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4-21 19:43:17
야당 | 도구로 버려지기 싫었던 야당의 복수극
<야당>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익숙함 속 틀린 그림 찾기
한국 범죄 영화에는 익숙한 그림이 있다. 검사와 경찰은 항상 싸우기 마련이다. 검사의 일방적인 수사 명령에 끌려다니는 경찰은 한탄을 멈추지 않는다. 과거 시점이라면 검사가 경찰의 횡포에 짜증 내는 정반대 상황도 볼 수 있다. 정치인, 검사, 언론인의 회동도 빠지지 않는 광경이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가려주고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위해 끌어주는 이 그림은 <내부자들>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근래에 유독 핫한 그림도 있다. 마약이다. 버닝썬 게이트 전후로 한국 범죄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약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마약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도 대동소이하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마약 투여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재벌 및 유력 정치인 자제와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마약 수사는 부패 사건 수사로 전환되는 식이다. <베테랑>, <더 킹>, <모범택시> 등 많은 작품이 정형화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야당>도 익숙한 그림으로 가득하다. 정치인, 검사, 언론, 마약 조직의 연계와 부패, 비리를 고발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수사기관 간의 갈등, 연예인 가십 등도 빠지지 않고 활용된다. 그런데 보다 보면 <야당>은 뭔가 다르다. 익숙한 그림 구석구석에 틀린 그림이 숨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사건이 아닌 인물, 특히 같은 듯 다른 두 '야당'이 대조되는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단과 목적 사이
야당은 마약사범들 중 경찰이나 검찰 등의 수사 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범죄자들을 일컫는 은어다. 수사 기관과 범죄 조직 양쪽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일종의 이중첩자인 셈이다. 자연히 그들의 성격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에게 그들은 수단이자 동시에 목적이다. 기본적으로는 수사를 위한 도구이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인 신뢰감을 불어넣어 주지 못하는 한 그들은 도구로써 기능하지 않으니까.
<야당>의 오프닝과 초반부는 수단과 목적 사이에서 줄을 타는 야당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수는 경찰에게 마약 조직 정보를 주고, 검거에도 참여한다. 경찰은 강수의 조력을 받아 실적을 올리고, 강수는 체포된 마약 사범의 형량 거래에 참여해 수수료를 받아간다. 둘 모두 서로 이익이 맞으니까 협력하는 경찰과 야당은 꼭 악어와 악어새를 보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악어와 악어새의 우정도 보여준다. 과거 마약 판매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강수. 관희는 그에게 자신의 야당이 되라고 제안한다. 마약 조직에 잠입해 정보를 알아내면 감형해 주겠다는 것. 강수의 노력 덕분에 마약 조직을 소탕한 관희는 승진 가도를 달리고, 강수는 출소 후에도 야당 일을 하면서 떼돈을 번다. 그렇게 관희의 수단이었던 강수는 그의 목적이 된다. 커플 시계를 나눠 끼는 의형제로 발전할 정도로.
수단과 목적이 전복되다
바로 이 대목에서 <야당>은 자신만의 개성을 갖춘다. <야당>은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전복하면서 예기치 못한 감정적 동요를 선사한다. 마약 파티 현장을 급습한 관희와 강수. 그런데 대통령 후보 아들 '조훈'(류경수)이 파티에서 발견된 순간, 그들의 관계는 급반전된다. 관희는 권력을 위해 강수를 내친다. 관희의 목적이 된 줄 알았던 강수는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해서 중독자가 되고, 다리에도 화상을 입은 채 도구로서 버려진다.
또 다른 야당과의 대조를 이루면서 강수의 비참한 처지는 더 강조된다. 상재는 마약 수사 중 입건된 '엄수진'(채원빈)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마약 공급책, 마약 파티 일시와 장소를 알려주면 풀어주겠다고. 하지만 거래는 수포로 돌아간다. 상재가 쫓던 용의자를 관희와 강수가 가로챈 것. 결국 수진은 마약 사범이 되고, 상재는 검찰과의 갈등으로 인해 소송에 시달리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끝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상재와 수진의 관계는 강수와 관희와는 달랐다. 관희에게 복수하려는 강수가 도움을 요청하자 상재와 수진은 복수심 외의 감정 때문에 그에게 협력한다. 상재는 수진과의 약속을 못 지켰다는 자책감에, 수진은 죄책감을 못 떨치는 상재에 대한 연민 때문에. 도구로서 만났지만 진정으로 아껴주는 목적이 되어주는 관계성의 변화는 수진에게 역경이 닥쳐도 상재가 끝까지 관희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의외의 특별함
그래서 <야당>은 의외로 감정적이다. 배신당하고 버려진 이의 복수, 서로를 지켜주지 못했던 약자들의 연대에 집중한 덕분이다. 그저 주인공 직업이 검사나 경찰이라서 정치권 및 재계와 엮일 뿐이지, 사회비판적 메시지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사람을 목적으로 다루지 않고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과 한탄이 사회적, 정치적 교훈보다 중요하게 전달될 수 있다.
이는 관희와 조훈의 관계와 피해자 세 명이 이루는 대조가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욕으로만 뭉친 관희와 조훈은 서로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조훈의 마약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지거나 관희가 상재가 강수를 통제하지 못할 때마다 그들은 갈등을 빚기 일쑤다. 이처럼 불협화음이 가득한 관계성 덕분에 배신당하고 버려진 자들의 연대는 더욱 빛날 수 있다.
주인공들의 관계성에 집중한 덕분에 <야당>은 덜 작위적이기도 하다. 정의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형사, 맹목적으로 돈과 권력을 탐하는 검사나 정치인 같은 캐릭터는 없다. 대부분의 인물은 적당히 탐욕스럽고, 정의롭다. 이 양면성 덕분에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뒤바뀌는 순간도 자연스럽다. 관희가 한순간에 강수를 내치는 결단을 내려도, 악연으로 만난 강수와 상재의 관계가 동료로 전환되는 과정도 편의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실화를 패러디하는 연출도 연장선상에 있어서 자연스럽다. 사회 비판을 위해 실화 사건을 어설프게 풍자하는 한국 영화의 고질병은 답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반전을 주는 장치로써 평연하게 활용한다. 강수는 '우병우 황제 조사 논란'을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관희에게 복수한다. 정치 권력과 검찰 권력의 유착 관계를 폭로하는 이 장면은 예측과는 달라서 유효한 반전이고, 그렇기에 억지스럽지 않은 풍자라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관성을 뛰어넘는 재미
다만 <야당>은 한계도 명확하다. 관성적이라는 인상은 떨쳐내지 못했다. 캐릭터 활용법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수진은 더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그녀는 다른 범죄 영화에서 단순히 마약 범죄 피해자로 등장하는 여성 연예인 역할 이상의 존재감을 뽐낸다.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려고 직접 움직이는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그런데 <야당>은 그녀를 다른 캐릭터를 각성시키기 위한 장치로만 소비하고 말았다.
야당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기 위해 사회 구조적 측면을 깊이 건드리지 않은 선택 또한 한계로 볼 수 있다. <야당>은 관희와 조훈의 최후만 보여준다. 그들과 결탁한 다른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눈에 보이는 바퀴벌레만 잡을 뿐, 근원적인 문제까지는 굳이 건들지 않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야당>의 사회 비판은 자칫 얄팍한 인상 비평처럼 느껴질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지만 <야당>은 여전히 거절하기 힘든 영화다. 익숙한 그림을 차별화시킬 줄 안다는 점에서는 잘 끓인 김치찌개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기시감이 짙더라도 먹다 보면 의외의 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마약 사건의 자극성이나 사회비판적 메시지에 경도되지 않은 채 소재의 특성에만 집중한 스토리텔링이 되짚을수록 영리하고, 인상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익숙한 프레임에서 틀린 그림 찾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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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헌 감독 축구 영화 '드림'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드림
(2023.04.26 개봉)
감독: 이병헌
출연: 박서준, 아이유 등
안녕하세요!
오늘은 극한직업,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신작 축구 영화 '드림' 리뷰를 써 보려고 해요!
드림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축구 선수 홍대,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으로 나서게 된다.
열정리스 PD 소민이 다큐 제작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운동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특별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이들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드림> 줄거리
드림은 실화를 각색한 영화거든요!
실제로 2010년에 열린 홈리스 월드컵이 있었는데요
드림처럼 대회 참가에 필요한 돈이 부족해서 참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대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 축구 협회 등에서 후원받은 돈으로 겨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2019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었는데 2023년부터 다시 홈리스 월드컵이 열린다고 하니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병헌 감독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 뚜렷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스물의 치호와 멜로가 체질의 진주가 생각나는데요
겉으론 멀쩡하지만 어딘가 고장나 있는... 돌I 같은 생각을 하는 캐릭터들이죠
드림에서는 소민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멜로가 체질 영화판 같단 리뷰를 남기셨는데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그 이유가 모든 캐릭터들의 말투가 비슷해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본 스물,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 드림만 놓고 봐도
캐릭터들이 다 높낮이 없는 일정한 톤으로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팩폭을 말하거든요
물론 그게 웃기긴 하지만 이제는 지겹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같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럼에도 드림이 재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효봉, 문수 등 새로운 캐릭터를 넣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많은 캐릭터들 각각의 사연을 풀어 주는 데 애썼기 때문이고요
모두가 소민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코믹 영화였다면
사실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많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동진 평론가님의 평을 보았습니다
영화보다 해설가가 해 주는 말이 더 많다였던가??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드림에서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부분은 한국팀이 1점이라도 따내는 경기 부분이잖아요?
근데 경기 씬 30분...? 정도를 외국인 해설가의 나레이션과 함께하게 되는데요
그렇다 보니 캐릭터들의 감정을 느끼진 못하겠더라고요
해설가가 말하는 상황 자체(지문)를 이해하고 있을 뿐
머리띠를 쓴 인수가 어떤 감정으로 임하고 있는가, 다리까지 다쳤던 환동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되는 거예요...
저 진짜 BGM만 깔아 줘도 우는 애인데 그냥 재미있다~뿐이지 감동적이진 않았어요
저는 이병헌 감독님의 개그 코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고편을 보고 코믹을 기대했던 것도 있는데
아무래도 실화 기반 스포츠 영화다 보니까 완전히 웃음만으론 갈 수 없겠나 보더라고요...
웃긴 건 정말 예고편으로 보는 장면이 다였고 가끔씩,, 피식거릴뿐
박장대소할 정도로 웃긴 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스포츠 영화로 최고였냐? 그건 또 아녜요
사실 스포츠 영화는 깊은 울림과 함께 여운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슬램덩크가 대표적인 예시겠죠?
저 강백호 빼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막판 1점에선 숨도 못 쉬고 진짜 눈물이 차올랐거든요
그 정도의 감동을 원하고 보는 게 스포츠 영화인데... 그렇게 보았을 땐 아쉬웠습니다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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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어 가는 한 시대를 표현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서부극을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고 나서 나름 서부극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루하고 총만 난사하는 고정된 스토리라인만이 존재할 줄 알았던 나에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시놉시스
1969년 할리우드, 잊혀져 가는 액션스타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 겸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새로운 스타들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릭’의 옆집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배우 ‘샤론 테이트’ 부부가 이사 오자 ‘릭’은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기뻐하지만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다.
형편상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게 된 ‘릭’과 ‘클리프’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릭’의 집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던 중 뜻하지 않은 낯선 방문객을 맞이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 이 이후로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서부극의 끝물을 그려내다
1969년은 미국에서 영화의 흐름이 바뀌는 과도기적인 시기다. 1970년 이후부터 스타워즈와 같은 대형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나오면서 기존에 유행했던 서부극이 한 풀 꺽이는 시기다. 영화의 한 장르와 과거의 스타가 함께 그 명성이 기울어져 가고 그것을 점차 받아들이는 표현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이는 아역배우와 릭달튼의 대화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앞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갈 아역배우 옆에서 노쇄함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어린 배우가 그런 릭달튼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히피들 맞나?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히피들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체제운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자연을 찬미하면서 그와 동시에 기성세대의 사회통념이나 제도, 가치관들을 부정하는 집단 말이다. 히피들은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게다가 베트남전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마지막에 사람을 죽인다. 세상에나. 그렇게 가치관의 혼란을 선사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그래서 히피, 폭력 이렇게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왜 이 영화가 마지막에 히피들을 살인자로 만들고 그들을 죽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 1969년 할리우드 여배우 샤론 테이트가 히피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비롯해 7명의 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돼 미국을 충격에 빠트렸다고 한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동명의 샤론 테이트를 영화 속에서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클리프와 릭을 공격하게끔 해서 결국 히피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즉, 현실 속에서의 슬픔을 영화 속에서 통쾌함으로 대치한 장면으로 이해됐다.
미디어의 폭력 연구가 왜 시작됐는지 표현하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면서 해결된 궁금증 중 하나는 왜 당시 미디어 연구가 그렇게도 부정적으로 연구될 수밖에 없었나? 였다. 도대체 텔레비전이 뭐라고 그 텔레비전 영상 하나 봤다고, 텔레비전이 폭력을 야기하고 좋지 않다는 연구가 쏟아졌는지 정말 궁금했다. 거의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 매체 연구는 해당 매체의 부정적인 부분을 파헤치는 것이 목적이라도 된 것처럼 일제히 비판을 했다.
하지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히피들이 릭을 죽이러 가기 전 “나는 텔레비전에서 폭력을 배웠고, 지금 그 폭력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러 가는거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를 비롯해서 당시 프로그램드을 보면 총과 칼을 이용한 서부극들이 유행했고, FBI와 같은 범죄수사물들이 계속해서 방영됐던 것이 사실이다.
움직이는 영상이 훨씬 더 자극적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그런 범죄의 구체성이 피부로 와닿을 수밖에 없기에 미디어 연구자들은 그 부정적인 영향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해됐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단지 서부극의 이야기 뿐 아니라 저물어가는 한 시대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같은 문화권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서부극에 대해 향수를 느낄 수 있을 정도 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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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구분과 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에 대한 노래
구분과 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에 대한 노래
오버 더 레인보우 섹션 영화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2021' 리뷰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출연] Ansel Elgort, Rachel Zegler
시놉시스] 1957년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사이드. 산후안 힐 지역의 허물어져 가는 공동주택과 언제 들이칠지 모르는 철거 장비의 위협을 배경으로 두 라이벌 갱단, 터프한 리프의 제트들과 베르나도의 푸에르토리코계 사크들이 우위를 놓고 겨룬다. 승자독식의 패권 다툼을 두고 열린 학교 댄스 행사에서 제트의 싸움꾼 토니와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 사이에 로맨스가 싹트자 살벌한 영역 전쟁의 기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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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기다리다며 본 광고에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1’이 등장했다. 사람들의 굉장한 에너지와 힘찬 넘버, 그리고 다양한 색감들을 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번에 뮤지컬 영화에서 자신의 끼를 펼쳤구나 하며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나질 않아서 보지 못한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던 영화였다.
화려한 색감 속 가치를 부여하다개인적으로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화려함’ 때문이다. 이러한 화려함을 영화로 그대로 옮겨와 무대의 한계상 보여줄 수 없었던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공간을 이동하고 의상들에 변화를 주면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의 색감을 굉장히 다채롭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 다채로움 속에서도 일정한 규칙이 엿보였는데, 기존 맨해튼에서 살던 백인 그룹에서는 무채색과 주로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면, 푸에르토리코계 사람들은 정렬적인 빨간색과 노란색을 위주로 그들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외형적인 생김새도 물론 차이가 바로 드러났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색감을 통해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자유로움 속에 내재된 차가움을 표현하는 파란색은 결국 미국이 자유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 속에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색 그 자체로 열정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빨간색은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며 새로운 이 맨해튼에서의 핍박을 이겨내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여주인공 마리아가 토니와 함께 도망치려는 그날 밤 마리아는 파란색 옷을 입고 토니 앞에 등장하는데, 결국 이 미국이라는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외부인이 스스로의 색을 버리고 미국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미국의 실정을 넌지시 비춰주고 있었다.
맨해튼에 드리운 구분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자치령이다. 명목상 국가원수는 미국 대통령이지만 직접 뽑은 지사가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섬이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그들이 살던 곳을 벗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있었고, 맨해튼에 정착하면서 백인과의 갈등이 생긴다.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며 영역을 넓혀나가는 푸에르토리코인들을 보면서 점차 밀려나는 백인들은 반감을 품고,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자신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어떻게 해서든 쫓아내려는 백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한데 어우러지는 공존은 이뤄지지 못하고, 푸에르토리코인은 푸에르토리코인끼리! 라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이 신념 때문에 토니와 마리아는 쉽게 사랑을 할 수 없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제트파와 샤크파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구분을 하고 있을까? 나와 너, 우리와 그들과 같이 끊임없이 우리라는 집단을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와 다른 이들을 좋게는 신기한 눈으로, 나쁘게는 경멸의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결국 우리들 스스로 화를 입히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분노는 분노만 낳을 뿐
자신의 눈앞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토니를 본 마리아의 내면에는 분노만이 남게 된다. 치노가 쏜 총을 빼앗아들며 치노를 향해서 그리고 제트파와 샤크파를 향해 모두 총을 겨눈다. 결국 서로를 구분하고 영역을 차지하려는 것이 모두에게 화를 입힌 것이다. 결국 피를 보고 나서야 두 갱단은 반성과 화해의 모습을 보인다. 토니를 함께 들고 카페로 옮기면서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제트파와 샤크파에 상관없이 말이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속담이 있긴 하지만 과연 이러한 복수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끝이 날 수 있는 것일까. 분명 누군가가 먼저 시작을 한 싸움이었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복수를 주고받다 보면 이 악순환 속에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중요해지지 않고, 되갚음만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더욱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분노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노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다시금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방지책을 세우는 것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비극적인 결말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제천국제영화제에서의 시작 영화로 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1’. 티저 영상으로 접했을 때는 그저 신나는 뮤지컬 영화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속에는 구분과 분노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구분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운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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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13 13:00
메가박스 제천 2관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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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의 꿈도 현실도 따뜻하게 품는 <미나리>
캘리포니아를 떠나 미국 아칸소로 이사한 '제이콥(스티브 연)'과 '모니카(한예리)' 부부. 공장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것에 학을 뗀 제이콥은 공장일과는 별개로 바퀴 달린 집에 딸린 농장에서 한국 농산물을 길러 팔겠다는 꿈을 실행에 옮긴다. 반면 처음부터 여건이 좋은 대도시를 떠나 농장을 하겠다는 남편의 선택을 탐탁지 않아하던 모니카는 자신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이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을 위해 엄마 '순자(윤여정)'를 집으로 부른다. 그러나 순자가 도착한 후 농사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제이곱과 모니카 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앤과 데이빗도 좀처럼 순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데이빗네 가족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한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거대한 불평등(Great Divide)' 출간 당시 “선진국 중 미국은 소득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고 경제적 신분 상승을 위한 공평한 기회가 최악인 나라 중 하나가 됐다”라고 비판했다. “가면 갈수록 많은 미국인들이 경제적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딛고 올라서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미국의 정체성이기도 한 '아메리칸 드림'이 이제 무의미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티글리츠 교수의 비판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어의 비중이 50%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이견의 여지없이 미국 영화임을 확인해 준다. 한국 이민자 1세대 가족의 일상을 따뜻하게 보여주는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과 희망을 스크린에 불러오면서도 그 꿈의 아픈 현실까지 끌어안는, 지극히 미국적인 감성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정겹다. 정이삭 감독의 유년기 시절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 차 뒷자리에 탄 데이빗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오프닝도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사실 분위기와 별개로 작중 데이빗네 가족은 그들의 관계와 생활기반에 위협을 느낄 만한 사건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데이빗의 시점과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영화는 햇빛을 받은 파도치지 않는 바다처럼 따뜻하게 빛난다.
이러한 영화의 스탠스는 제이콥과 모니카가 이사 직후 말싸움을 벌이는 순간에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부부의 갈등은 마지막까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적인 구도다. 그런데 영화는 둘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굳이 열심히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부부가 부엌에서 말다툼을 시작하는 순간 카메라는 돌연 방에 들어가 있는 앤과 데이빗의 모습을 비춘다. 울리는 부부의 목소리를 통해 말다툼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며 현실과 적당한 거리감을 둔다.
그러다 보니 흔한 악역 하나 등장하지 않은 채 가족들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로만 내용을 구성하는 의외의 선택을 해도 영화는 어색함이 없다. 부부간의 다툼보다 순자와 데이빗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도, 일꾼 폴과 같은 주변 이웃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흔히 볼 법한 인종 차별 문제가 등장하지 않아도 이들의 이민 적응기는 미소를 품고 보게 만드는 흡입력을 갖는다. 책임을 도맡는 아버지와 모든 불안을 어떻게는 받아내는 강인한 어머니라는 다소 전형적인 인물상도,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도 진부함보다는 공감을 위한 보편성에 한 발짝 더 가깝다. 그렇게 영화는 큰 굴곡 없이 소소하게 흘러가는, 이민 가족이 써 내려가는 한 편의 동화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미나리>가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을 좋은 추억으로만 덮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농산물 판매장 앞에서 두 부부가 벌이는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이 함께 건강하게 지내는 것보다도 농사를 짓고 판매처를 확보하는 게 더 우선인 듯한 제이콥에게 모니카는 믿음이 사라졌다며 차갑게 화를 낸다. 이는 힘겨운 이민 생활에 먼저 순응하고 교회처럼 눈에 보이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일상을 이루려는 사람과 이민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개인의 성취 안에서 일상을 회복하려는 사람 사이의 대립이다. 곧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에 충실하려는 이와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에 헌신하는 이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모든 미국의 이민자들이 마주해야 했던 현실이자 역사이고, <미나리>가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때 영화는 부부간의 다툼을 아이들의 시점에서 보여주었던 초반부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제이콥과 모니카가 싸울 때 아이들의 시선, 아이들의 존재는 카메라 밖으로 밀려나 버리고, 영화 전반을 감싸던 동화적 분위기도 자취를 감춘다. 그 결과 중간중간 공장 동료나 이웃들의 말을 통해 암시되어 있던 한인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소문, 한인 사회 안에서의 갈등과 대립, 인종차별의 흔적을 포함한 현실의 어두움이 창고를 집어삼키는 불길처럼 뛰쳐나온다. 아이들은 듣지 못하도록 배려했던 어른들의 현실이 한 데 응축되어 폭발하고, 이민 가족의 현실이 스티븐 연과 한예리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한순간 드러나는 임팩트는 더욱 강렬해진다. 이처럼 잔잔한 바다는 순간적으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성난 바다로 돌변한다.
사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현실의 갈등, 아픔, 상처를 그려내는 것은 자칫 영화 내용과 분위기 사이에 괴리가 생길 위험성을 내포한다. <미나리>처럼 영화의 분위기를 갑작스럽게 전환시키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순자의 존재 덕분에 <미나리>는 내용과 분위기 사이의 간극을 유려하게 이어 붙이는 데 성공한다. 순자는 보따리 안에 싸온 짐들을 통해 자칫 무너질 법한 가족의 관계, 현실에서 부딪히고 열패감에 무너질 뻔했던 가족의 일원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이때 가장 빛나는 것은 당연 영화의 제목인 미나리다. 영화는 물을 정화시키고, 생명력이 강하며, 한국적인 특유의 향을 내는 미나리의 특징을 스토리텔링에 영리하게 써먹는다.
우선 물을 정화하는 미나리는 가족이 해체될 뻔한 위기를 막는다. 작중 가족의 갈등은 물로 표현된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대립은 폭풍우로 인해 새 집에서 물이 샐 때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우물의 물이 마르자 수돗물을 농수로 돌린 결과 물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그 둘 사이의, 이민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이때 데이빗네 가족은 이때 순자의 미나리가 정화한 냇가의 물을 덕분에 물 부족을 버텨낸다. 또한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는 데이빗과 나머지 가족의 모습과 닮아 있다. 설사 큰 농장에서 관리받는 농작물처럼 대도시에서 한인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야생의 냇가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미나리처럼 역경을 이기고 원하는 꿈을 향해 한 발짝을 더 내딛는다.
다른 채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미나리 특유의 향은 순자가 가져온 한국적인 선물들과 더해져 가족들이 미국 땅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향수병에 걸린 듯 보이던 모니카에게는 멸치와 고춧가루를 주며 위안을, 데이빗에게는 한약과 함께 자존감을 높여주는 말을 건넨다. 또 화투는 데이빗이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할 때 사용되며, 그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두 가지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심지어 순자 본인도 제이콥과 모니카가 화해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처럼 미나리를 비롯한 다양한 모습으로 치유제와 접착제로서 역할을 다하는 순자를 보다 보면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가 자연히 납득된다.
미국은 그 시작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그래서 흔히 미국 사회를 설명하는 단어로 샐러드볼을 많이 거론한다. 수많은 인종과 문화라는 채소들은 미국이라는 그릇 안에서 뒤섞이면서도 각각의 고유한 맛과 향을 잃지 않는 사회가 미국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채소도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온, 기어코 살아남은 미나리도 역시 미국이라는 샐러드의 한 재료로서 따로 또 같이 존재할 따름이다.
<미나리>는 빈 땅을 개척해 성공을 일구려는 꿈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영화다. 한국어와 한국인 배우가 나오고,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기저에서는 미국 땅을 밟고 있는 이들이 오랜 기간 보편적으로 공유해온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목적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적인 맛과 향,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하더라도 <미나리>는 미국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아픈 현실을 감싸 안는 따뜻한 가족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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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 맛집인데 뒷맛이 이상해요
어디선가 먹어본 익숙한 만둣국 맛이다. 조금 더 음미하다 보면 새로운 무언가가 추가돼 신선함도 있다. 그런데 계속 곱씹다 보면 이상한 맛도 같이 느껴진다. 이것저것 많은 요소들을 '가족'이라는 만두피로 몽땅 담아내 영화로 빚어서다. 양우석 감독의 신작 '대가족'에 대한 간략 평이다.
'대가족'은 스님이 된 아들 함문석(이승기)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 함무옥(김윤석)에게 세상 본 적 없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변호인'과 '강철비' 시리즈 등 휴머니즘 성격이 강하고 묵직한 소재를 담은 작품을 선보여왔던 양우석 감독은 '대가족'을 통해 코미디 드라마 장르에 문을 두드렸다. 초반에 코미디, 후반에는 휴먼 드라마를 배치해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주는 2000년대 초중반 유행했던 한국적인 휴먼 코미디 콘셉트로 구성했다.
과거 한 사건을 계기로 서먹하게 지내는 무옥-문석 부자 앞에 짠한 아이들 민국(김시우)-민서(윤채나) 남매가 짠하고 나타난다. 문석의 생물학적 자식이라고 밝히자, 행복을 되찾은 아버지와 당황을 감추지 못한 아들 극과 극 반응을 보인다. 비슷한 장르와 스토리라인으로 흥행했던 영화 '과속스캔들'이나 일일 드라마에서 볼법한 전개다.
다소 뻔해 보이는 스토리라인에 신선함을 곁들여 줄 킥 하나를 집어넣었는데, 바로 민국-민서 남매의 '출생의 비밀'. 알고 보니 함문석이 대학 시절 하게 된 정자기증으로 탄생한 아이들인 것. 심지어 함문석의 정자를 통해 이 세상으로 나온 아이들이 400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단숨에 '정자왕'으로 등극해 웃음을 유발한다. '대가족'은 이 황당무계한 사연을 코미디에 녹여내면서 관객들의 웃음을 저격한다.
정자기증을 무기 삼아 영화는 문석의 생물학적 자녀 찾기를 비롯해 함씨 부자간 이야기, 주변인들과의 관계 등 엉킨 실타래들을 천천히 풀어간다. 그러면서 양우석 감독은 후반부에 '가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저출산 문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가족에 대한 정의, 대안 가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영화 제목인 '대가족'의 '대'가 큰 대(大)가 아닌 대할 대(對)를 쓰는 것이고, 영화 영어 제목을 'About Family'로 작명한 것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다만, 화법이 장벽이다. 화두를 담고 있는 이야기인 만큼 세련되게 풀어내야 하는데 투박하고, 후반부에는 너무 교훈적인 느낌이 강하다. 한 예로, 함문석과 큰스님(이순재)이 가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순간이나 보는 이들에 따라 교조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정자기증을 활용한 코미디로 에너지를 올렸더니, 올드한 감성을 담은 신파로 맥을 끊는다. 지나친 플래시백과 구구절절한 사연까지 2000년에 개봉한 영화들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니 빚은 만두의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후반부 구성과 연출이 호불호 갈리긴 하나, 배우들의 역량만큼은 인정할 부분이다. '한국판 스크루지 영감' 함무옥을 연기한 김윤석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주며 웃음을 전한다. 동시에 자타공인 인정받은 연기력으로 핏줄에 집착하는 남자가 변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김성령, 박수영은 '대가족'에서 뻔한 맛을 진하고 깊은 맛으로 우려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민국-민서 남매로 분한 아역배우 김시우, 윤채나는 힐링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치트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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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완전한 청춘을 향한 ode
여기, 문학 작가가 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품고, 뉴욕으로 무작정 온 여자, 조안나가 있다. 무작정 온 그녀는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기 때문에 주특기인 글쓰기를 이용해 밥을 벌어먹고자 한다. 그 일이 바로 작가에이전시에서의 일. 작가 에이전시란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기타 잡무들을 대신해 주는 회사로, 조안나가 취직한 회사는 그런 에이전시 중에서도 좀 알아주는 곳인듯 하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사장이 컴퓨터를 극혐한다는 것. 90년대, 디지털이 막 상용화되던 시기에 조안나의 상사는 디지털은 거의 사탄취급하던 사람이었기에 조안나는 타자기에 익숙해지며, 시대를 역행했다. 그녀가 시대를 역행하면서까지 받게 된 업무는 대 작가 셀린저의 팬레터에 답하는 일이었다. 샐린저는 은둔형 작가로서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팬 레터도 받지 않아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답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변화하는 90년대에 구시대적인 업무를 받은 받은 조안나는 이 기묘한 과정 속에서 꽤 큰 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실 분들은 이 영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잔잔한 울림이 있는 뻘짓이기에.
1. 가능성의 다른 말은 곧 불완전함
조안나는 작가 에이전시에서 사장에 비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꿈은 작가다. 작가가 꾸미기 때문에 편지에 답장하는 일을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고, 하찮게 생각했지만 셀린저에 대한 열렬한 팬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계적인 답변이 아닌 진심 어린 답변을 해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런 그들의 열렬한 팬심을 보며 자신은 샐린저만큼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작가인지, 자신은 이런 팬들처럼 글쓰기를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는지 편지를 읽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사장에 알게 모르게 보이는 무시와 멀쩡한 일이 아닌 허드렛 일만 시키는 것 같은 상황은 그녀의 자존감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그녀에 떨어진 자존감은 자신이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게 맞는지, 자신은 샐린저만큼 재능이 없는데 그저 작가가 되겠다고 잘난 척 하는 거에 지나지 않은 게 아닌지 자신을 들여다본다. 왜곡된 시선이지만 그녀에게 그 왜곡된 시선조차 그녀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런 부정적인 현실에서 탈피하기를 바라면서 영화를 관람했다. 결국 자존감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하지만 그 관점을 바꾸려면, 바닥 끝까지 감정적 부침을 겪어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남자친구와의 의미없는 관계, 상사의 무시, 일을 하고 있지만 일에서 어떠한 보람도 느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재능까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그런 감정적인 부침,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하지 못해 터져나오는 감정은 어떡해야 하냐는 그녀의 가상 친구와의 전화 속 대사는 그녀의 힘듦을 느끼게 하며, 젊음은 가능성이 있는 시기라고 하지만 그 가능성이 넘치는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당사자에겐 그저 불완전함을 견디는 시기일 뿐이라는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관리 1호 대상인 셀린저와의 전화 통화는 그녀의 고민에 꽤나 큰 깨달음을 주었다. 셀린저가 그녀에게 계속 전화한 메시지, 작가가 되고 싶다면 하루에 십오분이라도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할 것, 꾸준히 쓰는 시간을 가질 것 등의 조언은 꼰대 할아버지가 젊은이에게 자신만의 관점을 들이미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 불신, 자기 의심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그녀에게 그녀보다 앞선 시기에 20대를 보내온 유명한 노인네의 말은 그녀에게 오히려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당황하던 시기에 느끼는 외로움을 남자친구를 통해서 해소하려고 했지만 남자친구 조차 미생의 삶을 살고 있었고, 너의 외로움을 보듬어주기엔 그도 이미 불완전한 청춘이었기에 서로의 불안함을 극대화시킬 뿐이었지 그들은 관계는 상호보완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외로움을 상쇄시키는 것은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는 사람들과의 동질감이 아니라 가끔은 어른의 경험치였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20대가 가진 특권이고, 그 특권을 잘 누린 사람이야말로 신체적으로 가장 빛나지만 가장 불완전한 20대에 대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3.총평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문학 덕후다 싶은 사람,팬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영화 굉장히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지금 현재 굉장히 불완전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꿈이 있지만 그 꿈의 첫 스텝을 밝기까지가 제가 너무 고민되는 사람들까지 이 영화를 보고 본인만의 메시지를 얻고 힐링 받을 사람들은 왠 꽤나 넓은 범위를 차지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청춘을 본 나처럼 이 영화에 대한 여러 리뷰를 찾아보시기를 추천한다. 분명히 나와는 다른 리뷰를 쓴 사람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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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점 9.2 테크니컬한 액션연출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게되는 영춘권의 대가 견자단 [엽문]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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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문나이트> 티저 예고편
"내가 깨어있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구분을 못 하겠어요."
MCU의 가장 미스터리한 세계로 여러분을 이끌 히어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문나이트]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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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히즈 올 댓> 공식 예고편
애디슨 레이와 태너 뷰캐넌 주연의 《히즈 올 댓》은 1999년에 나온 10대 영화의 클래식 《쉬즈 올 댓》을 재창조한 작품이다. 시대에 맞게 변신한 이번 영화는 엄청난 도전을 받아들인 인플루언서(애디슨 레이)의 이야기. 그녀는 학교 최고의 루저(태너 뷰캐넌)를 프롬의 왕으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