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1-04-26 10:20:28
삶과 죽음의 두려움에 관한 SF
-<서복>(2021)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치거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순간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그런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의학기술을 발전시켰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여 수명을 길어지게 했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은 조금씩 길어져 길면 100세까지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의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 산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일까. 삶을 오랜 시간이어가려는 욕망은 과거 진시황의 이야기로 대표된다. 진시황은 장수하기 위해 명약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늙고 죽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삶이 계속 이어졌을 때를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삶이 계속 지속되고 인생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하나의 생을 살면서 매일 행복한 시간만 가질 수는 없다. 누군가가 죽으면 그 마음의 아픔을 감당해야 하고 몸이 아프면 그것을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는 삶에도 고통과 두려움이 따른다.
영화 <서복>은 복제인간을 등장시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거 정보국 요원이었던 기헌(공유)은 어떤 병으로 인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그때 정보국에서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켜 주면 서복에 대한 실험으로 추출한 기술로 병을 치료해준다는 제안을 받는다. 과거 같이 일했던 파트너의 목숨을 잃게 했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는 기헌은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그 일을 받아들인다. 복제인간 서복은 실험실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계속 실험을 당하는데 실험실에서 그는 물건 취급을 받는다. 세상에 나가본 적 없는 그는 기헌과 함께 외부로 나가게 되고 서복을 죽이려는 어떤 세력의 공격을 받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영화 속 기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죄책감이라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도 같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고 방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그도 자신이 어떤 것을 더 두려워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서복을 만나고 그의 질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삶에서 느끼는 고통이 죽음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두려운지를 자기 자신에게 묻기 시작한다.
서복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엄마라고 부르는 임 박사(장영남)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에 의해 교육받고 자랐지만 그가 만들어진 목적은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실험과 주사의 고통을 견디며 삶을 이어가야 한다. 특별한 사고가 없다면 죽지 않는 서복도 기헌과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것이 고통이고 두려움의 시간이다. 기헌과 차이점이 있다면 서복은 삶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화 내내 기헌에게 묻는다. 죽음이 왜 두려운 것이고 피하고 싶은 것인지.
세상의 일반적인 생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서복이기 때문에 서복을 쫒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과정에서 기헌은 서복에게 자잘한 삶의 정보나 재미들을 알려준다. 이를 테면 컵라면 먹는 법 같은, 서복이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정보들을 전달하면서 서복의 호기심을 채워준다. 즉 기헌이 삶에 대한 감정이나 지식을 서복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조금씩 진행될수록 이 관계는 뒤집어진다. 서복이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들은 기헌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고 고민에 빠지게 한다. 기헌이 단순한 삶의 정보를 전달한다면, 서복은 철학적인 화두를 전달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정보국의 안부장(조우진)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는 복제인간 기술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는 순기능보다는 인류 자체가 줄어들거나 멸망할 수 있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죽지 않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복제인간의 탄생이 결코 인간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두려움을 극대화시켰다. 극 중에서 그는 기헌과 서복과 대척점에 서서 싸우는데 그의 두려움은 인류 말살에 대한 두려움이어서 안부장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면 그는 사악한 악당의 기질을 가진 것만은 아니다.
즉, 기헌과 서복 그리고 안부장, 그리고 연구에 투자한 김 회장(김재건) 등 모든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두려움이다. 서복이 끝이 없는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인물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그리고 기헌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고민하는 인물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다. 서복이 던지는 새로운 질문들을 듣고 기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처럼 관객의 마음도 움직인다. 그런 이유에서 영화 말미 서복의 눈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SF 액션이라는 외피를 쓴 영화 <서복>은 복제인간을 등장시켜 서복과 기헌이 이끌어가는 드라마를 차분히 보여준다. 그래서 간간히 이어지는 액션이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서복에 의한 일방적인 타격만을 전달하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전투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액션을 통해 긴장감이 올라가기보다는 다소 김이 빠지는 느낌이 다소 강하게 든다. 반면에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굉장히 명확하다. 서복이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은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됨으로써 각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어떤 쪽으로 기울어있는지를 저울질하게 만든다. 즉, 볼거리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크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히 전달하는 영화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메시지가 명확해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꽤 큰 제작비가 들어갔고 관객들이 기대했던 볼거리가 하고자 하는 서사와 잘 섞이지 않으면서 액션과 서사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명확한 메시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굳이 이렇게 큰 규모의 액션 장면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메시지와 연기를 제외하고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다. 공유와 박보검의 연기가 모두 좋은데 특히 박보검은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서복과 굉장히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공포나 멜로 장르 안에서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담아냈던 전작들은 공포와 멜로 장르에 적절하게 그런 메시지를 녹아내어 감정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 <서복>은 SF 액션 장르에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어우러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영화 속 기헌이 조금 덜 두려운 쪽을 선택한 것처럼 감독 자신이 조금 덜 두려운 쪽을 선택해 집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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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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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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