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마2025-08-12 00:15:38
초록빛 청춘에게 스민, 아픈 사랑 이야기
영화 〈나의 아픈, 사랑이야기(Lovesick)〉 리뷰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대만표 청춘 영화들이 있다.
올래는 어떤 작품이 국내에 들어올까 궁금하던 차에, 〈나의 아픈, 사랑이야기(Love sick)〉를 만났다.
우연히 보게 된 포스터 속 태그라인이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 끌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영원히
이 문구가 과연 무슨 의미일까.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를 띄운 채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놉시스
꾀병이 사랑병이 되었다… 오진으로 암 선고를 받은 남쯔제. 퇴학을 피하기 위해 계속 연기하면서 반장 여쯔제의 특별 케어를 받게 되고, 식단부터 공부까지 관심과 감시가 시작된다. 그땐 몰랐다. 티격태격 꾀병이 가장 아픈 사랑병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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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동명이인으로 시작된 인연
같은 반, 같은 이름. 하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두 사람이 있다.
사고를 몰고 다니는 문제아 남쯔제와,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모범생 스타일의 반장 예쯔제.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던 두 사람은, 남쯔제가 교장 차를 들이받는 황당한 사고를 계기로 얽히게 된다.
그 사고로 병원행이었던 남쯔제는 병원에서 '위암'이라는 오진을 받는다.
그 오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퇴학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몸을 챙기지 않는 위암 환자. 도시락 대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여전히 천덕꾸러기처럼 구는 그가 못내 신경 쓰였던 걸까.
담임의 권유로 예쯔제는 남쯔제의 케어를 맡게 된다.
그날 이후 매일 같은 자리에서 먹는 도시락이 두 사람 사이의 작은 다리가 됐다.
예쯔제가 가져다 주는 도시락은 늘 밍밍하고 소박한 음식이었지만, 그 속에는 환자를 향한 정성과 원칙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맛없고 귀찮기만 여겨지던 도시락이, 기다려지는 점심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병원에서 시작된 또 다른 인연, 천리
오고 가는 도시락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던 또 한 사람, 천리.
그는 예쯔제의 오랜 도시락 메이트이자, 남쯔제보다 먼저 그녀를 좋아했던 인물이었다.
단정한 겉모습과 달리 뇌전증을 앓았던 그는, 병원에서 예쯔제를 처음 만났다.
천리와 예쯔제의 첫 만남, 위암 오진으로 환자가 된 남쯔제,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그의 이모, 그리고 함께한 봉사활동.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병원이라는 장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병원은 세 사람을 이어주는 장소임과 동시에 잔잔한 불길함을 피어오르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왜 이들의 서사 속에 병원이 반드시 있어야 했을까.
순간,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에서 읽었던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그 문구는 이야기의 끝을 어렴풋이 예감하게 만들었다.
작열하는 햇빛 아래, 초록빛 풍경 속에서 반짝이던 청춘들. 그 빛이 너무 찬란해, 내 예감이 틀리길 바랐다.
천리는 언젠가 ‘해저 우체통’ 이야기를 꺼냈다. 바다 속 깊이 잠긴, 외딴섬 아래의 우체통.
뇌전증이 완치되면 꼭 그곳에 편지를 넣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연한 접촉사고가 치명타가 되어, 천리는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시작된 인연은 그렇게 병원과 가장 가까운 비극으로 끝이 났다.
그들에게 병원은 함께 웃었던 기억과 깊은 슬픔이 동시에 스민 장소로 남았다.
거짓말과 진심 사이
천리가 남쯔제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간단했다.
예쯔제를 좋아한다면, 거짓말 하지 마.
남쯔제는 그제야 마음속 무거운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은 위암 환자가 아니었고, 퇴학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예쯔제는 자신을 속여왔던 남쯔제에게 분노했고, 대학생이 된 후에는 그와 단호히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남쯔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연락이 닿지 않으면 친구를 통해 영상 편지를 전했고, 그의 진심은 흘러 흘러 예쯔제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다시 가까워진 그들에게 행복해질 일만 남은 듯 보였다.
순간은 영원이 되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예쯔제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그녀가 늘 밍밍한 도시락을 싸오고, 결벽증에 가깝게 손 소독을 반복하던 이유가 문득 선명해졌다.
백혈병 환자였던 그녀는 아픈 티를 내기 싫었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남쯔제 곁에서 끝까지 단단히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남쯔제는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가족, 친구, 사랑 소중한 것들이 바스라지며 그의 곁에서 사라져 갔다.
그럼에도 그는 상실을 홀로 견디지 않았다.
예쯔제의 부모를 찾아가 아들처럼 그들의 곁을 지켰고,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마음 깊숙이 간직했다.
그리고, 천리가 말했던 그 해저 우체통을 찾아간다. 예쯔제에게 전할 편지를 들고.
도시락을 건네던 손길, 함께했던 병원 봉사,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오후, 아쿠아리움 데이트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그의 가슴 속 깊이 잠겼다.
그리고 그가 잊지 않는 한, 그녀는 영원히 그의 청춘 속에서 반짝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순간은 영원이 되었다.
추천 한마디
올여름, 대만표 청춘 영화가 다시 한 번 스크린 위에서 반짝인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청춘들을 놓치지 않길 바라며, 이 영화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