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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몬2025-03-27 15:40:11

그 곳이 거미의 땅이라 불리는 이유

잊으면 안 되는 것들

 

 

곧 철거를 앞둔 공간. 잡초가 무성한 이곳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이곳엔 잊힐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세 여성이 있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박묘연, 폐지를 줍는 박인순, 그리고 흑인 혼혈인 안성자. 이들은 여전히 기지촌에 남아 있다.

 

영화의 시작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천천히 탐색하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열리며, 배경에 흐르는 영어 음성은 이 공간이 미군 기지와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폐허처럼 보이는 이곳은 곧 미국과 한국의 역사가 얽힌 공간임을 드러낸다. 화면에 잡힌 잡초와 비석은 이 공간이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여성들의 삶과 그 속에 깃든 고통을 상징한다.

 

첫 번째 인물은 박묘연이다. 그녀는 분식집을 운영하며 음식을 준비하고 판매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장사를 마친 후 홀로 주사를 놓는 모습은 그녀의 외로움과 고독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그녀의 과거는 더욱 아프다. 26번의 중절수술과 미군 남성들로부터 받은 상처들. 그녀가 견뎌야 했던 고통은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이후 빈 공간과 폐허를 비추며 한 남성의 나레이션을 들려준다. 그는 "낮에는 개미처럼 일하고 밤에는 거미처럼 사라져야 했던" 자신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기지촌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처절한 삶을 은유적으로 그려내며, 박묘연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관객에게 더욱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박인순의 일상은 더욱 고단하다. 폐지를 줍고 혼자 방 안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은 외로움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녀는 미국에 두 자녀를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성병에 걸리고 포주에게 이용당하며 빚만 늘어났다. 분노와 한을 안고 절에 다니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여전히 날카롭다. 숲속에서 외치는 그녀의 절규는 "모든 고통을 가져가라"는 외침과 함께 그 처절함을 극대화한다. 이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마지막 인물인 안성자는 기지촌에서 태어난 흑인 혼혈 여성이다. 그녀의 삶은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모진 수모를 견뎌야 했던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녀는 분식집에서 눈물을 흘리며 햄버거를 먹는 장면으로 등장하며, 관객에게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상처와 슬픔을 암시한다. 안성자는 과거의 자신을 판타지적으로 재현한 연출 장면을 통해 그녀의 내면을 탐구한다. 빨간 원피스를 찾아 입고 텅 빈 댄스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은 그녀의 상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의 감정을 자극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처럼 연출된 장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거울을 보는 모습, 빨간 원피스를 입고 춤추는 장면, 수박을 먹는 모습 등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시도로,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런 연출이 과연 다큐멘터리의 범주에 속하는가에 대한 논란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영화는 세 여성의 일상 -> 공간의 나레이션 ->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과 외로움이라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미군 기지촌 위안부로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감춰져 왔다. 철거와 함께 잊혀질 위기에 처한 이들의 아픔은 쉽게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야기다. 잡초가 무성한 폐허 속 비석처럼 이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다큐는 여성들의 고통이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관객에게 묻는다. 왜 여성들의 고통은 남성들에 의해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가?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다큐멘터리는 그 질문을 강렬하게 던지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작성자 . 시나몬

출처 . https://brunch.co.kr/@cinna-mon-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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