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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nkweon2025-06-30 23:21:06

악마에게 인간의 흔적이 보일 때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 리뷰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 반공 학살의 가해자들에게 직접 살인의 재연을 요청하며, 그들의 심리와 기억의 구조를 파고든다.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가지만, 그들은 과거를 끊임없이 연극처럼 재구성하고, 때로는 뮤지컬이나 느와르 영화의 형식을 빌려 연출한다. 학살이 벌어졌던 장소는 화려한 색감과 음악 속에서 환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 장면들은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는 망각의 연출에 가깝다.

 

시네마 베리테는 관찰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다큐멘터리 방식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이러한 형식을 빌려 극적인 연출과 동화적인 배경을 활용한다. 카메라는 인물의 삶을 관찰하는 듯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학살자들의 환상과 자기기만이 영화적 장치를 통해 과장되게 표현된다. 이 작품은 인물에게 연기를 요청함으로써 기존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진실을 구축한다. 연출과 재연, 현실과 환상이 뒤엉키는 충돌 속에서 관객은 깊은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되고, 가해자는 카메라 앞에서 과거를 미화하며 거침없이 자기 연기를 이어간다. 이때 시네마 베리테가 지향하는 현실성은 왜곡되거나 조롱당하고, 그 틈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거리감은 관객을 윤리적 혼란 속에 빠뜨린다. 진실에 다가가는 대신, 연출은 그것을 은폐하거나 외면하려는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며, 이 불협화음은 관객에게 안전하지 않은 시청 경험을 제공한다.

 

안와르 콩고는 전형적인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그는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촬영을 기대하며, 친구와 농담을 나눈다. 그 일상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평범한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괴물을 연기하지만, 결국 그 연기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 스스로 연출한 장면을 다시 본 후 구토하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면죄가 아닌 자각의 흔들림을 마주하게 된다. 안와르 콩고는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국가적 폭력의 체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기억을 조작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처럼 작동한다. 2023년에 개봉한 조너선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역시 마지막 장면에서 액트 오브 킬링을 연상케 하는 구토 장면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구토는 현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교차하며, 그 어떤 인간적 감정조차 스며들 수 없는 차가운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반면 액트 오브 킬링에서의 구토는 인물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감정의 찌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인간성의 흔적은 오히려 더 큰 불쾌감을 자아낸다. 악마처럼 보였던 인물에게서 반성 혹은 죄책감과 같은 감정이 비치기 시작할 때, 그는 더 이상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감정과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그 폭력을 실행했음을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만든 환상의 장치는 외형적으로는 아름답게 꾸며졌지만, 그 내부는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다. 도덕적 판단이 유보되고,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관객은 감정적으로 발을 디딜 곳을 잃는다. 이 거리감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안와르 콩고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쉽게 자기 자신을 분리해 낼 수 없다. 망각과 자기 정당화의 욕망, 권력 앞에서 무뎌지는 양심, 그것을 이야기로 포장하려는 태도, 이 모든 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관객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환상은 사실보다 더 정교하게 죄를 감추고, 재연은 고백보다 더 철저히 감정을 마비시킨다. 이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함을 외면하려는 인간의 태도는 또 다른 불편함을 낳는다.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그 불편함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진 출처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작성자 . seankw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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