터리 문법과는 다르게 뮤지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출한다. 음악을 주요 서사 장치로 활용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는 인터뷰의 중간중간에 퍼포먼스를 삽입하고, 현실과 공연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이러한 접근은 퀴어 서사를 ‘피해서사’가 아닌 ‘예술서사’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음악은 감정을 시각화하고, 무대는 존재를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정체성을 관찰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함께 무대 위에 올라선다. <모어>는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퍼포먼스이며, 사회의 시선이 아닌 자기 존재의 시선으로 완성된 예술이다.
감독: 이일하
출연: 모지민, 예브게니 슈테판, 존 카메론 미첼
장르: 다큐멘터
상영 시간: 81분
개봉일: 2022년 6월 23일
관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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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제78회 칸영화제에 초청될 것으로 점쳐졌던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의 출품이 불발되었습니다.
‘문화일보’에 의하면, 투자배급사인 CJ ENM 측은 “하반기 공개 예정이며, 현재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라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어쩔수가없다>와 더불어,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 역시 미완성으로 출품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전지적 독자 시점>, <경주기행> 두 편을 출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전지적 독자 시점>은 약 3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이민호, 블랙핑크 지수, 안효섭 등이 출연하였습니다.배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이 주연을 맡은 <경주기행>은 막내딸 경주를 살해한 범인의 출소 날, 복수를 위해 경주로 떠난 네 모녀의 여행기입니다.
제61회 백상예술대상 개최일 및 수상 후보 공개
제61회 백상예술대상이 내달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됩니다.
개최일과 함께 방송/영화/연극 부문 수상 후보를 공개했습니다.심사는 2024년 4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방영되거나 공개/공연된 작품을 기준으로 합니다.
영화 부문 작품상 후보로는 <대도시의 사랑법>, <리볼버>, <장손>, <전,란>, <하얼빈>이,감독상 후보로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리볼버> 오승욱 감독, <하얼빈> 우민호 감독, <대도시의 사랑법> 이언희 감독, <탈주> 이종필 감독이 올랐으며,
외에 최우수연기상, 조연상 등의 수상 후보가 공개되었습니다.
<트론: 아레스> 트레일러 첫 공개
‘트론’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트론: 아레스>의 첫 번째 트레일러가 공개되었습니다.
<트론: 아레스>는 <말레피센트 2>를 연출한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뢰닝이 맡았으며,2025년 10월 10일 IMAX를 포함한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작품은 고도로 발달한 프로그램 '아레스'가 디지털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보내져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서,인류가 AI 존재와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며, 자레드 레토, 제프 브리지스, 그레타 리, 에반 피터스, 하산 미나즈,
조디 터너-스미스, 아르투로 카스트로, 카메론 모나한, 질리언 앤더슨 등이 캐스팅되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 실사 영화, 감독 확정
A24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 <데스 스트렌딩>을 2년 간의 개발 끝에 실사 영화 제작과 감독을 확정 지었습니다.
실사 영화 감독은 <피그>를 연출한 마이클 사노스키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임에는 노먼 리더스, 매즈 미켈슨, 레아 세이두, 기예르모 델 토로, 엘르 패닝, 마거릿 퀄리 등 걸출한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으나,해당 캐스팅이 실사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질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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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쾌한 주먹 뒤에 자리한 일말의 씁쓸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리봉동 소탕작전 후 4년 뒤,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가 현지 영사관에 자수했으니 그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이에 베트남으로 향한 부반장 ‘마석도(마동석)'와 반장 ‘전일만(최귀화)'. 그들은 영사관에 갇힌 것을 꽤 만족스러워하며 하루빨리 한국으로 인도되기를 바라는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느낀다. 찝찝한 마음에 베트남에 자리 잡은 한국인 조폭들 사이에서 수상한 사건이 없는지 수소문하던 마석도는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손석구)'의 존재가 자수 이유였음을 알게 된다. 그는 더 큰 사달이 나기 전에 강해상을 체포하려 하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실패하고, 결국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은 과거의 인연인 '장이수(박지환)'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국으로 되돌아온 강해상을 본격적으로 쫓는다.
2017년에 개봉한 <범죄도시>는 688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역대 청불 영화 흥행 TOP3에 등극해 범죄 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쓴 바 있다. 당시 <범죄도시>는 강력한 주먹으로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한국형 슈퍼 히어로 마석도를 비롯해 그 잔혹함과 악랄함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장첸(윤계상), 깨알 같은 감초였던 장이수 등과 같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무장했었다. 통쾌한 액션과 묵직한 한 마디에서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유머는 그 매력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 형사들이 다시 한번 범죄조직 소탕에 나서며 5년 만에 돌아온 속편 <범죄도시2>도 마찬가지다. 전편의 장점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데 이어 예상치 못해 깊이까지 겸비한 <범죄도시2>는 성공적인 시리즈, 한국형 슈퍼 히어로 프랜차이즈의 미래에 청신호를 밝히는 듯 보인다.
진일보한 유머와 액션의 매력
우선 <범죄도시2>는 전편의 매력을 그대로 남기면서도, 그 매력을 보다 대중적인 형태로 탈바꿈시켰다. 일례로 전편에서 나쁘지 않은 타율을 자랑한 유머를 시작부터 더욱 강조한다. 물론 사무실에서 강력반 형사들이 주고받는 대사처럼 웃음을 노리는 게 분명한 초반 대사들은 다소 작위적인 인상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베트남으로 떠난 전일만과 마석도 콤비의 상반된 캐릭터성이 빚어내는 갈등을 풀어내는 대목부터 영화의 유머 타율은 급격한 상승세를 탄다. 베트남 영사관에서도 오픈한 마석도의 '진실의 방'이 대표적이다. 또한 8편까지 계획된 시리즈물답게 전편의 등장인물과 명대사를 적재적소에 오마주한 대목도 웃음벨로는 충분하다.
진일보한 액션도 인상적이다. 우선 로케이션과 CG를 통해 구현해낸 베트남이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스케일이 커졌다. 또 강력반 식구들의 합이 맞아떨어지는 카체이싱 시퀀스는 자칫 간과될 수 있었던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강조해주며, 이는 마석도와 강해상 사이에서 험악해질 수 있었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무엇보다도 상극의 액션 스타일을 한 데 붙여 놓은 선택이 인상적이다. 마석도의 액션은 전편 그대로, 또 마치 <이터널스>에서 길가메시가 그러했듯이, 비교조차 되지 않는 파워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형태로 묘사된다. 유달리 강하게 느껴지는 효과음은 마석도의 주먹 한 방에 담긴 징벌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반면에 강해상의 액션은 날렵하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죄책감이나 도의를 피 한 방울만큼도 느끼지 못하며, 시신을 훼손하는 반인륜적인 행위에도 거침이 없는 그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녹여낸 날렵함이다. 다르게 말하면, 어떤 환경이든 간에 순전히 살아남겠다는 동물적인 본능이 느껴지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동물적이라는 의미에서는 표범처럼 움직이는 블랙 팬서의 액션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강해상의 액션 시퀀스는 주로 롱테이크로 이어지기에 그의 동물적, 본능적 감각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액션이 유달리 맛있는 이유
이러한 액션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더 거대해진 마석도와 달리 분량이 전작보다 15분가량 줄어든 영화의 짜임새 덕분이다. 사실 <범죄도시>는 마석도의 존재로 인해 이전의 형사물과는 사뭇 다른 볼거리를 선보인다. 이전까지의 형사물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주인공과 빌런 사이에서의 팽팽한 서스펜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에 반해 <범죄도시>는 마석도의 초인적인 힘, 빌런이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하여 범죄자를 벌하는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에 몰두한다. 이는 속편인 <범죄도시2>에서 더욱 극대화된 포인트다. 그래서 전편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범죄조직 간의 알력 싸움과 같은 요소는 전무하고, 마석도 일행의 수사 과정과 강해상의 악행만 담백하게 대비되어 묘사된다.
물론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끝날지 쉽게 예측 가능한 영화이기에, 영화의 흐름 자체가 심히 단순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마석도의 극단에 위치한 강해상의 캐릭터를 철저히 악마화하면서 징벌의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이를 극복한다. 이는 전작의 빌런이었던 장첸과 강해상의 차이점으로, 강해상에게 장첸처럼 밈(meme)이 될 여지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장첸과 강해상은 모두 철저히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범죄자를 미화시킬 여지를 간편하게 차단하고 있다. 다만 나름의 서사를 부여받아 매력적인 대사나 캐릭터성을 보여준 장첸과 달리, 강해상은 앞서 말했듯이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악행만을 자행한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전편 속 장첸(윤계상)과 위성락(진선규), 양태(김성규)는 저마다 매력이 있는 캐릭터였다. 영화 역시 악당들의 행각에 시간을 투자하며 경찰과 대결구도를 형성했다. 반면 강해상과 그의 동료에게는 그 어떤 서사도 없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활동했다는 짤막한 그의 행적을 제외하면 범죄자가 된 동기나 개인사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더 많은 돈과 피를 원하다는 것 외에 그를 특징 지을 수 있는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영화는 그의 악행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간접적인 묘사로도 그 전모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므로 강해상의 잔혹함은 더 강조되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서사의 빈자리를 온전히 액션으로 대체된 이 캐릭터에게는 이입할 여지가 전무하고, 강해상은 단지 마석도의 샌드백으로서 처절히 응징당할 때만 의의가 있다. 따라서 철저히 마석도의 활약상에 포커스를 맞춘 선택은 비록 단순하지만 의도한 효과를 120% 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로서의 <범죄도시2>
여기까지만 보면 <범죄도시2>에게는 단점도, 아쉬운 점도 없어 보인다. 성공한 전편을 넘지 못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충분히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진일보한 매력들은 이후의 시리즈를 더욱 기대케 만든다. 다만 호쾌한 주먹으로 강해상을 때려잡은 마석도의 존재와 그에게 열광하는 영화 내외의 반응은 약간의 씁쓸함도 남긴다. 특히 마석도를 한국형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할 때, 그 씁쓸함은 더욱 진하다. 왜냐하면 슈퍼 히어로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동시대의 대중들의 상실감이나 결핍을 환상으로나마 치유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어로의 활약상이 많은 공감을 사고 큰 환호를 받을 때, 그 히어로가 활동하는 사회에는 깊은 흉터가 남아 있기도 하다.
실제로 2000년대 미국의 슈퍼 히어로들은 테러가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아이언맨은 슈트를 만들어 아프가니스탄 테러 집단으로부터 탈출한 후 자기를 납치했던 테러리스트에게 복수를 가하는데, 이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이 9.11 테러라는 트라우마가 낳은 보복성 공격이었던 현실의 반영이나 다름없다. <다크 나이트> 속 배트맨의 영웅적 활약이 역설적으로 더욱 강력한 악당인 조커를 끌어들이는 것도 중동에서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미군이 오히려 ISIS와 같은 또 다른 테러 집단의 등장 원인이 되어버렸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유비라 볼 수 있다.
마석도의 주먹에 담긴 쾌감이 내심 씁쓸한 이유
그렇다면 마석도의 활약 기저에 깔린 한국 사회의 흉터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형량을 나날이 강화하는 데서 알 수 있는 엄벌주의에 대한 갈망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엄벌주의는 사회문제를 형사처벌로 대응하고, 처벌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해결되지 않는 것은 강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가해자만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해당 문제의 진실이 규명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며, 재발방지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정인이 법'의 내용 중에는 처벌 강화도 있지만, 입양아가 죽는 사건이 또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즉, 문제를 초래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범죄자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그 자체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이처럼 엄벌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법과 제도에 대한 믿음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처벌과 후속 대책이 미흡하기 때문에, 법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시스템이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의는 실현되지 못하는 듯 보이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부조리가 만연하면 누군가 강력한 힘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기를 바라는 열망과 환상은 필연적으로 강해진다. 그래서 강하면 강할수록, 그 타격감이 좋으면 좋을수록, 효과음이 크면 클수록, 강해상과 범죄자들이 아파하면 아파할수록 마석도의 주먹을 향해 큰 탄성과 환호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현지 경찰과 영사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나쁜 놈은 잡아야 한다는 사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며 범죄 소탕에 일조하는 마석도의 모습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현실에서는 국제적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열망을 채워주는 마석도의 뚝심이 주는 쾌감이 유머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에서 <범죄도시2>를 보면 마석도를 향한 환호와 응원이 자칫 변질되면 나타날 수 있는 악몽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강해상에게 납치당해 죽은 아들 '최용기(차우진)'의 복수를 하려는 '최춘백(남문철)'의 행적이다. 그는 아들의 실종신고를 하는 대신 직접 사람들을 보내 강해상을 죽이려 한다. 경찰과 형사로 대변되는 원칙을 믿는 대신 금융회사 회장인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경제력을 동원해 사적 제재에 나선다. 엄연한 피해자이지만, 그 또한 작중 도시 한복판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의 행동에 대해 마석도와 동료들의 입을 빌려 그의 선택에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영화 말미에 그가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단신을 제외하면 그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또한 법과 경찰의 시스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표출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락적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마석도의 주먹이 러닝타임 내내 화끈한 통쾌함으로 가득한 것도 사실이지만, 유달리 큰 주먹의 효과음 잔상에서 그 주먹이 필요한 이유가 남긴 씁쓸함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슈퍼 히어로인 마석도가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아닌 엄연히 형사라는 점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희망도 엿보이는 게 위안일 것이다.
<범죄도시2>는 분명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숱한 한국 영화의 속편들 중 이 작품만큼 명확한 로드맵을 지진고, 전편과 연계가 잘 이루어지며, 캐릭터들도 유지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단적으로 연초에 개봉했던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전편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범죄도시2>가 보여준 시리즈의 가능성이 영화 내외적으로 얼마나 큰 성취인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심지어 그 슈퍼 히어로가 단순히 오락으로 소비되지 않고, 속한 사회를 반추할 수 있는 거울도 되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다. 단지 앞으로 만날 마석도의 액션에서는 일말의 씁쓸함도 없이 온전히 쾌감이 깃들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다음을 기대케 하면서도, 마냥 기쁠 수 없는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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