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8-04 07:56:18
갑옷을 입혀주고픈, 아이들이 만든 작고 약한 물방울
영화 〈수연의 선율〉
어느 정도 영화의 얼개가 잡히고 난 이후부터, 관객은 어떤 긴장감 속에서 수연과 선율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은 수연은 보육원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새로운 법적 보호자를 찾아야만 한다. 친구네 가족, 교회, 복지사… 그러나 수연이 가족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느녀가 보기에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 수연과 그들 사이에 건너지 못할 거대한 감정의 구덩이를 파놓은 상태다. 그들은 수연에게 얼마든지 ‘선의’를 베풀 수는 있지만, 결코 가족이 되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선율을 입양해 브이로그를 제작하는 한 부부가 수연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수연은,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두 번째 입양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에 부푼다.
선율과 가까워진 후 선율을 입양한 부부와도 인연을 쌓는 수연에게, 부부의 이상한 점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수연에게는 오직 그들의 가족이 될 가능성만이 절박하다. 수연은 계속 부부에게 자신이 입양할 만한 ‘착한 아이’라는 점을 어필한다. 어린 선율을 잘 돌봐주고, 늘 피곤하고 예민해 보이는 아내와 과해 보이는 긍정을 몸에 두른 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돌봄은 상호적인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종종 일방향적 물리적 돌봄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초등학교 6학년에 불과한 수연은 반대로 ‘예비’ 부모에게 물리적 돌봄, 나아가 정서적 돌봄까지 제공한다. 부모 앞에서 늘 침묵을 지키는 선율은 그런 수연을 보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 선율은 늘 말한다. “엄마가 좋아하니까.” 선율은 조용히 있는 것, 즉 자신을 입양한 부모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그들이 ‘표현 장애’가 있는 어린아이를 입양했다는 트로피처럼 활용되는 것(브이로그)을 자기 역할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자신과 똑같이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언니 수연을 보면서는 연대 의식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낀다(“언니가 좋다가도 없었으면 좋겠어”). 언니 수연이 부부에게 입양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자기 자신이 투영되어 모순적 감정이 동시에 발현되는 것이다.
부부가 어느 날 수연과 선율을 남겨두고 증발하듯 사라진 이후, 수연과 선율의 관계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수연이 선율에게 접근한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입양이었다. 그런데 부부가 몰래 떠난 후 그 목적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제 수연에게 선율은 무슨 의미일까? 이 새로운 관계의 맥락 위에서, 선율은 수연에게 ‘짐’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아가 선율이 자신이 부부의 마음에 들기 위해 특정한 모습을 연출했다는 걸 간파했다는 걸 알 게 된 후, 수연은 비밀을 들킨 부끄러움으로 선율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수연은 자신을 외면한 친구네 가족, 교회, 복지사와는 다르다. 그들은 수연과 자신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구덩이를 파놓은 상태로 ‘호의’를 제공했다. 선율을 입양하고, 수연에게도 입양을 약속한 후 무책임하게 도피한 부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연과 선율은 부부가 파놓은 구덩이에 함께 빠져 허우적거린 사이다. 두 사람은 부부가 파놓은 구덩이를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구덩이 안에서 진흙투성이가 되는 과정에서 서로의 깊은 외로움과 혼자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조우했다. 겉으로만 마음씨 좋게 군 어른들과 달리 수연과 선율 사이에는 아무런 구덩이가 없다. 그 대신 두 사람은 동질감과 연대, 돌봄으로 엮인다.
그러니까, 〈수연의 선율〉은 어른들은 대체로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며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방기할 때, 아이들은 극도의 취약성 속에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아이들이 구축한 관계성은 물방울처럼 작고 약하다. 아름답지만 언제 깨지고 흩어져 사라질지 모른다. 물방울이 깨지면 마른 땅에 작은 흔적을 남기겠지만 이내 그마저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래서였다. 수연과 선율이 만들어낸 물방울의 이미지에 갑옷을 입혀주고 싶었던 것은.
관계의 윤리에 관한 아이들과 어른들의 대비가 미묘하게 두드러지는 이 영화에서, 어른들에게 돌봄을 갈구하는 동시에 선율을 돌보는 수연의 불안하면서도 복잡한 감정과 표정은 어른과 아이,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 사이의 경계에 선 자의 혼란을 훌륭히 대변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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