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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5-04-02 21:57:03

계시록 | 용두사미로 끝난 종교 미스터리 스릴러

넷플릭스 <계시록>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질을 놓친 종교 미스터리 스릴러


관점에 따라 종교의 정의는 달라지지만, 크게 두 가지의 공통된 조건은 꼽을 수 있다. '초월적 존재'와 '직관'이다. 인간과는 다른 초월적 존재나 현재 살고 있는 세상과는 별개인 초월적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에 대한 직관적 경험을 토대로 믿음을 갖는다는 것. 이때 주관적인 경험이 여러 차례 반복되거나, 여러 사람에 의해 객관적으로 진술 또는 관찰될 수 되는 경험이나 사건이 있다면 이를 종교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의를 따르면 종교는 일반 사회, 세속과 긴장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종교적 경험이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존재와 세상의 질서와 규칙에 근거하는 한, 일반 사회의 범과 규범에 어긋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속의 관점에서는 시민적 합의 대신 초월적 존재에 근거하는 종교적 규범이나 질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럽이나 중동에서 이슬람 전통과 민주주의 체제가 쉽사리 융화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계시록>은 바로 이 간극과 긴장 상태에 주목했다. 사회의 규칙과 다른 차원의 질서 간에 존재하는 갈등을 한 성범죄자를 추적하는 목사와 형사의 스릴러 내에 녹여낸다. 문제는 종교적 소재를 다른 메시지를 꺼내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하는 연상호 감독의 고질병이 도졌다는 것. 그로 인해 <계시록>은 종교적 통찰과 메시지도, 미스터리 스릴러다운 장르적 쾌감도 놓치고 말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종교 vs 사회

 

<계시록>의 전반부는 예상외다. 그간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캐릭터 개개인의 서사를 다루는 데 미숙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정이>, <선산>에서도 반복되는 문제였다. <계시록>은 다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제작자로 합류한 효과인지는 몰라도, '성민찬'(류준열)과 '이연희'(신현빈)의 내면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긴장감을 쌓아 올린다. 그 덕분에 두 주인공이 속한 전혀 다른 세계도 직관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민찬의 세계는 종교적이다. 계시를 따르면 현실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이 반복된다. 딸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은 민찬은 교회에 방문했던 성범죄자 '권양래'(신민재)를 범인으로 의심하며 그의 뒤를 밟는다. 미행을 들킨 민찬은 몸싸움 끝에 양래를 산비탈 아래로 밀어버린다. 그런데 민찬의 살인미수는 밝혀지지 않는다. 양래의 집 앞 CCTV가 고장 나고, 그와 몸싸움을 벌인 현장도 폭우 때문에 증거가 사라진 행운이 뒤따른 덕분이다.  

 

이에 민찬은 양래를 밀어버린 뒤 목격한 예수의 얼굴이 계시라며 그를 단죄하는 게 신의 뜻이라고 믿는다. 그 이후로 민찬에게는 행운이 이어진다. 새로 생길 대형 교회 담임 목사직도 제안받고, 우연히 방문한 양로원에서 겨우 살아난 양래를 발견해 그를 완전히 단죄할 기회도 잡는다. 민찬이 차 안에서 아내에게 불륜 사실을 고백하라고 외치는 기괴한 장면은 그의 세상이 직접 경험한 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희의 세계는 정반대다. 그녀가 양래를 죽여야 할 동기는 누구보다도 명확하다. 복수다. 여동생 '연주'(한지현)가 그에게 강간당했고, 그가 정신병력을 이유로 감형받자 연주는 자살했으니까. 연희 본인도 여동생의 환시와 환청을 겪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사회의 질서를 준수하고, 법의 처벌을 믿는다. 여동생 사건을 겪은 후로도 연희가 경찰복을 벗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롱테이크 액션에 담긴 함의


민찬과 연희의 세계는 양래를 기점으로 충돌한다. 그들은 양래가 흉악범죄자이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다. 민찬은 신의 뜻대로, 신의 정의대로, 신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율에 따라서 양래를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본 계시에 따르면 살인이 사회적으로 살인이 금지된 행위일지언정 신의 정의에는 부합한다.

  

연희는 민찬의 세계를 용납할 수 없다. 아무리 그 의도나 목적이 선하다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합의이니까. 이렇게 보면 두 주인공의 충돌은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낸 세속의 질서, 윤리나 선악의 기준이 초월적인 존재의 규범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여기에 양래의 서사가 더해지면 <계시록>의 종교적, 윤리적 딜레마는 더욱 깊어진다. 

 

양래는 이미 계부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한 차례 감형을 받은 바 있다. 출소한 후에도 연주에게 했듯이 '아영이'(김보민)에게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계부 핑계만 늘어놓는다. 속죄하지 않는 그를 보다 보면 '그에게 과연 법의 처벌만으로 충분히 정의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까?' '민찬의 방식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그런데 민찬이 법의 잣대를 어긋나도 그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버려진 건물에서 펼쳐진 원테이크 액션 시퀀스가 <계시록>의 하이라이트인 이유다. 물론 액션 연출 자체도 박진감 넘치고, <그래비티>와 <로마>에서 인상적인 롱테이크 장면을 보여준 알폰소 쿠아론의 존재감도 인상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 악인을 두고서 전혀 다른 정의와 질서, 우주와 세계가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상황을 고스란히 액션에 담아냈기에 이 시퀀스는 특히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계시라는 신기루

 

하지만 이 액션 시퀀스 이후로 <계시록>은 급작스레 길을 잃는 듯하다. 정신과 의사를 등장시키고, 그의 입을 빌려서 명확한 답을 알려주며 손쉽게 갈등을 매듭짓는다. 민찬의 계시가 서로 연관성이 없는 대상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심리적 경향인 '아포페니아(Apophenia)' 현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믿는 존재와 그가 사는 세계를 부정함으로써 두 우주, 질서의 충돌을 무마한다.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민찬을 양래와 같은 범주의 인물로 묶고, 그들과 연희의 차이점을 부각해 상술한 딜레마를 해결하려 한다. 이를 위해 <계시록>은 민찬이 본 계시를 일종의 신기루로 취급한다. 양래가 자신의 성범죄를 계부의 학대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변명하듯이, 민찬도 계시라는 합리화 기제를 통해서 살인미수를 신의 정의라고 변명한다는 것이다. 

 

연희는 다르다. 자신의 행동을 신과 계부의 탓으로 돌린 두 사람과는 달리 자기 행동을 온전히 책임지려 한다. 복수심에 매몰되는 대신 자기 의지로써 동생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영이의 안위를 우선순위에 두려고 애쓴다. 이들의 차이를 통해 <계시록>은 한 인간을 악과 선으로 가르는 건 자신의 생각이고 의지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계시록>이 포기한 것

 

위와 같은 <계시록>의 결론은 윤리적으로 깔끔하다. 일반적인 상식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메시지의 설득력, 당위성과는 별개로 <계시록>의 답변은 영화적으로 영리하지 않다. 중반부까지 <계시록>은 민찬이 본 환시가 그의 합리화일지 아니면 진짜 계시일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를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으로 삼았는데, 이 장점과 특색을 스스로 포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민찬과 연희의 추격전에는 이중의 긴장감이 감돈다. 연희가 스릴러의 서스펜스를 담당할 때, 민찬은 다른 결의 긴장감을 쌓는다. 신의 정의를 내세우는 민찬에게 맞받아치는 양래의 하소연에 철학적 논쟁이 담겨 있기 때문.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면, 어린 양래가 계부에게 학대당할 때 신이 무엇을 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신이 회개하는 죄인을 사랑한다면, 민찬이 신의 계시를 잘못 이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민찬의 계시를 허상이라고 결론짓는 순간, 그의 서사는 그저 비겁한 정신이상자의 틀 안에 갇힌다. 종교적 현상에 기대어 쌓아 올린 신비로운 분위기와 상이한 질서의 충돌이 빚어낸 긴장감도 한순간 허물어진다. 그렇다고 복수심을 극복하는 연희의 이야기만으로 그 공백을 채우지도 못했다. 인간의 의지가 선과 악을 가른다는 주제의식은 <다크 나이트> 같은 히어로 영화에서 자주 다뤄진 만큼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익숙한 용두사미로 끝나다

 

더 나아가 연희가 극을 주도하는 후반부에서는 신비한 분위기와 미스터리에 가려졌던 부족한 완성도도 두드러진다. 사실 <계시록>은 첫 10분 정도만 보더라도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들이 어떻게 얽히게 될지를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연희가 아영이를 구해내는 후반부 전개는 그 예측으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히 <계시록>의 결말은 범죄 스릴러 작품에게 기대할 법한 장르적 쾌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또 종교적 미스터리를 포기하고 범죄극을 취했지만, 정작 범죄 드라마로서의 특별함도 부족하다. 양래가 아영이를 숨긴 위치를 찾아내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가해자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상징과 범죄 장소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이는 <마인드헌터>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과 같이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는 범죄 심리극의 패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전개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종교를 이용해 판을 깔지만, 정작 종교를 깊이 못 다루는 작법은 연상호 감독의 고질병처럼도 보인다. 전작 <선산>에서도 선산에 얽힌 오컬트처럼 분위기를 잡다가, 결국 가족 관계의 비밀을 풀어내기 바빴으니까. 즉, 좋게 말해 예상외의 전개가 주는 재미가 있고, 나쁘게 말해 소재의 잠재력을 밀어붙일 용기가 없는 스토리텔링이 연상호 감독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임을 <계시록>이 확언해 주는 듯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Poor 형편없음

 

연상호의 트레이드마크는 용두사미인가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381998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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