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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비됴2025-05-11 19:50:23

무심(無心)하게 성의(誠意) 있게!

<승부> 리뷰

바둑을 몰라도 조훈현, 이창호의 이름은 안다. 두 국수, 아니 두 천재는 기원 단골 어르신만 아는 아이돌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들은 바둑판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오로지 돌 하나로 싸우는 정중동의 파이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대결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승부>는 이들의 대결에 집중하면서 바둑이란 스포츠의 매력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인생에서도 빗어지는 승부의 세계의 잔혹함, 그리고 이를 딛고 일어서서 진일보하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것도 무심하게 성의 있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훈현(이병헌)은 우연히 당돌한 천재 소년 이창호(김강훈)의 재능을 보고 집으로 들여 제자로 키운다. 창호는 훈현과 함께 생활하면서 바둑을 연마하고, 승부의 세계가 얼마나 냉정한 것인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풍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자신만의 것을 창조한 어른 창호(유아인)는 국내 대회에서 결승전에서 스승인 훈현과 격돌한다. 그리고 스승에게 패배를 안긴다.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이나 다름없는 훈현은 그 이후 승부의 세계가 냉혹하다는 걸 재차 깨닫고, 자기 삶이 크게 흔들린다. 

 

 

<승부>는 실존하는 전설적인 두 바둑기사 전투의 신 조훈현, 계산의 신 이창호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해 만든 영화다. 실제 한 집에서 생활하며 사제지간으로서 지냈던 일들은 물론, 스승이 제자에게 패하는 이야기, 서로 다른 바둑 스타일 등 주요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극적 전개를 위해 픽션을 가미했는데, 영화가 집중적으로 다룬 건 묘한 이들의 관계다. 

 

 

 

 

 

 

한솥밥을 먹는 사이로서 사제지간이면서 부자지간처럼 보이는 이들은 바둑판이란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와 패자가 된다. 제자에게 진 스승(또는 아들에게 진 아버지), 스승을 이긴 제자(또는 아버지를 이긴 아들)는 그 자체로 누구에게나 환호와 위로를 건넬 수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은 이 관계를 뒤흔드는 건 바로 승부, 다시 말해 승부가 가진 냉혹함이다. 

 

 

오롯이 바둑판에서는 승자와 패자만 있고, 이 부분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감독은 바둑판에 놓인 돌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이 둘의 관계와 감정선을 잘 잡아 천재 혹은 승부사라 불리는 이들 또한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말이 청출어람이지, 제자에게 지는 스승의 마음은 뭉그러질 터. “상대가 누구든 이기는 게 프로의 의무야”라고 말하는 그지만, 자신이 세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지만, 그 허망함과 공허함을 내색할 수 없는 그 순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인물이 한 발짝 다가가게 만든다. 그리고 바닥까지 떨어진 그가 재기에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영화는 둘의 이야기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조훈현의 이야기에 포커싱을 맞춘다. 인생에 있어 최정상에 있다 고꾸라진 한 남자가 절치부심해 다시 정상을 노린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데, 그 주체가 조훈현이라는 점을 부각한 영화는 그 재미를 더한다. 특히 과거 자신의 스승에게 받은 바둑판에 쓰인 ‘바둑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글귀를 보며 마음을 다잡고, 도전자로서 이창호와 결승에 나서는 모습은 뭉클함을 전한다. 자신이 가둔 그 격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는 인생이란 싸움터에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아는 이들이라면 한 수 한 수 격하게 다가온다. 

 

 

이런 영화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이병헌, 유아인의 연기다. 실존 인물과 비교해 봤을 때 이들의 얼굴 생김새와 모습은 그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은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 조훈현과 이창호로 보인다. 그 자체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배우들이 이 역할을 어떻게 접근했는지 모르겠지만, 관객으로서 이들의 연기는 무심(無心)하게 성의(誠意) 있게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무심(마음을 비우고), 성의(정성스러운 자세)는 영화 결말부에 두 인물이 대국을 앞두고 말하는 마음가짐인데, 배우들도 마음을 비우고 정성스러운 자세로 캐릭터를 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메시지가 오롯이 배우에 가닿았다고나 할까. 이런 점에서 영화의 핵심과 배우들의 연기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김형주 감독은 “바둑들 모르는 분들도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없어야 한다는 토대 위에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를 실천하듯 영화는 바둑을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더불어 바둑이 정적인 스포츠라는 약점을 메우기 위해 바둑돌을 놓는 손이나 바둑돌이 금이 가는 모습, 정적을 깨는 동적인 요소를 잘 활용하면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점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우린 아직 미생이라 말했던 <미생>처럼 <승부> 또한 바둑을 통한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마음에 든다면 미생이자 답을 찾지 못한 이들일 공산이 크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극 중 조훈현은 바둑을 이렇게 말한다.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둑이다”. 어쩌면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오늘도 무심하게 성의 있게 인생을 살아간다. 

 

 

 

사진 제공: 바이포엠스튜디오

 

 

 

평점: 3.5 / 5.0
한줄평: 바둑을 보며, 인생을 두다! 

 

작성자 . 또또비됴

출처 . https://blog.naver.com/anqlepdl/223861893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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