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2025-03-13 12:55:57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욕망과 두려움의 표상, 그리고 삶의 의미
영화 ‘아가씨’가 말하는 당신의 유토피아
*영화 '아가씨'의 결말 줄거리 포함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소설(fiction)의 형태로 이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것은 태생부터
이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존재하는 그 개념은 생명을 가진 유기체처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역동적으로 그 의미를 달리 해왔다. 그 과정에서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이 새롭게 태동하여 마찬가지로 살아 움직이며 몸집을 불려왔음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는 수많은 매체와 형태, 즉 문화라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그 과정을
지켜봐 왔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살아 움직일 수 있는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욕망과 두려움이었다.
-
두 사람의 디스토피아
영화 ‘아가씨’는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 유토피아로 향하는 과정으로서 인간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극 초반에서 나타나는 두 주인공의 삶은 각기 다른 형태의 디스토피아를 나타내고 있다. 두 인물의 삶은 경제적 또는 사회적 자유가 부재하는 삶이다. 이에 저항하여 생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분투하는 타마코와 분투 끝에 생존의 의지를 상실해버린 아가씨의 모습은 대조를 이룬다. 두 인물은 사회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각각을 배타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사회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둘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자유의 부재다. 그들은 분명 자유롭지만 철저하게 일면에서만 자유로운 탓에, 결국 전혀 자유롭지 않다. 한쪽은 돈에, 한쪽은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에 철저히 종속된 삶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서 자신이 가진 결핍으로서의 부자유를 본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가장 밀도 있게 함유한 개념이다. 우리의 욕망은 결코 완전히 충족되는 법이 없는 반면,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실현 가능함에서 비롯한다. 실현이 가능하지
않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그러나 욕망하는 것에는 가까이 가고자 끊임없이 질주하는 과정이다. 디스토피아에
대한 도피와 유토피아를 향한 지향이 인간 삶을 구성하는 본질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유토피아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옥희’라는 유명한 대사는 아가씨의 관점에서 서술되지만 타마코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가씨의 마음, 그것은 곧 생명의 불씨였기에 타마코에 의해 마음이 짓밟힌 순간 그녀는 목을 매달기 위한 밧줄을 꺼내든다. 타마코가 벚나무에 힘없이 매달려 죽음을 기다리던 아가씨를 밑에서부터 받쳐 들었을 때, 두 주인공이 깨달은 것은 단지 서로를 향한 각자의 애달픈 마음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토피아가 반대편이 아닌 동일한 방향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서로의 존재 없이는 결코 그곳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인생을 ‘구원’해내기로 한다. 그리고 종래에는 하나의 유토피아에 도달한다. 이는 원작 소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기도 한데, 원작에서 두 주인공은 길고 지난한 여정에 걸쳐 기존의 디스토피아에서 또 다른 디스토피아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그들은 둘의 노력으로 이룩할 수 있었던 유토피아의 존재조차 끝까지 알지 못한다. 원작과 영화의 결말, 그리고 이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극명한 차이가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삶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삶의 본질은 단지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우리는 도피하는 동시에 어딘가로 나아가야 한다. 그곳에 각자의 유토피아가, 욕망이, 삶이 있기 때문이다.
-
삶으로써 대답하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각자의 유토피아를
향한 과정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실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 도착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오직 그것만이 삶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유토피아에
도달함으로써 마치 기차가 역에 도착하듯이 삶도 종착역에 도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행인
것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우리들 삶의 의미가 죽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삶의
의미는 남는다. 그것은 주인을 잃었어도 기어코 이 세상에 남아 삶과 연결된다.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며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하나의 질문이 있고
하나의 답이 있다. 당신의 질문과 나의 질문, 당신의 답과
나의 답은 반드시 다를 것이다. 그러나 다름 아닌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우리는 연결될 것이다. 삶으로써 질문에 대답해야만 하는 숙명을 가진 인간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