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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5-05-05 08:25:55

[JEONJU IFF 데일리] 소재주의와 신파를 넘어 ‘서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퀴어 영화

영화 〈3670〉 리뷰

브런치 글 이미지 1

 

 

photo by 민드레photo by 민드레

 


3670

 

박준호/Korea/2025/124min/DCP/Color/Fiction/15세 이상 관람가/Asian Premiere/‘한국경쟁’ 섹션     

 

 

 

시놉시스

 

친형제 같은 탈북자 친구들이 있지만 게이 정체성을 꽁꽁 숨기고 사느라 외로움을 느끼던 탈북청년 철준, 난생 처음으로 용기를 내 남한 게이 커뮤니티에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술번개에서 만난 동네 친구 영준의 도움으로 빠르게 게이 커뮤니티에 적응하게 되는 철준. 하지만 작은 사소한 오해 하나가 관계망에 균열을 일으키며, 철준이 애정을 쏟아온 공동체를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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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 게이 철준은 양쪽 모두에서 외롭다. 탈북민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지 못하고,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탈북민 정체성이 자극적으로만 소비되기 일쑤다. 탈북민, 게이 커뮤니티 모두 규범적 사회 바깥에서 소수자들끼리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곳이지만, 정작 두 정체성 모두를 가진 철준은 그 어디에서도 오롯이 편안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3670〉은 두 커뮤니티의 거리감 혹은 중첩을 다루는 영화인 동시에, 소수자의 자기 서사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두 커뮤니티 사이를 오가는 철준의 발걸음을 통속적 드라마의 문법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그 대신 소수자와 서사의 문제를 파고들어 소수자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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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 철준이 말하길 장려받는 서사가 있다. 교회에서 장학금을 받는 그는 자신이 얼마나 간절하게 ‘자유’를 갈망해왔는지, 그 자유를 위해 어떤 고비를 넘겼는지, 마침내 남한테 도달했을 때 얼마나 큰 환희를 느꼈는지, 이 모든 걸 가능케 한 하나님께 얼마나 크게 감사하는지를 말한다. 이 서사를 말하면 철준은 박수를 받고, 돈을 받는다. 철준이 북한에서 다른 남자와 섹스한 이야기, 남한에서 성소수자로서 누리는 ‘자유’에 관해 말했더라도 박수와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남한 사회는 특정한 종류의 탈북민 서사만 허용하고 그것만을 온정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남한을 불편하게 하는 탈북민의 서사는 이야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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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자기 서사를 박탈당한 철준은 게이 서사를 통해 빼앗긴 서사의 주권을 되찾는다. 철준은 대학 입학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무것도 써내지 못한다. 철준은 자신이 만들어온 고유한 삶의 서사를 갖고 있지만, 남한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을 벗어나는 자기 이야기를 할 줄은 모른다. 철준의 게이 친구 영준은 ‘비어 있는’ 철준의 서사를 채워주는 존재다. 우정과 사랑을 오가는 두 사람 사이의 높은 감정 밀도, 그리고 영준의 직접적인 도움을 통해 철준은 빈칸이던 자기소개서를 채우고 대학에 합격한다. 영화가 탈북민과 게이라는 소재주의적 혐의, 신파 드라마의 혐의를 벗고 관계성에 토대를 둔 소수자의 자기/집단 서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퀴어 영화로 거듭나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아이러니한 건, 철준에게 ‘자기 서사’의 가능성을 일깨워준 영준이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취업 전선에 뛰어든 영준은 매번 서류 단계에서 탈락한다. 어느 날 철준이 도움을 주겠다며 들여다본 그의 노트북 자기소개서 파일은 텅 비어 있다. 영준은 사랑스러운 매력을 가졌다. 하지만 자신이 못생기고 매력이 없다는 깊은 자기혐오 때문에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철준이 남한 사회, 게이 커뮤니티에 안착하도록 도움을 준 영준이었으나 그 자신 역시 남한 사회(취업), 게이 커뮤니티(인기 없음)에 제대로 발 디디고 서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젠 철준이 영준의 서사를 채워 개인의 서사를 두 사람의 서사로, 나아가 집단의 서사로 만들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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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철준과 영준의 이야기를 완결하여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일단은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서로의 서사에 관여하며 자기/집단 서사를 써나갈 것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3670〉은 ‘행복’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서사 만들기의 정치적 가능성과 그곳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감정의 잔상이 매우 인상적인 영화다.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7’시에 만난/만날 친구들의 얼굴이 가만히 생각나는, 그런 영화 말이다.      

 

 

 

    

 

상영 스케줄

 

2025.05.01.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7:00(상영코드: 153)

 

2025.05.04.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0:00(상영코드: 413)

 

2025.05.06.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7:00(상영코드: 649)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2025.04.30 ~ 05.09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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