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usmesentez2025-05-13 11:01:12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진실의 아이러니 - <레볼루셔너리 로드>
페르소나, 우리가 가면을 쓰는 이유는 '별남'을 감추기 위해서다. 모든 인간은 별나다. 너무나도 다른, 독창의 존재들은 생존을 위해 한 데 모여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물질과 감정을 공유하고, 나아가 전인류적 진화를 도모하기 위해 규칙을 정했다. 규칙은 사회화 교육을 통해 계승되며 사회를 지탱하는 패러다임이 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유사한 겉모습을 띠게 되었다. 교육은 존중과 배려를 알려줬지만, 인간의 DNA에 새겨진 독창성까지 바꿀 수는 없었으므로, 공존하기 위해선 가면을 써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안정은 곧 예측 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삶은 불확실의 연속이므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물질적 안정을 위해 직업을 갖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가정을 꾸리며, 개인적 안정을 위해 취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변수를 줄이는 하나의 시도일 뿐, 삶은 계속해서 당신을 흔들며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시험에 빠트려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안정은 필연적으로 권태를 동반한기 때문이다. 불안을 피해 안정을 찾아왔더니, 편안함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다시 혼돈으로 들어가려는 인간이라니. 어째서일까?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규칙은 우리를 모으게 만들었지만, 삶의 모습을 규격화함으로써 말하자면 삶의 '이상형'을 만들었다. '세후 월급은 얼마고, 집은 몇 평이며, 결혼과 출산은 몇 살 즈음이 적당하다'는 둥 마치 산처럼 켜켜이 쌓여 올려진 일생 과업을 충실하게 오르는 것만이 참인 명제로 여겨지면서, 평생 정상을 좇아야 하는 추격자 신세가 됐다. 공인된 삶의 형태 속에서 가면은 두터워졌고, 스스로를 돌보기는 더 어려워졌으며, 독창적 의미 창출은 실패했다. 가면을 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도망쳐 하산하거나,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에 오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별난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 재미있는 콘텐츠로 자신의 주가를 높이는 유튜버, AI를 활용해 부를 창출하는 사람을 대하는 스스로를 떠올려보라. 질투? 경외? 멸시? 존경? 독창 DNA에 의해 그 '고유성' 을 응원하면서도, 학습된 규칙에 의해 그 '이질성'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마음이 심하게 비틀리면 '운이 좋았어, 나도 금방 할 수 있는 거야.' 같은 볼멘소리로서 자신과 같은 차원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까지 하게 될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르다는 이유로 숭배되고 또 부정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는 휠러 부부와 평범한 두 가정(밀러 부부와 기빙스 가족)이 교차로 갈등하며 별난 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두 얼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꿈 많던 청년 프랭크 휠러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는 직장인1이 되었고, 진취적인 배우였던 에이프릴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었다. 지루한 일상에 몸부림치던 그들은 프랑스 '파리'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직장 동료들과 이웃사촌에게 자랑스럽게 포부를 늘어놓지만 그들의 반응은 썩 달갑지 않다. 눈으로는 웃었지만, 입으로는 씹고 있었다.
그 간극을 눈치챈 휠러 부부가 그들을 조롱한 것은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면 속에 숨어 도전할 용기조차 없는 그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계몽을 선보이려는 마음까지 가졌을 지 모른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서로를 듬직한 동료삼아 거대한 혼돈 속으로 투신하여 거대한 안정을 꾀하려했지만, 아주 작은 현재의 달콤함이 둘을 갈라놓았다. 프랭크는 안정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 정상에 오르기를 선택했고, 에이프릴은 권태를 참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권태를 더 큰 안정으로 덮으려는 이와 새로운 자극으로 권태를 잊으려는 이. 행복이라는 목표는 같았지만,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에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미쳤다는 게 제대로 사는 거라면, 나는 미쳐도 상관없어.
극 중에서 가장 유별난 것처럼 보이는 존(기빙스 부부의 아들)은 휠러 부부 사이의 불편한 진실을 파고들며 간극을 넓힌다. 파리로 떠나려는 이유는 새로움이 품어낼 긍정적인 미래 때문이 아닌 공허한 현재 때문이라는 사실. 밝은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현재를 참아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벌이는 시도는 도전이 아닌 도망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폭로한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휠러 부부는 세상 속에 편입하기 위해 도망치고자 했다. 다시 말해서, 권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찾고자 했다. 물론, 파리 정착에 성공했다고 한들 몇 해 지나지 않아 다시 도망쳐야 했을 것이다. 안정과 동시에 권태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또 다시 도망칠 것인지, 정상에 오를 것인지 물어올 것이기 때문에. 머무를수도 떠날수도 없었던 에이프릴은 결국 아주 먼 곳으로 영영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권태를 무릅쓰고 정상을 향해 박차를 가하던 프랭크는 에이프릴을 잃고 나서야 어느 쪽에도 낙원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안정은 권태를 부를 것이고, 권태는 안정을 요할 것이니 우리는 영원히 흔들릴 것이다. 도망칠수도 머무를수도 없는 삶의 굴레에서 조난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가면을 벗는 것. 공공의 의미가 아니라 나만의 의미를 창출해낼 것. 만들어진 낙원을 찾지 말고 직접 그 낙원을 만들어갈 것.
- 1
- 200
- 13.1K
- 123
- 1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