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2025-04-22 20:19:30
순간의 의미, <곤돌라>
영화 <곤돌라> 시사회 리뷰
영화 <곤돌라> (바이트 헬머, 2025)의 배경이 되는 곳은 한 산골이다. 이곳에서 곤돌라는 사람, 가축, 물건 등 다양한 것을 실어 나르며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연결한다. 이곳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연결고리인 곤돌라는 나아가 곤돌라의 승무원인 ‘이바’와 ‘니노’의 사이를 연결한다. 두 사람은 곤돌라의 위쪽 정류장의 체스판으로 함께 체스를 둔다. 곤돌라가 운행을 해야 위쪽 정류장으로 이동해 말을 옮길 수가 있고, 곤돌라가 운행을 하면 두 정류장의 중간 지점에서 두 대의 곤돌라가 교차하며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을 태우고 다른 한 사람을 엇갈려 지나가던 영역은 어느새 두 사람이 함께하는 데이트 장소가 된다.
이러한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곤돌라를 소유한 남성이다. 그는 자신의 곤돌라가 이윤의 창출 수단이 아닌 연결과 연대의 장이 되는 것에, 또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이바가 니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하지만 오해를 넘어서며 단단해진 이바와 니노는 그의 사적인 생산수단인 곤돌라를 탈환하여 주민들을 위한 공공재로 탈바꿈하는 데에 성공하고, 그가 곤돌라로 축적한 이익을 바로 그 곤돌라 위에서 흩뿌린다. 그리고 곤돌라의 높고 얇은 줄 위에서 뛰어내려 함께 단단한 땅에 발을 붙이고 걷는다.
영화에 대한 인상은 간단하게 ‘귀엽다’는 말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만화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이 이러한 인상을 만든다. 상황에 맞는 소품과 코스튬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고, 거대한 장치가 곤돌라 레일에 뚝딱 설치된다. 인물들은 말 대신 표정이나 몸짓, 비명, 웃음 등을 활용해 감정을 표현한다. 이러한 연출은 현실에서 조금 붕 떠 있는 듯한 동시에 포근한 느낌을 주며 작품 전체의 톤을 잡는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 덕에 다소 허무맹랑한 장면들도 ‘영화적 허용’의 범주 안에 들어가며 웃음과 감동의 요소가 되어 준다.
대사 없이 표현되는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 변화, 그리고 영화의 전개에 따라 변화하는 곤돌라의 의미 등을 생각하며 보면 더욱 재미있는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곤돌라> 시사회에 참석 후에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
-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던 첫사랑과 구겨진 비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개봉일 : 2009.03.26 (한국 기준)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출연 :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데이빗 크로스, 제넷 하인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던 첫사랑과 구겨진 비밀’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패망한다. 그리고 1958년의 비 내리던 어느 날, 서독 노이슈타드에서 한 소년과 여성의 운명이 시작된다. 강렬한 첫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쉼 없이 서로를 탐하고, 갈망했다. 하지만 오래갈 순 없는 운명이었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이며, 사회화의 부재로 나치 시절 실수를 저지른 한 여성과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실망감에 흠뻑 젖어버린 소년의 이야기다. 나는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 찬 시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 사람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지워낼 수 없는 죄와 그에 대한 실망감. 허공에 붕 뜬 채 쉽사리 흩어지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구겨진 백지 같은 한나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나를 저 먼 곳으로 밀어냈다.
책을 읽는 것보다 누군가 읽어주는 책을 좋아하는 한나,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며 사랑을 갈망했던 소년 마이클. 두 사람은 서로의 대각선에 서서 상대의 마음을 훔쳐보기 위해 소리 없이 시선을 돌리지만 그 사이엔 거의 다 닫혀버린 문이, 실루엣만 간신히 비치는 커튼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말할 수 없던 격동적인 사랑은 시간과 무지 속에 묻혀버린다. 무조건 안타깝다고 이야기할 수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한나의 시간과 오래도록 그것을 앓아온 소년의 마음속에서 풍기는 복잡한 묵은 내에 마음이 바싹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하필 또 어두침침한 비 오는 날에 보는 바람에 더욱 침침한 기분을 받았더랬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개인적으로 맑은 날 보단 어둡거나 비 오는 날에 보는 걸 추천한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시놉시스
10대 소년 마이클은 우연히 30대 여인 한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마이클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던 한나는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한나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던 마이클은 법대생이 되어 8년 후 우연히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한나를 보게 된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나와 또다시 20년의 이별을 맞아야만 한다. 그 후 10년간 한나에게 책을 읽은 녹음테이프를 보내면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랑은 너무나 큰 비밀을 감추고 있었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비가 내리던 날, 갑작스러운 구토감과 통증이 쫄딱 젖은 소년을 덮친다. 어쩔 줄 모르는 소년에게 한 여성이 다가온다. 소년과 달리 충분히 농익어 보이는 여성은 침착하게 소년을 도와준다. 소년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여성에게 빠지게 되고, ‘감사의 표시’라는 핑계를 들고 여성의 집으로 향한다. 여성은 아주 여리고 어린 소년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속옷을 다리고 있다. 정말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 무심한 행동을 통해 소년의 마음속에서 끓고 있는 것을 끄집어내려 유도하고 있는 건지.. 소년은 쉽게 감을 잡지 못한다. 천천히, 아주 서서히. 여성은 소년의 마음이 벅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소년의 뒤로 다가간다. 그렇게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순간, 사랑의 감정은 한도 없이 타오른다.
소년의 이름은 마이클, 여성의 이름은 한나. 두 사람은 몇 번 더 만남을 가지고 나서야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새롭게 인지하는 순간, 두 사람의 사이는 육체적인 사랑을 넘어 정신적인 사랑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네가 읽어줘. 잘 하더라. 책 읽는 거.”
마이클과 한나는 하루의 끝에서 사랑을 나누고, 책을 읽는다. 한나는 마이클의 품에 안겨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 내용을 들으며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한나를 안고 있는 마이클은 첫사랑이란 감정과 잘하는 것 하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하나씩 알아간다. 이제 서로의 마음을 흘낏 훔쳐보는 것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얽을 일만 남았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대부분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법이다.
마이클은 15살 소년, 한나는 30대 여성이다. 마이클은 한나가 사랑을 표현해 주길 바라고, 한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어느 날 한나가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지고, 마이클은 배신감과 슬픔을 마음에 품은 채 어른이 된다. 법대생이 된 마이클 앞에 첫사랑 그녀가 다시 나타난다. 저 멀리 울타리 너머에 앉아있는 피의자로.
한나는 20여 년 전 수감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한 경력 때문에 법정에 앉게 된다. 수감소에서 수감자를 관리하고, 그들을 선별해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일을 했던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것인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아우슈비츠로 가게 된 사람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마이클은 “왜 문을 열어주지 않았죠?”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한나는 “그건 내 업무였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한다.
한나는 다른 피의자들의 모략과 책임 전가로 인해 구석으로 몰린다. 하지만 변명할 증거가 딱히 없기도 했고,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가장 큰 살인죄를 홀로 뒤집어쓰게 된다. 마이클은 여러 상황을 조합해 한나가 문맹인 걸 눈치챘지만,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진실을 밝히지 않기로 결심한다.
첫사랑과 또다시 이별하게 된 마이클은 한나를 잊고 자신의 삶을 산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한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한나와 이별한 이후로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마이클은 아내와 이혼을 선택하게 되고, 하나뿐인 딸과도 어색한 사이를 유지한다. 그는 짐을 정리하던 중 한나에게 읽어줬던 오디세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녹음해 한나에게 보내준다.
숫자와 점이 찍힌 여러 개의 테이프가 담긴 박스가 한나에게 도착하고, 한나는 테이프를 들으며 글을 공부한다. 한나는 글씨를 익혀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마이클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어른이 된 마이클과 중장년층에 접어든 한나. 한나는 여전히 마이클을 Kid라고 부르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예전과 같지 않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 한나의 가석방이 결정됐을 때쯤이었다. 교도소 내 식당에 앉아있는 한나의 앞에 마이클이 앉는다. 한나는 반가움에 손을 내밀지만 마이클은 한나의 손을 잡지 않는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무언가 배웠느냐고 묻는다. 한나는 글을 배웠다고 답한다.
마이클은 법정에 앉아있는 한나를 보고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수감자들을 관리하고, 그들을 수용소로 보낸 감시원이라니. 거기에 부끄럼 하나 없이 당당하게 그것이 자신의 일이었다고 말하는 모습은 마이클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마이클의 순수한 첫사랑은 그쯤에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마이클은 과거를 회상하고 책을 읽어 보내며 한나가 자신의 죄를 깨닫길 바랐고, 한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한나는 뒤늦게 배우게 된 글들이 가득 적혀있는 책들을 밟고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는 글을 배우며 자신이 행한 행동의 그릇됨을 깨닫게 되었고, 교도소를 떠나 새로이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가석방을 앞두고 있었지만 짐을 하나도 챙기지 않은 그녀의 방안엔 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이 가득하다.
“근데 이젠 끝이겠지.” 마이클이 테이블에서 일어날 때쯤, 한나도 마이클의 마음을 눈치챈 듯 이렇게 말한다. 마이클과 한나는 더 이상 전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랑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한나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한다.
“감시원에 지원한 게 죄인가요?”
감시원으로 일했던 한나는 완전한 악인인 걸까? 그녀는 악인이자 필요 이상으로 순수했던, 사회에 휩쓸린 어른이었다. 마이클이 성인이 되어 수업을 듣는 장면에서 강단에 선 교수님이 “법이란 편협한 거야”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법과 법조인들은 한나를 악인으로 지목한다. 그녀가 감시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지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어떤 일에 지원했고, 누군가의 지시를 따랐다. 아우슈비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한나는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에도 별다른 뜻과 생각 없이 전차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일만 하는, 겉모습만 커버린 어른이었다. 글씨도 깨우치지 못했으며 그릇됨의 정의조차 몰랐던 사람. 그게 바로 한나였다.
한나가 죽고 난 후, 마이클은 한나가 모아둔 돈과 틴케이스를 들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다. 당시 어린 소녀였던 피해자는 한나의 틴케이스를 보며 수용소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나에게도 보물을 담아둔 틴케이스가 있었다고 말하던 그녀는 케이스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틴케이스는 한 소녀의 어린 시절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한나는 장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틴케이스에 소중한 것들을 모아 간직하고 있었다. 이 행동은 그녀가 어른으로서 필요 이상의 순수함을 갖고 있었음을, 그녀가 백치에 가까운 상태였음을 의미한다. 한나는 정말 그냥 시켜서 했다- 그뿐이었다.
마이클은 한나를 용서하는 것 같아 돈은 받을 수 없다는 피해자의 말에 돈을 문맹 퇴치 기관에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한나가 글을 공부하고 후회하며 모아온 작은 돈이 문맹 퇴치 기관에 기부된다면 누군가가 글을 깨우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한나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사회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뜻과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마이클은 한나의 이름으로 기부를 해도 괜찮겠냐며 피해자의 뜻을 묻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한나의 순수함과 소녀 시절의 시간을 담은 틴케이스는 피해자의 가족사진 옆에 놓인다.
나는 한나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그녀 또한 백치와 무지함이 만든 비극의 피해자였음을 인정한다. 한나는 자신의 죄를 깨달은 후 목숨을 끊고, 마이클의 첫사랑은 완전히 막을 내린다. 마이클은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딸에게 한나를 소개하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소년의 삶의 한순간을 뒤흔들었던 첫사랑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과 함께 땅에 묻힌다. 이 영화를 보며 한숨을 몇 번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
- 연극처럼 펼쳐지는 자백, 끊임없이 수렁에 빠진 진실.
리메이크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에 원작을 먼저 만나보고 영화 '자백'을 관람하기로 했다. 리메이크 특성상 기존 원작을 따라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영화가 굉장히 많아서 기대감을 한껏 낮추고 갔다. 막상 영화를 보니 흐름의 묵직함이 몰입감을 더하고 연극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책을 보는 것처럼 페이지가 굉장히 빠르게 넘어간다. 낯선 지역의 모습이 아닌 현실에 있을 법한 모습이 영화에 담기고 원작을 해치지 않으며 자신이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잘 풀어낸 영화 '자백'을 소개한다.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아 호텔로 향한 유민호는 그곳에서 습격을 당한다. 깨어나 보니 함께 있던 김세희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범인은 사라진 상태였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그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그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을 말하는 듯 하지만 빈틈은 또다시 떠오르는 진실로 인해 끊임없이 벌어지며 두 개의 사건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드러난다. 그와 연결된 그날의 진실은 함정일까 누명일까. '고통 없는 구원은 없다'라는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작용처럼 느껴진다.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일련의 고통인걸까 라는 물음을 뒤로한 채, 익숙한 장면에 반전을 주고 그 반전에 싸늘함까지 더해져 이야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영화의 분위기가 연기처럼 흩어지다가 어떤 형태로 머무른다. 그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 알듯 말듯 좁혀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자백이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는 것일지 거짓을 숨기기 위한 거짓일지는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메이크 영화를 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원작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원작 '인비저블 게스트'는 이야기의 흐름과 선에 주목했다면 영화 '자백'은 감정에 주목한다. 따라서 원작을 감상하고 보아도 다른 느낌을 주기에 상당한 몰입감을 쥐어준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진지한 고민과 생각이 곳곳에 담겨 디테일을 살리고 원작과는 다른 부분들을 살려 몰입감을 더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통해 살아 숨 쉬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감정이 너무 솟구친 탓에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중반부부터 흐트러지는 이야기에 몰입감이 깨진다. 연극 같은 영화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 빈틈을 채우면서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 유독 찝찝하게 느껴진다.
-
- #어른들은 몰라요 / Young Adult Matters, 2020
<큰엄마의 미친봉고>와 <더블 패티>를 차례로 선보였던 "Seezn"은 두 영화를 통해서, '영화를 만든다'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을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OTT 플랫폼 "티빙"이 <서복>을 극장과 동시에 공개했으며, 6월 17일에는 <샤크: 더 비기닝>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으니까요.
그렇기에 자체 제작이 아닌 배급권을 사오는 것을 택한 것에는 "넷플릭스"도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지만, '왜 이 영화였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EXID의 "하니"분의 주연을 맡은 것만으로도 관심이 쏠리겠지만 영화팬들에게도 충분히 관심이 갈만한 영화이었습니다.
감독의 전작 <박화영>이 5,876명으로 저조한 관객 수를 기록했지만, 이내 2차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는데요.
그 결과, 이번 <어른들은 몰라요>는 극장에서만 34,550명(05.21 기준)으로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라도 "Seezn"으로서는 가장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보는데요.
여기에 <큰엄마의 미친봉고>와 <더블 패티> 이후 배급권을 사 온 첫 영화인만큼 남다른 기대치를 품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어떤 영화이었는지?' - <어른들은 몰라요>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덜컥 임신이 되어버린 '세진'은 18살 여고생입니다.
어른들에게 치이다 지친 '세진'은 동갑이자 가출 경력 4년의 '주영'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위험스러운 상황도 생기지만 '재필'과 '신지'가 그녀들을 도와주고 이들은 이 길로 함께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진'의 상황을 알게 된 이들은 그녀의 유산을 도와주기로 마음을 모으는데...
사실, 관객들도 잘 몰라요.
1. 소재나 분량이나 모두 부담이다.
앞서 줄거리에서 언급한 소재들만 보더라도,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그리 가벼운 영화는 아닙니다.
여기에 영화의 러닝 타임이 127분으로 이를 다 봐야 하는 관객들이 느끼는 부담감이나 이를 풀어나가려는 감독의 부담이 똑같이 느껴지는데요.
그렇다면 영화가 관객과 감독이 느끼는 이 '부담감을 잘 버텨주었는지?' 궁금해하실 텐데, 결과를 말하자면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이 부담감에 짓눌리고 맙니다.
특히, 이런 영화들이 경계해야 하는 점이 자극적인 소재들을 열거하는 것인데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우려대로 소재들을 제시만을 하는데 그치고 맙니다.
그래서, 마무리는 어떡하죠?
청소년 임신, 유산, 자해, 가출, 동성애까지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에 등장하는 소재로 하나같이 쉽게 넘어갈 타선이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은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도 관객들에게 그 어떤 인상을 심어주질 못합니다.
이런 이유에는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소재를 소개하는데만 그친다는 것입니다.
영화가 제시한 소재들을 살펴보면, 127분이라는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주는 무게감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인상을 받는 데에는 극 중 동성애 부분처럼 컨테이너가 깔리는 것으로 해당 이야기를 마무리되고, 임신 이야기는 컷이 바뀌는 것으로 마무리되니 지켜보는 관객들로서도 이야기가 제대로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죠.
2. 설명도 안되는데, '메타포'가 들어올까?
영화의 아쉬움을 좀 더 이어나가자면, 캐릭터들의 배치를 간단하게 성립시킵니다.
극 중 "세진"을 임신시킨 담임을 시작으로 이를 비밀로 부치는 학교 관계자, "세진"과 "주영"을 이용하려는 업소 관계자나 "대리부"로 이용하려는 모든 이들을 어른으로 소개하여 관객들은 "이분법"이라는 덫에 빠트리는데요.
그러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언더도그마"에 빠지는데 아이들의 상황만을 보고서 어른 캐릭터들의 말은 나쁘게만 보니 사고의 한계를 겪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리부 이야기는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어른 캐릭터들이지만 앞에서 등장한 캐릭터들의 학습으로 '꿍꿍이는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거든요.
그러면서, 의미는 챙기네.
이렇게 설명하는데 부정확한 가운데,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메타포'만큼은 챙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극 중 "롱보드"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보드를 타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아슬아슬하다는 인상을 주는데요.
자전거도 그렇지만, 보드는 자신의 발로 밀어내고는 온몸을 비틀어 방향을 트는데 이게 땅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근데, 속도는 현저하게 줄어드니 이 상황을 빨리 나가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데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더군요.
3. 그냥이라고 말하는 건...
그리고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의 주요 이야기 "낙태"에 있어서는 "세진"에게 아기는 어떤 존재인지를 관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인하는 것은 아이를 임신함으로 모성애가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지만, 이때 사람이 가지는 감정은 공포입니다.
자신의 몸을 숙주 삼아 끊임없이 성장하고 이내 밖으로 나오는 건 암과 같은 질환과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요.
소재를 바꾸어 '스킨십'과 '감염'에 대해서도 비교해도, 이 역시 똑같습니다.
입만 벌리면, 아주...
흔히, 연인들은 서로의 살을 부대낌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데 이는 아기가 엄마와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절은 '비대면'과 '비접촉'입니다.
좀비 영화에서도 깨무는 것을 비롯해 침과 피와 같은 타액으로 감염되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과 감염도 한 끗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세진"이 "낙태"를 하려는 이유와 "주영"을 비롯한 '재필'과 '신지'는 '왜, 동참했는지?'에 대한 동기가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2시간이 넘는 분량임에도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는다는 건 핑계가 아니니까요.
-
- 살인자 리포트 | 방벌 대신 치료를 위한 복수극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복수와 사적제재
재벌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다가 퇴사 위기에 몰린 기자 '선주'(조여정). 그녀에게 제보가 하나 들어온다. 11명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 '영훈'(정성일)이 인터뷰를 요청한 것. 만약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한 명을 더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특종을 따려는 욕심과 살인을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선주는 인터뷰를 수락하고, 호텔 스위트 룸에서 살인자를 만난다. 연인이자 형사인 '상우'(김태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주는 영훈에게 묻는다. 왜 사람을 죽였냐고. 영훈은 고백한다. 복수심 때문이라고. 강간 피해자였던 아내가 자살한 뒤, 영훈은 범인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범인이 교도소에서 이미 죽은 나머지 그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폐인으로 지낸다. 어느 날, 음주 운전자 때문에 가족을 잃은 환자가 그의 병원에 내원한다. 환자의 복수심을 발견한 영훈은 그에게 제안한다. 가슴에 사무친 복수, 자기가 대신해 주겠다고.
여기까지만 보면 <살인자 리포트>는 디즈니+ 시리즈 <비질란테>나 <베테랑2>처럼 사적제재를 다룬 작품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모종의 이유로 공권력과 사법 체계를 불신하게 된 주인공. 그는 자기 복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복수도 대신하기 시작한다. 그의 행동은 갑론을박을 낳는다. 누가 그에게 범죄자를 처단할 권리를 줬는지, 그도 일반적인 범죄자처럼 처벌해야 할지 등.
<살인자 리포트>의 특이점
하지만 <살인자 리포트>는 그다음 대목에서 차별화된다. 영훈은 자신의 살인을 치료행위라고 설명한다. 근거도 확실하다. 음주 운전자를 죽인 뒤 시체 사진을 보여줬을 때 활짝 웃더니 정상 상태로 회복된 환자 반응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는 것. 이를 계기로 영훈은 다른 범죄 피해자들을 상담한 뒤, 그들이 원하면 복수를 대행한다. 형사적 처벌만으로는 회복되지 않았던 그들과 자신의 정신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 대목은 색다르다. 자신의 복수와 폭력은 사회 정의를 바로잡고, 지연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정당화하는 기존 영화 속 자경단과는 논리가 전혀 다르다. 그 덕분에 <살인자 리포트>는 자유를 얻는다. 만약 사적제재를 정의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 <살인자 리포트>도 자경단과 공권력의 관계를 다뤄야 했다. 일례로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핵심 주제는 자경단 배트맨과 검사 하비 덴트의 대립이었다.
<살인자 리포트>는 영훈의 살인을 정의 실현이 아니라 치료라고 말하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펼쳐 보일 공간을 확보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윤리적, 규범적 차원 대신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사적제재를 풀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살인자 리포트>는 등장인물의 직업부터 공간의 색깔에 이르까지 의도에 충실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 중심에는 프로이트가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원초아(이드), 자아(에고), 초자아(슈퍼에고)로 나뉜다. 원초아는 성적, 파괴적 충동 같은 원초적 본능이다. 초자아는 사회적 관념과 도덕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양심이다. 자아는 초자아의 도움을 받아 원초아를 통제한다. 만약 초자아나 원초아가 주도권을 잡으면 개인의 정신 건강은 유지될 수 없다. 전자라면 도덕적 자기 검열이 심해져 강박증이 나타나고, 후자라면 자해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테니까.
인터뷰가 그저 인터뷰가 아닌 이유
흥미롭게도 <살인자 리포트> 속 세 주인공의 역학관계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원초아, 자아, 초자아의 관계가 정확히 대응한다. 자아와 초자아가 원초아를 통제하려 하듯이, 선주와 상우는 영훈을 통제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호텔 스위트 룸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드키도 복사한다. 영훈이 돌발행동을 벌이면 아래층 객실에서 대기 중인 상우가 언제든 진입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즉, 영훈이 자신의 파괴적 충동을 좇아 살인을 저지른 원초아라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언제든 그를 통제할 준비가 된 선주는 자아이고, 선주의 뒤를 받쳐주는 상우는 초자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는 세 인물의 정체성과도 결부된다. 사회를 한 개인의 의식에 빗댄다면 사회적 질서보다는 본능적 욕구에 충실한 범죄자와 사회 규범을 지키려는 경찰은 각각 원초아와 초자아의 역할은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같은 관점에서 보면 기자의 책무는 자아의 역할과 유사하다. 일방적으로 범죄자를 통제하는 경찰과 달리, 기자는 범죄자의 사연으부터 유의미한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도 범죄 예방과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과 협력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경찰이 강제력을 과하게 행사하지는 않는지 감시한다.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자아의 일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살인자 리포트>의 인터뷰는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다. 사회 질서를 놓고 자아와 원초아가 벌이는 줄다리기에 가깝다. 세 주인공은 인터뷰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선주는 영훈이 잠재적 피해자의 안전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다며 어깃장을 놓는다. 상우는 인터뷰 전부터 영훈을 체포하려 든다. 이에 맞서 영훈은 선주에게 최면을 걸고, 선주의 딸을 언급하면서 그녀를 감정적으로 무너뜨린다.
무너진 균형
안전한 인터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선주. 그녀는 상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감춰둔 무기로 영훈을 제압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시도가 수포가 되면서 인터뷰의 주도권은 영훈에게 넘어간다. 그 결과 영훈의 공간이 된 스위트 룸에서 선주와 관객 눈앞에는 도덕적 양심과 사회적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원초적 충동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영훈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상우의 이탈이다. 상우는 두 가지 이유로 더 이상 인터뷰에 관여하지 못한다. 우선 물리적으로 차단된다. 영훈이 미리 호텔 보안 시스템에 손을 쓴 나머지 미리 복사한 카드키가 먹통이 되고, 상우 본인도 아래층 객실에 갇히기 때문. 선주로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방어막이 무력화된 셈이다.
심리적으로도 차단된다. 영훈은 상우의 범죄 행각을 폭로하며 선주와 상우의 유대감을 근본적으로 끊어 버린다. 선주가 준비한 재벌 비판 기사의 핵심 증거를 상우가 돈 받고 빼돌렸다는 것. 이처럼 사회적 규범을 대변해야 할 초자아의 타락과 자기모순이 드러난 이상, 자아도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래야 잡을 수 없다.
자연히 인터뷰의 주도권은 원초아에 넘어가고, 이 순간부터 인터뷰는 정신과 상담으로 돌변한다. 내원한 환자들의 복수심을 찾아내고 자극해서 살인의 이유를 만들었듯이, 영훈은 선주의 내면을 파고든다. 상우가 그녀에게 저지른 더 엽기적인 잘못을 열거하면서 그녀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파괴적 충동을 자극한다. 결국 선주는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영훈과 다른 환자들처럼 복수를 꿈꾸는 원초아의 충동에 충실해진다.
색깔의 심리학
<살인자 리포트>의 전개는 자칫 도식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세 캐릭터가 특정한 개념, 메시지를 대변하는 장치로 활용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짜맞추는 듯한 인상이 남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상황은 영훈에게만 지나치게 유리하다. 10명이 넘게 죽여도 아무런 증거가 없다거나, 대형 호텔의 보안 시스템을 외부인이 혼자 통제할 수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살인자 리포트>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 단점을 가린다. 그 중심에는 호텔 스위트 룸의 조명이 있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방에 들어온 영훈은 가장 TV의 배경화면을 검은색으로 바꾼다. 살인의 동기를 고백한 뒤에도, 상우와 선주를 제압한 뒤에도 그는 TV 배경화면을 바꾼다. 이때 영훈이 선택한 색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각 색의 특징이 선주의 심리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터뷰 시작 전부터 인터뷰 초반까지 스크린을 지배하는 검은색 조명은 선주의 불안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섞었을 때의 상태로, 모든 가능성을 포용하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는 영훈과 줄다리기하면서 누가 인터뷰를 주도하고,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할지 모르는 선주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인터뷰 도중 선주가 동요하기 시작하자 영훈은 TV 화면을 파란색 배경으로 바꾼다. 파란색은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심리적 효과가 있으니까. 이렇게 선주를 안심시킨 뒤 기습적으로 최면을 걸어버리면서 영훈은 인터뷰의 주도권도 가져온다. 마지막으로 그는 분노와 공격성을 뜻하는 빨간색 조명의 방에서 선주와 단둘이 대화를 나눈다. 이는 선주가 원초아의 욕구, 곧 복수심에 충실해진 상태임을 말해준다.
'살인자 리포트'의 결론
선주는 영훈의 손을 빌려 상우에게 복수한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선주에게 영훈은 제안한다. 복수를 맡겼던 다른 환자들처럼 자기한테 치료를 받으라고. 그러면 죄책감도 덜고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하지만 선주는 죄책감을 없앨 치료를 거부한다.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었던 대상은 잃었지만, 새하얀 진료실 속 선주는 어느 때보다 단단해 보인다. 다채로운 색깔의 호텔방에 있을 때와는 달리.
그녀는 영훈에게 반문한다. 그만 멈출 때도 되지 않았냐고. 선주가 떠난 뒤, 영훈은 실제로 손에 피가 묻은 것처럼 떨기 시작한다. 그의 복수심도, 분노도 한계인 것처럼. 그 순간, 그에게는 새 의뢰가 들어온다. 영화는 그의 선택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관객에게 묻는 것 같다. 상우로 대변되는 도덕 윤리와 양심, 사회적 규범의 역할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영훈에게, 그와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에게 최선이냐고.
결국 <살인자 리포트>는 '범죄자의 처벌'이 아니라 '범죄 피해자의 회복'을 다루는 영화이기에 색다르다. 자경단이 없어도, 결과가 100%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범죄자는 처벌받는다. 그러나 판결 후에 피해자들은 알아서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그들의 회복을 책임질 주체는 없다. 피해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해부하듯 보여주면서 <살인자 리포트>는 공백을 채운다. 영훈의 복수가 다른 자경단의 폭력과는 다른 결의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Acceptable 그럭저럭
궤변 같은 논리를 구조와 색채로써 완성한다
-
- 노년의 동성애에 대하여, 영화 <우리, 둘>
- 우리, 둘 (Two of us, 2019)
제작 : 프랑스·룩셈부르크·벨기에, 드라마·멜로
감독 : 필리포 메네게티 │ 출연 : 바바라 수코바(니나), 마틴 슈발리에(마도)
러닝타임 : 95분 │ 등급 : 12세 관람가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영화
최근에 영화 <갈매기>를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젊은 여성이 아닌 중년의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세상이 그들에게 어떤 시선을 보내는지에 대해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사회인데도 여전히 소외되는 계층이 있다는 건 관객인 내가 느껴야 하는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노년의 레즈비언 커플을 보여준 영화 <우리, 둘>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오랜 세월 동안 차별과 맞서 온 동성애 속에서도 특별히 ‘노년’이라는 연령층이 갖는 소외감을 마주해서다. 세상은 점점 개개인의 성적 지향을 존중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중년 이상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이 영화 속 레즈비언 커플의 연령대가 ‘할머니’라는 점은 그래서 특별하고도 상징적이었다.
복도를 마주 보고 이웃집 사이로 지내는 ‘마도’와 ‘니나’는 20년째 몰래 사랑을 이어오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그들이 걸어온 시대는 물론 지금처럼 동성애가 존중받는 시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마도는 남성과 결혼을 하여 자식과 손자까지 두었다. 그렇게 자신의 성적 지향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고, 오랜 세월 동성연애를 숨기며 살아온 그녀들이지만, 그럼에도 마도와 니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자식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로마에서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것.
하지만 마도는 쉽게 자식들에게 이를 말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과정에서 니나는 상처를 받는다. 결국 둘의 갈등이 심화되던 어느 날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둘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니나는 쓰러져 언어기능이 마비된 마도가 걱정돼 죽겠다. 하지만 니나를 그저 엄마의 이웃집 절친한 친구분 정도로 아는 마도의 가족들 앞에 니나는 나설 수가 없다. 그저 기웃거리는 것쯤으로 마도를 확인해야 했던 니나는,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도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마도의 딸 ‘앤’에게 들키고 만다.
‘내 자식은 안돼’와 ‘내 부모는 안돼’의 차이점
수많은 동성애 커플들이 커밍아웃의 기로에서 오랜 고민을 한다고 들었다. 주로 청년층의 동성애 커플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는 ‘부모의 반대’가 가장 큰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부모와 대치하지 않아도 되는 중년 또는 노년층의 동성애 커플은 어떨까. 그들도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을, 영화는 딸 ‘앤’의 격렬한 반대를 통해 보여준다.
엄마의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앤은 니나를 차단하고, 잠금장치를 바꾸고, 엄마를 병원에 가둠으로써 엄마의 동성애를 끝내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앤의 모습은 자식의 동성애를 반대하는 부모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더 나아가 동성애를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그게 내 가족의 일은 아니길 바라는 사회 전체의 모순을 닮아있기도 했다. “내 자식은 안돼”였던 대사가 “내 부모는 안돼”로 변형됐을 뿐이랄까.
노년의 동성커플이 직면해야 하는 위기는, 젊은 층의 동성커플이 겪는 위기와 같은 선상에 높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토록 더욱 깊은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이다. 성적 지향에 대한 일차적 존중은 물론이고, 자식들이 느낄 상처와 창피함과도 맞서 싸워야 하며, “다 늙어서 무슨 존중을 바라느냐”는 노인 자체에 대한 폭력적 시선도 감내해야만 하는 문제니까.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니나는 병원에서 마도를 빼내 자신의 집에 데려오고, 둘만이 추억하는 노래에 맞춰 블루스를 춘다. 밖에선 엄마를 되찾아가려는 딸 앤이 문을 쿵쿵 두들기고 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도 존중받을 수 없었던 두 노년의 여성은, 말없이 끌어안고 끝나가는 영화의 화면을 가득 채운다. 슬픔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침묵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기에.
성적 지향에 대한 우리의 다양성은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고, 젊은 동성애자의 사랑에 대한 존중은 이제 하나의 교양이며 덕목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그 시선의 바깥에 젊지 않은 동성애자의 사랑이 남아있다. 마도와 니나 같은 연인들.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고, 대부분의 삶을 가족에 대한 의무와 희생으로 지내왔던 숨은 동성 연인들 말이다. 거의 모든 영화와 드라마가 ‘젊은 동성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동안 가려져있었던 연인들에 대해, 이제 따뜻한 시선을 건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니나와 마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앤은 결국 엄마의 사랑을 받아들였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영화에 대한 감상을 떠나,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차별에 대한 감상이기도 하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주변에 더 많은 니나와 마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 슈퍼맨이지만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갈 사람.
제임스 건의 새로운 DC 유니버스가 펼쳐진다. 영화 <슈퍼맨>이 2025년 7월 9일 개봉했다. 슈퍼히어로의 상징, 슈퍼맨의 등장이다. 너무 많은 매체에서 등장했던 만큼 익숙한 캐릭터이기에 자칫하면 진부할 수 있는다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유니버스와의 완전한 작별에 성공했던 제임스 건이 어떤 신선한 슈퍼맨을 탄생시켰을지 기대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줄거리
슈퍼맨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위협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상황이다. 한편, 렉스 루터는 슈퍼맨을 무너뜨릴 비밀을 손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슈퍼맨에 총공격에 가세한다. 처음으로 패배한 슈퍼맨은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외부의 침략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
자한푸르를 침략하려는 보라비아의 상황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들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생명의 존엄보다는 자국의 이익, 개인의 욕망으로 의도적인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만이 이익을 보는 상황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도와주려 하지 않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만큼 복잡한 국제 정치가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지만 강대국을 위주로 한 국제적 이해관계이기에 더욱 어려운 일이다. 렉스 루터는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권력을 악용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과거나 서사는 드러나지 않지만 슈퍼맨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휩싸여 강박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이들은 얼마든지 사적 제재를 가하는 (전여자친구가 연락했다고 우주주머니에 가두는 모습). 그의 앞에만 서면 비합리적인 선택도 감행할 정도였다. 그는 슈퍼맨을 철저히 분석해 그의 약점을 찾아내고 그를 무너뜨리려 한다. 하지만 감독은 그를 완전한 악역으로 배제하지는 않은 듯하다. <수어사이드스쿼드>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보여주었듯 불안정한 사람, 괴짜인 사람, 나약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제임스 건 감독에게 렉스 루터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모두 사랑을 감싸며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다소 산만한 느낌도 주지만 선역 악역 할 것 없이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다.
슈퍼맨의 존재와 정체성
슈퍼맨이자 클락 켄트는 크립톤 행성에서 온 메타휴먼이지만 지구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존재다. 어떤 이들은 그를 '외계인'이라 부르며 경계하기도 한다. 그는 힘든 상황이 올 때마다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인 '강한 힘을 선한 일에 사용하라'라는 메시지를 통해 그의 본질을 되새기곤 했다. 하지만 그의 선한 의도가 늘 사람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었다. 그가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무단으로 국경을 넘는 행위는 미국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보호자가 아닌 침입자로 규정하고 경계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슈퍼맨은 개입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그가 사람들을 구했다고 해서 이렇게 국제질서를 무시해도 괜찮은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복잡한 정치 문제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했지만 사람들은 국제정치의 복잡한 시선이나 윤리와 저널리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슈퍼맨은 더 이상 절대적 존재도, 전능한 신도 아니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에서 그는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었다. 초인적인 힘을 가졌지만 누군가에게는 실망스러울 만큼 인간적이며 우리와 같이 불안해도 최선을 다하고 흔들리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는 존재다. 어쩌면 나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불완전함이 있기에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의 본질은 크립톤 행성의 부모님의 메시지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지만 지구에서 자신을 돌보아준 조나단과 마사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따뜻한 마음에서부터였다. 특히 부모님의 메시지를 듣는 마지막 장면은 '선한 마음'을 지킬 수 있게 만드는 근원을 보여주는 순간으로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새로운 DC 유니버스의 진정한 시작이자 토대가 될 영화라고 한다. 헨리 카빌이 슈퍼맨 역할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면서 이전 작품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에서는 많이 알려졌던 슈퍼맨의 탄생을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반복하지 않는다. 크립톤의 멸망, 지구로의 이주, 양부모의 보살핌에 대한 내용은 간단한 설명을 통해 전달한 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지나치게 생략한 부분이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승리나 기적의 순간으로 시작되는 보통의 히어로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패배의 순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치 우리 모두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관객을 영화에 현장 투입한다. 익숙한 영웅 서사를 다루지 않고 오로지 지금의 슈퍼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익숙한 멜로디는 빼놓지 않는다.
이러한 서사는 슈퍼맨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나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그의 초인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불안, 혼란, 고독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같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이 슈퍼맨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다소 낯설고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에서 새로운 슈퍼맨의 이야기도 시작된다. 특히 영화는 슈퍼맨을 둘러싼 대중의 인식, SNS를 통해 확산되는 여론, 선동과 왜곡의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상화된 영웅조차 이 거대하고 복잡한 정보 속에서 흔들리고 의심받는다. 그러한 슈퍼맨의 상황을 통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비춘다. 또한 이러한 시대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제는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존재의 진정성과 윤리적 선택이 중요해진 시대에서 완벽함이 아닌 불완전함에서 영웅의 이야기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
- 미국의 빈곤층에서 헐리우드 최정상까지, 스칼렛 요한슨 (블랙위도우)
#블랙위도우 #스칼렛요한슨 #어벤져스
2021. 07. 0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MCU 첫 여성 히어로
00:50 미국의 빈곤층, 스스로 찾은 꿈
02:53 전환점이 된 배역, 블랙 위도우
04:52 헐리우드 최정상이 되기까지
07:14 3번의 결혼, 그리고 딸
08:29 블랙 위도우 & 페미니스트
09:36 나타샤에게 박수를
-
-
- 넷플릭스 <택배기사> 티저 예고편
"산소 배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산소가 통제되는 세상, 생존을 배달하는 기사가 온다! 세상을 무너뜨릴 유일한 희망 《택배기사》 5월 12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
- 티빙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16일, 티빙 공개]
대가가 담긴 소원을 파는 마녀식당에서 마녀 희라(송지효)와 동업자 진(남지현), 알바 길용(채종협)이 사연 가득한 손님들과 만들어가는 소울 충전 잔혹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