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사서 유2025-09-02 16:07:29

남과 남이 만나 가족이 된다

<비밀일 수밖에>를 보고서

가족이기에 말할 수 있고, 가족이기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전자의 경우 내겐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직설적인 쓴소리가 대부분이었고, 후자의 경우 여러 복합적인 감정으로 내 입을 닫게 만든 것들이었다. 걱정과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숨겼고 고독과 외로움은 주말의 저녁식사로 무마했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이러한 가족의 속성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가족을 다시 정의하며 자신만의 화법으로 위로를 건넨다.

 

 

 

 

 

평범한 중학교 교사인 정하는 병휴직 기간 동안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진우와 그의 여자친구 제니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의 해후도 잠시 숙소를 잘못 예약한 제니의 부모님과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되고, 여기에 정하의 여자친구 지선까지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6명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진우의 청소년기로부터 시작한다. 그 나이 또래에 보일 수 있는 반항, 다소 강압적인 아버지, 그리고 위태로운 부부의 모습을 동시에 보이며 진우의 아버지이자 정하의 남편이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영화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인물들의 대사로 하여금 춘천이라는 동네를 끊임없이 좁고, 소문이 나기 쉬우며, 지역 내 특징이 그 어디보다도 도드라지는 지역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는 다른 주인공들보다도 정하에게 더욱 두드러지는데 춘천이라는 동네는 정하가 살면서 계속 깨어나가야만 하는 현실과도 닮아있다. 외지인으로서 직장 내에 주요 직무부서에까지 올라온 그녀의 현재와 결말 즈음 복직을 앞두고 결정을 내린 그녀의 선택은 내용만 다를 뿐 실은 같은 성격을 지닌다. 

 

 

 

영화는 6명의 인물 간의 관계성과 감정선이 시도 때도 없이 얽히고 풀러 지기를 반복한다. 대놓고 상황을 설명한 적은 없지만, 대사로 유추해 보았을 때에 이들은 저마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이다. 특히나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아들이기도 한 제니 아빠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갈등은 얽히고설키다 못해 이내 폭발한다. 영화 속 상황은 몹시 절망적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터졌어야 했던 일이 기어코 터질 때의 서글픈 쾌감이란. 예비사돈이라는 어색하고도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가족도 남도 아닌 채로 까발려진 감정들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완전한 가족도 또 완전한 남도 아니기에 일어날 수 있던 일로 보인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봉준호감독이 극찬하여 이 영화를 3번이나 관람하였다고 한다. 영화를 실제로 관람하다 보면 왜 봉준호감독의 취향을 저격하였는지 몇몇 구석에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서서히 차오르다 폭발하는 클라이맥스와, 어긋나는 상황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웃음. 그리고 여러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며 벌어지는 극적인 긴장감과 따뜻함까지. 흔히 보이는 단란한 가족의 형태를 부수면서도,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다시 정의하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제목 그 자체이다. 가족이라 비밀일 수밖에 없는 상처를 비로소 꺼내어볼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가 가족임을 실감하게 된다고.

 

 

 

 

작성자 . 사서 유

출처 . https://brunch.co.kr/@librarianyu/294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