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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4 23:26:58

눈물이 흘러 <습도 다소 높음>

한국영화리뷰 4 - <습도 다소 높음> (고봉수, 2020)

 

<습도 다소 높음> (고봉수, 2020)은 영화감독과 배우, 극장 사장과 직원의 험난한 하루를 그리고 있다. 영화 <젊은 그대>GV 행사가 있는 날, 주연배우 주환(고주환)’은 택배 배달을 하다가 감독(이희준 )’의 전화를 받는다. 감독은 주환에게 배급사에서 상영 프린트를 다시 받아서 극장에 가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단역배우 승환(백승환 )’은 요란한 수트를 입고 소개팅을 나간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GV가 있는 극장을 찾아가지만 극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정부 정책을 핑계로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극장 쪽을 볼까. 경영난으로 폐업 위기를 맞은 극장은 아르바이트생 찰스(김충길)’가 홀로 문을 연다. 다른 직원들이 경영난으로 인해 전부 잘린 뒤 혼자서 일을 하던 찰스는 사장과 급여 인상을 협의하려 하지만 사장은 협조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관객을, 적어도 나를 웃게 만드는 지점은 이 영화가 독립영화계를 그리는 방식이다. 감독은 본인이 속해 있는 영화계의 모습을 정확하게, 때로는 과장되게(과연?) 묘사하면서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젊은 그대>의 감독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방문 명부 작성에 협조하지 않는다. 유명인이고 공인이라 개인정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GV 행사에서는 겉멋이 잔뜩 든 목소리로 영화사조를 줄줄 읊으면서 자신과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그런 영화에 대해서 평론가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의 유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감독이 없는 곳에서는 영화가 별로라서 짜증이 난다며 험담을 한다. 웃음을 주는 캐릭터는 감독뿐만이 아니다. <젊은 그대>의 배우들은 감독의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출연작을 보여 주기 위해서 형제들을 전부 초대했지만 정작 얼굴은 단 한 번도 비추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인물들을 보며 관객들은 짠내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독립영화계 밖에 있는 인물들은 어떨까? 극장 직원 찰스는 그들이 무슨 영화를 어떻게 찍었든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방문객들의 체온을 확인해야 하고, 방문 명부 작성도 부탁해야 하고, 팝콘도 튀겨야 하고, 음료수도 준비해야 하고, 입장도 안내해야 하고, GV 진행도 도와야 한다. 더구나 다른 직원들이 다 잘린 탓에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 고객이 나름대로 알아주는독립영화 감독이든, 이 감독을 보기 위해 미국에서 온 외국인 팬이든 관계없다. 바쁜 찰스에게 이들은 조금 별난 진상손님일 뿐이다. 이 영화 속에서 영화인과 비영화인들은 마치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서 발을 한 뼘 정도 뗀 채 작품을 위하는 영화인들의 진지하고 헌신적인 태도는 비영화인들에게는 소위 꼴값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감독 또한 비영화인들, 영화계 밖의 인물들에게 가까운 시선으로 영화인들을 바라본다. 그러니 그들이 우습게 보일 수밖에.

 

 

 

 

 

그러나 작품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비웃기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순정에 가깝다. 무명배우는 감독의 다음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었어도, 스스로 카메라를 켜고 그 앞에 선다. 그는 다음 작품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을까? 아니, 그에게 다음 작품이 있기는 할까? 작품이 엎어진 감독은 또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극장에서의 하루와는 다르게, 그들의 또 다른 하루들은 제법 외롭고 씁쓸하다. 이 영화가 마냥 끝까지 웃긴 코미디 영화가 아닌 이유이다.


 

작성자 .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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