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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비2025-06-23 16:08:26

엉망진창이어도 괜찮아

영화 <썬더볼츠*> 후기

당신의 마지막 마블 영화가 무엇인가? 대부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끝으로 마블과 작별했을 것이다. 워낙 많은 팬들이 타노스를 이기는 결말을 보기 위해 달려왔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이후 등장한 마블 작품들이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두 번째 이유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그래도 십 년을 마블 팬으로 살아온 시간이 있으니 한 번에 포기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나오는 영화마다 굳이 감상하며 불만만 쌓여가고 있을 때쯤 마블의 마지막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 영화가 개봉했으니 그게 바로 <썬더볼츠*>다.

물론 <썬더볼츠*> 역시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초기 마블 영화의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보면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꽤 많은데 이들을 모두 알아보려면 섭렵해야 하는 영화와 드라마도 많아 마블 입문자들은 물론, 엔드게임 이후 탈주한 팬들 역시 가볍게 접근하긴 쉽지 않다. 아마 나 역시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마블과 작별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마블의 마지막 희망이라 부르려는 이유를 몇 가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마블을 사랑했던 한 팬의 (구구절절하게 작성한) 부치지 않을 편지라고 생각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1. 매력적인 캐릭터의 조합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이렇다. 블랙 위도우의 뒤를 잇는 나타샤의 동생 '옐레나', 윈터 솔저 '버키', 전 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 러시아 슈퍼솔저 '레드 가디언', 앤트맨에서 빌런으로 등장했던 '고스트', 정체불명의 존재 ''까지 총 6명이다. 태스크 마스크는 등장하자마자 퇴장하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이 6명의 조합은 도무지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각양각색의 조연들이다. 주연 급이라곤 그나마 마블 영화에 다수 출연해 이름 정도는 알려진 윈터 솔저뿐이다. 특출난 인물이 없어서일까? 이들의 시너지는 생각보다 괜찮은 맛을 만들어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만났지만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손을 잡기도 하는 그야말로 생존 우선주의 인물들이다. 틱틱 대면서도 기꺼이 서로의 등을 맞대고 싸우는 익숙한 모습에 옛 마블의 향수가 가끔 아른거리기도 한다. 이처럼 잘 만든 조연들, 열 주연 안 부럽다! (티켓 파워가 적은 건 슬프긴 해도 말이죠.)

 

 

 

2. 완벽한 영웅은 이제 없다


안타깝지만 이젠 완벽한 영웅은 나오기 힘들다. 왜냐하면 아무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제작자도, 팬들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은 엄청 착하거나 나쁜 놈도 아니고, 범접할 수 없는 초능력을 가진 이도 아닌 우리와 같은 평범함을 가진 이다. 마블 세계관 속에서도 블립 이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서로에 대한 갈등이 높아진 설정을 사용하고 있다. 영화 밖에서만 봐도 참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 역시 코로나로 인해 우울감이 높아졌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텅 빈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마블도 새로운 영웅 하나를 만들어 냈다. 바로 슈퍼맨처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졌지만 멘탈이 약한 인물 '밥'이 그리는 '센트리'와 '보이드' 캐릭터다.

 

 

영화 속 보이드의 능력은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강력하다. 사람을 그림자 형태로 만들어 각자의 고통이 담긴 공간(셰임룸)으로 보내버리는 능력을 가졌다. 영화 속에서는 옐레나의 레드룸과 밥의 다락방이 나왔지만 윈터 솔저의 공간이 나왔다면 더욱 끔찍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이드가 폭주해 모두를 가둬버리기 전, 썬더볼츠*는 합심해 그를 제어한다. 평생 누군가를 죽이거나 고통을 주었던 이들이 정반대의 방법을 통해 모두를 구출해낸다. 실은 모두가 누군가가 자길 멈춰주길 바랐기 때문일 테고, 결국 그들은 밥을 보이드로부터 구해내면서 그들 스스로도 구원받았다. 오늘날의 영웅은 이처럼 과거를 받아들이고 다시 나아가는 이들로 다시금 탄생했다.

 

3. 어벤져스를 놓지 못하는 자는 누구인가

<썬더볼츠*> 제목 뒤의 *의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는 애스터 리스트(asterisk)로, 표시나 수정이 필요한 단어에 붙는다. 그리고 나는 발렌티나의 '뉴 어벤저스' 소리를 듣자마자 마블과의 영원한 작별을 선언했다.

 

 

 

이미 팬들 입장에서는 엔드게임 이후 어벤져스는 끝났다. 잘 보냈다고는 말 못 해도 어벤져스는 누군가가 대체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모아놓고 '뉴'어벤저스 명칭을 붙인다 한들 누가 인정이나 할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영화에서도 어벤져스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썬더볼츠는 썬더볼츠로 남겨놓고, 어벤져스는 어벤져스로 남겨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건 마블을 보면 뼈저리게 알 수 있다. 이젠 수습할 수도 없는 방대한 마블 세계관 속에서 그들도 언젠가 그들만의 길을 찾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작성자 . 주비

출처 . https://blog.naver.com/jub_dlrjtwjrjt/223908814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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