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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gha2025-09-07 08:45:26

지위가 위대함을 만드는가?

<지리멸렬> 리뷰

우리는 특정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전문가나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논평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들은 유서 깊은 원칙과 근거들을 빌려 

설명을 해주고는 한다. 우리가 그들이 하는 말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나아가서는 더 도덕적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인의 위대성은 그 개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식인이라는 지위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 <지리멸렬>이다. 지리멸렬의 사전적 정의는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 말이나 행동에 논리적 일관성이 없을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렇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지식인들의 비일관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인물이 나온다. 아침 운동을 하면서 남의 문 앞에 놓여있는 우유를 습관적으로 훔쳐먹는 신문사 논설의원, 만취해 길가에서 용변을 누려는 

검사, 그리고 도색잡지를 즐겨보다 여학생에게 들킬 뻔한 위기를 겪는 교수. 그들의 일탈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게 목격되거나 제지당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지식인으로 등장해 사회 문제에 대해 권위 있는 척 논평한다.

 

 

 

봉준호 감독이 말하고자 한 메시지는 지위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흔히,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더 신뢰한다. 하지만 지위가 곧 인격이나 위대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진정 개인의 인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위가 부여한 권위일 뿐인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봉준호 감독이 던진 문제의식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유효하다. 권위 있는 지위와 화려한 이력이 반드시 도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허울뿐인 가면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하는 위치’가 아니라 ‘말하는 내용’과 ‘그 사람’을 근거로 신뢰를 판단해야 한다. 

결국 <지리멸렬>은 지식인의 허상을 풍자하면서, 우리가 타인의 권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돌아보게 한다. 사회적 지위는 일시적일 수 있지만, 개인의 일관성과 도덕성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지위를 가진 사람인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 일 것이다. 

작성자 . mung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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