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5-02 20:07:42
썬더볼츠* | 버려진 부품들이 이뤄낸 MCU의 시네마
<썬더볼츠*>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드룸이 파괴된 후 CIA 국장 '발렌티나'(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 휘하 비밀 요원이 된 '옐레나'(플로렌스 퓨). 반복되는 임무와 외로움에 지친 그녀는 러시아 슈퍼 솔져이자 양부, '알렉세이/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을 찾아간다.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뒤 옐레나는 결심한다. 언니 나타샤처럼 양지에서 활동하기로. 발렌티나도 최근 중단된 프로젝트의 증거를 훔치려는 '고스트'(해나 존케이먼)를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조건으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하 저장고에 잠입한 옐레나는 예상 못 한 상황을 마주한다. 본인과 고스트뿐만 아니라 '존 워커'(와이엇 러셀), '태스크마스터'(올가 쿠릴렌코)가 서로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모인 것. 더 나아가 그녀는 저장고에 남은 자료를 통해 발렌티나가 어벤져스보다 강력한 영웅 '밥/센트리'(루이스 풀먼)를 만들어 냈음을 깨닫는다. 이에 그녀는 다른 이들과 협력해 저장고를 탈출한 뒤 발렌티나의 음모를 세상에 알리려 한다. 하원 의원이 된 윈터 솔져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도움을 받아서.
MCU의 꼬리표
역대 영화 프랜차이즈 중 흥행 수익 1위를 기록하며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하지만 MCU에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빌리자면 MCU는 액션과 유머처럼 즉각적으로 휘발되는 쾌감을 먼저 추구하는 '테마파크'이지, 한 인간의 삶과 감정적 경험을 공유하거나 성찰하는 '시네마'가 아니라는 것.
물론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로는 MCU도 비평적으로 인정받은 감독들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며 꼬리표를 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효과뿐이었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의 <이터널스>도,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타이카 와이티티의 <토르: 러브 앤 썬더>도, 슈퍼히어로 영화의 거장 샘 레이미의 <닥터 스트레인지와 대혼돈의 멀티버스>도 산만하거나, 유치하거나,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숱한 실패 끝에 MCU는 마침내 '테마파크' 밖으로 한 발짝 내디딘 듯하다. MCU에서 히어로가 될 수 없었던 낙오자들을 모은 팀업 무비, <썬더볼츠*> 덕분이다. 잘해야 MCU 판 <수어사이드 스쿼드> 혹은 지구 버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일 거로 전망한 <썬더볼츠*>는 현대인의 내면을 관통하는 섬세하고 야심 찬 서사를 선보이며 불완전하게나마 MCU의 '시네마'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옐레나의 그림자
<썬더볼츠*>는 첫 장면부터 이전 MCU 작품과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기존 마블 스튜디오 로고가 그림자로 물드는 연출이 대표적이다. 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비인가 프로젝트를 숨기려는 첩보 기관이 빌런들을 소집하고, 그들이 하나의 팀을 이룬 뒤 첩보 기관과 감당 못 할 적에 함께 대항한다'라는 전개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에 가깝다.
이어지는 옐레나의 내레이션은 그 선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녀는 쿠알라룸푸르의 한 고층 빌딩 옥상에서 낙하하여 실험실에 잠입한 뒤 증거를 지우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그녀는 언니 '나타샤'(스칼렛 요한슨)를 잃은 후의 외로움, 목적 없이 반복되는 삶에 마모되면서 느껴지는 공허함에 대해 내레이션으로 토로한다. 폭탄을 설치한 뒤 실험실에 혼자 남은 기니피그를 챙겨서 나오는 모습도 그녀의 고독함을 방증한다.
액션 시퀀스의 연출 또한 그녀의 내레이션을 시각적으로 치환하여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카메라는 그녀가 얼마나 멋지게 요원들을 해치우면서 실험실에 잠입하는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긴 복도에서 그녀가 싸우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옐레나가 아니라 옐레나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녀가 임무를 수행하고, 사람을 죽이고,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그림자가 되어가는 그녀의 상황을 각인시킨다.
이처럼 옐레나의 시점에서 진행된 오프닝 시퀀스는 <썬더볼츠*>의 의도를 명확히 규정한다. 빌런이나 안티히어로가 모이는 이벤트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옐레나처럼 외롭고 공허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다. 이는 인지도가 가장 높은 버키 대신 옐레나를 화자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발렌티나에게서 받은 임무 외에는 목적이 없고, 가족도 없는 그녀야말로 영화의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니까.
버려진 부품들의 공허함
공허함과 외로움에 빠진 주인공은 옐레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썬더볼츠 멤버들도 그녀의 같은 상황에 부닥쳐 있다.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빼앗긴 이후 아내와 아이와 별거 중인 존 워커, 정보 당국의 체포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쁜 고스트, 러시아가 만든 슈퍼 솔져이지만 리무진 택시 기사로 일하며 보드카에 절어 지내는 레드 가디언까지. 그나마 미 하원 의원이 된 버키가 예외지만, 그의 정신적 고통도 이미 전작에서 다뤄진 바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공허함에 빠진 이유다. 바로 썬더볼츠 멤버들이 낙오자로 낙인찍히고, 버려진 부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 그들은 주인공들의 서사에 필요할 때 사용되고 버려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MCU라는 세계관에서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이들. 국가에 의해서, 기관에 의해서, 기업에 의해서. 필요할 때는 부품으로 활용됐지만 가치가 다하자 폐기 처분된 이들이라는 것.
밥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는 썬더볼츠가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에 가깝다. 어려서부터 가정 폭력에 시달린 그는 목적 없이 살면서 삶의 의지도, 목적도, 희망도 잃었다. 우울증과 이중인격을 비롯한 여러 정신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발렌티나의 실험은 돌파구였다. 어벤져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강력한 존재 '센트리'로 거듭나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찾을 기회였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다시 한번 짓밟힌다. 본인이 창조한 영웅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 하자 발렌티나는 그를 폐기해 버린다. 문제는 실험 과정에서 밥의 이중인격이 센트리보다 강력한 존재, '보이드'로 거듭났다는 것. 또 한 번 버려질 상황에 부닥치자 3차원 그림자처럼 생긴 보이드는 폭주하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절망과 공허함 속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렇게 맨해튼 전체가 보이드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점령된다.
외계인보다 무서운 그림자
흥미롭게도 <썬더볼츠*>는 현대적 맥락을 덧붙여 주인공들의 공허함을 집단적 경험으로 확장한다. 그들의 역경은 단순히 허구의 세계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의 현실적인 일상과 다르지 않기 때문. 무한한 성장과 생산이 목표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에게 끊임없는 경쟁을 요구한다. 개인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시스템의 부품으로써 활용되다가 가치가 떨어지면 버려진다.
이처럼 무한한 생산성과 성장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성과 사회'라는 형태로 구현될 때, 개인은 성과를 내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내적인 압박을 느낀다. 그 결과 사람들은 번아웃에 빠지고, 우울증에 걸리고, 공허해지면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으로는 곪아 버린다. 이에 더해 사회가 개개인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그들로부터 공동체적 맥락을 제거해 버리기에 한 번 공허해진 현대인은 쉽사리 회복하지 못한다.
이는 정확히 옐레나가 겪은 일이다. 존 워커, 레드 가디언, 고스트, 그리고 밥이 경험하는 일상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그렇기에 보이드가 맨해튼을 집어삼키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어벤져스>에서 외계인이 뉴욕을 침공했을 때보다 더 섬뜩하다. 맨해튼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임을 고려하면, <썬더볼츠*>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허함이 공동체 차원의 경험일 때 생기는 일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음이 병들고 파편화된 개인들의 폭주는 이미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을 비롯해 조현병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범죄 소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즉, 센트리/보이드는 만화처럼 묘사됐을 뿐, 이미 실존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존재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썬더볼츠*>는 테마파크에서 벗어나 시네마로 나아간다. 그림자에 삼켜진 맨해튼은 옐레나와 밥처럼 속으로 곪은 현대인들의 공허함이 우리 사회를 점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만국의 현대인이여, 단결하라!
그렇기에 썬더볼츠가 맨해튼과 시민들을 보이드로부터 구하는 방법도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다르다. <썬더볼츠*>의 클라이맥스가 주인공들이 각자의 초능력을 발휘해 빌런을 무찌르는 액션 시퀀스로 구성되지 않은 이유다. 그들은 보이드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보이드에게 제압당한 밥이 그를 집어삼킨 공허함으로부터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그 과정에서 각자의 공허함과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한다.
즉, 썬더볼츠는 타인과 협력하고 연대함으로써 각자의 공허함을 이겨내고, 더 나아가 썬더볼츠라는 새로운 가족과 삶의 의미도 발견한다. MCU에서 부품으로 사용되고 버려진 이들이 하나로 뭉쳤을 때 새로운 목적과 서사가 만들어진다는 것. 이는 현대 사회에서 과소평가되는 공동체와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전개이기에 파편화되고 부품화된 현대인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절 작지 않다.
더 나아가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클라이맥스는 팀의 이름이 썬더볼츠로 명명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썬더볼츠는 레드 가디언이 농담 삼아 붙인 이름이다. 옐레나가 데려온 멤버들을 본 뒤 그녀가 어릴 때 속했던 축구팀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 하지만 옐레나에게 썬더볼츠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알렉세이, 나타샤와 함께 지냈기에 혼자가 아니었고, 삶의 의미도 있었던 어린 시절을 일깨워 주는 이름이기 때문.
처음에는 레드 가디언의 말을 비웃던 다른 멤버들. 하지만 그들도 하나둘 자신들을 썬더볼츠라 지칭하기 시작한다. 옐레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에 썬더볼츠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발렌티나에 의해 '뉴 어벤져스'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지만, 여전히 썬더볼츠라는 명칭이 그들의 정체성을 더 잘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MCU의 부품
다만 <썬더볼츠*>를 특별하게 만드는 메시지와 스토리텔링은 후반부로 갈수록 빛이 바랜다. MCU의 일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조각으로서 기능하는 과정에서 완성도에 금이 가기 때문. 일례로 많은 캐릭터 중 일부는 허망하게 소모된다. 극초반에 퇴장하는 태스크마스터가 대표적이다. 전작들에서 닉 퓨리를 대체할 흑막처럼 묘사됐던 발렌티나가 갈수록 개그 캐릭터로 전락하는 묘사도 일관성이 부족하기에 실망스럽다.
액션 연출도 시간이 지날수록 임팩트가 약해진다. 지하 저장고에서 처음 조우한 썬더볼츠 멤버들끼리 각자의 능력과 무기를 활용해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오토바이를 탄 버키의 액션 시퀀스는 오랜만에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센트리 대 썬더볼츠의 액션씬도 부활한 슈퍼맨과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이 맞부딪히는 <저스티스 리그>의 장면을 오마주 하면서 센트리의 압도적인 능력을 충분히 각인시킨다.
그런데 후반부에서는 액션의 쾌감이 약해진다. 밥의 내면에서 보이드가 만든 트라우마의 미로에서 탈출하고, 밥을 설득하는 식으로 클라이맥스가 구성되면서 액션씬의 비중이 덩달아 낮아진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각 캐릭터의 서사, 특히 옐레나와 밥의 감정선을 잘 따라간다면 뜻깊은 방점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원더우먼 1984>의 클라이맥스와 비슷한 결의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MCU라서 인상적인 장면도 많다. 샘 윌슨이 재건한 어벤져스와 뉴 어벤져스 간의 갈등, 판타스틱 4와의 만남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은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향한 기대감을 키운다. 버키와 고스트를 제외한 썬더볼츠가 멤버 전원이 페이즈 4 출신이라는 점은 비로소 MCU의 새출발을 선언하는 듯하다. 단지 <썬더볼츠*>가 보여준 예상외의 스토리텔링에 담긴 함의가 다소 가려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Expected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마블답지 않은 시작과 마블다운 끝이 만나 이뤄낸 MCU의 시네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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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이 필요한 금쪽이가 빙의를 경험하면 벌어지는 일
<톡 투 미>의 주인공은 호주의 어느 동네에 사는 미아다. 미아는 얼마 전 어머니를 잃었다. 외로운 미아.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다는 것이 우울했다. 이런 미아는 친구들끼리 모여 재미있게 놀던 도중 한 아이가 꺼낸 ‘90초 빙의 챌린지’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친구 중 한 명이 가져온 손 모형에 누구든 다가와서 악수를 하면, 90초 동안 귀신과 빙의되는 것이 이 '90초 빙의 챌린지'였다. 자기도 직접 챌린지를 해보고, 친구들이 빙의하는 모습도 구경하는 미아. 하지만 일행 중 한 명이 미아의 어머니에 빙의한 모습을 보자 이성을 잃는다. 금기를 깨는 미아. 이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톡 투 미>가 젊은 영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여러 매체에서 유행하는 흐름을 잘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 전면에서 우리가 잘 아는 소셜미디어들이 등장한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이 그 예시다. 두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후 릴스나 클립류의 짧은 영상이 유행했다. 이 바뀐 시대상을 반영하듯 이야기의 템포는 빠르다. 이 빠른 템포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 분명한 강점이다. 짧게 이어 붙인 장면이 속도감 있는 플롯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한다고 해서 캐릭터들을 대강 묘사하지도 않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결핍이 하나쯤은 있으며, 각자가 가진 단점에 따라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결함이 인물의 동기가 되는 셈이다. 이 인물들의 동기는 ‘90초 빙의 챌린지’에 대한 태도와도 직결되어 사실상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어떤 인물이 선을 넘고 또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설정이 호주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기 때문에 따라오는 단점도 있다. 이 영화의 사운드 믹싱이 관객들이 듣기 편한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톡 투 미>가 '점프 스케어'가 아닌 시,청각적 요소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로 보인다. 감독의 욕심이 과욕이 된 것이다. 또 전체적으로 미야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플롯은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어디선가 봤던 시시한 오컬트 호러와는 종자가 다른 영화라는 점에서 추천하는 작품이다. 11월 1일에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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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한국영화 개봉 예정 라인업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국내의 영화 배급사별로 2022년 개봉예정 영화의
라인업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중에서 먼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라는 배급사의 작품 라인업을 알아볼텐데요!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는 국내 굴지의 대형 배급사들보다는 다소 출발을 늦게 한 편이지만,
신생 배급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탄탄한 라인업과 퀄리티를 보장하는 배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2022년 올해도 역시, 국내 영화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영화 라인업들이 대거 포진해있는데요.
그럼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의 2022년 국내영화 라인업(예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Dirty Money)
장르 : 범죄
감독 : 김민수
출연 : 정우, 김대명, 박병은, 조현철, 유태오 등
작품소개 : 수사도 뒷돈 챙기는 부업도 같이 하는 친형제 같은 두 형사가 더 크고 위험한 돈에 손을 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
*씨네랩 코멘트 : 엄청난 티켓 파워 배우는 출연하지 않지만,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들의 앙상블로 꽤나 기대되는 작품.
2. 앵커
장르 : 스릴러
감독 : 정지연
출연 : 천우희, 신하균, 이혜영
작품소개 :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에게 의문의 제보자가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전화를 걸어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2021년에 개봉할 것으로 예상됐던 작품이나, 개봉이 연기가 된 작품으로 2022년 올해에는 개봉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3. 리멤버(REMEMBER)
장르 : 드라마
감독 : 이일형
출연 : 이성민, 남주혁
작품소개 :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80대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가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 평생을 준비한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소재가 주는 참신성으로 흥미를 끌며, 신구 배우의 조합이 기대. 즉 이성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의 연기 호흡이 기대되는 작품
4. 소방관
장르 : 드라마
감독 : 곽경택
출연 : 곽도원, 주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오대환
작품소개 : 2001년 홍제동 화재 사건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용감했던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휴먼 실화극
*씨네랩 코멘트 : 실화 소재의 작품. 곽경택 감독의 오랜만의 연출 복귀작이면서 휴먼실화극을 내세운만큼 대중성이 있는 영화로 예상되는 작품
5. 출장수사
장르 : 액션
감독 : 박철환
출연 : 배성우, 정가람
작품소개 : 사고뭉치 베테랑 형사 ‘재혁’과 금수저 신참 형사 ‘중호’가 의문의 살인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해 서울로 출장을 가며 벌어지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주연배우인 배성우 배우의 스캔들로 개봉이 연기됐던 영화. 여론에 따라서 2022년 개봉여부가 정해질 것으로 판단되는 작품이지만,
2022년에는 개봉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
6. 바이러스
장르 : 드라마
감독 : 강이관
출연 : 김윤석, 배두나
작품소개 :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수일 내에 사망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유일하게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연구원 이균(김윤석)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옥택선(배두나)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김윤석 배우와 배두나 배우의 만남으로 기대가 되는 작품이면서 밝혀진 시놉시스 또한 영화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작품
7. 보호자
장르 : 액션
감독 : 정우성
출연 : 정우성, 김남길, 박성웅, 김준한
작품소개 : 자신에게 남은 단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배우 정우성의 감독작이면서 동시에 주연작품.
8. 승부(The Match)
장르 : 드라마
감독 : 김형주
출연 : 이병헌, 유아인
작품소개 : 스승과 제자이자, 라이벌이었던 한국 바둑의 두 전설인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피할 수 없는 승부를 그린 영화
*씨네랩 코멘트 : 2022년 최대의 화제작이면서 기대되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영화. 연기의 신으로 평가받는 이병헌 배우와
그 못지않은 연기력과 매력의 유아인 배우의 만남.
또한 실제 바둑의 전설인 조훈현과 이창호의 피할 수 없는 승부를 그린 영화만큼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9. 원더랜드
장르 : SF, 드라마
감독 : 김태용
출연 : 박보검, 수지, 정유미, 최우식, 탕웨이
작품소개 : 세상을 떠난 가족, 연인과 영상통화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
*씨네랩 코멘트 : <승부> 못지않은 올해 최대의 기대작.
올해 성수기 시즌, 텐트폴 영화로 개봉 시기를 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
국내의 인기 많은 배우들이 모두 총출동하는 작품으로 화제가 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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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의 2022년 개봉예정 한국영화 라인업 중에서
어느 작품이 가장 기대되고 기다려지나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국 속에서 물론 개봉이 확실치는 않겠지만.
부디 상황이 하루 빨리 나아져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씨네랩은 다음 주, 또 다른 배급사의 2022년 영화 라인업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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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가디슈> - '이념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그들의 탈출기'
모가디슈 (Escape from Mogadishu, 2021)
개봉일 : 2021.07.28
감독 : 류승완
출연 :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김재화, 박경혜
'이념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그들의 탈출기'
7월 28일 개봉 이후로 2주 동안 굳건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모가디슈>.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상황임에도 개봉 7일차에 100만 관객을, 글을 쓰고 있는 날짜 기준(2021.08.10)으로는 178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모가디슈>는 몸집이 크고 화려하지만 상당히 인간적인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력 넘치는 카 체이싱 장면, 쉴 새 없이 고막을 강타하는 총소리, 실감 나는 로케이션과 화려한 배우진, 전작 <군함도>에서 논란이 있긴 했지만 여러 작품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류승완 감독까지. 당연히 시선이 갈만한 관람 포인트들에 약간의 전우애와 인류애 같은 것을 더한 게 바로 이 영화의 색인 것 같다.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독재와 탄압에 저항하는 내전이 일어난 날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주인공은 UN 가입을 위해 노력하던 그때의 대한민국과 북한 대사관 직원, 그 가족들이다. 이들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선명한 선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이념 아래 자라온 사람들이다. 두 나라 모두 UN 가입을 위해 소말리아 정치인들에게 열심히 손바닥을 비비고 서로를 견제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발생한 내전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만든다. 교육받은 이념이 머리에 자리 잡기 이전, 본능에 새겨진 절대적인 목표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탈출과 생존을 하나의 목표로 정하고 정치적 이념과 국가의 구분, 계산을 모두 내려놓으니 이들은 결국 비슷한 사람이었다. 생과 사를 함께 오간 동료들과 믿음을 나누고 그와의 이별에 아쉬움을 느끼는, 그런 감정이 있는 사람 말이다.
<모가디슈>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서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을 보여주기보단 인물들의 감정과 시선, 모가디슈에 일어난 내전의 시발점에 집중하는 연출을 보여준다. 영화는 독재와 탄압에 지쳐 내전이 일어난 소말리아의 모습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빵야 빵야-으아악! 하며 장난감 총을 들고 놀아야 할 아이들이 진짜 총을 들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나라의 대사임에도 우스울 만큼 빠르게 외면당하는 한신성 대사관을 보여주며 그 시절 힘이 없었던 우리나라가 겪어야만 했던 설움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한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면 정치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주제들을 적당한 선을 지키며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낸 연출이 참 좋았다.
영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롱테이크 촬영기법이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그 사이에 껴 넣은 작은 감동 포인트들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슬픈 음악을 넣어놓고 "여기서 울어라!" 자리를 펴는 게 아닌 소소하게 쌓아 올린 공통점과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힘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영화는 순식간에 나를 그 긴박함 속에 끌어당기고 마지막쯤엔 긴장감을 탁 풀어내며 압축돼있던 감정을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 박진감과 인간미를 함께 갖춘 <모가디슈>의 매력이 궁금하다면 이 영화의 흥행 열풍에 함께 해보시길 추천한다.
모가디슈 시놉시스
내전으로 고립된 낯선 도시, 모가디슈
지금부터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이다!
대한민국이 UN 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문을 두드리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한신성 대사관(이하 한 대사관)은 여러 경쟁을 이겨내고 소말리아의 한국 대사관 자리를 차지한다. 등장인물 들의 말을 따르면 소말리아는 '(우리 사람들이)6명만 남은', '언제든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이지만 그는 자신의 자리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꿋꿋하게 버틴다. 북한의 림용수 대사관(이하 임 대사관)또한 태준기 참사관과 함께 조국의 득을 위해 일하고 있다. 대사관답지 않게 작고 소박한, 커다란 선풍기 하나 없아 손부채질과 조악한 선풍기로 버텨야 하는 대사관 안에서 그들은 각자 나라의 이득을 위해 머리를 굴린다.
여느 때와 같이 '저 나라 대사관이 어떤 로비질을 하는가-'하고 견제하고 있던 오후, 소말리아에 내전이 발발한다. 옅은 카키 베이지 빛과 하늘색 정장을 입은 한 대사관, 강 참사관과 연한 네이비, 진한 카키 계열의 정장을 입은 임 대사관과 태 참사관이 갑자기 발생한 폭동에 놀라 뒤로 물러서는 이 장면에선 인물들이 남 / 북의 구분대로 정렬되는 게 아닌, 자신의 의상 색과 비슷한 대립국 인물의 옆에 서며 남과 북의 구분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함께 구분 없이 섞이겠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를 견제하며 기사를 내고, 더 먼저 로비를 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던 인물들이 대한민국 대사관에 모인다. 오랜 독재로 인해 쌓여버린 독을 뿜어내고 있는 반군들에게 당한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대한민국 대사관에 온 것이다. 거리엔 분노와 광기가 가득하다. 대한민국 대사관에선 "우리는 친구가 되기 위해 왔습니다. 친구 같은 가족, 가족 같은 친구.."와 같은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건 평화, 친구와는 거리가 먼 폭력뿐이다. 국가 간의 평화를 위해 오갔던 돈은 독재를 도왔고 부패한 정부와 분노한 국민이 대립한다. 평화를 위해 오간 돈이 그 나라의 국민을 괴롭게 만들다니. 아이러니하다.
“지금부터 우리 투쟁 목표는 생존이다.”
한 대사관은 북한 대사관과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위험한 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한 집에 들이다니.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이 걱정보다 앞서 한 대사관과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2배로 늘어난 인원수, 좁아진 식탁과 부딪히는 젓가락. 평생 한솥밥을 먹을 일 없는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불신을 잠시 접어두고 함께 앉아보니 그들은 살인 병기도 반역자도 아닌, 그냥 같은 사람이었다. 조국도, 수교국과도 당장 연락되지 않는 고립된 상황에서 어쩌다 식구가 되어버린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의기투합하게 된다.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참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같은 밥을 먹는 식구가 되는 것만큼 끈끈하고 질긴 사이도 없는 것 같고,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그들 사이의 감정을 바로 공감할 수 있게 되다니. 역시 한국인은 밥인 건가.
"같이 살 방법이 있는데, 해볼 건 다 해봐야지."
우린 이태리, 너넨 이집트. 살 사람은 살자고 다짐했지만 한 대사관과 강 참사관은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고립된 상황이 얼마나 두려운지, 이곳을 빠져나갈 기회가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는지. 같은 상황을 해쳐온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태리 대사관에서 구조선 소식을 기다릴 때, 한 대사관이 강 참사관에게 묻는다. "(북한 사람들)내쳤어야 했는데, 그치?" 강 참사관은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는다. 강 참사관은 태 참사관과 대립각을 세우며 북한 사람들을 같이 살아나가야 할 동료가 아닌 정치적인 의미의 복덩이라고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침묵은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단번에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기회를 잡은 인물들은 버스를 타고 모가디슈를 탈출한다. 버스에 앉아 신기함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눈을 빛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거리에서 총을 들고 서있는 소말리아의 아이들. 영화는 마지막까지 이 씁쓸한 풍경을 놓치지 않고 복기한다.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향하던 길에 만난 소말리아 아이들이 사람을 향해 총을 들이대며 장난을 치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 북한의 아이들은 소말리아 아이들에게 맞춰 으악-하면서 쓰러지는 시늉을 하고 소말리아 아이들은 그를 보며 웃는다. 우리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총을 쏘고 쓰러지는 시늉을 하며 웃을 수 있는 소말리아의 아이들의 손에 진짜 총을 쥐게 하고 그들을 거리로 내몰아낸 현실의 맛이 참으로 씁쓸하다.
더불어 다른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없었던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참 인상 깊었다.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위험을 피해 대한민국 대사관에 들어갈 때, 북한 대사관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린다. 북한의 아이들은 화려하게 진열된 88올림픽의 기록과 대한민국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탈출에 성공한 후 비행기에서 내려 각자의 길로 갈라지는 순간엔 생사고락을 함께한 정이 든 친구와 인사를 나눌 수도 눈을 맞출 수도 없었다.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고, 비슷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갈라진 두 갈래 길로 걸어가게 만든 하나의 다름이 가진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 하지만 잠시나마 그걸 뛰어넘은 우정과 인류애가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생존이란 본능 앞에, 결국은 같은 사람이란 이해 아래에서 힘을 합친 인물들의 우정이 아름답고 결국엔 조용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 처연하다.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달리는 느낌이었다. 함께 뛰고 호흡하고 이해했다. 마지막에 닿아서는 함께 탄식했고, 여러 감정을 조금씩 깎아낸듯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특히 태 참사관이 유명을 달리하는 장면을 볼 땐 바짝 올랐던 긴장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공격적이고 예민한 모습을 보이며 극의 긴장감을 높이던 인물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순간, 그게 참 마음 아팠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이뤄낸 탈출과 생존이라는 결과물 앞에서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못한 그가 못내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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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스포일러 주의!!!!!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날까?"
파랑의 우울에 관해서 써볼까 한다.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 나는 파랑이가 별이라고 생각을 했다. 파란 별이 표면온도가 가장 높다는 말도 있으니까.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서야 자신을 봐달라는 식으로 밝게 빛나다가 폭발해서 사라져버린 별.
파랑이가 연극으로 선택한 작품은 신파랑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꺼져가는 태양 또한 파랑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로봇 세 명은 파랑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마지막 인류학자가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나는 태양이 왜 꺼져가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 질문을 했다면 아마 이런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더 이상 자신의 춤이 닿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겠고, 더 이상 자신의 춤을 봐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 그의 춤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연극을 준비하면서 느꼈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결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무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파랑이가 마지막으로 극단의 일원들을 만나고 다녔을 때, 닿지 않은 것이 아닌 머리카락을 태워 억지로 끊어버린 것이었단 걸 알았을 때 파랑이의 눈빛은 … 정말 깊고 어디론가 빠져버릴 것 같았다.
파랑이의 집 또한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야외에는 어지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텅 비어있다. 나는 그것이 파랑이의 내면 같다고 생각했다. 파랑이의 우울한 파랑으로 가득 찬 것 같이, 퍼런 색의 소주병으로만 가득 차 있다.
파랑이는 모든 사진에서 항상 웃고 다녔다고 했다. 사실 나는 파랑이가 왜 계속 웃고 다녔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속은 너무 고칠 수 없이 망가져 겉옷이라고 주섬주섬 꺼내 입었던 것일까? 돈도 없고 망가져서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사지 못하고 근육통약으로 어영부영 상처를 덮었다. 그 사이사이 빈틈으로 우울의 파랑이 물 밀려오듯이 밀려왔다. 결국에는 죽을 사람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 적어도 나에게는 닿았다고 말하고싶다.
우리는 각자 닿을 일 없이, 각자의 궤도를 떠도는 별들이다.
별과 별 사이 수억 광년의 거리.
속삭이듯 말해서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온 몸으로 춤을 춘다.
그 별의 당신에게는 아직 판독 불가의 전파에 불과하겠지만,
언젠간 당신의 안테나에 닿길 바라며,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춤을 춘다.
- 파랑이의 연출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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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숙해서 더 찬란했던 우리의 초록 시절
* 이 글은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 참석한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교복을 입어 본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벌써 십 수 년은 되었으니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교복하면 또 소위 학창시절이라 불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그때라고 하면 대한민국을 비롯한 모든 동북아시아 청소년들이 공유하는 트라우마적 기억, 입시 공부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시험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시절, '그때로 돌아갈테면 그러겠느냐?'는 말에는 선뜻 예, 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인생 최대의 경쟁에 뛰어들어 이른바 보이지 않는 계급차를 경험한 최초의 시기가 바로 그때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경쟁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때 그 시절이 끔찍하기만 했냐면 그건 아니다. 내겐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우린 서로가 가장 힘들 때 위로를 건네는 상담가였으며, 때때로 '노는 토요일'에 배달 음식을 시켜먹기, 야자 째고 나가 닭꼬치 사 오기, 선생님 몰래 교실 뒤편에서 화투치기 같은 소소한 일탈을 즐길 동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절이 마냥 우울하지 않았다. 참 어렸지. 참 바보 같았지. 하고 웃으며 회상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소리다.
이러한 학창 시절의 정서는 꽤나 보편적이다. 적어도 입시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라면 어느 나라든 그럴 것이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처럼 입시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이 지속되어 온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만 영화 <우리들의 교복 시절>은 한국에 사는 우리가 추억하는 그 옛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영화다.
1. 내 나이 17세, 인생 참 쉽지 않다!
1999년 9월, 17세 펑원아이(이하 '아이')는 인생이 참 어렵다. '야간반이어도 좋으니 제일여고에 입학하라'는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제일여고 야간반에 입학하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열심히 공부해 사범대에 들어가'라며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어쩐지 와닿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쳐 오던 탁구는 이제 공부를 해야 하니 그만두란다. 여동생은 틈만 나면 언니 일을 일러바치기 일쑤다. 하여간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다.
아이는 자기 교복이 신경 쓰인다. 옆집 언니에게 물려 받은 초록 교복엔 은색 학번이 수놓여 있고, 아이는 그것이 야간반을 상징한다는 걸 안다. 주간반 학생의 찬란한 금색 이름표 옆에 서면 그게 얼마나 초라해 보일지도. 몇몇 사람들에게 '짝퉁' 취급을 받는 그 야간반 신세를 3년 동안 감당할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2. 교복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제일여고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그건 한 책상을 쓰는 주간반, 야간반 학생들끼리 서로 짝꿍이 되는 것. 아이는 운이 좋았다.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쿨하기까지 한 민과 짝이 되었으니 말이다. 주간반 애들은 잘난척쟁이에 깍쟁이이기만 할 것 같았는데, 민은 성격도 좋은데다가 놀 줄도 안다. 이것이 주간반 멋쟁이의 여유인걸까? 아이는 민의 삶이 근사해 보인다. 민이 하자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고 싶을 정도로.
우연한 계기로 민과 바꿔 입은 교복은 아이를 들뜨게 한다. 교복 하나 바꿔 입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 같고, 초라하기만 하던 내가 뭔가 특별해진 것 같다. 민을 따라 주간반 행세를 하면서 아이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멋있는 밴드 음악도 듣고, 잘나가는 애들이 다닌다는 수학학원도 다니고, 탁구장에서 만났던 잘생긴 제일고 남자애(루커)와도 썸을 타게 된다. 아이는 민이 짝사랑 상대가 루커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거부할 수 없다.
아이는 민의 주간반 교복을 더 오래 입고 싶다. 그걸 위해서는 그만큼의 땡땡이와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3. 이러려던 게 아닌데.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민은 아이와 루커의 관계를 알아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의 폭로로 말미암아 루커도 아이의 정체를 알아버리고 만다. 오랫동안 쌓아온 거짓말의 탑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아이는 그 동안 외면해 왔던 주간반과 야간반 사이의 벽을 다시금 확인한다. 민과 루커의 곁에 아이가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어 보이고, 아이는 더는 주간반 행세를 하지 않기로 한다. 주간반은 양, 야간반은 음이라던 선생님의 말씀처럼, 영원한 짝퉁, 은색 명찰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시련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엄마는 놀러다니느라 아이의 망한 성적표를 발견하고, 그 일을 계기로 아이와 엄마 사이의 냉전이 시작된다. 단골 탁구장은 문을 닫는다. 새 마음 새 뜻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지만 무엇 하나 예전 같지 않다.
4. 우리 세상이 온통 흔들렸어.
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온통 흔들렸다. 1999년 9월 21일. 갑작스레 닥친 대지진은 건물이 무너뜨리고, 수 천 명이 죽였다. 그 생사의 갈림길, 모두가 공유한 어떤 공통된 시련을 통해 아이는 오랜 시간 자존심과 부끄러움에 가리웠던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원망할지언정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을 말이다! 아이는 엄마의 억척스러움에서 딸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민과의 재회를 통해 둘 사이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주간반과 야간반의 차이가 아니라, 둘이 나누었던 진실된 우정이었음을 알아차린다.
5. 청춘의 이름으로 현실 깨부수기
이 영화는 펑원아이와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함과 동시에, 학벌주의와 계급주의가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직관적인 비판을 드러낸다.
동북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좋은 성적은 좋은 대학을 담보하고, 좋은 대학은 좋은 직장을 높은 확률로 보장하며, 좋은 직장을 가진다는 것은 곧 많은 돈을 벌게 되는 것이므로 계급 상승의 가장 손쉬운 수단이 된다. 이것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동북아의 많은 청소년들은 돈을 잘 벌기 위해 공부하는 셈이다. 그러나 소위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소위 '잘 사는' 사람들이 자식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더 좋은 교육을 받은 아이는 더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다. 이러한 환경에서 입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이른 나이부터 돈과 학벌 따위로 야기된 새로운 계급적 장벽을 마주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경쟁, 비난, 폄하를 수반한다. 펑원아이의 야간반이 '짝퉁' 취급을 받아온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신 계급주의와 학벌주의는 결국 정형화된 이상을 강요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 '좋다고(돈을 많이 번다고)' 알려진 직업을 가지라고 속삭인다. 이러한 사회를 사는 사람은 사회가 주입한 이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후천적 완벽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러나 세상에 정말로 완벽한 사람은 없는 바, 사람들은 완벽을 가장하기 시작하는데, 펑원아이의 '주간반 노릇'이 그렇고, 민의 '재수생 시절'과 루커의 '부모님 불화' 따위 그렇다. 결국 아이들의 미숙함은 아이들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몸담고 있는 일그러진 사회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러한 정형화된 틀 속에서 개인의 꿈과 욕망은 쉽게 거세당한다. 그리고 꿈을 잃은 사람은 어떻게 되냐고? 무료하고, 무력해진다.
펑원아이, 민, 루커를 비롯한 청춘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에 반기를 든다. 크고 작은 일탈을 감행하면서, 서로 실수하고, 상처 주고, 다시 화해하면서, 그들이 놓칠 수도 있었던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바로 보고, 어른들이 쌓아놓은 '보이지 않는 벽'을 기꺼이 허문다.
민은 주야간반과 상관 없이 기꺼이 펑원아이에게 손을 내밀었고, 루커는 펑원아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경쟁하기 위해 올림피아드라는 쉬운(?) 대학 입학 기회를 떠나보내고 대입 시험에 임한다. 그리고 펑원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된다. 관객으로서는 그가 어느 대학의 어떤 전공을 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어른들의 기준에 휩쓸리기만 하던' 펑원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스스로 찾아 그 길로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작은 혁명의 길을 지난 사람에게 주간반과 야간반의 교복 중 무엇이 더 노란빛을 띠고 푸른빛을 띠는지, 왼쪽 가슴의 명찰이 금색인지 은색인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으리라.
아이와 친구들은 저마다 원하는 대학에 붙고, 그들은 주간반, 야간반 상관없이 둘러 앉아 꿈을 논한다. 꽉 닫힌 해피엔딩이며, 가장 부드러운 혁명이 성공을 거둔 순간이다.
펑원아이와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친구일까? 어느쪽이든 나는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혁명과 혁신을 거듭하면서 삶을 개척해 나갈 것 같다. 그 언젠가 초록 교복시절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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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같았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봄'같았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지난 04월 03일을 마지막으로 2월 12일에 시작했던 tvN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방영을 끝마쳤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좋아해주었던 드라마이고 또 응원했던 드라마이기에 마지막화 방영 이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다.
정말 애정했던 드라마가 끝이나니 참 아쉽기도하지만 또 기대하는 새로운 작품들이 나오니 기대가되는 마음도 든다.
지금 이 글은 그냥 약 2달 동안 나를 웃고 울게했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위해 쓴다.
드라마가 참 '봄'같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봄의 폭신하고 기분 좋은 날씨처럼 따스하고 사랑스운 작품이었다.
때로는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처럼 쌀쌀함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최근에 봤던 작품 중 가장 봄같은 따스함을 전달해줬다.
이 드라마 자체를 참 좋아했다. '백이진'과 '나희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 작품 자체를 참 좋아했다.
이진과 희도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행복했고, 지웅과 유림의 풋풋함을 보면 설레었다.
승완의 무료함을 보며 공감했고, 희도 어머니의 무거운 짐을 보면 가슴 아팠다.
양찬미 코치님의 철학을 보면 감탄했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 시대를 다루는 이 드라마의 시각이 참 아름다웠다.
사실 희도와 이진의 결별은 예견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방영 시작 전 프리뷰를 진행하면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각자의 유서를 보면서 '백이진'이 죽을 것이라는 예상도 한 만큼 둘의 관계가 연인으로 종지부될 것이라곤 생각치 않았다.
다만 드라마 회차가 진행되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두 배우의 모습에 잠시 속아 '개연성이고 작품성이고 극본이고 다 무시하고 그냥 그렇게 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말을 아쉬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드라마에서 이진과 희도의 만남 부터 성장까지를 모두 깊이 공감했다는 의미일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결말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보내주는 마음이 참 이해가 되었다.
다소 앞서 말했던 따스함과는 그 거리가 있었지만, 나의 응원이 상대에게 닿지 못 할 때 상대는 얼마나 미안하고
나는 얼마나 무력할지를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드라마는 이를 이제껏 보여준 따스함이 아닌 현실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둘의 이별을 이해하고 마지막 까지 첫사랑이란 단어로 추억하는 둘의 기억을 존중한다.
이진과 희도를 응원한 것이 아닌, 지웅과 유림을 응원한 것이 아니었고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응원했던 나에게 이 결말은 새드엔딩이 아니다.
연인이 되는 행복한 감성보다 더 큰 울림을, 개인의 성장을 보여준 이 드라마는 나에게 있어 해피엔딩이었다.
연출을 맡은 정지현, 김승호 PD님, 극본의 권도은 작가님, 촬영에 빈태환, 김우성 감독님,
미술과 음악을 담당하신 김소연, 임하영 선생님 모두 진심으로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역시 드라마에서 정말 많은 울림을 준 김태리, 남주혁, 김지연, 최현욱, 이주명 배우님 외 모든 배우님들께도 진심으로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린다.
좋은 작품과 함께할 수 있던 2022년 봄을 절대 잊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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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이런 좀비 영화는 없었다!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 일본 저예산 좀비 영화 / 충격적인 반전과 재미 / 배꼽 빠짐 주의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후기입니다.
어찌보면 쿠키영상이 전부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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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쇼크 웨이브2> 메인 예고편
뛰어난 폭탄 제거 요원 ‘판청펑’(유덕화)은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는다. 이로 인한 좌천 통보에 분노한 ‘판청펑’은 폭탄 제거반 동료 ‘둥저원’(유청운)과 애인인 ‘팡링’(니니)에게 등을 돌리고 자취를 감춘다.
5년 뒤, 홍콩의 한 호텔 행사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그곳에서 쓰러져 있는 그가 발견된다. 사고로 기억을 모두 잃은 채 깨어난 ‘판청펑’은 자신에게 극비 임무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점점 세력이 커지는 테러 집단 ‘부활회’에 잠입해 그들의 계획을 알아내야 하는 것.
마침내 그들의 목적을 알게 된 ‘판청펑’, 그리고 폭탄 제거반, 반테러리즘 특수부대 팀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핵폭탄으로, 홍콩국제공항뿐 아니라 국제상업센터, 국제금융센터, 주요 지하철 역까지 모조리 쓸어버릴 계획에 경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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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재개봉 예고편
기차가 서로 스쳐 지나갈 때 ‘기적’이 일어난대~
그래서 소년이 바라는 건.. 화.산.폭.발?!!나는 엄마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삽니다. 동생 류랑 아빠는 저기 멀리서 따로 삽니다. 엄마랑 아빠랑 맨날 싸우더니,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습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 가족들이 다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저기 저 위에 있는 화산이 폭발해서 아빠랑 류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됩니다. 형은 화산이 꼭 폭발하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하는데 철부지 내 동생은 가면라이더가 되고 싶다고나 하고, 정말 어린이 같은 소원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말이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가 반대편에서 서로 달려오다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싸~ 그럼 거길 가서 소원을 빌면 되겠네! 그래서 좋아하는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은 친구랑,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친구랑 거길 가려고요. 동생도 오라고 해서 나랑 같은 소원을 빌라고 해야겠어요. 난, 우리 가족이 꼭 같이 살았으면 좋겠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