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24 17:27:56
시네마테크KOFA 발굴 복원전 라인업
한국영상자료원 주최!

시네마테크KOFA가 2008년 5월 8일 개관한 이래로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굴, 수집한 영화와
국내외에서 복원한 예술 영화들을 선보이는 '발굴 복원전'이 올해도 개최됩니다!
데이비드 린치, 발 킬머처럼 근래 작고한 영화인들을 기리는 ‘인 메모리엄’ 섹션,
벨기에 왕립 아카이브에서 복원한 해리 퀴멜 감독의 <말페르튀이>가 상영되는 ‘해외 복원’ 섹션 등
다채롭게 준비된 복원전을 만나보세요.
평소에 보기 어려운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니,
더욱 놓칠 수 없겠죠!
*article, image @koreanfilmarchiv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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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도 웃음도 감동도 <싱크홀>로 추락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통근 지옥에 시달리던 ‘동원(김성균)’은 마침내 서울 입성과 함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다. 그러나 얼마 지나니 않아 동원과 아내 '영이(권소현)'는 집 바닥을 굴러다니는 구슬들을 보면서 빌라 건물에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에 사로잡힌다. 여기에 더해 이사 첫날부터 사사건건 충돌하는 옆집 이웃 ‘만수’(차승원)'가 유발한 짜증도 그를 괴롭힌다. 애써 불안함을 가라앉히며 ‘김대리’(이광수)와 인턴사원 ‘은주’(김혜준)를 비롯한 직장 동료들을 집들이에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동원.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순식간에 빌라 전체가 지하 500m 싱크홀 속으로 떨어지는 재난이 그들을 덮친다.
한국 재난 영화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영화를 크게 삼등분했을 때, 초반부는 주인공들의 평범한 일상과 갈등을 조명하고 그 과정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앞으로 다가올 재난의 전조를 비추며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중반부에서 경고는 현실이 되고, 재난을 헤쳐나가는 사투가 펼쳐지는 가운데 일상 속 갈등들은 극적으로 해소된다. 이 과정에서 유머스러웠던 장면이 뭉클한 눈물 포인트로 전환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는 생존자들의 행복한 엔딩을 다루는 에필로그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최근에는 이러한 공식에 생활밀착형 이슈를 더하며 사회 비판적 분위기를 곁들이기도 한다. 청년들의 취업난을 빌딩 숲 클라이밍 액션에 빗댔던 <엑시트>가 대표적이다.
<화려한 휴가>, <7광구>, <타워>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싱크홀>은 위의 공식에 충실하다. 평범한 소시민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동원이 첫 등장하는 순간부터 양옆에 차승원과 이광수라는, 연기력과 예능력을 모두 갖춘 배우를 붙여 놓은 것에서는 이 조합으로부터 웃음을 뽑아내겠다는 의도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빌라 구성원의 면면을 보면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려는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와 홀로 집에 남은 어린 아들, 거동하기도 힘든 노모와 효성이 지극한 아들,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는 부자 관계는 등장만으로도 재난 상황이 빚어낼 감동 드라마를 눈앞에 펼치는 듯하다.
이에 더해 <엑시트>를 모델로 삼은 듯 최신 트렌드에도 발맞추는데, 특히 <엑시트>의 방향성을 뒤집는 선택이 돋보인다. <엑시트>는 날로 높아지는 취업 기준선에 맞춰서 사다리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청춘들을 그려냈기에 상승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영화다. 반면에 <싱크홀>은 영화가 다루는 재난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하강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주인공들은 싱크홀로 떨어지고, 그 안에서도 진흙 더미 속으로, 더 낮은 층으로 거듭 내려간다. 그 중심에는 부동산 문제가 위치한다. 무조건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취업난 그 자체가 재난이 된 것처럼, 집이 삶의 터전이자 동시에 자산이고 인생의 보험이나 다름없는 한국인들에게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싱크홀만큼이나 무서운 재난이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작중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들도 대다수가 집값 변동과 관련된 자조적 표현이다.
하지만 재난 영화 공식을 충실히 따랐는데도 <싱크홀>은 또 다른 <엑시트>가 되지 못했다. 공식을 외우기만 했을 뿐,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메시지 전달에만 급급한 나머지 완성도를 놓쳐 버렸다. 특히 113분의 러닝타임 중 약 1시간가량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전개를 알리는 싱크홀이 등장하는 장면은 모든 문제를 집약하고 있디. 영화는 그 전까지의 분량을 동원은 물론 빌라에 사는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과 집안 사정과 그들 간의 갈등으로 채운다. 길고도 긴 발단은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무너질 집이 어떤 의미인지를 각인시키고, 그들의 삶 속에 부동산 문제가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를 부각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그 자체로 역효과를 일으키는 한편,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각 인물들의 사연은 클리셰로 가득한 나머지 큰 흥미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너무 많은 장소와 사건, 시점을 오가다 보니 혼잡하기만 할 뿐 이야기에 몰입할 계기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또 정작 재난 상황에서 조명되는 이들의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중심인물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연들을 과감히 쳐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엑시트>, <백두산> 같은 근래 재난 영화가 인물들의 관계와 성격 등 기본적인 스케치만 그린 후 주인공들을 곧장 재난 속에 빠뜨리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지난한 초반부를 통해 애써 강조한 부동산 문제에 대한 비판도 기대에 비해 강렬하지 않다. 재난과도 같은 현실 속 부동산 이슈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는 초반부와 tvn 예능 <바퀴 달린 집>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장식된 에필로그 사이의 간극아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어찌나 큰 지, 싱크홀이 발생하는 순간을 묘사한 부자연스러운 CG는 마치 이 모든 재난이 예능 프로 안에서나 등장하는 판타지와 다름없음을 암시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길고 길었던 영화의 기초공사에는 별다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또한 코미디와 재난 영화 사이에서 좀처럼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는 연출도 감상을 방해한다. 영화는 싱크홀에 갇힌 사람들을 걱정하면서 밥을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지상의 생존자들을 보여준 직후에 진흙 통닭구이를 즐기는 싱크홀 속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그 결과 웃음을 자아내려는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작품 내적으로 재난에 빠진 주인공 일행 외의 인물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의 엉뚱한 행동에 웃으려면 싱크홀에 빠진 다른 주민들의 존재를 잠시 잊어햐 하는데, 다른 주민들이 어린 아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어느 순간이 되면 그들이 다시 등장해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을 만들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에 비하면 명백히 약자인 이들을 침수되거나 진흙이 가득한 환경으로 내모는 연출 때문에 그마저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특히 이 대목은 영화의 주제의식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에 특히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잘 다듬었다면 같은 빌라나 아파트 건물 안에서도 층층이 나뉘어 집값이 상이한 현실을 지적하고, 이에 따른 갈등이나 박탈감을 부각해 한층 입체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난 희생자들을 직접적,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던 <엑시트>가 잠시나마 학원에 갇힌 학생들을 재난의 또 다른 생존자로 등장시키면서 취업경쟁과 유사한 맥락에 놓인 입시경쟁이라는 사회현상까지 아울렀던 것과 비교되는 선택인 셈이다.
물론 공식에 충실한 만큼 <싱크홀>은 분명 일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한다. 또 주인공들에게 공감하거나 감정 이입할 여지가 충분하기에 그들의 입장을 따라가면 무난히 즐길 만한 재난영화이기도 하다. 마침내 집을 마련한 가족, 집을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청년, 원룸으로도 만족하는 사회초년생, 월세를 내고 사는 현실을 씁쓸해하는 사람 등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재난 영화로서의 긴장감, 사회 비판 영화의 시원함, 재난을 극복하는 이들이 자아내는 감동과 코미디가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게 <싱크홀>은 무난함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무색무취한 여름 시즌 영화로 남는다.
D(Dreadful 끔찍한)
공식을 알아도 적용을 잘못하면 말짱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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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이 초래한 긴장을 푸는 우연한 인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우연과 상상>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우연과 상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으로, 202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에릭 로메르 감독의 <파리의 랑데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단편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서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친구인 '츠구미(현리)'로부터 그녀의 새롭게 만난 남자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의 이야기를 듣는다. 두 번째 단편인 ‘문은 열어둔 채로’에서 여대생 ‘나오(모리 카츠키)’는 섹스 파트너인 '사사키(카이 쇼우마)'의 부탁대로 그가 앙심을 품은 '세가와(시부카오 키요히코)' 교수 앞에서 교수를 유혹하기 위해 그가 쓴 소설 중 에로틱한 파트를 낭독한다. 마지막 단편인 ‘다시 한 번’은 20년 만에 고향을 찾은 ‘나츠코(우라베 후사코)’가 그토록 만나고 싶던 동창생과 재회하는 순간을 담는다.
사실 단편 영화는 관객에게 불친절하다는 편견이 강하다. 상업 영화와는 달리 이해하기 어려운 서사와 연출로 가득해 감독 본인의 세계에 도취했다는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과 상상>은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단편 영화의 편견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경험할 법한, 하지만 그렇기에 더 풍부한 상상이 가능한 세 개의 이야기가 우연을 공통점으로 한 데 엮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클리셰를 파괴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기발함, 관객을 시험하는 듯한 발칙함, 마음을 울리는 애틋함으로 무장한 세 이야기는 끝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어우러지고 따스한 위로를 건네며 막을 내리고 있다.
물론 일상에서 낯설지 않은 만큼 우연은 시나리오에 적절히 녹여내기 어려운 도구다. 이야기에 우연을 삽입하는 것은 자칫 이야기를 편의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설령 사건의 발단은 우연이더라도, 그 이후 발생하는 일들은 필연적인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픽사의 스토리 아티스트였던 엠마 코츠도 "캐릭터가 우연히 문제에 휘말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캐릭터가 우연히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반칙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온갖 갈등의 끝에 신(神)이 내려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 비극의 기법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근래에는 가장 피해야 할 플롯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목부터 우연적인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선언한 이 작품은 어떻게 우연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필연적인 이야기로 바꾸고 있을까? 그 중심에는 불안함과 긴장감이 있다. 영화는 인물과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배경은 뒤로 제쳐 둔 채, 누구든 공감할 수밖에 없고 차라리 상상이었으면 좋았을 사건의 한가운데에 관객들을 던져 놓는다. 그 덕분에 우연히 시작된 이야기는 단숨에 필연성을 획득한다. 우연이 초래한 낯설고 불안정한 상황의 흐름을 따라가면 자연히 캐릭터들의 감정 변화와 한 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첫 번째 에피소드는 터질 듯 응축된 감정을 공간에 가득 채운다. 택시 안에서는 오직 표정과 대사만으로 사랑의 달콤함에 빠진 츠구미와 친구가 전 남자 친구와 연인이 되자 당황하는 메이코를 대조한다. 또 이내 질투와 분노로 바뀔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찬 사무실, 체념과 수긍으로 감정선이 전환될 카페의 모습은 공간에 따라 변하는 인물의 표정과 감정을 통해 우연이 초래한 긴장감을 실감하게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이 단편의 대부분은 에로틱한 소설 내용을 읊는 장면인데,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남교수 세가와와 그를 유혹하려는 여대생 나오의 상반된 처지가 어디로 튈지 모를 불안정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렇게 우연에게 부여된 불안정성과 긴장감이라는 이름은 촬영 방식과 클리셰를 파괴하는 방법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우선 두 단편에서는 공통적으로 급격한 줌인이 등장한다. 첫 번째 단편에서는 극심한 내적 갈등으로 인해 얼굴을 감싼 메이코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그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우연히 타자를 잘못 입력하는 나오의 컴퓨터 모니터를 줌인한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인물들의 불안을 대놓고 드러나게 하며, 결국 청춘들에게 찾아온 우연은 그들의 관계를 뒤틀리게 하는 기제가 된다.
이는 예상치 못한 클리셰의 파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루한 삼각관계를 상상 속에 남겨두거나 남교수와 여제자라는 통속적인 관계 대신 소설을 매개로 맺어지는 대안적 관계로의 발전처럼 예상치 못한 전개는 약간의 유머와 통쾌함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 데 성공한다. 이는 두 단편 모두 우연을 안정된 삶과 인간관계를 갑작스레 뒤흔드는 부정적인 기제로 다루고 있음을 역으로 방증한다.
그러나 세 번째 단편 속 우연의 역할은 다르다. 물론 우연한 사건이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 전개는 여전하다. 영화는 20년 만에 재회한 두 동창의 감동적인 추억 회상을 방해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작중 우연은 다시 한번 주인공들의 안정된 삶을 훼방 놓는 존재 같아 보인다. 그러나 착각이라는 우연이 맺어준 인연은 오래된 관계만큼이나 따뜻하다. 그들이 만나고 싶었던 동창을 대신하여 상상으로나마 현실을 위로하는 장면은 기적과도 같은 우연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세 번째 단편은 우연이 빚어낸 불안정성과 긴장감, 관계의 단절을 위로와 희망이라는 이름의 우연으로 감싸 안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성과 흐름은 영화 전반적으로도 찾아볼 수 있다. 앞의 두 단편이 누구나 동조할 수 있는 보편적인 후회를 품고 살아가던 이들을 통해 관계의 좌절을 보여준다면, 마지막 단편은 새로운 관계로써 그 아픔을 극복하는 이들을 비춘다. 결국 세 번째 단편뿐만 아니라 <우연과 상상> 전체가 보편적인 좌절과 불안이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에 더해 세 번째 단편은 SF적인 상상력을 빌려 영화의 메시지를 스크린 밖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정체불명의 컴퓨터 바이러스가 덮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데, 공간적 배경이 후쿠시마 북부에 위치한 센다이시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우연과 상상>은 특히 예상치 못한, 말 그대로 우연히 재난을 마주해야 했던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일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째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작금의 팬데믹이야말로 예상치 못했던 우연이 낳은 재난이자 불안정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세 편의 짧은 이야기는 영화 속 우연을 그저 우연으로 놔두지 않고,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힘으로 탈바꿈시키는 듯 느껴진다.
사실 혹자가 보기에 <우연과 상상>은 조악한 완성도와 짧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세 작품의 모음집일 수도 있다. 이는 당장 카메라 1대로 모든 러닝타임을 찍다 보니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이 남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본 작은 이오카 유키코 촬영감독이 혼자 모든 촬영을 맡아 진행하다 보니 배우의 동선조차 명확히 결정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달리 말해 <우연과 상상>은 빈틈이 많은 영화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는 단편 영화의 특권이다. 단편은 작가 또는 감독이 설정한 세계에 주인공들을 던져 놓아도 그 모든 설정과 기반, 전제에 관객이 우선적으로 동의한 채로 이야기를 따라간다. 상상력이 동원된 세계관에 설령 개연성이 부족한 구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온전히 창작자에게 지우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그 결과 <우연과 상상>에서 느껴지는 빈틈은 오히려 온전히 관객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를 투영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된다. 그렇게 <우연과 상상>은 스스로를 우연으로 정의하고, 관객에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넘기면서 막을 내린다.
A(Acceptable, 무난함)
분명 단편 모음집인데 결과적으로 하나의 장편 영화를 본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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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하게 끌고 온 진심이 후반부까지는 감당하지 못한 듯
미친개의 귀환
이 영화의 주인공은 2016년의 대한민국에 사는 경찰관 황준철이다. 다시 전주로 돌아왔다. 누가 그를 환영하든지 말든지 중요한 게 아니다. 오랜만에 부인과 딸을 다시 만날 생각에 신났다. 기분 좋은 준철. 하지만 금세 기분이 변한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준철. 복잡한 생각에 빠진다. 하지만 지금은 2016년이다. 17년 전 일은 과거일 뿐이다. 가서 일 잘하면 되는 일이다. 황준철이 가족들과 재회한다. 그런데 이런 준철을 전 직장 동료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성! 이제야 오셨소!” 16년 전 부하 직원이었던 박정규가 반긴다. 술 한잔 들이켠다. “성은 예전 일 기억납니까?” 예전 일? 황준철의 머릿속에서 ‘미친개’였던 시절이 재생된다.
수사반장이 됐다. 실적 하나만은 기가 막힌 황준철. ‘미친개’에게 눈에 보이는 건 없다. 일단 잡고 보는 준철. 하지만 바늘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냉혈한은 또 아니다. 동료들에게 고기 쏘는 법 정도는 아는 준철.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박정규가 ‘당신의 부사수’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여기가 새로운 직장인가? 적응 중인 준철. 하지만 거슬리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최우성이 준철에게 다가간다. 건들거리는 우성. 준철은 애써 무시하기로 한다. 그런데 막상 무시할 수만은 없던 사건이 있었다. 1999년의 어느 날. ‘삼례슈퍼’라는 곳에서 강도치사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10대 소년 3명이다. 이상한 사건에 ‘미친개’ 황준철이 개입한다.
실화바탕 영화 다수
이런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만들 때 지켜야 할 윤리가 몇 있다. 그중 하나는 ‘무엇을 주인공으로 삼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표면적으로는 황준철(설경구)과 최우성(유준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영화가 정말 다루고자 했던 바는 다른 부분이다. 이 영화가 극의 진짜 주인공을 보여주기 위해 썼던 방식은 이야기의 시점을 엇갈리는 것이다. 두 상황을 비교, 대조하며 관객들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만약 주인공이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긴박한 서스펜스를 극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면 전하고자 하는 바에 이야기가 응집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목표가 정해져 있던 듯이 영화는 두 시점동안 공통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묘사한다.
다음으로 영화가 지킨 선은 카메라가 어떤 것을 담고자 했는가? 에 대한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폭력은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 요소다. 강도치사라는 사건의 성격 자체만 봐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폭력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1차원적인 분노를 이끌어내고 싶었다면 폭력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다루고 싶어 하는 폭력은 따로 있다. 이 폭력을 전적으로 앞에 내세우고 불필요한 것들은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에 다른 이야기를 끌고 와 영화로 만들었다. 바로 소년들 3인방에 대한 서사다. 이 부분이 올드하다고 느낄 여지는 충분하지만 작품의 핵심인 ‘약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묵직한 진심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작품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유려하다. 딱히 모난 구석이 없다. 이야기를 모호하게 전달해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던가 하는 식의 연출이 없다. 카메라가 담은 장면도 이 영화의 선한 의도를 충분히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진경 배우가 맡은 역은 두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묘한 연기를 보여주고, 설경구 배우는 주인공이 17년의 세월 동안 급작스럽게 나이가 들었다는 설정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영화의 미술이나 조명 같은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지영 감독은 이런 부분 하나하나 세밀하게 손가락이 닿았던 흔적을 보여준다. 특히 최우성 캐릭터를 비추는 조명과 카메라는 영화가 ‘이 인물은 이런 인물이다’를 쉽게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대표적으로 이 인물이 욕설을 하는 장면은 뭔가 심심하다. 이는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검경의 속성과도 겹쳐 보이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진정성에는 투박함이 묻어있다. 글쓴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쉽다고 느꼈던 부분은 최우성 캐릭터다. 이 인물이 황준철과 대립구도를 보여주는 이유와 상황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두 사람의 갈등이 영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 이전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우성은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수상할 정도로 조직의 수호를 받기 때문이다. 일을 잘해서? 하지만 황준철도 실적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라고 묘사된다. 이것 외의 설정을 중후반부에 보여주긴 하지만 이 한 줄이 과연 모든 이야기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플롯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가며 보여주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가 예상이 된다. 영화가 기획의도로서 고른 것들이 후반부의 동력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또 영화의 일부 설정은 영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대표적으로 황준철을 ‘미친개’로 부르는 설정이 그렇다. 또 후반부 소년들 3인방의 로맨스 요소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적합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장면이다. 글쓴이는 이 로맨스가 영화에서 그 어떤 비유,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억지 재판
영화를 본 분들 중 거의 대다수가 이 법정신에 대해 코멘트할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 역시 이 장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우선 3인방 중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의 동선이다. 그냥 정석적인 재판으로 묘사했어도 이 영화가 제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충분히 지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영화가 당시 검/경이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를 다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년들>은 그렇지 않다. 인물이 등장하는 방식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극적인 긴장감을 과다 투여한다. 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 중 하나는 2016년의 재심을 통해 소년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냉정하고 사실에 기반한 인물들이 등장해야 한다. 이 장면에서 피고 원고 증인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감정적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해야 할 장면에서 뜨거운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이는 이 영화와 전적으로 대치되어 엔딩의 뒷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베테랑의 클래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설경구 배우는 최근작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강철중’이 연상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영화가 이를 의도한 바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집착은 소시민들의 연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 집착이 장점/단점으로 발현되는 부분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단편적으로만 캐릭터를 해석하지 않았다는 점이 스크린에 그대로 드러나는 좋은 연기였다. 그동안 <더 문>이나 <유령> 같은 영화에서는 속삭이는 발성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황준철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또 이 영화에서 설경구 배우의 상대역이라고 볼 수 있는 특별출연(조연)이 있다. 이 배우는 물리적으로 긴 분량이 아님에도 강한 인상을 준다. 설경구 배우와 마찬가지로 최근 지지부진한 성적표에 비해 훨씬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조연을 맡은 허성태/염혜란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다. 허성태 배우는 내내 씁쓸한 영화의 분위기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극을 이끈다. 이 인물은 적당히 소시민스럽지만 그중에서도 정의로운 성격이 유달리 강한 인물이다. 이 배우가 필모그래피동안 선한 역을 맡은 적이 거의 없었다는 걸 기억해 보면 새로운 모습을 기다린 팬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이다. 반대로 염혜란 배우는 이번에도 어머니/아내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 배우는 <마스크걸>에서 보여준 광기 어린 모습과는 정반대의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이 캐릭터만 가질 수 있는 뭉클함을 화려한 방식이 아닌 덤덤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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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늙음에 대한 기록을 당신의 마음 속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공포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점점 인생의 속도가 빨라진다. 누군가는 인생의 속도가 10대 때는 10킬로미터, 20대 때는 20킬로미터, 30대 때는 30킬로미터로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나이 먹는 것 자체가 공포라기보단, 내 몸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운동을 안 해도 멀쩡했는데, 지금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군살이 빠지지 않는다. 전에는 하루 푹 잠만 자도 금방 회복되었는데, 이젠 영양제를 먹지 않으면 찌뿌둥한 몸이 풀리질 않는다. 아직까지 내가 느끼는 공포는 이 정도다.
순수한 시절은 한때에 불과하다. 젊음과 아름다움은 금방 사그라든다. 돈과 명예, 권력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렷했던 것들은 흐릿해지고, 확실했던 것마저 희미해진다. 우리는 그래서 죽음을, 늙어감을 두려워한다.
영화 [올드]는 이 두려움의 순간을 빨리 감기로 보여준다. 그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그 순간에는 아주 중요하고 느리게만 흘러갔던 시간들이,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희미해져 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일들은 나이를 먹고 많은 경험을 거치면서 사소한 일이 되어 버린다.
최근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이가 아파 치과에 갔는데 충치 치료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말을 빌리자면 '가슴이 철렁'했단다. 내가 내 몸의 온전한 책임자가 된다는 것, 어떤 모든 순간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 우린 매 순간 발목에 새로운 책임의 족쇄를 찬다. 지금은 이토록 무거운 것들이 언젠가는 별것 아닌, 발목에 달린 족쇄 중에선 가장 가벼운 족쇄가 되겠지.
감독은 이토록 부질없는 개별적 삶의 순간일지라도 인간이 어떤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삶은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와 손을 잡고 이 순간들을 마주할 것인지에 대한 나의 선택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어떻게 나이를 먹을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낼지'를 더 고민해 봐야 한다. 인간의 삶은 결국 어떠한 관계 속에서 태어나, 또 다른 관계 속에서 저무는 것이기에.
"그냥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근데 우린 시간이 없어."
시간은 우릴 기다리지 않는다. 저 혼자 멀리 앞서나갈 뿐이다. 모든 순간을 그저 과거를 돌아보는데 허비한다면 우린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인정하고 나아가는 태도야말로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든다. 그때야 비로소 우린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낀다.
누군가와 함께 늙어가는 것, 내 늙음을 누군가의 마음속에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나이를 '잘' 먹는 방법이라면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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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들 / The Dreamers
/ 간단한 줄거리 /
프랑스로 유학 온 미국인 유학생 영화광 매튜가 시네마 테크에서 이사벨,테오 남매를 만난다.
세 사람은 관심사도 같고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에 이끌려 급격히 친해지게 된다.
테오와 이사벨 남매의 부모님이 한달간 여행을 떠난 틈을 타
매튜는 그들과 함께 남매의 집에서 살게 된다.
같이 살면서 알게 된 남매의 특이한 관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그들의 행동.
그러나 결국 매튜 또한 그들의 행동과 생각에 물들게 되고,
서로 친구 이상의 정신적 육체적 교감을 하게 된다.
/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 /
영화의 분위기와 색감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스토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세 박자가 너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가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근데 이 영화의 매력은 딱 여기까지.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꼽는 영화여서
보기 전에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내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명작이라고
꼽을 만한 부분이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영화의 내용이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몇번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이게 뭐 아름다운 청춘(?) 사랑(?) 여름밤의 꿈(?) 정도로
바라볼 수 도 있지만.
나에게는 쫌 힘들었다.
그러나
내용은 쫌 비상식적이긴 해도
서로에게 퀴즈를 내며
중간 중간 다른 영화를 삽입하여 보여주는 편집방법은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들만의 퀴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관객도 그 퀴즈에 참여하는 한 사람이 되게끔 한달까.
그리고 중간중간에 테오와 매튜가 서로의 생각이 더 옳다며
주장할때도 나도 모르게 어떤 배우, 어떤 기타리스트가 더 나은지
혼자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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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 /
몽상가들
The Dreamers
왜 제목이 몽상가들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만의 해석이 나왔다.
몽상 :
[명사] 1. 꿈속의 생각. 2.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 또는 그 생각.
1-1. 비상식적인 그들의 관계와 행동들 자체가 결국
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점으로 보아
이 내용자체가 몽상이라는 것이다.
1-2. 1-1의 근거(?)라고 생각 되는 부분은
마지막 씬.
영화가 끝나고 제작진들의 이름이 올라갈때
뒷 배경은 점점 색을 잃고
마지막엔 흑백으로 물들어 있다.
흑백으로 바뀌어 버린 배경은
결국 이 또한 영화(몽상)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 몽상가들은 1960년대 배경으로 영화 중강중간 삽입 된 모든 영화들은 모두 흑백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 영화에서 결국 '몽상가들 또한 영화다' 라고 알려주는 근거로
흑백배경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
(그러므로 감독이 '이 또한 영화니까 비상식적인 내용에 대하여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지 마시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 테오와 이사벨.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만 옳다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라 했던 테오.
그러나 그는 사실 영화 내내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는 행동은 성숙하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언제나 테오에게 의지하고
집착하며 테오의 의견만 따르는 미성숙한 이사벨.
결국 자신의 이상향을 따라할 뿐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 한 그들은 몽상가들에 불과하다.
꿈꾸는것도 좋지만 언젠간 깨어나야해!
매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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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하게 나를 안아줄 날 위한 한마디
지난 10여 년간 서울에 집중된 산업 인프라에 제한받지 않고 전주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인으로 우직하게 개성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이어오며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수상을 통해 그 역량을 인정받은 최진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죽었을 뻔한 여자가 자기의 자아와 마주하면서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벗어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태어나길 잘했어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전주영상위원회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최진영 감독만의 독특한 개성과 메시지가 담긴 로컬 작품으로서, 주인공 춘희를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관객들을 향한 특별하고 따뜻한 위로를 담아내고 있죠. 더불어 2008년 ‘초감각 커플’로 데뷔한 이래 지난 많은 작품들을 거쳐 최근 ‘한강에게’에게서 인상적인 모습을 선사하며 독립·예술계 대세로 자리한 강진아 배우가 인정받은 연기력으로 주인공 춘희를 맡아 상처받은 개인이 치유되는 동화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의 간결한 색채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인지 상당히 쉽고, 재미있었으며 상냥하게 풀어가는 전개 방식 또한 마음을 편하게 해줘서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태어나길 잘했어 정보
저는 좀... 쩔어있어요...
‘봄에 태어난 기쁨’이라 부르고 싶었지만, 출생 신고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봄에 태어난 여자’라는 이름을 가진 춘희, 1997년 중학생 열다섯 그녀는 부모님과 집을 한꺼번에 잃는 사건을 겪고 홀로 살아남아 외삼촌 식구가 사는 집으로 오게 됩니다. 달갑게 여기는 이 하나 없고,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한 더부살이 다락방 인생은 그렇게 시작이 되죠. 이십여 년이 지나 외삼촌 식구들은 아파트를 얻어 이사했고, 그녀는 홀로 집에 남아 사촌 오빠의 식당에 마늘을 까서 팔며 생활을 이어갑니다. 한 푼 두 푼 모아온 돈으로 어릴 적부터 콤플렉스였던 다한증 수술을 하면 자신의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말이죠. 그러던 중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진짜 떨어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과거 중학교 시절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The Slug│감독·각본 : 최진영│출연진 : 강진아, 박혜진, 홍상표 외 │장르 : 드라마│상영 시간 : 100분│개봉일 : 2022년 4월 14일│국가 : 한국│등급 : 12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5.5, 왓챠피디아 3.1, IMDB 6.0│수상 내역 : 제16회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재능상)│시청 가능 서비스 : 현재 극장 상영 중(14일부터)
# 태어나길 잘했어, 어떤 이야기?
나를 온전히 구원하고 위로해 줄 사람은 나일뿐
작품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려는 최근 독립영화계의 흐름을 이어가듯 여성 주인공이 자신과 화해하고 긍정적인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오래된 가옥의 풍경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남매의 여름밤’처럼 관객에게 기분 좋은 토닥거림을 선사합니다. 그래서인지 과거 유명한 한 장면이 떠올려지는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대사는 조금 진부할지라도 거짓처럼 들리지 않고, 20년 전 자신을 끌어안아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신의 슬픔과 트라우마를 지워내며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강진아의 믿음직한 모습은 빛을 발합니다. 일반적이라기보단 엉뚱한 매력과 발랄함을 간직한 채 본인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물인지 모르는 춘희를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로 완성시켰다 볼 수 있죠. 더불어 이러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어린 시절 춘희를 맡은 박혜진과 사랑으로 다가오는 주황의 홍상표는 그녀 옆에서 큰 힘이 되는 존재가 되어줍니다.
아마도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닿는 것을 기피하는 다한증을 가진 춘희를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을 비유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고된 일상을 살아가며 끝까지 자신의 안식처를 지키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힘겹게 살아가지만 남들과 비교하며 내가 못난 것처럼 느끼며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가는 일반인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그녀는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용기를 얻으며 끝끝내 모두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끼며 겁먹었던 과거를 감싸 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과정이 극적이거나 주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진 않지만, 누구에게도 찾아올 법한 전환점을 담담하면서 조금은 유쾌하게 그려내주므로 꼭 빨리 가는 것이 정답이 아니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가는 삶도 충분하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죠.
사촌 오빠를 통해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몰리면서 울분을 터트리며 쌓아왔던 분노를 표출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한 번 더 밀어내지만 그것이 곧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안아주는 계기가 되어 스스로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결국 남들의 시선, 주변의 도움이 아니라 올곧이 본인을 소중히 안아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는 자신뿐이여 음 깨닫게 되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매체에서 나오는 잘 나가는 이들을 통해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현재의 세태를 어느 정도 투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못 났다고 생각한들 모두가 귀하게 태어나 누군가에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 걸 잊어먹었을 뿐이죠. 그렇게 영화는 우리가 잊었던 마음들을 춘희라는 인물을 통해 조금은 엉뚱하고 투박하지만, 그 바탕만은 다가온 봄처럼 따뜻하게 위로를 전달해 줍니다.
엔딩곡이에요 강진아 배우님이 부르셨어요 :) 가사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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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2022년 1월 1주 신작 영화
[WEEKEND CHOICE MOVIE] #왓챠#왓챠신작 #왓챠영화#왓챠2022
#브로드처치 #니시아적영요 #월광변주곡 #나의직장상사는코미디언 #러덜리스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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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올해 최고의 복합장르 가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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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10월 12일 개봉하는 작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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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삼식이 삼촌> 오프닝 예고편
"삼식이 삼촌이 누구야?" 모두가 찾던 그 이름 [삼식이 삼촌]이 5월 15일, 디즈니+에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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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테넷>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를 막기 위해 투입된 작전의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가진 닐(로버트 패틴슨)과 미술품 감정사이자 사토르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한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과 협력해 미래의 공격에 맞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