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31 11:55:36
3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제이슨 스타뎀 주연 <어 워킹 맨> 예상외 선전으로 1위 등극

제이슨 스타뎀의 <어 워킹 맨>이 디즈니의 <백설공주>를 밀어내고 박스오피 1위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데이비드 에이어가 공동 집필한 이 작품은 은퇴 후 조용히 살아갔던 요원이
인신매매 조직이 상사의 딸을 납치하자 다시 싸움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다루며, 척 딕슨의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했습니다.
그에 반해 <백설공주>는 지난주에 비해 약 66% 폭락하며 1,42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더구나, <마인크래프트: 더 무비>가 오는 4일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어,
가족 관객층을 흡수할 가능성이 높아 흥행 전망은 어두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더 초츤>의 5번째 시즌 일부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인
<더 초즌: 라스트 서퍼 - 파트 1>이 주말 수익 1,129만 달러로 3위에 오르며 신앙 영화의 여전한 강세를 증명했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역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입니다.
주연 배우의 이슈로 인해 흥행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승부>가 주말 관객 수 54만 명, 누적 관객 수 70만 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영화의 준수한 완성도로 인한 호평이 입소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극장판인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 역시 지난주에 이어 2위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누적 관객 수 53만 명을 돌파하며, 그 인기를 실감시키고 있습니다.
3위는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가 차지하였으나,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의 벽을 넘지 못하며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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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생각은 적게, 행동은 바로
생각은 적게, 행동은 바로. 권철 감독의 버텨내고 존재하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한국경쟁 부문에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초정하였다. 작품 속 일곱 뮤지션은 광주극장에서 각자의 ‘버텨내고 존재함’을 말한다. 8월 13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권철 감독님을 만나 특별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소개해주세요.
이 작품은 뮤지션 최고은님이 2019년부터 진행한 커밍홈 프로젝트의 기록입니다. 고은님은 광주극장에 친한 뮤지션들을 초대하여 광주를 소개하고자 진행하였고 그 연출을 제가 맡았습니다. 광주극장에 가서 준비를 하다보니 극장의 느낌이 좋아서 한 편의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기획에서 시작한 영화가 아닌, 쌓인 기록을 편집하여 만든 영화입니다.
극장과 뮤지션. 어떻게 보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같아요.
이 영화는 극이 아닌 기록과 나열의 영화입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음악과 함께하는 영화제이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사실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을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출품하고 싶어서 마감 기한에 맞추어 급하게 제출했습니다.
광주극장에는 다양한 공간이 있는데, 뮤지션마다 공연하는 장소를 다르게 한 이유가 있나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기획자이신 고은님이 ‘광주극장에 안 와본 사람들도 마치 와본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뮤지션 여덟 팀을 보여주는 단순한 기록의 나열같지만, 나름의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았어요. 영화관에 들어와서 표를 사고, 대기를 하고 극장에 들어선다.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순서대로 입장문, 매표소, 대기실 등의 흐름으로 연출했습니다.
그럼 뮤지션의 장소나 순서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셨는지 궁금해요
뮤지션의 장소나 순서는 음악의 분위기나 주제에 따라 배열했습니다. 시작 주제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김일두, 김사월을 앞에 배치하고, 그 다음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곽푸른하늘, 고상지님의 음악, 마지막은 에너지를 주고 싶어서 정우님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노래로 마무리했습니다.
영화의 독특한 인서트들이 기억에 남아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나요?
이 영화는 뮤지션들의 라이브와 그 사이에 인터뷰를 넣은 단순한 구성인데요. 한 편으로 이으려다보니 인서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일두님이 화분으로 바뀌는 것은 촬영 중 갑자기 김일두님이 싱그러운 화분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즉흥적으로 찍은 장면이에요. 궁금해하셨던 곽푸른하늘님의 ‘포도봉봉’은 제가 캐릭터를 생각해서 준비한 소품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버텨내고 존재하기’인데요.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버텨내고 존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네요. 하하. 사실 저는 김일두님의 말씀처럼 생각을 적게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편이어서 버텨낸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만약 제 스타일로 영화의 제목을 정해본다면 ‘광주 극장의 지박령들’이라고 짓고 싶네요.(웃음)
감독님의 앞으로 꿈이나 목표가 있을까요?
저는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영상을 시작했고, 지금도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기획과 연출이 들어간 음악 영화를 만들고 싶네요. 저는 재미있는 걸 좋아해서 다음에는 좀 더 키치하고 막 나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벌써 몇 가지 아이디어도 생각해 놓았습니다. (웃음) 재미있는 이야기를 공들여 만들어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또 참여하고 싶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한 광주극장에서 뮤지션의 다양한 음악을 재미있게 풀어내어 보여주며, 영화와 음악을 나란히 선보이는 이 작품은 어쩌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가장 닮아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권철 감독의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만들어 낼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luna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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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배제와 제거의 역사
[BIFF 데일리] 배제와 제거의 역사
영화 <무루> 리뷰
감독] Tearepa KAHI 테아레파 카히
출연] Cliff CURTIS, Jay RYAN, Manu BENNETT, Simone KESSELL, Ria Te Uira PAKI, Roimata FOX, Poroaki MERRITT-MCDONALD, Tame ITI
시놉시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어 온 뉴질랜드 정부는, 동부 해안에 위치한 마오리족 마을 하나를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로 규정하고 특수부대를 파견한다. 특수부대원들이 마을을 비밀스럽게 조사하는 동안, 마을의 관할 경찰이자 같은 마우리족 출신인 태피가 그들의 임무를 눈치채게 된다. 어느 날, 평화스러웠던 마을에 총성이 울리고 태피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오리족 마을의 주민들과 경찰로서의 임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된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부의 반목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에 대해 몰랐던 사람으로써 이 이야기가 지금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에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지에 대해 궁금한 마음에 찾아봤던 영화 <무루>.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부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찰과 정부의 폭력성에 대해서 잘 다룬 작품이었다.
배제와 제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영화 <무루> 속에서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정부의 제거 대상이다. 그 이유는 바로 노래 속에 총리를 암살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사실일까? 마오리족의 수장 타메는 항상 부르던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마오리족이 부르는 노래는 단어가 과격할 뿐 실제로 그것을 행한다는 의미보다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이 노래가 조상으로부터 내려왔고, 지속적으로 불려왔다는 사실을 몰랐던 뉴질랜드 정부는 가사만 듣고 이 노래는 암살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노래이며, 그 대상은 뉴질랜드 총리이기에 이들은 보안법상 제거의 대상이라며 특공대를 투입시킨다.
마오리족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뉴질랜드 정부는 자신이 결정내리고 판단한 사항에 대해서 잘못됐음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초반의 결정을 그대로 밀어붙인다. 섣부른 판단을 그대로 밀고 가는 정부와 특공대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한 소년이 말을 타고 청소를 하기 위해 빗자루를 등에 메고 달리고 있었는데, 특공대는 이 빗자루를 무기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대상이라 명명하며 총을 쏜다. 이 과정에서 마오리족은 단지 소년일 뿐이며 무기가 아니라 빗자루라고 계속 설명하지만 특공대는 이를 세심하게 바라보지 않고 그저 ‘적’이라고만 판단한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족의 행동 하나하나에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는데, 뉴질랜드 정부가 마오리족을 적으로 만들어서 공격을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이득과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까지 마오리족을 배제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 말미에서 어떻게 해서든 작전을 완수하려는 특공대원에게 ‘집착을 그만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곧 뉴질랜드 정부를 향해 이 영화가 외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이상 마오리족에게 집착하지 말고 새롭게 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자는 의미로 말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쓰는 것이 역사
특공대원은 마오리족 타깃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마오리족이 아닌 동료 경찰을 오인사격한다. 그러자 이를 덮기 위해 특공대는 이를 마오리족의 책임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료 경찰을 죽인 마오리족을 만들어야 하고, 그 마오리족을 죽여서 입막음을 시켜야 하기에 특공대원은 끝까지 마오리족의 타깃을 사살하려고 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역사는 정말 살아남은 자가 해당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느낄 수 있었다. 만약 특공대의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2007년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부의 이야기는 뉴질랜드 정부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쪽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특공대의 작전은 실패했기에 뉴질랜드 정부가 아무리 이 사건을 은폐, 엄폐를 하려고 해도 피해를 입은 마오리족이 존재하기에 이 사건의 진실이 이렇게 기록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부에 비하면 마오리족은 절대약자다. 그 약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끝까지 살아남아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서든 기록하고 후손들에게 알려주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 뉴질랜드의 역사가 편향되지 않고 제대로 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그 기록의 연장선상으로 기획된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현재진행형인 뉴질랜드 정부와 마오리족의 갈등을 담아내고,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란다.
뉴질랜드의 현대사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어서 좋았던 영화 <무루>. 국가의 폭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10-07 20:00
CGV센텀시티 6관
104
2022-10-09 17:00
CGV센텀시티 4관
259
2022-10-11 11:30
CGV센텀시티 7관
402
2022-10-12 11:30
CGV센텀시티 7관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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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알아서 함께,<강변의 무코리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변의 무코리타 Riverside Mukolitta, 2021
일본 / 드라마 / 121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각자 알아서 함께, <강변의 무코리타>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오징어 공장에 취직한 야마다의 목적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 어제를 잊고 오늘을 무사히 넘겨 힘차게 내일을 맞이하고 싶단 희망적인 메시지로 읽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오늘' 안에는 다음 날을 향한 기쁨이나 설렘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삶의 여유는 물론이고 이를 찾으려는 의지도 없다. 그저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인생을 알차고 즐겁게 살겠다는 다짐과는 아주 먼, 무기력하면서도 음울한 그의 억지다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야마다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도망쳤으나, 지울 수 없어 단순한 노동으로 몸을 혹사하지 않으면 정신이 미쳐버리는, 오늘 현재에 정체된 인물이다.
그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물을 특이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영화의 특성 덕분이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모든 인물의 서사를 순간 포착한 사진(이미지)들로 설명한다. 사진 안에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 인물의 말과 행동, 인물이 겪을 사건과, 이미 겪었던 사건까지 어마어마한 수의 픽셀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보는 사람의 역량과 상관없이 누구나 영화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 야마다로 예를 들자면, 누가 툭 치면 바로 쓰러질 것처럼 아무 의욕 없이 마을에 들어서는 그의 걸음걸이와 반가움에 건넨 사장의 악수를 받지 못하고 삐걱대며 주춤거리는 그의 옆모습이 대표적이다. 두 장의 이미지는 이야기 초반에 등장해 야마다의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의 이전을 짐작하게 하며, 이후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한없이 무력한 두 눈과 한껏 말린 어깨는 막 오징어 공장에 떨어진 그의 현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낸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공장 사장의 소개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입주한 야마다에게 막무가내 이웃, 시마다가 찾아온다. 얇은 벽 탓에 목욕을 방금 마친 걸 알고 있다며 뻔뻔하게 자신도 욕실을 쓰게 해 달라는 시마다. 야마다는 난처함을 표하며 그를 내쫓는다. 찰나의 순간, 시마다는 야마다에게서 자신과 같은 구멍을 발견한다. 분명 나와 다르지만,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구멍.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당연하게 품고 있고, 인간이라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것.
"안심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답니다."
인간의 죽음. 태어난 순간 당연하게 예정되는 마지막 순간. 영화는 인물들의 살아있음으로 우리의 끝을 이야기한다. 주택 입주민들의 감춰진 이야기는 야마다에게 도착한 연 끊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시작으로 한 명씩 밝혀진다. 시마다는 자식을 잃었고, 미나미는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냈다.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묘석 방문 판매를 하지만 반년째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변의 노숙자들은 여름 태풍이 올 때마다 친구를 잃고 있었다. 모두가 생의 끝자락에서 가족을 잃은 상실과 나를 찾지 못한 슬픔,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에겐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내일을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 이웃의 이야기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과 귀로 담아내며 타인의 아픔에 소리 없이 공감한다. 세상으로 나와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라 밤마다 구구단을 거꾸로 세며 삶의 공포에서 도망가려는 야마다에게, 입주민들만의 방식은 좋은 본보기로 작용한다.
야마다는 마음을 열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멈춰있던 그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과 이별, 상실을 품고 사는 그들만의 방식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감췄던, 이미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은 상처받은 어린 나를 구출한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텃밭을 가꾸는 시마다는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는 자칭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타인에게 숨기지 않는다. 자신만이 줄 수 있는 소소한 답례로 타인에게 도움과 배려를 당당히 요구한다. 야마다의 욕실과 밥통과 선풍기까지 마음대로 쓰면서, 건네는 건 텃밭에서 난 채소뿐이다. 야마다는 그의 무례함에 대응하지 않는다. 시마다가 건넨 채소는 그를 굶주림에서 구해줬고, 더 나아가 아버지의 끝처럼 고독사로 죽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줬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시마다를 무례한 이웃이 아닌, 좋은 밥 친구로 인식한다. 밉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옆집 사람이 무코리타 주택에선 친근하고도 마음 따듯한 이웃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주택 주인 미나미도, 반년 만에 묘석을 팔아 집세를 내는 대신 소고기 전골을 사 먹는 미조구치도, 말없이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스님도, 골동품으로 쌓은 쓰레기 산 위에서 외계인의 연락을 기다리는 두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신만의 속도와 흐름으로 야마다를, 이웃을 살피고 자기 자신을 돕는다.
물론 그들도 자기가 만든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야마다와 다른 점은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함께 견디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아주 조금씩 일상에 녹여내며, 언제 다 녹여내고 뿌리 뽑을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초조함이나 조급함 없이 묵묵히 내일을 살아가려 시마다는 텃밭을 가꾸고,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계속 고객의 문을 두드린다. 야마다도 오징어를 손질하듯 자신만의 속도로 아버지의 죽음을 아주 천천히 들여다보며 해체한다. 자기를 버렸던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계속 따라다니는 두려움과 분노의 실체를 입 밖으로 털어놓는다. 이미 뚫려버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선 그 깊이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는 법이야."
야마다의 사정을 알고 있던 공장 사장의 첫마디, 영화는 처음부터 친절했다. 야마다를 위해 준비된 위로와 사람들, 끝내 미소를 되찾는 그의 정해진 미래까지 무난하고 뻔한 전개 방식이지만, 이는 <강변의 무코리타>가 의도한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현실 속 우릴 대변하는 건 인물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장 두렵게 하고 움츠리게 하는 건 무엇일까. 영화는 죽음이 그 시작이라 봤다. 야마다와 이웃들을 통해 '인간이 죽는 건 당연하다'는 말속에 담긴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 가는데, 단순히 죽음을 좋고 친숙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마땅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강변의 무코리타>의 강점은 이를 위해 우리의 생을 가장 먼저 찬미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의 추는 늘 살아감에 위치해 있다. 반드시 찾을 수 있는 행복과 희망, 그리고 용기. 야마다는 몰랐던 것뿐이다. 갓 지은 밥을 코로 먼저 맛보고 목욕 뒤 맥주 대신 우유를 마시는 일이 사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버팀목이었고, 민달팽이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과거에 발목 잡혀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은 ‘내’가 살아가고 있기에 겪는 과정이었단 진실을 말이다. 야마다는 이웃들과 똑같이 ‘종료되지 않는 치유 과정’에 들어가면서 생명의 전화를 거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랬듯, 깊은 위로로 받아들인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강변의 무코리타>가 세운 확실한 전제가 좋다.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이 구멍을 없애려고 일부러 함께 모여 살고 계획적으로 이웃에게 관심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아픔을 헤아리면서 무작정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의도적이지 않은 관심과 크기를 재지 않는 진심, 실없이 터지는 무해한 웃음으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서로를 보살피는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위로와 힘을 주는 영화다웠다.
야마다 아버지의 유골함, 미니멀리스트 시마다의 거미줄 이야기, 허기진 배를 채우는 미조구치의 상상극, 생명의 전화와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 연립주택 사장 미나미가 품은 남편의 뼛조각, 외계인의 연락을 받기 위해 쌓은 전화기 산, 강변 노숙자의 기타 연주… 다양한 형태와 질감 그 속에 똬리를 튼 생의 의미까지 <강변의 무코리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멍을 파고 또 파면서 이미지를 순간 포착해 생산하고, 비로소 단 한 장의 사진(영화)을 찍어 낸다.
그들의 가족사진에서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가, 떠난 이들의 유영이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강변에 노을빛을 뿜어내는 무코리타가 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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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 틱... 붐! / Tick, Tick... Boom!, 2021
최근 개봉한 <돈 룩 업>을 보듯이 "CGV"에서 "넷플릭스"의 공개에 앞서 극장에서 개봉하는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데, 할인권과 뱃지까지 증정하니 마음 같아선 보고 싶지만 쪼들리는 지갑 사정과 빠듯한 시간은 포기를 강요하게 만드는데요..
그럼에도, <틱, 틱... 붐!>은 꼭 극장에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어폰이 아닌 극장의 음향 시스템으로 이 "뮤지컬"을 영접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그러지는 못했지만...)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틱, 틱... 붐!>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어느덧, 나이 서른을 앞둔 뮤지컬 작가 "조나단"은 자신의 역작 <슈퍼비아>의 설명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듯이 그에게 있어 중요한 일들이 몰아치는데요.
꼭 있어야 하는 노래는 떠오르지 않고, 여자 친구와의 사랑까지 "조나단"은 이 모든 것들을 쟁취할 수 있을까?시간은 그렇게 또 흘러간다.
1. 엥, 원래부터 유명한 작품인데?
먼저, <틱, 틱... 붐!>이 어떤 작품인지를 잠시 미뤄두고서 이를 연출한 '린-마누엘 미란다'라는 이름이 눈에 띄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비보의 살아있는 모험>처럼 그만큼 "뮤지컬"에 진심인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데요.
최근 극장에서 개봉한 <인 더 하이츠>부터 <메리 포핀스 리턴즈>, <모아나>까지 우리는 지금 "뮤지컬 그 자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 <틱, 틱... 붐!>은 충분히, 관심이 갈만한 작품이었습니다. - 근데, 이 영화 원작이 따로 있더라고요.또 나만 몰랐나?
영화의 주인공 "조나단 라슨"은 뮤지컬 <렌트>의 작가입니다.
그렇기에 굳이,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네이버"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와 함께 그의 생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이 "전기 영화"를 보는데 맥을 빠지게 만드는데, 그렇다면 <틱, 틱... 붐!>은 '이를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일겁니다.
그런 점에서 본 작품은 "뮤지컬"이라면 응당 나와야 하는 클리셰들을 활용해 관객들의 집중도를 확 잡아당깁니다.2. 유치하지않는 뮤지컬이 가능할까?
대개, "뮤지컬"을 보는 관객들이 가지는 선입견은 스토리가 유치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이 캐릭터들의 심정을 옮겨 적은 것으로 직관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여기에 군무 장면까지 더한다면,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쪼그라들고 말 텐데요.
<틱, 틱... 붐!>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나오지만, 이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에는 "앤드류 가필드"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있지만, 이를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에도 있습니다.어떻게와 어떡해의 차이
이전 <할로윈>의 리뷰를 인용하자면,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공포란 입가에 "어떡해"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중략) 뻔히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떡해"가 나오는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성공적입니다.'라는 문장에서 보듯이 이에 몰입되어 조마조마한 감정이 오는 "물아일체"의 느낌이야말로 스토리의 완성도를 가늠케 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틱, 틱... 붐!>이 진행되는 공연장과 <슈퍼비아>를 준비하는 두 가지 시간대를 제시해 전개되는데요.
특히, 감정이 몰아치는 장면에서는 두 가지 시간대를 교차해 빠르게 오버래핑하는데, 이 방법으로 감정 몰입을 좀 더 빠르게 휘몰아나갑니다.3. 장르를 뛰어넘는 공감과 연대감!
장르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시킨 <틱, 틱... 붐!>의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틱, 틱... 붐!>의 장르는 "뮤지컬"이니 관객들이 이어폰이 아닌 극장의 큰 스크린과 스피커로 보려는 건 작품만이 가진 매력적인 넘버들일 겁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제목들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틱, 틱... 붐!>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장면들은 '극장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악기들과 열리는 세트 무대까지 의도가 다분한 시퀀스부터 쿵쿵거리는 발소리로 만드는 즉흥 무대까지 영화는 공간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노래하고 관객들을 즐겁게 만드는데 도가 튼 작품입니다.그래도, 가장 큰 무기는 공감!
이렇게, <틱, 틱... 붐!>은 "뮤지컬"의 형식에 있어 가장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작품이지만 가장 큰 무기는 "공감"이라 생각합니다.
극 중 "며칠 후에 나는 30살이 되고, 아직 이룬 것은 없다"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데요.
이는 이 글을 저도 마찬가지로 찐한 공감대 혹은 연대를 불러일으키는데, 여기에 잘나가는 친구들과의 비교까지 빠질래야 빠질 수밖에 없는 작품인데요.
이를 극장이 아니라 '갤럭시 노트 10'으로 보고, '버즈 2'로 들은 건 저에게 있어 이 상황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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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분명히 톱스타였던 내가 갑자기 무명 재연배우?
안하무인의 톱스타
오빠 일어나!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박강은 부랴부랴 눈을 뜬다. 우리 기사 났어! 동침을 한 동료 여배우의 말에 눈이 뜨인다. 핸드폰을 키는 박강. 뉴스란에 박강의 스캔들이 대문짝 하게 걸려있다. 연말에 귀찮은 일 생겼네. 기사를 처리할 생각에 매니저부터 생각난다. 그런데 눈치 없이 박강은 매니저만 찾지 않았다. 파트너인 동료 여배우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거 너네 회사가 낸 거 아냐?" 발끈하는 동료 여배우. 집에 크게 걸려있는 박강의 초상화에 커피를 뿌리고 집 밖을 나선다.
박강의 직업은 배우다. 배우라고 하는 것은 연기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박강은 톱스타다. 사생활은 더럽지만 연기는 곧잘 하는 박강. 한국영화대상이라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정도였다. 올해도 후보 지명뿐만 아니라 수상까지 성공하는 주인공. 박강은 수상소감으로 감사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회사 식구들이나 스태프들에게 고맙다고 할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초심 잃겠다'라는, 말실수 아닌 말실수를 해 실검에 등장한다. 안하무인의 톱스타 박강. 온 세상이 우습지만 특히 더 만만한 건 친구 겸 매니저 조윤이다. 회사가 대형 에이전트는 아닌 탓에 박강의 흥망성쇠에 조윤 가족의 일상이 달려있다. 분명 연극 같이 하던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조윤은 박강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다. 자기가 했던 수상소감처럼 초심을 완벽히 잃은 박강. 이런 박강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택시 하나를 탔을 뿐인데 자기가 톱스타였던 세계관에서 무명 재연배우인 세계관으로 옮겨진 것이다!
왜 지금 개봉을?
영화에서 중요한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다. 이 영화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구색을 갖췄다고 느낀 것은 이 시간적 배경 덕분이다. 영화의 이야기에서 이 작품이 왜 이 시기로 잡았는지 설명하는 편이다. 일단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것은 시기가 연말이라는 것이다. 연말이기 때문에 시상식이 있다. 이 시상식에서 박강이라는 인물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묘사하는 대사가 있다. 또 크리스마스 자체가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감독이 이야기의 완결성을 잘 생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도 연관이 있다. 이 상징적인 의미는 후반부에 어떤 대사와 이어진다. 각본을 쓴 마대윤 감독이 이 부분을 일부러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또 영화 전체적으로 크리스마스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이야기의 터닝포인트로 활용한 부분이 몇 개 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라는 소재에 여러 키워드를 넣다 보니 좀 아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왜 개봉시기가 2023년 1월일까? 하는 생각이다. 2022년 12월에 <아바타 : 물의 길>이라는 자연재해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글쓴이는 11월 말에도 개봉시기로 적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인생의 탄생’이라는 관점이 극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모티브이기 때문에 1월의 개봉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올빼미>나 <육사오>처럼 장르적인 개성을 어느 정도는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자의 영화(<육사오>)의 경우처럼 나름의 뚝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적당히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후에 개봉하는 <유령>, <교섭>보다 더한 임팩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예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시기가 좀 아쉬운 영화가 됐다.
심심하면 만날 수 있어
영화의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작년 11월에 개봉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찡한 가족드라마이자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영화. <덩케르크>처럼 미니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넣을 수 있는 건 죄다 때려 박아서 내내 폭발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 하나하나 빼곡히 넣은 소재가 영화의 주제 중 하나(‘모든 것을 경험하고 난 후의 삶’)과 이어져서 의미 없이 소모되는 것이 없었다. 이 <에브리씽~>은 이렇게 연출과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쾌감 덕분인지 많은 분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하려고 하는 말의 방식이 신선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사골국같이 우려낸 소재다. 이제 <에브리씽~>의 연출방식이 아니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단 <소울>만 봐도 이런 소재 영화가 재작년에도 있었다.
이 <스위치>는 이렇게 익숙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개성이 느껴졌다. 바로 영화에서 기본적인 구성이 어느 정도는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는 <올빼미>나 <육사오>와 유사한 느낌이다. <올빼미>가 대체역사물과 스릴러라는 익숙한 맛을 살렸다면 <육사오>는 그냥 순수하게 웃기는데 집중한 영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위치>는 가족구성원들의 캐릭터를 잘 살렸고, 가족의 유대감을 살려 코미디로 소화하는 연출이 몇몇 보인다. 대표적으로 아내 수현 캐릭터가 박강의 행보를 설명해주는 인물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를 설명할 수 있다. 수현이 어떤 캐릭터로 설정됐느냐에 따라 박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좋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나름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인물이 좋은 사람이라 마음이 간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도 있다. 수현의 몇몇 대사는 좀 오그라든다. “이렇게 예쁜 선물을 받아서 화가 난고야?”같은 대사는 아쉽다.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과도 이어진다. 수현에게 비교적 올드한 연출이 집중되기 때문에 거의 주인공쯤 되는 분량인 이민정 배우 부분이 약간 숙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사 몰입에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가족구성원으로 나오는 어머니, 아들/딸은 나름 연출로 잘 살렸다. 자녀가 되는 로이, 로하 역할은 살짝 아쉬운 박강의 감정선에서 관객을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무슨 말이냐고? 아이들이 귀엽다. 특히 박소이 배우도 귀엽지만 그 동생으로 나온 분이 애가 이쁘다. 극 중에서 그렇게 잘생긴 아이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냥 귀엽다. 캐릭터를 살리는 인물 설정이나 촬영방식에서 이 둘을 살리는 연출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캐릭터인 어머니 역은 두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역할을 나쁘지 않게 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처음 등장할 때 어떤 위치에서 나왔고, 두 번째 등장할 때 어디서 만났는지를 보다 보면 가족구성원의 위치가 박강을 설명하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스위치>에서 신파극적인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의 근거는 중 후반부쯤에 어머니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 신이 있다. 뭐 다른 분들은 글쓴이만큼 좋아하진 않겠지만 나는 이 장면이 감정적으로 찡했다. 어머니와 아들 간의 관계를 이렇게 엉엉 울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연출의 예시였다.
살짝 새는 구멍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세팅은 역시 멀티버스다. 영화에서 직접적인 '다중우주' 언급이 없긴 하지만 뭐 다른 평행세계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멀티버스를 언급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 자체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깊게 안 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았다. 단순히 작년만 해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에서 이에 대한 묘사가 나왔다. 이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다중우주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많았다. 당연히 이를 두 번 세 번 설명하면 좀 지루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영화는 이 설정을 과감히 생략하며 이야기의 선택과 집중을 강점으로 발휘시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영화적 특성'에 임팩트를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집중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박강이라는 인물을 곁에 둔 주변인들의 리액션이다. 영화에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세계관이 바뀐 박강의 상태 묘사다. 박강은 다른 세계관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다른 세계에서는 슈퍼스타였던 그가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로 만족한다는 게 말이 쉽지 막상 내 입장이 되면 나 같아도 저렇게 행동한다. 여기에 물리적인 분량을 할당하고 인물의 서사를 쌓은 방식 자체는 코미디로서도 좋고 영화의 매끄러운 연결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영화에서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박강의 가까운 지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묘사된다. 여기서 박강의 인물선은 입체적인데 주인공과 친한 인간관계의 감정선은 평면적인 쪽에 가깝다. 설정에 대한 설명 이전에 박강이 어떻게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인물 서사에서 이를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후반부의 어떤 이야기전개는 숙제를 푸는 듯이 쉭쉭 넘어간다. 수현이 좋은 사람인 것에 의존하는 셈이다.
그리고 어떤 떡밥은 영화가 강박적으로 풀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영화 전체적으로 따뜻한 가족영화적인 특성을 살렸다. 이를 위해서 떡밥을 푸는 행동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 중 ‘와 이건 좋았다’ 싶은 부분도 있다. 가령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라는 것,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부분은 이 부부에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소재가 된다.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은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나름 잘 챙겨서 이야기 서사에 굴곡을 부여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것이 ‘강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 대한 이야기다. <헌트>의 엔딩에 대해서 써보자면, 이 작품의 끝 장면은 고윤정 배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정재 감독이 나중에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이랬겠구나’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반대다. 영화의 인물들이 뭘 어떻게 했는지를 너무 대놓고 다 보여준다. 만약 처음 만난 그 장면에서 끊었으면 여운이 엄청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한 셈이다.
낡은 구석들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이야기를 잘 갖춘 영화지만 나이 든 영화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권상우 배우의 상의 탈의 신 몇 개다. 영화에서 권상우 배우가 상의탈의를 한 장면이 다섯 번 정도 된다. 여기서 두~세 번 빼고는 사실상의 탈의 안 해도 된다. 특히 찜질방에서 조윤과 대화하는 신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권상우 배우 멋있는 걸 굳이 이 영화를 통해서 알아야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보여주는 코미디 신은 호보다 불호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박강이 슈퍼스타인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 아 진짜 싫다. 이걸 재밌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진짜 너무 싫었다. 왜 저러지? 싶었다. 이후에 박강과 어머니의 대화 신에서 느껴지는 뭉클함이 인상 깊어서 이게 더 두드러졌다.
그리고 수현이라는 캐릭터의 연출 방식도 살짝 아쉽다. 수현 캐릭터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다. 배우로서의 성과가 시원찮은 박강을 굳게 일으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로서도 두 아이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어준다. 그렇다고 인물을 납작하게만 설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물에서 몰입이 깨지는 느낌은 대사(들)에서 나온다. ‘나 같은 예쁜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나쁜 거야?’식의 대사는 이민정 배우가 처음 등장했던 <그대 웃어요>에서나 본 대사다. 이런 대사가 이야기가 잘 전개되다가 갑자기 등장해서 좀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민정 배우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영화에 플러스가 되는 셈이다. 근데 수현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이것만 기억나는 거라면 이런 연출방식이 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직업은 배우
사실 권상우 배우에게 예술가적인 기대를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다. ‘옥상으로 따라와’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빼곤 20대 후반인 글쓴이에게도 뭔가 신선한 느낌이 없다. 저번 작품인 <히트맨>에서도 뭔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스위치>에서 권상우 배우는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왠지 불쌍한 무명배우와 슈퍼스타의 간극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잘 연구해서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극에서 굉장히 찡한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도 권상우 배우가 이렇게 감정적인 전달이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하무인 톱스타가 어떻게 이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외로운 눈빛과 몸짓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 분이 새삼 직업이 셀럽이 아니라 배우인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권상우 배우의 최고작 갱신에도 불구하고, 오정세 배우의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었다. 이 배우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극 중 극 연기다. 이 영화 안의 드라마 연기와 영화 자체의 퍼포먼스를 비교하면 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또 조윤이 톱스타가 된 세계관에서의 연기도 나름 충실했다. 대놓고 조윤을 안 챙기는 박강과는 다른 대비되는 모습을 '어떻게 하면 인물들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지'를 연구하고 표현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과시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절제된 인물로 톱스타의 오만과 미덕에 대해 연기하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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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혹하게 친절한 '플레이그라운드'
*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그라운드 Playground, 2021
벨기에 / 드라마 / 72분
감독: 로라 완델
가혹하게 친절한, <플레이그라운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기 자신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때, 우린 그 끝에서 말살된 인간성을 발견한다.
그 이후 우리가 경험하는 건, 지독한 폭력과 끝나지 않는 후유증의 활기.
과연 도구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에게 도구란 무엇일까. 언제부터 우린 서로를 쓸모 있는 물건으로만 인식하게 되었을까. 도구화되어버린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까?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또 뭘까. 결국 우린 죽을 때까지 서로를 짓밟고 살아가지 않으면 살 수 없을까? 하나의 질문엔 답이 아닌 수백 개의 질문이 따라온다.
하지만, 우린 매번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
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니 확신을 목도한 적이 있다.
바로 앞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몇 번을 입으로 소리 내며 따라 했지만, 결코 믿기지 않은 대답.
동시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버린 대답.
'본능'.
살아남기 위한 본능, 존재의 증명을 위한 본능,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본능 같은, 모든 본능.
<플레이그라운드>는 인간이 가진 폭발적인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직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일곱 살 노라는 학교 정문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빠, 아벨은 불안해하는 동생에게 쉬는 시간마다 꼭 놀아주겠다 약속한다. 그러나 노라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계속 뒤를 바라보며 아빠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날 데려가 달라는 간절한 신호를 보낸다.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노라의 불안한 눈빛. <플레이그라운드>는 어른을 대변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등교하는 딸을 조마조마하게, 한편으론 대견스럽게 보는 아빠의 얼굴 대신 아이의 패색 짙은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화는 가혹하게 친절하기로 마음먹는다.
중심에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다.아이러니한 건 그들의 세상이 사실상 모든 어른이 겪었던 '과거'란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의 아이가 겪었던 현재가 나의 과거였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않으면서, '나는 그랬었다'란 과거의 향수를 들먹인다. "누구나 다 그런 시절이 있어."라고 말이다.
쉬는 시간, 전교생이 뛰어노는 운동장으로 노라가 첫 발을 뗀다. 운동장 구석에서 친구들과 있는 아벨을 찾지만, 오빠는 노라를 어떻게든 멀리 떨어트리려 애쓴다."여기 오지 마 전학생 패고 있어, 여기 있으면 너도 맞아."
툭- "점심 뭐 먹을래?" 같은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말하며 노라를 밀어내는 아벨. 하지만 노라는 이미 얼굴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일진에게 목이 잡힌 채 고통스러워한다. 아벨은 자신의 동생이라며 일진을 말리지만, 포식자는 결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왕은 자신이며, 따라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음을 명확히 전달한다. 결국 아벨은 노라를 구하기 위해 일진에게 주먹을 휘두르다, 땅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일진은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자신이 사자인 게 당연하다는 듯, 약자는 강자의 먹이가 되는 게 순리라는 듯 아벨을 사냥감으로 설정한다.
감히 권력자의 업무를 방해한 죄로 아벨은 포식자의 무리에서 추방된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노라는 일진들의 새로운 타깃이 된 아벨을 어떻게든 구하려 애쓴다. 선생님께 일진들이 오빠를 괴롭힌다고 열심히 소리치지만, 아벨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낯선 환경 속에서 마음 편히 친구도 사귀지 못해서 속 시끄러운데, 거기에 오빠는 아빠에게 괜히 심각해진다며, 사실을 숨길 것을 주문한다. 노라는 오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고갤 말없이 끄덕인다. 침묵,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진실. 아벨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고, 노라는 아직 그 본능이 주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오빠는 이미 자신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이들에게서 시작돼 끝난다는 현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진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일진의 유희를 위한 도구로 자신이 쓸모없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역할.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도 효과적이지 않을 거란 확신. 그 확신을 본능적으로 느껴버린 자신의 직감.
아벨의 침묵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반면 노라에게 학교는 새로운 세계다. 온전히 안정적이고 안전한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나와 처음 맞이하는 사회. 우린 사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와는 다른 '타인'을 만난다. 타인의 언어와 행동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뿌듯함을 얻기도 한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온몸으로 받아낸 후엔 반드시 한 번은 사회적인 관점으로 가족을 의심한다. 전에는 늘 완벽하고 좋았던 나의 울타리가 어딘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성장과 후퇴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신발끈을 묶는 법을 모르고, 매일 엄마가 아닌 아빠가 학교 앞에 서 있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노라처럼 말이다.
변기에 머리가 처박혀 고통스러워하는 오빠를 무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 노라. 아이는 잠깐의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파도에 힘들어한다.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아벨의 발버둥과 비웃는 친구들의 눈빛도 더는 견딜 수 없다. 결국 노라는 등교를 거부하는 오빠를 억지로 학교 안으로 밀어 넣는 아빠에게 오빠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진실을 고백한다. 나름 노라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빠가 움직이면 지금까지 걱정했던 일들이 다 사라질 거라 믿는 아이의 순수한 맹목에서 나오는 마음.
그러나 집 안에서 느꼈던 당연한 것들은 집 밖을 나오는 순간 먼지로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노라는 내 세상의 중심에 서서 고민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줬던 아빠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란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아벨은 일진들을 자신을 앞에 세워놓고 사과를 강요하는 아빠의 대처에 얼어붙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무섭게 소리치고, 따끔하게 혼을 내면 착한 아이가 되어 내 아들과 친구가 되진 못해도, 다신 괴롭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아빠의 허망을 눈앞에서 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보다 더 순진하고 무능력한 아빠의 문제 해결 방식은 사건을 더 잔인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만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플레이그라운드> 속 어른들의 대처엔 전부 그러한 망상이 숨어있다. 어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위하고, 앞으로의 일은 다 괜찮을 거라 착각한다. 울타리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정체도 알 수 없는 괴물에게 쫓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원래 그래'란 태도를 고집할 수 있는 이유도 전부 여기에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란 얄팍한 믿음 아래 정작 자신의 아들은 오줌싸개와 쓰레기로, 딸은 더러운 오빠의 동생으로 또 함께 놀기 싫은 애가 된 것도 당연히 몰랐겠지.
어른이 되면, 진짜 문제를 모르는 척 등가죽에 숨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내 의지로 꺼내지 않으면 절대 어둠 속에서 고갤 내밀 일이 없는 그런, 본능, 심보."문제 해결했어, 또 그러면 말해."
"오빠한테 문제가 좀 생겼어, 하지만 아빠가 오셨으니 괜찮아."
"누구든 도움받고 싶은 대로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아."
"넷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하는 거지?"
"그럼 이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악수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으면 막았을 거야."학교란 작은 공간이 세상을 배우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 해서 진짜 아이들의 세계를 모를까? 아니, 우린 다 알고 있다. 단지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는 거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또 연마했기에 가능한 거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이 지점을 꼬집는다. 카메라의 시선이 노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보호하고 도와줘야 할 어른들이 세상을 초월한 말을 내뱉을 때도 화면 속엔 항상 아이들의 불안한 낯빛뿐이다.
정말 좋게 생각한다고 좋아지는 비극이 있나? (솔직히 그런 비극은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처음부터 그들의 말이 가진,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을 이제 막 무리에 들어간 아이들이 어떻게 알까.
노라의 아빠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내성이란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들이 직접 겪어야 할 현재를 함께 해아 한다. 부단히 아프면서 또 후회하면서 세상을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 정작 아이였던 자신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면 더 좋고. 본래 인간이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수다. 눈앞에 있는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는 후배에게, 선배가 해야 할 가장 좋은 위로법이 "나도 그랬어, 아니 너보다 더 최악이었지."인 것처럼 말이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과 해결책을 받아보지 못한 노라는 모래사장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재미있게 모래를 만지며 장난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소문에 몰입한다. 자신이 앉아있는 모래 아래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잠들어 있을까. 운동장이 거대한 무덤이 되어버린 순간, 아이는 묘비 하나 없는 공동묘지에서 두려움보다 더한 공포를 느낀다. 뛰어놀기 좋고 떠들기 좋았던 광활한 땅엔 어떻게든 벗어날 수 없는 폐쇄성이 깃들여져 있었다. 오빠의 사건을 두고 "가끔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도 있거든"라며 뻔한 변명을 반복하는 선생님처럼, 아벨보다 어린 노라에게 계속 오빠를 위해 전부 다 말해달라는 아빠처럼.노라는 결국 그토록 원했던 친구의 생일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하자 꾹 참았던 감정을 오빠에게 터트린다. 친구의 초대장을 찢어버리면서 다시 외톨이가 되고, 친구들 앞에선 오빠를 옆에 두고 "내 오빠 아니야."라고 선언한다. 동생의 말 한마디에 아벨은 아무 말하지 못하고 고갤 숙인다. 죄인처럼, 다신 웃을 수 없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라에게 주어진 선택은 아벨 밖에 없었다. 아벨이 자신과 유일하게 놀아준 친구(이스마엘)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것은 애석하게도 본능이었다.
아이가 먼저 배운 게, 옆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이라니.
노라는 아벨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죄책감과 실망을 해소하려 하고, 아벨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나가기 위해 친구를 모래 구덩이에 넣는다. 일진이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 아벨을 괴롭혔듯, 아이들은 제각각의 본능을 무기 삼아 남을 옭아맨다. 누구도 나서서 알려주지 않았던 행동들을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일어나 걷듯이 자연스럽게 혼자 습득한 것이다. 정작 어른들이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을 텐데.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아벨은 자신을 말리는 노라에게 날카롭게 묻는다. 다시 내가 맞는 게 좋냐고. 차라리 맞는 것보다 때리는 게 낮지 않냐고, 나의 폭력이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잊게 해 준다고, 나쁘고 좋고를 떠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노라는 아벨의 변화가 전부 자기 탓인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린다. 단숨에 오빠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만든 장본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왜 노라가 그런 프레임에 갇혀야 할까.
더구나 오빠는 이스마엘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자해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
마지막까지 어른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일련의 사건들을 전부 지나갈 과거로 치부하는 그들의 행보다. 결국 아벨을 막아선 건 동생 노라였다.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폭력 세계에 아이인, 노라가 선택한 건 두려움에 터져 나온 호소와 몸을 던진 애원이었다. 아벨은 이스마엘을 모래 구덩이 안으로 넣으려는 자신을 막는 노라를 밀어내려 하지만, 제발 이러지 말라는 동생의 외침에 마침내 멈춰 선다. 이윽고 자신을 꽉 안고 있는 노라를 안으며 억눌렀던, 참아야만 했던 참담한 슬픔을 토해낸다.
아벨 역시 이 현실이 노라만큼이나 버겁고 두려웠을 테니까. 돌고 도는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휩쓸려가 버렸던 오빠의 손을 잡아끈 노라의 용기가 <플레이그라운드>의 정점을 찍는 동시에 마지막을 장식한다.<플레이그라운드> 메인 포스터
살아남기 위한 본능은 필요하다. 존재의 증명을 위한 것도, 내가 살아있게 하는 것도 당연히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실수로 포장하곤 한다.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본능을 당연한 특권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고 또다시 이용하려 애쓰는 것을 자연현상처럼 여긴다. 자연재해로 얼렁뚱땅 넘겨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플레이그라운드>가 보여준 노라의 용기는 인간의 본능을 가치 있게 활용한 결과이다.
우리가 계속 추구하고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 본능. 나를 위해 남을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란 걸 먼저 아는 본능. 그것은 습득이 가능하다. 그러니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지.
학교폭력에 무감각한 어른들의 모습도 영화가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겠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것이 제일 귀중한 메시지가 아닐까.결말이 주는 씁쓸함은 폭력의 고리를 끊은 주체가 어른이 아닌 아이란 점이다.
다행스럽단 느낌은 결국 노라가 해줬단 마침표의 영향이다.
하지만 <플레이그라운드>가 끝까지 남긴 건 불편함이다. 우리가 조금의 희망을 발견했다며 안도하고 '그래 다 끝났다' 생각한 순간을 예상하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가혹하게 친절한 건, 아벨의 침묵을 이해한 것처럼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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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종이의 집: 파트 5> 공개 예정 예고편
[1부 2021년 9월, 2부 2021년 12월, 넷플릭스 공개]
이제는 전투 그 이상이다. 전쟁이다! 레지스탕스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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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루시드 드림> 예고편
제작자에게 잔소리를 듣던 감독은 조명사고로 인해 쓰러지게 되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여러 장르의 꿈을 꾸게 된다.
기쁜 날을 빙자해서 돈을 사기 치려는 세계, 분노로 직장 상사를 죽이는 범지진, 사랑으로 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엄마, 기사가 실종되는 노선을 운행하게 된 아총의 공포가 즐거움으로 뒤바뀌는 꿈.
감독은 이 네 가지의 꿈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