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글다2025-06-30 01:19:42
바닷속에서 육지를 넘어 우주까지
영화 <루카>
이탈리아의 항구마을 ‘포로토로소’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따스한 햇볕과, 파란 하늘 위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로 가득 찬 영화 <루카>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포로토로소 컵에서 우승하기 위한 바다 괴물 ‘루카’와 ‘알베르토’, 그리고 육지에서 만난 친구 ‘줄리아’의 고군분투를 보고 있자면 바로 옆 이탈리아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짭짤함과 시원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듯하다. 아마도 바닷가에서 먹는 젤라또의 달달한 쫀득함과 자갈의 햇빛에 달궈진 맨들한 표면의 감각이 실제처럼 느껴지는 이유에는 애니메이션의 정교한 표현과 더불어 실제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에린코 카사로사’ 감독의 자선적 경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영화의 배경인 마을 ‘포르토로소(Porto Rosso)’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Porco Rosso)를 오마주한 가상의 항구마을이다.
‘포르토로소(Porto Rosso)’라는 마을 이름부터 알 수 있듯이, 픽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베스파’를 스쿠터로 착각할 정도로 천진난만한 루카와 알베르토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벼랑 위의 포뇨>가 저절로 생각이 난다. 특히 바다에서 육지로 찾아온 호기심 가득한 모습과 매번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들은 영락없이 <벼랑 위의 포뇨>의 주인공 ‘포뇨’와 닮았다. (자식을 찾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부모님도 어찌 보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탁 트인 바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마녀 배달부 키키>도 연상된다. 연이은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스쿠터를 만들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톰보’의 비행기를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들이 생각나고, 열정 가득히 찾아온 바다 마을에서 실수투성이 하루를 보내는 모습들은 ‘키키’와 닮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과 주인공들이 겪는 성장과 우정의 여정을 그려내는 방식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많이 닮아있다.
잠잠한 수면 위 요동치는 해류
영화 속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정체를 알아챈 고양이 ‘마키아벨리’ 정도고, 빌런 ‘에르꼴레’는 나이를 속여서라도 어린이 대회에서 이기려 하는 얍삽한 수염의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뿐이다. 이처럼 <루카>는 극적인 전개보다는 서정적이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수면 위가 아닌 깊은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차별’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루카’와 ‘알베르토’가 마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조건은 포로토로소 컵을 이기는 것도 아니고, 마을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두 사람이 이제 마을의 일부가 되었고, 마을이 두 사람의 천진난만함과 진심 어린 열정과 우정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차별을 없애기 위한 퀘스트는 없다. 차별을 이겨내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바닷속 깊은 곳 해류처럼 고요하지만, 가장 역동적으로 내면에서 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루카> 속에는 영화를 이끄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는 대신 어인(바다 괴물) 외에도, 언더독(한국 번역에서는 ‘아싸’), 선천성 기형, 그리고 다양한 비핵가족의 모습을 조용히 드러내며 메시지를 전한다.
탐험가와 과학자 아이의 무궁무진한 우정
<루카>는 인어공주 동화의 단순한 반복으로 남지 않았다. 바다에서 육지를 꿈꾸는 아이라는 기본 배경과 육지에서의 갈등과 고난을 해결하고 맞이하는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에서는 같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것은 ‘아이의 무한한 잠재력’이기 때문이다. 물 위로 올라온 아이는 단순히 세상을 경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처음 경험한 공기와 중력, 그리고 우주를 느끼고 배운다. 바닷속에서 육지로, 육지에서는 하늘을 넘어 우주까지도 나아가는 것이 아이이기 때문이다. 틀린 것처럼 보여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아이의 잠재성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그리고 ‘탐험가와 과학자 아이의 우정’을 그려낸 영화이기도 하다. 육지의 사람을 알고 싶은 ‘알베르토’와 육지의 지식을 알고 싶은 ‘루카’의 모습은 미래의 탐험가와 과학자를 생각나게 한다. <루카>는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진 두 아이가 만들 성장의 발화점이자 첫 교차점을 담아낸 것이다. 비록 서로의 목적지를 이해하고, 응원해 주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학교로 떠난 루카와 마을에 남은 알베르토는 다음 교차점을 기다리며 서로 다른 곳에서 함께 달려 나갈 것이다. 영화가 끝났음에도 아이들의 성장과 우정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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