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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your bunny2021-12-27 18:50:30

<노웨어 스페셜>,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아빠의 편지

공기 속에서, 햇살 속에서, 빗속에서 항상 아들을 지켜볼 것을 약속하며 건네는 아빠의 이별편지

 

 

 

영화에 대한 내 소감부터 말하자면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울었다.

영화 속에 담긴 현실과, 이를 마주한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울었다.

하도 많이 울고, 감정소비를 심하게 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의 여운을 즐기지도 못하고, 슬픈 감정을 추스르느라 바빴다.

'눈빛'만으로도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대사를 전달하고, 행동을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는 배우가 있다.

<노웨어 스페셜>의 주인공 '존' 역할을 맡은 제임스 노턴이 내겐 그런 배우로 다가왔다.

눈앞에 닥친, 그리고 곧 다가올 현실을 바라보는 제임스 노턴의 눈빛과 표정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렸다.

영화는 암에 걸려 살 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청소부 '존'과 그의 4살짜리 아들 '마이클'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은 자신이 떠나고 혼자 남겨질 아들을 위해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기로 한다.

존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아들'을 위한 인생 최대의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신중하려고 한다.

마이클에게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하려고 한다.

 

 

 

 

"아직 어린애지만 말도 잘 듣고 예절도 잘 지켜요.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요. 훌륭한 애라고 칭찬도 많이 들어요.

사랑이 많고 다정한 아이예요. 행복한 어린아이죠.

저 아이에겐 평범한 가족이 필요해요.

아빠, 엄마가 있는 사랑이 넘치는 집과 전 가져본 적 없는 기회들도요."

 

 

 

-

 

 

 

아들 마이클의 새 입양가정을 찾아주려고 하지만 역시나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여러 가정을 찾아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이클의 반응을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고.

아들에게 남은 시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더 고민되는 시간들이다.

그리고 존의 눈에는 자꾸 엄마와 함께 있는 마이클 또래의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사실 마이클의 엄마는 마이클을 낳고 얼마 후, 존과 마이클을 떠났다. 아이를 낳고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인생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존은 계속 마이클에게 '평범한 가족', '아빠와 엄마가 있는 집'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나는 이 점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처음에 존은 아들에게 '아빠가 곧 죽는다'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아직 아들이 너무 어리기에. 죽음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기에.

- 애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걸 원치 않아요.

아직은 아니에요. 너무 어리다고요.

새 가족과 자기 주변에 또 그런 일이 생기고 자기도 죽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건 애답지 않잖아요.

이런 이유로 '기억상자'에 훗날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들을 담을 것을 권유하는 사회 복지사의 의견을 거절한다.

 

 

 

 

하지만 마냥 숨길 수만은 없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마이클이 죽은 딱정벌레를 발견하고 아빠에게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

존은 조금 주저하다가 그 딱정벌레는 죽은 것이라고, 죽는다는 것은 몸은 그대로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들은 아빠의 의도와는 다르게 죽음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 트럭은 짐을 잔뜩 싣고 여기저기 다니고, 사람들은 일하러 가거나 친구 만나러 멀리 갈 때 차를 타고 다니잖아.

마이클, 나중에 다른 마을에 가서 다른 집에서 살아 보고 싶어?

- 우리 집이 좋아.

육교 위에서 수없이 많은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을 보며 존은 마이클에게 다른 집에서 살아 보고 싶냐고, 넌지시 물어본다.

마이클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우리 집이 좋다고 말한다.

나중에는 마이클이 '입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존은 애써 담담하게 입양은 다정한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마이클도 은연중에 아빠와 함께 여러 새로운 가정을 찾아가고, 만나보는 이 과정들이 단순히 놀러가는 것은 아님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이클은 대답한다. 자기는 아빠랑 살고 싶다고.

 

 

 

 

많은 대사도 없는 장면이다.

소파에서 존이 자고 있고, 마이클은 그런 존에게 조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담요를 덮어준다.

서툴게 담요를 덮어주는 손길에 잠에서 깬 존은 그런 마이클을 꼭 안는다.

 

 

 

 

정말 이별이 코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존은 마이클이 훗날 볼 수 있는 '기억상자' 속에 아빠를 떠올릴 수 있는 물건들을 담는다.

차에서 발견한 엄마의 장갑, 아들이 막 태어났을 때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아들이 아빠의 생일날 준 빨간색 초 하나, 아빠와 아들의 손을 대고 그린 그림, 그리고 나중에 운전면허를 땄을 때 읽으라고 쓴 편지와 같이 아들이 한 해 한 해 커가면서 차근차근 볼 편지 등의 물건을 담는다.

존이 자신의 사정을 아는 친한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사후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기가 되는 것이라고. 공기 중에서 남은 사람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한참 전에 사별한 남편의 칫솔을 최근에서야 버렸다고.

아직 마이클은 온전히 그 감정을 이해하진 못 했을 것이지만, 존은 마이클에게 이별의 인사를 건넨다.

- 아빠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네 주변의 공기 속에서, 널 따뜻하게 감싸는 햇살 속에서.

널 적시는 빗속에서도 널 지켜볼거야.

(아빠가 죽어도) 너는 아빠에게 말할 수 있어.

아빠는 안 보일 테지만 너의 말을 들을 수 있어.

공기 속에서, 햇살 속에서, 빗속에서, 마이클이 있는 모든 공간에서 계속 그를 지켜볼 것을 약속한다.

아마 마이클은 이런 아빠의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그리고 아빠의 물건들을 오래오래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항상 그의 주변에 있는 아빠처럼, 그도 항상 아빠의 존재를 상기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이 아빠를 그리워하며 찾는 어느 순간에 존은 바람이든, 빗방울이든, 눈부신 햇살이든, 그 어느 것을 이용해서라도 반드시 대답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존과 마이클이 찾아간 수많은 가정 중에 어릴 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친 사이에서 임신했다가 주변 어른들의 권유로 반강제로 아기를 없앤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임신을 못하는 몸이 되었지만 아이는 꼭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입양아는 못 키우겠다고 떠났고, 그렇게 혼자 남게 되었다.

존의 결정은 그녀의 가정이었다.

그녀의 집에 마이클을 데려가고, 아들과 아빠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마지막에 아빠에게 보내는 마이클의 눈빛은 마치 '아빠 걱정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테니, 이런 시작을 선물해준 아빠는 걱정하지 말라고.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던 영화다. 2021년의 마무리에 생각나는 영화를 말해보라고 하면, 아마 이 영화가 먼저 생각날 것 같다.

영화를 보다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하려고 하는 존과 마이클의 이야기를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조용하게 그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인지하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잔잔히 계속 찾아오는 파도가 더 눈에 아른거리듯이, 극장을 떠나서 집에 가는 시간 내내 그저 이 영화의 감상에 젖어 있었다.

영화의 이야기를 집까지 가져오며 누군가의 현실일지도 모를 이 상황들에 대해 혼자 곰곰이, 그리고 깊이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이 상황을 풀어헤쳐 나가는 아빠인 존, 존이 떠나고 그의 빈 자리를 종종 마주할 아들 마이클, 그런 마이클과 함께 새로운 시간을 쌓아갈 새 가정, 이런 이별을 수없이 마주했을 사회 복지사 등.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름다움, 벅참, 슬픔, 감동 등의 너무나도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다.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다.

내 인생에서 먼저 떠난, 내겐 매우 중요한 존재였던 그 사람이 혹시 가끔씩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지.

보고 싶다- 라고 내뱉은 내 말을 듣고 혹시 내게 찾아와 주진 않았을지. 그리고 이런 내 말에 가벼운 대답을 해주진 않았을지.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조금의 확신이 들었다.

아마도 공기 속에서, 햇살 속에서, 빗속에서 꾸준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이전의 일들에 대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는 내게, 그리고 항상 보고 싶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내게 일말의 대답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공기 속에서 항상 아들의 주변에 있을 것을 약속하며, 아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해준 아빠의 이별편지와 같은 영화인 <노웨어 스페셜>은 오는 12월 29일에 개봉한다.

다들 2021년을 꼭 이 영화로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작성자 . I am your bunny

출처 . https://blog.naver.com/meyou_saline/22260600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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