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주인공 경수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경수 형제의 부모님은 보이지 않는다. 돈을 버는 건 경수뿐이다. 일을 하기엔 너무 어린 동생. 경수는 침술을 익힌 한의사로서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벌이는 적당히 잘 된다. 나름 실력이 있는 침술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수에겐 페널티가 있다.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은 경수. 장님이기 때문에 지팡이가 없다면 일상생활이 어렵다. 그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했다. 숨소리, 발소리, 냄새, 속삭이는 작은 소리까지 상황 판단에 능한 경수. 경수가 침술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용한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이 역량의 힘이 컸다. 능력이 제법 있는 경수. 경수가 사는 마을에 어의를 뽑는 시험이 열렸고 주인공은 거기에 지원하려고 한다. 궁에서 나오는 월급이면 동생의 약도, 생활비도 충당할 수 있다. 그래. 한번 보는 거야. 다다른 시험장. 시험 문제는 경수 입장에서 좀 터무늬 없던 것이었다. 실 한 줄을 가지고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실 하나를 가지고? 이상한 문제에 의아해하며 출제자에게 태클을 거는 경수. '이 시험은 애초에 어불성설입니다!' 말 한마디에 어의 담당자였던 이형익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궁중에 입성한 경수. 경수가 근무하게 될 어의 집단은 위계질서가 분명했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사람이더라도 선임 대접을 깍듯이 해야 했다. 그런데 여느 군기가 심한 집단이 안 그랬나. 부조리도 있다. 앞이 안 보이는 경수. 나이 어린 선임이 반말을 찍찍 날리며 "약재를 저 칼로 정리해놔라"라고 지시한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해?'" "그러니까 하는 거야." 어떻게 경수가 그걸 다 해? 하지만 경수는 선임이 지시한 업무를 무탈하게 완료한다. 의외의 이유가 있었다. 경수는 낮에는 앞이 안 보이지만 어두운 밤에서는 시야가 들어오는, 병을 앓고 있는 주맹증 환자였던 것이다. 약초 정리도, 궁에서 연애질 하는 남녀에게 쌀자루를 날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단지 어려운 것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궁중에 들어올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것이다. 안 보이는 척해야 했던 경수. 그렇게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아예 못 봤으면 좋았을 텐데. 경수는 보지 말아야 할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청이 조선의 소현세자를 압송하고 8년 만에 세자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세자가 죽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침술사 경수였다.
익숙한데
어? 이런 영화 본 적 있다. 언제? 올해 여름에. 바로 <헌트>다. <헌트>는 5공화국 당시 삼엄했던 분위기를 핵심 키워드로 삼은 영화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사냥감을 '헌트'하며 우리 현대사에서 괄호 쳐졌던 역사를 질문한다. 어떻게? 기존에 존재했던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 당시 '아웅산 테러 사건'은 1983년에 일어난 명확한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의 중심 서사는 이정재 감독이 각본을 쓰며 창작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시간적 배경이 1983년인 이유가 뭘까? 극에서 제시되는 여러 사건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글쓴이는 '5공화국의 말로를 맞이하기엔 몇 년 남았기 때문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남아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 2022년에 다시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올빼미>가 취한 노선도 <헌트>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인 안태진 감독은 조선왕조실록에 쓰여있는 '소현세자가 학질로 사망했다'라는 문장에 호기심을 얻고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안태진 감독을 직접 만나 여쭤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의도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히 시대극의 틀을 빌려와서 재미있는 스릴러'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올빼미> 역시 <헌트>와 비슷한 화법을 쓰고 있다.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대립하는 키워드는 '보다'와 '보지 않는다'라는 대비다. 주인공 경수가 어쩔 땐 보이고 어쩔 땐 안 보이는 주맹증 환자라는 1차적인 세팅 때문은 아니다. 영화는 인조와 소현세자, 최대감, 소현세자의 부인, 원손까지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고, 또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은 현재의 한국사회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밝지만 어두운 사실을 직면할 것인지. 어둡지만 아픈 사실을 받아들여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헌트>가 현대사의 상처를 묻는다면 <올빼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재에 대해 반문한다.
그래도 다른 것
그렇게 <헌트>와 유사한 영화지만 글쓴이는 <헌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헌트>만큼이나 훌륭한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주인공을 인조로 설정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어느 부분도 성립되지 않는다. 인조라는 인물이 고르는 선택지가 삼전도의 굴욕, 병자호란, 인조반정, 당시의 주전론/주화론 간의 대립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이는 감독이 인조라는 왕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것과도 이어지고, <헌트>와 공통점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진범이 누구인가?'라는 중심으로 서스펜스를 끈끈하게 이끌어간다는 부분은 두 영화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이야기가 전복되는 부분도 왠지 모르게 공통점을 가진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동림'의 행적이 중요하다가 물 흐르듯 서서히 하이라이트로 넘어가는 <헌트>처럼 '소현세자'를 암살한 흑막을 찾다가 후반부로 전개되는 이야기 전개 역시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 <올빼미>를 보고 아쉬웠던 점은 이야기의 만듦새가 살짝 아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소현세자를 죽인 흑막이 누구인지 드러났을 때까지 이야기는 촘촘하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 제일 마지막 시퀀스까지 그 엔딩부의 장면 하나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하나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주인공이 흑막의 정체를 알고 나서 어떤 행동들을 계속한다. 그런데 여기에 너무 페널티가 없다. 아예 생경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주인공 경수는 거의 국정원 요원급에 준하는 스펙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글쓴이는 가장 마지막 시퀀스를 넣은 의도가 궁금해졌다. 거기서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를 지었다고 해서 쾌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쾌감 넣으라고 그 장면 넣은 거 아닌데?'라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무리 짓지 않아도 영화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다.
또 인조라는 인물에 너무 감정선이 얕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조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인물이다. 세자가 독살당했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왕의 포지션은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물의 행적을 유해진 배우의 표정연기와 역사적인 평가에 의존한다. 이 인물의 입장에서 더 감정적으로 비틀대거나,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하는 식의 장면이 초중반부부터 살짝 들어갔다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청의 문물을 거부하는 이유는 뭔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소현세자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무엇인지. 지금 명, 청에 대한 인조의 생각은 무엇인지. 인조가 보여줄 수 있는 외교적인 한 수는 무엇인지까지 이 인물의 내적인 동기부여에 확실했다면 이야기가 흐름이 윤활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유해진 배우의 열연만 기억에 남는 것이다.
유해진 배우 멋있어요
이 영화에서 두 배우는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일단 가장 중요한 주인공 류준열 배우는 자기랑 맞는 옷을 입었다. 올해 류준열 배우의 출연작으로 <외계+인> 1부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한 부분이기도 한데, 여기서 류준열 배우는 좀 이질감이 든다. 이 영화에서 대사가 갖고 있는 임무는 막중했다. 바로 이 영화를 지탱하고 있는 세계관을 보다 쉽게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류준열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품고 있는 비밀이 있음에도 경박한 모습만 기억에 남는 것은 감독의 무리수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올빼미>에서 류준열 배우가 맡은 '경수'는 앞에서 제시한 예시와 정반대에 있다. 영화에서 코미디가 없진 않지만 경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경수는 앞이 보이지 않으나 밤에는 시야가 밝아지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쉭쉭 무너져내리는 감정연기까지 수행해야 한다. 경수가 영화의 배경을 담당한 셈인데 류준열 배우는 어느 곳에 뭐가 들어야 전달이 쉬울지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류준열 배우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한다.
또한 유해진 배우가 맡은 인조 캐릭터도 연기를 정말 잘했다. 영화에서 인조의 서사에 구멍이 났다는 점은 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유해진 배우의 경험치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신이 있다. 인조가 청나라 사신의 히스테리에 반응하는 신이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한다. 이때 인조가 갖고 있던 정신질환과 나라의 대표가 겪는 굴욕이라는, 역할 갈등에 해당하는 스트레스를 표정으로 보여주는 호연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자체가 인조의 평가에 대해 살짝 의존한 감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무능력을 최소한의 범위에서 어떻게 보여줘야 할 것인가? 는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때 인조가 궁에 있는 신하들에게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을 영화가 보여준다. 이 연기를 하면서, 유해진 배우는 눈빛 연기 하나로 감정전달에 입체성을 부여하며 극을 이해시킨다. 역시 유해진 배우도 올해 개봉작 <공조 : 인터내셔날>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이때 "아니 무슨 ~~ 도 아니고"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낡은 화법은 좀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유해진 배우는 그동안 맡았던 가벼운 역할을 뒤엎는 중량감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올해 개봉작 중 남자 주연 배우들이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유해진 배우의 인조도 낄 만하다.
무리 짓는 것
영화에서 '본다'와 '보지 않는다'의 대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무리 짓다'와 '무리 짓지 않는 것'의 대비다. 영화는 끊임없이 두 집단을 대비시킨다. 인조와 대립각을 세우는 최 대감 무리. 침 하나와 나머지. 경수와 군인들. 청나라 사신과 조선의 신하들 등등 인물의 밀도에 템포를 바꾸며 영화에서 어떤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핵심 키워드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가장 큰 범주이자 선명한 대비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바로 백성들과 조선 지도부와의 대립이다. 이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게 촘촘하게 이미지를 보여줬다. 좋은 스릴러 영화다. 또 우리에게 밝지만 떼거지로 몰려있는 흑역사를 맞이할 것인지, 어둡고 혼자 밌지만 아픈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