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5-13 16:45:44
5-6월 재개봉 영화 모음 zip.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부터 스튜디오 지브리까지!

5월에도 여전한 재개봉 소식 들려드려요.
6월 재개봉 소식도 미리 함께 전달해 드리니 놓치지 마세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개봉 40주년을 맞아 오리지널 리마스터링으로 돌아온 <아마데우스>,
스튜디오 지브리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까지 스크린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 기획전이 개최되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모노노케 히메>, <천공의 섬 라퓨타> 등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
*재개봉 영화 목록 및 일정은 변경,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극장별로 개봉영화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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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사의 손꼽히는 거인
7★/10★
〈길위에 김대중〉은 탄생부터 이른바 ‘양김 분열’ 직전까지의 김대중의 삶을 다룬 영화다(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진다고 한다). 90년대생인 내게, 이 영화는 그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정도로만 막연히 알고 있던 양김 분열 이전의 김대중의 정치적 여정을 살필 수 있던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후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민주주의, 평화, 지식인, 연설가의 이미지가 흐릿하게 중첩되어 있을 뿐이었던 그가 신념을 가진 협상가, 전술가, 의회주의자의 이미지로 재각인되었다.
1924년 전라도의 한 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사회에서는 해운회사를 세워 승승장구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는 사업을 지키기 위해 우익 단체에 가입했던 것이 빌미가 되어 인민군에게 큰 고초를 당했고, 전후 부산에서는 권력을 향한 이승만의 야욕(이와 반대로 이승만의 ‘건국’과 ‘호국’ 업적을 기리는 영화로는 〈기적의 시작〉이 있다)에 크게 분노했다. 이 두 경험은 정치인 김대중의 향로를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를 해야 공산당을 이긴다’라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사업과 달리 정치인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연이어 낙선하다 38의 나이에 국회에 입성했다. 김대중은 정치 입문 초창기부터 탁월한 언변과 논리로 주목받았다. 박정희가 왜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김대중 하나를 못 당하느냐고 닦달했다는 대목은 정치인 김대중에게 말이 평생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주리라는 걸 짐작케 한다.
김대중에게는 평생에 걸쳐 추구할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있었다. 국가 주도 경제가 아닌 대중 경제론, 중앙집중이 아닌 지방 자치제 등은 이를 위한 구체적 정책 제언이었다. 더불어 의회가 필연적으로 협상을 통해 굴러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점을 인식한 그의 현실 감각이 흥미로웠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을 무조건 반대하는 대신 이를 국가 발전과 민주주의 제도 확립과 연결할 방안을 제시했다. 즉 그에게 정치는 전부냐 제로냐(all or nothing)의 문제가 아니라 이득을 보는 협상을 이끌어내는 행위였다. 이런 태도가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운동가‧혁명가라면 타협할 줄 모르는 불굴의 정신으로 목표하는 바를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에 소속된 국회의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대중과 함께하는 정치인이라면 늘 그럴 수만은 없다. 이들의 방법론은 달라야 한다. 전제정치의 수장이나 왕이 아니라면 협상과 타협은 불가피하다. 영화는 정치인 김대중이 꺾이지 않는 신념과 협상할 줄 아는 현실감을 함께 가진 정치인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를 현대 한국 정치의 손꼽히는 거인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집권기에 정치 활동을 하면서 김대중은 여러 고초를 겪었다. 100만 명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이고, 당시 여당이 엄청난 금권 선거를 했는데도 간신히 대선에서 승리하자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김대중의 성취는 지역감정으로 줄곧 폄훼되었고(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는 어떻게 김대중에게 지역감정의 족쇄가 씌어졌는지를 다룬다), 심지어 정보기관에 의한 암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탄압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많은 이가 고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멈추지 않았다. 해외에 망명 중일 때도 유수의 언론사에 기고문을 보내거나 인터뷰에 임했고, 강연을 진행하는 등 정치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민주화의 상징 김영삼과는 미묘한 연대를 이어가며 끝내 직선제를 쟁취해냈다. 그리고 언제나 김대중의 곁에는 그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김대중 석방이었다는 데서 그가 많은 사람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적확히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의 시대정신을 제시하며, 단호하면서도 유연하게 원하는 것을 얻어낸 그의 정치 행로는 뭇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달리 사뭇 감동과 감탄을 자아내는 데가 있다.
정치인을 회고하는 영화는 모두 나름의 관점이 있다. 〈기적의 시작〉(2023), 〈노무현입니다〉(2017), 〈문재인입니다〉(2023) 등의 영화는 모두 대중에게 해당 정치인을 어떤 가치로 기억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이 가치는 그 정치인이 살아온 시대를 대변한다. 〈길위에 김대중〉은 신념을 가졌으되 협상할 줄 아는 정치인 김대중의 가치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소구력이 있는 가치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집요함은 탄압‧협상‧개척의 질곡을 건너 끝내 꽃을 피웠다. 그가 살아간 시대는 지났고, 이제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김대중과 그의 시대가 빚어낸 무언가에 빚지고 있다. 대중 정치인과 운동가,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국면에 맞추어 대중과 함께 자기 영역을 넓힐 줄 알았던 정치인. 인물에 대한 호불호와 업적에 대한 평가가 갈릴 순 있겠지만, 누구도 김대중이 우리 현대사의 손꼽히는 거인이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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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을 자른다는 것의 의미
팔을 자른다는 것의 의미
<127시간>은 주인공 '아론 랠스턴'이 블루존 캐니언을 홀로 등반하다가 실족하고, 설상가상으로 바윗돌에 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 상태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설명이 스포일러가 아닌 것은,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영화의 한국 포스터 하단에는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꾼 감동실화’라고 적혀있기도 하다. 갇혀 있었던 시간을 정직하게 암시하는 ‘127시간’이라는 제목부터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탈출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좋은 영화라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특별히 생생한 영화들은 따로 있다.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 <마션>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든가 <타이타닉>, <죠스>처럼 재난을 다루는 영화들이 보통 그러하다. <127시간>역시 개인에게 닥친 재난으로써 보는 이로부터 한껏 집중을 이끌어낸다. 너무도 생생한 탓에 아론 랠스턴에게 닥친 시련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조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팔과 나의 팔이 일치를 이루고, 함께 갇힌 듯한 기분을 전해준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긴 시간 함께 갇혀 있다가 비로소 그가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할 때는 '그가 탈출했다'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탈출했다'는 기분마저 든다.
다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이 이야기는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는 과연 포스터 홍보 문구의 말대로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꾸었는가?'에 대한 점이 특히 그렇다.
내 생각에 아론 랠스턴은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 것 같다. 큰 돌에 팔이 낀 상태에서 팔을 자르고 탈출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끝까지 불가능한 일이다. 팔을 자르고 탈출한다는 이 기괴한 결정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그것을 불가능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애초 가능한 것을 선택한 것일 테니까. 그가 처음부터 팔을 자르고 뚜벅뚜벅 탈출하지 않았던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힘든 선택지가 아니라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팔을 자르고서라도 살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팔을 자른다는 행위를 불가능으로 치부하고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인데, 내 생각에 나라면 팔을 직접 자르느니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한 쪽 팔 없이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마취없이’ ‘직접’ 팔을 자르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팔은 레고의 그것이 아니니까. 너무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는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아닌 것을 선택해버린 사람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정당한 것 같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홍보문구의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트집 잡는 데에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한 사람을 예찬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을 종합해보면 이 이야기는 일종의 '인간승리' 서사로써 이해되는 듯하다. 사람들은 아론 랠스턴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과감하게 결단해서 살아남은 대단한 인물 정도로 요약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줄 수 있는 교훈이라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직접 팔을 잘라서라도 살아 남아라?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팔 하나 정도 잃고 살아남을 수 있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보면 직접 팔을 자를 용기도 생긴다? 내가 볼 때 그가 직접 팔을 자르고 탈출한 사례는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모범은 아니다. 이 영화가 진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 말하지 않으면 위기에 봉착한다. 둘째,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일이 늘 달콤하지는 않다.
아론 랠스턴은 말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자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론이 사랑했던 여자와의 달콤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여자친구는 “알려줘. 널 해제할 암호.”라고 말하는데 아론은 “그걸 알면 넌 나한테서 못 벗어나”라고 농담처럼 대꾸한다. 그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사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만다. 따지고 보면 아론이 블루존 캐니언에 갇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이유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알릴 수도 있었고, 단골 가게 직원에게 알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항상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약점을 알리지 않는 오만함.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객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탈출에 성공한 뒤에는 모험(여행)에도, 사랑에도 성공하는데 성공한 이후의 그는 이제 행선지를 꼬박꼬박 밝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겸손해졌다. 진정한 사랑이든, 일이든, 뜻하지 않은 위기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숨기지 않고 자꾸만 알려주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영화가 말하는 듯하다.
주인공의 재난을 우리가 부여받은 운명으로, 팔을 자르는 행위를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탈출하는 행위로 보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일이 늘 달콤하지는 않다는 깨우침도 주는 것 같다. 살다보면 큰 돌에 팔이 낀 것 같은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그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일수도, 팔을 자르고 탈출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는 없는 존재이므로, 기상이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듯이 주어진 운명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때로는 선택지가 아닌것, 불가능이나 다를바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운명을 이겨내고 새로운 국면으로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새로운 삶,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 늘 달콤한 것은 아니다. 마치 영구적으로 한쪽 팔 없이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운명을 극복하는 그 치열하게 끔찍한 선택이 결국 나를 나로서 살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27시간>은 주인공의 결정 그 자체보다, 그에게 그러한 불운이 닥친 이유에 더 집중하는 영화다. 그리고 팔을 자른다는 그의 선택이 해피엔딩으로 귀결되었으나 영구적인 후유증을 동반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오만함으로 쉽게 망가질 수 있으며, 자연재해처럼 닥쳐오는 운명을 이겨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논조의, 비관적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시각에서 <127시간>을 감상하다 보면 어쩌면 용기보다 두려움을 갖게 된다. 늦기 전에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낄 수 있기에 그렇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서댐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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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이례적이지만 흠잡을 곳 없는 개막작
[BIFF 데일리] 이례적이지만 흠잡을 곳 없는 개막작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리뷰
줄거리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감독: 김상만
출연: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독립 영화를 중심으로 개막작을 선정하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OTT 영화. 그것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OTT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0월 2일 영화제의 개막을 앞두고 진행된 기자회견에선 'OTT 영화인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과 응답이 연속적으로 오갔다.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은 이에 대해 ‘대중적이고 재밌고, 완성도가 높은 영화이며 OTT 작품에도 문이 열려있음을 말씀드리기 위해’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답했다.
이후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전,란>의 개막작 선정이 앞으로의 시장을 어떻게 바꿀진 알 수 없지만 일단 <전,란>은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의 말처럼 대중적이고 재밌고 완성도 높은 영화다. 쟁쟁한 배우들과 양면에 각각 다른 색을 장착한 각본, 다방향으로 치고 나오는 다채로운 액션, 빠르게 돌파하는 과감함까지 모두 갖춘, 흠잡을 곳이 없는 작품이다.
<전,란>은 선조의 재위 기간에 일어난 임진왜란의 전, 후사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영화는 비슷하지만 다른 운명을 타고난 두 남자 종려와 천영의 우정과 증오, 각자의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인물들의 의지를 연료 삼아 나아간다. 그리고 흑과 백, 적과 청, 진실과 오해를 맞붙여 스파크를 튀기다 끝내 커다란 불꽃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은 이 커다란 불꽃을 가운데 두고 맡은 인물을 마음껏, 맛있게 요리해 내놓는다. 영화 <군도>이후 약 10년 만에 양반이 아닌 노비 천영이 되어 나타난 강동원 배우는 헤진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귀신같은 몸놀림을 보여주고 그에 대척하는 양반 종려를 맡은 박정민 배우는 변화하는 인물의 감정을 진중하게 무너뜨리고 재조립한다. 비겁한 임금 선조를 맡은 차승원 배우는 자칫하면 모든 게 과도해 보일 수 있는 인물을 한 끗 차이로 비틀어 단단하게 만든다. 의병대와 일본군의 선봉장 겐신을 맡은 진선규, 김신록, 정성일 배우의 김자령, 범동, 겐신은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깊은 매력을 뽐낸다.
<전,란>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각자의 정도(正道)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들은 주어진 운명과 계급에 순응하기보단 그에 맞서길 선택하고 자신에게 꼭 맞는 무기를 손에 든다. 각 무기에 주인의 운명과 의지가 투영되고 그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단단히 막혀있던 계급과 운명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간다.
비슷하지만 다른 운명을 타고난 종려와 천영은 허물어지고 있는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지키는 자와 허무는 자가 되어 대립한다. 두 사람은 적, 청색의 도포를 두르고 흑, 백의 검을 든 채 마주 선다. 서로의 거울이자 한 덩어리의 실체와 그림자 같기도 했던 두 사람은 갈등의 끝에서 서로를 그림자로 둔 하나의 온전한 실체로 독립한다. 이 과정은 마치 애증 관계 연인의 이별 같기도 하고 고상한 성장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쟁쟁한 배우들과 양면을 가진 각본, 다방향으로 치고 나오는 다채로운 액션까지. 흠잡을 곳 없이 매력적인 영화 <전,란>은 다가오는 10월 1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며 10월 2일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과 이어지는 영화제 기간 동안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상영시간]
10월 2일(수) 18:00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10월 3일(목) 16:30 영화의전당 중극장
10월 4일(금) 12:30 CGV센텀시티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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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데타 / Benedetta, 2021
작년 12월 1일, 국내에 개봉한 영화 <베네데타>는 총 13,547명의 관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상업적인 흥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국내 개봉 당시 본 작품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 모았습니다. - 그 이유는 본 작품의 포스터인데, 그 모습이 "수녀"가 한 쪽 가슴을 노출시켰거든요.
문제는 이게 국내로 들어오면서 수정된 것이고, 문제의 해외 포스터에는 '유두와 유륜'까지 모두 노출이 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수녀"라는 단어로 알 수 있듯이 종교와의 관련성도 있어 보기도 전부터 모든 이들의 주목을 이끌었죠.
그렇게, 까먹고 있다가 이번 2월 25일에 "왓챠"에 <베네데타>가 공개되었는데요. - 과연, 어떤 작품이 있는지?,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17세기 유럽, 한 소녀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한 수녀원에 도착합니다.
그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은 소녀의 이름은 "베네데타", 시간은 흘러 한 명의 수녀로 어엿하게 성장한 그녀에게 이상한 일들이 하나둘씩 발생하는데요.
'그녀가 성녀인지, 아님 사기꾼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교황청에서 대사까지 내려오는데...진짜 뭐가 맞을까?
1. 진짠가?
영화 <베네데타>는 실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레즈비언 수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 한들, 외설적인 포스터와 "종교"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 해당 작품의 131분은 섣불리 손대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 "하느님"을 보여줘 '어찌 운을 띄어할지?'부터 고민이 드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해당 영화는 그녀를 바라보는 캐릭터들과 함께 관객들을 동일시하려 합니다.진짜 맞나?
시작과 함께 성모상이 그녀에게 떨어지거나 떠돌이 용병들에게 위기에 모면하는 모습, 그리고 빙의를 의심케하는 모습 등 해당 장면들은 그녀를 "성녀"로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믿음에 부응하려는 듯, 하느님마저 등장시켜 이를 확신으로 낙인 시키려 합니다.
관객들마저 그녀를 일말의 의심 없이 "성녀"로 받아들이던 그 순간, 하나의 의심할 만한 구석을 보여줍니다.2. 이게, 왜 나오는데?
극에서 "성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에 "원장 수녀"는 '성흔이 나온 사람들에게는 하나같이 월계관이 씐 머리에도 있었다'라는 말을 꺼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내 머리에 피를 흘리는 "베네데타"를 다음 장면에서 보여주는데요.
근데, 그녀의 발밑에 유리 조각이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극 중 한 등장인물에게도 보여줍니다. - 왜, 이런 장면을 보여주었을까요?진짜, 맞나?
영화 <베네데타>에서 나오는 수녀 혹은 신부, 그리고 교황청까지 모두 신을 섬기는 자들로 등장하지만 그 누구보다 현실적인 인물들입니다.
극 중 "베네데타"를 수녀원에 인도하지만, 지참금을 주지 않는 이상 받아주지 않는데요.
이에 "부자는 지옥에 갈 수 없다"라는 말로 거래를 하려는 원장 수녀와 비단을 물에 빠트려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라는 말은 그들이 말하는 신성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관객들에게 말하고자는 바는 '그녀가 성녀인지, 아님 사기꾼인지?'가 아님을 의심하게 됩니다.3.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이후 영화는 "진실"에 대해 이런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서로 실오라기 없는 상태에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 "베네데타 - 바르톨로메아"의 관계와 이를 파헤치려는 '바르톨로메아'에게 "고문"은 대비를 이룹니다.
분명히, 소리가 새어 나오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다를뿐더러 '진실'의 정의도 달랐습니다.
"베네데타 - 바르톨로메아"의 관계에서는 그들 스스로가 주체였다면, '바르톨로메아의 고문'은 그들 스스로가 아닌 '신'에게 가려져 있으니까요.
마치, 흑사병에 걸린 것을 숨기려는 교황청 대사의 옷깃처럼 말이죠.결국, 뭐가 맞을까?
마지막에 보여주는 시민들의 믿음은 "양가성"을 더 부각시킵니다.
자신을 의심해 병에 걸린 자들의 등장으로 공포심에 떠는 시민들의 모습은 앞서 '그녀가 성녀인지, 아님 사기꾼인지?'를 의심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마지막에서 그 정답을 말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르톨로메아'가 '베네데타'에게 '진짜를 말하라'라고 하지만, 이내 옷을 입고서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는데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흑사병에 걸린 사실을 숨기던 교황청 대사처럼 말이죠.4. 그래도, 청소년 관람불가
단순하게 '야한 영화(?)'쯤으로 봤다가 된통 당했지만, <베네데타>는 이에 대한 기대치를 완전히 저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이상을 충족시켜준다는 것이 맞겠죠.
노출이 있다는 점도 있지만, 이를 구성하는 전체적인 장면부터 감탄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베네데타>를 연출한 "폴 버호벤"은 <원초적 본능>으로 커리어가 설명되니까요)
어찌 보면, 최근에 보았던 <모럴센스>때문이라도 더 만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극 중 "베네데타"가 성을 봉쇄해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장면이며, "진찰"을 확인할 서류를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 어째?
※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해당 영화를 야외상영을 했다는데,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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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 돌아 마주한 자신의 원죄
2010년부터 매년 가을마다 기존 장편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와 장르로 퀄리티 높은 단막극을 보여준 KBS 드라마 스페셜이 코로나 상황을 맞이한 시장 변화에 맞춰 2021년부터 선보인 ‘TV 시네마’ 프로젝트로, 11월 23일 CGV 단독으로 관객을 찾아온 영화 유포자들 리뷰입니다. 얼마 전 ‘귀못’도 그렇고, 작년에도 사회의 현실과 미래 모습을 담아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등 각기 다른 장르의 ‘희수’, ‘F20’, ‘통증의 풍경’, ‘사이렌’으로 찾아왔던터라 익숙한 관객들도 많을 듯합니다. OTT 시장으로 인해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허물어져 반드시 변할 수밖에 없는 공영 방송이라는 틀에 맞추다 보니 아직 미완적 과정에 놓인 듯 보이지만 매해 시의적절한 이야기가 있어 관심 있게 지켜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번 작품 역시 극장에 개봉 뒤 Wavve를 통해 선공개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고 2022년 12월 28일에 TV로 방영될 예정이니 참고하시고요.※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영화 유포자들 정보 및 예고편
당신의 취미 생활은 온 세상이 알게 될 겁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며 결혼을 목전에 둔 유빈, 약혼녀 선애가 해외 업무차 자리를 비우자 그의 오랜 친구 상범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클럽으로 그를 이끌고 갑니다. 그리고 어느 방에 끌려가 유흥을 즐기다, 쓰러지게 되는데, 일어나 보니 전날 밤의 기억과 핸드폰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급하게 돌아온 선애를 우여곡절 끝에 맞이하고 급하게 새로 폰을 개통하는 찰나, 의문의 사내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3천3백만 원을 구해오지 않으면 은밀한 취미를 세상에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받는데...
예고편│ Trailer
영제: The Distributors│감독: 홍석구│각본: 정우철출연진: 박성훈, 송진우, 박주희, 지민혁, 김소은, 임나영 외 多장르: 드라마, 범죄, 스릴러│상영 시간: 101분국가: 한국│등급: 15세 관람가평점: 관람객 9.0, 네티즌 7.46, 기자·평론가 4.0, 왓챠피디아 2.2제작: KBS , 아센디오│배급: 와이드 릴리즈(주)개봉일: 2022년 11월 23일시청 가능 서비스: 현재 극장 상영 중, 이후 Wavve 공개# 영화 유포자들 평점
사회 문제 인식을 전한다
202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물론, 국제 사회에도 알려지며 외신들도 엄청난 주목과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N번방 사건’에 대한 고찰을 담아내려 합니다.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일반적 상황이라기보다 협박 받았지만 과거 자신의 행위로 인해 과연 누가 범인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강화를 향한 개개인 스스로의 의식 변화를 요구하는 모양새를 취하죠. 이는 현재 최악의 상황에 놓인 유빈이 회상하는 과거로 알게 되는 범죄 행위와 뻔뻔함이 묻어나 그가 말하는 인간적 해결 방법이란 모순적 발언에 씁쓸한 분노를 만듭니다. 결국 가해자를 마주한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거울을 본 듯 놀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자신의 범죄 흔적이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왔다는 걸 느껴지게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필수가 되어버린 채 점차 익명성이 하나의 특징이 된 소셜 네트워크의 빈틈을 파고든 사이버 범죄 속 숨어있는 가해자의 민낯에 접근하며 분노로 시작해 권선징악의 희망 사항을 전달합니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호주에서 접한 ‘L 씨’처럼 끝까지 추적해 붙잡힌 그 실체에 어쩌면 약간의 카타르시스도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브라운관에서 주로 활동한 박성훈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죄의식과 함께 혼돈에 빠지는 모습은 앞서 얘기한 그 미묘한 경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도유빈이라는 인물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KBS 드라마 스페셜 TV 시네마라는 테마로 제작된 영화라고 하지만, 아직은 그 사이에서 헤매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보여주기엔 미장센이나 복선이 단막극 그 이상의 연출이 보이진 않고, 대사 역시 의도적이긴 하나 장면과 어울린다 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공영 방송의 가이드라인이 케이블이나 OTT에 근접하기엔 어려웠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엔딩의 미러 장면은 노골적이라 해도 확실히 전달해 주고 싶은 메시지를 채워준 듯해 기억에 남았습니다. 과도기라 장점도, 단점도 명확했지만 앞으로 계속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줄 KBS 드라마 스페셜 TV 시네마에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한 줄 평 : 개개인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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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 있느냐’가 아닌 ‘어디를 택했느냐‘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나 운 좋게 브루클린으로 홀로 이주하게 된 에일리스의 이야기는 겉보기에 특별할 것 없는 이민자의 성장 서사다.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 그리움 속에서 미화되는 아일랜드의 풍경.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집일까 새롭게 뿌리내리려 애쓴 곳이 진정한 집일까? 벗어나고 싶었으나 막상 떠나오니 그리워진 아일랜드와 새로운 땅 브루클린 사이에서의 고민은 두 남자와의 관계에서 갈등하는 에일리스로 그려지는데, 그녀는 아일랜드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듯한) 토니, 곧 브루클린에 다시 돌아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과 ‘집’에 대한 고찰을 따뜻하게 그려냈다고 평하기 전에 두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첫째, 브루클린에서 혼자 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이 에일리스의 진정한 집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둘째, 에일리스는 과연 한번이라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자신이 속했던 환경과 맥락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적이 있는가? 반대로, 규정되는 정체성에서 자유로워야만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 말할 수 있는 걸까.
브루클린에서 만난 이탈리아 남자, 토니가 에일리스 그 자체를 사랑했다고 보기 어렵다. (각종 조건과 상황에서 자유로운 사랑만을 진정한 사랑이라 보는 것에 대한 반박은 논외로)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아마 아일랜드에서 둘이 만났다면 사랑은 차치하고 친구가 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에일리스에게 토니는 능동적으로 택한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타지에서 너무 외로웠던 나머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에 가까워보인다. 무엇보다 그녀는 지루한 아일랜드를 벗어나기 위해 대서양을 가로질러 왔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일랜드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녀에게 더욱 선명해졌다. 아일랜드에선 똑똑하고 예쁜 언니의 그늘에 가려졌다면 브루클린에선 어디를 가도 무뚝뚝하나 심성은 착한 ‘아이리시’ 여자였다. 애초에 토니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던 이유도 그녀가 ‘아일랜드’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일랜드에 돌아가 만난 짐이 에일리스에게 더 어울리지 않나 생각했다. 언니의 죽음과 미지의 땅 미국에서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주목을 받는 것 또한 썩 유쾌하진 않았으나 최소한 짐 앞에서의 에일리스는 더 이상 ‘아일랜드’ 여자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결국 에일리스는 아일랜드에서뿐 아니라 브루클린에서도 주어진 환경과 맥락 속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그렇기에 영화에서처럼 브루클린이 에일리스의 진정한 고향이라 결론 짓기도 애매하다. 영화는 브루클린이 에일리스의 삶에서 ‘정답’이자 일련의 사건들을 끝으로 에일리스가 골라낸 최종적인 해답인 마냥 결말을 지으나 사실 그 어느 곳도 그녀에게 정답이 되어줄 수 없다. 다시 말해 이주민에게 ‘진정한 집’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집’이라 선택할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들 사이에서 고른 곳이 그 순간 나의 ‘집’이 될 뿐, 있지도 않은 정답을 고르기 위해 끙끙댈 필요는 없다.
곧 에일리스는 아일랜드와 달리 브루클린에서 더 자유로웠기 때문에 브루클린으로 돌아간 게 아니다. 오히려 브루클린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을 규정하는 각종 정체성과 맥락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졌다. 에일리스의 주체적인 선택 이후로 타인이 규정하는 그녀의 정체성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 고로 영화 <브루클린>의 핵심을 진정한 집의 의미가 아닌 에일리스 개인의 ‘선택’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에일리스가 ‘어디에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어디를 택했느냐’가 그녀를 더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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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2] (브런치작가/영화리뷰/결말x) 진짜 저스티스리그가 찾아왔다!
잭 스나이더가 하차하면서 자신의 버전을 완성하지 못했던 저스티스 리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2017년 조스웨던이 완성한 버전은 여러모로 평가가 좋지 못했죠.
이번 HBO max에서 공개된 영화는 한국에서는 Vod로 공개 되었어요.
4시간의 상영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완성도 자체는 조금 올라갔어요.
여전히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전 버전에 비해서는 캐릭터 서사가 나아졌고, 액션 장면도 좋아졌어요.
또한 음악감독을 맡은 정키XL의 음악도 영화에 힘을 줍니다.
마지막 전투도 조금 바뀌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 합니다.
잭 스나이더의 다음 편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래도 좀 더 나은 저스티스 리그를 볼 수 있어 좋네요.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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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사랑의 표현 / 파도가 지나간 자리
-bgm Sad Emotional Piano - AShamaluev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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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몬스터: 어둠 속의 살인> 예고편
빅풋이 나타나는 화이트 홀 마을에서는 많은 여성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실비아와 제이미의 친구 데이나도 실종하고, 빅풋이 여성 실종 사건의 범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던 중 실비아와 제이미는 데이나를 찾기 위해 알렉스와 만나게 된다.
실비아는 알렉스의 집에서 머무르며 실종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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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퍼지: 포에버> 메인 예고편
매년 단 하루, 12시간 동안 살인은 물론 어떤 범죄도 허용되는 미국의 연례 행사 ‘퍼지’ 데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정착한 멕시코 부부 ‘아델라’와 ‘후안’,
텍사스 부촌에서 마구간과 농장을 꾸리며 안락하게 살아가는 ‘딜런’ 가족까지
모든 이들이 긴장감 속에서 ‘퍼지’ 데이를 맞이한다.
다행히 큰 사고없이 ‘퍼지’ 데이를 보낸 이들은 공식적인 ‘퍼지’ 종료 사이렌이 울리자 일상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영원한 퍼지’를 통한 ‘미국의 정화’를 외치는 추종자 세력이 등장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안전을 위해 멕시코 국경까지 이동해야 하는 ‘아델라’와 ‘후안’, 그리고 ‘딜런’ 가족은
과연 공권력과 법의 통제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영원한 퍼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시작만 있을 뿐, 더 이상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퍼지’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