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9-18 23:30:17
[SICFF 데일리] 기울어진 세상을 헤엄쳐
영화 <나의 수호신>
SYNOPSIS.
위험에 빠진 아이, 이상하고 귀여운 수호 동물과 마주치다
PROGRAM NOTE.
절친 타이스와 함께 수영 대회를 준비 중인 열한 살 소녀 아마. 아마는 스스로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네갈 출신인 아마의 부모님은 망명 신청을 거절당해 더이상 합법적으로 네덜란드에 거주할 수가 없다. 어느 날 남동생과 엄마가 불시에 잡혀가고, 도망친 아마는 아빠를 찾아 헤매던 중 거대한 호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수호신>은 네덜란드에 있는 수많은 불법 이민자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착안한 판타지 영화다. <나의 수호신>은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직면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집의 의미’를 묻는다. 이민자 이슈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이지만, <나의 수호신>은 인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정과 연민의 힘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최은영)
우리가 사는 도시를 집어들고 가방 털 듯 탈탈 털면, 거기서 후두둑 떨어지는 동물들은 개, 고양이, 햄스터… 같은 것만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읽었더라. 생각지 못한 동물들이 후두둑 떨어질 거라는, 정글에서나 볼 거라고 생각했던 동물들이 실은 우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그 말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나와 비슷한, 아주 닮지는 않았어도 대충 엇비슷한, 그리고 나와 다르지만 대충 예상했던 사람의 범위, 그 바깥의 누군가를 분명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도시 한복판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하지 않듯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익숙한지 아닌지 고작 그 문제다. 누군가의 상상력 하나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처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 본다면, 우리 모두 똑같이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아마는 그렇게 도시를 탈탈 뒤집으면 조금 당혹스러울 법적 지위를 가진 채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살고 있다. 성격도 밝고, 공부도 잘하고, 네덜란드 최고의 수영 선수를 보며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될성부른 수영 유망주 어린이이기도 한데, 대회 하나를 나가려고 해도 ‘써도 될 것’과 ‘써서는 안될 것’을 신중하게 골라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아마가 사는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 같다. 아이들을 씻기고 자신도 씻기를 즐겨 하는 이웃이 샤워기를 틀면 계단참으로 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만큼 연결되어 있는. 그러나 아마의 가족은 이런 상황에 불평을 일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활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아빠와 장난칠 때나 썼던 소금 통 하나를 사러, 그 심부름 하나로 아마의 생활이 영영 달라질 때까지는.
집에 있던 아마의 어머니와 동생은 “불법 이민자”여서 잡혀 가고, 아마는 놀이터에 숨어서 일을 나가신 아빠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아마의 세상이 전체적으로 기울어 있음을 관객은 이내 깨닫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앵글이 항상 기울어 있다. 학교도, 경찰서도, 집 바깥도, 전부 다 기울어 있다. 아마가 아빠를 찾아 들어간 “드 로테르담” 건물, 아빠의 일터 또한.
이 기울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는 스스로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불법 이민자이고 그 편견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무직과 청소 일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일한 업체의 이름은 Sunshine services이지만, 역설적으로 선샤인이라고는 전혀 빛나지 않는 밤에만 일하고, 밤으로 취급받는다. 세계가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서글픈 현실에 갑자기 거대한 호저가 나타난다. 영화 자막에서는 고슴도치로 번역되었지만, 호저는 고슴도치와 다르다. 꿀벌과 말벌 정도의 차이랄까. 고슴도치가 가시를 있는 힘껏 세워도 멀리서 (그러니까 그 가시가 나를 공격하기 않을 거리에서) 보면 귀엽겠지만, 호저가 가시를 세우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그로테스크하다.
나는 호저라는 생물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호저를 처음 봤는데, 심지어 인도의 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들을 모아 놓겠다고 조명을 있는 대로 침침하게 해 둔 어둠 속에서 그 가시가 파르르 서는 모습으로 처음 보았다. 뭔데 저거. 뭐야. 왜 무서워. 무서움을 익히 아는 다른 동물보다, 전혀 모르는 생물의 가시가 더 무서웠다. 알고 보니 호저는 정말 만만치 않은 생물이었다. 호저의 가시에 공격을 받으면 맹수도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 <나의 수호신> 원제인 ‘토템’답게, 이 영화 속 거대한 호저는 귀엽기만 하다. 도시 속의 사람은 내지 못한 위로의 울음소리를 호저가 낸다. 제목이 <나의 수호신>인데 자막에는 ‘토템’으로 나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이 엄마에게 “토템이 뭐야?”를 물어야 했음은 아쉬운 포인트지만… (참고로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토템은 “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 각 부족 및 씨족 사회 집단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커피 머신도 사랑이 필요하다며 쓰다듬는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아마는 그저 호저와 함께 걷는다.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면 같이 걸을 상대도 없는, 대도시 속 외로운 아이의 삶. 집이었던 곳은 경찰과 개의 손에 마치 범죄자의 소굴처럼 취급되며 서슴 없는 수색의 대상이 되지만, 호저는 깡통 차기 놀이 상대가 되어 준다. 마치 전통 속 여우 사냥의 한 장면처럼, 아마가, 사람이, 개에게 쫓기는 장면이 현실에서는 연출되지만 호저는 파르르 가시를 세워 아마를 지켜준다.
극중에서 호저를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마와 마음의 결을 같이 하는 이들뿐이다. 애초에 아마의 옆에 서 있었던 이들을 제외하면, ‘그리오grio’ 그러니까 가수이자 시인인, 노래로 이야기를 전해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을 사명으로 품은 이들밖에 없다. 이는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기능 중 주요한 한 지점을 짚는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노래는 계속되어야 함을.
‘온 세계가 당신의 조국’이라는 네온사인이 무의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도시에서, 정작 도시 안에서 평생을 자란 사람을 밀어내는 도시에서, 아마는 호저의 등에 올라 기울어진 세상을 걷는다. 이 차가운 현실에, 이야기 하나를 놓는다. 그 순간 세상은 변한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상자 바깥에서, 틀을 깨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그리오grio의 후예, 그러니까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이들인지 모르겠다. 아마가 외로운 여정을 걷는 내내 곳곳에서 아마를 먹이는 손길이 있었듯이, 이 외로운 도시를 가방 뒤집듯 탈탈 털면,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이나 사람들과 함께, 환대의 손길 또한 함께 후두둑 떨어질 것이다.
아마는 앞으로도 기울어진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마의 정체성은 ‘네덜란드인’에서 ‘경계인’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경계인임을 우리는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 여기 계속 사는 거냐는 질문, 아마와 타이스 두 아이의 물음에 부모님의 대답은 동일했다. “그래, 당분간은.” 이사를 가든 추방을 가든, 결말이 어떻든 우리 여기서 당분간은 살아갈 존재들임은 동일하다. 도시를 뒤집어 탈탈 털면 후두둑 떨어질 존재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그게 다르게 취급되는, 기울어진 세상을 우리 살아가지만,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래와 환대의 손길은 계속되니, 새처럼 날아드는 그 손길과 멜로디를 따라 계속 헤엄쳐갈 일이다. 씩씩하게!
9월 15일 20:00-21:37 롯데시네마 은평 5관
9월 17일 16:00-17:37 롯데시네마 은평 6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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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적인 강렬함으로 광증과 윤리를 잇다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재판장. 배심원단과 판사가 차례로 입장한다. 경륜이 있어 보이는 흰머리의 판사는 배심원단에게 분명하게 경고한다. 재판에서 증거로 상영될 영상의 잔혹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이미 수차례 강조했지만,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불편한 사람은 말해달라는 당부다. 피고는 슈발리에. 그는 세 명의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장면을 촬영한 스너프 필름을 다크웹에 유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세 명 중 두 명의 소녀가 살해된 영상은 증거로 확보된 상태다. 검사는 영상 속 살인자가 슈발리에라는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변호인은 영상 속 복면을 쓴 남자가 슈발리에라고 확정할 수 없다고 맞선다.
그러나 〈레드 룸스〉는 법정 영화가 아니다. 재판의 개요와 논점을 제시한 카메라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방청석에 앉은 두 여자를 향한다. 켈리앤과 클레망틴이다. 두 사람은 방청석에 앉기 위해 재판 전날 법원 앞에서 잠을 잘 정도로 이 재판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동기는 다르다. 클레망틴은 슈발리에가 무죄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이 그를 여론재판하고 있다고 믿는다. ‘무죄’인 그를 사랑하는 듯도 보인다.
한편 켈리앤이 재판에 참석한 동기는 명확하지 않다. 모델 겸 해커인 그녀는 이미 다크웹을 통해 재판의 증거인 두 편의 스너프 필름을 확보한 상태다. 재판정에서 만난 켈리앤과 클레망틴이 안면을 트고 가까워지는 동안 재판에 참석하는 켈리앤의 동기에 대한 미스터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영화가 켈리앤의 정체에 관한 수수께끼의 무게감을 쌓아 올리는 과정의 긴장감이 대단하다. 특히 켈리앤의 여러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에서도 정점인 장면, 즉 그녀가 자신을 희생자처럼 꾸미고 슈발리에와 인사를 나누다 제지받고 끌려 나가는 장면의 강렬함이 압권이다. 이 장면이 뿜어내는 미스터리의 힘은 온몸을 찌르는 듯 섬뜩한 사운드트랙과 어우러져 슈발리에와 켈리앤의 정체와 관계에 대한 모든 추론과 해석을 중단시킬 정도로 격렬하다.
관객을 절대적 미스터리의 미로로 몰아넣는 켈리앤의 비밀은 영화가 끝날 때쯤에야 드러난다. 그녀가 지난한 재판을 한 번에 뒤집을 마지막 희생자 살해 영상을 다크웹에서 경매로 구입한 후 이를 익명으로 제보했다는 것이 뉴스 화면을 통해 보도된다. 슈발리에의 얼굴이 논쟁의 여지 없이 분명하게 찍힌 영상이었다. 재판정에서의 기행으로 모델 일자리까지 잃은 그녀가 진범을 밝힌 익명의 영웅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이 ‘반전’처럼 보이는 이유는 영화가 내내 켈리앤을 께름칙한 인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클레망틴의 집착이 왜곡된 애정 때문이었다고 분명하게 제시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의문이 든다. 켈리앤은 왜 피해자 소녀 분장을 해 유족에게 상처를 주고 재판을 방해했을까? 슈발리에 앞에서 죽은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써 그에게 반성과 자백을 촉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슈발리에는 되레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켈리앤에게 손을 흔든다. 그가 내내 보였던 무기력하고 따분한 모습과는 정반대다. 그에게는 갱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한편, 켈리앤은 희생자 ‘되기’를 통해 길 잃은 재판에서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잡고자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슈발리에 변호사의 논거는 설득력이 있고, 다크웹은 공고하며, 수사 기관은 켈리앤과 같은 집요함이 없다. 이대로라면 재판은 슈발리에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오롯이 혼자서 이 모든 걸 뒤집어야 하는 켈리앤은 재판정에서의 분장으로 희생자가 ‘되는’ 그녀만의 의식을 치른다. 이제 켈리앤은 이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이자 희생자 그 자신이다. 이것으로 슈발리에를 처벌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다짐이 다시 한번 확고해진다. 충격적일 정도로 인상적인 법정 조우 장면에는 이런 의지가 담겼다.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는 분노와 용기의 기괴한 표출 말이다. 이 장면이 관객을 붙잡고 뒤흔든다면, 광증에 가까운 켈리앤의 윤리도 그러할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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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신가요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사랑하고 계신가요?
사랑을 하고 계시다면 행복하신가요?
혹은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혼자인 시간들을 보내고 계실 수도 있겠네요.
요즘 예술 영화 보는 취미에 빠졌는데, 사랑을 하고 싶은 혹은 요즘의 사랑이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후기를 남겨봅니다.
작년 이맘때쯤 개봉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그때도 호불호가 갈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에겐 극호였고, 인생 영화로 등극해 버렸다. 어제 영화를 보고 아직까지 영화 리뷰를 찾아보고, 영화를 보다가 떠오른 질문들을 되새기고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여주가 내 또래이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잠깐 봤던 예고는 내용도 그렇고 배경도 프랑스 영화 느낌이 강했는데 노르웨이 영화라고 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배우의 당시 감정과 상황에 적합한 배경과 구도를 영상에 담아내는데, 영상미가 꽤나 뛰어나다. 뻔하지 않은 연출 또한 영화가 유명해진 데에 한 몫한 것 같은데, 2시간 정도의 영화가 12 part로 나누어져 흘러간다. 그 안에서 배우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어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두드러진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다른 작품 델마와 오슬로, 8월 31일 도 좋다고 하는데 좋으면 리뷰해 봐야겠다.
억압된 감정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율리에
우린 인생의 단계가 달라
주체적이고, 똑똑한 주인공 율리에는 본인이 뛰어난 분야, 공부의 정점인 의사를 꿈꾸고, 그중에서도 목공을 하는 느낌일 것 같은 외과 의사를 진로로 정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본인과 맞지 않는 걸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정신과 의사를 꿈꾸지만 거식증에 걸린 동기들과 함께해야 된다는 것에 다른 진로를 찾는다. 그렇게 본인은 시각에 예민하다며 사진가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이 부분은 나를 포함한 요즘 세대라면 많이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 이걸 하면 좋다더라, 이걸 하면 성공한다라는 것들은 내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직접 경험해 보면 나와 맞지 않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도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 번 선택한 직업을 쭉 유지하며 그 과정에서 만족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난 율리에와 비슷한 과정들을 겪어서일까 그녀의 선택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율리에는 사진 일을 새로운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당시 모델 남자친구와 간 파티에서 평생 잊지 못할 또 다른 사랑을 만나기도 한다. 둘은 첫 만남에 강한 끌림을 느끼고, 관계를 맺지만 율리에보다 15살이 많은 악셀은 서로의 인생 단계가 너무 다르다고 한다. 율리에는 아직 본인을 찾아가야 하는 시기이라며 만남을 이어가자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율리에는 그 말을 듣고, 악셀과 사랑에 빠지며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율리에가 사랑에 빠진 순간에 공감한다. 불완전한 나를 알아주고, 불안한 미래를 이미 겪어본 사람이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줄 때, 사랑에 빠지지 않긴 힘들지 않을까?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아
그렇게 둘은 각자의 세계를 합치며, 행복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악셀은 본인의 가족의 휴가에 율리에를 초대하며, 가족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율리에는 악셀과의 가족과 어울리는 것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버겁기만 하다. 율리에는 그 이후 이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이미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악셀이 좋았지만, 그에게 맞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본인의 삶에서 그저 관중이 된 느낌이었다.
악셀의 행사가 끝난 후 공허함을 느끼는 율리에
악셀의 파티에서 나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무작정 들어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파티. 그 안에서 율리에는 의사 행세를 하며 공허함을 채운다. 그러다가 이성적으로 강하게 끌리는 에이빈드를 만나게 되는데, 둘 다 연인이 있었기에 바람은 안된다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스킨십만 없을 뿐 누가 봐도 바람인 행동을 하며 밤을 새운다.
에이빈드와 헤어지고, 그와 보낸 하룻밤이 계속 생각나던 율리에. 악셀과는 다르게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고, 또래에 말이 잘 통한다 느꼈던 에이빈드. 그가 계속 생각나던 율리에는 결국 악셀에게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를 떠난다.
예전에 우리처럼 대화 나눌 사람이 없어
그렇게 에이빈드와 열렬한 연애를 하던 율리에는 임신을 하고 마는데, 그 사실을 에이빈드에게는 말하지 않고, 악셀에게 찾아가서 고민 상담을 한다. 악셀은 심지어 얼마 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사실 영화에 표현된 주인공들의 감정과 스토리를 잘 알지 못하면 율리에는 최악의 사람이 맞긴 하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사랑할 땐 최악이 된다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악셀은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준다. 율리에는 본인이 이별을 고해놓고, 악셀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이 없다며 후회 가득한 말을 한다. 미숙한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율리에와 또래이고,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기에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갔다. 최악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들도 말이다. 나 또한 미숙한 사랑을 했었고, 앞으로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보다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그녀의 선택들을 보며 깨달은 건 오래된 인연과 권태가 오더라도 그 와 사랑에 빠진 순간들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면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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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캐릭터와 아쉬운 관계성
- 6★/10★
복권에 당첨되었으나 그 돈을 금세 말아먹는 사연은 흔하다. 직접 목격하진 못했더라도 누구나 해외 토픽에서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다. 레슬리도 그중 하나다. 〈레슬리에게〉는 한 작은 마을의 술집 앞에서 레슬리가 기쁨에 겨워 환호하는 장면을 담은 뉴스 화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6년 후. 레슬리는 철저한 빈털터리가 되었다. 숙박비를 내지 못해 모텔에서 쫓겨난 후 여기저기 부탁을 하고 연락을 돌려보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사람은 없다. 레슬리는 복권 당첨 후 이미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당첨금 19만 달러를 빠르게 탕진해 빈털터리가 됨으로써 또다시 화젯거리(조롱거리)가 되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알코올중독자를 받아줄 사람은 이제 마을에 없다.
결국 레슬리는 다른 도시에 있는 아들 제임스에게 간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제임스는 육체노동을 하며 차근히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제임스는 레슬리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맛있는 밥과 깨끗한 옷을 주고 새로운 계획이 생길 때까지 얼마든지 집에 머물라고 다정하게 말해준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제임스가 집에 머무는 동안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규칙으로 ‘술 마시지 말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짐작 가능하듯, 레슬리는 제임스가 제시한 단 하나의 규칙조차 지키지 못한다. 심지어 술을 마시기 위해 제임스의 하우스메이트 돈에 손을 대기까지 한다. 결국 제임스는 폭발한다. 제임스가 어릴 때, 레슬리는 제임스를 친구에게 맡겨둔 채 술을 마시다 그를 두고 떠난 적이 있다. 때문에 레슬리의 ‘규칙 위반’은 아들의 상처를 또 한 번 후벼 파는 일이다. 제임스가 과거 일을 묻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줬는데도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 레슬리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레슬리는 다시 자신이 떠나온 마을로 되돌아간다. 과거 제임스를 맡겼던 친구 집에 신세를 지지만 금세 쫓겨나고 술집, 길거리, 폐건물을 전전한다. 정말 이제 레슬리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는 듯 보인다.
이후 영화는 막다른 길에 몰린 레슬리가 모텔 주인 스위니의 호의로 조금씩 책임감을 배우고 자기 삶을 다시 꾸리는 과정을 담는다. 알코올중독 아내가 있었던, 자신 역시 누군가의 호의로 ‘괜찮은’ 삶을 꾸려나가던 스위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레슬리를 조롱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스위니의 호의를 어떻게든 빼먹을 생각만 하던 레슬리도 조금씩 그의 기대에 부응해나가며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늘 술 마실 궁리만 하며 폭력적으로 구는 레슬리에게도 남들이 보지 못한, 보지 않은 면이 있음을 드러낸다. 레슬리는 마을 사람들의 짓궂은 조롱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거나 들이받는 식으로 ‘시원하게’ 응징하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일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벼랑 끝에서 이를 알아봐 주는 스위니를 만나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겨둔 꿈을 펼쳐낸다.
스위니가 레슬리의 관계에서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격’을 묻고 따지지 않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믿음에 기반한 호의가 가능케 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쓰레기’가 된 삶이라도 누군가가 손 내밀어주고, 그로 인해 관계가 시작된다면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섬세하고 치밀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둘의 관계가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의 노동계급판 변주로 읽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과 더 높은 위치에서 누군가를 ‘구원’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한끗 차이로 결정되기도 한다. 〈레슬리에게〉는 분명 전자의 관계 양상을 지향한 듯하지만, 후자의 의구심을 완전히 지울 만큼 탄탄하지는 않다. 결국 이런 유의 영화에서는 스위니 같은 ‘비현실’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재현하는 데 그 성패가 달려 있기 마련인데 〈레슬리에게〉가 여기에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분명 적당한 감동을 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레슬리에게〉가 끝내 자기 메시지를 온전히 전하는 데 실패한 듯 보이는 것이 유독 아쉬운 이유는, 레슬리 캐릭터의 힘과 이를 연기한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빼어난 열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의 공허함, 허탈함, 분노 그리고 동시에 아주 깊은 곳에 깃들어 있는 희망을 응축한 캐릭터와 이를 설득력 있는 리얼한 연기로 선보이는 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영화의 성취에 대한 개인의 판단과 별개로 분명 많은 사람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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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차박은 위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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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수원과 미유는 결혼 1주년을 맞은 부부이다. 둘은 결혼 기념 여행으로 산으로 가서 차박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차박을 하려고 할 때 이상한 사람들만 자꾸 나타나고 차박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결국 차박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실종 사고가 발생했다는 아까 만난 의문의 남자의 말이 떠오른다. 한편 미유는 수원에게 아까 그 실종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혹시 토막 살인범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수원은 산 높은 곳까지 올 리가 없다며 다독인다. 그러나 차 안에서 잠든 사이에 미유는 수원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큰 걱정을 하는 미유가 수원을 찾기로 하는데 그녀의 앞에 가면 쓴 살인마가 나타나 죽이려고 한다. 과연 차박을 한 곳에서 수원과 미유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유에게는 수원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는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수원은 자신만의 계획을 짜서 미유와 함께 차박을 하는 것을 유도하고 가면 쓴 살인마와 미유가 아는 남자를 불러 사건을 일으켰다. 둘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이지만 어긋나버린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아내의 외도를 바라본 남편의 관점에서 복수심이 불타오른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는 차박이라는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담아서 공포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의 형인혁 감독은 로맨스와 스릴러를 합친 영화라고 한다. 근데 스릴러보단 로맨스의 비중에 조금 더 두었다고 기자 간담회에서 밝혔다.
딱히 완전히 스릴러 장르라고 보기는 어렵고 로맨스물이 첨가된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미유 역을 맡은 김민채 배우는 포틀랜드 호려 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김민채 배우가 선보이는 호러 연기와 수원 역을 맡은 데니 안 배우의 감미로운 발라드 노래도 볼 수 있다.
또한 의문의 남자 역을 맡은 홍경인 배우의 스산한 모습도 이 영화를 보는데 매력을 더한다.
차박 - 살인과 낭만의 밤은 대형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저예산으로 만든 스릴러 영화이다. 그래서 만약 9월 영화 중에 연인끼리 스릴러와 로맨스물을 결합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차박을 이용한 스릴러+로맨스 영화!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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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공부보다는 음악, 예술에 더 관심이 많고, 현실적인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포커로 돈을 벌어 여자친구랑 어떻게 재미있게 놀지에 대한 고민만 하는 게으른 베짱이, 개츠비. 학교에서 학보사로 활동할만큼 똑똑하고, 얼굴도 예쁜데, 심지어 집안에 돈도 많은 애슐리.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이 두 청춘 남녀가 사랑을 공고히 하려고 방문한 뉴욕에서 파토가 나고 불타는 사랑이 차갑게 식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비가 한 번 오면 땅이 식어가면서 날씨가 살만해지는 것처럼 비오는 뉴욕을 각기 다른 이유로 헤매고 다녔던 두 남녀는 비가 그친 뒤, 개츠비는 이미 식어버린 그들의 마음을 깨닫고, 세상 쿨하게 이별을 고한다.
1. 개츠비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개츠비는 포커와 술만 있다면 이 세상에 별로 불만이 없을 듯한 잘생긴 청년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어머니의 서포트를 지겨워하면서도 그 서포트를 포기할 수 없는 나약한 청춘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아리따운 여자친구 애슐리가 있는데, 영화 처음 등장하는 그의 독백을 보고 있자면 그는 그녀가 가진 배경과 그 다음 그녀의 매력, 외모 중에서 어떤 것을 1순위로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그가 살아온 뉴욕의 정취를 함께 느끼기 위해서 완벽한 플랜을 세우고, 함께 뉴욕으로 놀러간다. 포커로 딴 비싼 호텔 스위트룸을 예약한 채로. 그는 그녀가 본래 뉴욕에 온 목적이었던 한 유명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빨리 끝내기만을 기다리지만 그녀는 그를 밤까지 바람맞힌다. 결국 그들의 데이트 중에서 성사된 것이라곤 공원에서 말을 탄 것밖에 없었다.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에 그는 그의 형을 만나러 갔다가 그의 형이 결혼하기도 전에 파혼하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황급히 빠져나오기도 하고, 재수없고 무례한 친구도 하나 만나고, 전 여자친구의 동생도 만나서 뜬금없이 키스도 했다.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에게는 대환장파티였다. 그렇게 대환장파티 속에서 그는 전여자친구의 동생, 챈과 미술관 데이트도 하고, 엄마 때문에 가기 싫어했던 가족 모임에도 창녀 한 명을 대동하고, 참석한다. 결국 그 날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내 인생에서 나를 옥죄며 부담을 주는 사람들을 피하려고 했던 모든 행동들이 그를 그 부담스러운 상황 속으로 몰아넣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상황을 겪고 깊은 현타를 받는데, 그 현타는 그를 한층 더 어른스럽게 성장시킨다.
2. 애슐리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애슐리는 인생에서 부족한 것을 별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삶을 산다. 자신의 일에도 열정적이고, 자신이 오랫동안 팬으로 생각해온 감독의 인터뷰를 맡을 정도로 성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인터뷰 현장은 그녀의 인생에 대환장파티를 선물한다. 그 인터뷰에서 감독은 자신이 사별한 아내를 언급하며 자신의 아내와 애슐리가 많이 닮았다며 누가 봐도 개수작인데, 애슐리만 모르는 상황이 연출된다. 팬심이 그녀의 눈을 멀게 한 것일까 그녀는 그의 깊은 철학적 개소리와 겉만 번지르르한 낭만적인 멘트에 소위 말해 뻑이 가서 남자 친구와의 약속을 계속 미룬다. 그의 철학적 개소리와 낭만적인 척 하는 니글니글한 멘트는 그녀를 그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는 자리로 유도했고, 그 와중에 예술가의 변덕이었는지 갑자기 시사회를 박차고 나가는 그의 행동은 그녀로 하여금 그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옴므파탈의 매력까지 풍긴다. 순박하고 어리고, 예쁘기까지 한 애슐리는 그를 찾아 한 영화 스튜디오까지 가게 되는데, 그 스튜디오에는 굉장히 유명한 배우 하나가 그녀에게 또다른 신박한 개수작을 부린다. 애슐리의 순박함은 그의 개수작을 자신에게 보이는 순수한 호감이라고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또한, 유명한 배우라면 응당 따라다닐 파파라치들에게 스캔들거리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뉴욕에서의 일련의 모든 상황이 그녀의 아름다움, 순수함을 부각하는 동시에 그녀의 대책없음, 생각없음이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잠시동안 헐리웃 배우와 밀회를 즐기는 미인대회 출신 시골 여자가 되었던 애슐리는 그녀의 의지와는 반대로 그 헐리웃 배우가 바람피는 상황에 적극 협조하는 헐리웃 배우의 세컨드가 되었지만 헐리웃 배우의 퍼스트의 등장으로 그녀는 그의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반강제적으로 쫓겨난다. 그 날, 비가 오는 뉴욕에서 그의 집에서 훔친 트렌치코트만이 그녀를 살렸다.
3. 애슐리와 개츠비의 비즈니스 러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개츠비와 애슐리는 서로를 의무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개츠비는 애슐리의 돈을 마음에 들어하는 어머니의 압력에 못 이겨 애슐리를 사랑하고 있었고, 애슐리는 개츠비의 예술가적인 기질을 사랑했지만 그의 예술가적인 기질을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마치 이성적인 여자와 감성적인 남자가 만나 서로의 다른 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그 호기심이 사랑이라고 믿게 되지만 그들이 헤어지는 이유도 결국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개츠비와 애슐리는 애초에 서로가 그리 잘 맞지 않는 커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개츠비는 자신을 옥죄는 엄마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면 애슐리는 그에 대해서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이 인터뷰할 감독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영화 속 첫 장면에서 이미 둘은 서로의 이야기만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있다. 그들은 단지 혼자가 되기 싫어서 자기 주변에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의 사람을 골라 밍숭맹숭한 사랑을 하면서도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착각하는 수많은 커플들을 보여주고 있다.
4. 우디 앨런의 자가복제적 영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디 앨런의 다른 영화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와, 우디 앨런 진짜 천재잖아!!'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지'라는 느낌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전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와 비교했을 때, 파리와 뉴욕이라는 설정의 변화 그리고 시간여행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점을 제외하면 뭐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어서 다른 영화들도 이 두 영화들과 스토리 포맷이 비슷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서로 그렇게까지는 사랑하지 않는 커플, 그들이 서로 각기 다른 일정으로 뉴욕, 파리를 여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그렇게까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자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설정까지 너무 일치한다.
기묘하게 다른 이유로 우디 앨런의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지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별점 ***
완벽한 캐스팅이 버무려진 기묘한 이야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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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칠흑 앞에서도 거칠고 꼿꼿한 백白의 지식인
시대의 칠흑 앞에서도 거칠고 꼿꼿한 백白의 지식인
자산어보 玆山魚譜 The Book of Fish | 2019 | 이준익 | 126분
※영화 〈자산어보〉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산어보〉는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시대극 전문 감독으로 평가될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신작이자 〈동주〉에 이은 두 번째 흑백영화다. 정약전의 책 자산어보의 서문에서 출발한 영화는 변화와 혼돈의 시기 속 거칠고도 꼿꼿했던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학을 연구하던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전은 1801년 신유박해로 동생 정약용과 함께 유배길에 오른다. 어쩌면 살아서는 마지막 모습으로 만날 두 사람은 각자 흑산도와 강진으로 흩어졌고, 정약전은 섬 살이 중 벗으로 만난 어부 장창대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기약 없는 귀양살이에 지친 그의 눈앞에 펼쳐진 온갖 수산물에 대한 궁금증은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의 분석을 중요시한 실용주의적 사고에서 나왔다. 영화가 거대한 역사로부터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않았던 개인을 주목했듯 정약전 역시 국가와 가치를 다룬 성리학에서 눈을 돌려 변화와 비판의식을 담아 평가절하된 존재에 애정을 쏟는다.
출처|다음영화
영화는 흑백의 색감만큼이나 선명하고도 확고한 서사적 대비로 관객을 집중시킨다. 전작 〈동주〉에서는 ‘동주’와 ‘몽규’의 닮았지만 서로 다른 이상과 행동을 대비하며 건조한 역사의 문장에 상상력을 더해 살아있는 이야기를 창조한다. 정약전과 창대 역시 사학과 성리학, 명문 사대부와 가난한 천민 출신, 스승과 제자, 이론과 실천 등 모든 면에서 달랐던 두 사람이 흑산도라는 공간에서 대립하며 충돌하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사제이자 벗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그들의 귀향길만큼이나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자산어보의 삶’과 ‘목민심서의 삶’으로 갈라진다. 비슷한 귀양 기간 정약용은 지역의 유림과 정치, 사회. 경제, 법률 등 분야를 망라한 수백 권의 책을 집필했지만, 정약전은 소나무의 조세 징수나 표류 유람기 등 개별 사건을 다룬 책 몇 권을 썼을 뿐이다. 이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표현한다. 같은 실학사상의 주창자였어도 정약용은 신분과 계급, 왕과 천민이 나누어진 수직적 위계 사회를 지향했고, 정약전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계급과 성별, 직업을 뛰어넘은 수평 사회를 바랐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정약전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영화는 어느 한 사람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지 않는다. 대신 어떠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각자의 인식과 현실을 모두 그려내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닌 차이의 영역으로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게 만든다. 정약전의 뛰어난 학문적 능력과 지식을 지켜본 창대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스승을 재촉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따른 그의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열등감과 출세의 꿈을 펼치기 위해 스승을 등지고 흑산도를 벗어난 창대는 이론의 이상과 실제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약전이 행했던 가치를 이해한다. 창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수는 없다. 태생적 격차와 경제적 빈곤을 딛고 성리학이라는 당대의 정설로 세상을 바라봤을 그에게 입신양명의 꿈은 항상 지니던 열등의식을 타개할 절호의 기회였다. 마찬가지로 실학과 서학을 배우고 이미 사회의 부조리를 먼저 체험한 정약전의 관점에서 조선의 개혁은 필수 불가결했다. 그러나 이미 조정에 눈엣가시였던 정약전에게 15년간의 유배 생활은 그의 발목을 묶어두려던 계략의 일환이다. 이 또한 모르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상황에서 지켜야 할 가치를 정하고 이를 실천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정약전의 입장이 설득력 있지만,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역사의 한 대목에서 고민과 갈등을 반복하는 인간의 삶이 남을 뿐이다.
상업 영화의 정석을 걷는 영화는 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볼거리와 먹을거리,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흑백 화면의 미묘한 농도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풍광과 의미다. 마치 고고한 수묵화 한 점을 감상하듯 관객들은 한반도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영화가 품은 시대성과 미학적 성취도 함께 체험한다. 색을 없애며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의 디테일은 인물의 신념과 가치관을 흑백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유배지에서 지내는 동안 정약전은 오로지 거친 흰옷-색깔을 알지 못하므로 밝은 옷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만을 입고 지낸다. 떨어져도 기워 입은 흔적은 그의 강직하고도 올곧은 성품을 짐작한다. 헤지고 짠물에 절은 의복의 흑산도 주민들과 정약전의 대척점에 있는 육지의 관료와 사대부는 어둡고 짙은 옷으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깔끔하고 티 없는 의복은 부의 불평등을 용인하는 부패한 사대부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목민관의 삶을 사는 창대의 옷이다. 그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었어도 여전히 흰옷을 입어 그들과 거리를 만든다. 『목민심서』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창대의 강직함은 정약전을 닮아있다. 연줄과 비리로 ‘얼룩진’ 목민관과는 다른 삶을 살려는 그의 의지는 결국 미완으로 그쳤지만 여전히 흰옷을 버리지 않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의 거친 흰옷으로 갈아입는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 最古의 수산학 연구서인 『자산어보』는 자체적 분류법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수산생물 계군 차이를 기록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박물학의 명저이다. 집요한 관찰력과 기록의 의지, 호기심의 산물인 책의 내용을 담은 영화답게 다양한 수산물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의 역동적인 모습은 흑백의 스크린을 뚫고 그 생명력을 발산하며, 이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을 그 시대 민중들의 척박한 삶에 움트는 생의 의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수산물의 향연에 음식 장면이 빠질 수 없다. 가거댁이 정약전에게 차려주는 홍어와 문어 요리는 보는 이의 침을 고이게 한다. 희로애락을 포착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정약전의 유배 생활의 동반자 가거댁 역의 이정은 배우의 능청스럽고도 실감 나는 연기는 강약을 조절하며 시대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흑산도를 벗어나고 싶은 관리 별장 역의 조우진 배우는 코믹 연기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창대의 어머니 역의 방은진 배우 겸 감독은 적은 비중에도 디테일한 연기를 자아낸다. 창대의 아버지로 등장한 김의성 배우와 나주 목사 역의 동방우 배우는 흡입력 있는 악역 연기로 긴장감을 높여준다. 거기에 민도희, 김준한, 강기영, 윤경호 배우의 호연과 봉만대 감독, 달시 파켓 평론가 등 익숙한 카메오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영화의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영화의 중후반을 넘어서며 창대가 뭍으로 나가 부패한 실상을 알아가는 과정은 감정적 호응을 자극하는 장면들과 인위적인 플래시 백의 반복으로 전체 흐름과 결이 맞지 않아 보인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의 일부 내용을 읽는 보이스오버 장면 역시 창대와의 각별한 관계성과 영화 전반의 주제의식을 드러내 주지만 의도와는 달리 화면과 말의 조합이 직선적으로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잘 끌어왔던 흑백의 흐름을 깨뜨리는 어떤 씬은 사족으로도 보일만 하며 방해가 될 여지가 있다.
자산어보에서 시대를 앞서간 굳은 신념의 지식인은 정약전뿐만이 아니다. 감독은 역사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을 놓치지 않았고, 그의 서사를 끌어올려 ‘창대’를 탄생시켰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주류적 삶을 버렸던 두 인물의 삶은 오늘의 관객에게 기억할 만한 영화로 남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파랑달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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