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7-21 18:36:12
빗방울이 완성하는 영화의 서사
비가 중요한 영화들
안녕하세요, 씨네픽지기입니다.
비는 영화감독들이 즐겨 사용하는 시네마틱 모티프죠. 그만큼 영화 속 비는 단순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아니라,억눌린 감정을 폭우로 터뜨리고, 죄악을 씻어내며, 빗소리만으로도 공포를 고조시키죠. 때로는 운명적 사랑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비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작품 6편을 큐레이션해보았습니다. 비가 어떻게 이 이야기들을 완성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비 내리면 떠오르는 영화가 더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❶ 세븐(1995)
❷ 쇼생크 탈출(1994)
❸ 사이코(1960)
❹ 블레이드 러너(1982)
❺ 노트북(2004)
❻ 기생충(2019)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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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없이 맞이하는 황혼의 순간
준비없이 맞이하는 황혼의 순간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리뷰
출처: 다음 영화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기에-또한 마지막이기도 하고- 그 어떤 사람도 능숙하거나 잘할 수는 없다. 다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속 노부부 역시 피할 새 없이 다가온 이 첫 황혼의 순간을 무방비한 상태로 맞이하며 인생의 새로운 위기에 봉착한다.
뉴욕 브루클린, 이스트 빌리지 아파트에는 은퇴한 교사 루스(다이안 키튼 분)와 화가 알렉스(모건 프리먼 분)가 살고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어려워진 알렉스를 위해 40년 동안 머물러 온 집을 팔기로 결심하는 루스. 부동산 중개인인 조카 릴리(신시아 닉슨)의 도움을 받아 집을 매물로 내놓지만 집 보러 온 사람을 맞이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일들이 쉽지가 않다. 한편, 정든 집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은 알렉스는 집 안 곳곳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을 떠올리며 아쉬움에 잠긴다. 결국 루스는 알렉스와 함께 직접 살 집을 찾아 나서지만 파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집 고르기. 집을 사는 것도 파는 것도 모두 어려운 루스와 알렉스는 과연 이 아파트를 무사히 떠날 수 있을까?
언뜻 보면 그저 두 노부부가 이사를 하며 겪는 좌충우돌 고군분투기처 같은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은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이 저희도 모르는 새 다가온 노년의 시기를 극복하며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여는 과정을 보여준다. 루스와 알렉스를 힘들 게 하는 가장 큰 벽은 바로 본인들을 그저 ‘노인네’로 만드는 현실. 집 사고파는 일을 도와주는 릴리는 시종일관 두 사람을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 취급하며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간섭하고 그들이 만나는 젊은 사람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이 중요한 시기에 발생한 폭탄 테러 위협과 애완견 도로시의 입원까지. 우아하게 맞이할 줄 알았던 노년, 현실적이라기보다 다소 영화적인 이 모든 사건들은 두 사람의 삶을 의도적으로 혼란에 빠트려 두 사람을 시험한다.
출처: 다음 영화
그리고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달리는 걸 멈추고 숨을 고른다. 그들이 돌아본 건 40년을 함께 한 과거. 살고 있는 집 곳곳에 스며든 두 사람의 그리운 기억들은 잊고 있던 그 시절 그 마음을 상기시켰다. <유스>(2015)에 등장하는 노년의 영화감독 믹 보일(하비 케이틀 분)은 이렇게 얘기한다. ”저 산을 봐봐. 젊었을 때는 이렇게 모든 게 가까워 보여. 미래니까. 반대로 이렇게 봐봐. 늙으면 모든 게 이렇게 멀게 보여. 과거니까.” 그렇다. 루스와 알렉스가 그 과거를 잊어버릴 뻔한 건 그 순간들이 단지 너무 멀리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까운 미래가 두 사람을 지치게 만들 때 두 사람은 눈을 돌렸고 멀리 있어 돌아보지 못했던 과거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그들을 묵묵히 응원하고 있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현실을 마주하는 루스와 알렉스의 태도과 행동이 모두 옳다고 할 수만 없다. 젊은이들은 노인네를 기계치로 안다고 성질을 내는 알렉스는 결국 메일 한 통을 제대로 못 여는가 하면 현관에 들어오지 말아 달라는 다른 집주인의 부탁에도 두 사람은 막무가내로 들어간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리를 치는 일도 있고 사실 전처럼 몸이 아주 건강한 것도 아닌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건 그들 역시 이 시기가 낯선 처음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지혜는 젊은 시절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할 수 있게 해 주지만 그들 자신에게 노년에 대해 조언해 줄 이들은 사실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출처: 다음 영화
더불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이 부드러운 브라운톤의 화면을 통해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든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덕분이다.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브루클린 역시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꼭 가고 싶은 사랑스러운 장소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인간적이고 따스한 순간에 존재하는 루스와 알렉스. 차갑고 냉정하며 복잡함으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세상과 상관없이 둘만의 세상에 살아가는 노부부의 시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응원하게끔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과거가 현실의 상황을 기적처럼 바꾸진 못한다. 아무리 다정하게 두 사람을 바라봐도 우리가 직접 도울 수는 없다. 결국 매 순간순간 도전이 되는 인생의 황혼기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건 두 사람의 몫. 곁에서 손을 잡아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두 사람은 이 모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의 원제는 <Ruth & Alex>. 사실 꼭 멋질 필요까지도 없다. 단 두 사람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의지가 되니까 말이다.
지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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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4주차, 영화 위클리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국내·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는 '위클리 뉴스'가 찾아왔습니다.
그럼, 지난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국내
CGV, 장국영 추모 19주기 기념 특별전 개최
출처 | 네이버영화
CGV에서 23일부터 장국영 추모 19주기 기념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전국 20여 개의 CGV에서 <해피투게더> 리마스터링, <아비정전>,
<동사서독 리덕스> 등 3편을 상영한다. 특별히 CGV 용산아이파크몰,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서면에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와 <동성서취>도 볼 수 있다.
한 기사에 따르면 CGV 여광진 편성팀장은 “장국영 사망 19주기를 맞아 그가 스크린에서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이번 특별전을 준비했다”라고 밝혔다.
정호연, 알폰소 쿠아론 감독 신작 <디스클레이머> 캐스팅
출처 | louisvuitton 인스타그램
배우 정호연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디스클레이머>에 캐스팅되었다.
이 작품에서 배우 정호연은 케이트 블란쳇, 케빈 클라인과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디스클레이머>는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첫 Apple TV + 시리즈물입니다.
<뜨거운 피>, 개봉 전 예매율 1위 달성
출처 | 네이버영화
23일 개봉 예정인 <뜨거운 피>가 예매율 1위에 등극했다.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3월 21일 기준 예매율 36.1%에 도달했다.
<뜨거운 피>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자,
소설가 천명관 작가의 영화 입봉작이다.
<문폴>, 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출처 | 네이버영화
<문폴>은 <2012>, <투모로우>의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174개의 스크린에서 누적관객 수는 13만 명을 넘으면서,
4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문폴>은 추락하는 달을 막기 위한 모험을 그린 영화이다.
해외
북미·유럽에 '쥬만지' 놀이공원 조성
출처 | Sony Pictures and Merlin Entertainments
지난 17일, 소니 픽처스와 멀린 엔터테인먼트가 북미와 유럽에
영화 <쥬만지>를 주제로 한 놀이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테마 호텔, 상품 판매점까지 갖춘 테마파크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듄>, 오디오 협회에서 최고상 수상
출처 | 네이버영화
지난 19일, <듄>은 제58회 CAS 어워즈에서
시네마 오디오 소사이어티로부터 사운드 믹싱상을 수상했다.
<더 배트맨>, 3억 달러를 돌파하다
출처 | 네이버영화
<더 배트맨>이 3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3월에 경쟁작이 별로 없기는 했지만, 매주 인상적인 흥행 성적을 보였다.
<더 배트맨>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이어 두 번째 대유행 영화가 되었다.
<더 배트맨>은 76개 해외 시장에서 4,910만 달러를 추가해
전 세계적으로 5억 9,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알렉산드라 쉽, 그레타 거윅의 <바비> 합류
출처 | 버라이어티
<틱, 팀... 북!>에 출연한 알렉산드라 쉽이 마고 로비와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바비>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직 자세한 줄거리는 공개되지 않았고,
오지 주연 배우와 배급사만이 알려져 있다.
이번 주에는 또 어떤 영화 소식이 찾아올지 기대가 되는데요.
그럼 다음 주에 또 새로운 소식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씨네랩 에디터 camm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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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정체성
치매라는 설정을 가진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의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내며 인간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병수는 자신의 딸인 은희(설현)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살인범 태주(김남길)와 대립하게 되지만 그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점 때문에 이 이야기를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이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스스로 진실을 찾아가며 사람을 믿어야 하는지, 상황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병수의 치매는 영화 전반에서 중요한 플롯 장치로 작용한다. 치매로 인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사건이 뒤엉키는 상황은 극적인 혼란을 만든다. 병수가 태주를 연쇄살인범으로 의심하며 벌이는 심리적 싸움은 객관적인 진실과 병수의 주관적 경험 사이에서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러한 방식은 병수의 시각에 몰입하게 하면서도, 그의 판단과 행동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는 서술자의 신뢰성 문제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며, 단순히 누가 진범인가를 묻는 것을 넘어 기억이라는 요소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게 만든다.
기억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사라질 때 인간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하는 것인가? 또한 기억이란 객관적 사실의 저장소와 주관적 경험의 재구성 중 어느 곳에 속하는 것일까. 영화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치매라는 병리학적 상태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병수의 과거는 살인범으로서의 악랄함과 아버지로서의 애틋함 사이에서 양가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치매로 인해 그의 과거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는 기억의 단편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붙잡으려 애쓴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은희를 보호하려는 본능적 사랑과 책임감을 잃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의 정체성이 단순히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가치와 관계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음을 통해 기억의 상실이 반드시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이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본질적인 방식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기억의 단편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며 고통 받는 병수의 모습은, 우리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기억이 불완전하고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인간 정체성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만, 그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자신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며 정체성의 중심에 위치한 기억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병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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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시> | 지나치게 디즈니다워서 엉망인 100주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이 다스리는 왕국 '로사스'. 100살이 된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지길 고대하는 소녀 '아샤'(아리아나 드보즈)는 매그니피코를 도우러 간 자리에서 우연히 그가 숨겨 온 어두운 진면목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런 아샤 앞에 무한한 힘을 지닌 특별한 '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별은 염소 '발렌티노'(앨런 튜딕)에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별의 힘을 믿고 매그니피코의 음모를 막기로 결심한 아샤는 일곱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을 먼저 눈치챈 매그니피코는 야욕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폭주하기 시작하고, 아샤와 친구들은 예상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디즈니의 모든 것'이 문제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각자 고유한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픽사 애니메이션은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에게도 소구력이 있다. 예상 못한 뭉클함에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경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특유의 이미지가 가장 공고한 제작사라고 볼 수도 있다. 디즈니만의 매력 두 가지는 백 년간 변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동화와 뮤지컬이다. 물론 디즈니도 <주토피아>, <모아나>, <겨울왕국>처럼 동화를 변주하기는 했다. 그러나 드림웍스처럼 동화를 파괴하고 재창조하지는 않았다. 또 설령 작품 평가가 부정적이어도, 디즈니의 음악만큼은 대체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100주년 기념작 <위시>는 이러한 디즈니만의 이미지를 온전히 구현하려는 노력이 가득 담긴 선물 세트다. 지극히 동화적인 이야기에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피터 팬> 같은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의 오마주가 가득하다. 귀를 즐겁게 하는 뮤지컬 음악 사이로는 디즈니 특유의 교훈과 새로운 사회에 발맞추려는 변화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디즈니스러운 만듦새는 끝내 <위시>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 100년 간 쌓아 올린 디즈니의 유산을 한 데 모아놓고 보니, 그들끼리 충돌하면서 여러 모순을 드러내고 만다. 그로 인해 <위시>는 자기만의 매력도 좀처럼 찾지 못한다. 결국 디즈니의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것도, 즐길 것도 없어지고 말았다.
평범해도 괜찮아. 어차피 동화니까.
<위시>의 이야기는 평범하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형식만큼이나 전형적이다. 늘 그렇듯이 악의를 지닌 악역과 그로부터 고통받는 공주가 등장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공주는 여러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예상대로 빌런을 꺾는 데 성공한다. 권선징악이라는 환상은 뛰어난 기술력과 아름다운 목소리 덕분에 더 빛난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평범한 이야기를 비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위시>가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임을 고려하면 오히려 초심을 찾으려는 시도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본래 맛깔나게 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나 유모 같은 존재였다. 관객에게 순수한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것이 디즈니 작품의 목적이었고, 디즈니의 매력이었다.
<위시>의 그래픽과 음악만 봐도 초심을 강조하려는 듯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기존 작품에 비해 단순하고 직관적인 그래픽이 눈에 띈다. 동물 털까지 세밀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최신 기술력을 좀처럼 뽐내지 않는다. 외려 직접 그리거나 손으로 나무를 파내 만든 판화로 찍어낸 듯한 느낌이 강하다. OST도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디즈니의 오프닝 음악을 변주한 선율이 가득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위시>는 지극히 동화답기에 오히려 신선하다. 지난 몇 년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항상 변화를 쫓느라 바빴다. 동화가 아닌 소재를 찾거나, 동화를 변주하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시도는 관객을 매료하기도 했지만, 디즈니만의 개성을 잃고 픽사 작품을 닮아간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시>의 지극히 원형적인 이야기가 역으로 인상적일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형식과 내용의 충돌
문제는 <위시>의 동화적인 형식이 정작 내용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시>는 제목대로 소원에 대한 동화다. 로사스 국민은 매그니피코 왕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소원을 맡긴다. 왕은 매달 로사스를 위협하지 않는 소박한 소원 하나만을 이뤄준다. 그는 로사스 사람들은 자기가 맡긴 소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왕에게 소원을 안전히 맡기는 데에 만족한 채로 살아간다.
아샤는 이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다. 소원을 이뤄주는 기준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공익을 위해 개인의 소원을 희생하며,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자유와 가능성을 평생 뺏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래서 아샤는 왕 대신 별에게 소원을 빈다. 로사스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원을 되찾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살도록 해달라고. 그러자 이 소원을 들은 별은 땅에 내려와 아샤와 함께 모든 소원을 되찾는 여정에 나선다.
<위시>는 이 과정을 통해 다음처럼 말한다. 소원을 이룰 개개인의 자유와 가능성은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고, 구속될 수 없는 존재니까. 이 대목이 발단이다. <위시>의 교훈은 형식만큼이나 동화적이다. 그런데 그 교훈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동화로 포장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그 결과 <위시>는 동화와 현실, 형식과 내용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동화로 노래할 수 없는 현실
실제로 <위시>의 교훈은 익숙한 현실을 소환한다. 우리 모두 하나의 별이니 자존감을 갖고 전진하자는 말은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이야기다. 이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량과 가능성을 살리고, 재능을 오롯이 발전시켜 최상의 결과를 만들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미국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고, 더 나아가 능력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발현인 셈이다.
그런데 스크린 너머 관객의 현실에서 <위시>의 교훈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소원을 지녀도 재능과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환경에 처했거나, 재능을 알더라도 계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소원을 이루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기도 하다.
심지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지적대로 운이 따라 성공한 사람들에게 모든 과실이 쏠리고, 실패한 이들과의 차이가 벌어지고, 패자들이 멸시받는 일이 많아지기도 했다. 즉, 스크린 너머의 현실에서는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감, 기회의 평등에 대한 의문, 신자유주의 체제애 대한 불신이 나날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소원을 이루자'는 <위시>의 교훈은 제목만큼이나 꿈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자연히 <위시>의 메시지는 하늘에서 땅으로는 내려와도, 스크린 너머까지는 닿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을 동화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순간 거부감을 키울 뿐이다. 동화로 포장할 수도 없고, 환상만으로 해결될 수도 없는 현실을 기만하는 것 같은 위선마저 느껴진다.
동화라서 보이는 구멍
물론 <위시>는 나름대로 형식과 내용, 메시지와 현실의 간극을 메우려고 애쓴다. 유머, 노래, 화려한 CG를 총동원한다. 하지만 끝내 동화라는 한계를 벗어나려 하지는 않으며, 결국 동화라는 이유로 생략된 수많은 현실은 수많은 구멍을 낳는다. 우선 동화라는 이유로 평범한 이야기를 옹호할 수 없다. 오히려 드라마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겨울왕국> 감독인 크리스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캐릭터도 매력이 없다. 전형적인 동화의 주인공인 아샤와 그의 아버지는 흥미롭지 않다. 귀여움만 어필하는 염소도 <겨울왕국> 속 스벤에 비하면 존재감이 부족하다. 반전을 염두에 둔 '왕비'(안젤리크 카발)도 근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한 '주체적인 여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나마 매그니피코가 강렬하다. 행적은 뻔하지만, 과하게 무게 잡는 대신 유머로 잔뜩 무장한 악역이라서 차라리 새로워 보이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는 디즈니의 야심 찬 변화도 설득력을 잃는다. 아샤에게는 일곱 난쟁이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성별과 인종으로 이뤄진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다양성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인종별로 고정관념적인 외모를 활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니까. 당장 아샤의 가장 친한 친구 '달리아'(제니퍼 쿠미야마)만 해도 동아시아인임을 보여주기 위해 키가 작고, 통통하며, 안경을 쓴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에 더해 동화의 근본적인 한계가 또 한 번 디즈니의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다양한 인종과 성별이 작품 내에 공존한다고 해도 다양성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저 병풍에 불과하다. 동화는 특정한 주인공 한 명의 이야기이고, 필연적으로 그의 특징만 부각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처럼 디즈니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줘야 할 변화도 <위시>에서는 결국 모순으로 귀결된다.
엔딩 크레디트만 빛난다
그럴수록 <위시>에는 10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강박만이 남는다. 물론 강박의 순기능도 있다.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교집합 내지는 프리퀄 같은 오마주는 디즈니 작품을 보며 자란 관객에게 독특한 감동을 안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녹아 있는 엔딩 크레디트 역시 100주년에 걸맞은 인상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다만 이 모든 노력은 찰나의 기쁨일 뿐이다. 과거의 영광은 변화한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할리우드에서도 꿈과 환상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잘 그려내기로 유명했던 디즈니의 100주년 기념작 치고는 중요한 미덕을 여럿 빼먹은 셈이다. 그러니 <위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안에 담긴 디즈니의 현재와 미래가 마냥 화려해 보이지는 않으므로.
Poor 형편없음
동화와 현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표류 중인 디즈니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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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간에 그려낸 서로의 초상화.
이 글은 영화 [승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드라마 촬영 후 후보정까지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적나라하다는 표현 밖에는 붙여줄 수가 없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초상화를 남기는 것은 어명의 영역이었기에 그 어떤 숨김도 거짓도 없어야만 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당연하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 폭의 그림에 담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마냥 어명이라 하더라도 신이 나지는 않았을 것만 같다. 애써 숨기고 싶었던 곰보 자국이 그림 안에서 살게 될 자신의 뺨 위에서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단점마저도 초상화에 들어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제자인 창호(유아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했을 때. 조훈현(이병헌)은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의 곰보자국들을 들여다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익숙한 흉터뿐만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기풍에 있는 부스럼까지 발견했을 때의 그 무력감은. 아마도 바둑의 신(神)과 겨루어도 질 것 같지 않았던 그 당시 그의 자존감의 크기만큼이나 크고 깊었을 것이다.
처음엔 제자의 초상화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들여다보니 보인 것일 뿐이라 믿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을 결승전에서 앞에 두고 스승의 초상화를 또 한 번 묵묵히 그려내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훈현은 자신의 장점도 단점도. 승패를 가린다는 어길 수 없는 어명 같은 하나의 목적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창호가 그린 초상화가 자신과 똑 닮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몸을 일으켜 애써 그 초상화 앞에서. 그리고 그 초상화의 주인 앞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더 들여다보았다가는 정말로 제자에게, 혹은 제자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으니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스승과 승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 훈현은 꽤 오랜 세월을 바쳐야 했다. 그동안 결승마다 만난 자신의 제자 앞에서 수도 없이 패배와 친해져야 했다. 무관왕이라는 타이틀 아닌 타이틀도 어느새 그의 옆에서 입김이 느껴질 위치에서 머물곤 했다.
자신의 제자는 물과 같아서. 칼처럼 예리한 자신은 베어낼 수도. 손에 쥘 수도 없었다. 그는 속절없이 차디찬 물에 떠밀려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리 자신을 휘둘러도 창호의 눈썹 하나조차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에 빠져 죽는 것 외에 남은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신(戰神) 조훈현에게 후퇴한다는 말까지 수식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분명 제자에게 스승과 승부는 다른 것이라 가르쳤으며. 자신이야 말로 이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제자를 베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달궈진 자신을 식혀서 단단하게 연마해 주는 것이 제자의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 조훈현의 손에는 제자의 모습. 아니 자신의 라이벌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다시 만난 제자는 자신에겐 패배를 배우게 한 스승이 되어 있었고, 승리를 알려준 스승을 만난 제자는 훈현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초상화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기묘한 사제관계의 라이벌은, 다시 한번 치열하다 못해 피가 마르는 신선놀음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 신선놀음의 끝에는 분명히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더 이상 그 결과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물론 제삼자의 입장이라 그랬을지도.)
자신의 스승과 대국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자신의 곰보자국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스승과 제자, 라이벌 사이를 오가는 이 대국은. 단순한 승부라는 말을 넘어서서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으니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바둑판 위에서 펼쳐진 그들의 대결은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이 남긴 서로의 초상화가 단순한 기보가 아닌. 인생의 기보로 남았기에 나 역시도 이런 영화를 보며 그들의 흉터에서 느껴지는 아픔마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면서;책임지지 못한 돌에 대하여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는 할아버지에게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도 말고. 이곳을 잊어버리라는 말을 듣는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야 없었겠지만. 그만큼 토토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쯤은 어린 토토라도 이해했을 것이다. 어린 창호의 왼손에 채워진 시계는 그런 걱정과 염려를 담뿍 담은 채 굳건히 채워졌다.
물론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창호는 변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묵묵히 해내며 앞으로 정진했다. 스승인 조 국수에게 배운 것처럼 바둑돌 하나하나에도 책임을 다 했고 그 결과 정상의 자리를 15년가량이나 지키며 남에게도. 스승과 라이벌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분명 매우 좋은 영화이며 큰 만족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나올 수 있었던 영화였으나. 그는 초심을 잃은 토토가 되어 영화 속에서만 강렬한 연기를 보일 뿐이다.
조훈현의 시점만이 아닌 이창호의 시점으로도 영화를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나. 커버린 토토가 할 것은 참회밖에 없기에. 이 영화의 영광과 대단함이 한 풀 꺾이는 것만 같은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가르친 참된 스승이었다. 배우 유아인에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동시에 드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영화관에서 팝콘 안 먹기 2회 성공
2. 오늘 점심 회식인데 도망가고 싶다.
3. 이 비를 통해서 불이 반드시 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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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를 예열하는 탐정 느와르로 귀환하다
드디어 로버트 패티슨을 영화관에서 봤다. 사실 그의 작품을 해리포터 조연을 제외하고, 그가 주연으로 나온 작품을 단 한 개도 보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 <더 배트맨>에서 그가 연기하는 배트맨이 기대가 됐고, 그 기대는 옳았다. 배트맨 2년차의 브루스 웨인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찰떡이었다.
영화 <더 배트맨> 시놉시스
영웅이 될 것인가 악당이 될 것인가, 운명을 결정할 선택만이 남았다
지난 2년간 고담시의 어둠 속에서 범법자들을 응징하며 배트맨으로 살아온 브루스 웨인. 알프레드와 제임스 고든 경위의 도움 아래, 도시의 부패한 공직자들과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활약한다. 고담의 시장 선거를 앞두고 고담의 엘리트 집단을 목표로 잔악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가 나타나자, 최고의 탐정 브루스 웨인이 수사에 나서고 남겨진 단서를 풀어가며 캣우먼, 펭귄, 카마인 팔코네, 리들러를 차례대로 만난다. 사이코 범인의 미스터리를 수사하면서 그 모든 증거가 자신을 향한 의도적인 메시지였음을 깨닫고, 리들러에게 농락 당한 배트맨은 광기에 사로잡힌다. 범인의 무자비한 계획을 막고 오랫동안 고담시를 썩게 만든 권력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만,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밝혀지자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 해당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더 배트맨>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빛이 어디 있나요?
영화 <더 배트맨>을 다 보고 나서 영화관을 나오며 느낀 것은 ‘역시 빛은 좋은 것이다’, ‘사람은 빛 속에서 살아야 한다’였다. 영화 <더 배트맨>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정말 형광등이든 자연광이든 빛 아래에 있는 씬이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신이 밤거리에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어둠 그 자체의 모숨을 보여준다. 환경적으로도 거리의 어둠을 보여주면서 배트매느이 어두운 내면과 고담시의 어두운 환경이 합쳐지니 역대급으로 우울하고 침전하는 듯한 영화가 탄생했다. 어벤져스처럼 스펙타클하고 화려한 느낌을 기대한다면 그건 잘못 기대를 한 것이다. 덩말 우울, 침울의 끝판왕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나는 우울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3시간 가량되는 이 영화를 다 볼 수 있었던 이유는 bgm이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무거운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도 사람의 심장을 쪼이는 듯한 긴장감을 텐션감 높게 풀어내서 극도의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잘 풀어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공포를 예열하도록 하지...!
아직도 생각난다. 배트맨이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그 사운드. 둥두둥둥 둥두둥둥~ 의성어로 쓰니까 굉장히 하찮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영화 <더 배트맨>은 빠르지 않다. 배트맨이 배트카를 몰고 추격을 할 때도 빠른 박진감이라기 보다는 무거운 위압감이 더 잘 느껴지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빠르게 적을 공격한다는 느낌보다는 적에게 공포감을 최대한 실어주고 그 공포가 극한에 달했을 때 두둥~ 하고 나타나서 처단하는 타입이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bgm만 흘러나오는 그 공포, 그리고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는 들리는데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암흑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나도 잘 활용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대사에도 나온다. “공포는 도구다.” 이 대사가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데 그 말을 너무나도 잘 이용하고, 두려움과 공포를 이용해서 무법자들을 처단하는 배트맨의 정의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암흑 속에 있는 배트맨의 감정을 나 혼자만 잘 구분을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영화 보다가 없던 야맹증 생기는 줄 알았다. 스크린이 아주 온통 시꺼멓다,,, 영화 <더 배트맨> 속 브루스 웨인은 우울과 부노 이 두 가지 감정만을 가진 사람처럼 비춰졌다. 평상시와 범죄자들을 처단할 때는 우울하면서도 침착한 상태로, 자신의 가문에 대한 비밀이 폭로될 때에는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가문에 대한 비밀을 알고 좌절하면 무너지는 장면에서 조금 더 감정의 베리에이션을 줬더라면 왜 배트맨이 마지막에 스스로를 리벤저(복수)라고 일컫지 않고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희망이라고 말햇는지 더 설명이 잘 되지 안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복수가 곧 정의라고 믿으며 내가 바로 복수다라고 외쳤던 시그니처를 도시를 범죄로 물들인 자경단의 이비에서 똑같은 말을 듣자 나의 길이 잘못됐다는 허망함에 무너져서 정말 마지막 장면에서 누전되는 전깃줄을 자르면서 배트맨이 자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벌떡 일어나서 조명탄을 터뜨리더니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음,,? 나의 해석이 잘못된 것인가,, 다음 편에서 조금 더 감정의 변화와 그 폭이 다채로운 배트맨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우울에도 그 종류는 다채로우니 말이다.
영화 <더 배트맨>은 3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배트맨의 우울함에 함께 허우적대면서도 단 순간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중간중간 번역이 왜 저렇게 됐을까? 늬앙스를 잘 살리지 못한 장면들이 곳곳에 있어서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충분히 역작이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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