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5-05-04 20:57:14
[JEONJU IFF 데일리] 성실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사랑을 지켜낸 여자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꽃놀이 간다> 리뷰
‘J스페셜:올해의 프로그래머‘는 각 분야의 영화인을 프로그래머로 선정하여 자신만의 영화적 시각과 취향에 맞는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섹션이다. 올해로 5회 차가 된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배우이자 가수, 그리고 이제는 감독으로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정현이다. 그녀는 자신의 출연작 3편과 선정작 3편, 총 6편의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내가 이번에 감상한 영화는 이정현 감독의 <꽃놀이 간다>와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정보
안국진
AHN Goocjin
Korea
2014
90min
DCP
Color/B&W
Fiction
청소년 관람불가
시놉시스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 주세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이래 봬도 스펙이 좋거든요. 잠도 줄여가며 투잡 쓰리잡 열심히 일했어요. 근데 아무리 꾸준히 일해도 빚은 더 쌓이더라고요. 그러다 빚을 한 방에 청산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왜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요? 이제 제 손재주를 다르게 써보려고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5포 세대에 고함!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 그녀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 해당 상영작은 J 스페셜클래스가 포함된 상영회차(상영코드 131)에서만 코리안시네마 단편 <꽃놀이 간다>와 묶음 상영 됩니다.
상영정보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25.05.01 13:00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2025.05.03 21:00
영화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10년 만에 전주에서 다시 상영되었다. 안국진 감독과 이정현 배우는 영화 상영 후 스페셜 클래스 시간을 통해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이 작품은 이정현 배우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이정현 배우는 <꽃잎>으로 데뷔하여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 뒤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아 가수로 활동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권유로 <파란만장>에 출연하는 등 영화배우로서의 활동에 시동을 거는 그때, 운명처럼 찾아온 영화가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이 영화는 2015년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제36회 청룡영화상, 제3회 들꽃영화상에서 이정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또한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영화 부문 시나리오상을 수상하며, 상업성과 예술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이정현 배우를 위해 쓴 극본은 아니라고 했다. 극본에 쓰인 ‘수남’이라는 인물을 누가 수정 없이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 그것을 수정 없이 해낸 배우가 바로 이정현이었다고 한다. 이정현의 소속사에서 캐스팅 제안을 거부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추천으로 이정현 배우가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에도 없던 여성캐릭터. 사랑과 삶을 지키기 위한 광기와 묘한 사랑스러움이 매력적인 ‘수남‘이라는 캐릭터는 무척이나 독보적이다. 이 등장인물은 감독의 어머님이 모티브라고 한다. 남자로서 여자의 일생을 제대로 그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이 영화에 녹여내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이 무한하고도 끊임없는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가 이해가 됐다.
수남은 수많은 선택의 시간을 지나왔다. 첫 번째로는 여공으로 살 것인지, 엘리트로 살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엘리트’의 삶을 선택한 수남은 여자는 무엇보다 ’몸매=가슴‘이중 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을 한편에 새기지만 곧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컴퓨터의 세상이 도래했고, 자신보다 더 큰 ‘가슴’은 곳곳에 있었으며 성실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하룻밤의 실수로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평생을 꿈꾸게 된다. 그녀의 마음만큼은 ’실수‘가 아니었다.
규정은 늘 ‘집’을 먼저 사자고 말하며 우리 아이에게는 나처럼 살지 않게 기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청각장애로 인해 보청기를 끼고 있던 규정이 청력을 정말 소실하게 되며 수남의 권유로 집을 사려고 했던 2천만으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으나 갑자기 인공와우에 문제가 생기며 손이 기계에 절단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 후, 규정은 폐인이 되어버렸고 그런 규정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수남은 규정이 그토록 원했던 ‘집‘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잠을 줄여가며 청소, 요리, 신문 배달, 명함 날리기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10년 간 계속하지만 집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결국에는 은행에서 1억 4천만 대출까지 동원해서야 집을 마련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수남은 성실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사랑도, 일도. 이 모든 게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이 여자가 성실하다는 건 명백한 일이다.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는 좀처럼 찾아보기도 힘들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혐오스러운 마츠코가 생각나기도 하는 수남의 일생은 비극의 연속이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며 그녀의 삶은 점점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진다. 희망이 생기는 순간, 저지되는 희망은 더 큰 절망으로 그녀를 찾아온다.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일군 수남에게 세상은 언제나 가혹했다. 어떤 상황이 찾아와도 그녀가 저지른 그 ‘죄’보다 앞서는 건, 그녀가 얼마나 성실히 살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남은 끝내 울지도, 제대로 분노하지도 못한다. 세상은 그녀의 삶을 죄로 낙인찍고 그 죄를 옹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 죄가 어떤 절박함 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를.
꽃놀이 간다
영화 정보
이정현 LEE Jung-hyun
Korea | 2025 | 28min | DCP | Color | Fiction | 12세 이상 관람가 | World Premiere
시놉시스
지병을 가지고 있는 수미는 죽음을 앞둔 엄마의 병원비가 계속 밀리는 상황에서 병원의 ‘중간 정산' 때문에 입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조금만 더 기도하면 엄마가 살아날 거라는 믿음을 확신하며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고 강제 퇴원을 시켜 집으로 데려온다. 모든 게 뜻대로 풀리지 않지만 다음 주 시작되는 꽃놀이 관광에 엄마를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상영정보
2025.05.01 13: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25.05.04 10:00 CGV 전주고사 4관
2025.05.06 2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수미는 엄마의 간병을 도맡아 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엄마의 병원비가 밀려있는 상황에서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고 강제 퇴원을 시켜 집으로 데려온다. 꽃놀이 관광에도 함께 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는 다르게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집을 내놓았지만 불경기라 팔리지 않고, 그 집 때문에 기초수급수령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여전히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과연 꽃놀이 관광을 갈 수 있을까?
이정현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비극적인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꽃놀이 간다>에서는 연출자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또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의도치 않게 두 영화는 참 많이 닮아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무한 경쟁과 생존의 논리 속에서 ‘성실한 사람’이 어떻게 밀려나고 지워지는지를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단순하게 피해자로 표현하지 않고 버텨내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해 낸 한 여성의 치열한 삶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정현 감독의 첫 연출작 <꽃놀이 간다>는 창신동 모자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라고 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이면을 고요하고도 섬뜩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미의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시스템과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정현 감독이 두 번째로 연출한 단편 영화가 곧 공개된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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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을 뒤흔든 순정마초의 뒤안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793년, 프랑스의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흥분과 광기에 휩싸인 군중 사이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코르시카 출신의 포병 장교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 그는 이 혼란을 자기 기회로 삼기로 결정하고, 툴룽에서 영국군을 무찌르며 영웅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때마침 하늘도 그에게 행운을 선사한다. 한 사교 파티에서 기품 있는 여인 '조제핀'(바네사 커비)을 만나 첫눈에 반한 것. 자기 운명을 바꿔줄 남자를 찾던 조제핀은 열렬한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그들은 부부가 된다. 비록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는 않았지만, 조제핀을 만난 후 승승장구한 나폴레옹은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올라선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하고, 나폴레옹의 몰락도 막을 올린다.
주의! 리들리 스콧의 시대극입니다
리들리 스콧의 시대극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다루는 시대를 재현하는 데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비주얼리스트의 웅장한 영상미에 홀리면 그의 시각에서 해석한 시대, 사건, 인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칫 잊을 수 있기 때문.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엑소더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모두 마찬가지였다. 리들리 스콧의 화려한 볼거리는 자유의 평등의 가치를 고찰하고, 종교의 의미와 기능을 성찰하며, 젠더 이슈를 고민케 하는 도발적인 질문을 품고 있었다. 과거를 재현하는 대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반추한 결과였다.
Apple TV+와 리들리 스콧이 손잡은 <나폴레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뛰어난 정치가이자 뛰어난 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전유럽에 자유주의를 흩뿌리고, 대륙법의 기반인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었으며, 황제 자리를 차지해 정점을 찍은 정치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전쟁의 신으로 칭송한 전술가이자 일반 병사들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은 꼬마 부사관.
<나폴레옹>은 이 모든 이미지를 멜로드라마라는 틀 안에 담아낸다. 위대한 나폴레옹 1세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한 남자 나폴레옹의 시점에서 그의 모든 행적과 위업을 다시 해석한다. 이 재해석은 분명 신선하고, 그의 일생과 나름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으며, 예상치 못한 울림을 안기기도 한다. 다만 해외에서 먼저 공개된 후 호불호가 격렬히 나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자기 해석을 밀어붙일 뚝심이 부족한 게 결정적인 패착이다.
화살표가 확실한 오프닝 시퀀스
당장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이 단두대에서 달아나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대놓고 알려준다. 오프닝 분위기만 느껴도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로 향한다. 사형집행인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치운 후 자세를 고정시킨다. 거대한 칼이 그녀의 하얀 목에 닿고, 집행인이 왕비의 목을 들어 올리자 지켜보던 군중이 환호한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상징하는 시작점. 그러나 연출은 역사적 중요성과 사뭇 대조된다. 웅장하거나 비극적인 음악이 깔려야 할 것 같은 직관에 반하는 음악이 들려온다. 왈츠를 듣는 듯 신나고 경박스럽기까지 하다. 웅장한 전기 영화나 서사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라 미리 경고하는 듯하다. 기록된 역사와 달리 나폴레옹이 군중 안에서 왕후의 처형을 지켜보는 것도 그 일환이다.
'나폴레옹 1세'는 없다
그러니 <나폴레옹>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위대한 정치인이자 뛰어난 군인이었던 나폴레옹의 후광을 지우는 것. 실제로 영화는 혁명, 쿠데타, 즉위식 등 그가 주도한 여러 정치적 사건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데서 그친다. 배경이나 맥락은 사치라는 듯이 생략한다. 보나파르트 가문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동기와 욕망에 대한 설명도 많지 않다. 황제까지 즉위한 나폴레옹 1세의 정치적 여정을 영화만 보고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전쟁의 신이라는 찬사를 받은 보나파르트 장군의 모습도 편린만 스쳐 지나간다. 물론 각각의 전투 시퀀스는 인상적이다.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대표적이다. 적군 유인, 보병 간 전투, 기병대 기습, 포격으로 마무리되는 전투 양상을 명확하게 담아냈다. 워털루 전투 역시 나폴레옹의 최후에 걸맞은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다만 나머지 전투는 그저 나폴레옹이 거쳐야 했던 퀘스트 중 일부로 짚고 넘어간다.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도 활용된다. 극 중 나폴레옹은 카리스마형 주인공이 아니다. 군사적 재능은 있지만 전장에서 숨을 헐떡이며 벌벌 떤다. 1799년 쿠데타 장면도 비장함보다 우스꽝스러움으로 가득하다. 그가 지휘한 전투에서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는 마지막 자막은 화룡점정이다. 리들리 스콧 작품 중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과 비슷한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해도 이상하지 않다. 해외에서 영국인(리들리 스콧)이 프랑스 위인을 비하했다는 지적이 나올 여지도 충분해 보인다.
순정마초 나폴레옹
이처럼 정치인과 군인의 모습을 지운 여백에 <나폴레옹>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모습을 그려 놓는다. 나폴레옹은 극장에서 조제핀을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고, 곧장 결혼한다. 그는 이집트 원정 전후로 조제핀의 불륜을 확인하지만, 가까스로 이혼 위기를 극복한다. 이후 부부는 아들을 낳지 못해 갈등을 빚고, 끝내 이혼을 선택하지만, 죽을 때까지 친구로 남는다.
나폴레옹이 겪은 수많은 사건들은 이 사랑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조제핀이 "승리의 부인(마담 드 빅투아르)"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재해석으로 보인다. 극 중 일방적이었던 그의 사랑이 양방향이 되고, 조제핀이 마침내 그와 진정으로 사랑에 빠지며, 행운이 차오르는 순간부터 그의 전성기가 펼쳐진다. 쿠데타로 제1집정을 거쳐 황제가 되고,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동맹군을 무너뜨리며 유럽을 제패한다.
반면에 그가 더 큰 영광을 원한다면서 조제핀을 버리자 몰락이 시작된다. 이혼한 순간부터 그의 운은 다한다. 그는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하고, 퇴위하고, 유배를 떠난다. 마지막 기회도 그녀에게 달려 있다. 조제핀이 아직 생기 있을 때, 그는 알바 섬을 탈출한다. 그러나 그녀가 끝내 폐렴으로 사망하자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다. 그렇게 황후와 황제는 흥망성쇠를 같이 겪는다.
리들리 스콧다운 영상미도 이 로맨스와 어우러지며 힘을 발한다. 황제 즉위식과 텅 빈 모스크바에 나폴레옹이 입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스크린을 벌겋게 물들인 모스크바 대화재는 정점이다. 이 장면들은 정치인이자 군인으로서 나폴레옹의 정점과 위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조제핀의 내레이션이 나폴레옹을 감싸는 연출이 더해지면서 조제핀이라는 행운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 그 행운이 그를 배신했음을 보여준다.
부실했던 기초 공사
그러나 과감한 재해석에 충분히 힘을 실어주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오프닝에서 나폴레옹의 일생을 로맨스로 풀어내겠다는 지향점을 보여줬는데, 정작 초반 전개가 그 방향성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실제로 초반부는 씬마다 정치인, 군인, 남자 나폴레옹의 모습이 뒤엉켜 있다. 극장 안에서 편집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난잡하다. 특히 이집트 원정까지는 나폴레옹의 연애사가 위업을 포괄하지 못한 채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특히 로맨스를 쌓아 올리는 분량이 부족하다. <나폴레옹>은 관객이 순정남 나폴레옹에게 이입하고, 로맨스의 관점에서 전쟁과 정치적 사건을 따라간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가 조제핀을 사랑하는 과정은 급하게 지나가고, 조제핀의 개인사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히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관계도, 그녀가 그의 행운을 뜻한다는 해석도 부각될 수가 없다. 나폴레옹을 운 좋게 권력을 잡은 정신병자 내지는 사랑하는 여자도 차지 못한 찌질한 전쟁광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부실한 초반 전개는 러닝타임을 고려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판단착오에 가까워 보인다. 근래 OTT 공개 예정 작품은 극장 개봉 시 러닝타임의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3시간을 넘긴 <플라워 킬링 문>이 대표적이다. 조제핀의 삶을 보다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4시간 30분 분량의 컷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아쉽다. <나폴레옹>의 완성도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공개된 '순정마초'가 떠오른다. 가사 때문이다. "나의 사랑을 버린 그댈 잊지 못한, 죽은 심장 상처 난 백합 순정마초." 첫사랑을 기억하는 순정남이자, 다른 여자들을 차버리고 다니는 마초라는 의미였다.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가사다. 나폴레옹의 첫사랑이자 그 사랑을 배신했던 조제핀. 첫사랑인 황후를 버리고 떠난 나폴레옹. 이 커플의 관계가 가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지점에서 나폴레옹 1세의 일생을 그려낸 장엄한 서사시를 기대할 이들에게 <나폴레옹>이 실망스러운 이유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배경으로 조금 더 웅장하게, 위엄 있게, 극적으로 그려낸 리들리 스콧 버전의 '순정마초'니까.
Acceptable 무난함
웅장한 이미지 사이로 흥하고 지는 순정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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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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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지옥> 시즌 2, 제작 확정
ⓒ 넷플릭스
넷플릭스 글로벌 팬 이벤트 '투둠'에서 <지옥> 시즌 2 제작을 발표하였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박규영, <오늘도 사랑스럽개> 합류
ⓒ 사람엔터테인먼트
배우 박규영이 웹툰 원작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 출연을 확정했다. 드라마는 키스를 하면 개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여자와 그 저주를 풀 수 있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의 예측불허 로맨스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배우 차은우와 이현우와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원피스 필름 레드>, 11월 국내 개봉
ⓒ 네이버 영화
6년만에 원작자 오다 에이이치로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한 <원피스 필름 레드>가 11월에
국내 개봉을 확정했다. 우타의 첫 라이브 콘서트가 열리는 음악의 섬 '엘레지아'에 해적들과 해군들이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화란>, 9월 13일 크랭크인
ⓒ 메가박스 중앙 플러스엠
배우 송중기와 신예 홍사빈, 김형서(비비)가 출연하는 <화란>이 지난 13일 경기도 광명에서 크랭크인했다.
영화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연규가 조직의 중간 보스 차건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누아르 영화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양한 포맷으로 상영 확정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화제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10월 12일 개봉과 함께 Super 4D, IMAX, Dolby Atmos 등
다양한 상영 포맷으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해외
조나단 베일리, <위키드> 피에로 역으로 합류
ⓒ IMDb
존 추 감독이 감독을 맡은 영화 <위키드>에 배우 조나단 베일리가 출연을 확정했다. 아리아나 그란데가 글린다 역을 맡았고, 신시아 에리보가 엘파바 역을 맡았다. 영화는 총 2편으로 각색되었으며, 2024년과 2025년 크리스마스에 개봉시킬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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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A to Z를 알아보자
-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으로밖에 즐길 수 없었던 영화인들의 축제가 다시 오프라인으로 그 장소를 옮깁니다. 2022년 4월 28일(목) 개막하는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말이죠.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영화제다운 영화제가 열리는 것이 이로써 3년 만입니다. 오랜만의 영화 축제 소식에 개막식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 소식을 알렸습니다. 전주에 모일 영화인과 관객, 두 집단의 행복한 교감을 앞두고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볼거리, 즐길거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름하여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A to Z입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합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4월 28일(목)부터 5월 7일(토)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개최합니다.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After Yang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으로 축제의 포문을 엽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애프터 양>은 아시아계 청년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 '양'과 그를 소유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파친코>를 연출하며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코고나다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죠.Book전주국제영화제는 책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를 잡지 형식으로 엮은 <J 매거진>, 이창동 감독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영화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를 추모하는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 1984-2004> 등 6종의 출판물을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굿즈샵과 각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합니다. 영화제 기간에는 전주 시내 서점과 카페에서도 구입 가능하답니다.Cinema, dam따스한 봄 햇살이 쏟아질 야외무대에서는 영화인과 관객이 만나는 '시네마, 담' 이벤트가 열립니다. 전주라운지에 위치한 토크스테이지에서 4월 29일(금)부터 사흘간 무료로 영화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정은 배우 주연의 <오마주>를 시작으로 전 상영 회차가 초고속 매진된 <윤시내가 사라졌다>까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놓치지 마세요.Dome전주 돔이 3년 만에 문을 엽니다. 전주 돔은 2017년부터 영화제의 마스코트로서 주요 행사들을 담당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두 번의 영화제에서 운영되지 않았는데요. 전주국제영화제는 3년 만에 전주 돔의 문을 연 만큼, 개・폐막식 외에도 다양한 전주 돔 이벤트를 구성하며 축제다운 축제를 개최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습니다.E-screening전주에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염려 마세요. 팬데믹 이후, 국내 영화제 최초 온라인 상영을 도입한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도 온라인 상영을 이어갑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은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ONFIFN)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요. 이곳에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의 절반이 넘는 112편(해외 69편, 국내 43편)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Frontline급진적인 주제, 파격적인 도전정신을 담은 작품을 소개하는 ‘프론트라인’ 세션이야말로 진정 ‘영화제스러운’ 세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올해 ‘프론트라인’ 세션에서는 작년보다 2편 늘어난 12편의 도발적인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의 믿을 수 없는 기록을 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이 서 있던 곳에서>부터 공상 세계의 전자 폐기물 쓰레기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해왕성 로맨스>까지, ‘프론트라인’ 세션의 작품들을 흥미롭게 감상해보세요.Guest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전 세계 영화인들이 게스트로 참여합니다. 국내에서는 임권택 감독, 이창동 감독, 공승연 배우, 권해효 배우, 나문희 배우, 송새벽 배우 등이 참석하고, 해외에서도 약 60명의 게스트가 내한해 축제를 빛낼 예정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벤트별 게스트 참석 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Have A Nice Day공연기획사 민트페이퍼와 전주국제영화제가 손을 잡고 5월 5일(목)부터 이틀간 음악 페스티벌 ‘Have A Nice Day’를 엽니다. 5월 5일(목)에는 10CM, 소란, 스텔라 장 등이, 5월 6일(금)에는 김필, 선우정아, 홍이삭 등의 가수가 무대에 섭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현장에서 뜨거운 공연의 열기를 즐겨보세요.Identity전주국제영화제는 매년 색다른 아트 디자인의 페스티벌 아이덴티티를 선보이는데요. 올해의 아이덴티티는 과감한 색상과 도형 표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전주의 알파벳 ‘J’와 개최 횟수인 ‘23’을 다방면의 삼각형으로 형상화했죠. 김광철 아트디렉터에 따르면, "삼각 도형은 영화 장치인 영사기가 공간에 투사하는 빛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전주 영화의거리에서 이 포스터를 만나면 반갑게 기념사진 한 장 어떠신가요?Judge심사위원들이 오프라인으로 심사를 진행하는 것도 3년 만입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는 아시아, 유럽, 남아메리카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영화 전문가들이 선정됐습니다. 국내에서는 박하선 배우, 주진숙 중앙대 명예교수 등이, 해외에서는 안드레이 터너세스쿠 빌뉴스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 등이 자리합니다.K-sound한국영화의 음향을 책임지는 사운드 마스터들도 전주를 찾습니다. 사운드 마스터가 선정한 영화를 관람한 후, 관객에게 영화 음향에 관한 노하우와 경험들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4월 30일(금)에는 <2차 송환> 상영 후 포용수 사운드 슈퍼바이저의 클래스가, 5월 1일(토)에는 <스윙키즈> 상영 후 김준석 음악 감독의 클래스가 진행됩니다.Lee Chang-dong이창동 감독의 삶과 영화를 돌아보는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세션 중 하나입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오아시스>를 포함한 이창동 감독 영화 8편이 상영되며,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으로 생생함을 더한 <박하사탕>이 4K 화질로 공개됩니다.Movie이번 영화제에서 감상 가능한 상영작은 총 217편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모든 상영작을 검색해보세요.New4년 만에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신작 <심장소리>가 전 세계 최초로 전주에서 상영됩니다. <심장소리>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작에 참여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한데요.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을 누구보다 먼저 만나보세요.Opening화려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4월 28일(목) 오후 5시부터 진행되는 개막식은 유려한 말솜씨의 장현성 배우와 유인나 배우의 사회로 막을 엽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랜만에 문을 연 전주 돔에서 다양한 즐길거리를 갖춘 재미있는 개막식을 만들겠다고 예고했는데요. 개막식 티켓이 너무 빨리 매진돼 슬프시다고요? 개막식은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될 뿐만 아니라, 개막식 티켓이 없어도 전주 돔 외부에서 레드카펫 행사를 지켜볼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Posters2015년부터 진행된 전주국제영화제의 포스터 페스티벌이 올해도 어김없이 열립니다. 포스터 페스티벌은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를 100팀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포스터로 재해석해 전시하는 이벤트인데요. 영화제 내내 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홀에서 볼 수 있으며, 온라인 전시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Quarantine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어도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인과 관객의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주시 보건소, 호흡기 내과 전문의 등의 도움을 받아 자체 방역 자문단을 신설한 전주국제영화제는 자문단 회의 결과를 토대로 철저한 방역 계획을 수립했는데요. 즐거우면서도 안전한 축제를 위한 노력이 엿보입니다.Rights축제 기간 중 맞이하는 어린이날을 기념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아동권리영화제 수상작인 단편영화 4편을 감상하는 특별한 자리도 마련됩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해 1996년작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을 4K 화질로 무료 상영하기도 한답니다. 부모와 아이 모두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마세요.Slogan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계속된다'입니다. 팬데믹이 잠시 관객을 주춤하게 했지만, 이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Theater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18개 상영관, 7만 5천 여석의 좌석에 관객을 맞이합니다. 전주 돔을 포함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CGV전주고사, 씨네Q, 그리고 카페 비오브에서 상영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Ukraine day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영화제 이튿날인 4월 30일(금)을 우크라이나 데이로 지정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데이에는 세르히 로즈니챠 감독의 <미스터 란즈베르기스>, 카테리나 호르노스타이 감독의 <스톱-젬리아> 등 우크라이나 감독의 작품을 연이어 상영합니다.Virtual영화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실천적 논의를 위해 2021년 출범한 전주컨퍼런스가 올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을 통칭하는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XR)을 주제로 개최됩니다. 전주컨퍼런스 2022는 5월 2일부터 이틀간 라한호텔 전주 온고을홀에서 펼쳐집니다.World cinema전주국제영화제의 중추라고 불리는 '월드시네마' 세션에서는 총 23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소셜 미디어에 게시한 글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메디 메클라’의 실화를 소재로 한 <아르튀르 람보>부터 이란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낸 <길 위의 가족>까지, 전 세계 각국의 매력적인 영화를 전주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X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다고 하더라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코로나19 예방 수칙과 상영관 운영 수칙을 철저히 따르며 매너 있게 축제를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꼭 지켜야 할 사항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사항을 꼼꼼히 확인해보세요.Yeon Sang-ho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영화인 한 명이 직접 상영작을 고르는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세션.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연상호 감독입니다. <부산행>, <돼지의 왕> 등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영화를 넘나들며 관객을 사로잡은 연상호 감독은 요즘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장르 영화를 3편을 상영작으로 골랐습니다.Zombie치명적인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국회의사당에서 나 홀로 살아남은 경비원의 이야기를 담은 <겟 더 헬 아웃>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됩니다. 이 작품을 포함해 <그레타 툰베리>,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애플> 등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7편의 작품은 넷플릭스, 왓챠 등의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에서 지금 바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비록 전주국제영화제의 현장감은 즐길 수 없겠지만, 상영작으로 선정된 작품들을 방 안에서 감상하는 재미를 누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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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일이 아니었다면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만나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에 수상함을 느끼고 용의선상에 올린다. 하지만 사건 조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1. 낯선 단어들의 조합
서래는 진술 과정에서 꽤나 문체적인 단어를 쓴다. '마침내 죽을까봐'라던지, '한국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서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라던지. 대사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하다. 하지만 흔히 쓰지 않는 단어의 조합으로 흠칫거리게 하는 그런 소설. 그런 점이 이 영화를 더 신비하고 미스터리하게 만든다.
그런 서래의 모습이 그녀를 용의자로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진술을 연습해온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준은 애써 자신의 의심을 거둔다. 그녀를 의심하기엔 그의 애정이 더 깊었기에 평소였으면 깊게 파고들었을 의심스러운 부분도 밍기적거린다. 그렇게 그는 한 순간의 실수로 '붕괴'됐고, 영화는 붕괴 이후부터가 진짜다.
2. 박해일이 없다면
이 영화의 연출과 음악, 배경 모두 박찬욱 감독스럽고 작품성은 평가의 여지가 생각한다. 세계의 영화 전문가들이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인정한 영화이기에 내 평가는 그저 취향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한 내 취향은 '기묘하게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박해일 배우가 캐스팅되지 않았다면 이 캐릭터가 납득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해준은 냉정하게 말하면 중년의 미남자가 인생이 지루해져 딴 여자에 한눈 판 인물이다. 생각보다 이해받기 쉽지 않은 상황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를 이해하게 된다. 평소의 내가 하던 생각이 아니라서 그저 낯설게 느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가진 얼굴과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중년의 나이에도 소년의 느낌을 유지하고 매너가 넘치는 캐릭터가 합해지니 불륜하는 캐릭터임에도 여심을 안 흔들 수 있었을까. 아마도 관객들은 '저 남자가 내 남자였으면' 싶었던 게 아닐까. 불륜이어도 저런 '잘생기고 매너 좋은 남자'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박해일 배우가 가진 소년미가 아니었다면 그 판타지가 구현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나이에 담백한 소년미를 가진 배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음악과 분위기는 굉장히 고급진 느낌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이 영화는 여자들의 팬픽에서 느낄 법한 판타지를 충족시켰던 게 아니었을까. 팬픽, 웹소설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이 스토리가 말도 안되는 건 알지만 원초적으로 충족받고 싶은 이성에 대한 판타지'를 확인시켜 주는 장르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볼 때 서사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런 남자는 세상에 없는 거 알지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여자들의 판타지를 확실하게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서사는 팬픽스러운데 문체적인 대사들로 가득찬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영화라니. 이 모든 조합만으로 이 영화는 한 번쯤은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3. 사랑은 타이밍
해준이 서래에 대한 사랑을 놓았을 때 서래의 사랑은 시작된다. 영화는 해준의 '붕괴' 이후가 진짜인데 그 때 이후로 서래의 집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래의 사이코스러워 보일 법한 사랑은 해준이 그녀를 버린 후에야 시작되지만 두 사람의 타이밍이 안 맞았기 때문에 이 사랑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래의 마지막 선택은 해준에게도 관객에게도 많은 잔상을 남긴다. 남자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겨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는 다분히 병적이지만 결국 이게 이 영화의 미장센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너무 사랑해서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상처를 줘야겠다는 마음이라니. 이 결말이 초반에 팬픽, 웹소설스러운 부분을 단번에 한 편의 소설처럼 느끼지게 만들었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소설 말이다.
4. 총평
박찬욱 감독의 팬분들이야 당연히 이 영화를 보시겠지만 박찬욱 감독 영화에 잘 모르는 분들도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다. 그의 영화 치고 꽤나 대중적이고 진입 장벽이 낮다. 입문하기에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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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짓기 세상에 등장한 AI라는 존재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래서 우린 종종 사람들 최대한 간단하게 구분해 보려 애쓴다. 남녀를 구분해서 성향을 쓰기도 하고, 혈액형 같은 이해하기 쉬운 구분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MBTI 같이 조금 더 세분화된 구분법을 이용해 각자의 성향을 내세운다. 이런 구분 짓기는 너무나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 사람들을 조금은 편하게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의 성향을 대략 이해하고, 나 자신의 성향도 상대방에게 인식시킴으로써 불필요한 충돌이나 오해를 없애고 좀 더 빠르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겨난 것일 것이다.
최근의 구분 짓기는 상대방을 좀 더 편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역사적으로 구분 짓기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구별해 폭력을 저지르기도 했고 흑인과 아시아인들은 차별을 받았다. 여전히 이런 구분 짓기는 유효하다. 과거처럼 폭력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런 구분은 암묵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저런 차별과 구분 짓기에 대한 뉴스를 보다 보면 듣는 의문이 있다. 왜 이렇게 구분을 짓는 걸 좋아할까. 같이 잘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구분 짓는 세계에 등장한 AI
영화 <크리에이터>는 AI의 등장 이후, 고도화된 AI를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가장 크게 충돌하는 부분은 AI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에서는 AI를 적으로 간주한다. 미국 LA에 AI가 쏜 폭탄이 터지면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고, 그런 이유 때문에 AI는 그들에게 적이 되었다. 반면 아시아 지역에서 AI는 위험하지 않은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AI를 받아들이면서 같이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어간다. 사람 몸의 일부를 기계가 대체하기도 하고, 때론 몸 전체가 로봇이지만 기억이나 정신만 인간의 것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아시아에는 AI와 인간의 혼합형인 시뮬런트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영화는 서두부터 서구와 아시아를 구분 짓는다. 이 구분은 전쟁이라는 극한 대립으로 이어지고, 서구는 AI의 창조자이자 리더인 니르마타를 찾으려 애쓴다. 아시아는 이 신적 존재를 최대한 보호하려 노력한다. 서구는 니르마타를 찾기 위해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를 니르마타가 있다고 확인된 아시아 지역으로 보낸다. 하지만 조슈아는 임무 중 만난 마야(젬마 찬)와 사랑에 빠지면서 스파이 활동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조슈아와 마야가 같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대립하는 집단을 대표하지만 그들은 외모나 추구하는 가치에 의해 그 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았고, 온전한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평온한 삶을 이어가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러니까 구분 짓지 않는 삶을 통해 평온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서구는 조슈아와 마야가 살고 있는 섬에 니르마타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과감하게 상륙작전을 펼치면서 이 둘의 평화는 깨져버린다. 다시 한번 강력한 구분 짓기 체제가 공생 체제를 무너뜨린 것이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조슈아가 수행하는 임무
영화는 이 일로 마야가 세상을 떠난 몇 년 후 조슈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그룹도 선택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서구에서 방문한 조직의 리더들에게 니르마타가 개발한 신종 무기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만남에서 조슈아는 화면 속 마야와 똑같은 모습을 한 인물을 보게 되면서 다시 전장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조슈아는 이 임무에 참여하면서도 그 어떤 편도 들지 않았다. 외형적으로 서구의 무기와 옷을 입고 있지만, 머릿속은 자신이 사랑하는 마야만을 생각하고 있다.
서구의 군인들은 증오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바라본다. 개개인이 겪은 경험도 과거 AI로부터 당한 상처나 희생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AI를 포용하는 아시아는 적국으로 간주된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침략하는 서구를 방어하기에 급급하고 가능하면 큰 확전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시아는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는 구분 짓기가 종료되고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하지만 영화 내내 서구와 아시아는 계속 강력하게 대립한다. 그래서 이들 간에 정치적인 합의점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 보인다.
AI라는 존재가 등장했고 그 기계인간 안에는 분명히 위험이 도사린다. 서구는 그 위험을 경험했고, 그것을 오롯이 AI의 탓으로 돌렸다. 만약 아시아에서 그런 위험을 경험했다면 구도는 AI와 인간의 구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크리에이터> 속 세계는 AI를 적으로 보는 집단과 반대의 집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여기에 새롭게 개발된 새로운 AI는 더욱더 그런 대립을 키운다. 아이 모습을 한 고도화된 AI는 모든 전자제품을 직접 원격 조종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각 집단은 그 AI를 무기로서 바라보고 한쪽은 제거하려 하고 한쪽은 그것을 이용해 전세를 역전시키려 한다.
그 구분 짓기에서 희생당하는 건 결국 수많은 일반 사람들이다. 전쟁은 멈출 수 없고 거기엔 수많은 자원과 목숨이 희생된다. 안정적인 경제 발전이나 사회 발전은 꿈꿀 수도 없다. 마치 지금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처럼 리더 집단들도 그 구분 짓기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다. AI라는 새로운 기술 혹은 인류의 등장은 그런 기술을 아직 인류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진중하게 자신의 말과 고민을 쏟아내는 영화
영화 <크리에이터>는 구분 짓기가 극대화된 사회를 보여주면서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AI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의 모습을 한 그 AI는 악의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영화 전체에 등장하는 AI와 시뮬런트들의 모습에서 비도덕적이거나 악의가 있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모든 문제들의 시초는 바로 인간들의 구분 짓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구분 짓기의 비극은 이 영화 속 세계 전체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조슈아는 AI 아이를 통해 자신의 아내를 찾으려 하고 아이는 그것을 돕는다. 영화 속 주인공인 두 존재는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지만 결국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결국 인간이 개발한 AI와 인간이 같이 공생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인지를 두 존재를 통해 되묻는 것 같다.
영화 <크리에이터>를 연출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고질라> 나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훌륭한 영상과 진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적이 있다. 이번 <크리에이터>에서 등장하는 AI의 모습이나 거대한 우주선이 움직이는 모습이 무척 훌륭하다. 또한 이 영화가 던지는 이야기도 좋다. 새로운 존재의 등장을 각 국가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구분 짓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금 느린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화면에 담았다.
구분 짓기는 여전히 현대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꾸준히 인간은 세부적으로 상대방을 구분 지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구분 짓기로 인한 혼란과 대립은 현대에 계속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은 우리가 그 새로운 존재들을 어떤 식으로 봐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영화 <크리에이터>는 그 질문을 관객에게 진지하게 던지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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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2019)> 리뷰
이따금 영화를 보러 갈 때 나는 최소한의 시놉시스도 읽지 않고 가곤 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하시모토 나오키의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2019)>가 일본 영화라는 것 정도만 알았고, 원작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가 소녀의 성장담이고, 그 성장의 저변엔 아이가 너무도 사랑했던 반려견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감독이 '치트키를 썼다'라고 느꼈다. 아마 어린 시절 반려동물과 잠시간이라도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은 행복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상실은 우리를 너무나 크게 흔들어놓기 마련이니까. 실제로 상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순간부터 영화관에선 훌쩍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사실, 나 역시 훌쩍인 관객 중 한 명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엉엉 울어 충혈된 눈으로 대중교통을 타게 되는 걸 걱정했을 만큼.
하지만 이 영화, 아쉽다. 배우 개개인의 연기가 뛰어났던 것은 물론 아련하기 그지없는 풍경도 훌륭하게 담겼는데 말이다. 어째서일까? 나는 그것이 감독의 욕심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주인 시즈카가 쓴 원작의 모든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이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를 불분명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굳이 비유하자면……. 코스 요리를 컴팩트하게 대접하려면 최소한 '정식' 정도는 되어야 했는데, 이 영화의 분량은 일 인분-한 그릇 요리에 불과했던지라, 재료가 좋았음에도 영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 이하 스포일러 주의
위에서 짤막하게 말했듯,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반려견과 이별한 소녀 사야카(닛츠 치세)가 상실을 어떻게 수용하며 성장하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내가 쓴 표현이 다소 애매한 까닭은, 나는 이 영화가 소녀의 성장을 그리는 데에 실패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리무라 카스미의 모놀로그를 통해 사야카가 '어찌 되었든 유년기의 상실을 겪었으며 많은 흔들림을 겪었음에도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영화 내내 사야카는 결코 얕지 않은 수렁으로 거듭 떨어진다. 영화 말미 아이가 보이는 발돋움은 너무나도 미약하여 성장/치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뿐, 앞으로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안도하기엔 부족하다. 내가 꼽고 싶은 문제는 사야카를 온전히 이해하고 감싸 안는 어른이 부재한다는 사실이고, 나는 이 점에서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가 소프트한 버전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큰 줄기를 시간순에 맞추어 나열하자면 대략 이렇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사야카는 우연히 자신처럼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강아지 루를 만난다. 동질감을 느낀 사야카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루를 데려오는 데에 성공한다. 사야카는 루를 아꼈고, 루 역시 사야카를 잘 따랐다. 매 순간이 추억이었으나 행복한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루가 돌연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것이다. 긴 시간 병을 앓은 것도 아니었기에 상실은 너무도 급작스러웠고, 사야카는 어른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라며 루의 죽음을 외면한다. 아이는 죽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사야카는 이미 할머니를 잃은 경험이 있고, 이후 조우하는 재즈카페 레이디버드의 주인 후세(오이다 요시)가 아들을 잃었음을 영민하기 눈치채기도 한다. 다만, 루의 죽음을 수용하지 않을 뿐이다. 안다는 것과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너무도 다른 영역이기에.
사야카의 모습은 분명 애도와 우울 사이 어드매에 위치한다. 물론 사야카가 루를 잃은 후 외부 세계에 맹렬한 적개심을 보이거나, 스스로를 학대하지는 않는다. 또한 눈물을 흘리거나 자신을 평가절하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실이 가져온 낙담은 아이의 여름을 삭제한다. 사야카의 여름은 루가 존재하던 과거에 머물러있다. 예컨대 아이는 루와 함께 다니던 산책길을 홀로 걸으며 존재하지 않는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있거나, 함께 뛰놀던 공터에서 마치 루가 있는 양 공을 던진다. 그런데 가족은 아이의 방황에 대해 침묵한다. 아무래도 소녀의 가족은 다정하지만, 아이의 외로움을 눈치챌만큼 사려 깊진 못한 것 같다. 심지어 숙모는 마당에 놓인 루의 집을 이젠 치울 때가 되지 않았냐고 넌지시 운을 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이는 떠돌이 개(혹은 그저 주인을 잃은 개일 수도 있으나 명시되지는 않는다) '루스'를 키우는 후세 할아버지와 친해지게 된다. 후세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전 아들 고이치로(사토 유타로)를 잃고 아들의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평생을 보낸 인물로, 사야카와 다소 삐꺽이는 첫 만남을 가졌음에도 쉽게 친해진다. 영화 포스터상에선 '외톨이들의 우정'이라는 표현으로 축소되었으나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은 심장이 나락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한,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를 치유하는 여정이었다. 그것이 퍽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사야카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소중한 건 기다리는 게 아니야, 찾으러 떠나는 거야!'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아이는 다시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문제는 후세 할아버지가 병을 앓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후세 할아버지와 사야카가 바다에 놀러 갔던 날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 둘은 서로의 결핍을 환상을 통해 마주했다. 아마 별 일이 없었더라면 두 사람은 각자를 절망에 빠뜨렸던 상실과 화해를 이뤘으리라. 하지만 후세 할아버지는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난다. 그는 고이치로와 캐치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모종의 후련함을 느꼈던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완전한 치유라 보기 어렵다. 상실을 떠나보내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그에겐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의 죽음은 사야카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어찌하겠는가. 어린 소녀는 루를 잃은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하기 전, 슬픔을 공유할 수 있었던 친구마저 떠나보내게 된 셈이지 않나. 결국 사야카는 후세가 유언처럼 남긴 기차역을 찾아 헤맨다. 공터에서 루와 함께 발견했던 철근 앞에 선 순간 소녀가 후세와 고이치로, 루가 있는 '건너편'으로 가려하는 모습은 적지 않게 상징적이다. 아이가 삶이 아니라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았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영화는 아이가 죽음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후세 할아버지의 개 '루스'와의 재회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로 치유를 향한 유일한 해답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스럽다. 시간이 이별의 아픔을 해결해준다는 낙관은 무정하다. 비교적 공유 가능한 죽음인 '루'의 상실조차 오로지 후세와 나누며,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아픔을 견디고 있던 아이에게 찾아온 두 번째 상실은 정말이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 병원의 간호사가 말하는 "너는 가족도 아니잖니, "라는 말은 마음을 도려내듯 아프다. 샤아카가 겪는 시련이 폭력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까닭은, 아이가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면의 슬픔을 어루만지지 않는 어른들의 무참한 모습 때문이리라.
글쎄,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말한 바 있으나, 나는 그의 말을 모든 이에게 적용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개인이 그리 생각할지라도 상실/시련을 겪는 주변인들이 지녀야 하는 윤리적 자세가 과연 침묵과 망각, '묻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배려뿐이겠는가. 상흔이 가득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당신과 나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서로에게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먼저 내어줄 수 있는 용기와 온기가 아닐까.
이밖에,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의 특징 중 하나로 러닝타임 내내 회상과 환영이 자주 오버랩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영화가 주로 초점을 맞추는 시간대가 루의 죽음 이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겠으나, 논리적으로 회고하지 않는 아이들 특유의 시간선을 재현하기 위한 장치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만 나는 영화에서 모놀로그는 제외했거나, 영화 말미에 짧게라도 모놀로그를 맡은 아리무라 카스미가 등장하여 사야카의 모습을 비춰주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감독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아이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상실과 상실 극복의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면 전자를, 한 개인이 자신을 성장하게 한 시련에 대한 회고를 기획한 것이었다면 후자를 선택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감독은 어린 사야카가 이끄는 극 중 성인이 된 사야카의 목소리를 덧입혔다. 이에 영화는 영상 속 메인 롤과 화자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진행되었고, 메울 수 없는 시간적 간극은 평행선을 달렸다. 영화를 이끄는 주체인 사야카가 분열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상황인데,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후세와 고이치로, 사야카의 조부모님, 강아지 루 등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욕심껏 전달한다. 결국 영화는 과도한 메시지/이야기가 콜라주 된 채 마무리된다.
이렇듯 아쉬움이 적지 않으나 언급했듯,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훌륭했다. 또한 영화 내내 펼쳐지는 일본의 따스한 풍경은 영화가 지닌 부드러운 톤의 이야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져 몰입하기가 놀라우리만큼 쉬웠다. 영화관에서 한참 울고 나왔으면서도 믿기지 않아 스스로에게 되물어본다. 외국 영화를 보며 이토록 노스탤지어에 젖는 게 가능할까?라고.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고 괜스레 놀리던 어린 시절의 나는 오래 전의 기억이기에 빛바랜 지 오래라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생명력을 얻었는지 떠올리기만 해도 코끝이 괜히 시큰해진다.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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