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05 18:35:06
[JIFF 데일리] 단편영화의 맛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 단편 3편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하나 있다면, 극장에서 누군가와 부대끼지 않는 영화제도 가능하다는 확인이다. 완전히 축제 분위기를 되찾은 전주국제영화제지만, 주요 단편들은 온라인 상영을 열어두었다. 전주에서 돌아온 후 여운과 함께 즐길 수도 있고, 전주에 가기 전 예열하는 느낌으로 즐길 수도 있으며, 전주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도 있다.
단편영화는 단편영화만의 맛이 있다. 온라인 상영으로 본 단편에 짧은 리뷰를 남겨 본다.
<나는 피아노를 버렸다> / 박건 감독
피아노와 꿈에 대해 속삭이는 목소리에 이어, 피아노를 버리기 위해 낑낑대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압류 딱지 위로 붙인 스티커의 흔적만으로도 대강 유추가 가능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피아노를 버리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모든 것의 무게는 옆에 있을 때가 아니라, 버릴 때 알게 된다.
피아노를 버리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주인공을, 카메라는 그의 삶처럼 불안불안 흔들리며 담는다. 주인공은 소리를 차단하고, 그 자리에 바코드 소리를 메우고, 현실과 타협하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버릴 수 없는 마음은 선명해진다. 피아노를 버리는 행위와, 결코 버릴 수 없는 어떤 마음들이 대조되어 빛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꿈과 현실을 다룬 영화치고 '현실'이 너무 모호했다는 점이다. 꿈을 포기한 주인공이 일하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정숙을 강요하는 자리에 키보드 커버조차 깔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 보통 도서관의 일자리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점을 생각할 때 더더욱. 차라리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면 이해가 되었을 만큼, 꿈을 포기한 주인공이 밟고 선 책도 누군가에겐 너무 꿈에 가까운 물질이어서.
그래도 꿈과 현실의 대비 그리고 음악과 침묵의 대조가 매력적이다.
<매달리기> / 박지인 감독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딱 하나. 감독의 전작 <전학생>을 정말 좋아한다. 박수연 배우가 표현하는 인물의, 세상에서 유리된 듯한 상황에서 짓는 아슬아슬 불안한 미소가 인상 깊었고, 그에게 푸근한 얼굴로 인사하며 미소 짓는 이주영 배우의 얼굴은 또 왜 그렇게 안심이 되었던지. 그들의 출신을 생각할 때, 박지인 감독이 애정을 갖고 담는 인물이라면 앞으로도 궁금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자립 준비 아동이다. '보호 종료' 이후 자립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그동안 워낙 사각지대에 놓였던 만큼 최근 국내 아동보호 관련하여 부쩍 화제가 되었던 단어이기도 하다. 영화 속 아이들도 불안하게 흩날리지만, 그 흩날리는 기분 속에서도 끝내 생에 매달리기를 계속한다.
짧은 러닝타임에도 깊게 스민다. 눈물 짓고, 조용히 웃고, 그러면서도 뒷모습을 응시하는 인물들의 감정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박지인 감독의 다음도 기대된다. 어디든 가서 보겠어.
<늦은 산책> / 손지환,김병규 감독
이건 온라인이 아니라 극장에서 봤어야 했는데... 여백이 많은 영화라서, 온전히 극장에서 그 공기에 휩싸여 보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온라인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스틸 사진처럼 펼쳐지는 이미지, 울려 퍼지는 트로이메라이.
어긋나다, 라는 단어를 ㅇㅓㄱㅡㅅㄴㅏㄷㅏ라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펼쳐내어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대단한 사건 없이도 어긋나는 것들이 있다. 차라리 소리칠 수 있는 계기라도 있다면 편안할 텐데. 이런 느리고 진득한 어긋남이 더 답답하고 힘들지. 다 그대로일 수가 없다. "그걸 내가 일찍 알았다면 달라졌을까? 모르겠어."라는 대사가 어긋난다는 단어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긋난다는 건 그런 것이다.
다만 아름답기에 더더욱, 서사와 사건의 과도한 여백이 아쉬웠다. 시작부터 유난히 힘이 없던 두 사람의 대사를 보며, 무엇이 남자를 저렇게 만들었는지, 두 사람 사이엔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아니 애초에 두 사람은 어떤 인물들인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뭔데, 왜 관객한테도 비밀인데. 모든 인물이 꼭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할 필요는 없다. 여백이 조금만 더 칠해졌더라면, 그래서 두 사람의 맞잡은 손에 좀더 공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온라인 상영]
온피프엔: https://onfifn.com/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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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력 미친 사극 영화 추천 '사도' 후기
사도
15.09.16 개봉
드라마, 12세 관람가
한국 ,125분
감독: 이준익
출연: 유아인, 송강호 등
실화, 심지어 역사를 다룬 일인 만큼 리뷰를 쓰는 것도 쉽지 않네요
부끄럽지만 저는 역사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거든요
연모, 백일의 낭군님을 제외하고는
사극 드라마 영화를 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저를 사극의 세계로 이끈 '사도'!
도전했다 하차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었는데
참고 보길 잘한 것 같아요
역사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한 계기를 만들어 준 영화입니다
영화 '사도'는 '임오화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임오화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영조가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서인(평민)으로 폐위시킨 뒤
뒤주에 8일간 가두고 굶겨 죽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파국을 맞이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왕위를 대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태도 차이 때문입니다
영조는 당쟁 속에서 간신히 왕이 되었기 때문에
세력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하던 반면
세자는 눈앞의 개혁해야할 문제들을 따지기 바빴습니다
세력 갈등은 겪어 본 적도 관심도 없는 사도세자였기에
둘의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나 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 갈등이 더욱 깊어졌겠죠
게다가 세자는 공부보다 그림, 소설, 무예를 더 즐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누구보다 세자에게 힘을 기울였던 아빠 영조로서는
이를 납득하기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나를 자식으로 생각했소!"라는 말이 나온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걸 요즘 말로 하면 극성부모라고 하려나요
실제 영조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웃으며 대화하다가도 세자에게 돌연 화를 내는 일이 잦았고
이로 인해 세자가 20대가 된 후에는
옷 입기를 꺼리거나 특정 옷감을 거부하는 의대증이 생겼다고 해요
의복을 갖춰 입으면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죠
영화는 병렬적 구조,
즉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8일간의 시간과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를
두 개의 에피소드를 교차하며 보여 줍니다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 있지만
대중문화인 영화이기에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도 물론 중요하잖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 구성을 잘 선택했다고 봅니다
세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죽는 날까지
직렬적 구조로 진행했다면 사실 지루했을지도 몰라요
근데 처음부터 뒤주에 갇히는 사도세자를 보여 주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궁금하게 만든 후
엔딩 부분에선 눈물이 나오게 만들거든요
사실 눈물이 나오게 만든 건
유아인 님의 열연 덕이 아닐까 싶지만요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혹 아직 '사도'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정말 꼭 보시길 강추합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사도'는 픽션이 거의 없이 역사를 많이 반영한
최고의 영화라고 극찬한 바 있다네요~
*스토리: 5/5점
*연출: 5/5점
*영상미: 5/5점
*OST: 1/5점
*연기: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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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살아갈 기회와 용기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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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맥스 예매를 실패하고 4DX로 보고왔던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 전작들을 보지 않았음에도 눈물 가득했고, 재밌었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새로운 팬과 기존 팬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 시놉시스
미스테리오의 계략으로 세상에 정체가 탄로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하루 아침에 평범한 일상을 잃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뜻하지 않게 멀티버스가 열리면서 각기 다른 차원의 불청객들이 나타난다. 닥터 옥토퍼스를 비롯해 스파이더맨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숙적들의 강력한 공격에 피터 파커는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에는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스파이더맨의 모든 전작을 보지 않았기에 홈 시리즈의 스파이더맨이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듣고 고딩이 영웅라니..! 하며 당황했었다.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끝마다 “아,, 내가 까먹었다. 너 애지..?”라고 말하며 Kid를 강조하면서 미성년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아직은 어른의 책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어린 피터 파커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믿어주는 존재들이었다. 세상을 구한 영웅이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자꾸 안 좋은 일이 일어나다보니 악당으로, 사고뭉치로 프레임이 지어지는 상황 속에서 아직 어린 피터 파커가 세상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를 진실되게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피터 파커가 지켜내야할 것들이 오히려 피터 파커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하면서도 자신을 가장 생각해주는 사람들은 자신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자꾸 주문을 수정하려는 시도를 보면서 아이같은 모습을 볼 수 있으면서도 아직 사람들에게 기대고 그들로부터 힘을 얻는 모습을 잘 보여준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 책임을 진다는 것
하지만 멀티버스가 열리면서 다른 세계관에 있던 악당들이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존재했던 악당들이) 홈 시리즈의 스파이더맨이 있는 세계관으로 흘러들어온다. 이들을 처단하는 과정에 있어서 고딩 피터 파커는 점차 성장을 거듭한다. 능력면이라기보다는 내면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어야 하는지 많은 고민과 고뇌를 하는 듯 보였다. 영웅으로서의 삶과 자신의 일상으로서의 삶. 이렇게 2가지가 대립되고 그 2가지를 모두 쟁취하고 싶다는 어린 욕심과 달리 현실에서는 그 모든 것을 이루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잊게 해 달라는 주문을 닥터 스트레인지에 부탁하면서 그 동안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들의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자립하고 독립하여 기억에서 잊혀진 영웅으로 세상에 남기를 선택한다. 솔직히 이 과정이 영웅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 역시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독립과 자립을 할 때가 되어 온다. 물론 스파이더맨처럼 고립되어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어린 아이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점차 성장하면서 사회에서 지녀야할 책임이 많아지고, 언제나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는 지속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후회를 바로 잡을 기회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양한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며 지난 날을 회상하기도 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은 1대, 2대 스파이더맨이 멀티유니버스를 통해서 다른 세계관의 스파이더맨을 찾아온다. 다른 세계관에서 온 빌런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그토록 자신을 아껴주던 이모의 죽음이었다. 그 속에서 좌절감을 느낀 어린 스파이더맨을 향해 다른 세계관 속의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후회를 털어놓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아마 이 영화는 전작 스파이더맨들이 가지고 있었던 후회와 슬픔에 대해 이 응어리를 풀고 다시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이러한 후회를 딛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은 작품 자체가 가진 교훈과 그 퀄리티가 모두 높았던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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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갈린 총구, 그리고 신념
엇갈린 총구, 그리고 신념
영화 <헌트>
감독] 이정재
출연] 이정재, 정우성,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 김종수, 정만식
시놉시스]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라! 사냥꾼이 될 것인가, 사냥감이 될 것인가!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와 국내팀 김정도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 동림 색출 작전을 시작한다. 스파이를 통해 일급 기밀사항들이 유출되어 위기를 맞게 되자 날 선 대립과 경쟁 속, 해외팀과 국내팀은 상대를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찾아내지 못하면 스파이로 지목이 될 위기의 상황, 서로를 향해 맹렬한 추적을 펼치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감춰진 실체에 다가서게 되고, 마침내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게 된다.
#스포일러 주의#
끊임없이 의심을 하다
영화 헌트에서는 해외팀 박평호와 국내팀 김정도의 끊임없는 대립과 의심을 강한 텐션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연 나라면 저기서 버틸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도감청과 미행을 붙이고, 지인들을 안기부로 데리고 와 고문을 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화는 박평호의 편도, 김정도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새로운 정보들이 나올 때마다 박평호가 동림일 가능성, 김정도가 동림일 가능성을 끊임없이 재고 따지게 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꼭 수사관이 된 것처럼 양측에서부터 나오는 다양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관객 나름대로 퍼즐을 맞춰가면서 두 캐릭터를 의심하면서 영화에 더욱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만들었던 요소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 속 캐릭터 중 한 명 정도는 관객이 공감을 하고 그의 감정선에 따라 같이 동조하며 흘러가야 작품에 집중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스파이를 색출해내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스파이일 수 없는 한 명의 탐정, 혹은 수사관이 대부분 영화 속에는 있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선에 따라 사건들을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대립되는 두 인물이 서로를 수사하다 보니 관객으로써는 이 두 캐릭터를 모두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영화 속 어떤 인물들에게도 공감한다기 보다는 이들을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면서 양 측으로 부터 오는 모든 정보를 조합하려다 보니 그 집중도가 높아진 케이스였던 것 같다.
내 신념에 따라 선택한 과정은 올바른가?
영화 헌트는 국정원 속에 숨어든 ‘동림’이라는 존재를 통해 신념의 존재와 그 이유, 수단에 대해서 관통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해외팀 박평호는 동림으로, 국정원에 잠입한 북한의 간첩이었다. 그리고 국내팀 김정도는 육군 출신으로서 전두환 정권에 대해 강력히 반대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둘의 목표는 같다. 대한민국 1호를 암살하는 것이다. 동림으로써 박평호는 1호를 암살한 후 북한에게 평화적으로 정권 이양의 단계를 거치길 바라는 사람이고, 김정도는 1호를 제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다.
사실 이 명제만 보자면 한국 사람으로써 김정도를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평호는 어찌되었던 북한 간첩이고 북한에게 남한을 넘기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오히려 빌런은 김정도가 아닐까 하는 감정이 들고는 하는데, 아마 그 이유는 신념의 존재 이유를 알고 그 방향성을 지키고자 했던 박평호에 공감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평호의 신념은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동림으로써 자신이 1호를 제거하고, 최소한의 희생을 통해 북한에 정권 이양을 해야 많은 국민들이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이 1호를 제거 후 전쟁을 통한 적화통일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자 박평호는 방콕에서의 대통령 암살 작전에서 어떻게든 이 암살을 막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김정도의 경우에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다시 뿌리내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이 신념을 지키기 위한 1차적인 수단인 1호의 제거에 더욱 집중한다. 그래서 박평호가 동림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이미 죽은 자신의 부하를 동림으로 만들면서 1차적인 목표가 같은 박평호를 이용해서 1호를 제거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박평호가 1호 제거를 반대하자 기어코 쫒아가서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행동을 보인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동지를 배신한 박평호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1차적인 수단이었던 암살을 수행하려는 김정도. 하지만 박평호는 북한의 간첩이고 김정도는 남한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남한 사람으로서 이 엇갈리는 방향성에 어느 누가 과연 옳았는가?라는 질문에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내린 선택의 순간마다 잣대가 기울면서 두 캐릭터를 보는 마음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있는 집단과 그리고 신념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의 선택의 방향성에 대해서 이 상반된 두 캐릭터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헌트는 생각보다 두 인물이 서로를 의심하며 쌓아가는 서사가 상당히 탄탄했고, 그 과정에서 신념과 집단이라는 엇갈린 방향성을 나름대로 잘 보여주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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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인간의 온기
푸른 장벽 Green Border
Director
아그네츠카 홀란드 Agnieszka HOLLAND
Cast
Jalal ALTAWIL, Maja OSTASZEWSKA, Behi Djanati ATAI, Mohamad Al RASHI, Dalia NAOUS, Tomasz WŁOSOK
Program Note
2021년 하반기 벨라루스가 중동에서 흘러 들어온 난민들을 인접한 폴란드로 보내면서, 푸른 숲으로 우거진 국경 지대에서 양국의 군인들과 중간에 낀 난민들이 충돌하게 된다.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최신작 <푸른 장벽> 은 철저한 조사에 기초해 다큐멘터리적 접근을 취함으로써, 때로는 현실이 픽션보다 참혹할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지만 우리 세상 모든 면이 정치적”이라 했던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된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새우등 터지는 난민, 그들을 도우려는 인권 단체, 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주민, 그들을 몰아내야 하는 국경 수비대의 다양한 시점을 통해 우리가 선택을 내리는 순간, 그 희미한 선악의 경계를 반추하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짧은 에필로그에 이르러, 불과 일 년 후 폴란드의 또 다른 국경에서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박가언)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영화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리뷰를 쓸 수 없어, 며칠 동안 새문서를 열어 놓고 커서가 깜박거리는 빈 종이를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씨네랩 크리에이터 중 한 분이 하셨던 말처럼 언제쯤 글이 애정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게 될까.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써야지 누가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난민의 인권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재정착이 필요한 난민은 140만 명 이상에 달하며, 특히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등의 내전으로 인한 난민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엔 난민에 대한 영화도 다수 제작되고 있어, 난민이라는 소재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과정에서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황을,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밀도 있게 만든 영화가 있었던가? 떠올려 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았던 <하얀 천국> 역시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탈출기를 다루고 있었다. 아내를 잃은 뒤, 일곱 살 난 딸을 홀로 키우는 사무엘이 이탈리아의 오두막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온 체흐레의 여정을 돕게 된다. 영화에서는 선과 악이 분명했다. 난민을 잡으려는 자와 돕는 자. 악인은 광기 어릴 만큼 인간성이 없는 모습이었고, 추격전은 너무도 가슴 떨리는 스릴러에 가까웠다. 영화는 누군가를 도우며, 스스로 구원받는 사무엘과 스스로의 삶으로 굳건히 나가는 체흐레. 관객은 마침내 각자의 해피엔딩을 맞은 두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들었었다.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 온 난민들이 유럽을 가기 위해 벨라루스 국경으로 향하고, 유럽의 첫 관문은 벨라루스에서 철조망 하나를 넘으면 되는 폴란드가 된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 다른 유럽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폴란드 정부는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수비대를 배치하여 보수적인 정책을 멸치다. 폴란드로 넘어왔다. 드디어 유럽이다.라는 기쁨은 잠시 국경수비대에 의해 다시 벨라루스로 보내지고 그곳에선 폭력이 난무한다.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고, 때때로 사망자도 나온다. 영화는 벨라루스와 폴란드 사이의 국경, Green Border에서 일어 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흑백영화지만, 그래서 참혹한 실상에 몰입이 되었다. 영상미가 아닌 상황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누리의 가족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들의 안녕을 바라며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때로 현실을 담담히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이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괴로웠던 것은 영화 <하얀 천국>에서는 이탈리아에서 눈 덮인 산을 넘어가면 된다는 어떤 목표 지점이 있었던 것과 달리, 이 국경에서는 벨라루스에서 폴란드로, 폴란드에서 벨라루스로 공깃돌을 던지듯 난민을 주고받는 것이 무한 반복으로 되풀이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지, 방법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에 난민과 관객을 함께 던져 버린다. 영화가 한 시간쯤 진행되었을 때, 나는 이 참담한 현실을 한 시간 반이나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너무 괴로워서 눈물이 났다. 고작 한 시간으로 이렇게 참담한 마음인데, 벨라루스 국경의 난민은 , 지금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저 가족은 어떨까.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탈출하던 난민의 말처럼 그저 자신의 죄는 ‘최악의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인데.
영화는 절대적인 악인을 찾기 힘들다. 수비대도, 활동가도 모두의 상황이 이해가 되고, 모두의 상황이 안타까운 지점을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이를 잃어 천 번 죽는 기분이어도, 결국 인간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을 향한 애정임을 말하고 있다. 주어진 일과 해야 하는 일과 마음이 시키는 일 그 지점 사이에 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작은 온기가 모여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푸른 장벽의 깊은 숲의 냉혹한 현실에서 나아가도록 실낱 같은 희망이 되어준다. 오늘 국경에서 난민을 추방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수비대도 곧 아버지가 되고, 자신이 눈 한번 감으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검은 마스크와 군복을 천천히 옷을 벗고, 맨 몸으로 거울 앞에 선 자기의 얼굴을 마주하고 임신한 아내 옆에 웅크려 눕던 장면을 통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벗으면 우리는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권이나, 옷으로 규정 되는게 아닌 온기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 다는 것을.
Schedule
10월 7일 09:30 영화의 전당 중극장
10월 9일 12:30 CGV 센텀시티 6관
10월 12일 15:30 영화의 전당 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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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은 킥, 영화는 후킹!
음식에서 킥(kick)은 기본적인 맛에 자극을 더해주면서 전체적인 요리의 풍미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영화에서 후킹(hooking)은 초반에 관객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는것을 의미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킥'이 중요하고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후킹'이 중요하죠.
오늘은 킥과 후킹 모두를 잡은 맛도리 영화들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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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작은 시인에게> - ‘너를 위해서라는 가장 단단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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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시인에게 (The Kindergarten Teacher)
개봉일 : 2019.04.04 (한국 기준)
감독 : 사라 코랑겔로
출연 : 메기 질렌할, 파커 세바크,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마이클 체너스, 로사 살라자르
‘너를 위해서라는 가장 단단한 변명’
꿈을 꾸었지만 양지가 아닌 음지에 내려앉은 사람에게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유치원 교사 ‘리사’와 가만히 있다가도 별안간 아름다운 시를 읊어내는 5살 소년 지미의 이야기다. 크게 성공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기 힘든 ‘작가’라는 꿈 대신 유치원 교사가 된 리사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바쁘게 일을 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고등학생 졸업반까지 키우고 나니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릴 틈이 난다. 리사는 이제야 깊게 한숨을 내쉬어본다. 그리고 그녀의 한숨 속으로 짙은 공허함이 파고든다.
남편은 바쁘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도 아이들은 또래와 어울리기 바쁘다. 리사는 붕 떠버린 시간과 접어두었던 꿈을 붙잡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등록하지만, 리사의 글에 대한 수업 교사와 동료들의 반응은 영 시원찮다. 열의는 있으나 딱히 눈에 띄진 않는 실력. 한마디로 ‘타고난 재능과 센스’는 없는 사람인 리사는 어딘가 모자란, 아쉬운 글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마치 신이 보낸 신호 같은 천재 소년 지미가 나타난다.
힘없는 걸음을 떼다가도 별안간 감정을 담은 시를 창조해내는 소년. 리사는 지미를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자 자신이 가공해야 할 의무를 진 소중한 원석처럼 느끼게 된다. 부러움과 질투, 애정.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집착. ‘너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너를 지키기 위함이야’라는 단단한 변명과 함께 시작된 리사의 엇나간 애정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집착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천재성을 타고난 아이를 대상으로 질투와 집착을 느낀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면 반쯤은 이해가 갈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빛나는 것을 가진 아이. 그 반짝임은 누군가의 눈을 멀게 만든다.
사회의 그늘에 가려져 꿈을 빛내본 적 없는 어른이 재능을 가진 아이를 만나며 대리만족에 대한 집착, 질투심을 느끼는 과정이 지나치게 인간적이라 더욱 슬프고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되바라진 집착을 가진 어른 한 명마저도 없어진다면 아이의 재능을 마음에 담아줄 어른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 사회의 모습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 시놉시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리사’는 따분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를 통해 예술적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다. 우연히 자신의 학생 다섯 살 ‘지미’가 시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이의 시를 자신의 시수업에서 발표하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나 자신을 더 투영해야 해.”
영화의 주인공 리사는 이제라도 꿈을 이뤄보겠다고 다짐하며 시 쓰기 수업을 신청한다. 하지만 그녀의 시는 어딘가 모자라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럴싸한 단어의 집합. 딱 거기서 그쳐버리는 애매한 시. 그게 리사의 시다. 본인도 알고 있다. 나의 시가 어딘가 부족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손을 들고 발표할만한 대단한 시는 아니라는 것을. 열정과 꿈을 안고 수업에 들어왔지만 리사에게 수업은 즐거움과 두근거림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명분, 딱 그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미라는 아이가 리사의 눈에 들어온다. 좀비처럼 어슬렁 어슬렁 걷다가도 감정이 가득 담긴 시를 읊조리는 5살 아이. 태양의 반짝임과 사랑의 두근거림을 담아낼 줄 아는 5살 아이라니. 사랑이 뭔지는 알까? 싶은 나이지만 지미의 시는 그 안일한 생각을 모두 물리칠 만큼 아름답다. 리사는 지미의 시를 적어 수업에서 발표한다. “정말 좋았어요.” 리사를 향해 여러 형태의 칭찬들이 쏟아진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시에 대한 칭찬. 내가 쓴 것이 아님에도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몰려오는 순간이다. 리사는 그 아름다운 시를 어떻게 썼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진 알고 있다. 작은 시인, 지미를 통하면 된다.
그 후로 리사는 지미에게 더 큰 기대와 집착을 갖게 된다. 새로운 시선으로 글을 써야 할 땐 지미를 번쩍 들어 높은 곳에서의 시선을 만들어주고, 지미가 나쁜 말을 쓸 때면 아이의 언어습관을 관리한다. 낮잠을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는 그녀의 모습에서 옅은 집착과 열망의 냄새가 풍겨온다. 리사는 아이를 위해 시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녀의 행동이 지미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분명 리사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떳떳한 행동은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시가 떠오르면 보모인 베카에게 말하지 말고 나에게 말하고, 휴대폰 번호를 저장해 주겠으니 전화하라는 약속. 그리고 이름 전체가 아닌 L로 저장된 전화번호. 보모의 자격을 얻기 위해 꿈이 있는 젊은 보모를 몰아내려 행한 이간질. 리사는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어른들로부터 아이를 지키겠다는 괘변 아래 자신의 집착을 합리화한다.
무대 위 마이크보다 작은, 너무도 여리고 작은 나의 시인. 리사는 지미의 빛나는 재능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지미의 아빠는 밤낮없이 바쁘게 일하고, 가족들은 아이에게 무관심하다. 모차르트급의 천재적 재능이 있는 아이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재능을 알지 못하고, 발견하려 하지도 않는다.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아이의 재능은 언제 지워질지 모른다. 리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지미의 재능을 빛내주기 위해 낭독회에 지미를 데려가지만 지미의 아빠는 아이의 재능엔 관심이 없다. 물론 리사가 아빠의 의사를 제대로 묻지 않고 아이를 데려간 것부터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세상이 널 지워버리려 해. 나 같은 그림자가 되면 안 돼.”
리사가 지미를 향해 처음으로 가진 감정은 놀라움이었고 애정이었다. 그리고 선을 넘은 애정은 집착이 되어버린다. 지미의 등굣길을 뒤따라간 리사는 잠겨진 문을 열고 아이를 품에 안는다. 그녀는 철창 안에 갇혀있던 작은 시인을 품에 안고 드넓은 호수로 향한다. 불안감이 가득 차오르는 오후를 보내고 몸에 붙은 것들을 씻어내는 순간. 지미는 기지를 발휘해 욕실의 문을 잠근다. 리사는 욕실 문에 붙어 앉아 지미에게 가졌던 애정과 집착을 풀어낸다.
아이와 어른이기 이전에 같은 시를 창작해내는 사람으로서 리사는 지미를 질투하고 또 사랑했다. 리사는 지미의 입을 떠나 공중에서 분해되는 아름다운 시들을 받아 적으려 노력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미의 주변 어른들은 지미의 시를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또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뱉어내는 몇 마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리사는 달랐다.
“시가 떠올라요”
지미는 리사를 만나고 “시가 떠오른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새로 떠오른다 한들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던 작은 시인의 시. 그것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사람은 리사뿐이었다.
리사는 지미의 재능에 집착한 유치원 선생님이자 납치범이지만 그녀만큼 지미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납치범을 벗어나 안전한 경찰차 안에 앉게 된 아이가 말한다. “시가 떠올라요. 시가 떠올랐다고요.” 하지만 경찰은 아이의 말을 궁금해하기보단 아이스크림을 갖다주겠다며 무심하게 차 문을 닫는다. 두꺼운 유리창을 뚫지 못한 아이의 말은 그대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그 자리에서 지미가 아름다운 시를 읊는다 해도 그것은 아무도 듣지 않는, 그 순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질 것이 분명하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둔 깊은 열등감과 집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에 조금씩 동화되어 갔던 시간이었다. 빛나는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차가운 세상에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리사는 나쁜 어른이었던 걸까. 완벽한 잘못도, 완벽한 애정도 아니었기에 더욱 인간적이고 마음 아픈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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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살인 리뷰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용기에 박수를 (약스포, 결말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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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
공기를 타고 대한민국에 죽음을 몰고 온 살인무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그들의 사투.
증발된 범인, 피해자는 증발되지 않았다!
영화라는 매개의 특성상 결국 극적인 연출과 전개를 끝끝내 놓지 못해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영화를 리뷰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작고 사회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에 조금더 마음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공기살인]같은 작품들의 개봉을 응원하고, 또 미디어의 선한 영향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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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 영화리뷰? 구타로 숨진 해병대 군인의 억울한 죽음ㅣ결말포함 영화리뷰ㅣ어퓨굿멘ㅣ방구석1열
? [결말포함/영화리뷰] "어퓨굿맨"(A Few Good Men, 1992)
"살아있을 때 봐야하는 영화들" : 명품영화 고품격 영화리뷰 시리즈각본: 아론 소킨
감독: 롭 라이너
출연: 톰 크루즈,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케빈 베이컨#결말포함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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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상사랑 첫 만남에 디스전 해보신 분? 여기 환상X, 환장의 짝궁이 등장했습니다. "코미디언 직장상사와 함께 일하면 재미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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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레센도> 메인 예고편
점점 세게, 점점 강하게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꿈꾼다!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에두아르트’는 평화 콘서트를 위해
오디션을 거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뽑는다.
수십 년간 이어온 분쟁과 갈등을 넘어 오직 음악을 바라보고 모였지만,
깊이 담겨 있던 분노와 증오는 이내 서로를 공격한다.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위해 지휘자 ‘에두아르트’는 진심을 담아 노력하고
영원히 평행선을 걸을 것 같던 이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연을 하루 앞두고
팔레스타인 클라리넷 연주자 ‘오마르’와 이스라엘 프렌치 호른 연주가 ‘쉬라’가 사라지는데…
오케스트라 공연은 무사히 열릴 수 있을까?
평화를 향한 희망의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