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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5-09-11 20:06:15

살인자 리포트 | 방벌 대신 치료를 위한 복수극

<살인자 리포트>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복수와 사적제재

 

재벌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다가 퇴사 위기에 몰린 기자 '선주'(조여정). 그녀에게 제보가 하나 들어온다. 11명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 '영훈'(정성일)이 인터뷰를 요청한 것. 만약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한 명을 더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특종을 따려는 욕심과 살인을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선주는 인터뷰를 수락하고, 호텔 스위트 룸에서 살인자를 만난다. 연인이자 형사인 '상우'(김태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주는 영훈에게 묻는다. 왜 사람을 죽였냐고. 영훈은 고백한다. 복수심 때문이라고. 강간 피해자였던 아내가 자살한 뒤, 영훈은 범인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범인이 교도소에서 이미 죽은 나머지 그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폐인으로 지낸다. 어느 날, 음주 운전자 때문에 가족을 잃은 환자가 그의 병원에 내원한다. 환자의 복수심을 발견한 영훈은 그에게 제안한다. 가슴에 사무친 복수, 자기가 대신해 주겠다고.

 

 

 

여기까지만 보면 <살인자 리포트>는 디즈니+ 시리즈 <비질란테>나 <베테랑2>처럼 사적제재를 다룬 작품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모종의 이유로 공권력과 사법 체계를 불신하게 된 주인공. 그는 자기 복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복수도 대신하기 시작한다. 그의 행동은 갑론을박을 낳는다. 누가 그에게 범죄자를 처단할 권리를 줬는지, 그도 일반적인 범죄자처럼 처벌해야 할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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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리포트>의 특이점

 

하지만 <살인자 리포트>는 그다음 대목에서 차별화된다. 영훈은 자신의 살인을 치료행위라고 설명한다. 근거도 확실하다. 음주 운전자를 죽인 뒤 시체 사진을 보여줬을 때 활짝 웃더니 정상 상태로 회복된 환자 반응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는 것. 이를 계기로 영훈은 다른 범죄 피해자들을 상담한 뒤, 그들이 원하면 복수를 대행한다. 형사적 처벌만으로는 회복되지 않았던 그들과 자신의 정신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 대목은 색다르다. 자신의 복수와 폭력은 사회 정의를 바로잡고, 지연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정당화하는 기존 영화 속 자경단과는 논리가 전혀 다르다. 그 덕분에 <살인자 리포트>는 자유를 얻는다. 만약 사적제재를 정의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 <살인자 리포트>도 자경단과 공권력의 관계를 다뤄야 했다. 일례로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핵심 주제는 자경단 배트맨과 검사 하비 덴트의 대립이었다.

 

 

 

<살인자 리포트>는 영훈의 살인을 정의 실현이 아니라 치료라고 말하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펼쳐 보일 공간을 확보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윤리적, 규범적 차원 대신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사적제재를 풀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살인자 리포트>는 등장인물의 직업부터 공간의 색깔에 이르까지 의도에 충실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 중심에는 프로이트가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원초아(이드), 자아(에고), 초자아(슈퍼에고)로 나뉜다. 원초아는 성적, 파괴적 충동 같은 원초적 본능이다. 초자아는 사회적 관념과 도덕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양심이다. 자아는 초자아의 도움을 받아 원초아를 통제한다. 만약 초자아나 원초아가 주도권을 잡으면 개인의 정신 건강은 유지될 수 없다. 전자라면 도덕적 자기 검열이 심해져 강박증이 나타나고, 후자라면 자해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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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그저 인터뷰가 아닌 이유

 

흥미롭게도 <살인자 리포트> 속 세 주인공의 역학관계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원초아, 자아, 초자아의 관계가 정확히 대응한다. 자아와 초자아가 원초아를 통제하려 하듯이, 선주와 상우는 영훈을 통제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호텔 스위트 룸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드키도 복사한다. 영훈이 돌발행동을 벌이면 아래층 객실에서 대기 중인 상우가 언제든 진입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즉, 영훈이 자신의 파괴적 충동을 좇아 살인을 저지른 원초아라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언제든 그를 통제할 준비가 된 선주는 자아이고, 선주의 뒤를 받쳐주는 상우는 초자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는 세 인물의 정체성과도 결부된다. 사회를 한 개인의 의식에 빗댄다면 사회적 질서보다는 본능적 욕구에 충실한 범죄자와 사회 규범을 지키려는 경찰은 각각 원초아와 초자아의 역할은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같은 관점에서 보면 기자의 책무는 자아의 역할과 유사하다. 일방적으로 범죄자를 통제하는 경찰과 달리, 기자는 범죄자의 사연으부터 유의미한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도 범죄 예방과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과 협력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경찰이 강제력을 과하게 행사하지는 않는지 감시한다.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자아의 일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살인자 리포트>의 인터뷰는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다. 사회 질서를 놓고 자아와 원초아가 벌이는 줄다리기에 가깝다. 세 주인공은 인터뷰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선주는 영훈이 잠재적 피해자의 안전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다며 어깃장을 놓는다. 상우는 인터뷰 전부터 영훈을 체포하려 든다. 이에 맞서 영훈은 선주에게 최면을 걸고, 선주의 딸을 언급하면서 그녀를 감정적으로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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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균형

 

안전한 인터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선주. 그녀는 상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감춰둔 무기로 영훈을 제압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시도가 수포가 되면서 인터뷰의 주도권은 영훈에게 넘어간다. 그 결과 영훈의 공간이 된 스위트 룸에서 선주와 관객 눈앞에는 도덕적 양심과 사회적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원초적 충동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영훈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상우의 이탈이다. 상우는 두 가지 이유로 더 이상 인터뷰에 관여하지 못한다. 우선 물리적으로 차단된다. 영훈이 미리 호텔 보안 시스템에 손을 쓴 나머지 미리 복사한 카드키가 먹통이 되고, 상우 본인도 아래층 객실에 갇히기 때문. 선주로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방어막이 무력화된 셈이다.

 

 

 

심리적으로도 차단된다. 영훈은 상우의 범죄 행각을 폭로하며 선주와 상우의 유대감을 근본적으로 끊어 버린다. 선주가 준비한 재벌 비판 기사의 핵심 증거를 상우가 돈 받고 빼돌렸다는 것. 이처럼 사회적 규범을 대변해야 할 초자아의 타락과 자기모순이 드러난 이상, 자아도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래야 잡을 수 없다.

 

 

 

자연히 인터뷰의 주도권은 원초아에 넘어가고, 이 순간부터 인터뷰는 정신과 상담으로 돌변한다. 내원한 환자들의 복수심을 찾아내고 자극해서 살인의 이유를 만들었듯이, 영훈은 선주의 내면을 파고든다. 상우가 그녀에게 저지른 더 엽기적인 잘못을 열거하면서 그녀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파괴적 충동을 자극한다. 결국 선주는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영훈과 다른 환자들처럼 복수를 꿈꾸는 원초아의 충동에 충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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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심리학

 

<살인자 리포트>의 전개는 자칫 도식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세 캐릭터가 특정한 개념, 메시지를 대변하는 장치로 활용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짜맞추는 듯한 인상이 남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상황은 영훈에게만 지나치게 유리하다. 10명이 넘게 죽여도 아무런 증거가 없다거나, 대형 호텔의 보안 시스템을 외부인이 혼자 통제할 수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살인자 리포트>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 단점을 가린다. 그 중심에는 호텔 스위트 룸의 조명이 있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방에 들어온 영훈은 가장 TV의 배경화면을 검은색으로 바꾼다. 살인의 동기를 고백한 뒤에도, 상우와 선주를 제압한 뒤에도 그는 TV 배경화면을 바꾼다. 이때 영훈이 선택한 색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각 색의 특징이 선주의 심리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터뷰 시작 전부터 인터뷰 초반까지 스크린을 지배하는 검은색 조명은 선주의 불안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섞었을 때의 상태로, 모든 가능성을 포용하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는 영훈과 줄다리기하면서 누가 인터뷰를 주도하고,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할지 모르는 선주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인터뷰 도중 선주가 동요하기 시작하자 영훈은 TV 화면을 파란색 배경으로 바꾼다. 파란색은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심리적 효과가 있으니까. 이렇게 선주를 안심시킨 뒤 기습적으로 최면을 걸어버리면서 영훈은 인터뷰의 주도권도 가져온다. 마지막으로 그는 분노와 공격성을 뜻하는 빨간색 조명의 방에서 선주와 단둘이 대화를 나눈다. 이는 선주가 원초아의 욕구, 곧 복수심에 충실해진 상태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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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리포트'의 결론

 

선주는 영훈의 손을 빌려 상우에게 복수한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선주에게 영훈은 제안한다. 복수를 맡겼던 다른 환자들처럼 자기한테 치료를 받으라고. 그러면 죄책감도 덜고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하지만 선주는 죄책감을 없앨 치료를 거부한다.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었던 대상은 잃었지만, 새하얀 진료실 속 선주는 어느 때보다 단단해 보인다. 다채로운 색깔의 호텔방에 있을 때와는 달리.

 

 

 

그녀는 영훈에게 반문한다. 그만 멈출 때도 되지 않았냐고. 선주가 떠난 뒤, 영훈은 실제로 손에 피가 묻은 것처럼 떨기 시작한다. 그의 복수심도, 분노도 한계인 것처럼. 그 순간, 그에게는 새 의뢰가 들어온다. 영화는 그의 선택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관객에게 묻는 것 같다. 상우로 대변되는 도덕 윤리와 양심, 사회적 규범의 역할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영훈에게, 그와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에게 최선이냐고.

 

 

 

결국 <살인자 리포트>는 '범죄자의 처벌'이 아니라 '범죄 피해자의 회복'을 다루는 영화이기에 색다르다. 자경단이 없어도, 결과가 100%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범죄자는 처벌받는다. 그러나 판결 후에 피해자들은 알아서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그들의 회복을 책임질 주체는 없다. 피해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해부하듯 보여주면서 <살인자 리포트>는 공백을 채운다. 영훈의 복수가 다른 자경단의 폭력과는 다른 결의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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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ptable 그럭저럭

 

궤변 같은 논리를 구조와 색채로써 완성한다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4004358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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