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선이정2025-09-24 00:19:36

[30th BIFF 데일리] 멀리서 빈다

영화 <허락되지 않은> 리뷰

DIRECTOR. 하산 나제르(Hassan Nazer)

CAST. 세타레 파카리(Setareh Fakhari)

PROGRAM NOTE.

<허락되지 않은>은 ‘영화를 만드는 영화’를 넘어 영화가 여전히 질문하고 저항할 수 있는 최후의 언어임을 증명한다. 망명 중이던 이란 출신 감독은 새 작품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당국은 촬영을 불허한다. 그럼에도 그는 히잡 착용 의무와 매체 검열이 일상인 사회에서 다음 세대의 목소리를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사막 변두리의 폐허에서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년과 소녀들을 모아서 카메라 테스트를 한다. 그리고 “왜 배우가 되고 싶은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자유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와 같은 단출한 질문들로 그들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린다. 카메라 앞의 아이들은 내성적이든 외향적이든 세계 어디서나 만날 법한 평범한 얼굴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남녀 간 악수조차 금지하고, 공공장소에서 노래와 춤을 제약하는 규율, 아프간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에 드리운 미묘한 긴장이 차츰 떠오른다. 메마른 대지는 이 겹겹의 통제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답변은 ‘통제된 질서 속 자기표현’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영국으로 이주한 하산 나제르 감독은 <허락되지 않은>을 통해 저항과 해방의 언어로서 영화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다. 그가 던진 질문은 상영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잔향을 남길 것이다. (박성호)

 

 

 

이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우리 안의 동심"을 기리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그대로의 모습을 펼쳐 보인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측면과 픽션적 측면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애초에 현시점 이란에서 모든 기록은 다큐멘터리적인 측면을 갖기도 하지만.

 

영화는 크게 이혼 설전을 오가고 있는 부부, 그리고 그중 여성이 조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영화 현장을 오간다. 실제 채취한 현장음이 느껴지는 입국심사를 거쳐 이란에 들어온 (픽션의) 감독과 여성 조감독은 함께 아이들을 모아 캐스팅 오디션을 진행한다. 캐스팅 오디션에서 아이들에게 가족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의미를 묻는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각자의 성장 환경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군가는 (아무래도 가장 많이 본 장르일) 로맨스 영화를 하고 싶고, 누군가는 이성과 함께 촬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다양한 답변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는 있다. 아이들은 성별 간의 철저한 분리, 그리고 망상에 가까운 환상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

 

 

 

친구도 될 수 없지만 결혼 상대로는 염두에 두고,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사랑에 대한 환상은 가득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대화의 장을 만들어주고 대사를 비워두자, 아이들은 제각각의 대사를 찾아 나간다. 누군가는 "먼 나라로 떠나서 살자"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사랑의 말을 듣고 울컥한다. 사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어른들보다도 더.

 

히잡 시위는 과연 히잡에 대한 종교적 해석에만 기인할까. 어려서부터 서로를 차단하고 대화를 하지 않고, 그저 로맨스 영화의 정형화된 모습으로만 서로를 상상하다가 그 상상과 현실의 낙차를 경험한 현실에 기인하지는 않을까. 이 영화는 그런 현실을 조명한다. 이 영화를 경험한 아이들에게는 부디 이것이 작은 연결점의 시작이길 바랄 뿐이다.

 

 

 

아이들 안에 이미 다 있다.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도,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자연스럽지 않은 현실을 인지하는 마음도. 다만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검열적 사회 아래서 가려두는 작업이 이미 시작되었을 뿐이다.

 

검열은 정부가 하지만 거기 앉아있는 건 결국 사람이고, 그들 안에 점점이 쌓여 온 사상이야말로 검열의 진짜 주체다. 그렇다면 사상이 상상력과 사랑을 옥죄기 전에, 주입식 로맨스와 기계적인 분리가 아닌 진정한 대화와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운다면 미래는 달라질까. 그건 미래 세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의 답을 찾는, 더없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면면을 금지하는 발언은 정말 초라할 수밖에 없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것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아이들이 그 초라한 체제 안에서 배운 대로 뱉는 달큰한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진짜 사랑의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울 수 있길 기원한다. 그때가 되면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려도 안전한 사회이기를. 모든 것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작금의 이란에서, 다음 세대가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되 다만 몸 조심하기를. 멀리서 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2025.09.18-26) 상영시간표]

2025.09.21 16:3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2025.09.22 16:30 영화의전당 소극장

2025.09.25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399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