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rewr2025-05-06 09:24:58

[JEONJU IFF 데일리] 게이 베어 커뮤니티에 강림한 뚱뚱한 천사 이야기

영화 〈아기 천사〉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기 천사(Cherub)

 

데빈 시어스/Canada/2024/73min/DCP/Color/Fiction/12세 이상 관람가/Asian Premiere     

 

 

 

시놉시스

 

하비에 대한 인물 탐구 보고서. 이성애자이자 비만 남성인 그는 ‘덩치 큰 남자들과 그들을 흠모하는 사람들'을 위한 게이 잡지에 자신의 사진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

 

 

브런치 글 이미지 2

 

 

 

  이 기이하게 사랑스러운 영화는 시선과 욕망의 관계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자, 게이 베어 커뮤니티에 강림한 천사에 관한 이야기다. 이성애자 남성인 하비는 뚱뚱하다. 그것도 많이. 그래서일까. 하비는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지 않는다. 하비는 늘 남들이 다른 누군가를 은밀한 시선으로 욕망하는 걸 지켜보는 쪽이다. 결핍 때문일까. 보는 행위, 보여지는 행위를 매개로 한 욕망의 순환이야말로 하비가 갈망하는 것이다. 하비는 안경을 쓴다. 그는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기를 즐긴다. 그의 직업은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하비의 일상은 온통 보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하비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하비를 외롭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하비는 혼자 들른 성인물 가게에서 〈커룹 Cherub〉*이란 잡지를 ‘본다’. 그러고는 충격에 빠진다. 잡지는 온통 자신과 같은 체형의 남자의 사진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벗은 몸이었고, 표정은 당신들의 ‘시선을 즐긴다’는 듯이 도발적이었다. 하비의 숨이 가빠진다. 수치심과 흥분이 중첩된다. 하비는 〈커룹〉을 몰래 가방에 넣고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온다. 하비는 집에서 다시 〈커룹〉을 펼쳐‘본다’. 세 단계로 밝기 조절이 가능한 스탠드 불빛을 가장 희미하게 맞춰놓고서. 하비는 이 기이한 잡지가 여전히 조금은 수치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잡지에서 자신에게도 남들의 시선이 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이는 누구보다 시선의 감각에 민감한 하비가 생애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능성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영화에는 시각과 욕망의 얽힘에 관한 무수히 많은 이미지가 있다. 하비가 누군가를 응시하고 관음하는 장면이 많다. 〈커룹〉은 마침내 하비가 그 시선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계기가 되어준다. 꺼진 TV 화면과 거울에 하비의 몸이 비친다. 그전에는 감추고 싶기만 했던 몸이 시선의 굴절을 거치자 새롭게 보인다. 하비의 몸이 누군가 관음할 만한, 욕망할 만한 몸이 된다. 심지어 얼굴 모를 익명의 대중에게까지 말이다. 이름 모를 추종자가 보낸 하비 몸의 형상을 본뜬 화병花甁을 보고 마침내 웃음 짓는 하비는 이렇게 베어 커뮤니티의 새로운 스타로 하림下臨한다. 수치심과 자기혐오의 렌즈로 인해 늘 시선을 매개한 욕망 경제의 바깥에 자리할 수밖에 없었던 하비의 몸이 지금껏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욕망 경제의 한가운데로 진입하는 것이다.     

 

 

 

  한편, 영화 말미에는 하비가 자신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어느 베어 남성을 따라가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가고, 하비는 그곳에서 자신의 이성애 욕망을 넘어 새로운 욕망의 영토에 ‘발을 내디딘다’(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공중 화장실이 게이들의 성적 하위문화에서 갖는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이 장면은 하비가 단순히 베어 커뮤니티를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그 하위문화의 일원이 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즉, 그의 욕망을 퀴어적으로 새로이 정립할 가능성이 샘솟는다. 이 영화가 시선과 욕망의 관계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자 게이 베어 커뮤니티에 강림한 천사에 관한 이야기인 이유다.     

 

 

 

브런치 글 이미지 4브런치 글 이미지 5

 

 

 

  대사 없이 전개되는 이 조용한 영화는 관객이 보는 행위라는 시각적 감각에 몰입하게끔 한다. 하비가 베어 커뮤니티에서 욕망의 가시성을 확보하는 과정은 몇 번의 축일祝日과 함께 전개되는데, 이는 영화 마지막의 환하고 성스러운 이미지와 결합해 그를 온전한 ‘천사’로 승격시킨다. 이 신성함은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하비의 내적 환희이자 소수자 하위문화와 커뮤니티가 어떤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거룩한, 그래서 종교적인 감정을 촉발한다.     

 

 

 

  감독은 GV에서 자신이 베어 커뮤니티의 자장 안에서 성장했음을 밝혔다. 나아가 정체성과 외모, 인터넷 문화가 복잡하게 얽힌 시대에 커뮤니티 없는 사람이 갖는 외로움과 고독을 하비라는 인물을 통해 표현해보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정치적으로 첨예하고 또한 동시에 다정한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너끈히 초과해 퀴어 욕망과 하위문화, 이미지에 관한 기억할 만한 영화가 되었다. 석사 졸업 작품으로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가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진출한 것마저 ‘영화’같은 작품이다.     

 

 

 

 

 

*〈더 팻 에인절스 타임스 The Fat Angel Times〉란 잡지에서 모티프를 얻은 잡지라고 한다.          

 

 

 

상영 스케줄     

 

2025.05.02 CGV 전주고사 7관 18:00(상영코드: 248)

 

2025.05.05 CGV 전주고사 7관 18:00(상영코드: 544)

 

2025.05.08 CGV 전주고사 7관 18:00(상영코드: 825)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2025.04.30~05.09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452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