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토로2021-04-17 15:47:59
이문세의 노래가 무서워지는 영화
우리 동네(2007)
그 당시 개봉작이었던 세븐데이즈와 고민하다가 고른 '우리 동네'. 나름 기대가 있는 영화였다.
뮤지컬배우 출신인 오만석과 개인적으로 목소리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 이선균, 그리고 그때의 기대주 류덕환.
특히 휴덕환이 기대가 됐던 것은 이 영화에서 역할인 살인자를 연기하기위해서, 그 느낌을 받기 위해서 머리맡에 칼까지 두고 잤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충무로의 기대주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기대랄까?
영화가 시작되면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실제로 놀라는 부분보다는 잔인한 부분이 많다고 해야겠다.
더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잠시 접어두고...
보고 나와서 이해를 잘 못했던 친구를 위해서 세 사람의 관계, 집의 관계에 대해서 얼마나 샅샅이 이야기 해 주었는지, 영화를 보고 나서 분석하고 있던 나 자신이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감탄사로 표현하자면 "역시 류덕환!"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아 이제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은 밤에 부르는 섬집아기처럼 섬뜩한 노래가 되겠구나 하는 것이다.
특히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라는 가사는 효이(류덕환)와 경주(오만석)와의 관계를 대변해주는 듯 했다.
영화를 직접 보신다면 무슨 뜻인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
그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제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보고싶던
그얼굴을
그저 스쳐~ 지나면
그대의 허탈한
모습속에~
나 이젠 후회없으니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보고싶던
그얼굴을
그저 스쳐~ 지나면
그대의 허탈한
모습속에~
나 이젠 후회없으니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사랑이 지나가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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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입니다만
영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말하게 되는 부분인데 픽션을 볼 때에는 어느 정도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미나리>를 보고서 '우리의 뿌리는 소박하지만 위대했다' 같은 결론을 내린다던가, 결국 제이콥과 모니카가 같이 잘 살았을까 같은 해피엔딩을 유추한다던가, 냉전 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베이비부머들처럼 '부모님들이 저렇게 고생해서 우릴 키웠다'라고 눈물을 훔친다던가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감상들을 느낄 수야 있겠으나 어느 정도 영화를 꽤 많이 봐 온 일정 나이 이상의 성인이라면 그런 개인적 감상과 영화가 보편적으로 가지는 상징성에 대해 분리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요즘의 픽션들의 트렌드인 것 같기도 한데, <미나리> 또한 어떤 특정 페이소스를 자아내기 위한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역사의 이야기를 사뭇 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묘사한다. 그 가운데에서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격동은 있지만 그것이 어떤 영향과 의미를 가졌는지 작품 속에서 굳이 풀어서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이 영화를 보고 거진 "심심하게 끝났다" 혹은 "결말이 의아했다" 같은 평을 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이민자들에게는 좀 더 감정적으로 건드려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 입장이 아니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사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영화에서 가장 거슬리는 것은 자뭇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서사가 아니라 스티븐 연의 연기다. 윤여정과 한예리가 정말로 미국에 정착한 한국인의 연기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반면 스티븐 연의 한국어는 그냥 교포 말투 그 자체다. 정이삭 감독의 묘사와 연출이 얼마나 정확하냐면, 그렇게 어눌한 번역투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스티븐 연의 연기를 통해서도 땅과 자기 일(그니까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사업 그 자체)에 집착하며 개인적 만족과 자아실현을, 자신이 꾸려놓은 가정보다 우선시하는 답 없는 구시대 한국 아버지의 모습을 너무 정확하게 전달했다는 점이다. 제이콥의 모습을 보며 사업 트라우마에 시달린 한국 가정 구성원들이 아마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나리>는 굉장히 한국 문화의 일종의 헤리티지를 예리하게 담아낸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노릇을 하는 제이콥의 모습 외에도 외할머니가 자기의 집으로 데려가거나 혹은 아예 딸의 집에 와서 손주들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보편화된 보육 형식인 나라도 아마 한국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가부장적인 문화적 습성 때문에 한국에서는 부계 쪽 조부모들은 어떤 집안의 문화나 재산을 물려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모계 쪽 조부모들은 보육이나 가사 등 좀 더 노동에 가까운 자원을 제공해 주는 조력자로 인식되곤 한다. 흔히 '헤리티지'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그래서 어떤 가풍이나 그의 뼈대가 된 재산과 성씨를 물려받은 집안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외가댁은 이런 집이었다, 정도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 사실 따져 보면 외할머니가 어릴 때 키워준 사람들 손 들어 보라고 하면 최소 10명 중 4명은 손 들지 않을까 싶은 한국에서 정말로 가족의 헤리티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외할머니를 포함한 모계 조상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켄 리우의 소설집 <종이 호랑이>는 <미나리>에 비해 좀 더 '아시아적'인 서사와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 효도하지 않던 아들이 엄마가 돌아가신 후 후회막심에 눈물 흘린다는 전래 동화는 유치원 때부터 동양인들이 지겹게 들어오던 것이다. 어쩌면 그 전래동화의 21세기 형 리메이크려나. <종이 호랑이> 뒤로 이어지는 수 많은 단편들에서도 비슷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중화권 문화에 기반한, 완전한 당사자의 입장(authentic)보다는 이민자가 느끼는 몇 다리 건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인식을 묘사한다.
판데믹 시대에 아시안(이라는 단어로 하나로 묶이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에 대한 인종차별 정도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원래부터도 꾸준히 이야기돼 왔던 것이지만 자극적 사건이 터져야만 주목하는 대중들의 성격 상 2020년~2021년이 기점으로 느껴진다. <기생충>과 <미나리> 같은 영화들이 미국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 것도 그렇다. 그들은 무엇이 '아시안 헤리티지'를 대변하고, 그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아시안 헤리티지'란 것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데서부터 메타적으로 차별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1 세계에서 아시안이라는 단어에 코카서스인인 인도, 중동 사람들까지 포함해 부른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백인들을 대상으로 아시안들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 정답은 '아무것도'다. 꼭 아카데미를 타지 않아도(나도 <기생충> 재밌게 봤음, 쿨병 걸린 매국노 아님) 그래미를 수상하지 않아도(BTS 좋아함 다이너마이트 완창 가능), 그러니까 "꼭 K-문화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지 않아도"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가 있다. <벌새>가 영화사에 남을 위대한 페미니즘 서사였던 것처럼,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집단의 영혼을 대변할 수 있다. 아카데미와 그래미가 아니더라도, 논밭에 집착하는 한국 아버지와 마사지샵에서 일하는 한국 어머니도 문화의 일부고 집단의 속성을 대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변은 그 누구도 설득할 필요가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냥 존재일 뿐 타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이나 유럽에 사는 아시안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 및 다른 여타 소수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윤여정 배우님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면 한국인 여성으로서 기분은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나리가 아카데미 무관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전혀 상관없고 아쉬울 것도 없다. 애초에 백인 할아버지들이 만든 시상식이 영화계를 과잉 대표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도 정론이 된 지 오래인데, 한국인들의 귀염둥이이자 아시안 스피릿의 수호자가 된 봉준호 감독도 오스카는 로컬이라고 단언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수상 결과에 기뻐하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에 맞거나 평생을 더 가난하게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몇 억 명인 세상에서 우리가 그들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 보는 것이 더 세상을 바꾸는 데에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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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이라는 시대의 거울
특종에 혈안이 된 기자,상진이 있다. 그는 대기업 만전이 엮인 일이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취재를 감행한다. 하지만 그의 기사는 인터넷상에서 오보로 판명되어 그는 회사에서 축출된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큼 만전의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접근하는데, 자칭 댓글부대라고 주장하는 일명 찻탓캇이 그의 삶에 들어와 그를 휘젓고 간다. 찻탓캇은 인터넷의 댓글이란 팩트체크가 되지 않은, 누군가의 헛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여론을 뒤집는 검은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검은 세력의 선두에 만전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1. 아무도 모른다.
인터넷 세상에서의 물타기란 당연한 현상이다. 물타기를 해서라도 여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현재의 세상은 여론이 곧 돈이고 권력이다. 그 지점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분야가 마케팅일 테고, 부정적으로 이용하는 쪽이 댓글로 하는 여론 조작일 것이다. 인터넷 세상 속 소문은 얼굴을 대면하는 소통보다 퍼지는 속도가 빠른 데다가 짜깁기했을지언정 일말의 증거가 있기 때문에 소문의 진위 여부를 제대로 알기가 힘들다. 진짜인 것처럼 만드는 방법은 따로 있다. 사실의 진위 여부보다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댓글 속에서 오가는 소문이 진실로 인식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든 스킬을 다 오픈하는 영화이다. 여론을 만드는 분야에서의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올드미디어의 기자인 상진은 인터넷 속 여론을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지만 그는 그런 헛소리 때문에 직업을 잃는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진실이 올드미디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는 댓글 속 세상과 자신이 속해 있던 세상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 버린다. 그는 인터넷 속 만전에 대한 음모론에 빠져 헛소리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만전의 음모는 존재하는 것일까.
2. 상진의 앞날은
'완전한 진실보다 거짓이 섞인 진실이 더 진짜 같은 것처럼'
상진은 수많은 기사를 써왔지만 그가 한 팩트체크는 증거가 딱히 있었다기 보다는 사람의 증언에 기대어 기사를 썼기 때문에 조금 위험한 지점이 있었다. 사람이 하는 말은 간사하게도 바뀔 수 있었고, 그가 몸담고 있는 미디어는 진실을 파고든다는 이미지로 살아가는 업종이기에 이런 허술한 팩트체크 능력은 그에게 독이었다. 완전한 진실을 외치는 올드 미디어보다 '이거 진실인데 아니면 어쩔 수 없지'의 마인드로 올리는 인터넷 글, 댓글들은 파급력이 훨씬 세다. 오히려 그글을 접하는 상당수가 한정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데다가 팩트체크에 대한 대단한 의무와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찻탓캇은 얼굴을 들이밀었기에 실재로 존재하는 댓글 부대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증언 속 팹택 등의 동업자들은 정말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엔 단 한 명의 인물로서의 팹택이 있었다기 보다는 수많은 댓글러 속의 유형 중 팹택 같은 유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댓글 속에서 의견을 내는 유형이 다 다른 만큼 소문이 퍼지기를 부추기는 유형도 있고, 한참 동조하다가 일이 잘못되면 갑자기 양심선언하는 부류도 있는 것 같다. 찡뻤킹 처럼 말이다. 여러 유형의 댓글 이용자들을 한 사람의 캐릭터로 형상화한 건 아닐까. 결국 찻탓캇, 찡뻤킹, 팹택 등은 댓글을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아닐까.
그만큼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는 개미들은 여기저기 숨어있다는 뜻이겠지.
상진은 무슨 억하심정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만전에 대해 집착적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어떤 결론도 제시하지 않는다. 상진이 만전을 이겼는지, 만전에 먹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하기 위해 댓글러들의 방식을 이용하는 모습에서 올드미디어보다 댓글 하나의 파급력이 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이 속해있던 올드미디어의 방식을 버렸구나 하고 느꼈다. 그렇게 되면 그가 그렇게 외치던 기자의 정체성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것이 전부였던 것인가. 그리고 이제 그는 만전을 향한 독립적인 투쟁을 시작한 것인데, 찻탓캇의 얘기를 곱씹어보자면, 왜 그가 만전의 계략에 빠진 것만 같지 싶었는지 모르겠다. 만전은 왠지 상진이 이 길로 빠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 이거 음모론인가.
이렇게 음모론은 한 개인의 마음에 바이러스처럼 자라난다. 댓글은 이런 심리를 자극하는 매개체다. 그 안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을지 모르니 우리는 모두 자칭 탐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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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평범해질대로 평범해진 디즈니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는 자사의 61번째 작품이자 "디즈니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작품이다.
이를 맡은 사람으로는 <빅 히어로, 2014>의 감독 "돈 홀"과 함께 전작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2021>과 합을 맞추었던 "퀴 응우옌"이 이름을 올렸고, "제이크 질렌할 - 데니스 퀘이드 - 루시 리우"가 출연하였다.
근데, 언제부터 였을까? -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이렇게나 기대를 안 되는 것이 말이다!전설적인 모험가 "아서 클레이드"의 아들. "서처"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에 자신과 함께 모험을 했던 동료 "칼리스토"가 도움을 청하고 "서처"는 이에 못 이기는 척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근데, 오래전에 실종되었던 아버지 "아서"와 재회하게 되는데...1. 익숙해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험들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의 이야기에서도 직접적으로 "모험"이 제시되는 것으로 해당 작품이 "어드벤처"라는 건 두말하면 입만 아프겠지? - 하물며, 포스터의 폰트는 <인디아나 존스, 1982-2008>시리즈를 연상케한다!
이외에도 <미이라, 1999-2008>와 <캐리비안의 해적, 2003-17>시리즈 등. 여러 작품들로 파생되었을 만큼 본 작품이 관객들에게 보여줄 장면들과 시퀀스들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그런 점에서 맞이하는 <스트레인지 월드>의 볼거리들은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해당 작품을 보기에 앞서 "모험"을 대하는 두 종류의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영화와 같은 보이는 매체인 만큼 '기대감과 공포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에 시각적인 효과는 필수이다!
앞선 작품들이 비슷했음에도 각기 다른 작품으로 기억하는 데에는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 것이 의아할 만큼 살벌한 비주얼들이 있기 때문이다. - 살 속으로 파고드는 벌레와 얼굴에 달려있는 문어 다리들을 기억하라!2.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
그런 점에서 <스트레인지 월드>, 역시 살벌한 비주얼을 뽐내는 데에 성공한다.
물론, "디즈니"와 "애니메이션"인 만큼 과격하진 않지만 각인시키는 데에는 충분한 징그러움이 아닐까?
여기, 우당당탕거리는 추격전까지 "어드벤처 영화"가 갖춰야 하는 미덕은 다 있으니 영화를 즐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캐릭터들과 이야기 형성에 있어 아쉬운 점들을 노출된다.영화 <스트레인지 월드>의 주인공 "아서"와 "서처", 그리고 "이든"까지 이들을 한데 묶어내는 주제는 부자(父子) 관계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에 자신과 같은 성의 부모의 행동들을 따라 하며, 사회성을 익히기에 그 누구보다 친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들이 엄마를 두고서, 아빠와 경쟁은 펼치는데 이런 이유에는 자신이 아빠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여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있다.이런 모습을 극 중. 자신의 아들 "이든"에게 아버지 "아서"의 모습을 수시로 겹쳐 보이게 함으로 경쟁을 넘어 혐오의 감정을 일깨우게 만든다.
3.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한계가 보인다. 보여!
이렇듯이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는 "가족의 화합"으로 이야기를 가져온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발암캐"라고 정리될 만큼 답답한 감정만을 가져오며, "악당"의 존재에서도 이어진다.
앞서 "이모텝"과 "데비 존스"가 무서운 비주얼만으로 기억되는 건 아닌 것처럼 "부활"과 "사랑"이라는 저마다 확실한 동기들이 있었다.
본 작품에서도 "공리주의"라는 시점에서 동기는 확실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는 기준에 금방 정리되고 만다.물론, 이후 야심 차게 준비한 "반전"도 있지만 이미 김이 빠질 대로 빠져서 크게 감흥이 오지 않는다.
· tmi. 1 -극 중. "이든"은 "게이"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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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시리즈 순위
분노의 질주 시리즈 순위
#10 : 외전 홉스 & 쇼 (Fast & Furious Presents: Hobbs & Shaw, 2019)
<데드풀2>의 데이빗 레이치는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타뎀의 출연작에 대한 메타유머를 활용하고, <007 시리즈>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다. 런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모아로 공간적 배경을 옮겨 다니고, 007의 국제 범죄조직'스펙터'에서 영감을 받은 '에테온'을 등장시킨다. 또 런던 리든홀 활강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의 부르즈 할리파 장면을 오마주했다.
<홉스 & 쇼>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라기보다는 '버디 액션 코미디'에 가깝다. 또 이야기가 허술한 것은 이해한다 손치더라도 액션조차 히어로영화스럽다. 또 '해티 쇼(바네사 커비)'는 등장할 때마다 빛나지만, 블랙 슈퍼맨 '브릭스턴(이드리스 엘바)'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진다.
#9: 2편 패스트 & 퓨리어스 2 (2 Fast 2 Furious, 2003)
전편의 답습, 마이애미로 이사 간 브라이언은 새로운 파트너 로만 피어스(타이리스 깁슨)와 콤비를 이루지만, 빈 디젤의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테즈(루다크리스)가 코믹하게 등장한다.
1시간 반 남짓한 2편은 드라마를 듬뿍 덜어낸 대신 존 싱글턴은 '스트리트 레이싱'에만 집중한다. 문제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 속도감은 있지만 우스꽝스럽다. 아무리 저예산 B급 액션 영화라고 해도 동선조차 조잡하다. 이상 2편은 1편과의 연계성도 거의 없고, 엉성한 캐릭터와 부실한 볼거리, 뼈대만 남은 앙상한 스토리라인이 아킬레스건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로만과 테즈 콤비를 득템했다.
#8 : 3편 도쿄 드리프트 (Fast And The Furious: Tokyo Drift, 2006)
그야말로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인 ‘스트리트 레이싱’에만 올인한 3편이다. 특히 ‘드리프트’의 속도감과 긴박감을 살리기 위해 현역 드라이버 중심으로 구성된 스턴트 스태프들이 온몸을 불사른다. 이쯤 되면 <트리플 X>와 <분노의 질주>를 제작한 닐 오비츠의 성향이 나온다. 플롯, 캐릭터, 드라마, 리듬은 약하지만, 속도감과 볼거리만큼은 끝내준다. 설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설득력을 갖춘 캐릭터가 없다. 이것이 패착이다.
새로 합류한 저스틴 린 감독은 시리즈의 전통인 '길거리 경주'와 '자동차 문화', '범죄' 등 향후 프랜차이즈를 구성할 방향성을 대폭 수정한다. 바로 '다민족 캐스트'를 강조하고, '해외 로케이션'을 적극 반영할 준비를 이미 3편에서 끝마쳤다. 향후 블록버스터로 나아갈 기초공사를 마친 셈이다.
#7 : 8편 더 익스트림 (The Fate Of The Furious, 2017)
프랜차이즈를 책임지는 작가 크리스 모건과 범죄영화에 특화된 F. 게리 그레이는 사망한 폴 워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분노의 질주>만의 포뮬러(공식)을 깨버린다. 리더 돔 토레토(빈 디젤)이 자신의 패밀리를 배신하는 영리한 조치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한을 살해한 데커드 쇼(제이슨 스테이섬)에게 별다른 속죄 없이 면죄부를 부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특유의 가족드라마가 깨졌지만, 홉스(드웨인 존슨)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워커의 부재로 말미암아 실종될 버디 코미디를 되살렸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캐릭터쇼와 볼거리가 다양하고 액션 규모를 키운 반면에 메인 빌런인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
5편부터 그 조짐이 보였지만, 액션 스타일이 007시리즈를 자꾸만 연상시킨다.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분)가 차량을 비스듬히 기울여 운전하는 장면은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설원의 카 액션은 <007 다이 어나더 데이>를, 최종 병기로 잠수함을 활용한 클라이맥스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007 언리미티드>을 떠올리게 한다.
#6 :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F9: The Fast Saga, 2021)
유니버설은 ‘더 패스트 사가(The Fast Saga)’로 명명된 지난 시리즈를 정리하고 후속작(F10, F11)에 쓰일 복선을 미리 깔아놓는다. 그래서 9편은 드라마 비중이 상당하다. 또, 5편에서 '드웨인 존슨'을, 6편에서 '제이슨 스타뎀' 같은 유명 배우를 추가해서 얻은 효과를 존 시나를 통해 노리고 있다. 그래서 토레토의 가정사부터 3편<도쿄 드리프트>의 등장인물 백스토리까지 캐릭터 개발에 공을 들인다. 동창회처럼 시리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총집결한다.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터무니없는 액션과 캐릭터 쇼로 끊임없이 팬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존 시나를 추가하는 바람에 페이스가 느려졌다. 가족 드라마를 그리기 위해 긴박감과 박진감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 얼개가 탄탄해진 것도 아니다. 이 시리즈는 불가능한 것이 없도록 스스로 세계관을 바꿔왔다. 이제 이 전략이 한계 지점에 다다른 것 같아 불안하다.
#5 : 4편 더 오리지널 (Fast & Furious, 2009)
4편은 사실상 리부트에 가까운 '기능적인 영화'다. 저스틴 린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 모건은 폴 워커와 빈 디젤을 다시 등장시키며 1편을 리뉴얼한다. 초기 영화(1·2·3)의 스트리트 레이싱 드라마와 후기 영화(5·6·7)의 액션 블록버스터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이런 불균질한 영화의 톤이 몰입을 방해한다. 그리고 차량 투척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액션이 별 특색이 없다.
1편의 전개와 구도, 캐릭터를 동어반복한지라 작품 자체의 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레티(미셀 로드니게스)에 대한 부주의한 대접은 <분노의 질주> 특유의 가족 드라마를 방해한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이후부터 저스틴 린은 캐릭터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유일한 장점은 ‘한(성강)’을 도미닉의 친구로 등장시켜 외전에 가깝던 3편을 시리즈의 세계관에 편입시켰다는 정도다.
#4 : 1편 분노의 질주 (The Fast And The Furious, 2001)
이 저예산 범죄영화가 이후에 21세기 초 가장 중요한 영화 프랜차이즈 중 하나가 될 것을 알았을까?1편의 줄거리와 캐릭터, 설정은 <폭풍 속으로 (1991)>을 참조했다.
1편의 진정한 가치는 ‘길거리 레이싱’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세운 점이다. 먼 훗날, 탱크와 핵잠수함, 헬기, 우주선, 슈퍼 카들을 고려하면 스케일은 소박하고 싱겁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아날로그 액션만큼은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순수하고, 날 것 그대로의 쾌감이 살아있다.
#3 : 6편 더 맥시멈 (Fast And Furious 6, 2013)
레티 오티즈(미셸 로드리게스)를 복귀시키기 위해 기억상실증으로 엉성하게 처리한 것처럼 이 영화는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다. 이제 질주는 뒷전이고, 고급차를 마구마구 ‘파괴’하는 분노에 집중한다. 게다가 이번 빌런도 '도플갱어'다. '팀 돔과 팀 오웬의 단체 대결'이 줄거리 전부이고, 슈퍼 카(심지어 탱크, 수송기까지도)들을 즐비하게 등장시키고 그것을 아낌없이 때려 부순다.
지젤(갯 가돗), 엘레나 네베즈(엘사 파타키)이 퇴장하거나 어정쩡해졌지만, 이 재밌는 난장판을 통해 도미닉 일당은 동료애를 넘어서서 '가족애'로 승화되고, 쿠키 영상으로 3편(도쿄 드리프트)와의 연결 고리도 확보한다. 007시리즈를 본받아 프랜차이즈는 '저예산 레이싱 영화'에서 '첩보 블록버스터'로 체급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2 : 7편 더 세븐 (Furious 7, 2015)
7편은 촬영 중 사망한 폴 워커에 대한 진심 어린 송사와 더 많은 캐릭터와 물량의 인해전술로 밀어부친다. 아제르바이잔 오프닝부터 관객의 시선을 뗄 수 없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액션 시퀀스를 쏟아 붓는다. 제이슨 스타뎀, 토니 쟈, 커트 러셀, 론다 라우지 같은 액션배우 올스타를 동원하고, 관객들이 지루할만하면 중력의 법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물량공세가 시청각을 장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질주 7>은 뒷골목 레이싱에서 벗어나 판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슈퍼 카들의 무한질주'라는 초심을 놓지 않는다.
특수한 프로그램 '신의 눈'을 가진 테러리스트 '제케이드(자이먼 혼수)'를 찾기 위해 '데커드 쇼(제이슨 스타뎀)'을 만났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쇼와의 대결로 치닫는다. 7편부터 시리즈의 스토리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개별 장면의 뛰어난 완성도에 비해 전체적인 맥락과 개연성은 희생되었지만, 도미닉 패밀리의 캐릭터 드라마만큼은 확실히 챙겼다는 점에서 제임스 완으로써도 쉽지 않은 임무를 훌륭히 처리했다.
#1 : 5편 언리미티드 (Fast Five, 2011)
5편은 프랜차이즈의 '포뮬라(공식)'을 확립된 작품이다. 첫째, <분노의 질주>는 뒷골목 레이싱에서 벗어나 판을 크게 키운다. 둘째, 홉스(드웨인 존슨)가 합류하면서 도미닉 일당의 윤곽이 확립된다. 셋째, 적과 맞써기 위해 '가족' 같은 일당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질주한다가 줄거리의 전부다.
넷째, 레이스 자체는 볼거리중 하나로 축소되고, 대신에 여타 장르(5편은 하이스트 장르, 6편은 첩보물, 외전은 버디물, 9편은 SF물)를 도입한다. 그밖에 5편의 금고 장면 이후 탱크, 비행기, 드론, 헬기, 잠수함, 우주선을 추가되면서 테스토스테론 연료를 새로이 주입한다. 이로써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현대 액션의 총아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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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베 얀손이라는 이름의 모험
토베얀손
줄거리
유명한 조각가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 자연스레 예술가로 성장한 토베 얀손.
흔들리고 불안정한 삶의 굴곡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녀는 어떤 예술가였을까?
토베 얀손이라는 이름의 모험
숨은 의미 찾기
무민은 하얗고 말랑하고 폭신하고 따스하며 무해하다.
언뜻 보기엔 곰인지 하마인지 헷갈리지만 사실 무민은 '무민 트롤'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을 토베 얀손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무민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방공호 속에서다. 어둡고 암울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그녀의 염원이 무민이라는 존재로 하여금 그녀의 마음속에서 뛰쳐나온 건 아닐까.
영화는 혼돈 속에 빠진 예술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듬어 가는지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토베 얀손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실은 그녀의 예술이 어떻게 안정되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녀가 느꼈던 날것의 감정들이 정제되어 모두 무민이라는 예술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이건 그냥 돈벌이야. 이 그림이 진짜 나야."
토베는 만화를 칭찬하는 비비카에게 정색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저것이 진짜 자신이라고 말한다. 만화는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며, 자신은 순수 미술을 그리는 예술가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토베의 태도는 겉으로 보기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지는 게 싫어서 인정받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순수 미술에 대한 그녀의 열망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순수 미술에 대한 사랑은 토베가 초상화를 그릴 때 나타난다. 그녀는 한눈에 알아보기는 힘든 추상화를 그리며 화산과 물줄기와 불꽃이라며, 이 중에 어떤 것이 자신일지를 묻는다. 자기 내면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토베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치열한 고민 끝에 얻어낸 정답을,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캔버스에 담아낸다.
"토베, 당신과 그림은 별개야."
"내 그림이 나야."
토베는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전시회에서 토베는 담배를 피우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빼라는 아버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게 예술가 지원금 선정 여부가 달린 전시회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캔버스에 거짓을 담은 적이 없었다. 약간 숨기거나 꾸며낼 법도 한데, 멍청할 정도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낸 것이다.
'내 그림이 나'라는 말을 한 치의 거짓 없이 뱉을 수 있는 화가가 어디 있을까.
프랑스에서 비비카가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토베. 그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연인과 웃음을 짓는 비비카에게 상처를 받는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지만, 정작 비비카가 하는 말은 자신을 위해 무민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을 써달라는 것. 토베는 그 말을 차마 거역하지 못하고 희곡을 쓰기로 한다. 그 다음날, 아토스가 찾아와 결혼을 이야기할 때 토베는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진 캔버스에 하얀 덧칠을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캔버스 살 돈이 없어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에 그녀가 붓과 물감 같은 미술용품을 서랍장 안에 처박아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보다 앞서서 이 장면을 통해 이미 토베가 순수 미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처받아서? 희곡을 쓰기로 해서? 아니다. 무민이 비비카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기에, 진짜 자신을 숨기고 비비카가 원하는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왜 마음을 바꾸셨죠?"
"왜냐면 제가 화가로서 실패했거든요."
토베는 본격적으로 신문에 무민을 장기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다. 그토록 인정과 명예를 원했지만 그녀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행해 보일 정도다. 시종일관 어둡고 가라앉은 토베의 표정은 항상 웃고 있는 무민의 표정과 상반되어 보인다. 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 그녀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은 '자포자기'였다.
비비카가 떠나고 그녀에게 남은 무민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한때는 사랑의 표현물로 여겨지던 사랑스러운 비프슬란과 토프슬란의 대화도 이제 그녀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힐 것이었다. 무민은 아버지의 말마따나 '낙서'일뿐이었다. 다만 좀 비싼 낙서였을 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었다.
돈벌이 수단이자, 비비카와의 마지막 남은 연결고리였다.
"너만큼 사랑한 사람은 없었어."
"난 프랑스만큼 사랑하는 게 없어."
프랑스에서 운명처럼 다시 재회한 토베와 비비카. 토베는 정착된 사랑을 원했지만, 자유분방한 비비카에게 토베는 스쳐가는 하나의 인연에 불과했다. 그녀와의 하룻밤을 보낸 토베는 결국 헤어짐을 택한다. 이 순간에 비비카는 평소처럼 토베에게 "가지 마."라고 명령하지만, 토베는 "더 이상은 안 되겠어."라며 결국 방을 나선다.
결국 토베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끈마저 사라져버린 상황.
토베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에게서 두꺼운 공책 하나를 건네받는다. 토베의 기사가 실린 신문, 그녀의 작품이나 인터뷰가 실린 잡지 등을 정성스럽게 오려 붙인 공책은 바로 아버지의 것이었다. 무민을 희곡으로 써서 처음 무대에 올린 날, 연극이 끝나고 토베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기도 전에 못마땅한 얼굴로 극장을 나섰던 아버지가 실은 애정 어린 눈으로 그녀의 모든 작품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 토베는 그날 밤, 아버지의 조각품 하나와 공책을 펼쳐두고 와인을 마시며 울고 웃는다.
오랜만에 캔버스와 붓을 꺼내든 토베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린다. 때마침 찾아온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자기 초상화라고 말한다. 그들의 짤막한 대화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제목이 뭔데?"
"시작하는 사람."
토베는 평생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비비카와의 헤어짐은 굉장히 중요했다. 헤어짐 이전까지 토베에게 무민은 그저 비비카와의 흐릿한 연결고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비카가 자신과는 다른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서 떠나보내며 무민에 대한 그러한 마음도 내려놓는다. 그 이후에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확인한 토베는 무민을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온전한 자신의 예술로, 어엿한 하나의 작품으로.
모두가 무민에 강렬하게 이끌리는 동안 정작 작가인 토베는 무민을 거부해왔다. 토베의 아버지가 무민을 두고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며 무시하는 태도가 토베 자신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삶의 굵직한 언덕을 넘을 때마다 그녀가 눈을 돌렸던 것은 무민이었다. 무민은 토베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투영한, 아름답지만 때로는 아픔과 슬픔이 담긴 그녀만의 숲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알게 된 아버지의 진심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토베는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의 경계에서 갈등하고 고뇌했지만, 실은 자신에게서 나온 모든 결과물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비비카라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사랑이나, 아토스처럼 전략적인 사랑이 아닌, 언제든 자리를 지키는 가족처럼 은은하게 데워주는 사랑의 관계도 존재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며, 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라는걸, 토베는 알게 된 것이다.
토베는 더 이상 무민을 거부하지 않는다.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영화 마지막 장면의 초상화는 그녀의 심경을 대변한다. 초반에 그렸던 추상적인 초상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녀는 이전까지 자신을 '자유롭다'라고 규정하길 원했다. 하지만 진짜 자유란 규정하고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유로우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지기로 한다.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항로를 향해 나아가며 외친다.
"난 인생이란 멋진 모험이라고 믿어요."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감상평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무민에는 정말 관심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라는 점 외에는 아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막상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에 딱 앉은 순간 약간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놓치지 말고 잘 봐둬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차 영화를 보면서 영화 내용이나 의미보다는, 토베 얀손이라는 한 명의 예술가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몇몇 장면들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사인회를 하면서 침울해하는 장면이었다. 함께 예술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게 보일 때, 그리고 나 역시 예술보단 생업을 택했다는 게 느껴질 때. 그 순간들이 떠올라 나까지도 괴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센 바람에 창이 열리고 토베가 작업하던 무민 원고가 방안에 흩날리는 장면이었다. 토베는 잠에서 깨 이 장면을 그저 멍하니 지켜본다. 예술을 쫓기만 하던 토베에게 예술이 드디어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실은 다 하나였음을, 내 생각이고 작품이고 세계였음을 깨닫는 듯한 토베의 모습에 함께 벅차올랐다.
영화를 보고 무민보다는 무민을 만든 토베얀손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글을 써왔는지 궁금해졌다. 이제는 무민에게서 토베 얀손이 겹쳐 보인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하였으나,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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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삶’을 위해, <결혼 이야기>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 2019
감독: 노아 바움백
‘다시 삶’을 위해, <결혼 이야기>
남편 찰리와 아내 니콜은 이혼을 앞두고 있다. 어린 아들을 위해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최선의 방식으로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마치 신사와 숙녀처럼 교양 있고, 기품 있게 각자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아름다운 이혼은 거의 없다. 그들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 이야기>는 '어떻게 악착같이 이혼하는지'를 담은 작품일까. 아니다. 이 영화는 좀 특별하다. 부부의 파탄 난 사랑을 확인하고, 둘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목적 보다, 그들이 앞으로 있을 새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내하며, 다시 힘 있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일에 집중한다. 즉, ‘다시 삶’을 위해 이혼을 진행하는 ‘결혼 이야기’다.출처: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컷
시작은 독특하면서 애틋하다. 니콜과 찰리는 결혼생활을 하며 느꼈던 상대의 장점을 얘기한다. 니콜의 목소리에 찰리의 생활이 그려지고, 찰리의 목소리에 니콜의 일과가 보이는 식이다. 이들의 고백은 이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담백한 어조 안에 서로를 향한 끝없는 애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사가 두 사람 사이로 등장하는 순간 관객을 홀렸던 ‘콩깍지’가 확 벗겨지면서, 서로를 더는 이해할 수 없는 니콜과 찰리의 본심이 드러난다. 그렇다, 그들의 관계는 진작 끝났다. 서로의 장점은 관객만 들었을 뿐 사실 둘은 듣지도 못했다. 곧 남이 될 부부가 이상적인 끝맺음을 위해 나름의 타협점을 찾고자 하지만, 애초에 그들에게 모두가 만족할 만한 조건은 없었다. 니콜은 찰리와 이혼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며 ‘나’ 답게 살기로 마음먹었고, 찰리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다. 아, 정확히는 아내가 선택한 삶을 고려는커녕 거부하는 중이다. 영화는 두 인물을 뜯어보는 것으로 ‘다시 삶’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부부가 끝까지 서로에게 감추고자 했던 마음을 들춰내고 고백하게 한다. 초반에 관객의 콩깍지를 벗겼듯이 말이다.
남편, 찰리는 평생 실험적인 연극을 연출해 온 베테랑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극단 감독이다. 아내, 니콜은 찰리가 기획한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다. 사실 그녀는 과거 유명 영화에 출연한 뒤로 스타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찰리와 사랑에 빠져 고향을 떠나 오롯이 그를 위해 살아왔다. 단호하고 창의적인 찰리와 배려심 넘치고 용감한 니콜의 만남으로 극단은 빠르게 예술계에 자리 잡았으며 나아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쾌거까지 이뤄냈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직업적 공든 탑’이 더 높아질수록 찰리와 니콜은 멀어졌다.
출처: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컷
니콜은 찰리가 연출가로 엄청난 명성과 명예를 쌓아갈수록, 한없이 작아졌다. 그의 그림자에 갇힌 채 ‘나’는 물론 ‘아내’란 정체성도 잃어갔다. 니콜은 유명한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를 고용해 그동안 해왔던 부부 상담을 가장한 ‘이상적인 이혼’을 때려치우기로 결심한다. 노라의 말처럼 니콜은 이혼이란 '희망찬 행동'을 통해 ‘다시 삶’을 얻어야 했다. 반면 찰리는 니콜이 좋은 기회(캐스팅)를 빌미로 아들과 고향에서 계속 살겠다고 말하자, 당황한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니콜이 본인의 극단과 예술적 사상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극단 여직원과의 불륜이 부부간의 신뢰는 물론 간신히 잡고 있던 니콜의 이성마저 놓게 했다는 것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찰리는 니콜 말대로, 너무 이기적이라서 본인이 이기적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양육권 사수를 위해 기존의 변호사를 노라만큼 유명한 변호사로 교체한다. 이후 벌어지는 두 사람의 이혼 과정은 짐작한 대로 비참하고 격렬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이혼’을 빌미로 모욕과 치욕을 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변호사들이 부부의 사생활을 까발리듯 공개하고 재판에 교묘하게 이용할 줄도, 아니 그렇게까지 힐난하고 불쾌하게 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토록 불편하고, 마음먹은 것보다 훨씬 더 가슴 아플지 몰랐다.
출처: 영화 <결혼 이야기> 포스터
그 누구도 쉽게 결혼하고 간편하게 이혼할 수 없다. 어떻게 단칼에 무 자르듯 결혼을 가르고, 이혼이란 화살을 과녁 한가운데에 명중시킬 수 있을까. 결혼과 이혼 사이에 부부가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존재하는 한, 참 어려운 일이다. 니콜과 찰리는 싸우면서도, 이따금 그들 자신도 모르게 ‘부부’만이 가능한 행동들로 서로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오랫동안 함께 해, 몸과 마음에 벤 그들만의 습관과 규칙은 이혼이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모래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일례로 니콜은 항상 찰리의 머리를 직접 잘라줬는데, 이는 이혼 조정 중에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결혼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일상이 이혼 과정으로만 채워지길 거부한다. 왜 제목이 ‘이혼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이겠는가. 특히 극 후반부에 펼쳐지는 찰리와 니콜의 극단적인 논쟁은 제목에 힘을 더 실어준다. 그들은 비난과 울분, 선택과 후회, 만남과 헤어짐, 결심과 허망 등, 지금까지 혼자 감췄던 마음들을 토해내며 마침내 함께 무너트린 우리의 현실을 직면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과거의 잔해인 동시에 미래의 연료이자 현재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처참히 무너진 벽돌집 앞에 서서 다시 벽돌을 쌓기 시작한다.
<결혼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축은, 부부의 격렬한 충돌이 아닌 이혼 과정을 겪는 니콜과 찰리의 ‘일상’이다. 두 사람에게 이혼은 일상을 흔드는 강력한 바람일 뿐, 삶을 뒤집는 태풍은 아니란 점이다. 이혼을 마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더 돋보이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격돌은 모두의 기대(?) 와 달리 성난 파도처럼 널뛰다가도, 평화로운 파도에 몸을 맡긴 듯 잔잔하게 흘러간다.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온갖 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다시 삶’의 윤활유로 삼는 이야기. 이 이야기의 종착점은 출발점과 연결된다. 서로를 설명하던 첫 장면이 결말에서 이어지는데, 그때 찰리는 니콜이 쓴 글을 읽으며 울컥하고, 니콜도 그를 보며 같은 의미의 눈물을 흘린다. 그들에게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흘러나오고 이윽고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보일 때, 아주 긴 여운이 우릴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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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주 최신 개봉영화(건파우더 밀크셰이크, 쇼미더고스트, 리스펙트, 좋은 사람, 내가 날 부를때)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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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파우더밀크셰이크 #쇼미더고스트 #리스펙트 #좋은사람 #내가날부를때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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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 공식 예고편
남다른 유전자와 조기교육으로 완성된 혈중 액션농도 100%!
영앤스트롱 킬러 '샘'
15년전, 업계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실패율 0%의 킬러이자 '샘'의 엄마 '스칼렛'
폭발적 지성이 잠들어 있는 시크릿 에이전시, '도서관'의 '킬'사부일체 3인방!
그들의 운명을 찢어 놓은 놈들을 날려버릴 달콤하고 시원한 복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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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네 집에 누군가 있다> 공식 예고편
컨저링》 시리즈와 《기묘한 이야기》의 제작진이 전하는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반 소녀(시드니 박)와 친구들에게 가면을 쓴 살인마가 접근한다. 이들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알고 있는 살인마. 그 비밀을 하나씩 폭로하며 목숨을 위협해오기 시작한다. 스테퍼니 퍼킨스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원작. 패트릭 브라이스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