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0 00:20:50
두번째 감옥, 만덜레이
도그 빌에서의 참극을 맞이하고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벗어나지 못한걸까요.
다소 슬픈 그레이스의 두번째 이야기가 펼쳐지는
만덜레이 입니다.
억압과 동시에 벗어나지 않으려는 딜레마에 갇힌.
도그빌 마을의 사건 이후에 그레이스는 만덜레이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노예제가 폐지 되었지만 여전히 악습이 팽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에 말이죠.
이상주의자인 그레이스는 자유가 억압된 그 모습을 두고보지 못합니다.
도그빌에서 겪었음에도 아직 같은 생각인걸까요.
그렇게 그레이스는 주인마님이 사라진 이 곳, 만덜레이에 자유를 쥐어주게 됩니다.
하지만 70년간 없었던 자유에 준비되지 않았던 그들은 기뻐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모습인데도, 그 모습은 그레이스에 있어서 당연하지 않은가봅니다.
약간은 몰입감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오만한 영화의 의미가 참 독특했습니다.
비관적이면서도 주인공의 뚝심을 지킨다는게 말이죠.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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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영화는 엔딩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아들이 본다면 어쩔 수 없지. 아빠는 넷플릭스를 껐다. 난 지금 <오징어 게임>을 보고 있다. 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도 이건 보고 있다. 난 범죄물이나 스릴러물을 좋아한다. 예고에서 내 취향의 느낌이 나서 넷플릭스를 켜 재생을 시작했다. 나는 어쩔 때 취향이 넓은 사람인 척 하지만 사실 등장인물끼리 피 튀기는 걸 좋아한다. 단적으로 피 튀기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집중하기 좋은 작품들을 좋아한다. 내가 평소에 산만한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지금도 영상편집하다 느닷없이 FM을 켜서 게임을 하다가 <오징어 게임>을 동시에 보며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산만함. 이건 누가 와도 못 고칠 습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습관. 습관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 것일까? 일단 우리 엄마도 내 습관 전부를 고치지는 못했다. 아니 사실 나 스스로도 내 습관을 고치지는 못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밤에 뭘 먹는 습관은 무슨 짓을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소화기약을 먹고 자면 잠에 일찍 들 수 있는데 이것마저도 조금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잘 보일 사람이 있다면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 글 쓰다 말고 밤새 딴짓을 하는 뭐 같은 습관도, 언제부턴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습관도 다 고쳐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랬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독히 산만한 인간이라 습관과 싸우는 게 유독 힘들다. 이런 나에게도 나를 바꾼 에피소드가 있다. 난 잘 보일 사람이 있었다. 무의식에 욕지거리를 한 두 마디 하던 나는 비속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 고마웠다. 이 말 빼고는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렇게 고맙다는 말 많이 했었는데도 말이다. 이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도 아닌데, 사실 걸핏 보기엔 우연에 불과한데도 나는 참 많은 것들을 얻은 셈이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운명과 우연을 빗댄 영화다. 올해 <랑종>이 핫할 때 같이 상영관이 걸렸었던 작품이다. 일본 내에서는 <귀멸의 칼날>을 누르고 얼마 동안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사실 이건 그렇게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일본산 로맨스 영화를 신뢰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나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같은 영화 나는 좀 별로였다. 몰입이 안 되는 느낌? 그런데 <아사코>는 좋았다. 그런데 난 솔직히 아사코는 로맨스 영화긴 한데 그것보다 철학적인 색이 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일본의 로맨스 영화에 대해서는 취향이 확실했던 셈이다. 이건 필연이었다. 내가 그만큼 일본 영화에 실패를 해 봤으니 이런 판단이 들어간 것이겠지?
내 확실했던 취향만큼이나 영화는 분명한 설정을 보여준다. 아직도 이 영화를 처음 볼 때가 생각난다. 이 영화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우연처럼 취향이 비슷한 동갑내기 둘이 만나게 된다. 막차가 끊겨 처음 만나게 된 주인공. 카페에서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다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서로 같이 전시회와 노래방을 가며 서로 잘 맞는다는 걸 확인한다. 단기간에 깊게 친해진 둘은 언제 고백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다, 결국 사랑에 성공한다. 스물하나라는 나이에 가슴 뛰는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극 중 안에는 평범남, 녀로 나오는 듯 하지만) 스다 미사키와 아리무라 카스미의 훈훈한 비주얼이 이 고백하는 장면에서의 두근거림을 더 키운다. 달달한 로맨스를 살릴 수 있는 배우들의 캐스팅이 빛난 셈이다. 영화로 돌아가서, 취향이 맞는 걸 확인한 두 주인공은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 고양이도 키우고 동거도 하며 일상을 즐겁게 보냈다.
근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두 가지의 사건이 분기점이 돼서 둘은 소원해진다. 처음은 남자 주인공 무기의 일러스트레이터 일이었다. 벌이가 예전 같지 않게 되자 회사에 취업하게 된 무기. 야근에 야근이 겁쳐 XBOX로 게임도 못하고 미라 전시회도 못 가며 그림 그릴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해 둘의 사이는 소원해진다. 다른 사건은 키누의 '하고 싶은 일'에 관한 것이었다.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벤트 기획업체에 취업하게 된 키누. 안정적인 원 직장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곳에서 돈을 벌기 시작한 키누를 무기는 못마땅해한다.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첫사랑이 이어지고 4년이 지나자 둘은 이별을 결심한다. 우연처럼 시작했던 두 사람이지만 필연을 피하지 못하고 현실에 부딪혔다. 헤어진 둘은 서로를 저주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축복한다. 우연과 운명으로 시작했던 사랑이 결국 이를 부정하며 끝났다. 원래 영원한 건 없다.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는 것이다. 무슨 달콤한 말을 해도 영화의 엔딩은 정해져 있었다. 난 이 둘이 실존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난 이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왠지 모를 시원섭섭함이었다. 가령 영화의 한 장소에서 둘이 껴안는 엔딩신이 있다. 이 영화에 300% 몰입하며 본 나는 무기의 관점에서 이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느꼈다. 난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나질 않길 바라고 있었다는 걸. 그런데 끝났다. 무기는 키누와 마주치지 않는 손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각자의 새로운 연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러닝타임도 끝났다. 마지막 막이 내려가는 순간에도 사실 상영관 밖을 못 나왔던 것 같다. 이건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당연한 사랑이야기에 참 깊게도 몰입했다. 영화는 러닝타임이란 게 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간관계도 그렇다. 취향이 같다고 해서 영원한 사랑이 될리는 없으며 결국 둘 중 한 명은 서로를 떠나야 한다. 내가 이 영화 상영관에서 버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는 것처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딱 붙잡고 일어섰다. 그래. 영화건 소설이건 드라마건 좋다고 생각한 것에 여운이 오래 남을 수도 있지. 문을 열어서 밖을 나섰다. 길거리에 마스크 낀 수많은 커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턱을 괴고 땅바닥에 앉아 가만히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내가 봤던 CGV 옆에는 꽃집이 없다. 이발소와 옷가게가 있다. 어차피 나는 저기서 평소에 머리 안 자른다. 그리고 저기 옷가게들은 여자 옷을 판다. 맞은편에는 피부과가 있다. 바라보기 좋은 공간이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세상을 바라봤다. 어차피 내 인생에서 시작과 끝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인생은 꽃다발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확 아름답게 피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들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쳐온 개화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알았다. 갑자기 드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시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며 느낀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것? 나에게 꽃다발이 되어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난 정말 많이 변했다. 피고 지는 걸 반복했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N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정신상태가 비슷하길 원한단 말인가. 이건 다들 똑같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 나는 항상 끝이 분명하다는 걸 알면서도 꽃같이 아름다운 사람에게 많은걸 받으면서 살았다. 이 과정이 아름다웠냐. 아니다. 나는 추해지고 멍청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을 세게 찰 만큼 창피한 뭐 그런 기억 말이다. 심지어 무엇이든 끝이 있으니 우리 인생은 참으로 심심한 셈이다. 그래도 정말 중요한 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당연히 매일이 즐겁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무기와 키누가 정말 매일매일 행복했을까. 아닐 것이다. 언제는 싸우기도 했겠지. 당연한 사실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에게 남는 건 꽃다발같이 아름다웠던 시간이다. 질 때도 필 때도 있는 게 사람이다. 무엇이든 받아들인다면 편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습관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느낌이다. 꽃을 이쁘게 전시하려고 화분을 직접 만들어 낸 느낌인 셈이다. 시들면 어때. 난 여기서 풍기는 향기 때문에 언제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는걸. 잘 보이고 싶어 비속어를 섞지 않게 됐는걸.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그걸 위해서 사람은 물도 주고 햇빛도 줘야 한다. 끝이 있지만 나와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건 이렇게 꽃이 피고 지는것처럼 아름다운 시간이다. 어차피 이거 이 글을 읽는 몇 안 되는 독자들이라면 다 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불구하고 유념해야 하는 건, 분명한 끝이 있다면 이들에게 웃는 모습으로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으로 다행일 것이라는, 뭐 그런 거다. 웃으며 기억하자. 그리고 보내주며 스스로에게 되뇌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아름답게 활짝 피어날만큼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난 과거의 내 사진을 보며 기적이라고 생각할 만큼 변했다. 이런 나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하며 산 셈이다. 이 글의 주인공이 되어준 이들이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의 해피엔딩이 되어줘 참 고마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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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 이민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민자의 모습은 그렇게 좋지 않다. 대부분 막노동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미지를 가진 그들은 한국 사회 안에서도 그렇게 높은 위치에 있지 않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이민자라고 하면 중국이나 동남아 국적을 가진 이들이 많이 떠오르는 반면, 미국에서는 아시아권과 남미의 이민자들이 많이 떠오른다. 워낙에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 국가의 특성상 한국보다는 좀 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미국에서의 이민자들의 이미지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이민자들의 직업과 이미지는 그들에 좋지 않은 선입견을 덮어 씌운다.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낮은 계급과 지위라는 두꺼운 필름이 덧붙여져 있다. 그건 개인의 문제라기 보단 사회의 문제다. 어느 국가에서건 그렇게 이민자들을 대하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들이 많이 하는 직종은 그 일이 이민자들이 많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고 왠지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많은 이민자들도 그걸 알고 있지만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다음 삶의 미래를 꿈꾼다.
같은 삶과 터전에 살아가는 이민자의 모습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된 영화 <발렛>은 미국 내에서 주차 대행 서비스인 발렛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이민자를 화면에 담는다. 물론 이 영화가 발렛이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히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 발렛일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하는 남미계 이민자 안토니오(에우헤니오 데르베스)를 중심인물로 한다. 그는 그저 평범한 이민자처럼 보인다. 일을 성실하게 하고 차분하고 조금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그는 동료들과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현재 그는 좀 더 큰 꿈을 꾸는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이혼을 앞두고 있다. 초반에 화면에 보이는 그의 삶은 무척 단순하다. 그는 발렛 일을 열심히 하고 집에서는 가족들을 챙기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가 지금 바라는 건 별거 중인 아내와 다시 합치는 것인데, 아내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좀 더 일에 신경 쓴다. 하지만 그가 벌 수 있는 수입은 한계가 있어 그가 바라는 행복이 꽤 멀게만 느껴진다.
안토니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은 미국 내 이민자들이다. 아마도 미국 사회 안에서 발렛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들 일 것 같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차를 맡기는 이들은 발렛 관리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차 열쇠를 던진다. 그리고는 그저 스쳐지나 자신의 볼일을 보러 갈 뿐이다. 그런 무심한 시선에도 발렛 관리자들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영화는 그런 안토니오와 이민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그들 중심으로 담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발렛 관리자들은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이었다. 카메라는 그들을 제대로 비추기보다는 화면 언저리에만 살짝 비출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 <발렛>에서는 그들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멋진 차를 맡기는 사람들은 화면에서 잘리거나 화면 언저리에 자리한다.
그리고 안토니오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얼굴도 비춘다. 나이 든 어머니, 동생을 비롯한 이웃들이 화면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백인 여성과 유색 남성의 로맨틱한 사랑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분명 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인기 여배우인 올리비아(사마라 위빙)로부터 시작된다.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그는 파파라치에 자신과 유부남의 사진이 찍혀 공개되자 우연히 그 사진에 같이 찍힌 안토니오를 이용해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바로 가짜 연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얼떨결에 제안을 수락한 안토니오의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웃음을 유발하고 생각보다 순수하고 정직한 그의 모습을 통해 평범한 사람의 진심을 보여주며 따뜻함을 전달한다.
안토니오의 삶에 초대된 백인 여성, 그리고 따뜻함
안토니오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차분하게 잘 소화해 낸다. 그게 어색할지라도 그는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며 올리비아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을 끝까지 고수한다. 그것이 때론 답답해 보이지만 그 정공법은 올리비아의 마음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올리비아는 안토니오의 삶과 공간 속으로 조금씩 들어간다. 안토니오가 일하는 공간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가짜 커플 연기는 안토니오의 집까지 이어지고, 그 주변의 공원까지 연결된다. 그 모든 공간은 이민자들이 일하고 살고 산책하는 공간이다. 백인 여성이 이민자의 공간으로 들어와 그들의 문화와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경험하고 마음을 여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슷한 영화는 많았지만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 영화 <발렛>도 그렇게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태도만큼은 훌륭하다. 그들이 가진 직업과 가족 문화를 이질 감 없이 전달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는 걸 끊임없이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구조로 시작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 누군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무척 따뜻한 이야기의 결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발렛>은 2006년에 만들어진 동명 프랑스 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다. 전작도 꽤 좋은 반응이 있었지만 이번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된 리메이크 <발렛>이 좀 더 재치가 넘치고 유머러스하다. 여기에 이민자들의 삶과 태도를 영화의 중심에 넣으면서 무척 유쾌하고 따뜻한 영화로 재탄생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두 주인공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를 궁금해하기보다는 각 인물이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게 될지가 좀 더 궁금해지게 된다. 그만큼 영화는 이민자의 삶과 태도를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조금 다른 감정을 전달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IMDB]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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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Heretic, 2025)>, 종교는 거들 뿐인 밀실 탈출 스릴러
A24에서 또 한 번 강렬한 공포 영화를 내놓았다. <유전>, <미드소마>, <톡 투 미>와 같은 특유의 신선한 호러 감각이 이번엔 종교를 만났다. 외딴 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야기, <헤레틱>이다. *필자는 지난 3월 27일, 씨네렙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를 통해 <헤레틱>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
'헤레틱'은 영어로 '이단'이라는 뜻이고, 바로 내일(2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 기본 정보
제목: 헤레틱 (2024)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휴 그랜트
장르: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111분
국내 개봉일: 2025년 4월 2일
제작/배급: A24
줄거리: 어느 눈 오는 날, 몰몬 선교사 자매인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는 전도를 위해 한 남성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집 주인 리드(휴 그랜트)는 이들을 호의적으로 맞이하며 날씨가 궂으니 잠깐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규칙상, 여성이 있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아내가 있다'는 말에 두 자매는 의심 없이 문을 넘는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고, 남자의 대화는 점차 묘하게 불편한 질문들로 이어지는데... 자신들이 이 집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두 자매는 탈출을 감행한다.
1. 믿음과 의심 사이의 긴장감
최근 공포 영화는 점프 스케어보다 서스펜스와 심리적 긴장감으로 관객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헤레틱>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낯선 남자의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긴장감을 점진적으로 쌓아올린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에는 '종교'라는 소재가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무섭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섭다"는 역설적인 명제를 중심에 두고, 영화는 관객을 믿음과 의심 사이 긴장으로 이끈다. 궤변 같으면서도 논리적인 시험 속에서, 관객은 주인공들과 함께 끊임없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시험대에 놓인다.
물론 영화가 처음부터 이 철학적 긴장감만으로 공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궂은 날씨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외딴집, 그 안에 두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과 함께 있다는 상황만으로 관객은 익숙한 불안을 감지한다. 이 상황 속에선 성별에 따른 물리적 힘의 위계가 힘의 비대칭을 만든다. 이는 남성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끔찍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불안을 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여성, 그리고 관객이 처음으로 의심하는 것은 바로 남성의 정체이다. 중년 남성 리드가 정말로 겉모습처럼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곧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이 역할에 ‘노팅 힐’로 유명한 휴 그랜트를 캐스팅했다. 그는 젠틀하고 따뜻한 미소의 리드를 연기하며, 두 여성이 기꺼이 스스로 낯선 남자의 집 안으로 향하게 만든다. 물론 그들이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리드가 ‘집 안에 아내가 있다’고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리드는 부인이 낯을 가린다며 계속해서 그녀의 등장을 지연시킨다. 리드라는 인물에 대해 신뢰를 거둘지에 대한 판단은 영화 초반부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두 자매는 이러한 의심 속에서도 그들의 본래 목적대로 리드에게 전도를 하려 한다. 하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점차 리드에게 넘어간다. 그는 점점 종교적 신념을 정면으로 겨누기 시작하고, 미묘하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리드는 계속해서 두 여성의 신념을 흔든다. 그리고 두 여성은 점점 그가 만들어낸 심리 게임의 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모든 과정을 따라가는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리드의 질문에 동참하게 되고, 함께 시험을 받는 듯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헤레틱>은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실존적인 위협에 기반한 상황을 통해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믿음에 관한 심리 게임을 풀어나간다. 영화에서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는 방식은 매우 치밀하며,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 설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2. 치밀한 설계
영화는 상당히 치밀히 짜여져 있다. 결말에서 치밀한 설계는 단순히 장르의 플롯을 넘어서 주제의식으로 발현된다. 동시에 관객으로서 이 치밀함 덕분에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도 준다. 먼저 캐릭터의 균형이 잘 맞춰졌다고 생각했다. 팩스터와 반스는 모두 독실한 몰몬교 신자이다. 그들은 속옷마저 교회가 규정한 의상을 입고, 교회의 공동체에 기반하여 생활한다. 반스는 현실감이 없이 순진한 전형적인 신자처럼 보인다. 반면, 팩스터는 상대적으로 눈치가 빠르고 현실 감각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팩스터는 리드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반박할 수 있는 논리적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 덕분에 일방적으로 리드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맞서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고 탈출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인물들이 상당히 실행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심이 거두어진 순간에 망설임 없이 행동한다. ‘저건 믿으면 안 될 거 같은데’하는 답답함이 들 때쯤, 타이밍 좋게 인물들도 움직여준달까. 그런데 그 순간마다 절묘하게 새로운 변수나 불가항력적 상황이 또 던져진다. 결국 그들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치밀하게 설계한 덕분에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빈틈 없다고 느낀 부분은 대사이다. 감독들의 전작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설정 아래 대사를 최소화하며 긴장을 유도했다면, <헤레틱>은 그 정반대 지점에서 대사로만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감독들 역시 이런 극적인 대비를 하나의 창작 실험으로 삼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대사는 '말맛'이 살아있는 그 자체로 즉흥적인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 모든 대사가 계산된 구조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리드가 반스에게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자 반스는 ‘스파이더맨’이 말한 것이라고 받아친다. 리드는 이를 ‘볼테르’가 말한 것이라 정정한다. 처음 이 장면에서 이 대사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흘러갔기 때문에, 자그마한 유머라고 생각하고 웃고 넘겼다. 그러나 이후 영화가 반복적으로 원형과 복제, 신념의 계승과 변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앞선 대사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대화를 통해 서서히 분위기를 조이고, 이후 그 대사들이 퍼즐처럼 맞물려 돌아올 때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심지어 음악마저 아무 의미 없이 삽입되지 않고 있다. 이런 지점들이 감상 이후 곱씹을수록 서늘함을 안겨준다.
3. 총평
<헤레틱>은 스릴러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정교하게 설계한 작품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직 대화만으로 긴장을 구축하는 연출이 인상 깊었고, 이야기 자체도 흡입력이 있어 몰입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극의 대부분이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일부 장면에서는 다소 과하게 설명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리드라는 인물의 특성상 몇몇 장면은 마치 신학 강의를 듣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대사의 길이나 논리적 구성이 그러한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다시 보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할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이 ‘강의 장면’들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리드가 주도하는 그 ‘강의’가 실제로는 힘의 위계와 물리적 위협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그의 논리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 앞서 언급한 실존적 위협은 장르적으로는 훌륭한 장치지만, 영화가 내세우는 주제적 메시지(믿음과 확신에 대한 탐구)와는 결이 어긋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믿음에 대한 철학적 시험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몸부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 때문에 미묘한 뉘앙스만 주던 초반부에서 다소 노골적인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의 매력이 한풀 꺾인다. 결말 또한 만족스럽다고 하긴 어렵다. 여러 버전의 결말을 놓고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덧붙인 듯한 인상을 준다.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끝내 찾지 못한 채, 결국 캐릭터가 가진 ‘선(善)’의 속성에 기대어 마무리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의심하는 리드가 실은 누구보다 믿음을 갈구하는 인물처럼 마무리되는 아이러니도 다소 예측 가능한 부분이다.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휴 그랜트는 로맨틱 코미디의 상징과도 같던 자신의 이미지를 이번 작품에서 기민하게 비틀었다. 그가 완전히 다른 역할로 변신한 것은 아닌, 기존의 친근하고 젠틀한 이미지를 미묘하게 왜곡해 섬뜩한 설득력을 만들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당신이 알고 있던 '로맨틱한 휴 그랜트'의 잔상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팩스턴을 연기한 소피 대처는 어딘가 낯익은 인상이다 싶었는데, 제나 오르테가와 안야 테일러 조이를 반씩 섞은 것 같다. 실제로 과거 몰몬교 신자였다고 하는데, 그런 배경이 캐릭터의 미묘한 디테일을 풍부하게 만든 것 같다. 최근 개봉한 <컴패니언>에서도 색다른 연기를 보여줬는데, 배우에 관심이 생겼다면 해당 작품도 꼭 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컴패니언>에서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반스를 연기한 클로이 이스트는 <파벨만스>에서도 얼굴을 비췄던 배우다. 그녀 역시 몰몬교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흥미롭게도 "다른 삶을 살았으면 자매 선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 모두 2000년생으로 비교적 어린 배우들이다. 실제 나이와 캐릭터가 잘 맞아떨어지며, 두 사람의 호흡도 매우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캐스팅이 탁월하게 어우러졌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튼, 재밌게 감상했다. 필자는 종교에 큰 관심이 없어 처음엔 관람을 망설였지만, 막상 보고 나니 종교적 맥락보다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완성도와 장르적 매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인물 간의 긴장감이 주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반대로 말하면, 종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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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이 세상에서 살아숨쉬는 모든 생명들에게
제 25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부문 소다 카즈히로 감독의 "고코구 신사의 고양이들"
< 고코구 신사의 고양이들 >
시놉시스: 작고 오래된 고코구 신사는 인간과 자연의 복잡한 관계를 한눈에 보여 주는 전망대다. 문명화된 생활에 자연은 공생하기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을 담은 연대기적 다큐멘터리.
"공생" : 서로 도우며 함께 삶.
많은 고양이들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마을이 영화의 무대.
겉보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에 적응한 일종의 '고양이 유토피아'적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는 마을사람들의 고충이 있습니다.
'고양이의 위생과 이후의 개체수 문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고양이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죠.
마을사람들은 이제 기관들의 도움으로 기존에 해오던 개체수 조절을 넘어,
고양이들의 배설 문제까지 해결해야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고민의 골은 깊어져가고, 사람들은 이제 '고양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논하게 됩니다.
마을회의에서는 이를 두고 두가지 의견이 나옵니다.
1. 몇년간 차츰차츰 고양이 개체수를 줄여 나가자.
2. 고양이를 관광상품으로서 활용하자.
1번의 의견은 결국 고양이의 종식을 의미하고,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채로 2번의 의견을 따르게 된다면 이는 또 다시 새로운 문제를 낳게되겠지요.
이후 외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현 상황은 꽤나 회의적입니다.
위생, 개체수문제를 차치하고, 마을이 일명 '고양이 마을'로 소문이 나게되면, 오히려 타지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이 곳에 고양이들을 유기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세마리의 아기고양이들이 마을에 유기되며 영화는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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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랑스러운줄로만 알았던 '고양이'는 마을사람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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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는 고양이들의 삶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인들의 삶도 조명합니다.
노인들은 고양이와 상호작용을하고, 그들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이어나가며, 은퇴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인으로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곧,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인간과 고양이의 공생을 넘어 노인과 사회의 공존을 보여주는 것이죠.
눈깜짝할 사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천천히 그들만의 리듬으로 흘러가는 노인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각자의 역할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또한 감독이 말하고 싶은 '공생'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뿐만아니라, 카메라는 작은 식물에도 집중합니다.노인들이 키우는 작은 새싹들.
마치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습니다.
노인들은 정성들여 청소한 신사에서 마을의 안정과 보호를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이는 마을의 현상황과 오버랩되며, 노인들이 마을주민들의 안녕뿐만아니라 마을에 살고있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만 같습니다.
감독은 엔딩크래딧에서 떠나버린 마을의 생명들을 기립니다.
마지막 작별인사같은 이 엔딩크래딧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공생' 이라는 영화의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유종의 미를 거둡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들을 새로운 시선에서 더욱 자세하고 공손하게 접근하는 감독의 자세가 인상 깊은 영화 "고코구 신사의 고양이들"이었습니다.
씨네랩 소속 기자로서 제 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하게 된, 강예림 기자였습니다.
상영일정:
2024.05.02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17:30
2024.05.05 CGV 전주고사 2관 14:00
2024.05.10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10:00
영화제 기간: 2024.05.01 - 20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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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도 혼자서 싸울 순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스 갬빗 The Queen's Gambit>
재능의 명과 암
'엘리자베스 하먼(안야 테일러 조이)'은 눈에 띄는 사람이다. 남자들로 가득한 체스의 세계에서 여성 선수인 것도 모자라 천재적인 체스 실력으로 그들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붉은 머리와 화려한 옷차림을 한 어린 여성에게 남자들은 승복해야만 했다. 엘리자베스(이하 베스)는 9살에 체스를 시작해 15살에 켄터키주 챔피언에 오른 천재다.
고대 그리스 시인들이 영웅의 이야기를 즐겨했듯 현대의 우리는 천재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천재가 성공해도, 몰락해도 어떤 쪽이든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뛰어난 능력을 타고난 사람을 두고 신의 선물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 선물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뛰어남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끊임없는 평가와 판단에 시달린다. 심지어 이들은 삶조차 마음대로 재단 당해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선망, 동경, 부러움, 질투, 혐오는 다양한 모습으로 이들을 덮쳐 온다.
때문에 천재는 고립되기 쉽다. 이해받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베스는 당연하게도 또래 친구들과 유행하는 노래를 함께 부를 수도 없고, 남자에 대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베스에게 의미가 있는 건 체스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별과 나이가 다르더라도 체스를 하는 사람이 베스에게는 친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베스가 첫 상금으로 산 것은 옷과 체스판이다. 자신이 또래의 아이들과 다르며 현실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베스의 콤플렉스다. 베스가 불건강한 상태가 될수록 유행하는 모습으로 치장하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악역, 자신
베스는 9살에 눈앞에서 엄마를 잃었다.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베스는 머슈언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보육원의 지하실에서 홀로 체스를 두고 잇는 관리인 샤이벌(빌 캠프)씨를 마주하게 된다. 64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체스판은 베스가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러낼 수 있으며 지는 것도, 이기는 것도 온전히 자신의 책임 아래에 있는 체스라는 게임에 베스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베스는 뛰어난 선수였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공격수였으며 쉽게 화를 냈다. 샤이벌의 말대로 베스의 '화'는 너무나 깊었고,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베스는 체스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써 안정제의 도움을 받는다. 체스에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지만 체스는 자신을 승리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체스를 알아가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겠지만 베스에게는 승리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그리고 고독함과 패배감이 동시에 몰려오자 약과 술로 자신을 마비시킨다.
이 <퀸스 갬빗>이라는 드라마에는 이렇다 할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다. 베스를 비웃는 같은 학교 학생들도 악당이라고 할 수는 없고, 세계 챔피언 '보르고프(마르친 도로신스키)'도 굉장히 진중한 체스 선수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베스가 넘어야 할 벽은 자기 자신뿐이다.
<퀸스 갬빗>은 그 고독과 압박감에서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일어서는 천재의 치유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앨리스와 앨마, 두 엄마가 남긴 것
친엄마 앨리스의 죽음과 양엄마 앨마의 죽음은 베스의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된다. 극 중에서 앨리스와 함께 보낸 시간을 많이 보여주지는 않지만 앨리스의 말들이 베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강한 사람은 혼자인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도 그중 하나다.
앨리스의 이런 양육법은 베스를 독립적인 아이로 만들어주었지만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앨리스의 마지막은 심각할 정도로 자기희생적이며 회피적인 태도다. 앨리스는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재능과 독립적인 정신을 준 동시에 베스를 고독하고 자기 파괴적으로 만들었다.
한편, 베스의 양엄마인 앨마(마리엘 헬러)는 체스에 재능을 보이는 베스를 전적으로 밀어준다.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무료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과 달리 자신의 능력으로 부와 명성을 얻는 베스를 보며 앨마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행복해한다. 베스의 성취와 성장은 앨마에게도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앨마는 베스가 체스에만 매몰될 것을 걱정한다. 엄마와 딸 그리고 매니저와 선수로서 둘의 유대는 특별했다. 베스를 조금이나마 쉬거나 걷게 만드는 것은 앨마였다. 앨마가 원하는 것은 베스가 '삶을 살며 성장하는 것'이다. '인생에 체스가 전부는 아니니까'
베스는 멕시코 시티에서 만난 '조르지 기레브'라는 소년에게 '세계 챔피언이 된 후 어떻게 살고 싶느냐'라고 묻는다. 소년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베스는 이미 그 후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체스의 자리를 어느 정도로 설정해야 할지를 체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앨마의 말처럼, 인생에 체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앨마가 베스에게 남긴 것은 '체스 외의 삶'이다.
외로운 '폰'이 '퀸'이 되기까지
외로움의 구덩이에서 베스를 건져 올려준 사람은 보육원 친구 '졸린(모세스 잉그람)'과 샤이벌씨다. 관리인 샤이벌씨의 부고로 다시 찾게 된 머슈언 보육원은 체스와의 첫 만남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든다. 실제 장례식이 치러지는 교회보다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던 찬송가가 울려 퍼지던 시간의 지하실은 베스에게 큰 울림을 준다. 9살이던 베스와 찍은 사진과 돈을 빌리려 쓴 편지, 그리고 베스의 온갖 기사와 사진들이 붙어있는 그 벽면을 보며 베스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베스에 대한 샤이벌씨의 자부심과 애정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치유였다.
사람을 일으키는 건 주위 사람들의 끈질긴 애정과 믿음이다. 오래도록 너를 지켜봐 왔다고, 당신이 걱정된다고 말해주는 것. 네가 필요할 때 내가, 내가 필요할 때 네가 달려와줄 거라는 확신.
자신을 향한 타인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마주한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를 놓을 수 있을까. 애정과 믿음의 힘은 한낱 약물과 술이 주는 쾌락과 마비의 감각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덕분에 베스는 맑은 정신으로 러시아로 향한다. 하지만 러시아 선수들은 한 팀으로 움직인다. 바르고프와의 대결에서 베스도 혼자는 아니었다. 그동안 베스가 겨뤄왔던 선수들은 한 팀이 되어 러시아에 대항한다.
그러나 아무리 도움을 준다 한들 결국은 홀로 싸워야만 하는 때가 온다. 그 순간 베스는 안정제 없이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다시 수를 어림한다. 맑고 또렷한 정신으로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전력으로 상대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승부를 겨뤘고 마침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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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체스를 사랑하는 나라이다. 냉전시대에 미국에서 온 백인도 훌륭한 체스 선수이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세계 챔피언이 된 후 러시아의 거리를 백색 '퀸'과 같은 모습으로 활보하는 베스는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자신다워 보인다. 대통령과의 만찬, 인터뷰 같은 것들이 아닌 거리에서 이름 모를 할아버지와 체스를 두는 것이 베스가 선택한 챔피언 이후의 삶이다.
체스에서 가장 강한 말은 '퀸'이지만 혼자서 모든 말들을 잡을 수는 없다. 다른 말들이 있기에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역경을 넘어 상대방 진영의 끝까지 다다른 '폰'은 '퀸'이 될 수 있다. 베스는 이기기 위해 자신을 거침없이 내던지는 '퀸'이 아닌 한 걸음씩 전진하여 끝에 다다른 '폰'처럼 마침내 '퀸'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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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용기 없는 건 당신 탓이 아니라고 영화가 말했다
용기는 쉽게 얻을 수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기에 용기 내서 성공한 이들은 존경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그들과 자신을 하나씩 비교하며 용기 낼 수 없는 이유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음에'라는 기약 없는 다짐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음속에 묻어두고 지낸다. 죄책감을 주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통해 당신이 용기 없는 건 당신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제임스 서버의 단편 소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을 영화화했다. 주인공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엉뚱한 상상을 즐기는 인물이다. 16년간 사진 잡지 ‘LIFE’에서 필름 담당자로 일한 그는 유명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의 사진을 찾기 위해 예상치 못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예고편
월터의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진 잡지 'LIFE'를 배경으로 한다. 1936년 헨리 루스에 의해 창간되었던 ‘LIFE’는 2,300개의 이슈를 발행하며 보도 사진 분야에서 굉장히 큰 기여를 한 대표적인 사진 잡지이다. 하지만 정보가 디지털화되면서 인쇄 매체는 힘을 잃었고 2007년에 폐간되었다.
영화는 ‘LIFE’의 폐간 직전 모습을 묘사하고 월터가 찾는 사진은 마지막 발행본의 표지 사진이다. 'LIFE'로 찾아온 구조조정 담당자 ‘테드 핸드릭스(아담 스콧)’는 기울어진 회사의 운명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다. 그는 회사와 직원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공상에 빠지는 필름 담당자 월터를 노골적으로 비웃는다. 테드 핸드릭스의 괴롭힘을 당하기만 하던 월터가 마침내 회사를 박차고 뛰쳐나가 모험을 시작할 때 ‘LIFE’의 사명이 자막으로 등장한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LIFE'에서 청춘을 바쳐 일한 월터 외에도 재무팀 직원 ‘셰릴 멜 호프(크리스틴 위그)’, 마지막 발행본을 의미 있는 사진으로 채우려는 숀을 통해 영화는 'LIFE'가 전하고자 했던 변하지 않는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연출도 눈에 띈다. 상상 속의 스펙터클한 액션씬은 물론이고 주인공의 상황을 대변하는 자막 효과가 사용되는 등 다채롭다. 본격적으로 여정을 떠나면 월터가 아주 작게 보일 정도로 멀리서 촬영한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전체적인 배경을 비추는 풀샷을 통해 관객들은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그곳의 분위기와 상황에 몰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월터가 그린란드에서 헬리콥터를 타는 장면, 폭발하는 화산을 뒤로하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장면 등 관객들의 인상에 깊이 남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월터를 화려하게 감싸는 연출을 선보인 감독이 주인공 역을 맡은 ‘벤 스틸러’ 본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영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무엇이 당신을 용기 내게 하나요?>
'LIFE'가 오랜 시간 지켜온 월터의 일부라고 해도 그는 원래 머리로만 상상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평범한 어른이 된 그에게 낯선 모험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짝사랑하는 셰릴의 존재는 월터의 모험에 방아쇠 역할을 한다. 그녀를 생각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다음 발걸음을 내디딘다. 월터의 어머니는 숀의 사진을 찾을 단서를 알려주고 좌절에 빠진 그를 격려한다. 그리고 모험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극을 받으며 월터는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기적 같은 현실을 만든다.
직접 그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물 관계도
당신의 상상도 용기를 주는 존재를 만난다면 비로소 현실이 되지 않을까? 오늘도 용기 없는 하루였을 지라도 너무 기죽지 않길 바란다. 대신 평범하고 성실하게 삶을 일군 월터의 새로운 도전을 지켜보며 가슴 짜릿한 자극을 느껴보자. 월터처럼 용기의 방아쇠를 당겨줄 존재를 찾거나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어주자. 용기의 방아쇠를 마주치는 날까지 아직은 상상 뿐인 모든 ‘월터’들의 건투를 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adeinx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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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ㄷㄷㄷ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찍을수 밖에 없는 이유.보시면 압니다.[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크리미널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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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라스트 머시너리>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30일, 넷플릭스 공개]
오래전 프랑스를 떠나야 했던 첩보 요원. 그가 아들을 위해 자신을 등진 고국에 돌아온다. 테러 조직의 음모로 위험에 내몰린 아들. 아빠의 이름으로, 반드시 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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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슈퍼노바> 메인 예고편
여기, 우리의 별이 머물렀다.
오랜 시간 서로의 구세주이자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최고의 친구로 지내온 ‘샘’(콜린 퍼스)과 ‘터스커’(스탠리 투치).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와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샘’은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된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여행이 끝나갈수록,
그들의 감정은 점차 고조되는데…
차마 사라지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 마음의 파편,
그곳에 가장 빛나는 사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