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usmesentez2025-05-01 17:10:19
사랑하니까 떠난다는 개소리
사랑의 귀납적 정리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사랑은 전칭명제로 규정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개별적인 사례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사랑은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며, 다만 '무엇도 사랑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신형철 - <정확한 사랑의 실험> 中
절대적이지 않으며 항상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귀납적으로 증명할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진정 사랑일까?'라는 당신의 고뇌에 절절한 사랑을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도, 시대의 사랑꾼으로 여겨지는 최수종 씨도 정답을 줄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이 사랑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사랑이라고 느끼면, 누가 뭐래도 그것은 사랑이 된다.) 천 만명이 사랑을 한다면, 천 만 가지의 사랑이 있다. 사랑을 노래하는 작품이 넘쳐나는 이유는 이러한 사랑의 귀납성과 맞닿아있을 것이다. 창작의 출발은 독창성이기에, 아무래도 사랑은 창작의 재료로써 제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늘 존재해왔다. 현대 통용되고 있는 사랑의 보편적 속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Otherness) - 사랑은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다. 타인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한다.
초월(Transcendence) - 사랑은 개인적 이익, 자기보존을 넘어선다.
배타(Exclusivity) - 사랑은 특정 대상을 향해 독점적으로 집중한다.
욕망(Desire) - 사랑은 갈망을 내포한다. 단순한 소유가 아닌, 존재 자체에 대한 갈망.
시간(Temporality) - 사랑은 순간적 열정(eros)일수도, 지속적 신뢰(agape)일 수도 있다.
윤리(Ethicality) - 사랑은 타인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윤리적 긴장을 동반한다.
취약(Vulnerability) - 사랑은 스스로를 드러내고 다치기 쉬운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러 속성 중에서도 다수가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배타성일 것이다. 사랑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다자 간의 사랑은 박애라고 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넌 내 꺼야.
배타성의 위반은 사랑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한다. 배타성은 사랑의 속성 중 그 어떤 것보다 엄격하게 도덕적 판단을 받는 경향이 있다(불륜은 관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복잡한 개념 속에서, 유일하게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간통이라는 죄목의 법적제재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이 더욱 명백해진다.
<헤어질 결심>은 배타성을 어긴 두 사람의 사랑을 다뤘다는 점에서 관객평이 극단으로 나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불륜 vs 절제를 통한 품겨있는 사랑'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영화 속 해준과 서래는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서로에게 끌렸다. 배신자의 비겁함을 애틋하게 포장해 미화한다는 입장과 선을 지키면서 감정에 솔직한 인간적인 이야기라는 입장의 충돌이다.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도덕적 판단과는 별개로 분명한 것은, 해준과 서래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점이다. 두 인물의 행태를 절대적으로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사랑을 명제화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그것도 사랑이었겠거니' 라며 이해해볼 뿐이다.

서래는 위 대사를 통해 사랑의 배타성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지만 논리적으로는 타당하게 들린다. 결혼은 사랑의 종착점으로 여겨진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을 함께한다는 숭고한 서약이다. 그렇다면 결혼한 사람의 삶에 더 이상 새로운 사랑은 없는 걸까? 설렘을 주는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수 있다. 사랑은 감정의 한 갈래이며, 감정은 늘 죽 끓듯 변덕스러운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 후에는 새로운 사랑이 '없어야 한다'는 당위에 더 가깝다고 말해야겠다. 마음이 피어나는 것을 사람의 의지로 막을 수는 없으므로. 그러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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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는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쓰레기같은 남자만 골라 결혼을 했다. 물리적으로라도 떼어내야 충동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더 우아한 방식이니까. 해준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일테니까. 해준은 깨끗한 사람이라서 늘 선을 지킨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잠복을 하고 창 너머로 살펴보고 중식 볶음밥을 해준다. 그것이 해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다.
살인과 피가 있어야 행복한 해준에게 서래는 영원히 피의자여야 한다. 그래야 깨끗하게 사랑할 수 있다. 해준은 서래를 끊임없이 의심해야한다. 그러면서도 붕괴되지 않기 위해 진실을 좇아야 한다. 서래는 끊임없이 무고를 증명해야한다. 감방에 들어가면 해준을 아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건이 종결되지 않기 위해 고의적으로 해결을 지연시켜야 한다. 두 사람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해준은 붕괴되지 않기 위해서, 서래는 감방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두 사람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사건이 미결되기를 바란다. 깨끗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수 살인사건이 해결되고 해준은 붕괴했다. 왜. 사건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또, 사건이 잘못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해결되므로써 해준은 서래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서래가 사무쳐서 해준은 괴롭다. 사건이 잘못 해결되므로써 해준은 품위를 잃었다. 여자에 미쳐서 직업윤리를 잊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를 만나서 고생했을까. 경찰에 신고를 하면 되었을 것을. 왜 경찰을 믿지 못해서 직접 사람을 죽이고 이 지경까지 왔는가. 해준은 여기서 멈춘다. 서래의 과오가 담긴 휴대전화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라고 말한다. 그래도 서래의 안녕을 바랐기 때문일까. 죄책감과 수치심에 몸부림치면서 지난날을 부정한다. 서래는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서래는 아직 '우리'의 일을 바다에 봉인할 생각이 없다.
서래는 해준 앞에 다시 나타났다. 새로운 쓰레기 남자와 함께. 그리고 그 남자를 또 죽인다(죽게 만든다). 해준은 서래에게 다그친다. 이러려고 이포에 왔느냐고. 해준은 복잡해진다. 왜 또 쓰레기같은 남자를 만났을까. 그 쓰레기 남자는 왜 또 내 관할구역에서 죽었을까. 나를 또 무너뜨리려고 이러는 걸까.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걸까. 서래는 비슷한 방식으로 무고를 증명한다. 해준은 더 엄격한 방식으로 서래를 의심한다. 이번에는 해준이 승리한다.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서래는 명백한 살인범이 됐다.
핸드폰 두 개가 해준에게 돌아온다. 하나는 서래의 과오가 담긴 것, 다른 하나는 해준의 사랑이 담긴 것. 해준은 서래를 지키기 위해 과오가 담긴 휴대전화를 바다 깊은 곳에 버리라고 했다. 서래는 해준을 지키기 위해 사랑이 담긴 휴대전화를 바다 깊은 곳에 버리라고 했다.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아무도 찾지 못하면 우리 둘 만 아는, 영원한 사랑이 될 테니까. 그리고 서래는 제 자신을 바다 깊은 곳에 묻는다. 자신이 몰고 온 모든 사건을 미결로 남기기 위해서. 해준에게 영원한 피의자로 남기 위해서. 더 이상 헤어질 결심을 할 필요가 없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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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사랑은 끝이 났고, 해준의 사랑이 끝났을 때 서래의 사랑이 시작됐다. 해준은 붕괴하면서 사랑을 남겼고, 서래는 그 붕괴를 단서삼아 사랑을 틔웠다. 다시 서래는 해준을 재건하고자 소멸을 택했고, 해준은 안개 속 영원한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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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은 영원하다. 어떤 사랑은 채 5분이 걸리지 않고, 어떤 사랑은 이어지지 않아서 아름답다.
사랑할 결심을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사랑을 완결하는 것은 죄가 된다. 결심은 미완이다. 아직 행해지지 않았으므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행동을 보장하지는 않으니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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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낯선 이모 ‘마키오’와 세상에 홀로 남은 조카
‘아사’가 함께 쌓아가는 서투르지만 특별한 동거를 그린 영화 <위국일기>가
10월 2일 개봉합니다.
<위국일기>는 일본 거장들이 선택한 명품 제작진들의 만남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드라이브 마이 카>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시노미야 히데토시 촬영감독,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의 음악감독 마사카츠 음악감독이
참여하며 더욱 탄탄한 작품성을 예고했습니다.
180만 부를 기록한 동명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위국일기>를 10월 2일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위국일기
Worlds Apart
개요: 드라마 | 일본 | 140분
감독: 세타 나츠키
주연: 아라가키 유이, 하야세 이코이, 카호, 세토 코지, 코미야마 리나
개봉: 22024.10.02.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조커: 폴리 아 되
Joker: Folie a Deux
개요: 범죄, 드라마, 뮤지컬 | 미국 | 138분
감독: 토드 필립스
주연: 호아킨 피닉스, 레이디 가가, 재지 비츠
개봉: 2024.10.01.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아캄에 수감된 조커와 할리 퀸의 운명적인 만남과 조커의 재판과정을 다룬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Love in the Big City
개요: 드라마 | 한국 | 118분
감독: 이언희
주연: 김고은, 노상현
개봉: 2024.10.01.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줄거리
시선을 싹쓸이하는 과감한 스타일과 남 눈치 보지 않는 거침없는 애티튜드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자유로운 영혼 재희. 그런 재희가 눈길은 가지만 특별히 흥미는 없던 흥수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누구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하필 재희에게 들켜버린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재희와 흥수는 알게 된다. 서로가 이상형일 수는 없지만 오직 둘만 이해할 수 있는 모먼트가 있다는 것을. 남들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하고, 재희와 흥수는 사랑도 인생도 나답게! 의기투합 동거 라이프를 시작하는데...
와일드 로봇
The Wild Robot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102분
감독: 크리스 샌더스
더빙: 루피타 뇽, 페드로 파스칼, 캐서린 오하라, 빌 나이, 키트 코너, 스테파니 수
개봉: 2024.10.01.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이 비행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우연한 사고로 거대한 야생에 불시착한 로봇 '로즈'는 주변 동물들의 행동을 배우며 낯선 환경 속에 적응해 가던 중, 사고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의 보호자가 된다. ‘로즈'는 입력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역할과 관계에 낯선 감정을 마주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남쪽으로 떠나야 하는 '브라이트빌'을 위해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이주를 위한 생존 기술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몸집이 작은 '브라이트빌'은 짧은 비행도 힘겨워 하는데... 로봇 '로즈'와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은 특별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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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완'이라는 장르
‘류승완’ 이라는 장르
솔직히 말해 ‘한국식 액션’ 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조직폭력배와 사기꾼, 정치 음모, 칼로 찌르는 장면이 난무하는 피가 튀는 액션을 보고 나면 기가 훅 –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작이 나오면 일단 보고 싶다는 기대감을 주는 감독이 있다. 류승완 감독이다.
류승완 감독 하면 '액션키드', '시네 키드'와 같은 말이 항상 붙어 다닌다. 초등학교 3학년때 <취권> 을 보고 태권도장을 다니고, 초등학교 때 시험지 빈칸에 알고 있는 영화 감독을 가나다 순으로 적을만큼 아주 어려서부터 영화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는 감독은 데뷔작을 연출하기 전까지 무려 2000여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며 방을 구하지 못해, 이삿짐과 함께 길에 나앉은 적도 있을 만큼 어렵게 살았다고 하는데 류승완은 소년 가장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그러던 와중 박찬욱 감독을 만나게 되며 처음 영화 현장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380만원 예산으로 찍은 단편 <패싸움>을 1부에, 한국 독립 단편 영화제 최우수상인 <현대인>을 3부에 놓고서 <악몽>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에피소드를 추가해 연결시켜 완성한 장편<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발표했다. 원래 장편 영화로 만들려고 각본을 완성하였으나 장편으로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이야기를 4개의 에피소드로 조각내어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 낸 것이다. 이 작품의 총 제작비는 제작비 약 6,500만원에 불과했는데,이 때까지 류승완은 생계를 유지하고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지하철 보수 공사 현장에서 일하거나 류승범과 함께 고구마장사를 하는 등 어렵게 생활 했다고 한다. 이 영화로 류승완 감독은 청룡영화상에서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
동생 류승범은 바로 이 영화로 데뷔했는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양아치 역'을 찾고 있었는데 집에 가보니 "양아치 한 명이 누워있어서” 캐스팅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류승완과 류승범을 직접 키운 친할머니는 배우와 감독이 된 두 사람을 향해 "왜 잘생긴 애가 감독을 하고, 못생긴 애가 배우를 하느냐"란 말을 했다고.
이후,<다찌마와 리> <피도 눈물도 없이><주먹이 운다><짝패>등 자신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만들어 오던 류승완은 2010년 개봉한 <부당거래>를 통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박수받는 작품을 남기게 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는 못봤어도 한번쯤 들어봤을 명대사가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한다. 개봉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영화 중의 하나다.
내가 류승완 감독 작품 중에 가장 애정하는 영화는 <부당거래> 이후 제작한 <베를린> 이다. 개봉 이후 7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류승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는 영화였다. 긴박함과 긴장된 연출 ,서늘한 공기까지 느껴지는 분위기, 그리고 화려한 액션신을 보며, ‘우리나라 영화도 이런 연출을 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 본인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베를린> 촬영 당시엔 54kg까지 체중이 빠졌다고 한다. 어느 날은 "머리 감을 시간도 없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삭발까지 감행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속편을 기다리고 있다. 베를린 2 제발)
이 후 “어이가 없네?” 라는 전 국민 유행어도 만들고, 류승완 감독에게 '천만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준 <베테랑>까지 큰 성공을 거두며, 류승완은 한국사회라는 소재를 잘 버무려 세련되게 연출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 되었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거다'라는 <짝패>의 대사처럼 묵묵히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하게 숙련공처럼 자신만의 길을 찾아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을 갈고 닦으며 진화 해온 류승완 감독이 새영화 ‘ 밀수’ 에서는 또 어떤 류승완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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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아씨들(2019)>, 조가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
작은아씨들(2019), 조가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작은 아씨들」은 일곱 번이나 영화화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2019년 「작은아씨들」의 네 자매들은 현대시대에 맞게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동시에 로맨스적인 부분들이 눈에 띄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나 로리가 조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생각된다. 조가 로리를 거절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조는 로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조는 원래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결혼을 하는 결말로 끝맺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상대는 로리가 아니었다. 젊고, 잘생기고, 돈 많은 로리와 정반대인 프리드리히를 선택한 것은 차선책이고 조가 얼마나 자신의 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로리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이유는 조가 사랑보다는 꿈을 중요시여겼고, 끊임없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실 로리와 조는 모두 고집이 세고 자유를 추구하며 감정적이라는 면에서 조와 비슷한 면이 많으며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낼만큼 잘 통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로리의 집안 부잣집이며, 로리의 할아버지는 아들과 딸을 모두 잃어 이제는 손자, 즉 로리 하나뿐이다. 만약 조가 로리의 고백을 받아들였다면 그 시대에 조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던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미 재산이 쌓여있는 집안에서 굳이 스스로 돈을 벌 필요조차 없어진다. 또한 로리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일, 조가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가문의 보호 아래에서 자란 로리는 자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인물이 되지 못한다.
반면에 프리드리히는 로리와 완전히 정반대의 인물이다. 프리드리히는 나이가 많았고 가난했으며 심지어 조의 글이 별로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조가 프리드리히를 사랑한 것은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조에게 독일어를 가르쳐 주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도 끝까지 조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조의 글에 대한 평가로 인해 화가 난 조에게도 먼저 다가갔다. 프리드리히는 심지어 자신의 옷을 스스로 기워 입는 사람이었다. 조의 인생에 그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내 몫은 내가 들게요, 프리드리히. 그리고 생계를 꾸리는 것도 도울게요. 그렇게 하기로 해요. 안 그럼 나 절대 안 갈 테니까.” 영화에서 떠나는 프리드리히를 잡고 그의 집을 나누어 들며 하는 말이다. 자기 몫은 자기가 들겠다는 조의 말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프리드리히와 조는 동등한 위치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나가며 서로의 꿈을 이뤄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가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조가 왜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길게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여성은 꿈과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여성의 처지는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아직도 여성들은 꿈과 사랑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를 선택하고 노력하는 우리 사회의 ‘조’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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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춥고 두려운 감정을 이겨 내게 하는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
푸른 빛의 작업복을 입고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는 공장에서 매트리스를 만들고, 퇴근 후 공장을 나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버건디 코트 깃을 여미며 자전거에 올라, 코 끝이 빨개진 채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어디론가 가는 주인공으로 시작되는 영화 <앵그리 애니> 영화 속에서는 오랜 시간을 지나 여러 계절을 지나가는데도, 이상하게 이번 겨울 코 끝이 싸하게 추운 기분이 들때면, 애니가 코트를 입고 자전거를 타던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춥고, 두려운 감정의 끝에 만나는 따뜻한 누군가의 기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추위를 함께 이겨내는 작은 빛이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혼하면 아이는 셋을 낳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결혼 7년차에 첫째를 낳고 4살 터울로 마흔 넘어 둘째를 낳고 나니,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예민함과 넘치는 에너지를 둘 다 소유한 둘째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노산의 엄마를 끝까지 몰아붙였다. 농담 삼아 둘째가 첫째였다면, 나는 둘째를 낳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란 말을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던 그즈음 생리가 늦어지면 겁이 덜컥 나곤 했다.
‘셋째가 생기면 어쩌지.’
아이를 원해 결혼 후 5년 넘게 애태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진 걸까? 그때보다 나는 오히려 아이라는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더 사랑을 품게 되었는데…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구나. 죄책감과 혼란스러움이 함께 찾아왔던 경험이 있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 임신과 임신 중단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순간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애니는 1974년 프랑스 교외의 한 작은 마을, 매트리스 공장에서 일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몸에 밴 익숙한 손으로 바느질을 해 매트리스를 만든다. 그녀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어느 밤 자전거를 타고 한 서점을 찾아간다. 서점 한쪽 커튼을 젖히면 작은 공간이 나오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사람들의 안내로 모임이 진행된다.
당시 프랑스에서 임신 중단은 불법이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 중단을 결정한 여성들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뜨개질바늘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잘한다는 아주머니’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애니가 찾아간 곳은 MLCA(임신 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의 활동을 하는 곳으로, 의료진과 함께 안전하게 무료로 임신 중단을 할 수 있게 하는 단체다.
이들은 몸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수술 전 한 번 더 만나 수술 도구를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며 수술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은유나, 어떤 상징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영화적인 어떤 환상 같은 것은 없다. 마치 관객들도 알아야 한다는 듯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하나씩 천천히 과정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이제 애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함께 알아간다.
설명의 과정만큼이나 수술의 과정 역시 거의 리얼타임에 가깝게 상세히 묘사한다. 수술대 위에 오르는 애니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함께 숨을 고르고 노래를 불러준다. 편안한 선율의 노래를 부르는 눈을 마주치며, 애니는 손을 잡고 두려움의 시간을 함께 지나간다. 애니에겐 출산 경험 보다 더 편안했던 순간이 되었다.
고마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를 함께 키우던 옆집 친구가 임신을 중단하기 위한 비전문가의 시술 중 사망하게 되면서, 애니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MLCA(임신 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누군가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 어쩌면 그 누군가가 애니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렇게 애니는 따뜻한 커피를 만들고, 두려움으로 찾아온 또 다른 자신의 손을 잡아준다.
임신 중단을 선택하는 사람의 사연은 다양하다. 낳고 싶지만, 남자친구가 안된다고 해서, 25살에 이미 다섯 아이를 낳아서, 이제는 더 이상 낳을 수가 없어서, 그리고 17살의 소녀까지. 두려움에 떨거나, 죄책감에 울부짖는 사람들. 임신을 중단하게 된다는 것은 영화 속 많은 여성에게, 두려움과 죄책감과 그리고 때때로 불쾌함과 고통이 뒤섞인 감정을 준다. 각자의 격동적인 감정을 애니와 활동가들은 가만히 안아준다.
“괜찮아. 내가 곁에 있어 줄게. 걱정되는 게 당연한 거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영화는 이런 사람들에게 임신 중단에 대해 논쟁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누구를 비난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눈맞춤과 다정한 말,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라고, 옆에서 함께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은 달라져야 하기에’ 다정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손을 잡아주는 애니를 보며, 이러한 연대는 그 어떠한 것보다 따스한 위로가 되어, ‘낙태’ 라는 엄청난 경험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그 마음을 전해 받은 내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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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랑하는 무대의 표리 <아네트>, 2021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에는 주로 감독과 전작을 다룹니다. 2부부터 보셔도 됩니다.
<1부-레오 카락스>
우린 누구였나? 누구였나?
과거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우린 어떤 모습일까
다른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그때 그 느낌이 느껴져
묘한 그 감정…
아이가 하나 있었네
아주 어린아이가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어
아이의 이름도 불렀고
그런데 그 아이는…
우린 떠나야만 했지
아주 멀리 헤어져야 했어
연인들은 흉한 모습으로 변했고
서로 멀어지기를 바랐지
새로운 시작
죽은 자는 떠나고
산 자는 살아가지
우린 누구였나? 우린 누구였나?
과거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우린 어떤 모습일까
다른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새로운 시작
죽은 자는 떠나고 산 자는 살아가지
-영화 <홀리 모터스, 2012> 노래 중,
까락스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고 그의 전 여자친구는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창조하는 창작자이다. 그들이 만든 아이는 바로 그들이 만든 예술품이다. 노래가 아이의 죽음을 암시하듯 아이의 죽음은 완성되지 못한 예술품의 끝이지만 <아네트>는 ‘아네트'를 통해 그 연장선을 보여준다. 또한, ‘안'은 까락스의 전 여자친구 ‘예카테리나 고루베'의 은유로 비춰진다. 고루베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다가 2011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다. ‘아네트'는 <홀리 모터스>의 노래에 연이어 연장선을 떠올려볼 수 있다.
2013년 국내 개봉한 <홀리 모터스> 이후 8년 만의 영화다. 그 전작 <폴라 X>가 13년 만에 연출한 작품임을 유념할 때 이번에도 감독은 꽤나 긴 공백기를 가지고 작품을 선보였다. <폴라 X>와 <홀리 모터스>로 감독이 영화에 있어서 아날로그 필름의 20세기와 디지털 시네마가 된 21세기의 급변하는 세상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보였다. 이 당시 스스로 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였다고 말한 감독의 고뇌가 돋보이는 작품이 전작 <홀리 모터스>였다. 기술뿐만 아니라 이전까지의 영화들과도 달랐다.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부터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폴라 X>까지 주로 청춘남녀들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 한, 내러티브를 중심의 20세기 필름 영화에서 21세기 디지털 영화 <홀리 모터스>, <아네트>는 레오 까락스의 새로운 방향인 셈이다. 영화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관한 감독의 성찰이 담긴 <홀리 모터스>가 ‘영화에 대한 영화'라면, <아네트>에서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까락스 본인이 잠에서 깨어나 침실에서 걸어 나와 벽을 부수고 들어간 극장에서 시작했다면, <아네트>는 길 위의 소리(음파)와 함께 사운드를 조정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영화에 대한 영화를 시작하겠다고 열었던 <홀리 모터스>와 음악을 조율하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지는 첫 장면으로 시작한다.
<2부-아네트>
내가 그녀한테 반한 건 분명한데
그녀가 내게 반한 건
그건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네트>는 유능하고 인기 있는 할리우드의 한 예술가 커플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는 유명 오페라 가수 안에게 분명하게 반해 연애를 하면서도 안이 자신을 만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의아해한다. 그럼에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이 커플은 아네트라는 딸을 가지게 되지만, 그로 인해 둘의 생활에 균열의 시작임은 미처 알지 못한 터였다. 갈등을 좁히고자 가진 요트 여행에선 앞을 볼 수 없는 거친 파도 앞에, 한 예술가 커플의 연애 스토리는 신이 만든 인간이라는 유인원의 열등감과 욕망을 드러내는 군상으로 변모한다.
오늘 쇼 어땠냐는 질문에 헨리는 ‘관객들을 죽여줬지’라고, 안은 ‘난 그들을 구해줬어'라고 말한다. 헨리는 무대에서 관객들을 ‘죽이기'위해 때로는 죽는 시늉도 한다. 하지만 무대에서의 총을 맞는 연기를 해도 그 죽음은 웃음거리가 된다. 이를 보여주는 감독의 시선조차 아무도 없는 무대에 헨리 혼자 덩그러니 놓여 초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안의 죽음은 조명받는 무대 위 숭고한 행위로 모두를 감동시킨다. 같은 ‘무대’라는 곳에 서서 관객들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거나 발화를 하지만, 일제히 무대를 보고만 있는 제의적 형식의 오페라 관객들과 다르게 헨리의 관객들은 때로는 노래를 주고받으며 즉각적인 리액션으로 소통하는 형식이다. 본인들의 죽음으로 관객을 죽여주는 헨리와 관객을 구원하는 안의 무대는 같은 역할임에도 분명히 달랐다. 사람은 누구나 개별적인 제각기 다른 존재임에도 헨리에게 이러한 괴리는 열등감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오토바이에 안을 태우고 멋지게 질주하던 헨리의 모습은 어느새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뀐다. 분명한 건 안은 그런 헨리에게 불안함 또는 불만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헨리는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안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찾고자 했던 헨리는 그 인정의 욕구를 본인이 아닌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욕망은 결국 헨리를 높이는 것이 아닌 안을 추락시키려는 잘못된 목적지에 닿는다. 여기서 정신 차리지 못하고 아네트의 능력을 보자마자 ‘아동착취'라는 문제 제기에도 자신의 어린 딸을 관객 앞에 세우는 파렴치한 인간이 된다. 점점 더 자기 파멸적인 행동에 이르게 된 헨리는, 아네트를 함께 이용하는 동업자였던 지휘자마저 한 여자를 두고 경쟁자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를 제거한다. 지휘자를 죽인 후에는 범인으로 검거가 되는 ‘벌’을 받지만 안을 죽인 죗값은 없으며 아네트를 착취한 벌은 아네트로부터의 ‘외면’이다. 하지만 이미 ‘사랑'을 모르는 자에게 사랑하는 이로부터의 버려짐이 과연 얼마나 큰 벌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사과를 먹는 안을 보고 있자면 백설공주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안의 욕망과 생각은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 온전히 헨리의 입장에서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차 안에서 불타는 산에 대한 속보를 보다가 잠들었을 때 현실인지 꿈인지 불명확한 장면들 속에 과거 구설수에 오른 헨리로 인해 염려하는 안의 모습은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면에 대해 안이 죽은 후 지휘자에게 아네트를 맡기고 나갔던 헨리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더 많은 감각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종종 등장하는 연예 뉴스 장면 또한 이들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거리로 만든다. 죽든 말든 뭘 하든 소비되며 인기를 등에 업고 소위 신분 상승을 노리는 예술의 위치, 예술가에 대한 가십, 연인에 대한 의심, 현실과 맞닿은 문제들을 음악이라는 레오 카락스의 무대를 통해 보여준다.
‘신의 유인원'이란 결국 신이 만든 찌질하고 나약한 인간을 보여준다. 왜 자신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 열등감, 본인을 의심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를 의심하던 남성은 결국 몰락한다. 과연 헨리는 한 남편으로서 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일까 헨리라는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의 인트로 곡 So may we star는 마치 감독이 ‘이 현실을 보여줘도 되는 걸까요’라며 묻는 것 같다. 남성의 성장과 깨달음에는 여성 혹은 아이라는 약자의 존재가 언제까지 필요할지 모르겠다. 신의 유인원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엔 효과적이지만 다음 세대의 감독들에게는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능력을 기대해보고 싶다. 그럼에도 어떤 삶에 대한 교훈이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보여주는 감독의 매력이 잘 드러난 것은 분명한 작품이다. 무대를 마주하는 관객,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로서 고민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작품이다.
*사진출처 하이, 스트레인저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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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망진창이어도 괜찮아
당신의 마지막 마블 영화가 무엇인가? 대부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끝으로 마블과 작별했을 것이다. 워낙 많은 팬들이 타노스를 이기는 결말을 보기 위해 달려왔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이후 등장한 마블 작품들이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두 번째 이유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그래도 십 년을 마블 팬으로 살아온 시간이 있으니 한 번에 포기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나오는 영화마다 굳이 감상하며 불만만 쌓여가고 있을 때쯤 마블의 마지막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 영화가 개봉했으니 그게 바로 <썬더볼츠*>다.
물론 <썬더볼츠*> 역시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초기 마블 영화의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보면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꽤 많은데 이들을 모두 알아보려면 섭렵해야 하는 영화와 드라마도 많아 마블 입문자들은 물론, 엔드게임 이후 탈주한 팬들 역시 가볍게 접근하긴 쉽지 않다. 아마 나 역시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마블과 작별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마블의 마지막 희망이라 부르려는 이유를 몇 가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마블을 사랑했던 한 팬의 (구구절절하게 작성한) 부치지 않을 편지라고 생각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1. 매력적인 캐릭터의 조합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이렇다. 블랙 위도우의 뒤를 잇는 나타샤의 동생 '옐레나', 윈터 솔저 '버키', 전 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 러시아 슈퍼솔저 '레드 가디언', 앤트맨에서 빌런으로 등장했던 '고스트', 정체불명의 존재 '밥'까지 총 6명이다. 태스크 마스크는 등장하자마자 퇴장하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이 6명의 조합은 도무지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각양각색의 조연들이다. 주연 급이라곤 그나마 마블 영화에 다수 출연해 이름 정도는 알려진 윈터 솔저뿐이다. 특출난 인물이 없어서일까? 이들의 시너지는 생각보다 괜찮은 맛을 만들어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만났지만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손을 잡기도 하는 그야말로 생존 우선주의 인물들이다. 틱틱 대면서도 기꺼이 서로의 등을 맞대고 싸우는 익숙한 모습에 옛 마블의 향수가 가끔 아른거리기도 한다. 이처럼 잘 만든 조연들, 열 주연 안 부럽다! (티켓 파워가 적은 건 슬프긴 해도 말이죠.)
2. 완벽한 영웅은 이제 없다
안타깝지만 이젠 완벽한 영웅은 나오기 힘들다. 왜냐하면 아무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제작자도, 팬들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은 엄청 착하거나 나쁜 놈도 아니고, 범접할 수 없는 초능력을 가진 이도 아닌 우리와 같은 평범함을 가진 이다. 마블 세계관 속에서도 블립 이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서로에 대한 갈등이 높아진 설정을 사용하고 있다. 영화 밖에서만 봐도 참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 역시 코로나로 인해 우울감이 높아졌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텅 빈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마블도 새로운 영웅 하나를 만들어 냈다. 바로 슈퍼맨처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졌지만 멘탈이 약한 인물 '밥'이 그리는 '센트리'와 '보이드' 캐릭터다.
영화 속 보이드의 능력은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강력하다. 사람을 그림자 형태로 만들어 각자의 고통이 담긴 공간(셰임룸)으로 보내버리는 능력을 가졌다. 영화 속에서는 옐레나의 레드룸과 밥의 다락방이 나왔지만 윈터 솔저의 공간이 나왔다면 더욱 끔찍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이드가 폭주해 모두를 가둬버리기 전, 썬더볼츠*는 합심해 그를 제어한다. 평생 누군가를 죽이거나 고통을 주었던 이들이 정반대의 방법을 통해 모두를 구출해낸다. 실은 모두가 누군가가 자길 멈춰주길 바랐기 때문일 테고, 결국 그들은 밥을 보이드로부터 구해내면서 그들 스스로도 구원받았다. 오늘날의 영웅은 이처럼 과거를 받아들이고 다시 나아가는 이들로 다시금 탄생했다.
3. 어벤져스를 놓지 못하는 자는 누구인가
<썬더볼츠*> 제목 뒤의 *의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는 애스터 리스트(asterisk)로, 표시나 수정이 필요한 단어에 붙는다. 그리고 나는 발렌티나의 '뉴 어벤저스' 소리를 듣자마자 마블과의 영원한 작별을 선언했다.
이미 팬들 입장에서는 엔드게임 이후 어벤져스는 끝났다. 잘 보냈다고는 말 못 해도 어벤져스는 누군가가 대체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모아놓고 '뉴'어벤저스 명칭을 붙인다 한들 누가 인정이나 할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영화에서도 어벤져스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썬더볼츠는 썬더볼츠로 남겨놓고, 어벤져스는 어벤져스로 남겨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건 마블을 보면 뼈저리게 알 수 있다. 이젠 수습할 수도 없는 방대한 마블 세계관 속에서 그들도 언젠가 그들만의 길을 찾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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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티 토르와 다시 돌아온 토르! 마블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Rabbitgumi 입니다!
토르의 새로운 단독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번에 4번째 토르 단독 영화인데요.
1편과 2편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평가를 받았던 시리즈지만,
3편에서 타이카 와이키키 감독이 연출하면서 재치 넘치는 영화로 재탄생했죠.
4편도 같은 감독이 연출해서 그 분위기는 유지됩니다.
그럼 과연 이게 효과적으로 마블에 안착했을까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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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마블이 나아가는 다양성, 그리고 차별? (페이즈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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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29 마블과 여성
02:19 흑인, 그리고 소수자
04:17 짤막한 마블쟁이 생각
2021. 01. 04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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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챌린저스> 1차 예고편
코트 위 승리를 향한 집념, 치명적 끌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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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1차 예고편
올가을, 팀 버튼 표 호러 판타지가 돌아온다? [비틀쥬스 비틀쥬스] 1차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