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a2025-03-17 16:00:17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찰
<골든 카무이> 실사화 리뷰
인생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목표와 이를 저지하려는 고난,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동료, 빠질 수 없는 해학 마지막으로 이를관통하는 하나의 문장. 언뜻 보면 재미있는 영화의 요건들 같기도 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선함이 이 자리를 채우고 있긴 하나 결국가장 고전의 조건들이 재미를 보장한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마의 장벽이 존재하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한 번 빠져들면 결국 시간을 바쳐가며 찾아보게 된다는일본 실사화 콘텐츠 <골든 카무이> 이다.
해당 콘텐츠를 강력 추천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만화부터 소개하겠다. 다양한 밈과 짤의 주인공이나 많은 이들이 그 제목을알지 못한 채 암암리에서 마니아들끼리만 일독을 권하는 만화 <골든 카무이>. 배경은 러일 전쟁 이후 훗카이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황금 쟁탈전이다. 주인공 ‘불사신 스기모토(야마자키 켄토 분)’ 는 현재는 수감된 한 아이누가 숨긴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를 찾기 위해 탈출한 수감자들의 문신을 그 단서로 삼으며 아이누 소녀 ‘아시리파(야마다 안나 분)’ 와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 같은 대략적인 줄거리에서 우린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황금 찾기, 아이누, 일본 병사, 문신 탈옥 죄수? 프리즌 브레이크? 맞다. 이 만화는 많은 오마주를 기반으로삼아 독보적인 길을 질주하는데, 이 오마주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하게 작성된 글이 있을 정도로 아주 많은 레퍼런스들 위에 쌓아 올려진스토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키워드로 돌아와서 즉 일본 병사와 아이누 소녀가 황금을 찾으러 떠나는 과정에서 짐승을 치타탑 할(다져먹을) 뿐인, 그것도 실사화를 왜 봐야 하는 거지?
실사화에 대한 거부감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활자로 보면 아름답기 그지 없던 말들이 배우의 입을 통해선 그저 견디기 힘든 장면이 될뿐이라는 것. 그들의 멋진 전투가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티 나는 CG 대전이 된다는 것 역시. 하지만 에픽한 사운드트랙 위로 어딘가 익숙한 로케이션이 펼쳐지고 역사극의 한 장면처럼 도주극이 펼쳐지는 것에서 오는 감동은 어느 극영화 못지 않다. 책장에서 튀어나온 것같은 캐스팅에 대한 언급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한 편의 거대한 서사로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실사 영화에 비해 <골든카무이>는 이러한 장점이 더욱 부각된 작품으로, 홋카이도 전역에 퍼져 있는 거대 짐승들을 제외하고는 설원을 횡단하는 서부극에 가까워 그 거리감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다소 추천함직 하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서두는 어쩌다 필요하게 된 것일까.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스기모토는 5분에 한 번씩 본인이 불사신 임을 강조한다. 만화에서야 소개나 선언처럼 보여지나 배우가 대사로써 이를 내뱉는 순간 시청자는 한 가지를 직감할 수 있다. 이것은 소개 이상의의미를 갖는, 자기 암시라는 것. 스기모토는 곰과 대치할 때, 적병들을 뚫고 달아날 때 해당 대사를 읊는다. 즉 위기의 순간에 외치는 주문과도 같은 것이다. 마치 ‘난 오늘 죽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죽이진 못해. ‘ 라고 말이다. 이는 스기모토가 전쟁터에서 얻은 칭호이자 각성의 순간이다. 흔히 감동을 유발하거나 주인공의 꺾이지 않을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스기모토의 그 주문은 작중 시간을 기준으로그 과거와 현재의 쓰임이 엄연히 다르다.
죽음을 종용하는 전쟁터 속에서 스스로에게 자꾸만 불사신이라 되뇌이는 스기모토는 일종에 죽지 못한 자로 삶을 저주하는 상황이다. 죽은 소꿉 친구라는 계기가 그를 전쟁터에서 죽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타인을 죽여야만이 가능해지는 명제다. 그렇게 악귀가 되어 살아남은 스기모토는 친구의 부탁을 위해 빈 손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으며 그런 그의 좀비 상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후에도 지속된다. 이를 이루기 전까지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라스트 미션을 받은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순간 만나게 된 소녀 아시리파는 삶의 숭고함을 일깨워주는 존재이다.사냥을 한다는 것은 짐승의 생명을 앗아가되 내삶을 이어주는 행위. 식의 행위로 그들의 죽음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는 단순 목표와는 다르다. 삶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죽은 친구와 고향에 두고 온 소꿉친구와 재회하겠다는 목표와 달리 스기모토는 삶을 저주로 대하지 않는 법을 아시리파와의 여정에서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아시리파를 향한 스기모토의 맹목적인 헌신은 단순 은혜 갚기가 아니다. 짐승의살을 받았기에 자연에게 되돌려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화폐를 사용하는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장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공존과 교환, 존재하는 의미와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유. 아시리파는 그렇게 스기모토에게 삶 그 자체가 되어주고시청자 역시 삶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재정의하게 된다.
영화는 원작 만화의 초반부로 아시리피와 스기모토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의기 투합, 문신 인피를 노리는 다른 세력들의 등장 등을 소개하는 파트 정도로 다뤄진다. 다만 다수의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등장하는 절정 씬 덕에 연대와 경쟁이 명확해지고 주연 인물들의 재회가 가능해진다. 이는 달리 보면 극장판을 통해 이 이야기는 다름 아니라 이 둘의 관계성이 주제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훗카이도 토착민을 일컫는 말 ‘아이누’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근대문명이 들어오기 전 가장 본연의 인간처럼 묘사되는 아시리파의 지혜그리고 그녀를 통해 다시 인간이 되는 스기모토와의 여정이 긴 대화 시퀀스 없이도 전달되는 것은 단순 원작을 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클리셰를 한 번 꺾어가며 여정의 시작에 힘찬 도약을 내딛는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가족이 있는 아시리파에게는 험난할 것이라예감하고 늘 그랬듯 대신 그 짐을 짊어지고자 한 스기모토 앞에 아시리파는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손을 내민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와 나란히 나아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영화 이후의 이야기는 드라마 <골든카무이: 홋카이도 문신죄수 쟁탈 편> 으로 제작되어 넷플릭스에서 동일하게 스트리밍 중이다. 아시리파와 스기모토의 이후 여정이 궁금해졌다면 한층 더욱 풍성해지고 기괴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드라마로 나아가는 것 역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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