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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글다2025-09-19 18:06:06

[30th BIFF 데일리] 상실과 탄생 그리고 모성애

영화 < 또 다른 탄생(Another Birth)> 리뷰

Director: Isabelle KALANDAR 이저벨 칼란다

 

Cast: Shukrona NAVRUZBEKOVA, Isabelle KALANDAR, Shoira ABDULGAEZKHONOVA

 

 

 

Program Note

 

타지키스탄에서 한 편의 시와 같이 아름다운 영화가 도착했다. <또 다른 탄생>은 타지키스탄 산골 마을에 사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소녀는 어느 밤, 엄마에게 묻는다. “사람이 슬픔 때문에 죽을 수도 있나요?”, “슬픔 때문에 사람은 사라져 갈 수 있단다.” 소녀는 다시 묻는다. “사라져 간다는 게 뭔가요?”, “인생의 맛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는 거야.”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그리며 간신히 삶을 이어가는 할아버지, 외로운 삶 속에서 점차 시들어 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소녀는 시를 읊고 현자를 찾아가고 파리(페르시아 신화 속의 요정)를 찾아다니면서, 사라져 가는 할아버지와 엄마를 붙잡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타지키스탄의 샤다라 계곡을 배경으로, 군더더기 없이 설계된 조명, 정지된 이미지들 사이의 섬세한 긴장감이 이 영화의 시적 정서를 한층 배가시킨다. 소녀가 읊는 시를 타고 엄마의 사랑과 슬픔, 절망이 음악처럼 유려하게 흐른다. 그리고 소녀는 엄마의 슬픔으로, 인생의 맛을 배운다. 타지키스탄계 여성 감독의 주목할 만한 첫 장편이다. (박선영)

 

 

 

 

<또 다른 탄생(Another Birth)>이라는 제목은 이란의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동명의 시에서 차용된 것으로, ‘탄생’이란 단어는 슬픔과 상실을 겪은 뒤 맞이하는 영적 갱신으로 사용한다. 시의 화자는 파라투스의 엄마 ‘파르빈’이 되어 존재론적 갈망과 페미니즘적 각성을 낭독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딸의 시선에서 본인을 설명하게 한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묵묵히 긁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린 딸에게도 시를 읽게 한다. 어린 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의 소외감과 슬픔에 대한 어두운 시. 순수한 마음이 잔인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영화를 한층 서정적으로 울린다. 영화는 시가 말하는 여성의 상실을 넘어 더 나아가서 모성애까지도 사유를 확장한다.

 

 

 

이저벨 칼란다 감독의 망명 3부작은 ‘떠남’에 대한 정서를 주제로 진행된다. 3부작의 첫 영화인 <또 다른 탄생>은 떠나고 난 후 빈자리에 자리 잡은 ‘고립’에 대해 다룬다. 남편의 소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정보의 고립과 황무지 산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물리적 고립은 관객들에게도 세상과의 단절을 느끼게 해준다.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우울감과 슬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픔은 감정의 고립이 되어 타지키스탄을 넘어 모두에게 스며든다.

 

 

 

영화는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세련된 연출을 보여준다. 마을과 자연이 교차하며 만드는 시선의 강약 조절은 마치 낭독 속 암묵과 구절의 전환처럼 보인다. 66분의 짧은 시간을 강약으로 가득 채워낸 영화는 다른 형태의 또 다른 시의 탄생을 목격하는 듯하다. 감독의 망명 3부작은 <여전히, 우리는 살아야만 한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죽음>를 통해 계속해서 ‘떠남’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또 다른 탄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저벨 칼린다 감독의 추상적인 강렬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차기작을 주목하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상영 스케줄

 

09-18 17:0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09-19 17:00 영화의전당 소극장

 

09-23 14: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작성자 . 맹글다

출처 . https://brunch.co.kr/@nomin-zoo/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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